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F 대한민국협회 창립 발기인대회
◈ 장소변경에 대한 입장
국제태권도연맹 대한민국협회의 창립발기인총회를 불과 이틀 남기고 느닷없이 협회장으로 내정된 분이 고사를 하고 승인됐던 장소사용이 원천적으로 취소 불허되는 어이없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동시에 대한태권도협회는 마치 ITF 대한민국협회의 창립이 태권도계를 분란으로 몰아넣고자 하는 의도처럼 몰아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자신이 없기에 그 모양인지 한심합니다.
우리는 일단 새로운 협회장과 함께 장소를 변경하여 예정된 창립발기인총회 행사를 치를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열려진 공개 대화창구와 매스콤을 통해 정정당당하게 종주국 태권도의 위상을 알리고자 합니다.
국제태권도연맹의 종주국은 북한이 아닙니다. 북한은 140개 가까운 ITF 회원국 중의 하나입니다. 총재가 북한 국적의 IOC 위원일 뿐입니다. 종주국은 한 곳 뿐이 없습니다. 처음 태권도가 역사에 기록되고 그곳에서 자라나고 해외에 전파되고 국제연맹이 설립된 대한민국 한 곳 뿐입니다. 그리고 확장해서 남북한 코리어 한곳입니다. 그런데 그 세계적인 국제기구의 종주국에 정작 협회가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일입니까?
그 동안의 왜곡된 역사를 주장해오다가 그것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코미디입니다. 이런 코미디가 박정희 정권도 아니고 전두환 정권도 아닌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다는 일이 너무 서글프고 절망스럽습니다. 브리태니커백과사전에서도 명명백백 밝히고 있는 이러한 사실을 정작 종주국에서만 언제까지 숨길 생각일까요?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우리는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고 정통태권도를 원래 있던 곳에 의당 다시 놓고자 했습니다. 세계 속에 가장 자랑스러운 문화이면서, 왜곡시키고 숨겨온 과정으로 보면 가장 수치스러운 역사이기에 이제는 정말 초심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도대체 무도를 한다는 사람들의 정신자세가 이 모양입니다. 대한태권도협회는 국민들과 역사 앞에 무릎 꿇고 사죄를 빌어야만 합니다.
분명 1973년부터 시작한 WTF의 역사와 과거 김운용씨가 이룩한 공과를 현실적으로 우리는 모두 인정한다고 말했고 진심으로 통합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기임을 역설했습니다. 양 협회가 함께 선의의 경쟁과 교류를 통해 양대 국제연맹이 더더욱 거리를 좁히고 통합을 위한 시간과 거리를 단축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벌이는 행태는 70년대 독재정권 때의 발상에서 한 치도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고구려 역사부터 일제 때까지의 왜곡된 역사를 수정하고 지키며, 우리의 아름다운 국토 ‘독도’를 수호해야 하는 것도, 지나간 독재정권하에서의 과거사의 진상을 밝히는 것도 모두 우리의 할 일이고 의무입니다. 먼 역사만 얘기하지 말고 오늘도 진행되고 있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세계적 문화유산 태권도의 왜곡된 역사는 언제 되찾고 지킬 것입니까?
도대체 누가 할 것입니까?
부득이 이러한 제반 사정으로 인해 보도에 혼란을 주게 된 점을 사과하면서 수정된 장소와 일정에 대해 다시 보도 자료를 보냅니다.
◈ ITF(국제태권도연맹)가 무엇인가요?
□ 현재 세계태권도계의 양대 산맥은 ITF와 WTF로 양분돼 있습니다.
ITF:태권도의 아버지라 불리는 창헌 최홍희선생이 1946년부터 9년간에 걸 친 연구 끝에 창시하고 명명한 우리의 무도가 바로 로서 1955 년 4월 11일 이승만대통령의 재가를 얻어 이 땅에 처음 태어났으며, 그 에 의해 1959년 대한태권도협회가 창설되고, 1966년에는 우리민족 역사 상 최초로 우리가 국제기구의 종주국이 된 ITF(국제태권도연맹)가 창설 되었다. 초대총재가 바로 창시자 최홍희선생이고 지금은 북한의 장웅 IOC위원이 총재로 있으며 현재 사무국이 있는 본부는 오스트리아 빈에 있다.
WTF:최총재가 정치적 압력으로 1972년 캐나다로 망명하고 본부를 서울에서 캐나다 토론토로 이전한 이후 1973년 급작스럽게 창립했으며, IOC위원 이던 초대총재 김운용씨가 올림픽종목으로 최근까지 발전시키다가 물러 나고 현재는 조정원씨가 총재를 이어받았으며 본부는 대한민국 서울에 있다.
□ 기네스북과 브리태니커백과사전에도 명기된 태권도와 창시자
기네스북:(1990년부터 기재)- 세계 최고기록을 내는 사람만을 기록.
태권도:이 무도의 창시자이며 아버지인 최홍희 장군은 태권도에서 가장 높은 9단이다. 태권도는 1955년 4월 11일에 창시됐으 며 코리아의 전통과 문화의 일부로 인정받고 있다.국제태 권도연맹(ITF)은 1966년에 창설되었고 1974년부터 세계선 수권대회를 하기 시작했다.
브리태니커백과사전:(1992년부터 기재)- 그 정확도에 있어 세계적인 명성의
영어대백과사전
태권도:태권도는 발로 차고 주먹으로 찌르는 코리안의 격투기인데 태권도의 창시자인 남한의 최홍희 장군이 1955년에 제출한 이름이 채택된 이후부터 공인되었다.
◈ 최홍희(1918~2002), 그는 누구인가?
□ 함경북도 화대에서 타고난 약골로 출생.
□ 일제 때 불과 초등학교 5학년의 나이에 일제에 항거하는 동맹휴학 주도한 혐의로 무기정학(광주학생운동여파), 이후 당시 최고의 명필 한일동선생(평
양 부벽루 현판을 쓴 분)으로부터 사사 받아 훗날 명필로도 유명해지나 당 시 태껸도 얼마간 사사 받음.
□ 학교를 다니기 위해 일본으로 밀항, 1943년 중앙대학 전문 법학과 졸업 시 까지 가라데를 계속해 일본에서도 유명한 고수, 이후 일본을 위한 전쟁에 학병으로 끌려가 평양에 머물 당시, 조만식선생의 지시에 따라 무기고를 털 어 광복군과 연계해 일본과 정면으로 싸우려던 이른바 을 주 동했으나 거사 하루 전에 발각되고 감옥에 있다가 처형 이틀 전에 해방으로 풀려남.
□ 해방 후 서울로 와 국군창설에 참여하고, 1961년 소장으로 예편할 때까지 줄곧 그가 창시한 태권도를 전군에 의무화작업을 통해 태권도 기반 닦음.
□ 1955년 4월 11일 처음 태권도를 창시하고 명명함.
□ 1959년 대한태권도협회 창설
□ 1965년 태권도를 처음으로 국기라 명명하고 각의를 통과시켜 공식화함.
□ 1966년 국제태권도연맹(ITF)을 서울에서 창설.(당시 9개국)
□ 1972년 독재정권 반대소신에 대한 압력에다가 결정적으로 태권도를 정치의 도구로 삼으려는 것에 대한 분노로 캐나다로 망명
□ 1978년, 사상이나 국가와 종족에 구애됨 없이 태권도를 온 세상에 보급하겠 다는 신념에 따라 처음 공산국가들인 동구라파시범단 인솔 방문(이기하, 박 정태,최창근,룡와이민 등)
□ 1980년, 소련, 중국에 이어 북한에도 태권도 보급
□ 1997년, 노벨평화상 추천(캐나다 3선 국회의원 맥 허브씨 포함 3인의 추천)
□ 1998년 김대중정권의 출발에 따른 몇 차례의 방한 일정이 성사되는 듯 했으 나 결국 각서 문제로 불발(태권도 통합을 위한 방한 일정)
□ 1999년 국제무도경기위원회 창설(17개국)
□ 2000년 그의 제안에 따른 김운용총재와의 양대 태권도 통합논의에 합의했 으나 구체적 회담성사에 실패.
□ 2002년 그토록 원했던 귀향과 통합을 실현시키지 못한 채 서거
◈ 대한민국협회 창립의 의미(역사 복원과 통합의 사명)
□ 서울에서 창시되고 서울에서 창립됐던 정통태권도의 연을 그대로 이어받고 재 창립되는 것으로 정통태권도의 복원이자 종주국태권도의 복원을 의미한 다.
□ 이미 2002년부터 태권도의 뿌리를 찾아 자발적으로 나선 일군의 젊은 태권 도 후계자들에 의해 캐나다와 일본 등지에서 역사의 진실과 기술습득을 위 한 연수가 시작됐고, 국내 를 통한 활동 확장이 모체가 되 고 울림이 되어 2005년 마침내 대한민국혐회의 연맹가입 인준이 성사됐 다. 7월에는 호주 퀸스랜드에서 개최된 제14회 세계대회에 당당히 태극마 크를 달고 국가대표가 참가했으며, 8.15남북축전에서 수많은 관중들의 환 호 속에 종주국 선수들의 시범이 선보였다. 또한 9월에는 미국협회장 앤디 맨시아박사(8단)와 일본의 의 실제모델 황수일감독의 주관으로 국 제세미나도 열려 창립을 위한 움직임은 역동적이라 할 만 했다.
□ 최홍희의 망명은 두 가지 이유가 결정적이다. 한 가지는 박정권이 태권도 를 정권의 하수도구로 삼으려하는 시도에 대한 반발이었고, 공산권을 포함 전 세계에 이념이나 국가, 종족, 종교에 구애됨 없이 태권도를 보급하려는 신념에 따른 것이었다. 그럼에도 정작 그의 망명과 함께 태권도의 고향에 서만 갑자기 태권도 탄생의 역사와 ITF의 흔적조차도 모두 사라지고 말았 다. 이제 잊혀진 역사를 복원하고 태권도창시의 역사적 유적을 복원함으로 태권도의 뿌리를 되살리는 의미를 갖고 있다.
□ 어쨌거나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양대 태권도 국제기구의 통합을 통해 종주 국 태권도의 완성을 위한 시발의 의미를 담고 있다.
□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에서의 남북단일팀 구성 합의에 따라 무엇보다 태권 도 통합의 구체적 논의가 중요하고, 그 구체적 논의의 주요한 매개체 역할 을 담당함으로 진전된 결과를 예견할 수 있을 것이며, 궁극적으로 올림픽 에서의 영구종목화할 발단을 마련할 수 있다.
□ 축구와 같은 인기종목의 경우 동아시아대회나 한중일대회가 있음에도 태권 도의 경우 종주국임에도 이러한 대회가 없는데 대한민국협회의 창립으로 남북한을 포함한 중국과 일본간의 4개국 대회의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으 며, 이로 인한 남북문화교류에도 큰 이바지를 할 수 있다.
◈ 북한태권도란 표현은 고의적인 왜곡된 표현
2001년까지만 해도 최총재의 외아들이자 ITF의 사무총장이었던 최중화가 총재를 이어받는 것이 거의 유력했으나 그의 잇단 일탈행위로 연맹 내부에 서 제명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져 결국 제명한 뒤 IOC 위원이었던 장웅총재 에게 총재이양이 이루어졌다. 그의 유언에 담긴 표현처럼 흑인이 사무총장이라고 해서 유엔사무총장이 흑인만을 위한 사무총장이 아니듯 이 임기제의 국제기구 총재가 북한 국적이라고 해서 태권도를 북한태권도 라고 함은 옳지 않다. 현재 ITF의 홈페이지만 보아도 태권도가 태동된 서 울의 역사적 내용만이 소상하게 나와 있을 뿐이다. ITF는 그것을 죽이려던 사람들의 고의성에 의해 종주국에서 사라졌고, 오늘날에도 왜곡된 표현 으로 순수한 무도정신을 더럽히고 있지만, ITF는 분명히 우리 남북한 모두 한민족의 것이고 모든 세계인의 것이다. 만일 세계축구협회 회장에 북한사람 이 당선이 된다면 그날부터 세계축구는 북한축구가 되는 것일까???
◈ 장웅총재와 한춘희(최총재 미망인) 여사의 축하메시지 발표
발기인창립총회에서는 장웅총재의 축하메시지와 33년을 캐나다에서 살아온 최
총재의 미망인 한춘희여사의 눈물의 편지가 공개된다.
◈ 전 세계 태권도 1세대 선각자들이 함께 하는 창립총회!!
창립발기인총회에는 전 세계 태권도 1세대 선각자들이 마음으로 함께 한다.
정통태권도의 귀향을 축하하며!
아울러 태권도 사범 해외파견 1호인 현재 ITF 이기하 수석부총재(9당, 영국) 와 역시 태권도 창시부터 최총재의 서거까지 함께 한 박종수부총재(9단, 캐나 다), 미국의 앤디 맨시아협회장(8단, 의학박사, 뉴욕), 황진일본협회 이사장 (8단, 토쿄)이 참석해 함께 의미를 되새길 예정이다. 이미 이기하수석부총재 는 일찍 입국해 12월 9일 광주시협회의 사범연수회에 참석 열성적인 세미나를 주관했다.
◈ 국제태권도연맹(ITF) 대한민국협회 창립발기인총회
때: 2005. 12. 17. 15:00
곳: 중소기업진흥회관(여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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