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희 장군의 망명 선택에 대해서...(필독해주세요)
최홍희 장군의 망명 선택에 대해서...(필독해주세요)
2005년 3월 16일 김완용 장군을 만났습니다.
김완용 장군은 일제시대때 평양학병 사건을 최홍희 장군과 같이 주도 하시어 일제시대때 최홍희 장군과 같이 사형 선고를 받으신 분이 십니다. 평양학병 사건은 일제시대 때 독립운동으론 13번째 큰 사건으로 조병옥선생의 지시를 받어 최홍희 장군과 김완용 장군이 주도하여 일본 군대의 무기고를 탈취 하고자하는 독립운동 사건 명입니다.
최홍희 장군의 독립 유공자 등록에 대한 청원서를 김왕용장군께 받으로 가서 정말 중요한 애기를 들었습니다.
최홍희 장군의 직접적 망명이유를 들으신 적이 있습니까? 라고 저희가 물었습니다.
물론 저희는 최홍희 장군이 6.3 한일협정 반대와 3선개헌 반대를 주장 하시어 박정희 정권에 안 좋게 보인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직접적 원이이 되었는가를 여쭈어 보았습니다.
김완용 장군은 당시 중앙정보부장 이며 국제연맹(ITF)의 명예총재인 김종필이 태권도 유단자 2만명 회원 전부를 공화당 당원으로 입당시키라고 최홍희 장군에게 압박을 가해 왔다고 하셨습니다. 당시 장군으로 퇴역 하신 최홍희 장군이 당시 중령으로 쿠테타를 일으킨 김종필에게 호락한 상대는 아니었을 껏입니다.
태권도는 대한민국의 태권도이지 일개당의 당원이 아니다라고 반발 하시자 그당시 안하무인의 김종필은 자신의 권력으로 최홍희 장군을 제거하고자 하였으며 자신의 하수인인
김운용을 태권도대표로 내세우게 되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렇게 상황이 몰리자 자신이 만든 태권도를 전세계에 보급한다는 꿈을 가지신 최홍희 장군은 망명을 선택 하여 태권도 세계화란 책무를 다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국기원의 늙은 여우분이 인터뷰에 이런 말을 할 걸 기억 합니다. 최홍희 장군이 공금횡령에
대한 조사가 들어오자 지레 겁먹어 외국으로 도망 친거라고..... 그 늙은 여우는 태수도 협회를 태권도 협회로 최홍희 장군이 명칭을 바꿀때 울면서 가라데를 해야 한다고 하신 분입니다.
태권도인 여러분 태권도의 아버지이신 최홍희 장군의 명예 회복 및 독립유공자 등록 및
태권도 창시자로서의 명예를 회복해 드려야 합니다. 아버지를 부정하는 자식은 있을 수 없습
니다. 태권도인들이 역사의 진실에 대해서 인식을 부탁 드립니다.
청원서
수신 : 노무현 대통령 각하
수신 : 국가보훈처장귀하
발신(청원자) : 김완용 (독립유공자, 평양학병주동자)
故 최홍희(창헌) 장군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태권도를 창시하고 태권도란
명칭을 붙였으며(브리태니커 사전에도 정확히 명기돼 있음) 우리나라로서는 처음으로 세계적 공인의 연맹 ITF(국제태권도 연맹)를 창설한 이후 2002년 임종시까지 오로지 태권도만을 생각하고 태권도만을 위해 살아간 민족적 영웅입니다,
최장군은 일제시대 때 본인과 같이 평양학병사건을 주도함으로 체포돼 일제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던 애국지사로써 일본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민족의 자존을 드높인 민족지사입니다.
해방 후에는 남쪽의 자유정권을 지지하고 국군창설에 핵심적 역할을 했으며 6.25 동란이 터지자 침략군과 맞서 최전방을 이끌며 우리 군 처음으로 3.8선을 돌파해 대한민국에 혁혁한 공을 세운 바 있습니다.
또 해방 후 공수도나 당수도와 같은 가라데가 전 국토를 뒤덮고 있는 현실을 개탄해 몸소 십여 년 동안에 걸쳐 민족의 무도 태권도를 창시하고 전군에 태권도를 보급했으며 국제태권도연맹을 창설해 오늘의 세계적인 태권도를 보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비록 6.3 한일협정 반대 및 3선 개헌 반대 주장을 시작으로 박정희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인해 외국으로 망명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캐나다에 망명했으나 그 이후로도 오로지 태권도 보급만을 위해 살다간 최홍희 장군은 재평가를 받음이 마땅하다 생각됩니다.
태권도마저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함에 분연히 망명길에 올라서도 어느 정치적 활동에 휩쓸림 없이 명실공히 남북 민족 모두의 태권도로 자리를 굳히게 한 창헌 최홍희 장군은 오늘 날 태권도 종주국을 자처하는 한국의 명예를 드높인 분이며 남북화해의 물꼬를 트게 할 수 있는 기념비적인 인물입니다.
이에 본인은 뜻을 같이 하는 많은 민족 애국지사와 태권도인의 염원을
모아 현 정부에서 故 최홍희 장군에 대한 재평가를 내리기 바라고 명예회복 및 독립유공자 선정이 되도록 청원하며 이 청원서를 제출 합니다.
2005년 3월 16일 장군 김완용
창헌연구회 www.changhun.co.kr
2005년 3월 16일 김완용 장군을 만났습니다.
김완용 장군은 일제시대때 평양학병 사건을 최홍희 장군과 같이 주도 하시어 일제시대때 최홍희 장군과 같이 사형 선고를 받으신 분이 십니다. 평양학병 사건은 일제시대 때 독립운동으론 13번째 큰 사건으로 조병옥선생의 지시를 받어 최홍희 장군과 김완용 장군이 주도하여 일본 군대의 무기고를 탈취 하고자하는 독립운동 사건 명입니다.
최홍희 장군의 독립 유공자 등록에 대한 청원서를 김왕용장군께 받으로 가서 정말 중요한 애기를 들었습니다.
최홍희 장군의 직접적 망명이유를 들으신 적이 있습니까? 라고 저희가 물었습니다.
물론 저희는 최홍희 장군이 6.3 한일협정 반대와 3선개헌 반대를 주장 하시어 박정희 정권에 안 좋게 보인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직접적 원이이 되었는가를 여쭈어 보았습니다.
김완용 장군은 당시 중앙정보부장 이며 국제연맹(ITF)의 명예총재인 김종필이 태권도 유단자 2만명 회원 전부를 공화당 당원으로 입당시키라고 최홍희 장군에게 압박을 가해 왔다고 하셨습니다. 당시 장군으로 퇴역 하신 최홍희 장군이 당시 중령으로 쿠테타를 일으킨 김종필에게 호락한 상대는 아니었을 껏입니다.
태권도는 대한민국의 태권도이지 일개당의 당원이 아니다라고 반발 하시자 그당시 안하무인의 김종필은 자신의 권력으로 최홍희 장군을 제거하고자 하였으며 자신의 하수인인
김운용을 태권도대표로 내세우게 되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렇게 상황이 몰리자 자신이 만든 태권도를 전세계에 보급한다는 꿈을 가지신 최홍희 장군은 망명을 선택 하여 태권도 세계화란 책무를 다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국기원의 늙은 여우분이 인터뷰에 이런 말을 할 걸 기억 합니다. 최홍희 장군이 공금횡령에
대한 조사가 들어오자 지레 겁먹어 외국으로 도망 친거라고..... 그 늙은 여우는 태수도 협회를 태권도 협회로 최홍희 장군이 명칭을 바꿀때 울면서 가라데를 해야 한다고 하신 분입니다.
태권도인 여러분 태권도의 아버지이신 최홍희 장군의 명예 회복 및 독립유공자 등록 및
태권도 창시자로서의 명예를 회복해 드려야 합니다. 아버지를 부정하는 자식은 있을 수 없습
니다. 태권도인들이 역사의 진실에 대해서 인식을 부탁 드립니다.
청원서
수신 : 노무현 대통령 각하
수신 : 국가보훈처장귀하
발신(청원자) : 김완용 (독립유공자, 평양학병주동자)
故 최홍희(창헌) 장군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태권도를 창시하고 태권도란
명칭을 붙였으며(브리태니커 사전에도 정확히 명기돼 있음) 우리나라로서는 처음으로 세계적 공인의 연맹 ITF(국제태권도 연맹)를 창설한 이후 2002년 임종시까지 오로지 태권도만을 생각하고 태권도만을 위해 살아간 민족적 영웅입니다,
최장군은 일제시대 때 본인과 같이 평양학병사건을 주도함으로 체포돼 일제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던 애국지사로써 일본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민족의 자존을 드높인 민족지사입니다.
해방 후에는 남쪽의 자유정권을 지지하고 국군창설에 핵심적 역할을 했으며 6.25 동란이 터지자 침략군과 맞서 최전방을 이끌며 우리 군 처음으로 3.8선을 돌파해 대한민국에 혁혁한 공을 세운 바 있습니다.
또 해방 후 공수도나 당수도와 같은 가라데가 전 국토를 뒤덮고 있는 현실을 개탄해 몸소 십여 년 동안에 걸쳐 민족의 무도 태권도를 창시하고 전군에 태권도를 보급했으며 국제태권도연맹을 창설해 오늘의 세계적인 태권도를 보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비록 6.3 한일협정 반대 및 3선 개헌 반대 주장을 시작으로 박정희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인해 외국으로 망명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캐나다에 망명했으나 그 이후로도 오로지 태권도 보급만을 위해 살다간 최홍희 장군은 재평가를 받음이 마땅하다 생각됩니다.
태권도마저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함에 분연히 망명길에 올라서도 어느 정치적 활동에 휩쓸림 없이 명실공히 남북 민족 모두의 태권도로 자리를 굳히게 한 창헌 최홍희 장군은 오늘 날 태권도 종주국을 자처하는 한국의 명예를 드높인 분이며 남북화해의 물꼬를 트게 할 수 있는 기념비적인 인물입니다.
이에 본인은 뜻을 같이 하는 많은 민족 애국지사와 태권도인의 염원을
모아 현 정부에서 故 최홍희 장군에 대한 재평가를 내리기 바라고 명예회복 및 독립유공자 선정이 되도록 청원하며 이 청원서를 제출 합니다.
2005년 3월 16일 장군 김완용
창헌연구회 www.changh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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