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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 무술, 무예, 무도 인들이 알아야 할 우리 역사.

대한의 무술, 무예, 무도 인들이 알아야 할 우리 역사.

1, 미군이 매향리에서 쫓겨나기까지

이 글을 읽는 분들이여!
아래 글들이 여러 문언으로 발표된 것이지만 기억삼아 한 번 더 읽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이 매향리는 미 전투기 사격장으로 소음으로 임신부가 유산까지 되는 주민들이 엄청난 피해를 50년 넘도록 입고 있는 땅입니다. 약30-36회 정도로 우리 역사를 쓰겠습니다. 많이 구독해주시길 정중히 빕니다.

2, 매향리 주민들 만세!

드디어 양키 강도들이 쫓겨났습니다. 전만규 위원장님을 비롯하여 전 매향리 주민들의 항의가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매향리 주민들이여 진심으로 귀하들의 투쟁을 존경합니다.
매향리 만세! 민족 통일 만세!

3, 을지문덕

神策究天文 / 妙算窮地理 / 戰勝功旣高 / 知足願云止

신통한 술책으로 이 하늘을 뒤덮었고
기묘한 타산으로 이 땅을 갈라쳐 두었으니
그대 이미 드높은 전공을 이루었지 않았는가
이제 알 만큼 안다면 끝내고 돌아갈 만도 할텐데 ---

* 승려였던 을지문덕 장군께서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보낸 시를 번안(飜案)한 것임.

살수(薩水=淸川江)에 수나라 군대 113만 3,800이 처 들어 왔을 때 수나라 군사 백만 명이상이 을지문덕(乙支文德-?-?) 고구려 영양왕 23년(612) 때의 명장에 의해서 물고기 밥이 된 것을 수나라가 망하고 당(唐)나라가 된 뒤에 당나라 장수 축맹헌(祝猛獻)이란 자가 청천강에 와서 지난날의 치욕을 생각하고 절치부심(切齒腐心=몹시 분하여 이를 갈고 속을 썩임)하는 시(詩)를 읊었다.

수병이 다시 일어났으면 어찌 허무하게 졌을 것인가
이 나라 백성들을 모조리 마른 고기로 만들었으리라
그때에는 이, 설 같은 맹장이 한 명도 없었더란 말인가
지금은 부여까지 단숨에 밀고 내려가리라.

이런 오만불손한 시가 아직까지 내려오고 있다.
그것도 부족하여 지금은 남북으로 두 동강으로 되었고 보이지 않지만 동서로도 잘려 있다. 그것을 정당화시키려고 벼라 벌 작 난을 하고 있다. 역사의 무서움을 모르고 있다. 그래서 2000년대를 보고 앞으로 갈 것이냐 ? 뒤로 갈 것인가 ? 가고 있는 것인가? 외세인 미국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 후 918-1392년 고려 474년의 문화와. 1225년 몽고사신 저고여(著古與)가 압록강에서 피살 사건으로 시작 1288년엔 처녀까지 수백-수천 명을 상납하면서 1369년에 절교 할 때까지 약 140여 년 동안 예속된 식민지 생활을 하였다. 이 때 원나라 사신들은 자기들 맘대로 왕도 바꾸고 했다니까 말이다. 그 때의 수입은 오직 문 익점(1363)에 의해서 목화씨뿐이었다.

4, 나라를 망처먹은 김춘추, 화랑도 김유신

여기에서부터 우리민족이 기울기 시작한 역사. 사대의 시조 신라 29대 왕 태종 무열왕 김춘추(604-661)와 겹사돈이었던 대 살인 집단 화랑도 수장 김유신(595-673)이 지혜의 나라 백제와 고구려를 당나라를 업고 저 널은 땅을 망하게 하여 남에게 준 자손만대 반역 행위와 발해와 고려, 신라가, 조선이 망한 것은 여기에서 빼고 다음 기회에 쓰겠다.

5, 갑오 농민 전쟁

외세를 철저히 반대하며 평등사상을 당당히 외쳤던 갑오 농민 전쟁
당시 많이 불렸던 노래 파랑새-팔왕새(八王새-全봉준 상징)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사 울고 간다.

그 해 지도자 1895년 5월11일 날 전봉준 장군은

때를 만나니 하늘과 땅이 힘을 모아주고
운이 다하니 영웅도 할바가 없구나
백성을 사랑하고 정의를 따랏나이
내 부끄러울 것이 없는데
나라 사랑하는 마음 그 누가 알아주랴, 라는

시(詩) 한 수를 남기고 41세(1854-1895)의 젊은 나이로 당당히 기꺼이 떠났다. 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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