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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진 가라데 사이트를 방문하고..,

극진 가라데 사이트에서 또 한번의 그들의 무지에 탄식성의 한숨이 나왔다.
원래는 오키나와에서 시작된 가라데는 명나라 진원빈에게 배우고 사꾸가와가 중국에서 당수를
배워서 전했다. 그리하여 형성된 무도가 가라데이다.
명칭은 당수도(가라데)였는데 제국주의 시절에 오키나와의 전통무술을 일본화하는 시점에서
적국(중국;당)의 명칭을 사용할수 없어 철학적인 체계를 붙여 불교의 공 사상을 곁들여 "공수도"
라 칭했다는게 현존의 역사이다.
이는 지극히 식민지 시대 식민사학의 관점에서 오키나와와 한국의 과거 국제적인 관계를 지극히
무시하고 그 국제적인 관계의 문헌적,고고학적,언어학적인 변천을 무시한채 식민지 시대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차용을 한 무지의 역사고찰에 통탄을 금할길이 없다.
이는 일본이 1800년대에 오키나와를 병합하고 그들의 역사조차 인정치 아니하고
일본이 싫어하는 한반도 관련 사항마저 부정케하는 역사의 왜곡을 개탄한다.
과거 중국은 국제적으로 자신을 내세우고 밖에서 그들을 가리킬때 통상적으로 "차이나"
를 많이 썼다.차이나 란 말의 어원은 시황제의 진나라 이다. 그외 또 보편적인 중국의 명칭은
한수 한 자이다. 즉 유방이 세운 한나라다. 보통 중국 자신을 내세우는 말로는 진,한을 많이쓴다.
이외 하화족이란 말도 많이쓴다. 그러나 극진 가라데 사이트에서는 중국 명나라에서 자신을 가리킬때
당이란 말을 썼다는 억지 논리를 펴고 있다. 이 나라 당 자를 가라로 발음하는 일본인들!
언어 표기의 변천과정에서 나라 당 자는 한국을 나타내는 글자였던 것이라는 일본인 학자들의
주장을 어떻게 반박할 것인가?
현대에 와서 우리나라는 수 많은 나라와 교역을 하고 있다.
그 교역을 하면서 그 나라의 상품만 들어 오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 나라의 문화도 들어온다. 그 문화라는 것에 음악,예술,미술,사상,무술,병법 등등의 것이
같이 따려나가 다른 문화권에 공헌을 하는게 상식적인 이치이다.
과거 고려,조선에 조공무역을 한 류쿠국이 고려와 조선에서 상품만 교역을 했겠는가?
고려,조선의 문물과 사상과 무도등도 딸려 갔을 것이다.
오늘날 고려기와 조선식의 동종등이 이를 증언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잊혀진 무술,고려 무인 이의민,두경승이 잊혀진 무술 "수박희"의 달인 이었다고 한다.
그 수박희는 적어도 조선중기 까지 전해졌다고 한다.
필자는 적어도 이러한 무술이 문물과 더불어 같이 전혀졌을거라 굳게 믿는다.
또 오늘날 간신히 전해지고 많은 보급이 이루어진 각저희(오늘날 택견)또한 문물과 함께
류쿠국에 전해졌을 거라 믿는다.
이토록 믿는 이유는 문헌적,언어학적,고고학적으로도 한국과 류쿠국 오키나와의 관계를
깊게 알수 있지만 오키나와에서 민속으로 전해지는 씨름은 우리와 거의 같은 삿바를 잡는 씨름의
형태가 전해져 온다.또 전라도 지방에서 민속으로 행사를 자주하는 "고싸움"놀이도
오키나와에서 민속으로 전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위의 경우 처럼 문물난 전해진 것이 아니고 민속으로 화한 무예(고싸움,씨름)
까지도 전해지는 것을 보면 오키나와에서 발생한 당수도! 필자의 생각으로는 한수도라 했을 것이다.
나라 당 자나 한나라 한 자나 읽을때는 똑같은 "가라"라고 읽힌다.
한국신사인 가라쿠니신사가 일제시절 제국사관의 영향으로 매울 신 자를 넣은 가라쿠니 신사가
된것처럼..,고구려,신라,백제,가야의 통칭인 한나라 한 자를 쓰고 "가라" 라고 읽던것이
식민사관의 영향으로 나라 당 자를 쓰고 가라 라고 통칭한 역사적인 실례가 다수 있다는 표기상의
변천을 말하는 일본인 학자의 주장은 뭐라 할 것인가?
오늘날의 역사학적인 오류를 시정하지 아니하고 이대로 시간이 흘러간다면 앞으로 미래에서
가중되는 혼란을 어찌 할라고 왜곡된 식민사학을 답습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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