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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격투기....사라져야 한다..

한국 최초 異種격투기 챔피언전 관전기


김용옥 기자/doholk@munhwa.co.kr



지난 토요일(26) 오후, 나는 우연히 장충체육관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스피리트 마샬 찰렌지(Spirit Martial Challenge)라는 간판이 눈에 띄였고, 평소 무술에 관심이 깊었던 나는 그냥 아무 생각없이 장충관 원형 스타디움 속으로 발길을 옮겼다. 충격과 스릴, 모골이 송연해야만 했던 긴장의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나는 이날의 경기가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최초의 이종(異種)격투기 공식참피온대회라는 것도 새카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3시간넘게 관전을 마친 후에 나는 만감이 교차했다. 그것은 사소한 하나의 체육이벤트일지 모르지만 어쩌면 우리사회의 가장 적나라한 현실을 말해주고 있는 정직한 바로메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튀기는 잔인한 싸움을 쳐다보고 있는 철학자 도올, 과연 그 도올의 머리속엔 어떤 언어의 영상들이 스쳐 지나갔을까?

사람을 주먹으로 치는 것을 복싱(Boxing)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사람을 붙잡아 넘어트리는 모든 기술을 레슬링(Wrestling)이라고 부른다. 고대 희랍에서 이 두가지 스포츠는 각기 다른 종목으로 오랜 역사를 지니며 발달했다. 그런데 이 두가지 운동을 결합한 새로운 개념의 스포츠가 기원전 652년 제25회 고대 올림픽에 등장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판크라치온(Pankration)이라고 불렀다. 이 경기에서는 주먹때리기, 발차기, 사지 비틀기, 목조르기, 그리고 바닥에서의 이전투구, 이 모든 무규정의 규정이 허용되었다. 오직 물기(biting)와 눈후벼파기(gouging)만 파울로 인정되었다. 그리고 승부는 한 사람의 항복으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이 판크라치온은 잔인성 때문에 오히려 매우 인기가 높은 경기종목으로 부상했다. 필로스트라토스(Philostratos)는 판크라치온을 올림픽경기에서 가장 멋진 경기로 묘사했으며, 사람들은 이 경기에는 “사자의 힘과 여우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알렉산더대왕의 아버지 필립2세도 판크라치온 선수였다.

로마시대때 인간을 가장 광열시킨 것은 뭐니뭐니해도 검투사(gladiator)들의 경기였다. 럿셀 크로우가 주연한 ‘글라디에이터’라는 최근의 영화가 그 장면들을 잘 묘사했듯이, 이 글라디에이터의 싸움에는 경기의 승부대신, 인간의 생사가 엇갈린다. 판크라치온과 다른 것은 칼(gladius)이라고 하는 무기가 첨가되었다는 것이다. 이 글라디에이터의 싸움은 본시 에트루리아지방의 장례예식(Etruscan funerals)으로 출발한 것이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검투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저승길을 가도록 하기 위하여, 실제 검투사들의 죽음을 유도하는 싸움을 시킴굿의 한판으로 벌였던 것이다. 이 장례예식은 후에 독립된 흥행경기로서 발전했고 그 인기는 대단했다.

로마시민들은 인생의 목적이 마치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검투사들의 죽음의 혈투를 보는데 있는 것인냥 매일 매일을 기다리고 살았던 것이다. 글라디에이터는 포로나 노예로부터 차출되었다. 쓰러져 처분을 기다리는 글라디에이터의 목숨위로 광분한 수만명의 로마시민들은 엄지손가락을 거꾸로 찍어내리면서 죽음을 갈망했다. 이러한 싸움에서 계속 승리를 기록하는 글라디에이터들은 부녀자들에게 엄청난 인기가 있었다.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대제가 AD 325년에 이 잔인한 싸움을 공식폐지한 후에도 몇세기동안 그 광열은 식지않았다. 그런데 바로 이런 광열의 광경이 장충의 콜로세움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21세기는 퓨젼(fusion)의 시대라고 부른다. 퓨젼이란 기존의 관념으로는 서로 어울릴 수 없는 것처럼 보였던 독자적 룰을 가지고 있었던 세계들이 융합되는 현상을 말한다. 동·서의 융합, 고·금의 융합, 문명간의 융합은 미술·음악·건축·음식…. 모든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퓨젼이 스포츠와 무술분야에서도 일어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스포츠의 퓨젼은 매우 어렵다. 일례를 들면, 야구와 축구를 한 경기장에서 동시에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룰이 워낙 다른 목표를 위하여 독자적으로 설정되어있기 때문에 룰 자체의 퓨젼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야구선수와 축구선수의 기량을 동질적 기준에 의하여 승부를 가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동시에 무의미하다. 농구에서는 신적인 존재였던 마이클 조단이 야구방망이를 들었을 때는 어설픈 선머슴이 되고만 것과도 같은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무술의 경우는 퓨젼이 가능하다. 모든 무술에는 동일한 하나의 목표가 있다. 그것은 힘에 의하여 상대방을 제압한다는 통일원리가 있는 것이다. 복서가 스트레이트로 사람을 때리든, 태권도 유단자가 정권지르기로 사람을 치든 그것은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것이다. 싸움은 이기면 되는 것이다. 이긴다고 하는 사태의 결정적 함수는 힘(Power)이다. 힘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시간이라는 함수로부터 독립해서 생각할 수 없는 개념이다. 그것은 인간의 체력(Strength)을 시간으로 쪼갠 것이다. 시간이라는 분모가 적으면 적을수록 힘은 커진다. 즉 힘은 어떻게 짧은 순간에 체력을 집중시킬 수 있느냐는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다. 결국 모든 무술은 힘의 타이밍예술이라고 하는 공통분모를 배반하지 않는다.

생각해 보라 태권도의 고수와 세계 복싱 챔피온이 실제로 싸운다면? 역도산과 무하마드 알리가 실제로 싸운다면? 일본유도의 창시자 카노오 지고로오(嘉納治五郞, 1860∼1938)와 절권도(截拳道)의 창시자 브루스 리(李小龍, 1940∼1973)가 실제로 맞짱을 뜬다면? 상상만 해도 흥미진진한 이런 이야기는 끝없는 공담으로 흐를 수도 있다. 서로 다른 룰을 가지고 있는 이들 고수들의 실제 싸움장면을 상상한다는 것은 실제로 매우 난해한 것이다. 그러나 극한상황에서 싸움이란 어차피 벌어지게 마련이다.

생각해보라! 알리가 쨉과 스트레이트를 뻗으면서 덤벼들때, 브루스 리가 붕 날러서 이단옆차기로, 뒤돌려차기로 멋있게 아구를 날린다? 이런 장면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장충체육관에서 벌어진 이날 이종(異種)격투기의 현실은 우리가 여태까지 믿어왔던 모든 무술에 대한 우리의 수도(修道)적 신념이나 화려한 상상이나 르까프의 기술, 그 모든 신화를 여지없이 산산조각내버리고 만 불행한 한 역사의 한 토막이었다. 그리고 그 한 토막이야말로 우리역사의 최첨단의 진실이었다.

장충체육관 8각링으로 뽑혀 올라온 최정예의 무술사들, 브라질 쥬지쯔(Brazilian Jiujitsu), 레슬링, 태권도, 무에타이(Muay Thai), 킥복싱, 그리고 택견고수들의 실제 맞싸움이 입증한 최종적 진실이란 이러한 것이다: “우리나라엔 무술이 없다.” 이 명제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실제 싸움(Real Fight)에서는 상대방에게 약점을 잡힐 수 있는 모든 기술, 특히 운동성이 큰 모든 화려한 동작은 발휘할 챈스가 없다. 그러한 발휘의 순간에 이미 중심을 잃게하는 역수의 동작이 틈새를 밀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 결론은 무엇일까?

우리가 어렸을 때 싸운다고 하는 것을 한번 생각해보자! 기술은 뭔 기술이 필요했는가? 그냥 엉겨붙어 치고박고 하다가 코피나면 울고 끝났던 것이다. 우리나라 무술의 최고수들의 리얼파이트의 최종적 현실은 바로 우리들의 옛 황토길의 노스탈자, 그 엉겨붙어 코피터지던 그 동심의 세계였던 것이다. 이것은 동시에 우리나라의 모든 무술이 화려한 기술은 추구했을 지언정, 진정한 몸의 단련은 성취하지 못했다는 초라한 현실을 입증한 사건이기도 했던 것이다. 어떠한 최악의 상황에서도 나의 몸을 지탱하는 것은 반복적인 지루한 단련에서 우러나오는 힘과 정신력이다.

공자는 말했다: “오도(吾道)는 일이관지(一以貫之)라.” 하나의 무술만 단련해도 모든 무술을 이겨낼 수 있는 그 힘,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제어능력이 모든 선수들에게 박약했던 것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비극이 도사리고 있다. 과연 우리는 이러한 경기를 해야만 할 것인가? 경기란 그 경기를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룰과 마당(場)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그 모든 룰을 파괴하는 이런 싸움이 공적 게임으로서 과연 정당할 수 있는가?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기존의 룰의 관념이 파괴되는 곳에서 새로운 룰이 탄생되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직시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룰이라고 생각해왔던 그 모든 질서가 하나의 픽션에 불과했던 것이라는 자각이 우리에게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리얼파이트! 한마디로 개판이요, 메챠쿠챠요, 루안치빠짜오다. 그러나 이렇게 룰없이 엉겨붙어 싸우고 있는 현실이 탈신화를 지향하는 우리시대의 가장 정직한 자화상이다. 우리나라의 정치도, 정당간의 싸움도, 남북간의 대립도, 한·미관계의 모든 적나라한 현실도 이렇게 개판속에서 개판으로 살아남는 놈만이 승자가 될 뿐이라는 뼈저린 교훈을 되새기며 나는 장충체육관의 광분한 인파를 헤쳐나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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