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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그 주모자는 승만 리‘라는 기독교 장로였다.

10, 그 주모자는 승만 리‘라는 기독교 장로였다.

그래서 1950.3월말로 끝나게 되였고 그로 인하여 우리 대한민국은 오늘까지도 정의가 살아 펄펄 뛰는 사회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자는 과연 몇 %나 되겠는가? 정의가 죽은 나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친일파 사대주의자들이 득세하여 애국자를 짓밟고 일신의 영달을 위해 분단의 영구화를 획책하여 민족의 비극을 엄청나게 가중시켰다. 그것의 문제의 핵이었고 특히 미군정은 처음부터 한반도의 분단이라는 민족분열을 전제로 하고 시작된 통치구조였다.(해방 전후사의 인식-61쪽) 이렇게 해서 미군정은 우리민족의 정도(正道)를 무자비하게 그리고 완벽히 파괴하였다.

대한정책의 기본방침은 카이로 선언은 루스벨트, 처칠, 장 개석은 1943.11.22-26, 11.28-12.1 -4-6, (테헤란) 일본의 전후 영토처리문제 등등. 포츠담회담은 투루맨, 처칠, 장개석들은 1945.7. 26일 베르린에서 2차 전쟁 전후처리문제 즉 원자폭탄 사용 암시 및 일본 군국주의 세력 영구제거 등등.

이런 진행은 1945년2월4-11일까지 8일간에 걸쳐 굴지의 휴양도시 얄타(Yalta)에서 미, 루스벨트, 영, 처칠, 쏘, 스탈린 3국의 수뇌들은 전후 처리문제 비밀회담도 있었다. 그 후

1945년8월14일 청진과 나남에 소련군이 상륙하였으며 16일에는 훨씬 더 남쪽인 원산에서 상륙작전이 감행되었다. 이런 소련군의 진공 추세가 한반도 전체가 소련군에 의해 장악은 단순한 시간문제로 보였다.

당시 미군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부대(600마일)가 오키나와 주둔 미군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미국은 한반도 내에서 향후 자신의 지위를 보장받기 위하여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분할 점령할 것을 소련에 제의 하였다.

이 작업에 참여한 국무성 일반 참모부 딘 러스크 대령은 훗날 회의에서 증언을 보면 “육군 측은 가능한 한 북쪽에서 항복받기를 원하는 미국의 정치적 요구와 미군이 그 지역에 도달하기에는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는 점을 제안 요청했다. 우리는 38도선을 권고 - 이것은 미군의 책임 지역 내에 한국의 수도를 포함시켜 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소련은 한반도 분할점령에 관한 미국의 제안을 별다른 반대 없이 받아들였고 서울에 진출해 있었던 일부 소련군은 즉시 38선 이북으로 되돌아갔다. 이에 맥아더는 9월2일 일본의 공식 항복 서명과 같이 포고를 했다.

한반도에서 38도선 이북의 일본군의 항복은 소련이, 이남의 일본군의 항복은 미국이 접수한다고 발표했다. 즉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한다는 면목으로 미. 소 양군대가 주둔하게 되였다.

연세대학교를 설립한 기독교인 언더우드의 3세인 원한경 박사는 1946년 한국에서 미국무성에 비밀 전문을 보냈다. 그 문서는 “한국에 빨리 민주주의(미국식 민주주의 즉 천민자본주의)를 실시하지 않으면 민족주의가 살아난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또 미군정은 1946년에 국립대학인 성균관대학교를 폐쇄 조치하고 경성제국대학을 서울대학교로 개명하고 초대 총장을 미국 육군대위에 불과한 “해리 B 엔스테드라는 사람을 앉혔다.

대한민국 중앙 국립대학 초대 총장이 한국 사람이 아닌 그것도 학자도 아닌 미국 군인인 초급장교 대위였다. 미국인이 세운 학교들 이화여대, 배재 남자 고둥학교, 배화 여자 고등학교, 등등이다.

이 시절 민족주의자들이었던 항일투사들과 양심 있는 자들을 모두 빨갱이(공산주의)라고 엄청나게 매도하여 민주주의라는 대 살인강도 양키 껍질로 깡그리 죽여 버렸다. 결국 서로 막 죽이는 미국 천민자본주의식 민주주의는 우리 백성들을 죽이는 살인주의로 단추가 끼워지기 시작하였다.

역시 소련식 공산주의도 우리민족을 엄청나게 살상했다. 고로 이 서양 문화인 두 사상은 매우 천박한 살인 사상이라고 나는 말을 조심할 필요가 추호도 없다.

그러므로 윤리도덕이 없는 아주 천박한 사상이라고 밖엔 생각할 수가 없고 이 때 기독교, 천주교의 선교사와 누구고 간에 이들과 관계된 자들은 모두 우리 민족에겐 깡그리 다 대 첩자였다. 이 것이 오늘에 기독교다.

이 무렵 미 국방장관 대리 로버트는 소련, 영국, 중국 외상에게 새로운 제안을 담은 서한을 보냈다. 이 제한은 모스코바 협정에 관련된 4개국들이 9월8일 워싱톤에서 만나 모스코바 협정을 대신할 새로운 방법을 검토하자는 것이었다. 제안의 구체적 요지는 “유엔 감시 하에 남북한의 인구 비례에 따른 총선거를 실시하여 통일 정부를 세우자” 는 내용으로 승만 리가 1946년 12월 방미 중에 제안한 내용과 동일한 것이었다.

이 제안은 영국과 중국으로부터는 승인을 받았으나 소련에 의해 거부되었다. 소련은 이에 대하여 “조선 민중이 연합군의 간섭 없이 정부를 수립할 수 있도록 미. 소 양군이 즉시 철병하자”는 내용의 새로운 제안을 내어 응수하였다.

결국 미국은 한국 문제를 자신들이 지배하고 있는 유엔에 상정하기로 결심하였다. 이렇게 하여 미. 소 공동위원회는 1946년3월20일에 시작되어 한국(조선)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 채 1년 반 만에 종결되었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1권93쪽)

그럼 유엔은 무엇인가! 미국이 먹여 살리는 단체다. 미국에서 경제적인 지원이 없다면 유엔은 하루아침에 문을 닫아야할 단체가 곧 유엔이다. 고로 유엔은 미국이 자기 밥줄이므로 말을 잘 들어야할 의무가 있는 단체다. 05.01-05.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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