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진가라데 싸이트에 소개된 가라데의 기원 - 재 반박
저는 학인님께서 16814번 글에서 쓰신 가라데의 언어학적, 고고학적,역사적고찰, 그리고 16829번글
극진가라데 사이트에 소개된 가라데의 기원에 대한 비판을 흥미있게 읽었습니다.
특히 "가라" 의 한자표기를 당(唐)으로 표기하기 이전에 신라,가야를 뜻하는 한(韓맞지요?)이라
표기했다는 것은 제가 처음 안 사실로 놀랍군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 역시 한국사람이고 가라데가 한국에서 건너간 우리의 무술이라면 춤을 추겠습니다.
가라데가 태동한 오키나와와 한국과의 관계... 분명히 오키나와는 한국과 무역관계에 있었고 조선조에도
화약의 원료가 된 유황, 활의 재료인 수우각(水牛角=물소뿔)등을 류쿠국에서 수입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오키나와에도 한국인이 집단 거주했다는 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한국에도 3포에 왜인들이
거주하고 있었을 정도이니까요.
그러나 양국간에 문물의 교류가 있었다고 해서 그것이 무술의 전수와 자동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은
역시 하나의 가능성, 추론일 뿐입니다. 서양 펜싱의 원류가 실크로드를 따라 전해진 중국의 무당검법
이라고 한다면 누구나 이것을 비약으로 볼 겁니다.
무술의 전수가 일어났더라도 그것이 오키나와데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가 하는 것도 현재로서는
규명하기가 어렵습니다. 한국인이 건너 가 살았다는 것과 그들에게 무술을 가르쳤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현재 가라데의 원류라는 가설간에는 많은 간극이 존재합니다. 그랬을 거라는 추론이지 실제로 누가
누구에게 라는 구체성이 없으니까요.
극진가라데 사이트에 소개된 글은 그 쪽 게시판에 많은 분들이 기고한 글입니다. 저 역시 그 사이트에
글을 올린 사람의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귀하는 그 글들을 "무지", "식민사관", 또는 "왜곡"으로 표현
하시면서 통탄, 탄식, 우려하고 있습니다.
극진가라데 사이트에 제가 올린 글들은 "언제, 누가, 무엇을,누구에게 가르쳤다"는 구체적인 문헌이 있는
것만 언급했습니다. 그래서 가라데의 기원을 오오시마 필기(大島筆記)에 기록된 공상군(公相君)이
류쿠에 내도한 1756년으로 잡는 것이 가장 "믿을 만 하다"고 한 것입니다. 그로부터 분명한 전수계보가
내려 오고 특히 19세기에 생존한 사람들은 사진까지 존재하니까요.
그 전에 한 반도에서 건너 갔건, 중국에서 건너 갔건, 아니면 자기들이 싸움의 경험으로 스스로 창안했건 ...
어떤 무술이 건너갔다는 데 대해 귀하가 강조하시는 "문헌적"근거가 없으며 설령 어떤 무술이 전해졌다고
쳐도 그것과 현재 가라데와의 관계도 불분명한 것입니다. 한반도에 살던 구석기인이 현재 한반도 인종과
직접적인 관련이 불명확한 것처럼.
그러나 저는 그 사실을 부정하진 않았습니다. 가설은 가능하지만 입증하기에는 근거가 모자란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류쿠는 그 지리적 영향으로 한국,일본, 남중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과의
중계무역의 기지였습니다. 한국하고만 교류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의 주 거래선은
남부 중국이었고 한국은 그들과의 무역에 수세적이었고 교류의 양도 그들이 남중국과 한 것만큼 빈번하지
못했습니다.
한국과의 교류를 근거로 가라데의 원류를 한국으로 본다면 중국권법, 태국의 무에타이, 일본의 고류 유술,
필리핀의 키노 무타이, 미얀마의 띠네가 가라데의 원류라는 가설도 역시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가라"의 한자표기에 대해서... 가라가 원래 우리나라를 뜻하는 한(韓)을 읽는 소리였다는 것은 저로서는
새로운 발견이고 무척 반갑습니다. 저는 가라데가 한국무술이라는 조그마한 자료라도 무척 반가우니까요.
중국을 뜻하는 대표 한자가 진(秦), 한(漢)이라는 것은 동의합니다. 진의 중국발음 "친"에서 차이나가
나왔고 한(漢) 역시 중국 글자를 한자(漢字)라고 하고 중국 약을 한약(漢藥)이라고 부르기도 하듯
그것이 특정 왕조가 아니라 중국을 총칭하는 대표 의미로 쓰여진 예입니다. 반면 명(明)이나 원(元)은
그런 예가 없지요.
하지만 특정 왕조가 중국을 통칭하는 사례는 한과 진 이외도 발견됩니다. 귀하는 중국을 통칭하는
뜻으로 당(唐)이 쓰여 졌을 리 없으며 따라서 당수도 그럴리 없다고 주장하시지만 이건 어떻습니까?
귀하는 중국 약을 당약(唐藥) 이라 부르는 것을 못 보셨습니까? 중국 상품을 조선에서는 당화(唐貨)라
불렀고 중국에서 나는 올이 가는 실(絲)을 당사(唐絲)라 불렀습니다. 중국요리를 청(淸)요리라 불렀으며
케세이 퍼시픽이라는 항공사도 있습니다. 거란(契丹)을 뜻하는 Kitai 에서 Cathay로 바뀐 것이지요.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한(漢)과 진(秦)이외에 당(唐), 청(淸), 거란도 중국을 뜻하는 말로 쓰이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며 가라데를 중국손이라는 의미로 "당수(唐手)"라고 표기하는 것이 하등 이상할 게
없으며 무지의 소산으로 쓴 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귀하는 식민사관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실 일본과 관련된 글을 쓸 때는 하나의 꼬리표처럼
따라 다니는 것이 식민 사관입니다. 그러므로 참 글쓰기가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식민사관은
일제 강점기 직전 일본에서 정한론이 대두될 무렵에 형성된 역사 인식이라는 것을 주목하셨으면 합니다.
그 전 도쿠가와 막부시절 조선은 일본에 발달된 한자 문화권의 문물을 전해주는 고마운 존재라는 것이
일본인들의 인식이었고 조선통신사는 칙사처럼 융숭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 시절 쓰여진 자료가
식민사관에 입각하고 있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가라데는 극진 가라데 사이트에 제가 쓴 것 처럼 그 기원이 매우 모호한 무술입니다. 제가 그 사이트에
쓴 글들은 문헌적 기록이 있는 것에 국한 하여 그 시작을 1756년으로 본 것임을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그 이전에 그 조그마한 섬에서 어떤 일이 일어 났는지 ... 그것과 한반도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가, 없는가, 혹 있다면 그것이 어떻게 실증되는가.... 냉철히 비판하고 연구할 사항이지 어떤
주장에 대해 통탄, 탄식, 우려할 일은 아닙니다. 식민사관은 위험하지만 역사적 팩트(fact)의 규명에
민족주의 역시 위험합니다.
극진가라데 사이트에 소개된 가라데의 기원에 대한 비판을 흥미있게 읽었습니다.
특히 "가라" 의 한자표기를 당(唐)으로 표기하기 이전에 신라,가야를 뜻하는 한(韓맞지요?)이라
표기했다는 것은 제가 처음 안 사실로 놀랍군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 역시 한국사람이고 가라데가 한국에서 건너간 우리의 무술이라면 춤을 추겠습니다.
가라데가 태동한 오키나와와 한국과의 관계... 분명히 오키나와는 한국과 무역관계에 있었고 조선조에도
화약의 원료가 된 유황, 활의 재료인 수우각(水牛角=물소뿔)등을 류쿠국에서 수입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오키나와에도 한국인이 집단 거주했다는 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한국에도 3포에 왜인들이
거주하고 있었을 정도이니까요.
그러나 양국간에 문물의 교류가 있었다고 해서 그것이 무술의 전수와 자동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은
역시 하나의 가능성, 추론일 뿐입니다. 서양 펜싱의 원류가 실크로드를 따라 전해진 중국의 무당검법
이라고 한다면 누구나 이것을 비약으로 볼 겁니다.
무술의 전수가 일어났더라도 그것이 오키나와데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가 하는 것도 현재로서는
규명하기가 어렵습니다. 한국인이 건너 가 살았다는 것과 그들에게 무술을 가르쳤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현재 가라데의 원류라는 가설간에는 많은 간극이 존재합니다. 그랬을 거라는 추론이지 실제로 누가
누구에게 라는 구체성이 없으니까요.
극진가라데 사이트에 소개된 글은 그 쪽 게시판에 많은 분들이 기고한 글입니다. 저 역시 그 사이트에
글을 올린 사람의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귀하는 그 글들을 "무지", "식민사관", 또는 "왜곡"으로 표현
하시면서 통탄, 탄식, 우려하고 있습니다.
극진가라데 사이트에 제가 올린 글들은 "언제, 누가, 무엇을,누구에게 가르쳤다"는 구체적인 문헌이 있는
것만 언급했습니다. 그래서 가라데의 기원을 오오시마 필기(大島筆記)에 기록된 공상군(公相君)이
류쿠에 내도한 1756년으로 잡는 것이 가장 "믿을 만 하다"고 한 것입니다. 그로부터 분명한 전수계보가
내려 오고 특히 19세기에 생존한 사람들은 사진까지 존재하니까요.
그 전에 한 반도에서 건너 갔건, 중국에서 건너 갔건, 아니면 자기들이 싸움의 경험으로 스스로 창안했건 ...
어떤 무술이 건너갔다는 데 대해 귀하가 강조하시는 "문헌적"근거가 없으며 설령 어떤 무술이 전해졌다고
쳐도 그것과 현재 가라데와의 관계도 불분명한 것입니다. 한반도에 살던 구석기인이 현재 한반도 인종과
직접적인 관련이 불명확한 것처럼.
그러나 저는 그 사실을 부정하진 않았습니다. 가설은 가능하지만 입증하기에는 근거가 모자란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류쿠는 그 지리적 영향으로 한국,일본, 남중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과의
중계무역의 기지였습니다. 한국하고만 교류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의 주 거래선은
남부 중국이었고 한국은 그들과의 무역에 수세적이었고 교류의 양도 그들이 남중국과 한 것만큼 빈번하지
못했습니다.
한국과의 교류를 근거로 가라데의 원류를 한국으로 본다면 중국권법, 태국의 무에타이, 일본의 고류 유술,
필리핀의 키노 무타이, 미얀마의 띠네가 가라데의 원류라는 가설도 역시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가라"의 한자표기에 대해서... 가라가 원래 우리나라를 뜻하는 한(韓)을 읽는 소리였다는 것은 저로서는
새로운 발견이고 무척 반갑습니다. 저는 가라데가 한국무술이라는 조그마한 자료라도 무척 반가우니까요.
중국을 뜻하는 대표 한자가 진(秦), 한(漢)이라는 것은 동의합니다. 진의 중국발음 "친"에서 차이나가
나왔고 한(漢) 역시 중국 글자를 한자(漢字)라고 하고 중국 약을 한약(漢藥)이라고 부르기도 하듯
그것이 특정 왕조가 아니라 중국을 총칭하는 대표 의미로 쓰여진 예입니다. 반면 명(明)이나 원(元)은
그런 예가 없지요.
하지만 특정 왕조가 중국을 통칭하는 사례는 한과 진 이외도 발견됩니다. 귀하는 중국을 통칭하는
뜻으로 당(唐)이 쓰여 졌을 리 없으며 따라서 당수도 그럴리 없다고 주장하시지만 이건 어떻습니까?
귀하는 중국 약을 당약(唐藥) 이라 부르는 것을 못 보셨습니까? 중국 상품을 조선에서는 당화(唐貨)라
불렀고 중국에서 나는 올이 가는 실(絲)을 당사(唐絲)라 불렀습니다. 중국요리를 청(淸)요리라 불렀으며
케세이 퍼시픽이라는 항공사도 있습니다. 거란(契丹)을 뜻하는 Kitai 에서 Cathay로 바뀐 것이지요.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한(漢)과 진(秦)이외에 당(唐), 청(淸), 거란도 중국을 뜻하는 말로 쓰이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며 가라데를 중국손이라는 의미로 "당수(唐手)"라고 표기하는 것이 하등 이상할 게
없으며 무지의 소산으로 쓴 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귀하는 식민사관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실 일본과 관련된 글을 쓸 때는 하나의 꼬리표처럼
따라 다니는 것이 식민 사관입니다. 그러므로 참 글쓰기가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식민사관은
일제 강점기 직전 일본에서 정한론이 대두될 무렵에 형성된 역사 인식이라는 것을 주목하셨으면 합니다.
그 전 도쿠가와 막부시절 조선은 일본에 발달된 한자 문화권의 문물을 전해주는 고마운 존재라는 것이
일본인들의 인식이었고 조선통신사는 칙사처럼 융숭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 시절 쓰여진 자료가
식민사관에 입각하고 있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가라데는 극진 가라데 사이트에 제가 쓴 것 처럼 그 기원이 매우 모호한 무술입니다. 제가 그 사이트에
쓴 글들은 문헌적 기록이 있는 것에 국한 하여 그 시작을 1756년으로 본 것임을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그 이전에 그 조그마한 섬에서 어떤 일이 일어 났는지 ... 그것과 한반도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가, 없는가, 혹 있다면 그것이 어떻게 실증되는가.... 냉철히 비판하고 연구할 사항이지 어떤
주장에 대해 통탄, 탄식, 우려할 일은 아닙니다. 식민사관은 위험하지만 역사적 팩트(fact)의 규명에
민족주의 역시 위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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