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에서 본 유구와 조선의 관계
조선왕조 세조 실록에 전하는 유구국과의 긴밀한 외교관계를 말하는 기사이다.
일본과의 외교관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문화적인 교류도 하였다.
어떤 혹자가 말하는 문화적인 문물의 증거도 찾기 힘들고,개연성은 있겠다고 하는데
세계적으로 그 문헌에 대한 정확성으로 정평이 난 조선실록에 일반교역과 다른 문물에
대한 교역으로 조선과 유구는 각별한 우호성이 있었다고 한다.
임란시에도 의리를 중시해 참전치 아니 한 유구! 1800년대에 일본에 병합되 독립국으로의
삶이 단절되었지만 그들은 언젠가는 독립이 될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한다.
일본인은 단일의 민족을 말하고 표방하지만 일본내에서도 아직도 유구인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고 한다. 과거 일본 번주의 침입에 의해 무력탄압을 받는 와중에 맨손은 무학인
"가라데"를 연마했다고 한다. 일본인의 관점에선 시원이 모호 하다는 "가라데"
그러나 오키나와 현지에서의 영웅 장전대주,홍가라왕(홍가왕)이 전한게 줄다리기,
용왕굿,택견 이라 합니다.
필자는 전적으로 이들에 의해 "가라데"의 시원이 되었다고 봅니다.
유구국(琉球國)의 대장경 청구 및 하사기록
◆ 세조 027 08/01/16(신해) / 하직하고 돌아가는 유구국 사신에게 답서를 주고 홍윤성에게 전송케 하다.
유구국(琉球國)의 사신 보수고(普須古) 등이 하직하고 돌아가니, 예조 판서 홍윤성(洪允成)에게 명하여 한강에서 전송하게 하였다. 유구 국왕에게 답하는 글에 이르기를,
“바닷길이 멀고 막혔는데, 멀리까지 수고하면서 와서 문안을 드리고 물건을 바치어 예의를 삼가 갖추니, 기쁨과 위로가 진실로 많도다. 본국의 표류(漂流)한 인구(人口)들이 왕의 속(贖)하라는 명령에 의하여 송환되어 처자와 같이 모여 살게 되었으니, 더욱 후의에 감사한다. 이 앞서 여러 번 일본의 바다 상인을 통하여 인구(人口)를 찾아 돌려보냈는데, 당시에 온 인편에 부탁하여 감사한 뜻을 조금 전하였으나 도달하였는지의 여부는 알지 못한다. 지금 찾는 《대장경(大藏經)》 1부(部)와 변변치 못한 토물(土物)을 온 사신에게 나아가 부치니, 잘 수령(受領)하면 천만 다행하겠다.
앵무새와 공작을 후일에 오는 사신을 통하여 보내 와서 여망에 부응하면 더욱 왕의 교린을 미덥게 하는 뜻을 보겠도다.
◆ 세조 026 07/12/02(무진) / 유구국의 중산왕이 사자를 보내어 토물을 바치고 표류한 인구를 데리고 오다.
유구국(琉球國)의 중산왕(中山王)이 보수고(普須古)·채경(蔡璟) 등을 보내어 와서 토싱물을 바치고, 본국에 표류한 인구(人口)를 거느리고 왔는데. 그 문서에는 이러하였다.
“제후로 봉하여 각각 한 방면을 진압하고, 뜻을 이어받아 술사(術事)하며, 함께 만재(萬載)에 전하고 결호(結好)의 법전으로 교린하였으니, 고금에 모두 그러하였으므로 간절히 본국에 밝힙니다. 장경(莊經)이 희소하므로 지난번에 사람을 보내어 구하여 청하였는데, 성상께서 내려 주시니 감격하여 나라에 이르러 깨우침을 열어 주고, 크게 상서로운 서광을 내리어 주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이어서 천계선사(天界禪寺)를 건립하였으나, 경전이 없다고 말하므로, 삼가 정사(正使) 보수고(寶須古)·부사(副使) 채경(蔡璟) 등을 보내어 삼가 국서와 예물을 가지고 앞에 나아가 구하여 청하니, 전과 같이 대장경(大藏經) 전부를 나라에 이르게 하시어 영구히 나라를 진무(鎭撫)하게 하여 주시면 실로 아주 다행하겠습니다. 일절의 표류 인구(漂流人口)에 대한 일은 귀국에 알린 지가 해가 바뀌었고, 표류한 인구는 계속하여 왜선(倭船)에 태워 보냈으나, 아직 저들이 도착하였는지의 사실 여부를 모르고 있습니다. 금년에 다시 귀국의 강회(姜廻) 등 8명이 타군(他郡)에 표류하였으므로, 이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먼저 가서 속회(贖回)하도록 하되, 전례에 의하여 존휼(存恤)하는 외에 즉시 사람과 배를 보내어 호송해서 되돌아가게 하소서.”
이제 예물(禮物)을 열어보니, 석(錫)이 2천 근(斤), 소목(蘇木) 2천 근, 단향(檀香) 16백 근, 정향(丁香) 1백 근, 목향(木香) 1백 근, 상아(象牙) 4조(條), 서각(犀角) 6개(箇), 천축주(天竺酒) 1정(?), 호초(胡椒) 2백 근이었다.
◆ 세조 027 08/02/28(계사) / 유구국 사신 선위사 이계손의 문견 사목(聞見事目).
유구국(琉球國) 사신(使臣)의 선위사(宣慰使) 이계손(李繼孫)이 문견 사목(聞見事目)을 올리기를 올린내뇽중에는,
.....정사(正使)·부사(副使)가 포구에 이르러, 국왕에게 보내시는 예물을 열어 보고 말하기를, ‘이것은 모두 우리 나라에서 희귀하고 정교하며 화려한 물건입니다. 또 정성껏 싼 포장이 견고하니, 이로 인하여 전하께서 교린(交隣)에 정성과 공경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대장경(大藏經)은 우리 전하께서 지성으로 구하는 물건인데, 전부 보내주시니, 우리 전하께서 반드시 신들을 보내어 사은 할 것입니다. 우리 정사(正使)·부사(副使)·압물(押物) 중에서 반드시 다시 올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일본과의 외교관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문화적인 교류도 하였다.
어떤 혹자가 말하는 문화적인 문물의 증거도 찾기 힘들고,개연성은 있겠다고 하는데
세계적으로 그 문헌에 대한 정확성으로 정평이 난 조선실록에 일반교역과 다른 문물에
대한 교역으로 조선과 유구는 각별한 우호성이 있었다고 한다.
임란시에도 의리를 중시해 참전치 아니 한 유구! 1800년대에 일본에 병합되 독립국으로의
삶이 단절되었지만 그들은 언젠가는 독립이 될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한다.
일본인은 단일의 민족을 말하고 표방하지만 일본내에서도 아직도 유구인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고 한다. 과거 일본 번주의 침입에 의해 무력탄압을 받는 와중에 맨손은 무학인
"가라데"를 연마했다고 한다. 일본인의 관점에선 시원이 모호 하다는 "가라데"
그러나 오키나와 현지에서의 영웅 장전대주,홍가라왕(홍가왕)이 전한게 줄다리기,
용왕굿,택견 이라 합니다.
필자는 전적으로 이들에 의해 "가라데"의 시원이 되었다고 봅니다.
유구국(琉球國)의 대장경 청구 및 하사기록
◆ 세조 027 08/01/16(신해) / 하직하고 돌아가는 유구국 사신에게 답서를 주고 홍윤성에게 전송케 하다.
유구국(琉球國)의 사신 보수고(普須古) 등이 하직하고 돌아가니, 예조 판서 홍윤성(洪允成)에게 명하여 한강에서 전송하게 하였다. 유구 국왕에게 답하는 글에 이르기를,
“바닷길이 멀고 막혔는데, 멀리까지 수고하면서 와서 문안을 드리고 물건을 바치어 예의를 삼가 갖추니, 기쁨과 위로가 진실로 많도다. 본국의 표류(漂流)한 인구(人口)들이 왕의 속(贖)하라는 명령에 의하여 송환되어 처자와 같이 모여 살게 되었으니, 더욱 후의에 감사한다. 이 앞서 여러 번 일본의 바다 상인을 통하여 인구(人口)를 찾아 돌려보냈는데, 당시에 온 인편에 부탁하여 감사한 뜻을 조금 전하였으나 도달하였는지의 여부는 알지 못한다. 지금 찾는 《대장경(大藏經)》 1부(部)와 변변치 못한 토물(土物)을 온 사신에게 나아가 부치니, 잘 수령(受領)하면 천만 다행하겠다.
앵무새와 공작을 후일에 오는 사신을 통하여 보내 와서 여망에 부응하면 더욱 왕의 교린을 미덥게 하는 뜻을 보겠도다.
◆ 세조 026 07/12/02(무진) / 유구국의 중산왕이 사자를 보내어 토물을 바치고 표류한 인구를 데리고 오다.
유구국(琉球國)의 중산왕(中山王)이 보수고(普須古)·채경(蔡璟) 등을 보내어 와서 토싱물을 바치고, 본국에 표류한 인구(人口)를 거느리고 왔는데. 그 문서에는 이러하였다.
“제후로 봉하여 각각 한 방면을 진압하고, 뜻을 이어받아 술사(術事)하며, 함께 만재(萬載)에 전하고 결호(結好)의 법전으로 교린하였으니, 고금에 모두 그러하였으므로 간절히 본국에 밝힙니다. 장경(莊經)이 희소하므로 지난번에 사람을 보내어 구하여 청하였는데, 성상께서 내려 주시니 감격하여 나라에 이르러 깨우침을 열어 주고, 크게 상서로운 서광을 내리어 주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이어서 천계선사(天界禪寺)를 건립하였으나, 경전이 없다고 말하므로, 삼가 정사(正使) 보수고(寶須古)·부사(副使) 채경(蔡璟) 등을 보내어 삼가 국서와 예물을 가지고 앞에 나아가 구하여 청하니, 전과 같이 대장경(大藏經) 전부를 나라에 이르게 하시어 영구히 나라를 진무(鎭撫)하게 하여 주시면 실로 아주 다행하겠습니다. 일절의 표류 인구(漂流人口)에 대한 일은 귀국에 알린 지가 해가 바뀌었고, 표류한 인구는 계속하여 왜선(倭船)에 태워 보냈으나, 아직 저들이 도착하였는지의 사실 여부를 모르고 있습니다. 금년에 다시 귀국의 강회(姜廻) 등 8명이 타군(他郡)에 표류하였으므로, 이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먼저 가서 속회(贖回)하도록 하되, 전례에 의하여 존휼(存恤)하는 외에 즉시 사람과 배를 보내어 호송해서 되돌아가게 하소서.”
이제 예물(禮物)을 열어보니, 석(錫)이 2천 근(斤), 소목(蘇木) 2천 근, 단향(檀香) 16백 근, 정향(丁香) 1백 근, 목향(木香) 1백 근, 상아(象牙) 4조(條), 서각(犀角) 6개(箇), 천축주(天竺酒) 1정(?), 호초(胡椒) 2백 근이었다.
◆ 세조 027 08/02/28(계사) / 유구국 사신 선위사 이계손의 문견 사목(聞見事目).
유구국(琉球國) 사신(使臣)의 선위사(宣慰使) 이계손(李繼孫)이 문견 사목(聞見事目)을 올리기를 올린내뇽중에는,
.....정사(正使)·부사(副使)가 포구에 이르러, 국왕에게 보내시는 예물을 열어 보고 말하기를, ‘이것은 모두 우리 나라에서 희귀하고 정교하며 화려한 물건입니다. 또 정성껏 싼 포장이 견고하니, 이로 인하여 전하께서 교린(交隣)에 정성과 공경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대장경(大藏經)은 우리 전하께서 지성으로 구하는 물건인데, 전부 보내주시니, 우리 전하께서 반드시 신들을 보내어 사은 할 것입니다. 우리 정사(正使)·부사(副使)·압물(押物) 중에서 반드시 다시 올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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