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5월17일 스웨덴에서 생긴 사건
1980년5월17일 스웨덴에서 생긴 사건
벌써 24년이 지나갔나!
여기 테레비(TV) 소식에 직통으로 나왔다. 대한민국 공수부대 군인들이 군화발로 어린 학생들을 마구 차는 것, 자기 백성들을 대로에서 곤봉으로 냅다 치며 폭행하고 총 쏘며 살해 하는 것. 사람들을 죽이지 말라고 나의 태권도 도장에서 조직을 하는데 제공이 되였고 양심 있는 교포 몇 명과 이 나라 백성들과 같이 미 대사관 앞에서 데모를 했다.
살상하지 마라
미군을 철수하라
전두환은 물러가라
그랬더니 여기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앞장서 교민들을 선동해 그 살상 반대자들을 빨갱이로 몰았다. 기독교 목사 놈들이 앞장서 교회도 나오지 말라 했다.
엄청나게 광주 시민들이 죽고 있다고 대사관에 전화하여 큰일 났다고 말을 했더니 모두 빨갱이들의 소행이라 한다. 에 이- 개새끼 니가 외교관이냐고 욕설을 퍼부어 주었더니 자기가 대한민국 대사관 외교관인데 자기를 내(림원섭)가 죽이겠다고 말을 했다고 이 나라 경찰에 거짓말로 고소를 했다.
그 날 난 밖에서 대사관 무관과 중국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육사 나온 무관은 내가 전두환를 철저히 반대하므로 날 설득시키려고 했다. 각하(전두환)하고 같은 공수부대 출신이고 그런 사이가 아니 것으로 아는데 어찌 그러십니까! 모두 빨갱이들의 소행입니다. 한다. 그래서 난 말을 했다. 친한 친구란 단점을 말해 주는 것이고 장점만을 말해주는 자는 이용하려 하는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단점을 말해 주는 것이다.
두고 보거라 십년이 넘어봐라 그자는 정의의 백성들의 심판을 꼭 받을 것이다. 그렇게 자기 백성들을 살상하고 온전할 것 같으냐 했다. 아니다 다를까 백담사로 가서 살았다. 또 형무소로 갔다. 요즈음엔 사랑했던 진도개까지 재산을 다 빼앗기고 있다. 아니 되돌려주고 있다.
그때 집에 전화하여 조금 늦겠다고 했더니 집 사람이 말하기를 경찰이 날 잡으려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화를 바꿔달아 해서 난 말을 그 경찰에게 했다. 내가 내 발로 갈 테니 우리 집에서 나가라. 그 이튼 날 경찰서로 가서 허리띠도 풀고 구속이 되였다. 그 이튼 날 조사를 받았다. 있는 그대로 말을 했다. 그리고 풀려났다. 그 외교관은 여기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쫓겨났다.
여기 사는 몇몇 전라남도 사람들이 우릴 더 빨갱이로 몰았다. 전라남도 광주에서 왔다는 한 목사 놈에게 기도를 부탁을 했더니 그 빨갱이들에게 무슨 기도입니까 한다. 에 이 - 가짜 목사 놈아 니가 어찌하여 기독교 목사냐 이 개 쌍놈의 새끼야 - 넌 꼭 상 지옥으로 갈 것이다. 하며 내 입은 쉴 수가 없었다.
또 광주에 자기 집이 있다는 유학생 외대 대학생은 데모를 하는 척 하더니 데모를 피하면서 대사관에 그대로 보고한 첩자도 있었다. 알고 보니 그놈의 형이 중앙정보부에서 근무를 한다고 했다.
난 이 때부터 김 대중 석방운동도 열나게 했다. 그런데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더니 왜놈과 양키 눈치만 보고 정치를 했고 6.15 덕으로 노벨평화상을 노르웨이에서 타고 여기 스톡홀름에 와서 일류 호텔에서 먹고 자더니 자기를 위한 자들 한사람도 초청이 없었다. 일류 호텔에서 먹고 자며 테레비 설치까지 해놓고 1박2일 있다 갔다. 경호원들은 몇 일 전에 와서 있다 갔다 한다.
이 때가 고 박정희가 한국 경제를 일본에 미국에 예속을 시키므로 인해서 근본적으로 IMF가 왔다고 보며 김영삼이가 국가 경제 정치를 꼼꼼히 잘못했으므로 왔다고 보며 백성들이 절약이 없었으므로 왔다고 본다. IMF 여파로 잘려 3-40대가 막 거리로 쫓겨 날 때다. 그 일류 호텔에 백여 명 이상이 와서 먹고 자고 관광까지 하고 갔다. 이 호텔은 하루 저녁에 약150불 정도나 된다.
그래서 본인 혼자 림원섭은 그 인류 그랜드 호텔(Grand hotel) 앞에서 데모를 했다.
그 즈음 안에서는 파티를 할 때다. 밖에 서있는 난
김대중을 석방하라
미군철수 하라
매향리를 살려라
남북통일 만세‘라는 글자를 들고 서 있었다.
이 날 하늘도 슬폈던지 궂은비는 그칠 줄 몰랐다.
1980년5월17-8일 전라남도 시민들이 세금내서 산 군화로, 곤봉으로, 총알로 그 백성들은 엄청나게 폭행을 당하며 그 산 총알로 맞아 죽어야만 했다. 아무 죄 없이 - 죄가 있다면 오직 민주주의를 민족통일을 부르짖었다는 죄다.
민주주의와 꿈에도 소원인 민족통일을 말하면 모두 빨갱이들이다. 그런데 두 번 강산이 변한 오늘 그 빨갱이들은 절세의 애국자들이었다. 그 의인들을 빨갱이로 모는 자들은 모두 다 친일, 친미 사대 매국노들이며 수구 보수 꼴통들이다. 민족에 대 역적들이다. 대대손손 사대만 하며 대 죄를 짓고 사는 자들이라 해야 마땅할 것이다. 끝으로 -
노벨상이란 도대체 어떤 상이며 무엇인가?
알프레드 벨하알드 노벨(1833-1896 Alfred Bernhard Nobel)이란 사나이 다이너마이트(Dynamite) 화약 외 355가지 특허권자 서전(Sweden)의 수도 스톡홀름(Stockholm)에서 태여 낳다 화학을 전공하였고 기업가로 발명가로 명성을 떨쳤다.
군수 공장을 하던 아버지를 도우며 기뢰 부설 등 기술을 배우며 컸다. 또 17세 때부터 독일 프랑스, 미국에 가서 기계학, 어학을 배웠고 돌아와 아버지와 흑색화약 면(棉)화약을 연구하였다. 그러면서 뇌관의 특허도 받았다.
1876-1887년에 200회 끈질긴 실험 끝에 드디어 성공을 했다. 이 실험 중 친 동생도 죽고 희생자 많아 국제적으로 말이 많았었다고 한다. 이 산업자본을 성립시킨 구미제국의 제국주의적 비약시대로 철도, 토목, 군사에 귀중한 에너지 자원이 되였다.
이 인류 건설사업에 엄청난 도움을 주었다고 할지라도 오늘 하루도 아까운 생명들은 여러 사고로 많이 희생되고 있을 것이다. 그 것이 노벨이란 상으로 돈으로 위안이 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정당화되고 있다고 보아야 될까? 이 인류와 바꿀 수 없는 한 생명의 가치관으로 보았을 때는 노벨상의 가치관은 없다. 아무 것도 없다. 오히려 뺏기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 엄청난 유산은 평화사상의 보급과 과학 아카데미에 기증되어 노벨상이 제정되었다. 유언에 따라 이 세상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 1895년11월27일부터 인류복지에 가장 구체적으로 공헌한 사람에게 수여하라는 유언장과 같이 3,100만 크로나 유산이 노벨상으로 기금이 되어 스웨덴 왕립 과학 아카데미에 기탁 되였다.
이 이자의 상금으로 1901년부터 물리, 화학, 의학, 생리학, 문화 상 그 뒤 한참 후에 1969년에 경제상이 생겼다. 해마다 2천이 넘는 논문이 터져 나와 이 세상 지식인들의 펜을 쥔 스웨덴 나라가 되였다. 물리, 화학, 경제는 스웨덴 과학 아카데미에서 생리, 의학은 스톡홀름의 카롤린 의학 연구소 문학상은 스웨덴, 프랑스, 스페인 3아카데미에서 평화는 노르웨이 국회에서 철저히 조사해서 선출한다.
왜! 노벨이 그렇게 유언을 했다. 그 생각들 굉장하다 그 심사위원들 그 많은 논문들을 읽는다고 고생 많이 한다. 여기 스웨덴에서 노벨의 유산을 기금 설립 재단 6인 이사회에서 운영 이 사장과 부 이사장은 스웨덴 정부에서 임명 재단 전체 수입의 10%는 재투자, 68%는 상금으로 사용 나머지는 운영자금으로 사용한다 한다.
노벨 평화상은 국제 정치를 보며 주는 상 고로 때때로 말썽이 되기도 하지만 김대중 노벨 평화상은 남북의 같은 민족끼리 남 것인 천민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대립을 고만 하라고 준 것. 자립적으로 살라고 준 것, 시드니 올림픽 때 모두 손잡고 입장한 남북 선수들을 보고 결정했다고 한다.
노르웨이 인구 5백만이 주는 상
우린 꼭 이 사랑을 갚아야 할 것
어떤 사랑이나 공짜가 없는 것.
환웅 9223년
단군 4337년
서기 2004년05월17일.
벌써 24년이 지나갔나!
여기 테레비(TV) 소식에 직통으로 나왔다. 대한민국 공수부대 군인들이 군화발로 어린 학생들을 마구 차는 것, 자기 백성들을 대로에서 곤봉으로 냅다 치며 폭행하고 총 쏘며 살해 하는 것. 사람들을 죽이지 말라고 나의 태권도 도장에서 조직을 하는데 제공이 되였고 양심 있는 교포 몇 명과 이 나라 백성들과 같이 미 대사관 앞에서 데모를 했다.
살상하지 마라
미군을 철수하라
전두환은 물러가라
그랬더니 여기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앞장서 교민들을 선동해 그 살상 반대자들을 빨갱이로 몰았다. 기독교 목사 놈들이 앞장서 교회도 나오지 말라 했다.
엄청나게 광주 시민들이 죽고 있다고 대사관에 전화하여 큰일 났다고 말을 했더니 모두 빨갱이들의 소행이라 한다. 에 이- 개새끼 니가 외교관이냐고 욕설을 퍼부어 주었더니 자기가 대한민국 대사관 외교관인데 자기를 내(림원섭)가 죽이겠다고 말을 했다고 이 나라 경찰에 거짓말로 고소를 했다.
그 날 난 밖에서 대사관 무관과 중국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육사 나온 무관은 내가 전두환를 철저히 반대하므로 날 설득시키려고 했다. 각하(전두환)하고 같은 공수부대 출신이고 그런 사이가 아니 것으로 아는데 어찌 그러십니까! 모두 빨갱이들의 소행입니다. 한다. 그래서 난 말을 했다. 친한 친구란 단점을 말해 주는 것이고 장점만을 말해주는 자는 이용하려 하는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단점을 말해 주는 것이다.
두고 보거라 십년이 넘어봐라 그자는 정의의 백성들의 심판을 꼭 받을 것이다. 그렇게 자기 백성들을 살상하고 온전할 것 같으냐 했다. 아니다 다를까 백담사로 가서 살았다. 또 형무소로 갔다. 요즈음엔 사랑했던 진도개까지 재산을 다 빼앗기고 있다. 아니 되돌려주고 있다.
그때 집에 전화하여 조금 늦겠다고 했더니 집 사람이 말하기를 경찰이 날 잡으려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화를 바꿔달아 해서 난 말을 그 경찰에게 했다. 내가 내 발로 갈 테니 우리 집에서 나가라. 그 이튼 날 경찰서로 가서 허리띠도 풀고 구속이 되였다. 그 이튼 날 조사를 받았다. 있는 그대로 말을 했다. 그리고 풀려났다. 그 외교관은 여기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쫓겨났다.
여기 사는 몇몇 전라남도 사람들이 우릴 더 빨갱이로 몰았다. 전라남도 광주에서 왔다는 한 목사 놈에게 기도를 부탁을 했더니 그 빨갱이들에게 무슨 기도입니까 한다. 에 이 - 가짜 목사 놈아 니가 어찌하여 기독교 목사냐 이 개 쌍놈의 새끼야 - 넌 꼭 상 지옥으로 갈 것이다. 하며 내 입은 쉴 수가 없었다.
또 광주에 자기 집이 있다는 유학생 외대 대학생은 데모를 하는 척 하더니 데모를 피하면서 대사관에 그대로 보고한 첩자도 있었다. 알고 보니 그놈의 형이 중앙정보부에서 근무를 한다고 했다.
난 이 때부터 김 대중 석방운동도 열나게 했다. 그런데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더니 왜놈과 양키 눈치만 보고 정치를 했고 6.15 덕으로 노벨평화상을 노르웨이에서 타고 여기 스톡홀름에 와서 일류 호텔에서 먹고 자더니 자기를 위한 자들 한사람도 초청이 없었다. 일류 호텔에서 먹고 자며 테레비 설치까지 해놓고 1박2일 있다 갔다. 경호원들은 몇 일 전에 와서 있다 갔다 한다.
이 때가 고 박정희가 한국 경제를 일본에 미국에 예속을 시키므로 인해서 근본적으로 IMF가 왔다고 보며 김영삼이가 국가 경제 정치를 꼼꼼히 잘못했으므로 왔다고 보며 백성들이 절약이 없었으므로 왔다고 본다. IMF 여파로 잘려 3-40대가 막 거리로 쫓겨 날 때다. 그 일류 호텔에 백여 명 이상이 와서 먹고 자고 관광까지 하고 갔다. 이 호텔은 하루 저녁에 약150불 정도나 된다.
그래서 본인 혼자 림원섭은 그 인류 그랜드 호텔(Grand hotel) 앞에서 데모를 했다.
그 즈음 안에서는 파티를 할 때다. 밖에 서있는 난
김대중을 석방하라
미군철수 하라
매향리를 살려라
남북통일 만세‘라는 글자를 들고 서 있었다.
이 날 하늘도 슬폈던지 궂은비는 그칠 줄 몰랐다.
1980년5월17-8일 전라남도 시민들이 세금내서 산 군화로, 곤봉으로, 총알로 그 백성들은 엄청나게 폭행을 당하며 그 산 총알로 맞아 죽어야만 했다. 아무 죄 없이 - 죄가 있다면 오직 민주주의를 민족통일을 부르짖었다는 죄다.
민주주의와 꿈에도 소원인 민족통일을 말하면 모두 빨갱이들이다. 그런데 두 번 강산이 변한 오늘 그 빨갱이들은 절세의 애국자들이었다. 그 의인들을 빨갱이로 모는 자들은 모두 다 친일, 친미 사대 매국노들이며 수구 보수 꼴통들이다. 민족에 대 역적들이다. 대대손손 사대만 하며 대 죄를 짓고 사는 자들이라 해야 마땅할 것이다. 끝으로 -
노벨상이란 도대체 어떤 상이며 무엇인가?
알프레드 벨하알드 노벨(1833-1896 Alfred Bernhard Nobel)이란 사나이 다이너마이트(Dynamite) 화약 외 355가지 특허권자 서전(Sweden)의 수도 스톡홀름(Stockholm)에서 태여 낳다 화학을 전공하였고 기업가로 발명가로 명성을 떨쳤다.
군수 공장을 하던 아버지를 도우며 기뢰 부설 등 기술을 배우며 컸다. 또 17세 때부터 독일 프랑스, 미국에 가서 기계학, 어학을 배웠고 돌아와 아버지와 흑색화약 면(棉)화약을 연구하였다. 그러면서 뇌관의 특허도 받았다.
1876-1887년에 200회 끈질긴 실험 끝에 드디어 성공을 했다. 이 실험 중 친 동생도 죽고 희생자 많아 국제적으로 말이 많았었다고 한다. 이 산업자본을 성립시킨 구미제국의 제국주의적 비약시대로 철도, 토목, 군사에 귀중한 에너지 자원이 되였다.
이 인류 건설사업에 엄청난 도움을 주었다고 할지라도 오늘 하루도 아까운 생명들은 여러 사고로 많이 희생되고 있을 것이다. 그 것이 노벨이란 상으로 돈으로 위안이 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정당화되고 있다고 보아야 될까? 이 인류와 바꿀 수 없는 한 생명의 가치관으로 보았을 때는 노벨상의 가치관은 없다. 아무 것도 없다. 오히려 뺏기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 엄청난 유산은 평화사상의 보급과 과학 아카데미에 기증되어 노벨상이 제정되었다. 유언에 따라 이 세상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 1895년11월27일부터 인류복지에 가장 구체적으로 공헌한 사람에게 수여하라는 유언장과 같이 3,100만 크로나 유산이 노벨상으로 기금이 되어 스웨덴 왕립 과학 아카데미에 기탁 되였다.
이 이자의 상금으로 1901년부터 물리, 화학, 의학, 생리학, 문화 상 그 뒤 한참 후에 1969년에 경제상이 생겼다. 해마다 2천이 넘는 논문이 터져 나와 이 세상 지식인들의 펜을 쥔 스웨덴 나라가 되였다. 물리, 화학, 경제는 스웨덴 과학 아카데미에서 생리, 의학은 스톡홀름의 카롤린 의학 연구소 문학상은 스웨덴, 프랑스, 스페인 3아카데미에서 평화는 노르웨이 국회에서 철저히 조사해서 선출한다.
왜! 노벨이 그렇게 유언을 했다. 그 생각들 굉장하다 그 심사위원들 그 많은 논문들을 읽는다고 고생 많이 한다. 여기 스웨덴에서 노벨의 유산을 기금 설립 재단 6인 이사회에서 운영 이 사장과 부 이사장은 스웨덴 정부에서 임명 재단 전체 수입의 10%는 재투자, 68%는 상금으로 사용 나머지는 운영자금으로 사용한다 한다.
노벨 평화상은 국제 정치를 보며 주는 상 고로 때때로 말썽이 되기도 하지만 김대중 노벨 평화상은 남북의 같은 민족끼리 남 것인 천민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대립을 고만 하라고 준 것. 자립적으로 살라고 준 것, 시드니 올림픽 때 모두 손잡고 입장한 남북 선수들을 보고 결정했다고 한다.
노르웨이 인구 5백만이 주는 상
우린 꼭 이 사랑을 갚아야 할 것
어떤 사랑이나 공짜가 없는 것.
환웅 9223년
단군 4337년
서기 2004년05월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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