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do
게시판

문화적 접근~!

문화나 문물은 물 흐르듯 높은곳에서 낮은곳으로 흐르는 법입니다.
즉 문물이 발달한 곳에서 그 문물이 열악했던 곳으로 흐르는 법입니다.
자~! 그럼 일본은 과거에 조선왕조의 실록에 기록된것 처럼 조선에 조공하기를 1000번 이상 하였습니다.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에 약 일년에 2번 정도 조공 사절이 온 것입니다.
이 외에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하였습니다.
역사에 기록된 자료등을 보아도 이 조선통신사의 방문은 당시 선진문물의 유입이라는
아주 경사스런 일로서 당신 일본은 아주 축제 분위기로 이 통신사가 전한 문화(각종,문화예술,춤등)
가 현재도 상존해 있고, 이 외에 고급문화로서 당시 지성인들의 필수 과목인 성리학도
왜란을 기점으로 일본에 조선 선비 강항이 일본에 포로로가 되어 "퇴계학"을 전했고,
이 퇴계학은 일본 성리학의 주류적 흐름이 되었고, 이뿐 아니라 퇴계선생의 글은 일본의 교육 지침서로
활용되었다고 합니다.
이 외에 식문화인 "두부"도 일본에 없었는데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전래되었고,
생활의 고급문화인 "도자기 문화"도 일본의 강탈로 전래되었습니다.
자~! 상식적으로 이러한 문물을 후진문화였던 일본이 받아들였는데 무예만은 과연 예외였다고 할수 있을까요? 그리고 유구가 과연 독자적으로 지나국과 교역을 할수 있었다고 보십니까?
물론 사무역은 어느정도 이루어졌겠지만,문화,문물 전달의 핵심을 이루는 국가간의 공무역을 유구나,일본이
독자적으로 함부로 무역을 할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신숙주가 왕명으로 편찬한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를 보면 당시 외교관계를 알수가 있다 봅니다.
이 해동은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조선을 의미합니다. 그럼 제국(諸國)은 어느나라들 일까요?
대륙의 지나국이 수많은 나라와 교역을 하지만 모든 나라를 규제할수 없었습니다.
이 해동제국기를 썼다는 것은 조선의 관할 아래 있는 나라들에 대한 기록이라는 겁니다.
이 해동의 제국들은 조선을 통하지 않고는 대륙과 교역하는데 제한이 있음을 의미 합니다.
이 유구에 조선과 관련된 유물을 보아도 상상 초월하게 많습니다.

유구국과 과거 고려,조선과의 관계는 외교적으로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가진 나라였습니다.
단순히 활 같은 재료나 수입하고 있는 그러한 단순한 관계가 아닙니다.
유구국은 일찌기 중국 명나라와 사대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조선과는 그 관계 이상의
교류를 하였습니다. 이는 조선의 학자 신숙주가 왕명으로 집필한 "해동제국기"등에도 나타나는 바라.
유구국은 독립된 왕조 였으나 임란때 코무덤,귀무덤의 주인공 사스마번에 의해 임란후에
지배를 당하고 임란시 시마즈번에서 참전을 요구 하나 거부 하였습니다.
그 전에는 1388년경 유구왕 쥬만왕 찰도가 고려에 국서를 보내고 고려인을 송환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유구가 여전히 독립국으로 존재해 왔다는 근거는 1854년경 미국과 유구간에 이루어진
수호조약으로 알수 있습니다. 그 유국가 독립된 왕조 였다는건 해동제국기에도 기록하고있고,
그 왕들의 계보도 기록하고 있다. 그후 천황중심제에 의한 중앙집권 군력에 의해 유구는 일본에
완전 병합되고 그들의 역사도 잊혀져 갔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가데나 쇼도쿠"씨는 빈약한 유구의 역사를 복원코자 한국의 조선왕조 실록등의
사료를 많이 참고하고 조선 성종때 쓰여진 제주도 출신 김비을개의 "팔중산 군도 표류기"(오키나와
표류기)등은 오키나와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린 내용이라고 한다.
사스마번에게 1609년에 강제적 무력 침공으로 일본의 강점이 있으면서 그들의 민속행사는
여러모로 탄압받거나 일본화(가라데)되었다고 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실례를 망각한 채 1609년 이전이 아닌 그 후에 쓰여진 1700년대의 기록
으로 가라데의 역사를 추론해 봅니다. 그때는 일본 번주의 강점기가 행해진 이후에 쓰여진 기록들이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되는 이들의 무예를 받아들이고 일반화 하면서 그 기원론에 관심조차
있었을까요?
옛날 해동제국기에서는 왕외에 수많은 군소 추장들이 존재해 왔는데 그 군소추장들 중에
고인이 된 "가데나 쇼도쿠"씨는 유구국의 장전대주 라는 가문의 주인공이 실존인 "홍길동"일 것이라는
가설을 내 놓았습니다. 그 논거는 무수히 많으나 그 장전대주 가문의 족보가 박물관에 보존되어 오는데
그 장전대주 가문에 결혼을 한 성씨가 일본성이 아닌 김,나,윤씨등의 성을 가진이들이 많이 나온다고 합니다.
물론 이들은 모두 조선인이라는 기록도 있고.참고로 이 장전대주 가문의 가계기록은 조선 세종때 당시에
지어진 것이라 한다.
그뿐만 아닙니다.오키나와 구지천성터에는 고려청자,조선백자,조선에서 채굴되는 선박용 닻으로 쓰이는
화강암,조선화폐(해동통보)..,이들 홍길동(장전대주)무리가 전했다고 하는 조선 재래종 볍씨.
이처럼 조선과 유구는 수백년간 조선과 왕래를 자주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을 나타내는 글자가 이라고 했고 표기의 변천으로 으로 표기됩니다
이는 일본인 학자들의 학설입니다.

가라데 라는 무술은 일본이 1800년대에 오키나와를 통합하면서 그들의 문화마저 일본의
것인양 흡수 되었습니다. 그 결과 류쿠국의 역사마저도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단편적인 기록들이
주종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과거 류쿠국 사신이 중국에서 조선의 학자 정염선생에게 역학을 전수
받았다는 기록도 단편적으로 홍만종의 "해동이적"에 전합니다.
일본의 역사 감추는 작업은 아주 교묘합니다. 문물이 전해진 실증적 자료가 많습니다.
오키나와에서 대단위적인 유적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었는데 그곳에서 나온 "고려기와",
커다란 동종인 "만국진량종"...>그 명문엔 일본,중국도 나오고 조선을 표현한 글귀가 너무도
이채롭다 합니다. "빼어난 문물의 나라 조선을 중심으로" 이글귀에서 추론을 근거로 조선,고려의
역할에 대해 재일 사학자가 일본내 사학자와의 토론을 해도 다들 꿀먹은 벙어리가 된 이유가
뭘까요? 그 뿐입니까? 그곳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골도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한반도에서
도래한 이주민 집단이 다수가 존재 했었다는 결과도 발표되었습니다.
님 저는 민족주의 사관으로 말하는건 아닙니다. 이 유골들은 "귀화인"이 아닙니다.
일본 사학에선 도래인과 귀화인의 개념은 하늘과 땅 차이 입니다.
도래인은 옛적 그 스스로가 정치적,사회적 사유로 인해 그들이 살고 있는곳을 나와 새로운
곳으로 가서 새로운 삶을 영위해 가는것.
귀화인은 노예등으로 끌려와 권력자의 휘하에서 살아가는 것.
이러한 개념은 일본 학자들이 내린 개념 들 입니다.
이처럼 일본 사학계도 오키나와에서 발굴한 유골들이 한반도에서 건너온 도래인 집단이란걸
인정하면서 대외적으로 발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위의 만국진량종,고려기와도 일본인 학자들이 발굴 발표한 겁니다.
또 오키나와에서 일본본토식이 아닌 오키나와식의 국수요리가 전해온다고 합니다.
국수에 양념을 넣는데 그 양념이름이 뭔줄 압니까?
"고레구스"라고 합니다.한자로 표기 하면 "고려약" 그건 아주 매운 고추가루 양념이라고 합니다.
또 오키나와식의 씨름은 한국의 씨름과 같은 삿바씨름입니다.
또 세계에서 하나뿐인 한국식의 "줄다리기"놀이와 거의 일치하는 민속놀이가 있다 합니다.
수 많은 나라와 교역을 하면서 유독 조선식의 민속과 음식을 오늘까지 전통으로 전해져 오고 있는
사실이라는 실증이 존재하거늘 또 일본인들이 발표한 고고학적인 실증도 존재하거늘
마치 그 당시를 카메라를 동원하여 찍어야만 그 사실의 연결 고리의 사실을 믿겠습니까?
일본에서 "당(唐) "자를 쓰면서 그 원류는 한국 즉 조선을 나타내는 곳이 비일비재 하다고
일본인 사학자들은 지적합니다
류쿠국 즉 오키나와의 수도의 이름이 뭔줄 압니까? "슈리"라고 합니다.
이말의 어원 역시 한반도에서 온 서라벌즉 서울 이란 뜻이라고 일본사학은 말합니다.
그 오키나와의 수도터에 그들의 자랑 "守禮門"이 서있는데 이는 조선의 "崇禮門"은 모방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라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가라데 즉 당수도도 조선에서 건너간 수박(송도수박)택견등이 시원이 되었을 것이다.
라고 추론하고 싶습니다.
장전대주가 전한 풍속을 줄다리기,용왕굿,택견 이라 합니다.
아직도 그들 오키나와인들은 언젠가는 독립할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합니다.
그리고 일본의 번주가 강점한 이후의 기록은 다분히 승자의 기록 중심입니다.
과거 일본이 조선을 강점하고 조선의 역사를 왜곡 했듯이..,그리고 우리의 문화인
불고기 마저 빼앗아가 그 문화의 종주국이 일본이 되었듯이.., 그것에도 만족못한 일본이
김치마저 종주라고 나서는걸 우리는 어떻게 봐야합니까?
이러한 과정으로 오키나와에서 전해진 가라데도 일본인의 의도 대로 일본식으로 일반화되고
역사의식을 망각시키고 왜곡시켰을 것이라 생가합니다.
역사의식이 없는 나라는 유규히 오래가지 못하는 나라가 됩니다.
그래서 어떤다?는 의식이 가득한 국민이라면 우리의 미래는 없는것이고 필망(必亡)의 역사로
주저 앉을 겁니다. 역사는 그 나라의 영혼이라 생각됩니다.
일정시절 테라우찌 총독의 말처럼 "조선인들의 조상의 잘못을 들추어 다시 일어나지 못하도록
피해의식에 젖게 만들라~!" 역사의식이 없다면 외세가 또다시 한국에 들어와 총독이 이런 소릴 하겠죠~!
사필귀정~! 역사은 언젠가 진실은 밝혀 질 겁니다.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