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웅총재의 ITF에서와 최중화총재의 ITF에서의 나의 이야기...
지금부터 제가하는 말은 거짓이 아닌 사실임을 밝히는 바입니다.
제글에는 정령 제가 지어낸 이야기가 하나도 없고 뺀것도없고 더한것도 없음을 이야기합니다.
1. 대전 ITF-KOREA에서...
저는 대전의 ITF-KOREA의 사범이었습니다. 초기 멤버이지요. 물론 완전 초기는 아니지만은 대전경성상가의 ITF 도장이 생기고 거의 첫번째로 찾아온 사람이었습니다.
일단은 그랬던 제가 창헌연구회와 만나게 되었던 이야기를 하려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ITF-KOREA의 초기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당시 저의 인터넷 활동으로도 ITF를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던걸로 압니다. 일단 한명 꼽으라면은 박경진 부사범을 꼽을 수 있을것 같군요. 저는 ITF를 위해 정말 열심히 해왔습니다. 나름대로 제가 할수있는 것은 정말 열심히 하였습니다. 물론 지금도 사람들을 만나면 최홍희 창시자님에 관해서 열변을 토합니다. 그렇게 생활을 하다가 2004년도에 한국에서 ITF세계 선수권 대회가 열렸습니다. 그때 저는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저보다 훨씬 뒤에 온사람들은 시합을 보내고 저는 보내지 않았지요. 그 후로 저는 결심했습니다. 내가 실력을 인정을 받지 못하면은 대전에 나타나지 않겠다고... 솔직히 아직도 그때에 시합을 못나간것은 저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었음을 밝힙니다.
2. 창헌연구회와의 만남
한국에서 세계대회가 치뤄지면서 창헌연구회에서 움직임은 시작되었습니다. 유언장, 회고록등을 이야기 하며 움직임은 시작되었지요. 그곳은 최중화 총재를 불법 총재라 이야기를 하면서 활동했습니다. 그러다 창헌연구회가 서울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당시에 저는 다른 이유는 없었습니다. 단순하게 이곳에서 배워가서 열심히 연습해서 대전에 가서 인정을 받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창헌에도 그당시 메일로 이야기 했지요. 저는 장웅이니 최중화니 정치적인 이야기는 하고싶지 않으며 순수히 ITF만 하고 싶다고 말이죠!! 그러나 그것은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만나게 되니 자연히 정치적인 이야기들이 나오더군요. 최중화 총재도 헐뜯으며 말이지요. 그렇게 창헌과 컨셉 후에 채수용사범님께 전화가 와서 혼났지요. 장웅쪽과 컨셉했느냐고 혼났습니다. 그렇게 창헌연구회와 만나서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쪽(창헌)이 그럴듯 괞찮아 보이더군요. 우선은 창헌은 북한을 굉장히 좋게 표현했습니다. 우리의 동족이고 형제라고... 하지만 대전에 채수용 사범님은 북한을 무지 싫어 하지요. 이것은 본인이 저에게 직접 말씀하신 겁니다. 나는 북한을 아주 혐오한다는 식으로 하신듯 기억이 나는 듯 하군요. 저는 솔직히 그당시 채수용 사범님의 그런말이 너무 듣기가 싫더군요. 하지만 채수용 사범님의 말씀이 맞았습니다. 김정일 사진이 비를 맞는다고 울면서 항의 하는게 북조선 사람들입니다. 얼마전에는 평양의 행사때에 남조선군인을 칼로 찌르는 퍼포먼스를 했더군요. 그런 북한을 형제니 동포로 생각했던 제가 병신이었지요. 그리고 효순이 미선이 사건때에 촛불집회에가서 주한 미군 철수를 외친 제가 너무나도 병신같이 느껴 지는군요. 그게 나라를 위하는 길인줄 알았는데 김정일이 좋으라고 한짓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슬프고 인정하기 싥으나 북한은 우리의 주적입니다. 이야기가 잠시 빛나갔군요. 창헌과 연락을 하고 대전쪽 멤버들하고는 연락을 안하고 지냈었습니다. 함께 전주에 계시고 저를 이모저모로 챙겨주신 황보선 사범님과 저를 누구보다도 아끼고 잘해주시던 김진배 사범님을 제외하고는 대전의 멤버 아무하고도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창헌에서 들은 이야기들은 진배사범님에게 바로 바로 말해주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진재사범님이 거기말 듣지말고 창헌과 연락하지말고 지내라고 하셔서 일단은 그렇게 지내고 있었었습니다. 그때에 창헌에서 저에게 하였던 이야기들은 앞으로 2개월 3개월 내에는 모든것이 결판이 날 것이다. 우리(창헌)과 같이 하지않으면은 한국에서는 ITF를 못할 것이며 ITF간판을 못쓰게 할것이라고요. 너무나도 떳떳하고 자신있게 말씀하시더군요. 그리고 그당시 대전에 한스태권도장과 마트가 사라지면서 저는 정말 대전이 망해가는 듯이 보였습니다. 아무튼 그후에 한동안 진배사범님 말씀대로 연락을 한동안 안하고 지내고 있는데, 창헌에서 연락이 왔지요. 그때에 저에게 한말은 함께 호주에 ITF-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보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저에게는 거절할 수 없는 이야기 였습니다. 솔직히 제 자신이 아니고는 저의 이런 기분들 모르실 겁니다. 대전에서 열린 세계대회를 못나가 한이 맺힌 저에게 그이야기는 무엇보다도 달콤한 이야기 였었음을... 결국에는 호주를 함께 가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물론 그당시에는 그렇게 만나고 싶었던 철권의 화랑 황수일 사범님도 만나고 난생 처음 외국땅도 밟아보고 무엇보다도 ITF도복을 입고서 외국선수들과 시합을 뛸수 있었다는 것이 행복했지요. 하지만 그한번의 대회로 인하여 저는 돌이킬수 없는 행동을 했다는 것을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느꼈지요. 난 이제 정말로 여기(창헌)에 머물러야 하겠구나~ 라고... 호주의 대회로 인하여 전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많은 대전의 멤버들은 저를 배신자라 하실 겁니다. 맞습니다.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저에게 잘해주시던 황보선사범님 하고도 거리가 멀어지고, 그래도 저를 유일하게 가장 이해해주신 진배 사범님이 가장 고맙고 감사할뿐 입니다. ITF대전 멤버 여러분 저도 정말 힘들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힘이 듭니다. 창헌에서도 저는 대접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저를 동료로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항상 저에게 틀 못한다. 발차기 못찬다등 무시를 했지요. 툭하면 대전을 들먹이며 말하곤 했지요. 제가 그당시 대전 소속도 아니고 창헌 본인들 단체에 들어와 있는데도 말이지요. 그리고 이글을 창헌 사람들이 볼거라고 생각하고 이야기합니다. 창헌 여러분들이 저에게 한 행동을 생각해 보십시요. 남과북 공동 대축전 시범한다고 불러서 머리수 채우는 들러리만 시키려 했지요. 그것도 제가 이야기해서 간신히 격파하나 눠주려 했지요. 저도 학교에서 시범 전공하고 있고 할거 많습니다. 발차기도 창헌 멤버들 중 누구보다도 딸리지 않는다고 봅니다. 제 발차기는 저의 예전 코치님도 인정해주셨었고, 킥복싱 도장에서도 인정을 받았고, 공수도 도장에서도 인정을 받았으며, 저희 교수님도 인정을 해주셨었습니다. 물론 점프력 부제로 고난이도 점프 발차기는 잘하지 못하지만은요. k-1 트라이아웃때도 저의 발차기가 k-1관계자들의 시선도 끌었었고요. 물론 제가 잘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에게 무시받을 정도의 개발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도 운동 똥구멍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그런말 한적있죠. ((국환이 같은 피해자가 나오면 안된다 저거봐라 대전에서 배워가지고 단증도 받지 못하고 실력도 안되지 않느냐)) 물론 그당시 제가 단증은 받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전 대전에서 많은 것을 배웠었습니다. 창헌에서 빽스킹블로우를 하지 않지요. 대전에서는 빽스킹블로우를 사용합니다. 대전에서 빽스킹블로우를 김진배 사범님에게 배웠습니다. k-1시합전 기자회견때 기자가 물어보더군요. 선발전 시합때 빽스킹블로우를 선보였는데 그것은 따로 연습하신 것입니까 아니면 ITF에도 빽스킹블로우가 있습니까라고 물어봤습니다. 물론 있다고 했지요. 제가 그렇게 배웠으니까요. 그리고 함께 호주 대회에 나갔었을때에 제가 점프펀치로 외국선수에게 점수를 뺏었던거 기억하시는지요. 그기술 또한 대전에서 이종목 사범님 세미나때에 배웠었습니다. 저는 결코 대전에서 배운것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동작에 의문을 같고 왜? 라는 질문을 같는 생각하는 무술인이 되었지요. 이러한 마인드는 채수용 사범님으로 부터 배운 것입니다. 저는 정말로 대전에서 많은 성장을 한 사람입니다. 대전을 가서 무력이 엄청 높아졌지요. 그러니까 그렇게 앞으로 대전가면 배울게 없다는 거짓말은 사람들에게 하지 마십시요. 그리고 저는 항상 생각했던게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은 ITF를 국민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TV였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를 잘따르던 동생에게 연락이 왔지요. 이번 서울에서 열리는 K-1에 한번 나가보라고 그랑프리는 없고 입식타격이니까 한번 나가보라고요, 그래서 창헌에 전화해서 뜻을 물었죠!! K-1에 ITF로 나가도 괜찮겠느냐고요. 그때 괞찮다고 나가라고 하셨지요. 하지만 저는 제가 질때에 ITF의 이미지가 흐려질까봐 제가 합기도 단증도 있으니까 합기도로 출전하면 어떻겠냐고 나중에 이기면은 저는 원래 태권도인입니다로 밣히겠다고 말하니까 그러지말고 떳떳하게 ITF로 나가라고 하셨지요. 그래서 나가기로 하고 트라이아웃(선발전)때에 트레이너 한명 보내달라고 했더니 연락도 없더군요. K-1관계자가 관장님 어디 계시냐고 저에게 물어볼때 없다고 이야기하는 저의 쪽팔림과 비참함... 만약에 처음부터 여러분과 운동한 오사범님같은 사람이 K-1에 나간다면 적극적으로 응원을 하고 전체메일 때리면 날리가 나겠지요. 제가 K-1나가면서 얼마나 심리적 압박이 크셨는지 아십니까!! 시합을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강박관념이 강했던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저 자신 때문도 아니고 ITF라는 이름 때문에... 요즘 현시대는 도장깨기도 없고 글러브 시대입니다. ITF도 이시대에 살아남을려면 적극적이 풀컨택트 시합을 해야합니다. 거기서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이 K-1이고 저는 정말 ITF를 알리고 싶어서 아직도 미흡한 실력으로 두렵고 떨리지만은 K-1에 뛰어든 것입니다. 그런 저인데 시합날은 계인적으로 절 좋아해주셔서 찾아와 주신 최현규 관장님께 쎄컨도 보지말라고 하셨다면서요. 제 동생이 다듣고 이야기 해줬습니다. 세상에 이런 엿같은 경우가... 그리고 기자들에게 우리 소속아니라고 상관없다고 말했다고요, 물론 제가 깨질까봐 그랬겠죠. 제가 깨지면은 사람들에게 저 김국환 선수는 우리와 함께 운동한 사람이 아니라 대전에서 운동한 사람이라 그렇다고... 정말 당신들 너무 한다고 생가하지 않습니까!! 당신들은 저에게 이런 식으로 대우를 했으나, 배신자 가롯유다 같은 저에게 대전의 채수용 사범님은 전화해서 말씀 하셨습니다. 계속 거기에 머물러 있을 것이냐고... 이말은 한마디로 다시 오라는 말이지요. 선주항 부사범님은 항상 언제나 저에게 저는 사범님 편입니다. 사범님 힘내십시요. 이야기를 하곤 하였죠. 혼자만 살겠다고 간 저에게... 그리고 저에게 ITF를 접하게 해주시고 잘해주셨던 오창진 사장님을 오해하고 배신했던 저를 오사장님은 젊은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는 거라며 용서해 주셨죠!! 저는 완전 성경에 돌아온 탕자가 된 기분이더군요. 대전의 다른 멤버들의 저를 향한 안좋은 시선이 두렵습니다 하지만 저는 내 집에 돌아온 기분입니다. 저는 솔직히 이번에 오창진 사장님이 받아주지 않으면은 태권도계를 떠나려고 했었습니다. 물론 WTF도 하지 않으려고 했지요. 하지만 오사장님은 어쨋든 반대로 저를 안스럽게 봐주시고 용서해 주셨지요. 정말 창헌 당신들과 비교가 됩니다.
3. 창헌연구회의 거짓말
1) 위에도 썻듯이 작년에 몇월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은 4,5월 쯤인 듯!! 창헌연구회와 함께하지
지않으면 한국에서는 ITF를 할 수 없을 것이다.
* 하지만 대전은 아직까지도 건제하고 성장해 나가고 있군요.
2) 최중화는 마약을 하며 이제 ITF에서 손을 땟다.
* 최중화 총재는 건재하게 ITF를 이끄시며 세미나도 하고 다니시더군요(사진도 보았음) 왜 멀쩡한
사람을 마약중독자로 만드는지... 그리고 최중화 총재가 망했으면은 일본의 무신대회는 어떻게 설
명할 것인지, 마약중독자가 세미나를 하며 사범들을 거느릴수 있을까...
3) 일본의 이종목 사범이 황진 사현님을 찾아가서 다시 받아달라고 빌었으나, 황진사현님이 배신자
는 다시 받아주지 않겠다고 하였다고...
* 하지만 이종목 사범님은 대전에서 활발한 세미나를 하시고, 일본에서도 여전히 건제히 활동하고
계시는데 K-1, 프라이드 버금가는 대회도 만들겠다고 하신다는데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4) 오창진씨가 장웅총재를 찾아가서 받아주면은 충성을 다하겠다고 말했다고...
* 오창진 사장님을 만났지만은 전혀 그 반대이고 오히려 여러 자료로 장웅총재를 치려하던데...
5) 황수일 사범 첫 방한 이라는 기사가 떳었다. 하지만 아니다. 황수일 사범님은 예전에 다까끼고지
사범님과 함께 한국에 용인대학에도 가서 ITF세미나도 했었다.
제글에는 정령 제가 지어낸 이야기가 하나도 없고 뺀것도없고 더한것도 없음을 이야기합니다.
1. 대전 ITF-KOREA에서...
저는 대전의 ITF-KOREA의 사범이었습니다. 초기 멤버이지요. 물론 완전 초기는 아니지만은 대전경성상가의 ITF 도장이 생기고 거의 첫번째로 찾아온 사람이었습니다.
일단은 그랬던 제가 창헌연구회와 만나게 되었던 이야기를 하려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ITF-KOREA의 초기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당시 저의 인터넷 활동으로도 ITF를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던걸로 압니다. 일단 한명 꼽으라면은 박경진 부사범을 꼽을 수 있을것 같군요. 저는 ITF를 위해 정말 열심히 해왔습니다. 나름대로 제가 할수있는 것은 정말 열심히 하였습니다. 물론 지금도 사람들을 만나면 최홍희 창시자님에 관해서 열변을 토합니다. 그렇게 생활을 하다가 2004년도에 한국에서 ITF세계 선수권 대회가 열렸습니다. 그때 저는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저보다 훨씬 뒤에 온사람들은 시합을 보내고 저는 보내지 않았지요. 그 후로 저는 결심했습니다. 내가 실력을 인정을 받지 못하면은 대전에 나타나지 않겠다고... 솔직히 아직도 그때에 시합을 못나간것은 저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었음을 밝힙니다.
2. 창헌연구회와의 만남
한국에서 세계대회가 치뤄지면서 창헌연구회에서 움직임은 시작되었습니다. 유언장, 회고록등을 이야기 하며 움직임은 시작되었지요. 그곳은 최중화 총재를 불법 총재라 이야기를 하면서 활동했습니다. 그러다 창헌연구회가 서울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당시에 저는 다른 이유는 없었습니다. 단순하게 이곳에서 배워가서 열심히 연습해서 대전에 가서 인정을 받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창헌에도 그당시 메일로 이야기 했지요. 저는 장웅이니 최중화니 정치적인 이야기는 하고싶지 않으며 순수히 ITF만 하고 싶다고 말이죠!! 그러나 그것은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만나게 되니 자연히 정치적인 이야기들이 나오더군요. 최중화 총재도 헐뜯으며 말이지요. 그렇게 창헌과 컨셉 후에 채수용사범님께 전화가 와서 혼났지요. 장웅쪽과 컨셉했느냐고 혼났습니다. 그렇게 창헌연구회와 만나서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쪽(창헌)이 그럴듯 괞찮아 보이더군요. 우선은 창헌은 북한을 굉장히 좋게 표현했습니다. 우리의 동족이고 형제라고... 하지만 대전에 채수용 사범님은 북한을 무지 싫어 하지요. 이것은 본인이 저에게 직접 말씀하신 겁니다. 나는 북한을 아주 혐오한다는 식으로 하신듯 기억이 나는 듯 하군요. 저는 솔직히 그당시 채수용 사범님의 그런말이 너무 듣기가 싫더군요. 하지만 채수용 사범님의 말씀이 맞았습니다. 김정일 사진이 비를 맞는다고 울면서 항의 하는게 북조선 사람들입니다. 얼마전에는 평양의 행사때에 남조선군인을 칼로 찌르는 퍼포먼스를 했더군요. 그런 북한을 형제니 동포로 생각했던 제가 병신이었지요. 그리고 효순이 미선이 사건때에 촛불집회에가서 주한 미군 철수를 외친 제가 너무나도 병신같이 느껴 지는군요. 그게 나라를 위하는 길인줄 알았는데 김정일이 좋으라고 한짓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슬프고 인정하기 싥으나 북한은 우리의 주적입니다. 이야기가 잠시 빛나갔군요. 창헌과 연락을 하고 대전쪽 멤버들하고는 연락을 안하고 지냈었습니다. 함께 전주에 계시고 저를 이모저모로 챙겨주신 황보선 사범님과 저를 누구보다도 아끼고 잘해주시던 김진배 사범님을 제외하고는 대전의 멤버 아무하고도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창헌에서 들은 이야기들은 진배사범님에게 바로 바로 말해주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진재사범님이 거기말 듣지말고 창헌과 연락하지말고 지내라고 하셔서 일단은 그렇게 지내고 있었었습니다. 그때에 창헌에서 저에게 하였던 이야기들은 앞으로 2개월 3개월 내에는 모든것이 결판이 날 것이다. 우리(창헌)과 같이 하지않으면은 한국에서는 ITF를 못할 것이며 ITF간판을 못쓰게 할것이라고요. 너무나도 떳떳하고 자신있게 말씀하시더군요. 그리고 그당시 대전에 한스태권도장과 마트가 사라지면서 저는 정말 대전이 망해가는 듯이 보였습니다. 아무튼 그후에 한동안 진배사범님 말씀대로 연락을 한동안 안하고 지내고 있는데, 창헌에서 연락이 왔지요. 그때에 저에게 한말은 함께 호주에 ITF-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보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저에게는 거절할 수 없는 이야기 였습니다. 솔직히 제 자신이 아니고는 저의 이런 기분들 모르실 겁니다. 대전에서 열린 세계대회를 못나가 한이 맺힌 저에게 그이야기는 무엇보다도 달콤한 이야기 였었음을... 결국에는 호주를 함께 가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물론 그당시에는 그렇게 만나고 싶었던 철권의 화랑 황수일 사범님도 만나고 난생 처음 외국땅도 밟아보고 무엇보다도 ITF도복을 입고서 외국선수들과 시합을 뛸수 있었다는 것이 행복했지요. 하지만 그한번의 대회로 인하여 저는 돌이킬수 없는 행동을 했다는 것을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느꼈지요. 난 이제 정말로 여기(창헌)에 머물러야 하겠구나~ 라고... 호주의 대회로 인하여 전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많은 대전의 멤버들은 저를 배신자라 하실 겁니다. 맞습니다.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저에게 잘해주시던 황보선사범님 하고도 거리가 멀어지고, 그래도 저를 유일하게 가장 이해해주신 진배 사범님이 가장 고맙고 감사할뿐 입니다. ITF대전 멤버 여러분 저도 정말 힘들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힘이 듭니다. 창헌에서도 저는 대접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저를 동료로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항상 저에게 틀 못한다. 발차기 못찬다등 무시를 했지요. 툭하면 대전을 들먹이며 말하곤 했지요. 제가 그당시 대전 소속도 아니고 창헌 본인들 단체에 들어와 있는데도 말이지요. 그리고 이글을 창헌 사람들이 볼거라고 생각하고 이야기합니다. 창헌 여러분들이 저에게 한 행동을 생각해 보십시요. 남과북 공동 대축전 시범한다고 불러서 머리수 채우는 들러리만 시키려 했지요. 그것도 제가 이야기해서 간신히 격파하나 눠주려 했지요. 저도 학교에서 시범 전공하고 있고 할거 많습니다. 발차기도 창헌 멤버들 중 누구보다도 딸리지 않는다고 봅니다. 제 발차기는 저의 예전 코치님도 인정해주셨었고, 킥복싱 도장에서도 인정을 받았고, 공수도 도장에서도 인정을 받았으며, 저희 교수님도 인정을 해주셨었습니다. 물론 점프력 부제로 고난이도 점프 발차기는 잘하지 못하지만은요. k-1 트라이아웃때도 저의 발차기가 k-1관계자들의 시선도 끌었었고요. 물론 제가 잘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에게 무시받을 정도의 개발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도 운동 똥구멍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그런말 한적있죠. ((국환이 같은 피해자가 나오면 안된다 저거봐라 대전에서 배워가지고 단증도 받지 못하고 실력도 안되지 않느냐)) 물론 그당시 제가 단증은 받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전 대전에서 많은 것을 배웠었습니다. 창헌에서 빽스킹블로우를 하지 않지요. 대전에서는 빽스킹블로우를 사용합니다. 대전에서 빽스킹블로우를 김진배 사범님에게 배웠습니다. k-1시합전 기자회견때 기자가 물어보더군요. 선발전 시합때 빽스킹블로우를 선보였는데 그것은 따로 연습하신 것입니까 아니면 ITF에도 빽스킹블로우가 있습니까라고 물어봤습니다. 물론 있다고 했지요. 제가 그렇게 배웠으니까요. 그리고 함께 호주 대회에 나갔었을때에 제가 점프펀치로 외국선수에게 점수를 뺏었던거 기억하시는지요. 그기술 또한 대전에서 이종목 사범님 세미나때에 배웠었습니다. 저는 결코 대전에서 배운것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동작에 의문을 같고 왜? 라는 질문을 같는 생각하는 무술인이 되었지요. 이러한 마인드는 채수용 사범님으로 부터 배운 것입니다. 저는 정말로 대전에서 많은 성장을 한 사람입니다. 대전을 가서 무력이 엄청 높아졌지요. 그러니까 그렇게 앞으로 대전가면 배울게 없다는 거짓말은 사람들에게 하지 마십시요. 그리고 저는 항상 생각했던게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은 ITF를 국민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TV였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를 잘따르던 동생에게 연락이 왔지요. 이번 서울에서 열리는 K-1에 한번 나가보라고 그랑프리는 없고 입식타격이니까 한번 나가보라고요, 그래서 창헌에 전화해서 뜻을 물었죠!! K-1에 ITF로 나가도 괜찮겠느냐고요. 그때 괞찮다고 나가라고 하셨지요. 하지만 저는 제가 질때에 ITF의 이미지가 흐려질까봐 제가 합기도 단증도 있으니까 합기도로 출전하면 어떻겠냐고 나중에 이기면은 저는 원래 태권도인입니다로 밣히겠다고 말하니까 그러지말고 떳떳하게 ITF로 나가라고 하셨지요. 그래서 나가기로 하고 트라이아웃(선발전)때에 트레이너 한명 보내달라고 했더니 연락도 없더군요. K-1관계자가 관장님 어디 계시냐고 저에게 물어볼때 없다고 이야기하는 저의 쪽팔림과 비참함... 만약에 처음부터 여러분과 운동한 오사범님같은 사람이 K-1에 나간다면 적극적으로 응원을 하고 전체메일 때리면 날리가 나겠지요. 제가 K-1나가면서 얼마나 심리적 압박이 크셨는지 아십니까!! 시합을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강박관념이 강했던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저 자신 때문도 아니고 ITF라는 이름 때문에... 요즘 현시대는 도장깨기도 없고 글러브 시대입니다. ITF도 이시대에 살아남을려면 적극적이 풀컨택트 시합을 해야합니다. 거기서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이 K-1이고 저는 정말 ITF를 알리고 싶어서 아직도 미흡한 실력으로 두렵고 떨리지만은 K-1에 뛰어든 것입니다. 그런 저인데 시합날은 계인적으로 절 좋아해주셔서 찾아와 주신 최현규 관장님께 쎄컨도 보지말라고 하셨다면서요. 제 동생이 다듣고 이야기 해줬습니다. 세상에 이런 엿같은 경우가... 그리고 기자들에게 우리 소속아니라고 상관없다고 말했다고요, 물론 제가 깨질까봐 그랬겠죠. 제가 깨지면은 사람들에게 저 김국환 선수는 우리와 함께 운동한 사람이 아니라 대전에서 운동한 사람이라 그렇다고... 정말 당신들 너무 한다고 생가하지 않습니까!! 당신들은 저에게 이런 식으로 대우를 했으나, 배신자 가롯유다 같은 저에게 대전의 채수용 사범님은 전화해서 말씀 하셨습니다. 계속 거기에 머물러 있을 것이냐고... 이말은 한마디로 다시 오라는 말이지요. 선주항 부사범님은 항상 언제나 저에게 저는 사범님 편입니다. 사범님 힘내십시요. 이야기를 하곤 하였죠. 혼자만 살겠다고 간 저에게... 그리고 저에게 ITF를 접하게 해주시고 잘해주셨던 오창진 사장님을 오해하고 배신했던 저를 오사장님은 젊은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는 거라며 용서해 주셨죠!! 저는 완전 성경에 돌아온 탕자가 된 기분이더군요. 대전의 다른 멤버들의 저를 향한 안좋은 시선이 두렵습니다 하지만 저는 내 집에 돌아온 기분입니다. 저는 솔직히 이번에 오창진 사장님이 받아주지 않으면은 태권도계를 떠나려고 했었습니다. 물론 WTF도 하지 않으려고 했지요. 하지만 오사장님은 어쨋든 반대로 저를 안스럽게 봐주시고 용서해 주셨지요. 정말 창헌 당신들과 비교가 됩니다.
3. 창헌연구회의 거짓말
1) 위에도 썻듯이 작년에 몇월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은 4,5월 쯤인 듯!! 창헌연구회와 함께하지
지않으면 한국에서는 ITF를 할 수 없을 것이다.
* 하지만 대전은 아직까지도 건제하고 성장해 나가고 있군요.
2) 최중화는 마약을 하며 이제 ITF에서 손을 땟다.
* 최중화 총재는 건재하게 ITF를 이끄시며 세미나도 하고 다니시더군요(사진도 보았음) 왜 멀쩡한
사람을 마약중독자로 만드는지... 그리고 최중화 총재가 망했으면은 일본의 무신대회는 어떻게 설
명할 것인지, 마약중독자가 세미나를 하며 사범들을 거느릴수 있을까...
3) 일본의 이종목 사범이 황진 사현님을 찾아가서 다시 받아달라고 빌었으나, 황진사현님이 배신자
는 다시 받아주지 않겠다고 하였다고...
* 하지만 이종목 사범님은 대전에서 활발한 세미나를 하시고, 일본에서도 여전히 건제히 활동하고
계시는데 K-1, 프라이드 버금가는 대회도 만들겠다고 하신다는데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4) 오창진씨가 장웅총재를 찾아가서 받아주면은 충성을 다하겠다고 말했다고...
* 오창진 사장님을 만났지만은 전혀 그 반대이고 오히려 여러 자료로 장웅총재를 치려하던데...
5) 황수일 사범 첫 방한 이라는 기사가 떳었다. 하지만 아니다. 황수일 사범님은 예전에 다까끼고지
사범님과 함께 한국에 용인대학에도 가서 ITF세미나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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