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아시지 못하시면 헛소리좀 하지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수박도의 기원 즉 유래를 말하자면 어떤 특정한 시대를 지정해서 말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손과 발이 유일한 무기로 사용되었던 아주 먼 옛날이 그 기원이라 말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수박도라는 무도가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도수공권이기 때문에 생존투쟁을 위해 자신의 신체를 단련해온 인류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시기를 지나서 수박도는 여러 분파 여러 갈래로 퍼져나가 다양한 형태의 무도 및 무술로 발전했습니다.
*** 이러한 까닭에 수박도(수박기)는 어떠한 특정한 나라의 것 즉, 우리만의 것도 중국, 일본 등 유사한 무도가 발달한 나라의 것도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수박도 뿐 아니라 많은 타 무도가 한 뿌리에서 갈라져 서로간에 영향을 주고 받으며 발전해온 것을 의미 합니다. ***
다시말하면 전통무예라는 의미가 특정 지역이나 특정한 사람들이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무예를 가리키기보다는 얼마나 우리의 선조들과 우리 자신에 의해 우리의 정서와 환경 그리고 우리의 체질에 맞게 변화 발전시켰는지가 전통무예라는 표현의 적합의 여부를 결정짓는 구분 기준이 아닐까 합니다.
무술의 기원을 말할때 중국을 빼어 놓을 수는 없습니다.
중국 무술의 유파를 보면
초기에 소림사 중심의 외가류(남파)와, 무당산파(장산봉) 중심의 내가(북파)류로 나뉘어 졌고,
그후에 소림과 무당의 단점을 조정하여 만들어진 관외류, 즉 강유파가 주류를 형성하며 다양한 유파로 발전 전승되어 왔습니다. (수박도의 유파론은 추후에 상세히 서술하기로 한다)
이 와중에서 수박도는 초기에 지리적 여건상 내가류에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합니다.
때문에 수박도의 형은 부드러움 가운데 힘이 넘쳐 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오끼나와 공수도(가라데)는 남파(외가류)에 영향을 많이 받아 형과 동작이 빠르고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영향을 받으며 전승되어온 수박도는 조선조 제 14대왕 선조때부터 제 22대 왕인 정조때까지 약 260년동안 세차례에 걸처 보완하여 완성발간된 무예도보통지에 기록됨으로써 그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무예도보통지라는 서적은 처음에는 선조가 훈국랑 한교에게 명하여 6기가 편찬되었고, 제 2차에는 선조이후 정조때 까지 사이에 12기가 보충되어 전법 6기와 후의 12기가 합하여 18기가 기록된 무도서적으로 그후 정조때 다시 6기가 보완되어 총 24기가 기록된 무예도보통지가 완성 발간되어 현재에 이르게 된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무예 18반 또는 18기라는 명칭도 여기서 기인된 것이며, 권법보편은 제2차 12기 보충편찬 때 무예도보통지에 기록된 것입니다.
무예도보통지는 지금으로부터 약 500년 전에 발간된 이후 약 260년동안 보충강화되어 현존하는 것은 약 160년전에 완성 발간된 것입니다.
필자가 이처럼 무예도보통지에 큰 비중을 두는 이유는 이 책이 이제껏 전승되어온 여러부류의 무도를 선조들이 우리의 정서와 환경 우리의 체질에 맞게 변화 발전 체계화된 결정판이기 때문입니다.
수박도는 이 한국 고유의 무예서적인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를 바탕으로 고 황기관장님께서 복원하시고 체계화하신 민족전통의 무예입니다.
혹자는 무예도 보통지에 기록된 권법보는 한국 전통무예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인사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중국 명나라때 척계광이라는 사람이 발간한 기효신서를 모방한 것이기 때문이라하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 근시안적이고 협소한 사고로, 심하게 평하자면 단순한 비판을 위한 자기 개인의 인기를 위한 논설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기효신서가 무엇을 토대로 하여 출간된 것인가를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효신서는 물론 중국권법을 기본으로하여 출간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중국 명나라 권법은 어디에서 유래된 것인가?
우리나라는 지금으로부터 약 1600년전인 고구려에 이미 수박이 왕성하였습니다.
그 증거로 당시의 고분 악안제 3호분을 비롯하여 그외의 고적에서도 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특이한 것은 이 고분에서 발견된 수박도가 무예도 보통지 권법보 첫째 동작도와 우연히도 유사합니다.
명나라는 고구려보다 1000년이나 후에 생긴 나라이며 그렇다면 명나라의 척계광은 오히려 우리나라의 수박도를 모방하였다는 것이 타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효신서에 기록된 권법도가 척계광이 창조한 것도 아니고 고대로부터 전래되어 온것을 토대로 하여 발표한 것이 명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선조들이 노력하여 성취한 금자탑인 우리의 전통무예를 모방이라고 일축한다면 적어도 역사적인 배경을 제시하며 논리적인 뒷바침을 가지고 부인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다만 손과 발이 유일한 무기로 사용되었던 아주 먼 옛날이 그 기원이라 말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수박도라는 무도가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도수공권이기 때문에 생존투쟁을 위해 자신의 신체를 단련해온 인류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시기를 지나서 수박도는 여러 분파 여러 갈래로 퍼져나가 다양한 형태의 무도 및 무술로 발전했습니다.
*** 이러한 까닭에 수박도(수박기)는 어떠한 특정한 나라의 것 즉, 우리만의 것도 중국, 일본 등 유사한 무도가 발달한 나라의 것도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수박도 뿐 아니라 많은 타 무도가 한 뿌리에서 갈라져 서로간에 영향을 주고 받으며 발전해온 것을 의미 합니다. ***
다시말하면 전통무예라는 의미가 특정 지역이나 특정한 사람들이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무예를 가리키기보다는 얼마나 우리의 선조들과 우리 자신에 의해 우리의 정서와 환경 그리고 우리의 체질에 맞게 변화 발전시켰는지가 전통무예라는 표현의 적합의 여부를 결정짓는 구분 기준이 아닐까 합니다.
무술의 기원을 말할때 중국을 빼어 놓을 수는 없습니다.
중국 무술의 유파를 보면
초기에 소림사 중심의 외가류(남파)와, 무당산파(장산봉) 중심의 내가(북파)류로 나뉘어 졌고,
그후에 소림과 무당의 단점을 조정하여 만들어진 관외류, 즉 강유파가 주류를 형성하며 다양한 유파로 발전 전승되어 왔습니다. (수박도의 유파론은 추후에 상세히 서술하기로 한다)
이 와중에서 수박도는 초기에 지리적 여건상 내가류에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합니다.
때문에 수박도의 형은 부드러움 가운데 힘이 넘쳐 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오끼나와 공수도(가라데)는 남파(외가류)에 영향을 많이 받아 형과 동작이 빠르고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영향을 받으며 전승되어온 수박도는 조선조 제 14대왕 선조때부터 제 22대 왕인 정조때까지 약 260년동안 세차례에 걸처 보완하여 완성발간된 무예도보통지에 기록됨으로써 그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무예도보통지라는 서적은 처음에는 선조가 훈국랑 한교에게 명하여 6기가 편찬되었고, 제 2차에는 선조이후 정조때 까지 사이에 12기가 보충되어 전법 6기와 후의 12기가 합하여 18기가 기록된 무도서적으로 그후 정조때 다시 6기가 보완되어 총 24기가 기록된 무예도보통지가 완성 발간되어 현재에 이르게 된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무예 18반 또는 18기라는 명칭도 여기서 기인된 것이며, 권법보편은 제2차 12기 보충편찬 때 무예도보통지에 기록된 것입니다.
무예도보통지는 지금으로부터 약 500년 전에 발간된 이후 약 260년동안 보충강화되어 현존하는 것은 약 160년전에 완성 발간된 것입니다.
필자가 이처럼 무예도보통지에 큰 비중을 두는 이유는 이 책이 이제껏 전승되어온 여러부류의 무도를 선조들이 우리의 정서와 환경 우리의 체질에 맞게 변화 발전 체계화된 결정판이기 때문입니다.
수박도는 이 한국 고유의 무예서적인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를 바탕으로 고 황기관장님께서 복원하시고 체계화하신 민족전통의 무예입니다.
혹자는 무예도 보통지에 기록된 권법보는 한국 전통무예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인사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중국 명나라때 척계광이라는 사람이 발간한 기효신서를 모방한 것이기 때문이라하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 근시안적이고 협소한 사고로, 심하게 평하자면 단순한 비판을 위한 자기 개인의 인기를 위한 논설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기효신서가 무엇을 토대로 하여 출간된 것인가를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효신서는 물론 중국권법을 기본으로하여 출간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중국 명나라 권법은 어디에서 유래된 것인가?
우리나라는 지금으로부터 약 1600년전인 고구려에 이미 수박이 왕성하였습니다.
그 증거로 당시의 고분 악안제 3호분을 비롯하여 그외의 고적에서도 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특이한 것은 이 고분에서 발견된 수박도가 무예도 보통지 권법보 첫째 동작도와 우연히도 유사합니다.
명나라는 고구려보다 1000년이나 후에 생긴 나라이며 그렇다면 명나라의 척계광은 오히려 우리나라의 수박도를 모방하였다는 것이 타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효신서에 기록된 권법도가 척계광이 창조한 것도 아니고 고대로부터 전래되어 온것을 토대로 하여 발표한 것이 명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선조들이 노력하여 성취한 금자탑인 우리의 전통무예를 모방이라고 일축한다면 적어도 역사적인 배경을 제시하며 논리적인 뒷바침을 가지고 부인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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