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진공수도 한국최초 2단 승단심사 그기록
2단 승단심사날의 기록 - 2004년 10월 31일
- 부제 : 우리는 무엇을 위해 전진하는가
들어가며
AM 8:00 – 눈을 뜨다
AM 10:30 – 도장에 도착하다
AM 11:00 – 승단심사의 전주곡이 울리다
AM 12:00 – 폭풍 전야의 여유
PM 1:00
첫번째 승단 심사자 – 홍대도장 사범 오정열 – 수치스러운 실패
PM 1:40
두번째 승단 심사자 – 대구 지부장 임재영 – 부족한 20인 조수! 다 불태우지 못한 에너지
PM 2:20
세번째 승단 심사자 – 경남 지부장 이상헌 – 부상을 넘어선 끝없는 전진
PM 어느 때 – 그들의 뒷얘기
나오며 - 우리는 무엇을 위해 전진하는가
길고도 짧았던 승단심사는 끝이 났다. 언젠가 이 자리에 서게 될 자신을 그리는 가슴이 뜨거운 젊은이들 모두에게 작은 도움이 되길 바라며 나 자신에게 엄습한 그 날의 감응을 이 자리를 빌어 옮겨 본다. 부족한 판단력과 무지로 인해 다 담아내지 못한 감동은 각자가 직접 증명해 내길 바란다. 이제는 각자의 몫만 남았다.
새벽 5시경에 잠이 든 나는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꽉 막힌 후두부로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건조한 방 안의 온기를 이불을 차며 흩어놓았다.
“드디어 승단심사구나!:”
다시 눈을 감았다. 막연한 긴장감이 밀려왔다. 도장에서 밤 늦도록 연습했던 그들의 성과가 오늘 그 실체를 드러낼 것이었다.
피곤한 나의 눈꺼풀 넘어 곧 있을 승단심사가 두텁게 안개 낀 머릿속을 헤치며 명료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도장은 어수선했다.
미리와서 몸을 풀고 있는 조수 상대자들과 어떤 이유에서든지 극진과 인연이 닿아있는 어린 눈빛의 청년들이 도장의 때묻은 벽에 등을 대고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의 무거운 머리는 아직 도장의 기운을 완전히 다 감지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곧 있을 20인 조수에 대한 팽팽한 긴장감이 멀리 저물어가는 태양빛처럼 느껴질 따름이었다.
그것이 스러져 가는 석양이 아니라 휘몰아치는 태풍처럼 휩쓸고 지나갈 거대한 물결이란 사실을 그 땐 알지 못했다.
김경훈 총사범이 2단 승단심사의 시작을 알렸다.
국내 최초로 열리는 이번 심사의 심사자는 모두 세 명이었다.
오정열 – 홍대도장 사범
임재영 – 대구 지부장
이상헌 – 경남 지부장
2단 승단심사는 일반적인 승급심사와 마찬가지로 기본기, 유연성, 봉넘기, 볼차기, 물구나무서서 걷기, 정권단련, 형 심사에 이어 대련 심사가 이어질 예정이었다.
김경훈 총사범의 구령에 맞춰 열 지어 선 세 명의 심사자는 모두 표정이 굳어 있었다.
어쩌면 약간 일그러져 있었던 것도 같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오늘의 결과를 예감하고 있었던 걸까. 긴장과 피로감이 그들의 얼굴 위에서 예리한 형광등 불빛에 번들거리고 있었다.
기본기는 일반 수련에서 진행되는 정권 지르기와 발차기 위주로 가볍게 시작되었다. 그 다음으로 유연성 테스트. 두 다리를 벌려 바닥에 배가 닿는지를 보는 것과 한쪽 다리를 머리에 대고 일어설 수 있는지를 보는 두 가지로 구성된다.
봉넘기는 지름이 오센티 정도 되는 나무 봉을 두 손에 잡고 앞과 뒤로 각각 점프해서 뛰어넘는 심사다. 가장 체중이 많이 나가는 임재영 대구 지부장이 횟수를 채우지 못한 다른 심사자들을 제치고 능숙하게 봉을 뛰어넘는 모습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볼차기는 높이가 다른 세 개의 볼을 처음 두 개는 앞 뛰어 올려차기로 마지막 한 개는 뒤돌려 뛰어차기로 볼을 차는 기술로 태권도의 두 다리로 점프해서 차는 기술과는 차별성이 있는 발기술이다.
물구나무서서 걷기는 12m정도의 거리를 왕복으로 물구나무를 선 채로 걸을 수 있는지를 보는 심사다.
그 다음으로 정권단련의 차례가 되었다.
승단 심사자들에게 있어 처음으로 닥치는 난코스는 바로 이 정권단련 100회부터 시작된다.
주먹 쥔 손의 두 마디로만 버틴 채 옆구리에서 올라오는 날렵한 이 자세는 말처럼 쉽지 않다. 특히나 온종일 체력을 소모해야 할 도입부인 만큼 정권단련에서 힘을 소진하는 게 불리하다는 것을 그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허동호 지도사범의 구령이 이어졌다.
“하나, 둘, 셋, 넷……..오십….육십…..”
오십번째였나. 오정열 지부장이 팔굽혀 펴기를 멈추고 정좌를 했다.
김경훈 총사범이 말했다.
“제자들이 보고 있습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십시요.”
난 그 말이 칼과 같다고 생각했다. 나지막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무게가 조용한 도장 안을 가로질렀다.
오정열 지부장은 다시 팔굽혀 펴기를 시작했다. 벌써 정권단련의 횟수는 칠십을 넘어서고 나머지 두 심사자의 허리도 구부러지고 있었다.
구령소리는 계속되고 그들의 자세도 점점 더 뒤틀려 졌다.
“……백”
백번째의 구령이 끝나자 각 심사자들은 정좌한 자세에서 자신의 정권단련 횟수를 말했다.
횟수를 말하는 그들의 표정은 벌써 젖어 있었지만 곧 날카로운 한마디가 젖은 공기를 바싹 말려버렸다.
“그 횟수를 한 게 정확합니까!”
자신있게 정확한 자세로 성공했느냐는 반문이었다.
심사자 중 누군가의 표정에 두려움과 망설임이 스치고 지나갔다.
승단심사의 열기는 달아오르고 있었지만 그 표면에는 김경훈 총사범의 나직한 몇 마디에 살얼음이 깔리고 있었다.
10여분 간의 휴식시간이 있은 뒤 형 심사가 시작되었다.
2단 승단 심사인 만큼 평소에 보기 힘든 형이 많이 선보이는 자리였다. 특히나 역진행으로 진행되는 동작에서는 회전동작이 많아 보기에도 균형잡기가 쉬워 보이지 않았다.
처음 순서는 오정열 지부장으로 그는 차분하게 진행했지만 곧 김경훈 총사범의 지적이 떨어졌다.
“동작이 틀렸습니다. 제대로 배우도록 하세요”
도장의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았다. 형은 완급과 힘의 조절, 리듬에 있다는 날카로운 지적은 그 뒤로도 계속 이어졌다.
형 심사까지 끝나자 어느새 시간은 정오를 가리키고 있었다.
국내 최초의 2단 승단 심사를 보러 온 참관인들의 숫자는 늘어나는 반면 승단심사를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20여명의 유급,유단자들의 표정은 굳어가고 있었다. 웃지만 웃지 않는 그들.
“다음 심사는 오후 1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김경훈 총사범의 외침에 모두는 잠깐의 여유와 허기를 모면하는 듯 했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다.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20인 조수! 20명과 1분씩 쉬지 않고 겨루기.
체력안배, 스태미너, 기술, 판단력, 근성, 극진의 총체를 시험하는 장.
흔히 대련이라고 불리는 이것은 한 명에게 전력투구해서 자신의 에너지를 쏟아부어 지쳐서도 안되며 끝까지 지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적당히 해서도 상대방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다.
서서히 베일에 싸여 있던 20인 조수의 막이 오르려 하고 있었다.
그는 키 175cm정도에 80킬로가 채 안되어 보이는 체구였다. 검은 띠를 매고 초단심사를 거친 지가 꽤 되어 보이는 그의 첫 조수 상대는 아시아 선수권 대회를 준비중인 김재민이었다.
키 180cm에 90킬로 이상 나가는 그는 무게에서 오는 파워가 강점인 대련자.
유연하게 들어가는 상단과 하단 공격이 연이어지고 당연히 우리의 시선은 20인 조수를 하는 오정열의 기술에 기대가 모아졌다.
그러나 그는 가드만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몇 번의 발차기와 정권 찌르기가 있었지만 그것은 초단심사를 통과한 사람의 그것으로 보기가 어려웠다.
20인 조수인 만큼 아직은 시작이니 그가 가볍게 워밍업을 하는 것이라고 처음에는 생각했다.
두번째로 들어간 상대는 부산에서 수련중인 키 175-7cm에 75-80킬로의 홍경석이었다. 커다란 눈망울에 약간은 창백한 얼굴빛의 그의 공격은 여지가 없었다. 앞차기와 돌려차기 기술이 연이어 터지고 기술을 막기에만 급급한 오정열의 모습만이 뚜렷이 들어왔다.
네번째로 들어간 오동아는 서울 사당본부 지도사범으로 평소 인 파이터로 소문난 대련자. 가벼운 표정으로 들어간 그의 첫 공격은 중단 돌려차기였다. 제대로 들어간 그의 다리공격을 시작으로 오정열의 판정패는 계속되었다.
다섯번째로 들어간 상대는 그 날 승단심사의 심사자이며 극진회관 한국지부장인 김경훈 총사범이었다.
사람들 사이에 조용한 동요가 일었다. 평소 김경훈 사범의 수도 5장 얼음격파와 얼음기둥을 발차기로 박살내는 것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오늘의 그 어떤 조수 상대보다도 두렵고 강한 존재임을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정열의 표정이 흔들렸다. 이미 앞 선 네 명의 조수를 통해 앞으로의 조수에서 패색이 짙음을 보였던 그는 김경훈 사범과의 조수에서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키 175~180cm 의 키에 94킬로의 무게가 한치의 흐트러짐없이 그대로 담겨 있는 정확한 공격은 그의 옆구리를 가격했고 고통스런 표정으로 나뒹구는 그의 모습을 보며 도장 안의 우리 모두 또한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에 휩싸였다.
도장 안의 웅성거림은 쓰러진 상대를 보며 다시 일어서서 겨룰 것을 기다리는 김경훈 사범의 싸늘한 기운에 차단이라도 된 듯 기묘한 적막감에 휩싸였다.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는 듯 옆구리를 잡고 괴로워하는 그의 도복 끈이 풀어지고 가슴이 드러났다. 벌써 그의 가슴은 붉게 물들어 있었고 거친 그의 숨소리에 우린 조용히 귀를 기울일 따름이었다.
길게만 느껴지는 수초가 지나고 다시 일어선 그와 김경훈 총사범과의 대련은 시간 초과로 끝이 났다. 그 날의 그 어떤 조수보다도 우릴 숙연함과 공포심에 싸이게 만들었던 순간이었다.
여섯번째 강구민이 들어왔다. 키 176cm에 80킬로 정도의 그는 다리걸기의 명수다. 평소 침착한 공격을 펼치는 그의 기술은 역시나 여지없이 제대로 들어갔고 오정열은 절반 패했다.
아홉번째 허동호 부산동래본부 지도 사범이 들어왔다. 그는 176cm정도의 키에 70킬로 안팎의 몸이지만 올해 개최되었던 제2회 전한국극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대련자다.
김경훈 총사범의 옆에서 심사를 거들던 그는 사범님의 지시에 가벼운 몸짓으로 조수에 임했다. 오정열의 표정에는 이미 싸울 의지가 없어 보였다. 마치 코너에 몰려 코치가 수건을 던져 포기선언이라도 해주길 기다리는 무력한 링 안의 선수 같았다.
허동호의 절도있는 콤비네이션이 들어가고 순간 호선을 그리듯이 그의 오른발이 올라갔다. 정확히 들어간 그의 돌려차기에 오정열이 쓰러졌다.
머리 옆 쪽을 맞고 몸이 돌아가며 쓰러진 그의 호흡소린 들리지 않았지만 비오듯이 쏟아지는 그의 땀에 웬지 내가 힘이 빠져버렸다.
그는 끝없이 맞고만 있었고 밀리기만 했다. 마치 이 곳에 자신은 공격할 수 없다는 패널티라도 주어진 것처럼.
언젠가 내가 그의 가르침 밑에 있던 날이 떠올랐다.
그 날도 수련을 마친 뒤 정좌를 한 자세에서 그는 수련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얘기를 꺼냈다.
“여러분, 수련은 한번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집에 커다란 대야가 있었습니다. 그 대야에 처마에서 한 방울씩 물이 떨어지는 것을 보곤 했었죠. 그런데 어느 겨울인가에 그 대야가 깨져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한 방울 한 방울이 모여 그 대야를 채우고 결국엔 얼어붙어 그 커다란 대야를 깨트리고 만 것입니다. 수련도 이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반복과 꾸준한 수련을 통해서 목표하는 바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모두 이와 같은 마음으로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오쓰”
난 그 날 그의 얘기를 집에 와서 메모를 해 두고 틈나는 대로 되새기곤 했었다. 나처럼 약한 사람도 꼭 강하게 될 수 있을 거란 믿음과 함께.
그런 그가 내 눈앞에서 철저히 무너지고 있었다. 난 그 이후 계속된 그의 남은 조수를 망연히 지켜보았다.
그는 쓰러지고 또 쓰러졌다. 얼굴은 질려 있었고 땀과 물기에 번들거리는 그의 초라한 눈빛은 비굴한 두려움에 싸여 있었다.
왜 당당하지 못한가. 왜 맞서지 않는가. 왜 그가 입으로 내뱉었던 그 많은 가르침의 일부라도 실천하지 못하는가.
난 그 날 오정열의 조수 상대로 들어온 20명 중의 단 한명의 발차기도 완벽히 막아낼 자신은 없다. 그 중의 누군가의 중단 돌려차기를 막고 한동안 운동을 제대로 못한 적도 있었다.
난 약하다. 하지만 나를 가르친 그는 강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20인 조수를 볼 정도라면 그만한 각오와 준비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10번 남았습니다. 한번의 승도 없을 시에는 실격시키겠습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십시오”
김경훈 총사범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수가 거의 끝나갈 무렵 그는 다시 힘을 내어 제대로 된 공격을 펼치는 듯 했지만 이미 그의 조수 결과는 19번의 조수 중 13패 4무 1승 을 기록하고 있었다.
마지막 20번째로 임재영 대구 지부장이 들어왔다.
그는 세계대회 출전 경험이 있는 선수로 강력한 하단공격으로 1승을 거둔 전적이 있는 대련자였다.
이미 지칠대로 지쳐버린 오정열과 이제 막 들어서는 임재영의 조수는 분명 오정열에게 불리했다. 그러나 결국 마지막 러쉬를 기대했던 우리의 눈 앞에서 중량감있는 임재영의 뒤돌려차기에 오정열은 머리를 맞고 뻗어버렸다.
그렇게 그의 20인 조수는 불명예스런 실패로 끝이 나고 말았다.
결과 승 1 무 5 패 14
그는 175cm의 키에 90킬로의 체격으로 강함에 대해 욕심이 있는 자라면 한번쯤 대련해 보고 싶은 실력의 심사자였다.
오정열과의 첫번째 조수를 가볍게 한판승으로 이긴 그의 20인 조수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두번째로 들어온 서울 사당 본부 이전국 지도사범의 소극적인 공격에 우세승을 거둔 그는 세번째로 들어온 서울 홍대지부 곽종세와의 조수에서도 우세승을 거둔다. 긴장을 한 탓인지 실력차가 있는 상대방에게 우선승을 거두겠다는 생각에서인지 무릎 공격을 하는 그의 손이 곽종세의 소매를 잡았다.
“잡지 않도록!”
김경훈 총사범의 단호한 목소리가 퍼졌다.
체력안배에 중점을 둔 듯한 그는 초단 심사때와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전력 투구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것은 그가 20인 조수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네번째로 들어온 김현수는 키 175-77cm의 80킬로 이상 나가는 건장한 청년이었다. 그의 연이은 공격은 임재영의 페이스를 흐리게 만들었고 28살 심사자의 표정은 미세하게 변하고 있었다.
초반부터 힘을 빼지 않겠다는 그의 의지는 계속 공격하라는 김경훈 사범의 지적이 떨어지게 만들었다.
다섯번째 김홍극이 들어왔다. 그는 제2회 전한국극진선수권 대회에서 4등을 한 선수로 키 175-7cm의 90킬로 이상 나가는 무제한급 대련자였다. 둘의 공격은 김홍극의 러쉬로 치열해졌고 그 대련에서 왼쪽 무릎쪽을 부딪혔던 듯 임재영은 자신의 무릎을 만지며 도복을 추스렸다.
여덟번째 홍진학이 들어갔다. 키 175-7cm의 80킬로인 그는 체격에 비해 가벼운 스텝이 특징적인 대련자였다. 빠르고 화려한 공격이 이어졌다. 임재영의 투지를 일깨우는 듯 그의 표정은 심각해졌다.
아홉번째 최배권이 들어왔다. 175-7cm의 85킬로 이상 나가는 그는 평소 소문난 인 파이터로 그와의 대련으로 부상을 입은 선수들이 손에 꼽을 정도다. 예상대로 그의 무차별적인 공격이 이어졌다. 볼살이 흔들릴 정도의 지르기 공격에 임재영은 결국 뒤로 빠지다가 인간링의 경계선에서 사람들 속으로 파묻힐 뻔했다.
“공격하십시오”
김경훈 사범의 원망스런 지시가 임재영 선수의 귓가에 파고 들었다.
열번째로 들어간 오동아는 바깥에서 안으로 휘감아 치는 안돌려차기 공격 중 임재영의 지르기 공격에 턱을 가격받았다. 그 이후로도 지치지 않고 들어오던 오동아는 임재영과 열여덟번째로 다시 만나 치열한 러쉬를 펼쳐 보이게 된다.
열한번째 김태홍이 들어왔다. 단신의 그는 체중이 80-90킬로 나가는 선수로 외견상 짐작하기 힘든 유연성의 소유자였다. 브라질리언 킥과 체중을 믿기 힘든 빠른 스피드 공격이 이어지자 두 사람의 기술이 팽팽히 맞붙었다.
열네번째 대련에 이르자 임재영의 몸은 눈에 띄게 무거워 보였다. 상대방 조수자들의 앞차기와 정권 공격은 그의 도복을 풀어헤쳐 놓았고 굳게 묶여 있던 도복 끈은 어느새 풀어져 대롱거리고 있었다.
열다섯번째 장용한이 들어오자 임재영은 조수 시작에 이어 두 손뼉을 마주치며 스스로에게 파이팅을 외쳤다. 장용한의 돌려차기에 이어 열여섯번째로 들어온 홍경석의 뒤돌려 중단차기도 피한 그는 군중 속에 파묻히는 가운데서도 굴하지 않았다.
새로운 대련자는 충분한 휴식과 에너지로 충전되어 있는 반면 40여분에 달하는 시간 동안 전혀 다른 스타일의 대련자들을 상대하는 일은 젊은 그에게도 벅찬 일이었다.
열여덟번째 오동아와의 재대련이 이어지고 “힘들더라도 손을 써” 라는 김경훈 사범의 외침이 들렸다.
그 때였다. 두 사람의 천번 지르기가 시작된 것은. 그 날을 참관하고 있던 사람들의 “으샤 으샤” 하는 응원에 발맞추듯이 두 사람은 막판 몇 십초동안 난타에 난타를 거듭했다.
임재영의 쇄골을 노린 주먹공격과 오동아의 가슴팍을 노린 주먹 공격은 그 곳의 모든 이들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대련이 끝나자 오동아는 시원섭섭한 웃음을 지었고 임재영은 상대방과의 악수에서 더욱 깊이 고개를 숙였다.
마지막 20번째 이상헌과의 조수가 있었다.
“마지막입니다. 확실히 보여주세요”
자신의 스승인 김경훈 총사범의 목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마치 이게 마지막이란 사실을 이제 알았다는 듯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다르게 질주하듯이 공격을 쏟아부었다.
빗발치는 공격과 난타가 상단과 하단에 터졌고 결국 이상헌은 머리공격을 허용하고 만다.
단 한번의 패도 없이 무승부와 승으로만 장식한 그의 20인 조수를 보고 사람들이 말했다. 이 사람은 30인 조수를 해도 되겠구나 하고.
침착하게 공격을 풀어가고 체력소모를 최소화한 그의 조수에서는 특별한 부상과 동요가 없었다. 주위의 평에 의하면 쉬임없이 자신의 페이스를 잃지 않고 조수를 끝까지 이끌었던 것은 그의 노련함이 외견상 보이는 침착함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랜 수련의 결과로 가능한 것이라는 반응이었다.
임재영은 김경훈 총사범과 20인 조수의 끝을 알리는 뜨거운 악수를 나누었다.
그에겐 전적이 기록된 화이트 보드 앞의 사진 촬영이 남아 있었다. 카메라가 모여들고 촬영을 하려는 찰나 그는 잠시 중지를 외치고 땀에 젖어 이리저리 까치집이 되어 버린 머리칼을 만지작거렸다. 그에겐 오늘을 남기는 중요한 촬영이었지만 너무나 힘겨운 20인 조수 뒤의 소박한 매만짐은 주위 사람들의 웃음을 참지 못하게 만들었다.
숨에 허덕이고 힘겨운 체력 전에 고개를 숙이기 몇 번. 그러나 결코 주저앉지 않았던 그였기에 수줍은 웃음을 얼굴에 띠운 채 붕대에 감긴 두터운 손가락으로 머리칼을 넘기는 모습은 그 날의 참관인 모두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했던 것이다. 그의 머리칼이 정돈되길 기다리던 카메라 후레쉬가 터지고 그는 화이트 보드 앞에서 자신의 무패를 기록했다.
결과 승 4 무 16
그는 175-7cm에 85-90킬로 정도의 체구였다. 35세 정도의 그는 그 날 참석한 심사자 중 제일 연장자였고 가장 치열하게 임했던 사람이었다.
그의 20인 조수는 쉽지 않았다. 패와 무승부를 오가며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길 반복했던 그의 조수는 그 날의 가장 존경스런 심사 과정이기도 했다.
전혀 스타일이 다른 선수들과 맞서며 서로 기술을 교환하고 적응하고 자신의 기술로 승을 얻기까지 바닥에 수 차례 몸을 뉘여야 했던 그.
일곱번째 홍진학이 들어왔을 때 이상헌은 그의 돌려차기의 약점인 커다란 동선을 정확히 파악하고 홍진학의 돌려차기를 오른발과 왼발로 모두 제지하는 기술을 선보여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다.
열번째로 허동호 선수가 들어왔을 때였다. 체력의 상당부분이 소모된 이상헌은 허동호의 빠른 스피드에 실린 중단 돌려차기를 막지 못하고 “억” 소리와 함께 쓰러지고 말았다.
숨을 못 쉬겠는지 몸을 구부리고 헉헉대는 그를 주위에서 눕히고 도복 끈을 풀었다. 허동호는 이상헌이 쓰러지자 정좌자세를 취했지만 김경훈 총사범의 제지로 일어서서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상헌은 상태를 묻는 의료진에게 숨을 깊이 들이쉬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아마 옆구리 쪽에 이상이 온 것 같았다. 난 그가 혹시 심사를 포기하겠다고 말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일어섰고 한판 패를 선고 받은 뒤 뒤이어 열한번째 조수를 계속해 갔다.
열두번째로 들어왔던 박석한은 단신에 60킬로 정도였는데 태권도 유단자인 전적답게 발기술이 강점인 조수자였다. 그러나 이상헌은 원천적으로 박석한의 돌려차기 기술을 제압할 뿐만 아니라 기술을 펼치는 그 순간 상대방을 그대로 메다꽂는 저력을 보여 기술과 파워에 있어 초단 심사 때와는 다른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열네번째 김원식이 들어왔다. 그는 아직 고등학생으로 키 175cm정도에 80킬로 정도였는데 그 또한 저돌적인 공격이 특징인 대련자였다.
그의 러쉬는 전력질주하는 야생마같이 빗발쳤고 앞서의 공격으로 옆구리 쪽에 심각한 데미지를 입은 그의 가슴도 김원식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공격시 조심해서 하십시오”
김경훈 총사범은 상처부위에 직접적인 공격을 하는 김원식에게 주의를 주었다. 정의롭게 대련에 임하라는 의도였다.
열다섯번째 오동아와 대련을 하던 그가 조수 중에 머뭇거렸다. 오동아의 공격에 러쉬를 펼치던 이상헌의 발가락이 틀려 버렸던 것이다. 우리의 시선은 그의 왼쪽 발가락에 집중되었다. 집게 발가락이 정상 위치에서 위로 떠올라 옆 쪽으로 비틀려 있었다. 골절 같았다. 다시 의료진이 왔고 조심스럽게 그의 발가락을 만져보았다.
이상헌은 다시 발가락을 빼서 끼우길 원했다. 그의 조수는 아직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의료진은 그의 요청대로 발가락을 살짝 뺐고 곧이어 “윽” 하는 비명이 새어 나왔다. 그는 다시 일어섰고 조수는 계속되었다.
부상뒤의 그는 20번의 조수 중 마지막 10번의 조수 가운데서 3번의 승을 거두었다. 상대방의 상단 돌려차기를 호쾌하게 제지하는 모습은 그 자리에 모인 많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다. 조수가 뒤로 이어지던 중 그의 발가락이 다시 골절 되었다. 힐끗 자신의 발을 보던 그는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다시 조수에 임했다. 그의 왼쪽 집게 발가락은 뒤틀린 채 서 있었는데 말이다.
열여섯번째 이진욱이 들어왔다. 제2회 전한국극진선수권 대회 때 16강에 진출했던 그는 안정적인 콤비네이션과 맷집이 돋보이는 대련자였다. 두 사람은 접근전으로 공격을 주고받다 이진욱의 하단차기 방어에 주력하던 이상헌이 그의 상단 돌려차기를 허용하여 절반패를 하고 말았다. 이미 이상헌의 체력은 끝을 향해 가고 있는 듯했다.
이상헌의 옆구리 부상은 꽤 치명적이었다. 열일곱번째로 들어왔던 조수자 이케다 신야는 정확히 이상헌의 오른쪽 옆구리를 공격했고 막지 못한 그는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콤비네이션의 특성상 자연스런 공격이기도 했지만 이케다의 얼굴에도 당황한 기색이 흘렀다.
그러나 그 이후로 이상헌은 한 번의 패도 하지 않았다.
문득 흘러내린 도복 끈에 젖혀진 그의 가슴이 눈에 들어왔다. 가시로 된 채찍으로 수도 없이 얻어 맞은 것 같은 붉은 핏자국에 숙연함마저 들었다. 그의 피부가 벗겨지도록 했던 그 많은 공격들이 그의 몸 속에 깊은 피로감을 쌓이게 했을 것임에도 그는 방어하는 데 급급하지도 공격에 주저하지도 않았다.
설령 그가 공격에 쓰러지고 밀렸다 할지라도 그 누구보다 그가 그 곳에서 당당하게 조수에 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었다.
그의 20번의 조수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상단 돌려차기를 저지하는 막고 후려치는 기술이었다. 상대방이 상단공격을 시도하려고 했을 때 정확히 상대방의 발을 어깨나 머리로 걸어 반대쪽 다리를 후려치거나 밀어버려 제압하는 이 기술은 그가 각고의 노력 끝에 연마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 날 그가 거둔 대부분의 승리는 이 기술이 가져다 준 것이었다.
스무번째 김재민과의 무승부를 끝으로 그의 20인 조수가 끝이 났다. 누구보다도 커다란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화이트 보드 앞 자신의 전적 앞에 서서 기록촬영을 하려는 그에게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
“폼 좀 잡아봐~”
순간 풀렸던 그의 눈빛이 상단 가드를 하는 그의 두 주먹과 함께 날카로운 빛을 발했다. 조수자와 머리 숙여 악수를 하고 해맑게 웃던 그의 얼굴이 조수 자세를 취함과 동시에 살의에 가깝게 바꼈던 것이다.
오늘의 20인 조수는 끝이 났지만 그의 인생에 있어 대련은 끝나지 않은 듯 했다. 그의 눈빛은 너무나 명징했고 안광은 선명했다. 그의 부상은 그의 정신까지 지배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그의 투혼에 빛났던 조수가 카메라 후레쉬와 함께 끝이 났음을 알리고 있었다.
결과 승 5 무 10 패 5
오정열 사범은 본인의 조수 이후 몸을 추스리지 못하는 듯 했지만 곧 뒤이어 벌어진 임재영과 이상헌 지부장의 조수에서 코치를 해주며 끝까지 응원을 했다.
오후 3시 승단심사가 끝난 뒤 오정열 사범은 자신을 응원하러 와준 홍대 도장 이하 자신의 밑에서 가르침을 받는 수련생들과 따로 식사를 가졌다. 그 곳에서 그는 자신의 20인 조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는 선수보다 트레이너로서 더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라고.
승단 심사날 서 있기조차 힘들어 보였던 그는 현재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
임재영 지부장은 20인 조수 당일 날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었다. 심사에 대한 부담과 여러가지 생각들에 전날 수면제 2알을 먹고도 긴장감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 그는 사당본부 도장의 소파 밑 바닥에서 하루를 보낸 뒤 조수에 임했었다고 한다. 특별한 부상 없이 조수를 치른 그는 현재 11월 27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될 아시아선수권대회 준비에 매진 중이다.
이상헌 지부장은 승단심사에 대한 부담과 긴장 때문에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다 승단심사 전날 수면제를 복용했다고 한다.
긴장과 피로 속에서 치룬 이 날의 조수 이후 그는 왼쪽 발에 반깁스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조수 당일 다리를 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마치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늦은 밤까지 술자리를 지켰다. 말수가 적었던 그는 다만 음식을 많이 먹지 않았을 뿐이다.
치열하다는 말은 부족했다. 그들이 40분 여분 동안 쓰러지고 주저앉고 그리고 다시 일어서며 대련했던 그 날은 치열하다는 말로 부족했다. 그 하루를 위해 그들이 고민했던 것과 그들이 실천했던 것과 그들이 증명하고자 했던 것은 단 한마디의 단어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무심히 그들의 조수를 지켜보던 내게 무언가 요동치며 거대한 것이 밀려온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조수 심사가 중반에 이를 즈음이었다.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가, 그들이 무엇을 위해 전진하는지. 이 자리에 있는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이 곳에 있는지에 대한 의문.
나는 두려워졌다. 그들이 피하지 않고 전진하고 또다시 전진하는 것을 보며 두려움이 일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진정 원하고 동경하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들이 전진하는 과정에 닥치는 고통과 시련이 어떠한 것인지.
그 길에 내가 있다는 사실에 본능적인 두려움이 일었다.
정강이가 상대방 무릎에 찍힐 때, 정권이 옆구리를 강타할 때, 상단 돌려차기가 내 안면을 찍을 때, 후려걸기에 걸려 도장 바닥에 쓰러질 때, 뒷차기에 옆구리에 금이 갈 때, 흥분한 상대방의 주먹이 나의 턱을 갈길 때, 그리고 내가 강해지기 위해 쉬임없이 시도해야 할 끝없는 발차기와 지르기와 수련들.
이 모든 고통이 상상 속에서 한꺼번에 밀려왔다.
내 심장은 작게 떨리고 있었다. 내가 이 모든 것을 거칠 때 나 또한 그들과 같이 이 자리에 설 수 있을 거란 사실에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입은 웃고 있었다.
“극진의 매력은 치열한 조수가 끝난 뒤 상대방과 굳게 악수하며 서로 웃을 수 있는 데 있어.”
우리의 전진에는 고통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나는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아직도 나는 우리가 왜 전진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내게도 알고 있는 한가지가 있었다.
전진은 해야만 한다는 것을.
그것이 도장 바닥에 누워 씨익 웃을 수 있는 멍투성이 수련생의 자존심이라는 것을.
극진수련과 지도에 있어서 누구나 거쳐야할 관문이 승급심사이다.그것은 선택된 이들만의 것이 아니라,극진공수도를 지도하는 사범 그리고,수련생이라면 누구나포함되는 하나의 관문인 것이며,심사는 그 내용에서 o,x를 따지기 전에 얼마만큼 충실히 심사를 임했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연속대련에서 금방이라도 주저앉고 싶을지라도 마지막 한사람까지 상대에게 흐트러짐을 보여선 안되며,상대에 등을 돌리는 행위는 무도인으로써의 자질과 수치를 모르는 행위이다.특히,우리극진은."바람의 파이터" 영화속에서도 야쿠자패거리들로부터 수치를 당하는 장면있다.
영화를 본 사람 누구나가 느꼈을것이고, 실제 이야기냐며 질문하는 이들도 있다.
심사 채점자로써 이번 승단심사에서 가장 중점을 두었던것이 바로그것이다. 마지막까지 "극진의 정신"을 발휘하는가 였다.
감동이라는것이 무엇인가,한계를 극복해 나가는 그모습 모습들 일것이다.그것은화려한 무대에서의 시합과는 견줄수없다.
특히,이번 승단심사는 극진에서 각자의 활동과 위치가 있는 심사자들 이었다.
일반 수련생들이 아닌,극진을 대표하는 사범들인것이다.
수많은 수련생들의 시선이 있지않았던가.어떻게 그 시선들을 간단히 외면할수 있었던 것인가.
극진은 순수한 무도단체이다.누구나 열심히 한다면 극진을 대표하는 선수가 될수있으며,지도자가 될수있다.
그리고,극진공수도에는 선택된 선수,트레이너는 따로없다.많은 수련과 경험을 통해서 자기만의 기술을 전수하는것이 트레이너이며,그 경험없이는 제되로된 전수가 될수없다라고 생각한다.
단지 강한 수련만이 선수에게 도움된다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 선수에게 맞는 맞춤교육이 가장중요 한것이다.그르려면 먼저 자신이 느껴야만 한다.입으로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몸소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총재님께서 늘 심사때 당부 하셨다는 말씀이 있다.
시합이나,심사에서 상대와 대적할때 패배에 있어서 다음 기회도 있겠지.라는 생각을 버려라.
시합이나 심사 이전에 이것이 마지막 이라는 생각으로 상대와 맞서라 상대는 신이 아니다.그리고,다음을 생각하지마라.남자는 평생 전쟁터 속에서 산다라고 생각해라.그전쟁에서 승리할수있는 남자가 되어라.그리고,반드이 이겨라.남자의 생명은 자존심이다.그자존심을 지키지 못한다면 살아있는 송장과 다를바 없는것이다.
가끔 총제님의 말씀을 떠올리면서 많은 생각을 갖게한다.
실제로 보일수 없다면 그것은 인정받을수 없으며,
인정 받을수 없는것은 신용을 얻지못하며,
신용이 없는 이는 존경 받을수없다.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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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우리는 무엇을 위해 전진하는가
들어가며
AM 8:00 – 눈을 뜨다
AM 10:30 – 도장에 도착하다
AM 11:00 – 승단심사의 전주곡이 울리다
AM 12:00 – 폭풍 전야의 여유
PM 1:00
첫번째 승단 심사자 – 홍대도장 사범 오정열 – 수치스러운 실패
PM 1:40
두번째 승단 심사자 – 대구 지부장 임재영 – 부족한 20인 조수! 다 불태우지 못한 에너지
PM 2:20
세번째 승단 심사자 – 경남 지부장 이상헌 – 부상을 넘어선 끝없는 전진
PM 어느 때 – 그들의 뒷얘기
나오며 - 우리는 무엇을 위해 전진하는가
길고도 짧았던 승단심사는 끝이 났다. 언젠가 이 자리에 서게 될 자신을 그리는 가슴이 뜨거운 젊은이들 모두에게 작은 도움이 되길 바라며 나 자신에게 엄습한 그 날의 감응을 이 자리를 빌어 옮겨 본다. 부족한 판단력과 무지로 인해 다 담아내지 못한 감동은 각자가 직접 증명해 내길 바란다. 이제는 각자의 몫만 남았다.
새벽 5시경에 잠이 든 나는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꽉 막힌 후두부로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건조한 방 안의 온기를 이불을 차며 흩어놓았다.
“드디어 승단심사구나!:”
다시 눈을 감았다. 막연한 긴장감이 밀려왔다. 도장에서 밤 늦도록 연습했던 그들의 성과가 오늘 그 실체를 드러낼 것이었다.
피곤한 나의 눈꺼풀 넘어 곧 있을 승단심사가 두텁게 안개 낀 머릿속을 헤치며 명료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도장은 어수선했다.
미리와서 몸을 풀고 있는 조수 상대자들과 어떤 이유에서든지 극진과 인연이 닿아있는 어린 눈빛의 청년들이 도장의 때묻은 벽에 등을 대고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의 무거운 머리는 아직 도장의 기운을 완전히 다 감지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곧 있을 20인 조수에 대한 팽팽한 긴장감이 멀리 저물어가는 태양빛처럼 느껴질 따름이었다.
그것이 스러져 가는 석양이 아니라 휘몰아치는 태풍처럼 휩쓸고 지나갈 거대한 물결이란 사실을 그 땐 알지 못했다.
김경훈 총사범이 2단 승단심사의 시작을 알렸다.
국내 최초로 열리는 이번 심사의 심사자는 모두 세 명이었다.
오정열 – 홍대도장 사범
임재영 – 대구 지부장
이상헌 – 경남 지부장
2단 승단심사는 일반적인 승급심사와 마찬가지로 기본기, 유연성, 봉넘기, 볼차기, 물구나무서서 걷기, 정권단련, 형 심사에 이어 대련 심사가 이어질 예정이었다.
김경훈 총사범의 구령에 맞춰 열 지어 선 세 명의 심사자는 모두 표정이 굳어 있었다.
어쩌면 약간 일그러져 있었던 것도 같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오늘의 결과를 예감하고 있었던 걸까. 긴장과 피로감이 그들의 얼굴 위에서 예리한 형광등 불빛에 번들거리고 있었다.
기본기는 일반 수련에서 진행되는 정권 지르기와 발차기 위주로 가볍게 시작되었다. 그 다음으로 유연성 테스트. 두 다리를 벌려 바닥에 배가 닿는지를 보는 것과 한쪽 다리를 머리에 대고 일어설 수 있는지를 보는 두 가지로 구성된다.
봉넘기는 지름이 오센티 정도 되는 나무 봉을 두 손에 잡고 앞과 뒤로 각각 점프해서 뛰어넘는 심사다. 가장 체중이 많이 나가는 임재영 대구 지부장이 횟수를 채우지 못한 다른 심사자들을 제치고 능숙하게 봉을 뛰어넘는 모습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볼차기는 높이가 다른 세 개의 볼을 처음 두 개는 앞 뛰어 올려차기로 마지막 한 개는 뒤돌려 뛰어차기로 볼을 차는 기술로 태권도의 두 다리로 점프해서 차는 기술과는 차별성이 있는 발기술이다.
물구나무서서 걷기는 12m정도의 거리를 왕복으로 물구나무를 선 채로 걸을 수 있는지를 보는 심사다.
그 다음으로 정권단련의 차례가 되었다.
승단 심사자들에게 있어 처음으로 닥치는 난코스는 바로 이 정권단련 100회부터 시작된다.
주먹 쥔 손의 두 마디로만 버틴 채 옆구리에서 올라오는 날렵한 이 자세는 말처럼 쉽지 않다. 특히나 온종일 체력을 소모해야 할 도입부인 만큼 정권단련에서 힘을 소진하는 게 불리하다는 것을 그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허동호 지도사범의 구령이 이어졌다.
“하나, 둘, 셋, 넷……..오십….육십…..”
오십번째였나. 오정열 지부장이 팔굽혀 펴기를 멈추고 정좌를 했다.
김경훈 총사범이 말했다.
“제자들이 보고 있습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십시요.”
난 그 말이 칼과 같다고 생각했다. 나지막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무게가 조용한 도장 안을 가로질렀다.
오정열 지부장은 다시 팔굽혀 펴기를 시작했다. 벌써 정권단련의 횟수는 칠십을 넘어서고 나머지 두 심사자의 허리도 구부러지고 있었다.
구령소리는 계속되고 그들의 자세도 점점 더 뒤틀려 졌다.
“……백”
백번째의 구령이 끝나자 각 심사자들은 정좌한 자세에서 자신의 정권단련 횟수를 말했다.
횟수를 말하는 그들의 표정은 벌써 젖어 있었지만 곧 날카로운 한마디가 젖은 공기를 바싹 말려버렸다.
“그 횟수를 한 게 정확합니까!”
자신있게 정확한 자세로 성공했느냐는 반문이었다.
심사자 중 누군가의 표정에 두려움과 망설임이 스치고 지나갔다.
승단심사의 열기는 달아오르고 있었지만 그 표면에는 김경훈 총사범의 나직한 몇 마디에 살얼음이 깔리고 있었다.
10여분 간의 휴식시간이 있은 뒤 형 심사가 시작되었다.
2단 승단 심사인 만큼 평소에 보기 힘든 형이 많이 선보이는 자리였다. 특히나 역진행으로 진행되는 동작에서는 회전동작이 많아 보기에도 균형잡기가 쉬워 보이지 않았다.
처음 순서는 오정열 지부장으로 그는 차분하게 진행했지만 곧 김경훈 총사범의 지적이 떨어졌다.
“동작이 틀렸습니다. 제대로 배우도록 하세요”
도장의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았다. 형은 완급과 힘의 조절, 리듬에 있다는 날카로운 지적은 그 뒤로도 계속 이어졌다.
형 심사까지 끝나자 어느새 시간은 정오를 가리키고 있었다.
국내 최초의 2단 승단 심사를 보러 온 참관인들의 숫자는 늘어나는 반면 승단심사를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20여명의 유급,유단자들의 표정은 굳어가고 있었다. 웃지만 웃지 않는 그들.
“다음 심사는 오후 1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김경훈 총사범의 외침에 모두는 잠깐의 여유와 허기를 모면하는 듯 했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다.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20인 조수! 20명과 1분씩 쉬지 않고 겨루기.
체력안배, 스태미너, 기술, 판단력, 근성, 극진의 총체를 시험하는 장.
흔히 대련이라고 불리는 이것은 한 명에게 전력투구해서 자신의 에너지를 쏟아부어 지쳐서도 안되며 끝까지 지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적당히 해서도 상대방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다.
서서히 베일에 싸여 있던 20인 조수의 막이 오르려 하고 있었다.
그는 키 175cm정도에 80킬로가 채 안되어 보이는 체구였다. 검은 띠를 매고 초단심사를 거친 지가 꽤 되어 보이는 그의 첫 조수 상대는 아시아 선수권 대회를 준비중인 김재민이었다.
키 180cm에 90킬로 이상 나가는 그는 무게에서 오는 파워가 강점인 대련자.
유연하게 들어가는 상단과 하단 공격이 연이어지고 당연히 우리의 시선은 20인 조수를 하는 오정열의 기술에 기대가 모아졌다.
그러나 그는 가드만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몇 번의 발차기와 정권 찌르기가 있었지만 그것은 초단심사를 통과한 사람의 그것으로 보기가 어려웠다.
20인 조수인 만큼 아직은 시작이니 그가 가볍게 워밍업을 하는 것이라고 처음에는 생각했다.
두번째로 들어간 상대는 부산에서 수련중인 키 175-7cm에 75-80킬로의 홍경석이었다. 커다란 눈망울에 약간은 창백한 얼굴빛의 그의 공격은 여지가 없었다. 앞차기와 돌려차기 기술이 연이어 터지고 기술을 막기에만 급급한 오정열의 모습만이 뚜렷이 들어왔다.
네번째로 들어간 오동아는 서울 사당본부 지도사범으로 평소 인 파이터로 소문난 대련자. 가벼운 표정으로 들어간 그의 첫 공격은 중단 돌려차기였다. 제대로 들어간 그의 다리공격을 시작으로 오정열의 판정패는 계속되었다.
다섯번째로 들어간 상대는 그 날 승단심사의 심사자이며 극진회관 한국지부장인 김경훈 총사범이었다.
사람들 사이에 조용한 동요가 일었다. 평소 김경훈 사범의 수도 5장 얼음격파와 얼음기둥을 발차기로 박살내는 것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오늘의 그 어떤 조수 상대보다도 두렵고 강한 존재임을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정열의 표정이 흔들렸다. 이미 앞 선 네 명의 조수를 통해 앞으로의 조수에서 패색이 짙음을 보였던 그는 김경훈 사범과의 조수에서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키 175~180cm 의 키에 94킬로의 무게가 한치의 흐트러짐없이 그대로 담겨 있는 정확한 공격은 그의 옆구리를 가격했고 고통스런 표정으로 나뒹구는 그의 모습을 보며 도장 안의 우리 모두 또한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에 휩싸였다.
도장 안의 웅성거림은 쓰러진 상대를 보며 다시 일어서서 겨룰 것을 기다리는 김경훈 사범의 싸늘한 기운에 차단이라도 된 듯 기묘한 적막감에 휩싸였다.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는 듯 옆구리를 잡고 괴로워하는 그의 도복 끈이 풀어지고 가슴이 드러났다. 벌써 그의 가슴은 붉게 물들어 있었고 거친 그의 숨소리에 우린 조용히 귀를 기울일 따름이었다.
길게만 느껴지는 수초가 지나고 다시 일어선 그와 김경훈 총사범과의 대련은 시간 초과로 끝이 났다. 그 날의 그 어떤 조수보다도 우릴 숙연함과 공포심에 싸이게 만들었던 순간이었다.
여섯번째 강구민이 들어왔다. 키 176cm에 80킬로 정도의 그는 다리걸기의 명수다. 평소 침착한 공격을 펼치는 그의 기술은 역시나 여지없이 제대로 들어갔고 오정열은 절반 패했다.
아홉번째 허동호 부산동래본부 지도 사범이 들어왔다. 그는 176cm정도의 키에 70킬로 안팎의 몸이지만 올해 개최되었던 제2회 전한국극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대련자다.
김경훈 총사범의 옆에서 심사를 거들던 그는 사범님의 지시에 가벼운 몸짓으로 조수에 임했다. 오정열의 표정에는 이미 싸울 의지가 없어 보였다. 마치 코너에 몰려 코치가 수건을 던져 포기선언이라도 해주길 기다리는 무력한 링 안의 선수 같았다.
허동호의 절도있는 콤비네이션이 들어가고 순간 호선을 그리듯이 그의 오른발이 올라갔다. 정확히 들어간 그의 돌려차기에 오정열이 쓰러졌다.
머리 옆 쪽을 맞고 몸이 돌아가며 쓰러진 그의 호흡소린 들리지 않았지만 비오듯이 쏟아지는 그의 땀에 웬지 내가 힘이 빠져버렸다.
그는 끝없이 맞고만 있었고 밀리기만 했다. 마치 이 곳에 자신은 공격할 수 없다는 패널티라도 주어진 것처럼.
언젠가 내가 그의 가르침 밑에 있던 날이 떠올랐다.
그 날도 수련을 마친 뒤 정좌를 한 자세에서 그는 수련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얘기를 꺼냈다.
“여러분, 수련은 한번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집에 커다란 대야가 있었습니다. 그 대야에 처마에서 한 방울씩 물이 떨어지는 것을 보곤 했었죠. 그런데 어느 겨울인가에 그 대야가 깨져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한 방울 한 방울이 모여 그 대야를 채우고 결국엔 얼어붙어 그 커다란 대야를 깨트리고 만 것입니다. 수련도 이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반복과 꾸준한 수련을 통해서 목표하는 바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모두 이와 같은 마음으로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오쓰”
난 그 날 그의 얘기를 집에 와서 메모를 해 두고 틈나는 대로 되새기곤 했었다. 나처럼 약한 사람도 꼭 강하게 될 수 있을 거란 믿음과 함께.
그런 그가 내 눈앞에서 철저히 무너지고 있었다. 난 그 이후 계속된 그의 남은 조수를 망연히 지켜보았다.
그는 쓰러지고 또 쓰러졌다. 얼굴은 질려 있었고 땀과 물기에 번들거리는 그의 초라한 눈빛은 비굴한 두려움에 싸여 있었다.
왜 당당하지 못한가. 왜 맞서지 않는가. 왜 그가 입으로 내뱉었던 그 많은 가르침의 일부라도 실천하지 못하는가.
난 그 날 오정열의 조수 상대로 들어온 20명 중의 단 한명의 발차기도 완벽히 막아낼 자신은 없다. 그 중의 누군가의 중단 돌려차기를 막고 한동안 운동을 제대로 못한 적도 있었다.
난 약하다. 하지만 나를 가르친 그는 강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20인 조수를 볼 정도라면 그만한 각오와 준비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10번 남았습니다. 한번의 승도 없을 시에는 실격시키겠습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십시오”
김경훈 총사범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수가 거의 끝나갈 무렵 그는 다시 힘을 내어 제대로 된 공격을 펼치는 듯 했지만 이미 그의 조수 결과는 19번의 조수 중 13패 4무 1승 을 기록하고 있었다.
마지막 20번째로 임재영 대구 지부장이 들어왔다.
그는 세계대회 출전 경험이 있는 선수로 강력한 하단공격으로 1승을 거둔 전적이 있는 대련자였다.
이미 지칠대로 지쳐버린 오정열과 이제 막 들어서는 임재영의 조수는 분명 오정열에게 불리했다. 그러나 결국 마지막 러쉬를 기대했던 우리의 눈 앞에서 중량감있는 임재영의 뒤돌려차기에 오정열은 머리를 맞고 뻗어버렸다.
그렇게 그의 20인 조수는 불명예스런 실패로 끝이 나고 말았다.
결과 승 1 무 5 패 14
그는 175cm의 키에 90킬로의 체격으로 강함에 대해 욕심이 있는 자라면 한번쯤 대련해 보고 싶은 실력의 심사자였다.
오정열과의 첫번째 조수를 가볍게 한판승으로 이긴 그의 20인 조수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두번째로 들어온 서울 사당 본부 이전국 지도사범의 소극적인 공격에 우세승을 거둔 그는 세번째로 들어온 서울 홍대지부 곽종세와의 조수에서도 우세승을 거둔다. 긴장을 한 탓인지 실력차가 있는 상대방에게 우선승을 거두겠다는 생각에서인지 무릎 공격을 하는 그의 손이 곽종세의 소매를 잡았다.
“잡지 않도록!”
김경훈 총사범의 단호한 목소리가 퍼졌다.
체력안배에 중점을 둔 듯한 그는 초단 심사때와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전력 투구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것은 그가 20인 조수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네번째로 들어온 김현수는 키 175-77cm의 80킬로 이상 나가는 건장한 청년이었다. 그의 연이은 공격은 임재영의 페이스를 흐리게 만들었고 28살 심사자의 표정은 미세하게 변하고 있었다.
초반부터 힘을 빼지 않겠다는 그의 의지는 계속 공격하라는 김경훈 사범의 지적이 떨어지게 만들었다.
다섯번째 김홍극이 들어왔다. 그는 제2회 전한국극진선수권 대회에서 4등을 한 선수로 키 175-7cm의 90킬로 이상 나가는 무제한급 대련자였다. 둘의 공격은 김홍극의 러쉬로 치열해졌고 그 대련에서 왼쪽 무릎쪽을 부딪혔던 듯 임재영은 자신의 무릎을 만지며 도복을 추스렸다.
여덟번째 홍진학이 들어갔다. 키 175-7cm의 80킬로인 그는 체격에 비해 가벼운 스텝이 특징적인 대련자였다. 빠르고 화려한 공격이 이어졌다. 임재영의 투지를 일깨우는 듯 그의 표정은 심각해졌다.
아홉번째 최배권이 들어왔다. 175-7cm의 85킬로 이상 나가는 그는 평소 소문난 인 파이터로 그와의 대련으로 부상을 입은 선수들이 손에 꼽을 정도다. 예상대로 그의 무차별적인 공격이 이어졌다. 볼살이 흔들릴 정도의 지르기 공격에 임재영은 결국 뒤로 빠지다가 인간링의 경계선에서 사람들 속으로 파묻힐 뻔했다.
“공격하십시오”
김경훈 사범의 원망스런 지시가 임재영 선수의 귓가에 파고 들었다.
열번째로 들어간 오동아는 바깥에서 안으로 휘감아 치는 안돌려차기 공격 중 임재영의 지르기 공격에 턱을 가격받았다. 그 이후로도 지치지 않고 들어오던 오동아는 임재영과 열여덟번째로 다시 만나 치열한 러쉬를 펼쳐 보이게 된다.
열한번째 김태홍이 들어왔다. 단신의 그는 체중이 80-90킬로 나가는 선수로 외견상 짐작하기 힘든 유연성의 소유자였다. 브라질리언 킥과 체중을 믿기 힘든 빠른 스피드 공격이 이어지자 두 사람의 기술이 팽팽히 맞붙었다.
열네번째 대련에 이르자 임재영의 몸은 눈에 띄게 무거워 보였다. 상대방 조수자들의 앞차기와 정권 공격은 그의 도복을 풀어헤쳐 놓았고 굳게 묶여 있던 도복 끈은 어느새 풀어져 대롱거리고 있었다.
열다섯번째 장용한이 들어오자 임재영은 조수 시작에 이어 두 손뼉을 마주치며 스스로에게 파이팅을 외쳤다. 장용한의 돌려차기에 이어 열여섯번째로 들어온 홍경석의 뒤돌려 중단차기도 피한 그는 군중 속에 파묻히는 가운데서도 굴하지 않았다.
새로운 대련자는 충분한 휴식과 에너지로 충전되어 있는 반면 40여분에 달하는 시간 동안 전혀 다른 스타일의 대련자들을 상대하는 일은 젊은 그에게도 벅찬 일이었다.
열여덟번째 오동아와의 재대련이 이어지고 “힘들더라도 손을 써” 라는 김경훈 사범의 외침이 들렸다.
그 때였다. 두 사람의 천번 지르기가 시작된 것은. 그 날을 참관하고 있던 사람들의 “으샤 으샤” 하는 응원에 발맞추듯이 두 사람은 막판 몇 십초동안 난타에 난타를 거듭했다.
임재영의 쇄골을 노린 주먹공격과 오동아의 가슴팍을 노린 주먹 공격은 그 곳의 모든 이들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대련이 끝나자 오동아는 시원섭섭한 웃음을 지었고 임재영은 상대방과의 악수에서 더욱 깊이 고개를 숙였다.
마지막 20번째 이상헌과의 조수가 있었다.
“마지막입니다. 확실히 보여주세요”
자신의 스승인 김경훈 총사범의 목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마치 이게 마지막이란 사실을 이제 알았다는 듯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다르게 질주하듯이 공격을 쏟아부었다.
빗발치는 공격과 난타가 상단과 하단에 터졌고 결국 이상헌은 머리공격을 허용하고 만다.
단 한번의 패도 없이 무승부와 승으로만 장식한 그의 20인 조수를 보고 사람들이 말했다. 이 사람은 30인 조수를 해도 되겠구나 하고.
침착하게 공격을 풀어가고 체력소모를 최소화한 그의 조수에서는 특별한 부상과 동요가 없었다. 주위의 평에 의하면 쉬임없이 자신의 페이스를 잃지 않고 조수를 끝까지 이끌었던 것은 그의 노련함이 외견상 보이는 침착함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랜 수련의 결과로 가능한 것이라는 반응이었다.
임재영은 김경훈 총사범과 20인 조수의 끝을 알리는 뜨거운 악수를 나누었다.
그에겐 전적이 기록된 화이트 보드 앞의 사진 촬영이 남아 있었다. 카메라가 모여들고 촬영을 하려는 찰나 그는 잠시 중지를 외치고 땀에 젖어 이리저리 까치집이 되어 버린 머리칼을 만지작거렸다. 그에겐 오늘을 남기는 중요한 촬영이었지만 너무나 힘겨운 20인 조수 뒤의 소박한 매만짐은 주위 사람들의 웃음을 참지 못하게 만들었다.
숨에 허덕이고 힘겨운 체력 전에 고개를 숙이기 몇 번. 그러나 결코 주저앉지 않았던 그였기에 수줍은 웃음을 얼굴에 띠운 채 붕대에 감긴 두터운 손가락으로 머리칼을 넘기는 모습은 그 날의 참관인 모두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했던 것이다. 그의 머리칼이 정돈되길 기다리던 카메라 후레쉬가 터지고 그는 화이트 보드 앞에서 자신의 무패를 기록했다.
결과 승 4 무 16
그는 175-7cm에 85-90킬로 정도의 체구였다. 35세 정도의 그는 그 날 참석한 심사자 중 제일 연장자였고 가장 치열하게 임했던 사람이었다.
그의 20인 조수는 쉽지 않았다. 패와 무승부를 오가며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길 반복했던 그의 조수는 그 날의 가장 존경스런 심사 과정이기도 했다.
전혀 스타일이 다른 선수들과 맞서며 서로 기술을 교환하고 적응하고 자신의 기술로 승을 얻기까지 바닥에 수 차례 몸을 뉘여야 했던 그.
일곱번째 홍진학이 들어왔을 때 이상헌은 그의 돌려차기의 약점인 커다란 동선을 정확히 파악하고 홍진학의 돌려차기를 오른발과 왼발로 모두 제지하는 기술을 선보여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다.
열번째로 허동호 선수가 들어왔을 때였다. 체력의 상당부분이 소모된 이상헌은 허동호의 빠른 스피드에 실린 중단 돌려차기를 막지 못하고 “억” 소리와 함께 쓰러지고 말았다.
숨을 못 쉬겠는지 몸을 구부리고 헉헉대는 그를 주위에서 눕히고 도복 끈을 풀었다. 허동호는 이상헌이 쓰러지자 정좌자세를 취했지만 김경훈 총사범의 제지로 일어서서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상헌은 상태를 묻는 의료진에게 숨을 깊이 들이쉬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아마 옆구리 쪽에 이상이 온 것 같았다. 난 그가 혹시 심사를 포기하겠다고 말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일어섰고 한판 패를 선고 받은 뒤 뒤이어 열한번째 조수를 계속해 갔다.
열두번째로 들어왔던 박석한은 단신에 60킬로 정도였는데 태권도 유단자인 전적답게 발기술이 강점인 조수자였다. 그러나 이상헌은 원천적으로 박석한의 돌려차기 기술을 제압할 뿐만 아니라 기술을 펼치는 그 순간 상대방을 그대로 메다꽂는 저력을 보여 기술과 파워에 있어 초단 심사 때와는 다른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열네번째 김원식이 들어왔다. 그는 아직 고등학생으로 키 175cm정도에 80킬로 정도였는데 그 또한 저돌적인 공격이 특징인 대련자였다.
그의 러쉬는 전력질주하는 야생마같이 빗발쳤고 앞서의 공격으로 옆구리 쪽에 심각한 데미지를 입은 그의 가슴도 김원식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공격시 조심해서 하십시오”
김경훈 총사범은 상처부위에 직접적인 공격을 하는 김원식에게 주의를 주었다. 정의롭게 대련에 임하라는 의도였다.
열다섯번째 오동아와 대련을 하던 그가 조수 중에 머뭇거렸다. 오동아의 공격에 러쉬를 펼치던 이상헌의 발가락이 틀려 버렸던 것이다. 우리의 시선은 그의 왼쪽 발가락에 집중되었다. 집게 발가락이 정상 위치에서 위로 떠올라 옆 쪽으로 비틀려 있었다. 골절 같았다. 다시 의료진이 왔고 조심스럽게 그의 발가락을 만져보았다.
이상헌은 다시 발가락을 빼서 끼우길 원했다. 그의 조수는 아직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의료진은 그의 요청대로 발가락을 살짝 뺐고 곧이어 “윽” 하는 비명이 새어 나왔다. 그는 다시 일어섰고 조수는 계속되었다.
부상뒤의 그는 20번의 조수 중 마지막 10번의 조수 가운데서 3번의 승을 거두었다. 상대방의 상단 돌려차기를 호쾌하게 제지하는 모습은 그 자리에 모인 많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다. 조수가 뒤로 이어지던 중 그의 발가락이 다시 골절 되었다. 힐끗 자신의 발을 보던 그는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다시 조수에 임했다. 그의 왼쪽 집게 발가락은 뒤틀린 채 서 있었는데 말이다.
열여섯번째 이진욱이 들어왔다. 제2회 전한국극진선수권 대회 때 16강에 진출했던 그는 안정적인 콤비네이션과 맷집이 돋보이는 대련자였다. 두 사람은 접근전으로 공격을 주고받다 이진욱의 하단차기 방어에 주력하던 이상헌이 그의 상단 돌려차기를 허용하여 절반패를 하고 말았다. 이미 이상헌의 체력은 끝을 향해 가고 있는 듯했다.
이상헌의 옆구리 부상은 꽤 치명적이었다. 열일곱번째로 들어왔던 조수자 이케다 신야는 정확히 이상헌의 오른쪽 옆구리를 공격했고 막지 못한 그는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콤비네이션의 특성상 자연스런 공격이기도 했지만 이케다의 얼굴에도 당황한 기색이 흘렀다.
그러나 그 이후로 이상헌은 한 번의 패도 하지 않았다.
문득 흘러내린 도복 끈에 젖혀진 그의 가슴이 눈에 들어왔다. 가시로 된 채찍으로 수도 없이 얻어 맞은 것 같은 붉은 핏자국에 숙연함마저 들었다. 그의 피부가 벗겨지도록 했던 그 많은 공격들이 그의 몸 속에 깊은 피로감을 쌓이게 했을 것임에도 그는 방어하는 데 급급하지도 공격에 주저하지도 않았다.
설령 그가 공격에 쓰러지고 밀렸다 할지라도 그 누구보다 그가 그 곳에서 당당하게 조수에 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었다.
그의 20번의 조수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상단 돌려차기를 저지하는 막고 후려치는 기술이었다. 상대방이 상단공격을 시도하려고 했을 때 정확히 상대방의 발을 어깨나 머리로 걸어 반대쪽 다리를 후려치거나 밀어버려 제압하는 이 기술은 그가 각고의 노력 끝에 연마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 날 그가 거둔 대부분의 승리는 이 기술이 가져다 준 것이었다.
스무번째 김재민과의 무승부를 끝으로 그의 20인 조수가 끝이 났다. 누구보다도 커다란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화이트 보드 앞 자신의 전적 앞에 서서 기록촬영을 하려는 그에게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
“폼 좀 잡아봐~”
순간 풀렸던 그의 눈빛이 상단 가드를 하는 그의 두 주먹과 함께 날카로운 빛을 발했다. 조수자와 머리 숙여 악수를 하고 해맑게 웃던 그의 얼굴이 조수 자세를 취함과 동시에 살의에 가깝게 바꼈던 것이다.
오늘의 20인 조수는 끝이 났지만 그의 인생에 있어 대련은 끝나지 않은 듯 했다. 그의 눈빛은 너무나 명징했고 안광은 선명했다. 그의 부상은 그의 정신까지 지배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그의 투혼에 빛났던 조수가 카메라 후레쉬와 함께 끝이 났음을 알리고 있었다.
결과 승 5 무 10 패 5
오정열 사범은 본인의 조수 이후 몸을 추스리지 못하는 듯 했지만 곧 뒤이어 벌어진 임재영과 이상헌 지부장의 조수에서 코치를 해주며 끝까지 응원을 했다.
오후 3시 승단심사가 끝난 뒤 오정열 사범은 자신을 응원하러 와준 홍대 도장 이하 자신의 밑에서 가르침을 받는 수련생들과 따로 식사를 가졌다. 그 곳에서 그는 자신의 20인 조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는 선수보다 트레이너로서 더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라고.
승단 심사날 서 있기조차 힘들어 보였던 그는 현재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
임재영 지부장은 20인 조수 당일 날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었다. 심사에 대한 부담과 여러가지 생각들에 전날 수면제 2알을 먹고도 긴장감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 그는 사당본부 도장의 소파 밑 바닥에서 하루를 보낸 뒤 조수에 임했었다고 한다. 특별한 부상 없이 조수를 치른 그는 현재 11월 27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될 아시아선수권대회 준비에 매진 중이다.
이상헌 지부장은 승단심사에 대한 부담과 긴장 때문에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다 승단심사 전날 수면제를 복용했다고 한다.
긴장과 피로 속에서 치룬 이 날의 조수 이후 그는 왼쪽 발에 반깁스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조수 당일 다리를 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마치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늦은 밤까지 술자리를 지켰다. 말수가 적었던 그는 다만 음식을 많이 먹지 않았을 뿐이다.
치열하다는 말은 부족했다. 그들이 40분 여분 동안 쓰러지고 주저앉고 그리고 다시 일어서며 대련했던 그 날은 치열하다는 말로 부족했다. 그 하루를 위해 그들이 고민했던 것과 그들이 실천했던 것과 그들이 증명하고자 했던 것은 단 한마디의 단어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무심히 그들의 조수를 지켜보던 내게 무언가 요동치며 거대한 것이 밀려온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조수 심사가 중반에 이를 즈음이었다.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가, 그들이 무엇을 위해 전진하는지. 이 자리에 있는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이 곳에 있는지에 대한 의문.
나는 두려워졌다. 그들이 피하지 않고 전진하고 또다시 전진하는 것을 보며 두려움이 일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진정 원하고 동경하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들이 전진하는 과정에 닥치는 고통과 시련이 어떠한 것인지.
그 길에 내가 있다는 사실에 본능적인 두려움이 일었다.
정강이가 상대방 무릎에 찍힐 때, 정권이 옆구리를 강타할 때, 상단 돌려차기가 내 안면을 찍을 때, 후려걸기에 걸려 도장 바닥에 쓰러질 때, 뒷차기에 옆구리에 금이 갈 때, 흥분한 상대방의 주먹이 나의 턱을 갈길 때, 그리고 내가 강해지기 위해 쉬임없이 시도해야 할 끝없는 발차기와 지르기와 수련들.
이 모든 고통이 상상 속에서 한꺼번에 밀려왔다.
내 심장은 작게 떨리고 있었다. 내가 이 모든 것을 거칠 때 나 또한 그들과 같이 이 자리에 설 수 있을 거란 사실에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입은 웃고 있었다.
“극진의 매력은 치열한 조수가 끝난 뒤 상대방과 굳게 악수하며 서로 웃을 수 있는 데 있어.”
우리의 전진에는 고통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나는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아직도 나는 우리가 왜 전진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내게도 알고 있는 한가지가 있었다.
전진은 해야만 한다는 것을.
그것이 도장 바닥에 누워 씨익 웃을 수 있는 멍투성이 수련생의 자존심이라는 것을.
극진수련과 지도에 있어서 누구나 거쳐야할 관문이 승급심사이다.그것은 선택된 이들만의 것이 아니라,극진공수도를 지도하는 사범 그리고,수련생이라면 누구나포함되는 하나의 관문인 것이며,심사는 그 내용에서 o,x를 따지기 전에 얼마만큼 충실히 심사를 임했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연속대련에서 금방이라도 주저앉고 싶을지라도 마지막 한사람까지 상대에게 흐트러짐을 보여선 안되며,상대에 등을 돌리는 행위는 무도인으로써의 자질과 수치를 모르는 행위이다.특히,우리극진은."바람의 파이터" 영화속에서도 야쿠자패거리들로부터 수치를 당하는 장면있다.
영화를 본 사람 누구나가 느꼈을것이고, 실제 이야기냐며 질문하는 이들도 있다.
심사 채점자로써 이번 승단심사에서 가장 중점을 두었던것이 바로그것이다. 마지막까지 "극진의 정신"을 발휘하는가 였다.
감동이라는것이 무엇인가,한계를 극복해 나가는 그모습 모습들 일것이다.그것은화려한 무대에서의 시합과는 견줄수없다.
특히,이번 승단심사는 극진에서 각자의 활동과 위치가 있는 심사자들 이었다.
일반 수련생들이 아닌,극진을 대표하는 사범들인것이다.
수많은 수련생들의 시선이 있지않았던가.어떻게 그 시선들을 간단히 외면할수 있었던 것인가.
극진은 순수한 무도단체이다.누구나 열심히 한다면 극진을 대표하는 선수가 될수있으며,지도자가 될수있다.
그리고,극진공수도에는 선택된 선수,트레이너는 따로없다.많은 수련과 경험을 통해서 자기만의 기술을 전수하는것이 트레이너이며,그 경험없이는 제되로된 전수가 될수없다라고 생각한다.
단지 강한 수련만이 선수에게 도움된다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 선수에게 맞는 맞춤교육이 가장중요 한것이다.그르려면 먼저 자신이 느껴야만 한다.입으로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몸소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총재님께서 늘 심사때 당부 하셨다는 말씀이 있다.
시합이나,심사에서 상대와 대적할때 패배에 있어서 다음 기회도 있겠지.라는 생각을 버려라.
시합이나 심사 이전에 이것이 마지막 이라는 생각으로 상대와 맞서라 상대는 신이 아니다.그리고,다음을 생각하지마라.남자는 평생 전쟁터 속에서 산다라고 생각해라.그전쟁에서 승리할수있는 남자가 되어라.그리고,반드이 이겨라.남자의 생명은 자존심이다.그자존심을 지키지 못한다면 살아있는 송장과 다를바 없는것이다.
가끔 총제님의 말씀을 떠올리면서 많은 생각을 갖게한다.
실제로 보일수 없다면 그것은 인정받을수 없으며,
인정 받을수 없는것은 신용을 얻지못하며,
신용이 없는 이는 존경 받을수없다.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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