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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데의 언어학,고고학,역사학적인 고찰

가라데! 진정으로 명나라와 오키나와의 토착무술로 인해 생긴 무술인가?
풍문으로는 태권도의 영향으로 가라데가 형성되었다는 해괴한 주장도 있다.
먼저 가라데라는 무술의 역사적,언어학적 관점에서 다루어 져야 한다고 본다.
무도계에서 아직도 한번도 역사적,언어학적인 관점에서 가라데를 다룬적이 없었다.
이는 먼가 진실을 감추고 있는 듯한 인상을 지울길이 없다.
가라데를 알려면 먼저 가라데의 발상지라는 오키나와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과거 류쿠국으로 불리웠던 작은 섬나라! 독립국으로 존재해 왔다가 1800년대에 일본에
병합된 나라 류쿠국 오키나와.
문헌적인 관점에서 한국의 고려때에 고려와의 무역에 전성기를 구가했던 나라!
그후 조선시대까지 무역의 길을 열었던 류쿠국! 이는 고려사,조선왕조 실록에서 전하는 바라..,
과거 중국에서 류쿠국 사신이 조선의 이인 북창선생을 만나 역학을 전수 받기도 했었다.
고고학적인 관점에서(고고학적인건 일본인들이 발굴,발표한것임)
보면 고려시대의 와당이 다량 발굴이 되었고,조선식의 커다란 동종도 발굴이 되었고,
그곳에서 발굴된 유골도 해부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한반도에서의 도래한 사람들의 유적이
다량 발굴 된 점을 보면 류쿠국의 형성과 문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에 부인할수 없는 현실
이라고 한다. 또 인장도 발굴 되었는데 오늘날 도장 그것의 명문에 빼어난 문물의 나라 조선으로
부터 전수받았다는 글귀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오늘날 이러한 고고학적인 유물이 다량 발굴이
되어도 일본인들의 보수 식민사학에 배치되는 관계로 인해 아직도 류쿠국에 대한 한국문화에 의한
영향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언어학적인 고찰도 이루어 져야 한다.
지금은 공수도 전에는 당수도 특히 당수도를 읽을때는 가라데라고 읽는다.
당자는 나라 당 자다! 나라 당을 썼다고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고 일방적인 역사기술을 하는 무도계의
무지에 탄식을 금할길이 없다.
일본의 학자 다케나카 요시오씨의라는 책에는 고대의 표기된 글자가
한국 즉 고구려,신라,백제,가야 등의 총칭으로써 한나라 한 자를 쓰고 읽을때는 가라로 읽었다.
또 일본의 유명한 신사인 카라쿠니신사의 글자도 전에는 한나라 한 자를 썼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매울 신을 써서 가라로 읽는다.
위에서와 같이 고대 삼국의 통칭이 이었던 한나라 한 자가 어느순간 나라 당 자로 바뀌어 가라로 읽히고
있는 일본이다. 그럼 일본의 신사와 지명도 나라 당 자가 붙었으니 중국의 절대 영향이라고 말해야 하나?
일본의 사학자는 이러한 언어학적인 변천을 지적하는데 무도계에서는 이러한 고찰을 하지 않는게
개개인의 여태껏의 무지를 감추려 함인가?
또 일본의 뛰어난 무역업자 였던 조선에서 귀화한 이종환 이라는 사람이 있다.
이사람이 일본에서 당인정(나라 당,사람 인)이라는 곳을 만든 시조이다.
또 나라 당 이다. 또 중국인들이 만들었다고 해야 하나?
역사는 이곳의 시조는 조선인 이종환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뿐만 이던가? 일본의 고대문화에 크게 기여를 한 아야씨(한수 한 자)와 하타씨(나라 진 자)가 있다.
이들또한 후대에 그들을 나타냈던 표기로 인해 중국인들의 후예라고 기술을 한 학자도 있었다.
그러나 고고학적인 증거로 인해 중국인의 후예라는 주장은 사장되고 말았다.
일본학자 미즈사와 스미오씨의 에는 불교관계에서 말하자면 아야씨가 백제계인데 반해
하타씨는 신라계 이다. 라고 말한 사실을 주지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이고 고고학적이고 언어학적인 입장을 배제한채 단지 나라 당 자를 썼고 명나라사람이
왔었고 등등의 주장만으로 가라데라는 무술의 원류를 논한다는건 대단한 무지와 중대한 오류를 범하기
쉬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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