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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배달일화(11) (최배달 vs 야쿠자)

제자 이시와라는 여러모로 예전에 죽은 제자 아리아케를 생각나게 했다.
녀석은 고아여서 어디서 노숙을 하고 있는 모양인데, 자존심이 무척세어서
내가 도장에 와서 자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어느날 시장에서 그가 무언가를 훔치는걸 목격했다. 비록 어려운 환경이지만
그의 올곧은 성격이 마음에 들었던 나는 화가나서 그를 뒤쫓아갔다.
그는 구석진 골목에서 훔친것을 먹고 있었다.내가 다가가지 황급히 그걸 감추
었다. 나는 화난 얼굴로 얼른 그것을 빼앗았다.
아! 그것은 남들이 버린 귤껍질, 과자부스러기 등이 아닌가. 눈물이 핑돌았다.
그를 의심했던 나를 원망했다.
나는 "가자, 나와 함께 가서 점심을 먹자."
그는 얼른 봉지를 뺐더니 "동정따위는 필요없습니다."
녀석의 고집을 아는 나는 더이상 권하지 않았다.
다음날 그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듯 도장에 나와서 동료들과 웃고 떠들고
훈련도 열심히 했다. 나는 녀석의 그런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한번은 내가 도장에 없을때 미국에서 친분이 있었던 프로레슬러가
찾아온 일이 있었다.그런데 이시와라가 그에게 도전을 했다.
이시와라는 내가 미국에서 프로레슬러들과 싸웠다는
말을 듣고는 자기도 도전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시와라는 자기몸의 세배나 됨직한 그 거구와 붙어 그를 ko시켰다.
자신도 많은 부상을 입었으나, 나는 녀석의 파이팅에 놀랐다.
그러나 유달리 의협심이 강한 이시와라는 말썽도 많이 일으켰다.
버스가 노인을 태우지 않고 그냥 달아나자 끝까지 쫓아가 버스기사를 두들겨
팼고, 약자를 괴롭히는 동네건달들을 패기도 했다.
나는 제자들이 사적인 싸움을 하는걸 철저히 막았다.이것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제자들이 길거리 싸움패로 전락하는 수가 있다.
물론 이시와라는 길거리 싸움패로 나설 녀석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누구는
건달들과 싸워도 좋고 누구는 안되고 하는식으로 제자들을 가르칠수는
없는 노릇아닌가.
그런일로 나는 여러번 이시와라를 꾸짖었으나, 녀석은 "제가 선생님의
실전공수를 배우는 이유는 이세상의 쓰레기같은 놈들을 혼내주기 위해서
입니다."라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나도 이십대초반에는 펄펄끓는 의협심에 물불안가리고
깡패들을 패고 돌아다닌적이 있다.
한번은 이시와라가 깡패들에게 납치를 당한적이 있다.도장의 동생이 깡패에게
맞고 오자 이시와라가 혼내줬고, 다시 그깡패들이 자기네 두목급 몇명을
데리고 도장으로 쳐들어온것이다.
당시 재일교포등의 도움으로 극진회를 막 열었던 나는 매우바빠 도장을 자주
비울때였고 그때도 도장에 없었다.
이시와라는 "여기는 신성한 도장이니 너희같은 놈들과 여기서 싸울수없다."
고 했고 놈들은 "그럼 우리구역으로 갈테냐?"하여 이시와라가 혼자서 그들을
따라갔다고 한다.제자들은 건달들과 싸우면 매우 엄하게 꾸짖는 나를 의식해서
따라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동료를 혼자 적지로 보내기도 마음에 걸리고
매우 난처했을 것이다.
나는 도장에 와서 그얘기를 듣자 고민에 빠졌다.
일단,사범이란 사람이 제자들을 몰고가서 깡패들과 싸운다는건 말도 안되고
내가 혼자가서 격투를 벌인후 이시와라를 구출하는 방법밖에 없다.
깡패따위가 두렵지는 않다. 문제는 극진회가 이제 막 출범했는데
일이 터지면 일본신문들은 "황소잡은 최배달의 극진회, 깡패집단과 혈투를
벌이다" 이런식으로 기사를 낼게 뻔하고 그러면 극진회는 무도를 닦는
집단이 아니라 싸움이나 벌이는 그런 집단으로 매도당할것이다.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때 이시와라는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는 "내가 놈들의 아지트에서 놈들을 닥치는대로
두들겨패자 두목이 그만해라. 우리가 졌다.고 하더군요."
그러고는 아무런일도 없었다는듯 녀석은 다시 훈련을 시작했다.
나는 어이없기도 했으나 한편으론 녀석이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나는 후에 오키나와에 극진회 지부를 세우기로 하고 그업무를
이시와라에게 맡겼다.
한국인중에는 공수도를 일본무술이라하여 배척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공수도는 원래 오키나와의 무술이었다. 오키나와는 "류큐"라는 왕국이었고
조선에 사신을 보내기도 했던 조선의 우방국이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것은 별로 오래전의 일이 아니다.
오키나와는 공수도의 본고장이어서 텃세가 심해 나의 이단적인 실전공수가
파고들어가는데 매우 힘들었다. 그러나 이시와라는 특유의 끈기와 의지로
오키나와 지부설립은 물론, 성장에도 큰역활을 해냈고 오키나와 지부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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