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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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에 의한 반론은 측은 합니다.

님 제가 생떼를 쓴다고 하셨는데,님 전 역사적인 사실과 기록을 근거로 말하는 학설입니다.
적어도 님이 제 주장에 반론을 제기 할려면 이성적인 고증으로 반론을 제기 하셔야 합니다.
현재는 하나의 문화가 다른나라,사람의 노력으로 발전을 하였는데,그 노력을 취하는 것처럼
말씀을 하시는데 전 그렇지 않습니다. 역사의 사실은 밝혀야 합니다.
바르지 못한 역사관의 폐해는 심각 합니다.
일제시절 일본의 "테라우찌"총독의 조선시민지 정책이 뭔줄 압니까?
조선인들의 자랑스런 역사는 감추고 말살하라!
조선인들의 부정적인 역사관과 가치관을 갖게하라!
그리고 늘상 부정적인 피해의식을 갖게하라!
이러한 총독의 방침아래 우리의 역사는 왜곡되고,우리의 고대사를 알수 있는 사서(史書)50만권은
일제가 불질러 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그중에 중요 사서는 일본 황실박물관에 보관케하고
아직도 돌려주지 않고 있습니다.
님은 일본인들이 열성적으로 하여 가라데가 발전을 한것을 시샘이라도 하는것처럼 말씀하시는데,
님 아직도 일본 가라데의 원류인 오키나와인들은 일본내에서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일본의 번주에게 지배당하고 나서 칼을 소지 못하게 조치를 당한후 맨손이 강하다는 일념아래
가라데가 발전한 겁니다. 역사적인 패턴으로 봐서 오키나와의 가라데가 조선의 영향을 받았다는
추론,학설은 큰 무리가 따르지 않습니다. 일본인들이 발굴한 오키나와의 유적을 보아도
일본인들은 오키나와의 문화가 조선의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것을 일본내에서 발표하였고
또 조선왕조실록을 보아도 유구인들의 조선문화의 동경으로 인해 유구인의 사신은 조선의 "불교대장경"
을 얻어가기 원한다는 상소를 여러차례 한 결과 조선의 세조는 승낙을 해 보내주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또 최부의 "표해록;조선중기 최부라는 학자의 표류기"에도 일본인들에게는 적대적인 감정을 저자가
드러내나 유구인 사신을 만나서는 문화에 관한 토론등과 같은 아주 친근했다는 기록을 볼수 있습니다.
유구는 조선에 와서 진기한 해산물을 공물로 조공을 했고 유는 그 답으로 조선으로 부터 불경등의
문화적인 것을 얻어가서 그들의 문화형성에 조선의 문화가 기여한것은 부인못할 사실입니다.
그리고 전 유구인들이 조선인들의 후예라고 한 적이 없소!
오키나와의 무덤에서 보이는 유골은 한반도에서 도래한 이들이라고 한것은 일본학자의 주장이오!
적어도 문화적인 측면에서 조선에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것을 말할려는 겁니다.
전 역사적인 관계에 대해서 논하는 것이지 그들의 무술에 대한 시기함은 없습니다.
님이 적어도 제 주장에 대해 현명한 반론은 고증에 의한 반론이 합리적 입니다.
인신공격적인 반론은 공허합니다. 님은 역사의식이 크게 결여되었다고 보여 집니다.
기록이나,유물로 보여지는 사실에 대한 근거에 의한 주장은 누구나에게 정당한 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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