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도의 가라데 한국 상황을 알고 싶습니다.
1940년대와는 무관한 건데요!
가라데의 한자표기는 唐手입니다.
그 가라(唐)는 지나(일명:중국)를 표기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혹자는 중국이라 우기는 이들도 있지만 옛부터 일본은 한국을 "가라"라고 불러 왔습니다.
조선의 명신 신숙주의 "해동제국기"에도 일인들은 그 당시 조선인들에게 "唐人"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막부시절 일본의 상인 거리로 유명한 "唐人町"은 중국인들이 만든것이 아니라 조선인 "이종환"이
만들었다고 막부시절 그 후손이 상부에 보고한 문헌이 지금까지 전한다고 합니다.
그외 일본의 신사중에 "韓國神社"도 있는데 이 "韓國"의 "韓"을 "가라"라고 발음 합니다.
합해서 "가라쿠니"신사 보통 한국을 부를땐 "강꼬쿠"인데 이 신사는 "가라"로 발음합니다.
그외 다른 지명,도 "唐"이란 지명을 표기하고 유래는 중국이 아닌 "한국"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가라데의 고향 "오키나와"는 과거"琉球國"으로 현재의 일본과는 별개의 독립 왕조 였습니다.
고려때부터 교류를 했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시대 사신을 보내 신하국으로서 조공을 하겠다 했습니다.
이들의 불교 대장경에 대한 강한 희망을 드러내자 세조는 이들에게 대장경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들의 동종도 고고학으로 발굴되었는데 조선을 가리키는 문구가 너무도 이채 롭습니다.
"선진 문물의 나라 조선의 것을 중심으로"라는 명문이 씌여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글귀에 대해 일본 학계는 국외적으론 침묵을 지킨다고 하더군요!
그외 고려의 기와가 출토 되었고,고려의 청자 파편도 출토 되었고..,
오키나와 출신의 한 일본인은 이러한 고고학적 증거외에 조선의 홍길동이 유구에 왔었다 라는
학설을 제기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오키나와는 한국과 옛적에 인연이 많았던 겁니다.
이 일본인의 주장을 무시하기엔 너무도 많은 전설과 유물로 인해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저는 중국보다는 고려,조선의 영향으로 가라데가 형성이 되었다고 봅니다.
오늘날의 중국 시원설은 지배자 일인들의 조선에 대한 배척 감정을 지울길 없는 감정의 결과라 봅니다.
혹자는 소위 수박,택견등의 전파가 오키나와에 홍길동과도 같은 무리등에 의한 전파되었을 것이다
라는 설에 대해 택견같은 무예는 해방후 생긴 명칭이고 그 러한 무예의 명칭에 대한 흔적조차 없거늘
턱 없이 무모한 설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조때 "재물보"에서는 옛부터 수박,변,각,무
등을 "택견","탁견"이라 불러 왔다고 했습니다. 또 단종실록에는 "속악유희" 편에서 "탁견의 조"
라는 제목에서 무예에 대한 설명을 합니다 이처럼 택견,탁견의 전거는 단종때도 나타 납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고찰 없이 기록이 없다 밀어 붙이는건 무책임한 태도 입니다.
이러한 전거가 기록된 시기가 홍길동 활동시기와 비슷한 시기 입니다.
앞으로 많은 연구가 이뤄져야 겠지만 전 가라데의 시원은 조선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가라데의 한자표기는 唐手입니다.
그 가라(唐)는 지나(일명:중국)를 표기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혹자는 중국이라 우기는 이들도 있지만 옛부터 일본은 한국을 "가라"라고 불러 왔습니다.
조선의 명신 신숙주의 "해동제국기"에도 일인들은 그 당시 조선인들에게 "唐人"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막부시절 일본의 상인 거리로 유명한 "唐人町"은 중국인들이 만든것이 아니라 조선인 "이종환"이
만들었다고 막부시절 그 후손이 상부에 보고한 문헌이 지금까지 전한다고 합니다.
그외 일본의 신사중에 "韓國神社"도 있는데 이 "韓國"의 "韓"을 "가라"라고 발음 합니다.
합해서 "가라쿠니"신사 보통 한국을 부를땐 "강꼬쿠"인데 이 신사는 "가라"로 발음합니다.
그외 다른 지명,도 "唐"이란 지명을 표기하고 유래는 중국이 아닌 "한국"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가라데의 고향 "오키나와"는 과거"琉球國"으로 현재의 일본과는 별개의 독립 왕조 였습니다.
고려때부터 교류를 했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시대 사신을 보내 신하국으로서 조공을 하겠다 했습니다.
이들의 불교 대장경에 대한 강한 희망을 드러내자 세조는 이들에게 대장경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들의 동종도 고고학으로 발굴되었는데 조선을 가리키는 문구가 너무도 이채 롭습니다.
"선진 문물의 나라 조선의 것을 중심으로"라는 명문이 씌여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글귀에 대해 일본 학계는 국외적으론 침묵을 지킨다고 하더군요!
그외 고려의 기와가 출토 되었고,고려의 청자 파편도 출토 되었고..,
오키나와 출신의 한 일본인은 이러한 고고학적 증거외에 조선의 홍길동이 유구에 왔었다 라는
학설을 제기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오키나와는 한국과 옛적에 인연이 많았던 겁니다.
이 일본인의 주장을 무시하기엔 너무도 많은 전설과 유물로 인해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저는 중국보다는 고려,조선의 영향으로 가라데가 형성이 되었다고 봅니다.
오늘날의 중국 시원설은 지배자 일인들의 조선에 대한 배척 감정을 지울길 없는 감정의 결과라 봅니다.
혹자는 소위 수박,택견등의 전파가 오키나와에 홍길동과도 같은 무리등에 의한 전파되었을 것이다
라는 설에 대해 택견같은 무예는 해방후 생긴 명칭이고 그 러한 무예의 명칭에 대한 흔적조차 없거늘
턱 없이 무모한 설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조때 "재물보"에서는 옛부터 수박,변,각,무
등을 "택견","탁견"이라 불러 왔다고 했습니다. 또 단종실록에는 "속악유희" 편에서 "탁견의 조"
라는 제목에서 무예에 대한 설명을 합니다 이처럼 택견,탁견의 전거는 단종때도 나타 납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고찰 없이 기록이 없다 밀어 붙이는건 무책임한 태도 입니다.
이러한 전거가 기록된 시기가 홍길동 활동시기와 비슷한 시기 입니다.
앞으로 많은 연구가 이뤄져야 겠지만 전 가라데의 시원은 조선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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