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만, 화란
남만, 화란과 교역을 시작한지 얼마나 되었을까요?
그들이 우리나라 만큼 일본과 교역을 하였을 까요?
일본같이 조선에 1000번 이상의 조공을 한적이 있던가요?
외래문물을 일찌기 받아들여 개화에 성공한 일본으로 그것을 바탕으로 일본은 과거 조선에 1000번 이상의 조공을 한 실례를 감추기 위해 역사를 왜곡하고, 이 지배구조의 정당성을 확보코자 일본은 조선을 열등시 하였
던 겁니다.
일본이 조선에 1000번이상의 조공을 한 사실은 역사의 실증 입니다.
이 1000번이상의 조공속에서 과연 문물의 전달이 별로였을까요?
그 짧은 서구와의 교역과 장구히 길었던 조선과의 교역중 과연 어느 문화에 영향을 많이 받았을까요?
이는 지극히 상식이 아닌가? 합니다.
전문가들은 "가라(唐)"은 단순 외국인을 나타낸다고 하지만,그 "가라(唐)"의 실존이며,그 시원은 조선,신라,
가야,백제,고구려라는 것은 부인못할 사실 입니다.
가라테만 조선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주장에 저는 수긍이 가지 않습니다.
1000번 이상의 조공과 왜란속에서 일본은 그들이 열등하다고 하는 조선의 도자기 문화를 강탈하고,
열등한 조선의 식문화 두부를 받아들이고,그 열등한 조선의 성리학"퇴계학"이 오늘날 일본 유학의
주류가 되었고,또 조선통신사가 전한 각종 무용,춤등을 모사하고 영향받은 문화가 현재도 상존하며,
그 춤이 "가라춤"이라 왜 그러는지 이해할수 없습니다.
식문화,정신문화,예능등도 받아들이는데 무예는 아니다?
가라테라는 무예 문화를 평하는데 있어서 서구문물과 비교하는데 대해서는 수긍이 가지를 않습니다.
가라테는 적어도 서구와의 교역보다 역사가 길기 때문 입니다.
물론 저는 가라테가 조선의 문화로 100% 형성되었다고 단정치는 않습니다.
다만 그럴 가능성에 대한 문제의 제기이고, 그럴 가능성이 아주 많기 때문에 하는 소리 입니다.
저의 이러한 추론이 무리라면 이들이 왜 식문화,정신문화,예능등도 무리없이 받아들이는데
무예문화만은 예외인가?에 대해 합리적인 설명이 있어야 할 겁니다.
그들이 우리나라 만큼 일본과 교역을 하였을 까요?
일본같이 조선에 1000번 이상의 조공을 한적이 있던가요?
외래문물을 일찌기 받아들여 개화에 성공한 일본으로 그것을 바탕으로 일본은 과거 조선에 1000번 이상의 조공을 한 실례를 감추기 위해 역사를 왜곡하고, 이 지배구조의 정당성을 확보코자 일본은 조선을 열등시 하였
던 겁니다.
일본이 조선에 1000번이상의 조공을 한 사실은 역사의 실증 입니다.
이 1000번이상의 조공속에서 과연 문물의 전달이 별로였을까요?
그 짧은 서구와의 교역과 장구히 길었던 조선과의 교역중 과연 어느 문화에 영향을 많이 받았을까요?
이는 지극히 상식이 아닌가? 합니다.
전문가들은 "가라(唐)"은 단순 외국인을 나타낸다고 하지만,그 "가라(唐)"의 실존이며,그 시원은 조선,신라,
가야,백제,고구려라는 것은 부인못할 사실 입니다.
가라테만 조선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주장에 저는 수긍이 가지 않습니다.
1000번 이상의 조공과 왜란속에서 일본은 그들이 열등하다고 하는 조선의 도자기 문화를 강탈하고,
열등한 조선의 식문화 두부를 받아들이고,그 열등한 조선의 성리학"퇴계학"이 오늘날 일본 유학의
주류가 되었고,또 조선통신사가 전한 각종 무용,춤등을 모사하고 영향받은 문화가 현재도 상존하며,
그 춤이 "가라춤"이라 왜 그러는지 이해할수 없습니다.
식문화,정신문화,예능등도 받아들이는데 무예는 아니다?
가라테라는 무예 문화를 평하는데 있어서 서구문물과 비교하는데 대해서는 수긍이 가지를 않습니다.
가라테는 적어도 서구와의 교역보다 역사가 길기 때문 입니다.
물론 저는 가라테가 조선의 문화로 100% 형성되었다고 단정치는 않습니다.
다만 그럴 가능성에 대한 문제의 제기이고, 그럴 가능성이 아주 많기 때문에 하는 소리 입니다.
저의 이러한 추론이 무리라면 이들이 왜 식문화,정신문화,예능등도 무리없이 받아들이는데
무예문화만은 예외인가?에 대해 합리적인 설명이 있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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