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F태권도, 과격해보이지만 안전합니다

"ITF태권도, 과격해보이지만 안전합니다"
[인터뷰] 세계선수권대회 위해 방한한 ITF 가랄라가 경기위원장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윤형권(goodnews) 기자
출처: 오마이뉴스
▲ ITF 가랄라가(48·아르헨티나·ITF 태권도 8단·남미 ITF 회장) 경기위원장. 먼저 인터뷰를 하고 다른 날 사진 촬영을 했는데 도복을 입고 사진을 찍기 위해 머리를 깎았다고 했다.
ⓒ2004 윤형권
“부에노스아이레스, 바르셀로나, 런던, 모스크바, 도쿄, 뉴욕, 토론토 등 세계 각지에서 오후 5시만 되면 꼬마들이 검은 줄무늬를 한 흰색 옷을 입고 거리로 나선다. 태극기에 경례를 하고는 "차렷! 지금이 무엇하는 시간인지 알지?"하는 사범의 말에 따라 질서 있게 움직인다.
"돌려차기! 반대돌려차기!" 한국말 구령에 맞춰 땀을 흘린다. 한국에서 온 무도, 태권도를 배우는 것이다. 비가 오는 여름이든 눈이 오는 겨울이든 그치지 않고 영원할 것이다. 태권도는 이미 전 세계인이 즐기는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오는 14일부터 7일간 대전무역전시관에서 열리는 ITF(국제태권도연맹) 세계선수권대회를 위해 방한한 경기위원장인 가랄라가(48·ITF 태권도 8단, 남미태권도협회 회장)는 "아르헨티나에서 최홍희 장군으로부터 태권도를 배웠고, 최홍희 장군이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에 왔다"고 했다(가랄라가 위원장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최홍희 ITF 전 총재를 장군이라고 부르는 것이 익숙하다고 한다). 9일 오후 대전에 있는 ITF 대한태권도연맹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한국에는 잘 알려져지지 않은 ITF에 대해 알아 보았다.
태권도는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무도
- 어떤 계기로 ITF 태권도와 만났는가?
"12살 때 친척들을 따라 가라데를 조금 배웠다. 이때 처음 동양 문화를 접하게 되었고, 동양의 무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잉카 문명을 공부하며 동양 문화와의 관련성을 연구했다. 그러던 1980년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된 커다란 사건이 발생했다. 동양의 또 다른 무도인 ‘태권도’ 시범을 보게 된 것이다. 최홍희 장군의 시범단이었는데, 박정수, 박정태, 이기하씨 등이 시범을 보였다. 태권도는 가라데보다 훨씬 부드럽고 유연하면서도 내적으로 굉장한 힘이 있어 보였다. 이 시범은 나에게 충격적인 인상을 주었고 큰 사건이었다. 내 인생을 새로운 길로 안내했다."
이후에 가랄라가 위원장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최홍희 전 총재의 제자인 유 사범으로부터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가라데를 배울 때는 온몸에 힘이 들어가는 동작이 많기 때문에 수련 후에도 몸이 아팠다고 한다. 그러나 태권도는 외형적으로는 매우 부드러우면서도 내면을 강하게 하는 수련이었고, 동양 철학, 그 중에서도 ‘한국의 혼’을 느낄 수 있는 심신일체의 무도’였기 때문에 더욱 매료됐다. 최홍희 전 총재의 시범과 세미나가 있으면 어느 곳이든지 빠지지 않고 열성적으로 참가하며 태권도 수련에 푹 빠졌다고 한다.
발차기 중심의 WTF 주먹도 쓸 수 있는 ITF
ITF와 WTF의 차이
ITF(국제태권도연맹·International Taekwon-Do Federation)와 WTF(세계태권도연맹·World Taekwon-Do Federation)은 세계 태권도의 양대 산맥이다. 현재 한국 태권도는 WTF가 중심을 이루고 있으나 ITF는 전세계 3800만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의 세계적인 단체다.
현재 캐나다 토론토에 본부를 두고 있는 ITF는 1966년 3월 22일 최홍희(2002년 6월 평양에서 타계·향년 84세) 총재가 창립했는데 최초의 태권도 세계기구였다. 그러나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일부 태권도인들과의 마찰로 인해 최홍희 총재는 사범 몇 명을 데리고 캐나다로 망명, 캐나다에 ITF본부를 두게 된다.
이후 1973년 5월 28일 국내에서는 WTF가 발족했고 당시 박정희 정권은 ITF를 친북단체라고 하여 철저하게 배제하게 된다. 그리하여 국내에서는 ITF 태권도는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고 WTF 태권도가 주류를 이루게 됐다.
WTF가 경기에 중점을 둔다면 ITF는 경기보다는 무도에 중점을 두고 있다. ITF는 WTF와 도복도 다르고 WTF의 품세에 해당하는 틀도 율곡틀, 도산틀, 단군틀이라 하여 서로 차이가 있다.
경기 방식도 WTF가 발차기로 몸통 공격을 위주로 한다면 ITF는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할 수도 있다. 몸통 보호대나 얼굴 보호대가 없으며 양손에 글러브를 끼고 두툼한 신발을 신고 경기를 한다. WTF에 비해 ITF의 경기는 매우 격렬하다. / 윤형권
- 고 최홍희 ITF 전 총재는 어떤 분이었나?
"최홍희 장군과의 첫 만남은 1980년 남아메리카 시범 때였다. 그 후 최홍희 장군이 세미나를 할 때면 캐나다든 미국이든 열심히 참여했다. 그래서 좋은 기술을 배우게 되었으며 인간적인 면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많은 무도들인을 만났지만 최홍희 장군은 달랐다. 그분은 키가 작으면서도 강한 카리스마가 있었다. 대단했다. 그분에 매료되어 어느 대회든지 쫓아갔다.
작고하시기 전 10년 동안 개인적으로 친분이 깊었다. 지금 최홍희 장군은 3800만 ITF 태권도인들에게는 살아 있는 전설이고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무도인이다. 그분은 매우 정열적이었고 저돌적이었으며 온몸이 에너지로 가득 차 있었다. 항상 무사로서의 위엄을 지니고 있었고, ITF를 하나의 군대로 생각하시며 사범들을 아주 똑똑한 장교로 키우려고 했다. 태권도를 배우는 자리에서는 늘 근엄하고 빈틈이 없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사랑을 많이 나누어 주셨다.
최홍희 장군은 우리들에게 정치나 사상에 대해 한번도 말하지 않았다. 늘 태권도에 대해서만 말했다. 제대로 된 사범 양성을 하는 데 집중하고 고민했다. 북한에 태권도를 보급한 것에 대해 한국 내에서는 말들이 많지만 그분은 북한에 태권도를 보급하는 것을 회원국 한 곳이 늘어나는 것으로 생각했다. 남미나 유럽의 한 국가에 태권도를 보급한 것처럼 북한도 그렇게 생각했다. 어느 나라든지 공정하고 공평한 애정을 갖고 지원했으며 오로지 ‘태권도’라는 세 글자만을 생각하셨다. 종교, 이념, 정치, 인종, 국경을 초월한 분이셨다.
아르헨티나에만 수련생 20만명
▲ 가랄라가 위원장은 대학에서 잉카 문명에 대해 전공하고 동양철학, 특히 한국의 역사와 철학에 대해 관심이 많다.
ⓒ2004 윤형권
- 현재 남미의 태권도 현황은 어떤가?
"아르헨티나에서만 ITF 소속의 수련생이 20만명이고 WTF(세계태권도연맹) 소속 수련생이 7만여명인 것으로 알고 있다. 태권도장, 문화센터, 경찰, 군대, 보안경호회사, 일반회사 동호회 등에서 태권도를 배우고 있으며 특히 60개의 초등학교에서는 교과과목으로 ITF 태권도를 배우고 있다. 그 밖에 칠레, 페루, 브라질 등 수많은 사람들이 남미 전역에서 ITF를 통해 태권도를 배우고 있다. ITF의 태권도가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한국에서 상상하는 것보다 크다."
- ITF는 WTF를 어떻게 생각하나?
"남미를 비롯한 전 세계 나라 곳곳에 WTF도 많이 보급되어 있다. 태권도라는 동일한 명칭을 사용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같은 조직으로 보기도 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 ITF는 최홍희 장군이 한국에 계실 때 헌신적인 노력과 희생으로 이루어낸 무도 조직이다.
WTF도 한국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조직으로 알고 있다. 한국의 일부 사람들과 언론에서는 WTF와 ITF가 서로 경쟁 관계이며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하는데, 한국을 떠난 해외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ITF는 무도 태권도이고 WTF는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두 조직의 태권도는 경기 규칙은 물론 복장도 다르고 추구하는 바도 다르다."
- WTF가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특히 해외에서의 양적 성장은 대단했다. ITF도 올림픽 종목이 되기를 희망하는가?
"ITF 태권도는 무도다. Martial Arts인 것이다. ITF는 올림픽으로 가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 오로지 무도로서 그 정신과 가치 그리고 철학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 가랄라가 ITF 경기위원장
ⓒ2004 윤형권
- 한국에서는 ITF에 대해 잘 모른다. ITF=북한태권도라거나 좀 과격하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대로 1980년부터 최홍희 장군이 북한에 태권도를 보급했지만, 북한 ITF는 ITF라는 조직 중 하나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최근 ITF에서는 북한의 ITF를 사고단체로 분류하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 북한의 장웅 IOC 위원이 ITF를 이끌고 있으며, 북한이 ITF의 대표 국가라고 하는데, 사실과 전혀 다른 이야기다. 장웅 IOC위원은 농구를 한 체육인이다.
하나의 국가가 ITF를 지배하려고 하면 안 된다. 또, 북한은 그럴 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다. 최홍희 장군은 남한에서 육군 장군으로 계셨었고, 남한에 있을 때 태권도를 창시했다. ITF 태권도인들과 조직을 이끄는 각 나라의 지도자들은 이점을 깊이 생각하고 있다. 이 문제는 많은 시간을 갖고 말해야 하기 때문에 오늘은 여기서 다 말할 수 없다. 다음 기회에 하도록 하든지, ITF의 다른 인사에게 듣도록 하자.
ITF의 태권도가 과격하다는 말을 하는데 그런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무도는 생사를 가르는 전쟁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ITF 태권도는 과격하지 않을 뿐더러 남녀노소가 배우기에 좋은 안전한 무도이다. ITF 경기 규칙에는 KO가 없다. 정식으로 가격하여 신체적으로 타격을 입혀 쓰러뜨리지 않는다. 시범 경기는 극적 효과를 노리기 때문에 과격하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과격하게 보일 수도 있다."
모든 태권도 교육은 한국말로
- ITF는 태권도를 오로지 무도로서 교육하고 있다고 하는데, 무도로서의 정신과 철학적 가치를 어떻게 전달하고 있나?
"ITF는 모든 태권도 교육을 한국말로 한다. 또, 전 세계 태권도장에 태극기가 걸려 있다. 수련 전에 태극기를 향해 예의를 표시한다. 왜냐면 ITF의 태권도는 최홍희 장군이 창시했고 그는 한국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무도로서의 태권도를 배우기 위해서 한국이라는 영감을 느끼고자 한국말로 배우는 것이다. 경기 규칙, 승단심사도 모두 한국말로 하며 전 세계의 ITF 태권도인들은 이러한 것을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 가랄라가 ITF 경기위원장이 입고 있었던 T셔츠. 아르헨티나에서 제작한 T셔츠와 도복 등에는 이름과 태권도라는 글귀가 모두 한글로 씌어있다.
ⓒ2004 윤형권
ITF에서는 4세부터 90세 된 노인에 이르기까지 나이와 성별 구분하지 않고 골고루 배운다. 경기 방식으로는 틀(WTF의 품세에 해당하나 전혀 다르다), 맞서기(겨루기), 특기(자랑거리), 위력(벽돌 격파 등) 등 형태로 보면 4개 부문으로 나눈다. ITF는 격투기나 복싱처럼 신체적으로 타격을 입혀 상대방을 완벽하게 쓰러뜨리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으로 그친다. 기술과 기(氣), 그리고 몸의 빠르기와 바른 자세, 수련한 정도를 나타내는 격파와 특기 등을 통해 승부를 구별한다."
- 21세기에 ITF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최홍희 장군이 있던 20세기에는 무도로서 강한 태권도를 추구했다. 그러나 최중화 총재가 ITF를 이끌면서부터는 예술적인 무도를 추구한다. 자유롭고 다양한 사상을 바탕으로 한 태권도, 외형적인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내면적으로 아름다운 태권도인을 추구한다. ITF는 태권도라는 무도를 통해 갈등과 전쟁이 끊이지 않는 세계 곳곳에서 화해와 이해를 이루어 내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전 세계 120여개 국가의 3800만여 ITF 태권도인들이 하나같이 인류의 평화와 공동 번영을 원하고 있으며, 그럴 만한 능력과 신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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