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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초기의 역사좀 알려주세요.

태권도 초기의 역사좀 알려주세요.

댓글 6

익명 2005.04.13
태권도의 역사는... 규슈 왕국이었던 오키나와에서 당수로 시작합니다. 일본에선 공수로 명칭을 바꿨지만, 원래는 당수이고 일제시대에 일본유학을 하던 ymca멤버들에 의해 한국의 당수로 들어와서 나중에 태권도로 명칭을 바꾸게 됩니다. 그증거로 미국이민초기에 건너간 한국당수인들에 의해 미국에선 아직도 당수도장들이 있고 당수 협회또한 있습니다. 출처 : 본인집접 작성.
익명 2005.04.16
답변입니다. 무토 논객에 우리는 속고있다 라는 제가 쓴글을 읽으시면 태권도의 역사뿐만아니라 한국무술계의 실정을 알수 있으길겁니다. 출처 : 본인생각
익명 2005.04.22
태권도 초기역사라... 태권도 초기역사는..... 이런말 답변하기 좀 그런내용입니다. 태권도 교본에 보면 하나같이 고대에 어느시점부터 시작해서 발전해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태권도는 가라데의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때 일본은 한국에 가라데 도장을 세워 한국인에게 가라데를 전수하기 시작했고 일제치하에서 풀려나 일본이 물러간 시점에서 가라데라는 좋은 무술을 어떻게 하냐 해서... 우리식으로 이름을 태권도라고 짓게 됐고 지금까지 오게 됐습니다. 물론 거기서 우리나라의 전통무술이나 다른 동작들을 반영한 면도 있지만 기원은 가라데입니다. 나이가 되신분들은 태권도가 우리 고유의 무술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우기기보단 우리가 그것을 인정하고 태권도 만큼은 우리식으로 발전시켜나가 우리나라만의 무술이 되길바랍니다. 출처 : 직접작성
익명 2005.04.24
답변 태권도는 근본은 가라테 입니다. 박정희 정권때 탄생한 무술로 상당히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태권도의 창시 맴버들은 가라테 사범이었으며 박정희 앞에서 가라테 시범을 보이는데 박정희가 거 태껸이구만 하는 발언에 의해 태권도가 창시되었다고 합니다. 창시 맴버들은 일본 유학생활에서 가라테를 익혔다고 합니다. 따라서 가라테의 정수를 맛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태껸과도 어느정도 관련이 있을수 있습니다. 당시 태껸은 지금과 같은 도장이 없고 무술이라기보단 놀이에 가까운 형태로 비 체계적인 방식으로 수련되었고, 접하기가 매우 쉬웠습니다. 따라서 창시 맴버들 중 태껸을 익혔던 사람이 없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실제로 몇몇은 가라테에서 볼수 없는 화려한 발차기들을 사용할수 있었다고 하는군요 태권도는 가라테를 뼈대로 가지며 태껸에 적잖은 영향을 받은 무술이 아닌가 합니다. 출처 : 본인직접 작성
익명 2007.03.23
아픔이 파도를 칩니다~~~~ 그럼 가라데는 어디서 왔습니까? 그리고 가라데의 원조 당수도는 어디 서 왔습니까 ? 오키나와?~~~~~ 진짜로 아픔이 파도를 칩니다 ~~~~~ 한마디 만 하고 갈께요~~~ 시간 없응 게로요. 가라데의 형 중에는 평안형이란게 있어요. 지금의 품세를 말하죠. 평안은 한국식 발음이고 , 헤이안은 일본식 발음, 제남은 중국식 발음입니다~~~ 이것들을 추적하면 지역이 나와요~~~ 그러면 가라데가 어디서 왔고, 당수도가 어디서 왔고, 태권도가 어떻게 탄생이 되고, 어디서 왔는 지 알겠죠~~~ㅎㅎㅎ 참고로 한개 더 일러 더리죠~~~ 연무형(품세)에는 공식이 있어요~~ 그 공식을 풀면 그 이론이나 철학이 나와요~~~ ㅡ그러면 자동적으로 아~~~~~할겁니다~~ㅋㅋㅋ 한번 돔벼 보세요~~ 참 재미 있을 겁니다~~~ 건투를 빕니다 ~~~ 출처 : 동남부
익명 2012.08.01
태권도의 시발점은 간단하고 짧게 요약함니다. 일제시대 유학생들 과 중국에서 권법을 배운분들이 해방과 더불어 귀국하여 시작한것입니다. 이원국, 황기, 윤병인, 노병직, 전상섭, 윤희병 제씨들에 의하여 보급이된것입니다. 그중 윤병인 선생은 만주에서 태어나 권법을 수련후 일본 유학을 하여 공수도를 수련햇으며, 다른 분들은 모두 유학시절에 공수도를 수련한것입니다. 황기선생은 만주에서 당수도를 배운것입니다. 당시만주는 일본의 속국이여서 당수와 공수를 접할수 잇던것입니다. 6.25 한국전쟁당시 1951년에는 부산에서 공수도 협회가 탄생되엇읍니다. 이전란에 윤병인 선생과 전상섭선생은 실종 되엇지요. 한국군에서 장군으로 잇던 최홍희씨역시 유학시에 쇼도간 공수도를 한분이엿읍니다. 그분이 이승만 대통령 앞에서 당수도 시범단을 이끌고 경무대 뜰에서 관람하며, 태견이로구먼, 햇답니다. 이에 얼듯 최장군은 예하며, 연구하여 지어낸 단어가 태권도 람니다. 1956년도에 일부는 그이름을 체택하여 썻으나, 대부분의 사범들은 당수도, 공수도, 권법 이란 명층을 사용한것입니다. 박정희 장군의 혁명과 더불어 통합을 강요 받아 지도층 들은 모여 태수도란 명층을 썻으며, 대한 체육회산하 경기단체로 가맹한것이 시발이되어(1961) 오늘 날의 태권도는 경기단채로 굳어진것입니다. 당시에 윤희병(윤쾌병), 황기씨는 무도는 경기가 될수없다고 결국 동조치안고 수박도협회란 단체로 남앗읍니다. 박정희 태통령의 총애를 못받은 최홍희 장군은 결국 카나다로 이민을 갓고, 그후 북한에 태권도를 보급한것입니다. 북한의 태권도는 급성장을 햇읍니다. 본인의 연구 조사에 의하면 사변당시에 실종되엇던 윤병인 선생이 북에서 모란봉 체육단의 지도층에게 격술 이란 명층하에 지도하고 잇엇읍니다. (1966-1968) 최장군의 태권도와 함게 격술은 급성장을 가속화하며 결국 해외에서 알려져잇는 명층인 태권도로 지정된것으로 추산함니다. 우리가 오늘날 생각하여야 할점은 과연 태권도 가 경기 일변도로서 일정인들에게 즉 선수중심의 경기로 남아야 할것인지? 대다수의 국민들의 건강과 호신을 위한 생활 무술로서 재생해야 될것인지 ? 혼란 상태인듯 함니다. 경기로 중점을 두어 결국 대중없는 소수의 선수와 유아들의 놀이로 변하게 되엇읍니다. 출처 : 자연류 무예 연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