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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한국 전쟁 전의 흐름

11, 한국 전쟁 전의 흐름

1947.3.22일 - 서울, 부산, 광주, 인천, 대구, 익산(이리) 등 주요 산업도시 노동자 약20만 명 테러 배격, 노동조합 자유보장, 토지개혁, 미. 소 공위 속개를 요구 24시간 총파업 단행. 이에 호응 16만 농민, 8만 여명 시민투쟁.

1947년 봄 - 미국은 내전시대의 막을 올리는 중대한 정책 전환 단행. “트루만 독트린“ 소련에 대한 적극적인 봉쇄정책 개시.
1947.5.21일 - 제2차 미소 공동위원회가 서울 덕수궁에서 재개.

1947년 - 미. 소간의 세계 쟁패(爭覇)를 위한 치열한 전쟁이 시작.
장개석 국민당 정부 대만으로 쫓겨나고 대신 공산당이 지도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의 10월에 모습이 드러날 때 미국은 중국대륙의 발판으로 소련을 봉쇄함과 동시 아시아 전역 패권 확립하고자했던 꿈이 무산. 미국의 생각은 중국은 대국이나 낙후된 농업국이고 군사력 역시 보잘 것 없다고 보았다.

1947.6.17일-평양에서 남조선 전력공급 협정 체결.
1945.8.15-1947.5.31일까지-1947.12.17일까지 송전 전력의 대가를 완납. 그러나 미군정은 23%만 지불.

1947.6.23일-반탁 테러 사건.
1947.7.27일-임시정부 수립 촉진 인민대회.
1947.9월-미국은 유엔이란 간판을 앞세우다.

1947.9.26일-소련 대표는 정치위원 토론석상에서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모든 외국점령군이 1948년 초에 동시에 철수함으로서 한국인들이 그들 자신의 정부를 아무런 외부 개입 없이 수립할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의 대안을 제시했다. 이런 소련의 제안에 미국과 사대주의자 승만 리 일파는 상당히 당황했다.

그러면서 이런 제안에 대해서 미국 대표 덜레스는 한국인들에게 혼란이 와 내란을 의미한다며 자유와 이익을 효과적으로 부여하는 대신에 또다시 앞으로 다년간 혼란 속에 몰아넣게 될 것이다, 라고 했다.

1947.11.2일-김구(1876-1949)선생님 지도 하에 있는 한국독립당은 미군정에 대해 비교적 온건한 입장을 취했던 정당이 상당수 포함된, 근민, 민동, 사민, 신진, 신한, 국민, 민독, 천도교, 보국, 한민, 민 한독 당 대표들을 초청 간담회 개최 석상에서 미. 소 양군의 철병 촉진. 민족 자주 활동. 남북 정당대표 회담. 남조선 군정반대. 남북총선거 준비 결성에 관해 공동 모색을 하자고 했다.

1947.12.18일-1948.5.20일까지 송전 전력 대가 지불 무(無), 협정 체결 무(無).

1948.1.6일-유엔 한국임시위원단 미국 밀영으로 한국 땅에 오다. 서울 등 주요 도시의 노동자들 일제히 파업 단행 임시 위원단 입국 거부.

1948.2.7일-구국투쟁. 사태가 이렇게 발전되자. 미국은 유엔 소총회 개최하여 남한 만의 단독 선거 실시 결의안을 채택하도록 종용함으로써 본래의 의도를 솔직히 드러내고야 말았다.

미국의 계획은 한국을 영구분단으로 몰고 가며 궁극적으로 세계평화 위협. 스웨덴, 노르웨이 미국에 반대 의견. 남한만의 단독 선거를 강행하고자 시도에 카나다, 호주, 반대표. 콜롬비아, 덴마크, 에집트, 스웨덴, 노르웨이, 사우디 가까운 11개국 기권. 그럼에도 미국의 단독선거 실시 계획은 기어코 한국 민중의 분노를 폭발했다.

그리하여 반대 운동이 전국적으로 200만이 넘게 확산이 되기 시작. 이로 인해 광폭한 탄압으로 100여 명이 무참히 학살되고 8,500여 명이 검거, 투옥 희생 강요받았다.

야만인 양키에 의해서 이렇게 죽고 옥에 들어갔다. 내 나라 내 땅에서 말이다. 그리하여 국토는 양단되고 민족이 찢기어 나갈 절대 절명의 위기가 박두. 이제 남한 땅을 영원히 자신의 손에 넣고자 하는 미국의 목표가 들통이 났다.

1948.3.12일 - 김구, 김규식, 조소앙, 김창숙, 조완구, 홍명회, 조성환 등 애국인사 7인은 공동성명으로 남한 단독선거에 대한 반대의사 표명. 이 때 정치 노선이 완벽히 다른 백범 김구 선생님의 말씀을 꼼꼼히 보자 왜놈 장교의 심장에 칼로 꼽고 그 피를 빨아 먹었던 하늘이 낸 절세의 애국자 백범 선생님의 말씀을 좀 보자.

1948년2월8일-마음속의 38선이 무너지고 땅 위의 38선도 철폐될 수 있다. 자기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하여 조국의 분열을 연장시키는 것은 전 민족을 사갱에 넣는 극악극흉의 위험한 일이다.

1948년3월12일-우리는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가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정도냐 사도냐가 생명이라는 것을 명기하여야 하는 것이다.

1948년4-38선 때문에 우리에게는 통일과 독립이 없고 자주와 민주도 없다. 어찌 그뿐이랴. 대중에 기아가 있고 가정에 이산이 있고 동족의 상잔까지 있게 되는 것이다.

1948년6월7일-통일이 없으면 독립이 있을 수 없고 독립이 없이는 우리는 살 수 없다.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려면 우리의 유일한 무기는 민족단결뿐이다.

1948년11월26일-이 날 김구 선생님의 기자회견에서 지금 우리의 삶이 일제시대만도 못하다고 (97,8,12,한겨레).

나의 소원 정치이념-어느 한 학설의 표준이로 하여서 국민의 사상을 속박하는 것은, 어느 한 종교를 국교로 정하여서 국민의 신앙을 강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옳지 아니한 일이다.

나의 소원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주장하되, 그것은 저 짐승들과 같이 저마다 제 배를 채우기에 쓰는 자유가 아니오, 제 가족을, 제 이웃을, 제 국민을 잘 살게 하기에 쓰이는 자유다.

백범일지 - 백범이라 함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천하다는 백정과 무식하다는 범부까지도 모두 적어도 나만한 애국심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하자는 내 원을 표하는 것이다. 나는 일찍 우리 독립정부의 문지기가 되기를 원하였거니와 그것은 우리나라가 독립국만 되면 나는 그 나라의 가장 미천한 자가 되어도 좋다는 뜻이다.

그 뿐인가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가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길 바란다고 말씀 하셨다. 또 황소 백 마리가 와서 나를 끌어 당겨도 우리 동포끼리(외세 간섭 없이) 담판하여 통일독립을 쟁취 코 져 하는 나의 결심은 한 치도 무너뜨릴 수는 없다고 말씀 하셨다. 그 후 -
05.03-05.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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