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
올림픽을 통하여 본 태권도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은 재미가 없다,,,, 운용의 방법을 바꾸라는 등 여론의 질타가 강력하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손도 쓰고 격투기 식으로 변화를 요구하는 여론도 있다.
그러나 어찌하랴 무도적 측면에서 본다면, 너무나도 변칙적으로 변질되어 진 것이겠으나, 애초에 무금수인 무술의 기능에서 발의 장점만을 살린 경기로서, 우월성을 자랑하며 발만 쓰는 스포츠로 변화를 유도하고 추진되어 오늘날에 이른 것을,,,
사실 올림픽 경기적 측면을 강조하다 보니 이렇게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나, 기능적으로 이러한 변화와 후유증은 진작부터 유추할 수 있는 과정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경기의 내용에서 기능상의 보강을 원하는 이들이 많으나, 활동 영역을 축소시켜 홍보하고 수련하여 온 마당에 이제 와서 더 첨부하는 것도 남의 것을 모방하는 것으로 비추일 수도 있으니 우스운 꼴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예상되고 있음에도 여기까지 온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 동안 종주국이라는 자부심에만 매달려 무사안일에 젖어 외부의 조언을 귀담아 듣지 않고 연구를 하지 않은 관계자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제부터 더 재미있게 변화하겠다고 하는 책임자의 답변도 있으니, 경기 태권도 부분은 올림픽 종목의 형식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룰이라든가 경기운용의 방법을 바꾸면 새로워질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꼭 알아야 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스포츠나 무도에 공통적이며 근본적으로 해당되는 원론이며 알맹이로서, 바른 교육을 위한 가장 기초적이며 바탕이 되는 역사성과 전통성에 대한 정립이다.
이러한 바탕이 바르게 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젊은이들은 무도와 스포츠에 대한 분별력이 없으며, 이론적으로 성숙되어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경기 태권도와 무도를 위한 태권도는 추구하는 목적이 다르므로 이의 수련체계가 다를 수밖에 없음에도 스포츠와 무도를 동일시 함으로서 무술과 스포츠의 기능에 대한 구별을 못하고 기술 체계에서 헷갈리고, 이를 분별하는 능력이 없으니 안타깝다.
무술이 보급되고 발전 된지 60년이 가까이 되는 지금도 태권도가 가라데에서 나온 것이니 우리 것이 아니라는 등, 또는 가라데는 우리 문화의 전래에서 나온 것이니 우리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등, 이런 식의 시각도 분별력과 이론적인 바탕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다.
한편, 무도로서의 기능에도 변화에 대한 요구가 만만치 않으니, 손을 사용하며 얼굴을 때리고 발로 아래를 차고, 공격적 기능을 추가하면, 그것이 무술로 전환하는 기능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형식을 생각하는 것 같다.
과연 동작이나 바꾸고 기술의 연결이나 하고 위험적 요소와 보기 좋은 장식적 동작이나 첨부한다고 그것이 무술의 형식이며 무도의 수련일까?
이러한 시각은 외형적 포장만 생각하고 그 알맹이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되는데, 왜 알맹이를 생각하지 않고 껍데기만 치장하려 하는지,,,,,,,,이것은 태권도에 대한 역사적 관점, 또는 무술에 대한 원리 이론의 정립이 안 되어 있기 때문이라 생각되며, 오늘날 이와 같이 무도로서의 환경이나 입지나 이론적 체계가 사라진지 오래인 것을 우려와 함께 안타까워하여야 할 것이다.
역사나 전통에 대한 말만 나오면 팔짝 뛰는 것이 태권도 계통이겠으나, 무도를 생각하면 정신과 바탕을 말하지 안하지 않을 수 없고, 정신과 바탕을 생각하면 행동체계의 원리와 이치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기술, 기법이라고 하는 신체적 행위만을 수련코자 한다면, 원리를 모르고 전통을 몰라도 기능을 배우는 데에는 문제는 없다
그러나 원리와 이치를 이해하고 수련하는 것과, 모르고 수련한다는 것의 차이는, 기능상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원리와 이치의 이해와 습득에 따라서 무술을 자기 것으로 만드느냐 아니면 흉내만 내느냐의 엄청난 차이가 있다
바른 동작법을 모르니까.......응용법을 모르고,
민족성이나 사상의 흐름을 모르니까,,,,,,,바른 표현법을 모르고........
결국 무도에 대한 근본 바탕을 모르니까......무술과 스포츠 격투기 등이 혼용이 되면서 심지어는 무술수련이란, 싸움을 위한 운동으로 비춰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성과 정통성에 대한 교육을 바탕으로 삼은 무술교육이 제대로 되어 있어야 근본에 따른 가치관을 세우고 수련방향에 대한 기준과 발전을 도모할 수 있으며, 경기와 무도에 대한 내용의 차이를 구별할 줄 아는 분별력이 생기는 것이다.
태권도의 내용에는 이러한 부분을 채울 여지가 많음에도,,,,,또 반드시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도자들이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진정한 변화를 꾀하고 올바른 수련을 위 하여는 손과 발을 이용한 기능의 향상만을 생각하지 말고 근본적인 이치를 먼저 깨닫는 지혜가 필요한 것으로서, 분야에 대한 깊이와 넓이를 더 할 수 있는 원천적인 부분부터 든든히 하여,,,,,즉, 문화, 사상, 정서 등의 철학이나, 학문에 따른 원리, 이론, 동작 등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는 수련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미래를 위하고 학문을 근본으로 하는 진정한 태권도의 변화라 생각한다.
물론 잘못된 관행이나 수련일지라도 지도자의 양심으로 정성을 다하여 옳은 방침으로 가르친다면 결과가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도의 수련에는 이치에 합당한 원리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수련에서 목적에 대한 결과가 얻어지는 것이니 이를 모른다면 바른 수련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니, 일선지도자들과 무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가장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부분에 허점은 없는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뜻에서 적어 본다.
바른무술 수련회 송 대명 메일: sbohk@daum.net
그러나 어찌하랴 무도적 측면에서 본다면, 너무나도 변칙적으로 변질되어 진 것이겠으나, 애초에 무금수인 무술의 기능에서 발의 장점만을 살린 경기로서, 우월성을 자랑하며 발만 쓰는 스포츠로 변화를 유도하고 추진되어 오늘날에 이른 것을,,,
사실 올림픽 경기적 측면을 강조하다 보니 이렇게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나, 기능적으로 이러한 변화와 후유증은 진작부터 유추할 수 있는 과정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경기의 내용에서 기능상의 보강을 원하는 이들이 많으나, 활동 영역을 축소시켜 홍보하고 수련하여 온 마당에 이제 와서 더 첨부하는 것도 남의 것을 모방하는 것으로 비추일 수도 있으니 우스운 꼴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예상되고 있음에도 여기까지 온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 동안 종주국이라는 자부심에만 매달려 무사안일에 젖어 외부의 조언을 귀담아 듣지 않고 연구를 하지 않은 관계자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제부터 더 재미있게 변화하겠다고 하는 책임자의 답변도 있으니, 경기 태권도 부분은 올림픽 종목의 형식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룰이라든가 경기운용의 방법을 바꾸면 새로워질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꼭 알아야 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스포츠나 무도에 공통적이며 근본적으로 해당되는 원론이며 알맹이로서, 바른 교육을 위한 가장 기초적이며 바탕이 되는 역사성과 전통성에 대한 정립이다.
이러한 바탕이 바르게 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젊은이들은 무도와 스포츠에 대한 분별력이 없으며, 이론적으로 성숙되어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경기 태권도와 무도를 위한 태권도는 추구하는 목적이 다르므로 이의 수련체계가 다를 수밖에 없음에도 스포츠와 무도를 동일시 함으로서 무술과 스포츠의 기능에 대한 구별을 못하고 기술 체계에서 헷갈리고, 이를 분별하는 능력이 없으니 안타깝다.
무술이 보급되고 발전 된지 60년이 가까이 되는 지금도 태권도가 가라데에서 나온 것이니 우리 것이 아니라는 등, 또는 가라데는 우리 문화의 전래에서 나온 것이니 우리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등, 이런 식의 시각도 분별력과 이론적인 바탕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다.
한편, 무도로서의 기능에도 변화에 대한 요구가 만만치 않으니, 손을 사용하며 얼굴을 때리고 발로 아래를 차고, 공격적 기능을 추가하면, 그것이 무술로 전환하는 기능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형식을 생각하는 것 같다.
과연 동작이나 바꾸고 기술의 연결이나 하고 위험적 요소와 보기 좋은 장식적 동작이나 첨부한다고 그것이 무술의 형식이며 무도의 수련일까?
이러한 시각은 외형적 포장만 생각하고 그 알맹이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되는데, 왜 알맹이를 생각하지 않고 껍데기만 치장하려 하는지,,,,,,,,이것은 태권도에 대한 역사적 관점, 또는 무술에 대한 원리 이론의 정립이 안 되어 있기 때문이라 생각되며, 오늘날 이와 같이 무도로서의 환경이나 입지나 이론적 체계가 사라진지 오래인 것을 우려와 함께 안타까워하여야 할 것이다.
역사나 전통에 대한 말만 나오면 팔짝 뛰는 것이 태권도 계통이겠으나, 무도를 생각하면 정신과 바탕을 말하지 안하지 않을 수 없고, 정신과 바탕을 생각하면 행동체계의 원리와 이치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기술, 기법이라고 하는 신체적 행위만을 수련코자 한다면, 원리를 모르고 전통을 몰라도 기능을 배우는 데에는 문제는 없다
그러나 원리와 이치를 이해하고 수련하는 것과, 모르고 수련한다는 것의 차이는, 기능상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원리와 이치의 이해와 습득에 따라서 무술을 자기 것으로 만드느냐 아니면 흉내만 내느냐의 엄청난 차이가 있다
바른 동작법을 모르니까.......응용법을 모르고,
민족성이나 사상의 흐름을 모르니까,,,,,,,바른 표현법을 모르고........
결국 무도에 대한 근본 바탕을 모르니까......무술과 스포츠 격투기 등이 혼용이 되면서 심지어는 무술수련이란, 싸움을 위한 운동으로 비춰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성과 정통성에 대한 교육을 바탕으로 삼은 무술교육이 제대로 되어 있어야 근본에 따른 가치관을 세우고 수련방향에 대한 기준과 발전을 도모할 수 있으며, 경기와 무도에 대한 내용의 차이를 구별할 줄 아는 분별력이 생기는 것이다.
태권도의 내용에는 이러한 부분을 채울 여지가 많음에도,,,,,또 반드시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도자들이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진정한 변화를 꾀하고 올바른 수련을 위 하여는 손과 발을 이용한 기능의 향상만을 생각하지 말고 근본적인 이치를 먼저 깨닫는 지혜가 필요한 것으로서, 분야에 대한 깊이와 넓이를 더 할 수 있는 원천적인 부분부터 든든히 하여,,,,,즉, 문화, 사상, 정서 등의 철학이나, 학문에 따른 원리, 이론, 동작 등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는 수련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미래를 위하고 학문을 근본으로 하는 진정한 태권도의 변화라 생각한다.
물론 잘못된 관행이나 수련일지라도 지도자의 양심으로 정성을 다하여 옳은 방침으로 가르친다면 결과가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도의 수련에는 이치에 합당한 원리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수련에서 목적에 대한 결과가 얻어지는 것이니 이를 모른다면 바른 수련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니, 일선지도자들과 무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가장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부분에 허점은 없는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뜻에서 적어 본다.
바른무술 수련회 송 대명 메일: sbohk@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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