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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의-블랙코브라관련진실

이글은 네이버 극진가페에서 최영의광팬과 공선택관장님과의
대화를 발췌한겁니다.

최영의일화의 실체를 파악해야 합니다
본문

그 인간이 얼마전에 쓴 글인데 반박해봅니다.. 마쯔오쇼장님의 글과 제 견해가 첨가되었습니다..



그 무에타이 관장 킥복싱에 대한 기원조차도 모르더군요.. 킥복싱이 태국이 일제 식민지 시절 전파되었다고 하는데



무슨 개소리인지... 킥복싱의 기원은 바로 극진 출신의 구로사키 겐지가 태국원정 당시에 무에타이 선수에게



통한의 패배를 당하고 난뒤에 무에타이와 가라데 복싱을 혼합해서 만든게 바로 킥복싱입니다..





구로사키 겐지의 제자들중에는 얀 플러스와 요한 보스 등이 있었고 이들은 일본에서 무도 유학

이후 네델란드에 자신의 도장을 세우게 되는데 이들 도장이 바로 그 유명한 피터 아츠와

레미 본야스키, 어네스트 후스트 등과 같은 걸출한 K-1 스타를 배출하는 곳이 되죠..

(피터아츠와 레미 본야스키는 얀 플러스의 메지로 도장 소속, 어네스트 후스트는 요한 보스가

이끄는 보스 도장 소속이지요..)


극진과 무에타이와의 대결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킥복싱의 기원도 뿐만 아니라 케이원이라는 단체조차



생겨나지 않았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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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룸피니 스타디움에서 공식적인 경기가 시작된것은 1956년부터 입니다.위에서 말하는 1954년은 무슨소릴까요?..그리고 당시 80kg에 육박했을 체중을 가진 최영의와 맞짱을 뜰수있는 체격을 가진 선수는 없었습니다..1950년대 태국 성인남자들의 평균체중은 54kg이었다고 합니다.






---->태국 남자들의 평균은 지금도 이거랑 별반 차이없습니다. 대충 60킬로가 조금 안되는 수준이죠. 블랙 코브라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우기시는 건 블랙 코브라라는 이름으로 찾아보시기 때문이죠. 표기가 블랙 코브라였을 뿐입니다. 태국이름은 따로 있었죠. 원래 그의 이름은 아피데 싯 히룬입니다.. 그리고 이 분은 인터뷰에서 아무런 증거자료나 챔피언 연감 같은 걸 내 놓지 않고 지극히 독선적인 주장만 반복하셨습니다.





또한 1950년대 태국에서 가장 높은 체급역시 페더급(57.15kg)이었으며 이또한 선수의 부족으로 참피온 자리는 언제나 공석이었다고 합니다.웰터급 운운하는 소리는 거짓말이라는것을 증명하는 소리랍니다. 결론을 내려 정리를 하자면....






---->웰터급 선수들은 존재했습니다. 돗포님이 올린 일본의 신문 기사를 보면 거기에 대한 언급이 있죠. 또한 가장 높은 체급은 페더급이었다는 주장을 하실때에도 아무런 증빙자료가 없었습니다. 그간의 이분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대부분이 자신의 선배들에게 들은 진위가 불확실한 내용을 진실이라고 확신하는 경향이 있는 분 같습니다.





1. 윗글은 글쓴이나 출처가 불분명하기에 가라데인들이 만든 거짓이야기로 생각된다.






---->출처를 확인이나 하셨는지? 출처는 많습니다. 당시 신문기사도 그대로 남아 있구요. 이 관장님 전번에는 킥복싱이 태평양 전쟁때 일본군이 무에타이를 그대로 가져가서 만든 거라는 이상한 발언을 하신 적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유감이지만 태국은 일본의 지배를 받지도 않았고, 킥복싱은 태평양 전쟁 끝나고도 무려 20년 가까이 후에 등장하는 무술입니다. 최영의님의 직계 제자중 한분인 구로사키 사범님이 무에타이와 가라데 그리고 복싱을 조합해 창안하신거구요. 무에타이와는 엄연히 다른 무술인데 한 무술을 대표하신다는 분이 저렇게 수준 이하의 발언을 하신 점은 정말 이해가 안갑니다.





2.기록에 의하면 최영의는 3류복서, 3류 레슬러, 소와 대결을 했다.무에타이와 대결을 했다하더라도 그 사람은 무에타이를 대표할수있는 참피온이 아니거나 3류선수 였을것이다.






----->무에타이를 대표하지도 않는 사람과 태국까지 가서 싸웠나 보군요. 그럼 톰 라이스도 3류겠군요.. 그런 톰 라이스에게 완패한 역도산은 그 3류보다도 못한 사람일테고... (역도산은 프로 레슬링의 천황과 같은 존재입니다..) 뭐 더 말할 필요도 없는 부분이죠. 이건 2천만의 수련생을 보유하고 있는 극진에 대한 모욕입니다.. 아니 무도의 나라 일본에서 무신으로 평가받는 인물에 대한 저열한 비방에 불과하죠..





3.최영의와 겨룬사람이 실존인물이라 한다 하더라도 체중이 54kg정도 였을것이다.






----->실존인물 맞습니다. 아무 기록도 안 보시고 그냥 그렇게 우기시는 저의가 무엇인지요? 또한 설령 54키로의 챔피언이었다 하더라도 태국에서는 최강자가 아닌가요? 툭하면 태국 선수들이 체격이 작아도 세계 최강이라고 우기시는 분이 이럴땐 체급을 운운하시니 정말 안타깝습니다.



다만 당시에는 웰터나 미들과 같은 복싱에 도입된 체중 개념이 태국에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태국식의 체중 구분은 있었죠) 구로사키, 소에노 요시지가 순방할 때에는 그런 복싱식의 체중이 도입되었기에 명확히 상대의 체중이 남아있구요.




4.1954년 룸피니 스타디움에서 공식경기가 열렸는지는 알수가 없다



----->경기가 열리지 않았다면서 가라데인들을 구라쟁이로 몰아세우셨으면서 뒤에가서는 슬그머니 알 수가 없다는 걸로 말을 바꾸시는 저의가 무엇인지?^^ 태국의 무에타이 링 시합은 1900년대 초반부터 있었던 걸로 기록이 있습니다. 그럼 1954년의 신문 기사에 룸피니라고 기록된 것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있지도 않은 스타디움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5.현재 이종격투전에 출전하는 가라데 선수들은 가라데를 버리고 무에타이 스타일로 트레이닝을 한다."






----->이건 무도 수련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 볼때는 치욕과 같은 발언입니다..극진 도장 한 번 가 보세요~ 가라데를 버린다구요? 공수가에겐 가장 모욕적인 발언입니다. 차라리 죽으라고 하십시오. 이 무에타이 관장님 입장에선 무도라는게 그렇게 맘대로 버리는 하찮은 건지는 몰라도 무도가에게 자신의 무술을 버린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한 번 더 생각을 하셨어야 합니다. 아주 무례한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킥복싱 스타일로 익히는 펀치를 조합해 익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일본에는 무에타이 도장 자체가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이 킥복싱 도장이죠. 또 킥복싱을 익힌다고 해도 글러브 시합에 맞는 펀치기술만 배웁니다. 발차기는 절대 버리지 않습니다. MMA식 기술을 익히는 경우엔 가라데 선수가 무에타이를 배울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복싱과 그래플링을 익히죠. 무에타이 지상주의의 편협한 사고일 뿐입니다. 수준이하의 발언이죠.






댓글이 신빙성이 잇어 보입니다.
공선택관장님의 글입니다.




낙무아이 반박을 목적으로 올리는 글이 아니라 몇가지 잘못 알고 계신것 같아서 수정을 부탁드리려는 글입니다. 일단 아피데 싯 히룬.....태국에서 아피데 싯 히룬이라고 하면 무에타이의 전설과도 같은 존재로 추앙을 받는 사람입니다..(이하 아피데선생님이라고 칭하겠습니다)태국 무에타이 역사상 아피데 싯 히룬이라고 이름을 떨친 사람은 단 한명뿐입니다. 아피데선생님께서는 과거 무에타이 참피온 벨트를 무려 7개를 거머쥐었던 사람입니다.
현재 태국 페어텍스 체육관의 수석 트레이너이며 룸피니 스타디움을 대표했던 한 시절의 슈퍼스타로서 룸피니 스타디움의 각종행사에 참석하기도 합니다. 01/07 03:17

낙무아이 그만큼 태국인들은 모두 그를 알고있으며 오래전의 훌륭한 무에타이 전사로 그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피데 선생님께서는 일본인과 대결을 한적이 딱 네번 있으시다고 합니다.(한국인과의 대결은 없으시답니다.)
어쨋든 두번은 승리를 하였고 두번은 패배를 하였는데...
처음 방콕에서 치룬 무에타이룰에 따른 일본인과의 경기에서 패배하였고 두번째 경기는 일본현지에서 권투룰에 따라서 했지만 승리했다고 합니다. 세번째 방콕에서 치루었던 무에타이 룰의 경기에서도 승리를 하였고
마지막 홍콩에서 치룬 일본인과의 대결에서 패배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처음 경기를 치루었던 일본인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단 기억하는것은 1954년 이었으며 자신이 패배했다는것.. 그리고 그당시 아피데 선생님께서는 나이가 13세였다는 것 뿐입니다. 체중은 아마도 50kg안팍이었다는것도 기억하시더군요..아피데 선생님은 올해 64세 이십니다.1941년에 세상에 태어나신분이지요... 01/07 03:29

낙무아이 만약 최영의 선생님께서 정말로 아피데 선생님과 대결을 하여 승리를 하셨다면 당시 첫 데뷔를 하던 50kg안팍의 무명 13세 소년과 대결을 하신것 같습니다...그리고 1954년에는 룸피니 스타디움도 없었습니다...당시 태국에 블랙 코브라라는 유명선수도 없었습니다..만약 있었다면 아피데 선생님 또는 원로 무에타이인들께서는 아실테지만 그 누구도 블랙코브라를 아는분은 없었습니다. 또한 룸피니스타디움이 개장을 한 1956년 당시 57kg급부터 그 이상급의 참피온자리는 공석이었습니다. 이는 룸피니 스타디움 사무실에 방문하여 요청한다면 누구나 확인할수있습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룸피니 스타디움에 방문하셔서 직접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제가 쓴 글은 제 독선적인 주장이 아니라 현재 방콕에 계신 아피데선생님과 현재 룸피니 스타디움의 대표이신 육군장성 폰티하남싹씨와 함께한 자리, 그리고 2004년 룸피니 탄생일에 모인 태국 무에타이원로님들과 태국 프로모터님들께 직접 여쭤보고 글로 옮긴것입니다. 제 글의 출처여부와 사실확인을 원하신다면 아피데 선생님이 계신 태국 페어텍스 체육관으로 (001-66-2-755-3329)로 전화하셔서 확인하셔도 좋습니 01/07 04:13

낙무아이 다.... 끝으로 [그 인간이 얼마전에 쓴 글인데], [무슨 개소리인지.]등등의 남을 조롱하는 듯한 글은 극진가라데를 수련하는 자신과 평소 저와 잘알고 지내는 김경훈 사범님, 더 넓게는 극진가라데 전체에 먹칠을 하는것이 아닌가 싶습니다...더이상의 무에타이관련 궁금한 사항이 있으시다면 상계동에 위치한 무에타이 태웅회관에 한번 방문하시길 바랍니다. 제가 아는 한도내에서 소상히 알려드릴것을 약속 드립니다. - 공 선 택 - 01/07 04:25

낙무아이 제대로 다 썻는지 읽다보니 두가지 빠진것이 있군요. 아피데 선생님의 츠렌(별명,가짜이름)은 [땅]입니다. *땅은 한국어로 돈화폐를 뜻합니다.
아피데 선생님께서 홍콩에서 일본인에게 패했던 당시 아피데 선생님의 나이는 40세 였습니다.
이 시합을 끝으로 더 이상의 시합은 없었습니다

공수데빌 극진가라데의 비상과조락은 공수바보일대라는 유명한 만화책의 내용을 인용해 극진무도관이라는 극진의 타단체를만든 네델란드의 존브루밍의 블랙벨트 인터뷰를기점으로 쓴글입니다 왜이런글이 돌아다니나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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