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do
게시판

둘로 나뉘어진 태권도, 하나로 만들기에 매진하는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남북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화해로 호흡을 맞춰야 된다고 보며 그 중 하나가 태권도라고 생각한다. ITF의 마지막 틀에서 명시된 것도 통일틀이다. 현재 2개로 되어 있는 태권도가 하나로 먼저 통합이 되어 조국 통일의 밑거름이 돼야 할 것이다"

지난 10일 한국에 들어온 이기하(67, 영국 국적) ITF(국제태권도연맹) 수석부총재는 더 늦기 전에 남북 태권도,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ITF와 WTF(세계태권도연맹)가 하나로 통합돼 태권도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해야 함을 강조했다.



△둘로 나뉘어진 태권도, 하나로 만들기에 매진하는 이기하(67) ITF(국제태권도연맹) 수석부총재ⓒ민중의소리 한승호 기자

이 수석부총재는 오는 7월 호주에서 열리는 제14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ITF 주관)를 앞두고 홍보영상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3일부터 10일까지 북녘을 다녀 온 후 곧바로 남쪽으로 들어왔다. 25일 다시 영국으로 출국하는 그를 서울에서 만나 보았다.

이 수석부총재는 ITF의 핵심 인사라는 이유로 사람들로부터 북측 인사가 아니냐는 오해를 많이 받는다고 한다. 흔히, 사람들은 ITF는 북쪽에서 만든 태권도 기구이고 WTF는 남쪽에서 구성한 기구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충남 논산 출생으로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다 유도를 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무도를 접했고 군대에서 태권도를 배웠다.

제대 후 주한미군에서 태권도를 가르친 경력이 인정된 그는 태권도 창시자인 최홍희 말레이시아 주재 초대 대사(군 장성 출신, 02.6.15 작고)의 추천으로 64년 말레이시아를 시작으로 동남아에 태권도를 보급했고, 싱가포르에서 영국 공군에게 태권도를 전수한 것이 인연이 되어 영국으로 건너간다. 그가 영국 국적을 취득한 것은 순전히 여권 사정 때문이다. 국제적으로 태권도를 보급하기 위해서는 여권이 신속하게 처리돼야 하고 기간도 길어야 하지만 당시 국내 여권사정은 그런 사정을 충분히 뒷받침 해 주지 못했다.

박정희 정권의 정치적 야욕, 세계 태권도의 양분 불러와...그러나 뿌리는 하나

태권도 하면 WTF를 떠올리는 남쪽에서 ITF는 아무래도 낯설다. 그러나 WTF가 ITF에 대치돼 급속히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세계 태권도가 이렇게 양분된 배경에는 군사독재, 특히 박정희 정권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깊게 스며들어 있다. 그리고 여기에 분단 구조가 덧칠해져 있다.



ⓒ민중의소리 한승호 기자


ITF는 최홍희 전 총재가 지난 1966년 말레시아, 이탈리아, 서독, 미국 등 9개국의 동의를 얻어 국내에서 창설했다. 하지만 창시자 최 전 총재는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를 못 마땅하게 여겼으며 6.3 한일협정, 3선 개헌 등에도 강력한 반대 입장을 보였다. 이런 최 전 총재가 박정희에게는 눈에 가시였을 터. 최 전 총재가 한 때 말레이시아 대사로 가게 된 것도 대한민국 군대의 창군 멤버인 최 전 총재를 함부로 못하는 박정희의 배려(?)로 인한 것.

"박정희는 대사직을 마치고 돌아온 최 전 총재에게 이제 태권도는 젊은 사람들에게 맡기고 물러나라고 한 거야. 박정희는 ITF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데 이용하려 한 것이지. 그런데 최 전 총재는 당신은 언제 그만두냐라며 맞섰어. 그러니 얘기는 다 끝난 거 아니겠어?"

이후 최 전 총재는 신변의 위협을 느껴 1972년 가족도 모르게 캐나다로 망명한다. 그러자 박정희는 ITF를 반한단체로 지목, 당시 대통령 경호실차장이었던 김운용(전 IOC 위원)씨를 시켜 1973년 WTF를 창설한다. 하지만 조급하게 만들어지다 보니 WTF의 형식과 원리는 일본의 가라데를 많이 본떴다고 한다.

반면, ITF의 태권도는 천지, 단군, 도산, 원효, 율곡...서산, 세종, 통일 등 지조와 절개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위인들의 이름으로 이뤄진 24개의 틀(남측 태권도의 품에 해당)로 구성돼 있다. 예를 들어, 삼일틀은 33개의 동작으로 이뤄졌는데 이는 독립선언 참가자 33인을 뜻하고, (안)중근틀의 32개 동작은 안중근 의사가 사형당한 당시의 나이(32세)를 담고 있다.

이를 두고 이 수석부총재는 "태권도는 우리민족에게 독립정신과 얼을 확실하게 심어 주기 위해 노력했다"라고 전했다. 또한, 외국의 ITF 회원들은 승급 심사를 받을 때마다 해당 인물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묻는 시험에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반도의 역사와 민족성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

ITF는 일찍부터 동남아, 남미, 유럽 등 전세계에 태권도 보급을 시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뒤늦게 기구를 창설한 WTF는 도복을 공짜로 나눠주고, ITF에 있던 회원들을 공짜로 한국에 데려와 기생관광 등을 시켜주면서 세를 확장해 간다. 심지어, 박 정권은 ITF 회원들을 용공 분자, 간첩이라고 몰아가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세계 태권도는 종주국에서부터 양분돼 각자 발전해 왔다.

형식적으로 보면 WTF는 손을 못쓰게 하는 반면, ITF는 손과 발을 모두 사용하는 게 그 특징이다. 애초 최 전 총재가 명칭을 만들 때부터 태는 발을, 권은 손을, 그리고 도는 단순한 육체의 운동이 아닌 정신 함양까지 포함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험담하자는 게 아니라 내 느낌을 그대로 말하자면 올림픽에 나오는 태권도를 보면 마치 장애인 올림픽을 보는 듯한 느낌이야. 태권도는 손 발을 원래 다 사용하는데 발차기만 하는 거야. 태권도는 인간 호신 예술이라 했어.그럼 상대가 접근해 있으면 어떻게 발을 사용하겠나. 이것은 팔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 WTF는 손을 못 쓰게 만들어 놨어. 그래서 내가 아직 쉴 때가 아니구나 생각하곤 하지"

다른 데는 다 보급했는데 왜 동족에게는 못하는 거야...ITF 태권도, 80년도 평양으로

사상과 이념을 떠나 태권도 보급에 열을 올렸던 ITF 핵심들은 당시 국내에서는 금기에 해당하는 동유럽까지 태권도를 보급하게 되고 그 가운데 이기하 본인이 있었다. 하지만 내 안의 금기를 깨기는 쉽지 않았을 터.

"여기서 교육을 받을 때 난 북괴라고 교육 받았다. 우리가 태권도를 사회주의에 보급하러 들어갈 때도 최 총재는 이제는 변소 갈 때 혼자 가지 말라고 했다. 또 함흥차사라 해서 유서 쓰고 가라고 했다. 실제로 우리는 유서까지 썼다"



ⓒ민중의소리 한승호 기자


"태권도는 원래 인류의 권리와 평등, 예의, 염치, 인내, 극기, 백절불굴의 정신이며 나아가 인류의 자유와 평등을 일깨워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우리는 종교, 인종, 이념, 사상에 관계없이 태권도를 보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폴란드에 가니까 교회 종소리가 들리고 헝가리에서는 수녀들이 보이는 거야. 그래서 우리는 야 이거 평양도 가 봐야 알겠구나. 동남아, 남미, 유럽 다 보급했는데 왜 동족에게는 보급하지 못하는가했던 거야. 이렇게 해서 80년에 평양으로 들어갔어"

ITF 태권도가 북측에 보급된 것은 80년부터. 이렇게 놓고 보면 북측의 태권도 역사는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즉,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북한 태권도는 애초부터 남측에서 시작됐으며, 남측은 정치적 이유로 원본을 외면하고 일본의 가라데를 본 뜬 짝퉁을 배워왔던 것이다.

사실, 태권도가 북에 들어간 것은 뒤늦은 감이 있다고 한다. 동구 유럽권에서도 태권도 보급이 성공함으로써 자신감을 얻은 ITF 멤버들은 일찍부터 북에 태권도를 전수하려 했으나 북측 당국이 이를 막았던 것이다. 이는 남한의 중앙정보부가 유럽 등지에서 태권도 사범들을 시켜 공작 활동을 펼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차례 곡절을 겪은 끝에 평양에 도착한 이기하 수석부총재는 이후부터 자주 평양을 방문하면서 승급심사를 봐주기도 했다.

지난 3-10일 방북 때에도 이 수석부총재는 함경남도 함흥에서 개최된 전국태권도기술혁신경기대회를 참관하고 승급심사위원장 자격으로 승급심사를 보고 왔다고 한다.

이왕에 올림픽에 들어간 태권도, 경기 규칙 업그레이드 통해 종주국 주권 확실히 지켜야

얼마 전 태권도가 올림픽 시범 종목에 밀려 공식 경기에서 밀릴 수도 있다는 세계 체육계의 분위기가 전해지면서 태권도계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경기가 단조로롭고 재미가 없어 외면을 받는다는 것. 이때부터 남북, 정확히 말해 WTF와 ITF는 태권도 지키기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두 기구가 하나가 되고, 경기 규칙을 업그레이드 시켜 외면 받는 종목의 오명을 벗어야 한다는 것이 이 수석부대표의 주장이다. 이를 위해서는 과거의 적대성을 버리고 터놓고 대화를 시작하는 게 시급하다는 것.

"너무 오랫동안 갈라져 이질감이 커서 어렵다고들 하는데, 할 수 있다. 우선은 터놓고 대화를 하자. 그 전까지는 적대시했다. 올림픽에 어렵게 들어가서 왜 인기없는 경기 종목으로 남아야 하느냔 말이다. 태권도가 그런 종목이 돼선 안된다. 언젠가 경기 규정 비슷하면 같이 할 수 있는 것이다"

태권도에 대한 그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그만큼 지금의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도 컸다.

"우리 나라 역사상 좋은 문화재를 만들어 놨는데, 이제는 아름답게 마무리 지어서 후손들에게 남겨줘야 할 단계다. 그렇지 않으면 종주국으로서의 주권행사를 못한다. 이게 안타까운 거야. 난 이것을 외치고 다니는 거야. 북한 태권도, 남한 태권도가 아니라 원래는 하나로 시작된 것인데... 우리는 하나라는 것을 내 놓고 대화를 하라는 것이다. 망명 가서 30년 이상 있었으니 다르다 하지말고 우리는 하나라는 거야"

"태권도는 종주국으로서의 위상도 있고 만들어내면 만들어 낼수록 수확도 있다. 왜 도복을 줘가면서 하냔 말이다. 그들이 도복을 사도록 해야지"

태권도에 대한 이기하 수석부총재의 애정에는 ITF도 WTF도 아닌 민족에 대한 애정이었다.

태권도에 대한 이 수석부총재의 노력에 답하기라도 하듯, 국내의 한 대학에서 국제태권도라는 과목이 신설될 예정이라고 한다. 국내에서도 태권도의 본류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함을 의미한다.

태권도에 대한 사랑만으로는 아직 기득권이라는 산을 넘기엔 부족한 것일까. 그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