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일쿠어야 할 국기 태권도,,,,
조금 깁니다.
끝까지 읽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WTF 품새와 ITF 틀에 대한 나의 견해.
대단히 감사합니다. 아래 글을 읽는 자들이여 -
아래 본인의 글에 얼마나 내 것과 남 것이 있는지 분별을 해보고 - 또 얼마나 중화사상을 가진 자들이 몇이나 되고 즉 친 중, 친일, 친소(러), 친미 즉 사대사상을 가진 자들이 몇이나 되는 지 구분을 해보시길 바란다.
그간 우리에게 이 외세들인 원나라, 당나라, 명나라, 청나라, 일본이라는 나라에 의해서 약4-5십 만권이라는 우리의 찬란했던 역사책들은 그 동안 불에 탔다. 이 외세들에 의해서 엄청난 분서는 깡그리 기록까지 태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과연 그 태권도 형(품새, 틀)들의 명칭들이 1만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배달민족인 삼천리금수강산을 대표로 할 수가 있는지 말이다.
그래서 사대 식민사관에 의해서 쓰여 진 아래 품새, 틀 명칭들이 얼마나 우릴 그 동안 또 앞으로 바보로 만들 것인지, 그 것에 대한 것들은 귀하들의 판단을 해 보길 빈다.
W. T. F (World TKD Federation) 품새는?
태극 품새에서 태극(太極)이라는 말은 태역(太易)-태초(太初)-태시(太始)-태소(太素)-태극(太極)이 발전해오면서 만물이 성립했다는 오운설(五運說)이라는 생선론을 중국 북송(北宋)의 사상가 주돈이(周敦頤-1017-1073)이의 역경에 의해 태극도설. 중국 남송(南宋)의 주희-주자(朱熹-朱子-1130-1200)는 기(氣)와는 다른 범주인 이(理)라고 해석 주자학(朱子學)의 태극설을 핵심으로 했다.
그래서 고려 충신들을 깡그리 때려죽인 세종대왕의 아버지 리방언(리성계 5째 아들)에 의해 이어진 상병신 리조 5백년(518년) 동안 중국에 매년 7십만 양씩과 사람까지 상납하며 교육받은 철학이다. 꽉 주려 한 마디로 ‘태극’은 중국인들의 점괘(占卦)라고 본다.
중국어를 전공한 김 경일 젊은 학자에 의해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고 책으로 써서 고함친 것과 같이 또 1세기가 훨씬 넘은 지금도 성균관(유림회-儒林會)을 비록 많은 유교 인들은 즉 모화사대 주의자들이 되지 말고 오직 학문으로만 했으면 좋겠다고 본다.
그리고 특히 이 태극 품새는 연무선 및 각 동작에서 일본의 문화 가라데(쏘도깐)와 매우 흡사하다. 즉 대한민국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것을 절대 상속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찌 본인뿐이겠는가 말이다. 이런 철학들보다, 이런 동작들보다 표절(剽竊-plagiarism-남의 시, 문장 등의 설, 또는 글귀를 가져다가 자기 것으로 발표함.)이 아닌 더 우수한 생각을 창조해야할 것이라고 늘, 항상 사색을 하며 연구하는 사람이다.
즉 동양 철학을 우리 철학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나 우리에게는 신선도 철학이 있다. 이 철학은 약 1만 년 전의 삼신사상으로 이 세상 모든 종교의 모체라고 할 수 있는 철학을 가지고 있는 위대한 배달민족이다. 불교 경전보다 약5000년이나 앞선 우리의 경전 천부경과 삼일신고가 있는 위대한 민족이다.
몽고와 중국에 약 640여년의 식민지 지배를 받을 때 또 36년 왜놈들에게 식민지로 수모를 당하며 살 때 우리의 매우 소중한 책 4-50만권을 이 못된 외세들은 깡그리 불살아(焚書)버렸다. 왜, 대한민국 역사를 열어보니 자기들의 선조였기 때문에 식민지로 지배하기가 어려우니 다 태워버리고 자기들보다 낮게 하려고 한 짓들이다.
그래서 우린 역사도 없는 즉 사대의 시조 신라 29대왕 태종 무렬왕 김춘추와 겹사돈인 화랑도 대 살인 집단의 수장인 김유신이나 이런 사대 자들 밖에 없는 것처럼 왜곡 매도 되어왔다.
그래서 우린 중국 철학인 태극(음양)철학이나 숭상하는 민족처럼 낮췄다. 그래서 오늘도 사대성이 짖은 소위 어용학자들은 우리의 참 역사를 자꾸만 왜곡시키고 있다. 고로 태극을 오랜 세월 쓰다보니 우리 것처럼 되였으나 이젠 우리 것을 찾아 쓰면 더 좋겠다고 보는 자다.
우리의 선조 환인, 환웅천황께서 창시한
우리 배달민족 삼신사상
불교, 유교, 모든 종교의 시조였던 그 삼신(三神) 철학은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우리 배달민족의 “경전”
즉 불교 경전보다 5000년이 앞선 이 엄청난 우리 역사 책
위대한 책 자랑스러워 당당한
“천부경, 참전계경, 삼일신고”는 아직까지 생생하게 씽씽하게 살아있다.
노상 대 강도 외세 원, 당, 명, 청이 약3십 만권
왜놈들이 51가지 책 종류들 약2십 만권을 깡그리 태웠어도
그 기록은 타질 아니했다.
그 기록들은 탈 수가 없었다.
이 경전을 태울 수가 없었다.
“하늘은 시작됨이 없이 시작한 하늘이라.”
“하늘 즉 우주는 시작됨이 없이 시작되고 끝남이 없이 끝나리라.“
“이 세상은 나는 것이 없음으로 돌아가는 곳이 없느니라.”
“땅은 땅이면서 하늘이고 사람이며, 사람은 사람이면서 하늘이요 땅이라는 말이다.“
“모습이 없이 볼 수 있고 함이 없으면서 모두 이루고 말 없으면서 다 행하였다.
“사람이 곧 하늘인데 어찌 사람 밖에서 신을 찾을 것인가?“
지중해 문화인 성경책(이스라엘 경전)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다.”고 하는 유치한 우주론과는 그 차원이 다른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을 큰 눈 뜨고 못 보고 못 읽었다 면
나는 내 눈깔을 확 빼버렸을 것이다.
오늘 03년12월 현재 중국은 고구려와, 발해, 고려를 즈그들 땅이라고 하고 을지문덕 장군까지 자기들 역사에 편입을 시키고 있지를 아니한가. 그러면 한국을 뺀 나머지는 모두 중국에 편승이 된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아니하면 모두 죽게 되여 있다.
I. T. F (International TKD Federation() 24개의 틀은?
1, 천지틀- 하늘과 땅 우주의 창조와 인간의 시초를 뜻한다고 되여 있고 연무선 + 자를 두 번 도는 것은 한번씩 하늘과 땅이라고 했는데 여기에 인간 생명에 대한 표현이 진지하게 없다. 즉 우리 신선도 철학의 근본인 삼신(三神-삼시랑) 하늘 신, 땅 신, 인간신을 말한다. 천지틀을 신선틀이나, 삼신틀이나 했어야 참 옳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2, 단군틀- 기원전 2333년에 이 나라 창조한 단군선조를 뜻한다고 했다. 우리 배달을 지금으로부터 9222년 전에 창조한 자는 한웅천황이시다. 9222-4336년=4996년 단군 선조 보다 4996년 전을 말 함이다. 단군틀 보다, 환웅틀이 있었어야 했다고 보는 자다. .
3, 도산틀- 안창호(1876-1938)선생 평생 독립운동을 한 분. 1913.05.13일에 센프란시스코에서 흥사단을 창설한 분, 우리 종교가 아닌 오늘에 침략 역사만 있는 지중해 문화 기독교인이었다. 이분이 많은 애국의 일을 하셨지만 이 분이 전 절세의 애국자들을 즉 항일투사들을 대표로 할 수가 없다고 보는 자다. 그러나 이분의 매우 훌륭하신 분이었다. 솔선수범하시는 분이었고, 거짓말을 매우 싫어 하시였으며 ‘너의 주위에 지도자가 없다면 너 자신이 지도자가 되라는‘ 말씀은 우릴 깨우치게 해 주셨다. 아래 이분의 시‘를 적어본다.
거 국 행 (去國行)
간다간다 나는간다 너를두고 나는간다
잠시뜻을 엇엇노라 깜을디는 이시운이
나의 등을 내미러셔 너를떠나 가게하니
이로부터 여러해를 너를보지 못할지나
그동안에 나는오직 너를위해 일할리니
간다고 슬허마라 나의사랑 한반도야
간다간다 나는간다 너를두고 나는간다
뎌시운을 대적타가 열혈들을 뿌리고셔
네품속에 누어자는 내형제를 다깨워셔
한 번기(氣)껏 해봤으면 속이시원 하겠다만
장래일을 생각하야 분을참고 떠나가니
내가가면 영갈쏘냐 나의사랑 한반도야
간다간다 나는간다 너를두고 나는간다
내가너를 작별한후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널때도 잇슬지며 서비이(西比利)와 만주뜰에
다닐때도 잇슬지라 몸은 부평(浮萍)하치
어느곳에 가잇던지 너를생각 할터이니
너도나를 생각하라 나의사랑 한반도야
간다간다 나는간다 너를두고 나는간다
즉금이별 할때에는 빈쥬먹만 들고가나
이후상봉 할 때에는 기를들고 올터이니
눈물흘닌 이이별이 깃분마지 되리로다
요풍폭우 기한이때 부디부디 잘잇거라
훗날다시 만나보자 나의사랑 한반도야 도산 안창호 시(詩)
4, 원효틀- 불교를 686년에 전수한자라고 한다. 도끼자국 사건으로 장가도 가며 유명해진 원효 대사는 설총이의 아버지로서 사대의 시조 신라의 29대 왕 태종 무열왕 김춘추와 겹사돈인 엄청난 살인자 화랑도의 수장인 김유신의 추종세력 이 엄청난 불의한 정치에 말이 전혀 없는 종교인이라 즉 특급 어용 종교인이었다라고 보는 자다.
5, 율곡틀- 이이(1536-1584) 조선의 공자라고 불리어진 모화(慕華)주의자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6, 중근틀- 안중근(1879-1910) 의사 님. 우리 외교권을 강탈한 1905년 을사조약 등. 왜놈을 대표하여 각가지 못된 짓을 하던 이등방문(1841-1909)을 저격한 분. 이등방문을 쏘고 그의 가슴에 한쪽 발을 올려놓고 대한민국 만세를 널은 중국대륙이 떠나갈 듯 여유 만만히 고함친 큰 어른 이였다. 1910년 사형장에서 마지막 말씀은 아 - 우리 민족을 살리는 영웅은 언제나 올 것인가! 라고 말씀 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왜놈 문화로 즉 동작으로 다시 예속을 시켜버렸다. 이것은 엄청난 사대 매국이며 민족적 모욕이다.
문(聞) 안중근(安重根) 보국(報國)
평안도 장사가 두눈을 부릅뜨고
양새끼 죽이듯 나라원수 죽였구나
죽기전에 들은 소식 하 좋아서
국화곁에 미친 듯이 노래하며 춤추네
해삼위 하늘가 맴돌던 독수리
할빈역 내려서자 벼락불 터졌네
육대주 호걸들이 깜짝 놀라서
가을바람 낙엽지듯 수저를 떨구네
예로부터 망하는 나라 어이 없으리
금성탕지(金城湯池-매우 튼튼하고 잘된 성지)
굳은성도 좀 도적이 헐었구나
하늘을 괴울만한 이런분이 있으니
나라는 망했어도 광채는 빛나리라.
김택영-1850-1927-이조후기 저항시인. 이것은 작자가
안중근의 의거(義擧)를 듣고 기쁨을 이기지 못해 읊은 한시(漢詩).
안중근의사의 시
거 사 가 (擧事歌)
장부가 세상에 처함이여 그뜻이 크도다
때가 영웅을 지음이여 영웅이 때를 지으리로다
천하를 응시함이여 어느날에 업을 이룰고
동풍이 점점 참이여 반드시 목적을 이룰지로다
쥐도적 쥐도적이여 어찌 목숨을 비길고
어찌 이에 이룰줄을 알았으리오
시세가 그렇게 하였구나
동포 동포여 속히 대업을 이룰지어다
만세 만세여 대한독립이로다
만세 만만세 대한 동포야 안중근의사의 시(詩)
이 이토 히로부미는 1909년 10월28일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님에 의해서 총맞아 죽은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1841-1909)는 과연 어떤 인물인가 ?
일본의 개화운동의 선각자 요시다 쇼인의 제자로서 단 22세였던 1863년에 밀항으로 영국에 건너가 개국론자가 되었고 1882년 독일에 가 독일 헌법을 공부한 자며 1885년에는 초대 국무총리를 했으며 청일전쟁을 수행했고 청국과 일본의 시모노세키 조약(고종32년-1895년4월17일)을 체결한 자며 주한 특파대사로 왔었고 1905년 을사조약(한국 외교권 강탈)을 강제로 성립하였으며 초대 한국 통감, 한.일 합방을 추진 성공한 놈이였다.
여기에서 11개조항 청.일 강화조약중 이홍장의 요구데로 첫째로 조선이 독립임을 승인했다. 그런데 약속을 어기고 반대로 을사조약을 체결한 아주 교활한 놈이다.
7, 퇴계틀- 한학의 대학자 이황(1501-1570) 모화(慕華)주의자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8, 화랑틀- 562년 혹은 576년 진흥왕 23년 37년에 가야, 백제, 고구려 등등 침략 한 역사 기록들을 보면 요즈음 말로 여당에 반대자들을 즉 민주 인사들을 토벌하는 특수부대라고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1980년 광주를 피 바다로 만들었던 공수부대 격이라고 난 말하고 싶다. 아래 유신틀과 같이 설명이 있다.
9, 충무틀- 이순신(1545-1598) 조선시대 명장이요, 1592년에 임진왜란 때 왜선 407척을 격파한 분, 군인 중에서도 참 군인. 철갑선 거북선은 오래 전에 있었음. 충실한 관리였다. 대단한 애국정신을 가진 군인이었다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왜놈 문화로 즉 동작으로 다시 예속을 시켜버렸다. 이것은 엄청난 사대 매국이며 민족적 모욕이다.
이 충무공 귀선가(龜船歌)
저승의 충무공을 모셔올수 있다면
흉중에 신묘한 지략이 있으리니
거북선을 만드신 슬기를 짜내시면
왜놈들은 살려달라 빌고
양놈들은 달아나겠지.
시인 황현(1855-1910) 전라도 광양 서석촌 태생.
10, 광계틀- 고구려 19대왕 광개토대왕을 뜻함.
이분께서 아들 연개소문이라는 아들을 두었으나 이 연개소문에 두 아들이 있었다. 남생과 남건을 말한다. 이 두 형제의 원수적 다툼이 없었다면 저 - 거대한 땅은 현재도 우리 것이었을 것이다. 이 두 형제가 남 종교로 다투다가 나라를 빼앗기고 말았다. 결국 자식문제로 저 - 널은 땅을 남에게 다주게 되였고 우리민족에 결국 큰 죄를 남기게 된 계기가 되였다.
11, 포은틀- 고려국의 충신 정몽주(1337-1392).
묻노니 이 다락을 누가 세웠던가
내 이제 다락에 올라 오래 머무노라
십년 세월 헛되이 모든 일 잊었다
옛 싸움터 바라보니 눈물이 절로 솟네.
고려 말을 상징하는 단심가(丹心歌)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그럼 위 충신이 친명파였는가, 아니었는가는 더 세월이 필요로 하는가? 친명파가 안 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 시절에 말이다. 그러나 무도에서는 공격 방어인 기술면에서와 인격문제에서 반올림이 없고 자기완성을 100%를 원하는 것이 무도다, 라고 보는 자다.
12, 계백틀- 지혜의 백제가 완전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오직 남은 백제의 영웅 계백 장군 ?-660년 백제 말엽의 장군, 화랑도 김유신과 당나라 장군 소정방이 처 들어 왔을 때 상황을 판단 자기 식구들을 모두 죽이고 전쟁터에 나가 끝까지 싸워 장렬히 인간의 의(義)의 참 역사를 군인의 역사를 애국의 역사를 만든 분.
13, 의암틀- 손병희(1861-1922) 천도교 교주, 독립 운동가이었으나 동학을 종교로 만든 사람. 말하자면 동학의 민족적 대 정신을 불구자로 만들어 버린 격이다, 라고 보는 자다.
14, 충장틀- 김덕령(1567-1596)조선시대 의병장 임진왜란 때 담양에서 의병을 일으켜 성공함. 임진왜란 때, 이 충장 못지아니한 우수한 위대 했었던 장군들 및 의병장들을 쓰라면 책이 몇 권이 나와야 할 것이다.
15, 고당틀- 조만식(1882-?) 민족운동가, 정치가. 오산학교 교장 및 기독교인. 기독교식 민족 관을 가지셨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외래 종교에 심취된 자는 절세의 애국자라고 하기에는 조금 뭐하나 우수한 애국자였고 지도자였다고 보나 민족 항일 운동가들을 대표할 수는 없다고 보는 자다.
16, 삼일틀 - 1919년3.1 운동은 대단했었다. 그런데 이 때 33인은 스스로 걸어가서 신고하여 모두 배신하고 2명만이 단단히 지조를 지켰었다 한다. 그 분들은 백용성 스님과 한용운 만해 스님뿐이다. 민족에 역적 이완용이의 집 인사동 태화관에 29명이 모여 성명서를 한용운 만해가 읽었으며 이때 천도교인들로 주축이 되었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3.1절 때 왜놈들에 의한 사망자 7천5백09명, 부상자, 1만5천9백6십1명. 그리고 왜, 여기에서 4.19혁명은 빠졌는가? 이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왜놈 문화로 즉 그 동작으로 다시 예속을 시켜버렸다. 이것은 엄청난 사대 매국이며 민족적 모욕이다, 라고 보는 자다.
3. 1
황하수(黃河水) 건너 부는 바람
피바람 한숨바람
아아 이날에 수만의 무고(無辜)
왜(倭)칼에 왜(倭)총에 맞고 죽단 말가
오오 언제나 류혈(流血)로 끝나리
언제나 끝나리
거룩한 싸움 의로운 싸움
어느덧 1년이로다
지하(地下)의 의로운 영령(英靈)
철창(鐵窓)에 자는 용사(勇士)
그러나 안심(安心)하소서
안심하소서
자유(自由)의 해빛이 정의(正義)의 기빨이
새 광채(光彩) 발(發)할 날 머지 않나니
머지 않나니
노예(奴隸)의 쓰라림
압박(壓迫) 악형(惡刑) 학대(虐待)
아아 생각만 하여도 소름이 끼친다
내 아우 채우던 모습
내 누이 끌리어 가는 모양
내 부모의 여윈 혼(魂)
아아 아직도 이 눈에 암암하다
죽어도 이 기반(羈絆-자유를 구속하는 일) 면하고 말리라
이 기반(羈絆)은 면하고 말리라
천만번(千萬番) 다시 죽어도
독립은 하고야 말지어다
왼 천하 다 막아도
독립은 하고야 말리라
3천리 피우에 뜨고
2천만 하나도 안남아도
독립은 하고야 말리라
이가슴 뛰는 피 정의(正義)의 피
이팔뚝 흐르는 피 자유의 피
이피를 뿌릴 때
영광의 무궁화(無窮花)
다시 피리라
그리운 조국강산 (祖國江山)
환희(歡喜)에 차리라
환희(歡喜)에 차리라
김 흥-1920.3.1. 독립신문(상해판)
새 빛
어두운 밤의 막(幕)이 열린다
새 빛을 띤 해가 동산에 떠오른다
아아 이날에 한족(韓族)이
열광(熱狂)의 기쁨으로 새빛을 맞는도다
3천리 산에 들에 서기(瑞氣-상서로운 기운)가 차고
3천만 살과 뼈에 선혈(鮮血)이 뛰도다
영원(永遠)히 이따에 광명(光明)을 비최일
3月1日의 새빛
자는 자(者)여 아침이 니르렀다
갇힌 자여 옥문(獄門)을 깨트려라
아아 이날의 한족이
붉은 피로서 자유를 부르짖는도다
3천리 풀과 나무 2천만 입살이
뜨거운 만세(萬歲)로 떨도다
영원히 이따에 복락(福樂)을 주고
영원히 이 자손(子孫)의 자유를 비는
3月1日 ! 만세(萬歲)
내 팔을 찍으라, 다리도 버히라
창으로 찌르라, 총으로 쏘라
아아 이날에 한족의
불같은 용기(勇氣)가 나타나도다
그 목숨이 없어지는 마지막 순간에
그는 락원(樂園)에 노래하는 자손(子孫)을 보도다
그 피줄기를 따라 내려온
이 피줄기를 따라 내려갈
무궁(無窮)히 전(傳)할 이날의 용기(勇氣)
모든 누추(陋醜-지전분하고 더럽다.)를 이날에 태우다
모든 죄악(罪惡)을 이날로 씻다
아아 이날의 한족이
피의 세례(洗禮)로 다시 살도다
다시 산 아들 딸의 어여쁜 얼굴에
지하의 조령(祖靈)들이 웃음을 띄시도다
새로운 때에 새로히 살아난
새로운 목숨으로 새로히 살아갈
한족(韓族)에 복(福)이 있으라. 류 영 1920.3.1. 독립신문 상해판.
17, 유신틀 - 김유신(595-673) 사대의 시조 태종 무열왕 김춘추(604-661) 휘하 화랑도 신라 장군, 나당을 업고 평화의 나라 무기를 녹여 쟁기와 괭이 삽을 만들어 쓰던 백제와 그 큰 땅 고구려를 망하게 하여 이 코리아를 확 쪼그라들게 한 자임. 태종 무열왕 김춘추와 화랑도 김유신 겹사돈이 삼국통일 한 것. 그러나 삼국 통일이 아니다. 아래 글을 진지하게 쓴다.
당나라 장군 소정방(592-667)의 잔꾀의 몇 수에 놀아난 것은 소위 외교에 능수 능난 했다던 사대주의자 김춘추는 결국 남에게 그 널은 땅까지 주면서 빼앗기면서 예속이 된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이 때 유명한 장군은 사대주의자 화랑도 이였던 김유신(595-673)은 김춘추(태종 무열왕=604-661)와 동서지간이다. 그 외 부하들 그 들의 명령에 의해서 무고한 생명들을 무지막지하게 살상한 자들이다.
바로 그때 그 므렵 민간 청년 단체 화랑도는 관에서 운영 총 지도자에 국선(國仙, 源花, 花主) 그 밑에 화랑이 있었다. 이 화랑이 지켜야할 도리는 유, 불, 선(儒, 佛, 仙) 3교(敎)의 정신인데. 그것은 석가의, 공자의, 노자의, 가르침이었고, 화랑의 지도와 고문을 담당한 원광법사(圓光法師)가 귀산(貴山) 추항(箒項)하여 두 화랑에게 가르친 세속오계(世俗五戒)
1, 사군이충(事君以忠), 2, 사친이효(事親以孝), 3, 교우이신(交友以信), 4, 임전무퇴(臨戰無退), 5, 살생유택(殺生有擇) 이것만 보아도 완벽히 세뇌 되여 인형이 된 것이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慈悲)였는가! 말하자면 화랑의 정신은 유가덕목(儒家德目)인 충(忠), 효(孝), 신(信), 용(勇), 인(仁)을 철저히 가르쳤지만 그것이 모순이고 위선 이였다. 그 모순은 완벽히 삼천포로 빠지는 어긋난 살인을 밥 먹듯이 했던 위선의 행각을 했었다. 즉 화랑정신은 인(仁), 도(道), 예(禮), 덕(德), 의(義)가 전혀 없었던 정치 깡패 살인 집단 이였다.
왜냐하면 ! 물론 이 때의 시절을 너무도 욕심이 많게 요구하는지는 몰라도 화랑도에서 인(仁)이란 글자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인(仁)이란? 남을 공경하기 위해 마음을 닦는 것이 인(仁)인데, 즉 사랑인데 화랑에서는 남을 위해 인(仁)을 사용한 것이 아니고 권력이 사용하기 위해서 있었던 것이다.
또 충(忠)과 효(孝)와, 신(信)과, 용(勇)만 있지 남을 공경하기 위해 나를 올바르게 하는 것인 예(禮)도 없고. 또 남을 공경하기 위해 나를 희생하는 것이 의(義)데 이 의(義)가 없다. 특히 지혜로운(智)은 공경을 통해 남을 용서하고 관용을 베푸는 자비 같은 것도 없다.
특히 남을 위해 자기를 버릴 수 있어야 하며 불의(不義)는 목숨을 걸고 거부해야 한다. 그것이 사람과 그 사회를 나라를 공경하는 도(道)인데 이것도 없고 즉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옳은 것과 그릇된 것을 확실히 구분하여 사람들을 살게 해주고 사람들의 생활 윤택과 의식수준을 높여주게 해주려고 힘쓰는 도(道)가 없다. 더더욱 생명의 근원인 덕(德)이 없는 단체가 화랑도였던 것이다.
삼국사기에는 진흥왕 37년(576)이나 그 보다 전인 진흥왕 23년 (562)에 이미 화랑은 가야 정벌에 종군하여 대야 성을 공격하여 큰공을 세웠다. 그러니까 이전부터 있었던 공동체를 후에 국가적으로 편제 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한 예로 진평왕 19년(597) 백제와 싸움에 나아가 적진 돌진 임전무퇴의 정신을 보여 준 적도 있었다. 그러니까 200여명의 훌륭한 업적, 말하자면 신라 삼국 통일에 크게 기여했다 함은 그 만큼 살인을 많이 했다는 것인데, 요즘 말로 하자면 정치 깡패 집단이었다, 즉 특수 게리라 부대였던 것이다.
화랑이 있었기 때문에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을지 모르겠지만 당 나라 소정방을 끌어 드리지 말고 고구려 장군이나 백제 장군을 끌어드려 김춘추와 김유신의 그 특유한 간교(奸巧)한 머리로 백 번 이용했다면 오늘날과 같이 우리나라 땅덩이가 작은 나라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나마도 잘려 있지만).
통일신라의 민족통일국가 수립은 우리 민족사에 엄청난 통한(痛恨)의 족 적을 남긴 치욕(恥辱)이였다. 왜냐하면 동족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당나라라는 외세를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외세를 업고 같은 민족을 멸망시켜 백제와 고구려의 유민이 조국을 등지게 하는 반민족적.
외세 의존적 통일이었고, 민족통일국가를 좁은 반도의 한 귀퉁이로 움츠러들게 하여 만주벌판에서 웅비하던 우리 민족의 위상을 위축시킨“역사 갈림길”이였다 라고 말하면서 신라에 의한 민족통일은
첫째, 당나라라는 외세를 끌어들어 동족을 멸망시킨 반민족 공동체적이고 반 자주적인 통일 이였다.
둘째, 엄밀한 의미에서 3국 통일이 아니라 백제를 신라의 지배로, 고구려를 당의 지배 아래에 놓아 민족을 분단시킨 2국통일 이였다. 일부 학계에서는 신라와 당나라 사이의 사전 합의가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역사적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이와 유사한 구도가 형성 되였고 또 이러한 결과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을 멸하는 반민족행위를 자행한 통일 이였다.
셋째, 민족구성원을 끌어안아 공동체의 일원으로 포섭하기보다는 백제와 고구려의 일부를 내부 식민지화하여 수많은 백제 유민이 신라의 노예가 되기보다는 일본으로 이주하게 한 지배 종속의 통일 이였다.
넷째, 이렇게 영토 적 통일과 민족적 반 통일성은 그후 조선 초기까지 무려 800백년 이상 민족적 질곡과 멍에를 남긴 통일 이였다. (통일시대의 북한 학-강정구, 210-211쪽=당대)
소설가(45-50여권의 책을 씀) 국문학자 정비석(1911-1991) 선생님은 아래와 같이 비통해 했다. 자고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은 만고의 진리다, 라고 하시면서 - 고구려와 백제, 신라는 같은 조상의 피를 받아 오는 동족 국가들이다. 그런데 집안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피가 다른 당나라 군사들을 불러들였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한 처사였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설사 세 나라가 통합을 못하는 한이 있어도 혈통이 다른 당나라의 도움만은 받지 않았어야 옳을 일 이였다. 신라는 이민족의 도움으로 삼국을 통일했다가,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던 것인가.
고구려는 북방에서 새로 일어난 이민족 국가들로부터 끊임없는 침략을 받아 오고 있는데다가, 남쪽에서는 동족 국가인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에 급급하여 이 민족인 당나라와 연합군을 형성하여 남과 북으로 고구려를 협공해 왔기 때문이다. 신라가 만약 이민족인 당나라와 손을 잡고, 고구려를 치지 아니하고 동족 국가인 고구려와 힘을 모아 당나라로 쳐들어 갔드라면, 오늘날 광범한 만주 전역은 우리네의 국가가 되어 버렸을 것이 아닌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진리를 신라는 그러한 진리를 모르고 이민족의 힘을 빌려 동족 국가를 멸망시켜 버렸기 때문에, 그로 인해 우리 민족은 결론적으로 약소민족의 비운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위해 이 민족인 당나라의 도움을 받아 동족 국가인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것은 신라 무열왕(김춘추)과 화랑 김유신이 있을 때의 일이었다.
일반적으로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을 김춘추와 화랑 김유신의 위대한 업적 이였다고 찬양해 오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민족사적 견지에서 볼 때, 그러한 견해는 과연 올바른 비평이었을까?
무열왕 김춘추와 화랑 김유신은 삼국 통일에만 급급한 나머지, 이민족인 당나라의 힘을 빌려 동족 국가인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켜 버림으로써 고구려가 이미 점령하고 있던 광대무변한 만주 대륙을 이민족에게 도로 빼앗겨 버리고 말았다. 그나 그뿐이랴. 우리 민족은 약소민족으로 전락됨으로써, 당나라의 뒤를 이어 일어난 원(元) 명(明) 등의 이민족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시달림을 당했던 것인가 ?
그렇게 따지고 보면, 김춘추와 김유신이 이민족의 힘을 빌려 동족 국가를 멸망시킨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한 일이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라는 이민족의 힘을 빌려 동족상잔의 불상사를 일으켰기 때문 이였다. 옛 글에서 보면 형제끼리는 비록 담 안에서는 싸울망정, 외부에서 덤벼올 때에는 모두가 힘을 모아 막아내야 한다. 신라와 고구려와 백제는 비록 싸우기는 하드라도, 형제간의 싸움에 이민족을 불러들인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었던 것이다.
국가의 흥망은 수시로 반복 되여도, 피가 같고 말이 같은 동족은 언제나 공동 운명체인 것이다. 무열 김춘추와 화랑 김유신은 그와 같은 영원한 진리를 몰랐기 때문에, 목전의 소(小)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민족적인 대의(大義)를 그르쳐 버렸던 것이다. 그로 인하여 천여 년 이상이 경과한 오늘에도 우리 겨레는 약소민족의 비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김춘추와 김유신은 영토가 귀한 줄만 알고 피가 귀한 줄은 모른 까닭에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고 큰 우(愚)를 범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하여 우리 민족에게 사대주의 사상이라는 천년화근(千年禍根)까지 심어 놓았다. 신라는 남의 힘을 빌려 삼국을 억지로 통일했기 때문에, 힘을 빌려준 나라에 대해 머리를 굽신거려야 할 것은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신라는 당나라를 종주국으로 섬겨 왔었다.
그 후에 당나라가 원나라와 청나라로 바뀌고, 신라가 고려로 변했다가 조선 왕조로 바뀐 뒤에도 그들은 우리나라를 항상 종속국 취급을 해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5백 년 동안 상납하고 살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와 같은 사대주의 사상은 우리 민족의 사기를 위촉시키는 데 커다란 작용을 해왔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한 일들을 생각하면 무열왕 김춘추와 화랑 김유신은 삼국통일의 영웅이 아니라 우리 겨레의 영원한 죄인이며 역적이다, 라고 생각한다.
18, 최영틀- 최영(1316-1388)고려시대의 명장이다. 정치적 라이벌인 최영 선배 장군은 후배 리성계(1335-1408) 하관한테 죽음을 당한 자임. 내 목에서 흰 피가 나올 것이며 내 묘지에는 영원히 풀(잔디)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한 분. 이 리성계는 우리민족을 5백 년 동안 도탄에 빠지게 한 매우 나쁜 역사를 남긴 자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최영은 지조가 강한 자지만 하관에게 죽음을 당한 조직에 군인으로서 조직 면에서 미흡했던 자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19, 연계틀- 연개소문(?-665), 642년에 구테타를 이르켜 영류왕 및 귀족 100여명을 살해하고 로보트로 보장왕을 세워 놓고 스스로 대권을 장악하였고, 신라 김춘추와 화평을 하라고 당나라의 압력을 거부하고 백제와 함께 당황성을 점령하였으나 끝내 신라와 당에 의해서 사후 자식의 부패된 정치로 인하여 저- 고구려 큰 땅을 잃게 되였다.
또 한편 ‘제주대 안창범 선생님의 말 -
(제정신을 차려야 나라가 산다.-92쪽) 종교 사상적으로 보면 연개소문의 장남 남생(男生)은 오두미교를 신앙하고 차남 남건(男建)은 불교를 믿어 형제 사이에 신앙이 다름으로서 서로 불신하고 권력투쟁 끝에 남생이 막리지의 직(職) 동생 남건에게 뺏기게 되자 적군인 당군(唐軍)에 가담하여 제 나라를 공격하였다.
그래서 나당(羅唐) 연합군은 피를 흘리지 않고 무저항 속에서 고구려를 쉽게 정복했던 것이며, 고구려는 멸망하게 되었다. 고구려가 멸망 원인은 여러 측면이 있었지만 사상측면에서 보면 외래 종교 때문 이였다 라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사대식민사관이라는 것이 부족한 지도자들만을 교육해서 부족한 민족으로 만들어 분노하지 못하게 했다. 즉 바보 민족으로 만들은 것이다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20, 을지틀- 불교인 승려 을지문덕(?-?) 고구려 영양왕 때의 명장군, 영양왕 23년(612년).
神策究天文 妙算窮地理 戰勝功旣高 知足願云止
신통한 술책으로 이 하늘을 뒤덮었고
기묘한 타산으로 이 땅을 갈라쳐 두었으니
그대 이미 드높은 전공을 이루었지 않았는가
이제 알만큼 안다면 끝내고 돌아갈 만도 할텐데 -
불교인 승려 출신 을지문덕 장군께서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보낸 시를 번안(飜案)한 것임. 살수(薩水=淸川江)에 수나라 군대 113만 3,800이 처 들어 왔을 때 수나라 군사 백만 명 이상이 을지문덕(乙支文德-?-?) 고구려 영양왕 23년(612) 때의 명장에 의해서 물고기 밥이 된 것을 수나라가 망하고 당(唐)나라가 된 뒤에 당나라 장수 축맹헌(祝猛獻)이란 자가 청천강에 와서 지난날의 치욕을 생각하고 절치부심(切齒腐心=몹시 분하여 이를 갈고 속을 썩임)하는 시(詩)를 읊었다.
수병이 다시 일어났으면 어찌 허무하게 졌을 것인가
이 나라 백성들을 모조리 마른 고기로 만들었으리라
그때에는 이, 설 같은 맹장이 한 명도 없었더란 말인가
지금은 부여까지 단숨에 밀고 내려가리라. 이런 오만불손한 시가 아직까지 내려오고 있다.
21, 문무틀- 사대의 시조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맏아들로 선 품의 딸 자의왕후 진덕여왕 4년(650)에 왕명으로 당나라에서 대부경의 벼슬 받았고 문무왕(?-681) 신라 30대왕. 아버지 김춘추는 화랑도 김유신과 당 나라와 연합하여 백제를 망하게 했고, 아버지가 사후 문무왕은 김유신과 당나라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망하게 한자임. 태권도교서-정연사-최홍희지음에는 신라 제13대왕이라고 했다. 이런 왕이 우리나라를 절대로 대표할 수가 없다고 보는 자다.
22, 서산틀- 서산대사(1520-1604) 정여립의 모반에 의해 투옥 곧 석방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왕의 특명으로 타종교인 불교인으로 국가에 공을 세운 자임. 서산대사: 임진왜란으로 나라의 운명이 위태롭게 되자, 산중에서 수도에 전념하고 있던 서산대사는 전국 사찰에서 모여 온 젊은 승려들 1천7백 명으로 승군(僧軍)을 조직하여, 승군을 몸소 거느리고 평양으로 달려가 모란봉 싸움에서 왜적들을 크게 깨쳐 부셨다.
나라가 망하면 불도(佛道)인들 어찌 유지할 수 있나 하시며 왜적들을 크게 무찔렀다는 소문이 널리 알려 퍼지자 그 승군의 수효는 5천여 명으로 불어났다고 한다. 승려의 몸으로 전쟁에 직접 가담하여 커다란 전공을 세운 것은 일찍이 불교 역사상 어느 나라에도 없었던 일이므로, 이는 불교사에 특기할 일이 아닐까 싶다. 어떤 종교도 그 나라 즉 그 백성들을 위하여 있어 존재하거늘 당연한 일이라고 본다. 오늘에 기독교, 천주교, 유교는 6.25 때 4.19, 5.16, 5.18 때 무엇을 했을까? 이때 명나라 장수‘이여송’은 ‘서산대사’에 대한 시의 칭송은
공리를 생각하지 않고
전심으로 선을 배웠네
이제 나라가 위급함을 알고
총섭이 산에서 내려오셨네.
無意圖功利 專心學道彈 令聞王事急
서산대사는 전쟁이 끝나고 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한 수는
만국의 서울은 개미집이요
천가의 호걸은 하루살이로다
달빛 밝은 창가에 허심히 누웠으니
무한한 솔바람 끊임없이 불어오네.
이 시를 역적을 도모한 시라고 했으나 선조 대왕은 궁중으로 불러 그 시를 오히려 크게 축하하며 대나무 그림에 -
잎은 붓끝에서 나왔고
뿌리도 땅에서 나온 것이 아니 요
달이 비쳐도 그림자가 없고
바람이 불어도 소리가 들리지 않은 것이오.
라고 쓰여 있는 것에 감탄 즉 죄가 없다는 시에 답을 -
소상강 대나무 한 그루
성상의 붓끝에서 생겨났습니다.
산승의 향을 태워 올리니
잎마다 가을소리를 띄워 옵니다.
특히 그러나 한편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는 왕을 호위해서 의주까지 피난을 갔을 뿐이지 직접 싸우진 않았다고 정직한 역사 기록이 있다. 물론 사명대사도 싸움을 지도하기는 했지만 직접 나서서 창칼을 들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영규대사(?-1592)는 전장에서 일본 사무라이들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했다는 기록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500명의 승병을 모아 의병장 조현과 함께 청주를 수복하였으니 곧이어 금산에 이르러 일본군과 격전하다가 700의사들과 함께 전사하였다 한다.
(민족통신 03.02.23 민족시인 진관스님 25시의 현주소라는 글에서) 그래서 서산 틀에 당연히 영규 틀이 들어가야 할 것이다. 꼭 승려 중 한분을 선택을 한다면 말이다. 여기 틀에 승려가 원효도 나왔고 을지도 나왔고, 서산도 나왔다. 불교인들과 기독교인들이 많다.
인간 고 최홍희는 모화사대사상을 가진 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공자, 맹자, 순자, 묵자를 섬긴 자다. 그래서 본인 림원섭은 1984-5년에 최홍희는 공자 목사(전도사)라는 별명을 붙어 주었었다. 어떤 말이나, 무슨 말이나 이 자는 공자는 맹자는 묵자는 순자는 어떻고 어떠했고 이 말에 의하면 어떠하다고 말을 언제나 한자다.
특히 고 최홍희는 9222년(2003년)05월19일에 도서출판 다음이라는 데서 출판한 태권도와 나라는 책 3권 452쪽에 쓰여 있기를 중국 연변 대학에서 말을 하기를 - 그리고 태권도의 정신수양은 동양철학 즉 공자, 맹자의 정신이 주축이 되어 있으므로 ITF가 번영하면 유교 사상을 전 세계에 알리게 된다고 하자 그들의 표정이 달아졌다.‘ 라고 쓰여 있다.
이렇게 정치 역사에 무식한 자가 ITF 태권도를 만들었다. 또 그러나 중국에 공자, 맹자 즉 유교 사상은 대한민국 성균관 대학이나 있지만 이미 모택동, 주은래 공산주의 혁명 시절에 완벽히 작살나 없어진 종교이고 이미 진즉에 중국인민들의 머리에서 잊혀지고 떠 난지 오래전의 시시한 퇴보적인 종교를 말을 하고 다니니 그 중국인들이 그 자를 어떻게 보았겠는가 말이다. 어쩌면 정신이 헷가닥 간자라고 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정치 역사를 모르는 사람이다.
또 공자, 맹자가 동이족(東夷族)인지도 모르고 또 리조 5백 년 동안에 이 유교는 무엇을 했는지도 모르고 있는 고 최홍희 장군이라는 자의 무식한 역사의식이 참으로 딱하다 못해 가엾고 애처롭다. 그래서 본인은 고 최홍희가 식민사관으로 만든 태권도가 얼마나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있는 것이 참으로 불쌍하다는 말을 아낄 필요가 없다고 당당히 말을 하고 싶다.
그래서 외국어로 번역하여 이 세상에 다 깔고 싶어도 행동을 못하는 용기에 통곡을 스스로 한다. 그러나 분명히 이런 옳고 그른 자료는 어디에선가 꼭 나오리라. 믿는다.
‘태권도와 나’라는 영문으로 번역된 책을 정독한 ITF 4단 Henry Martinez는 이 책은 매우 잘못된 책이라고 서슴없이 나를 찾아와 말을 했다. 이유를 물은 즉 자기 자랑만 있고 남들을 매우 나쁘게 썼기 때문에 소개할 책이 못된다고 했다.
23, 세종틀- 세종대왕(1397-1450)은 자기 고려국의 충신들과 동포를 엄청나게 살상한 리성계와 고려 충신인 정몽주와 많은 의인들을 때려죽인 그 5째 아들 리방언이의 3째 아들이다. 집현전 조직에 결재만 한 자이다. 우리 한글은 고조선의 나라를 세운 바로 뒤 단군왕검에 의한 "신지글자 72자의 창안이 있었다. 그 뒤 150여 년 뒤 고조선 3세 기륵환극 때 발표한 "가림토글자(38자-훈민정음 28자)가 있었다 한다. 이런 것이 모화사대주의자들에 의해서 변하였다고 한다. (신교문신문 266호 4쪽 2001년). 세종틀이 아니고 한글틀 이였어야 했을 것이다.
24, 통일틀- 통일은 어느 누구나 원할 것이다. 이 세대의 외세로 인하여 솔직히 통일은 멀다. 그 외세는 미 천민자본주의다.
그러나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왜놈 문화로 즉 동작으로 다시 예속을 시켜버렸다. 이것은 엄청난 사대 매국이며 민족적 모욕이다.
이 미국을 고 최홍희는 미국의 장단점에 대해서 공공연하게 말 한마디 아니 하였고 글을 낸 적도 없다. 즉 민족통일에 대해서 말은 많이 하고 있는데 주 핵은 피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ITF 태권도라는 글자로 당당하지 못하고 권력과 금력에 철저히 기회주의자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고로 민족 통일이라는 단어를 쓸 자격이 없는 자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자기 자서전에 자기에게 많은 개척사범들은 먹여 살리며 엄청난 도움을 주었건만 배신을 하고 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을 거짓과 사기로 매도 왜곡한 자다. 스스로 배신자였으면서도 남 보고 배신 자라했다. 자기는 장군 출신이요. 대사출신이요. 태권도 창시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직한 역사의 기록들은 불에도 타지를 아니 할 것이다.
태권도와 나라는 고 최홍희 회고록 책 3권 371쪽에는 대한민국 창군(군대 창설)에 참여 했다고 했지만 창설은 미군정(미국 군인이 한국에 침략으로 와서 정치를 할 때다.) 시절이므로 미군들이 한 것이고 고 최홍희 소위는 미 양키들의 하수인 즉 심부름꾼에 불과 했을 것이다. 기가 찰 노릇이다. 또 6.25 전쟁 때에는 일선에서 사단을 지휘 했다고 말을 거침없이 했다. 이 것은 작전 지휘권(통수권이 지금도 미군이 쥐고 있다.)이 미군에게 있으므로 미 양키의 용병으로서 자기 인민들을 죽이는데 미 양키들을 대신해서 자기 동족을 죽이는데 앞장섰던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것은 대단한 큰 병이다. 이렇게 고 최홍희는 자기 민족의 생명 앞에 부끄러움을 모르는 철면피하다 못해 매우 무식한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자다. 미국이 고 최홍희에게는 대 은인 일 것이다. 보급 장교, 정보장교, 사단장, 사령관, 참모장, 훈련소장 등등 두루두루 별 2개 소장까지 올라갔으니 말이다.
1945년09월08일 날 미 양키들은 침략으로 한국에 들어와서 엄청나게 양민들 약3-3백5십만을 살상, 학살하고 사과 한마디가 아직까지 없고 나라까지 두 개로 자른 미군정을 즉 미국(군)을 동경하고 있는 격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제에도 어제에도 오늘까지도 즉 58년째 미국이 군대(통수권)와 금융을 꽉 쥐고 식민지로 통치하고 있는 한국에서 미군들은 매일 5건의 범죄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 도둑, 폭행, 강도, 강간, 자연파괴, 살인 등등.
고 윤금이를 무참하게 국부에 맥주병을 박고 우산대를 박아 죽인 미 양키 야만인들 또 14살짜리 효순이 미선을 장갑차로 깔아뭉개 살인하고 남 땅에서 남 백성을 죽여 놓고 무죄로 양키 지들 끼리끼리 재판을 한 놈들을 동경하는 것이나 무엇이 다르며 -
만주에서 항일 투사들을 토벌하던 민족에 대 역적인 고 박정희가 술에 취하면 청와대에서 왜놈 군복을 입고 왜놈 군가를 목이 터져라 불었다는 것이나 무엇이 얼마나 그리 차이가 있을 것인가 말이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그러나 고 최홍희는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5.16 주체 세력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닌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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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견해:
* 위에서 간단히 설명을 한바와 같이 약 1400-737년의 예속 식민사관의 역사의식으로 ITF의 형(틀)을 만들 때 어찌하여 위에 많은 모화(慕華)사대주의자 및 불교인, 기독교인, 친미, 관료, 군인 등등들이 있으면서 아래에 쓰여 있는 정말로 깨끗한 청결한 충신과 절세의 애국자들은 어찌 빠졌냐 다.
몽고에 약120년 중국에 약5백년, 왜놈들한테 우리 민족이 36년 식민지 시절 소중한 가족들은 모두 흩어지고 온 몸과 맘을 받쳤던 청결한 분들을 골라 아래에 소개한다.
ITF 틀에서 참 애국심이 있어 정치, 역사의식이 진지하게 있었다면 이름 없이 희생된 분들을 위한 한 제목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없다. 인간 윤리 도덕의 의식문제다. 정치, 역사의식 문제다. 철학과 상식문제였다고 볼 수도 있다.
성 삼문(1418-1456=38세): 사육신에 한사람. 신념에 살아온 학자 최후의 시(詩)다. 최후의 순간에도 비겁한 태도를 추호도 보이지 아니했다. 그 시절의 고문을 인두로 지졌다는데, 그때 인두가 살에 다 아 식으니 애들아, 이놈들아 - 인두 식었다. 불 달아오너라 하며 큰소리로 고함을 쳤다 는 큰 분.
북소리 둥둥 인명을 재촉하는데
돌아보니 해는 저물어가는구나
황천에는 객주 집이 없을 것이니
오늘밤은 뉘 집에서 자야하는고
이때 세조가 추방한 단종을 영월까지 이송한
왕방연’이 눈물지으며 읊은 시조.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은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아이다
저 물도 내 맘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리씨 조선을 창립한 리성계 왕 정권은 왕씨 성씨를 가진 사람들을 깡그리 처단을 했다. 여기에서 리성계의 5째 아들 리방언이는 엄청난 살상을 서습 없이 했었다. 그리고 명나라에 완벽히 예속을 시켜 버렸다.
부패와 외세를 철저히 반대한 분들. 역적 리씨 조선 5백년 시대만 343번의 의로운 민란이 삼천리금수강산 곳곳에서 일어났었다. 이것에 대한 표현도 없다.
전봉준(1854-1895)장군: 전북 정읍 고부 분으로 부하의 배신과 지방민 한신현의 밀고로 체포되어 이듬해 처형되었다. 당시 많이 불렸던 노래 파랑새- 팔왕새(八王새)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사 울고 간다.
갑오농민전쟁을 주관하며 평등사상(전주화약)을 부르짖은 분.
그 해 1895년5월11일 사형을 당하던 날 전봉준 장군의 시:
때를 만나니 하늘과 땅이 힘을 모아주고
운이 다하니 영웅도 할 바가 없구나.
백성을 사랑하고 정의를 따랏난이
내 부끄러울 것이 없는데
나라 사랑하는 마음 그 누가 알아주랴
이준(1859-1907) 열사를: 기억 아니 할 수가 없다.
1907년 네달란드 헤이그에서 만국평화 회의에 고종의 밀명을 받고 4월22일 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상설을 만나고 싼트 피에텔 부르크에서 프랑스 말에 유창한 이위종과 합류 6월5일 날 의장을 방문 친서와 신임장을 전 했으나 일본의 방해로 참석에 자격 상실하여 울분에 활 복 자살로 순국했다.
석주 이상룡(1858-1932.5.12) 선생님은 어딜 갔나
이미 내 논밭과 집 빼앗아 가고
다시 내 아내와 자식 해치려 하네
이 머리는 차라리 자를 수 있지만
무릎 꿇어 종이 되게 할 수 없도다,
중국에서 철저히 싸우시며 이 시 한 수를 남기고 가셨다.
최익현(1833-1906) 문신. 학자. 의병장: 경기도 포천분, 1875년 대일 통산을 반대 귀양. 1894년 단발령 반대. 투옥. 1905년 을사조약 후, 1906년12월30일 항일의병장으로 전북 태인. 순창에서 활동하다 일제에 체포되어 쓰시마섬(대마도)에 유배 중에 단식 “ 내 늙은 몸으로 어이 원수의 밥을 더 먹고살겠느냐. 너희나 살아 돌아가 나라를 구하라 라고 말하고 왜놈들이 주는 물 한 방울도 마시지 아니하고 굶어 돌라가셨다.
백발을 휘날리며 밭이랑서 뛰어남은
초야의 충성심을 바치려함이로다
왜적을 치는 것은 사람마다 해야할 일
고금이 다를쏘냐 물어 무엇하리오. 최 익 현
림병찬(1851-1916-의병장): 전북 옥구 사람. 스승 최익현과 1905년6월 전북 태인에서 80여명의 의병과 순창에서 400명 의병을 이끌고 관군. 일군과 싸우다 체포. 거문도에서 단식 굶어 돌라가셨다.
이강년(1858-1908)의병장: 경북 문경 분 유인석, 민긍호 같이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낙향하여 1894년 동학혁명 때 문경의 동학군을 지휘하여 일본군과 탐관오리를 무찔렀다. 또 단양에서 다시 봉기하여 제천 전투에서 500여명 왜적섬멸, 1907년7월 청풍 황강 전투에서 왜적 600여명을 사살 인제. 안동 등지를 중심으로 큰 승리 그후 금수산 전투에서 부상 체포되어 사형 당했다.
우 덕순(1876-?) 열사: 이분은 조도선과 함께 콴청쯔역에서 대기(잡혀 3년을 살다 다시 탈출). 만약 안중근 의사가 대기 중인 역전이 아니고 이역 전에 히로부미(이등박문)가 왔다면 우덕순에 의해서 죽었을 것이다. 이렇게 한 순간에 의해서 역사는 바뀌나 보다. 그러니까 두 의인이 두 역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 우덕순 동지는 경흥 회령일대에서 일본군과 교전 때 체포되어 7년형을 받은 후 탈출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안중근 의사를 면회 만나서 안중근 동지의 시를 들고 나온 거인이다.
보난(는)대로 죽이리라.
만낫도다 만낫도다 너를 한번 맛나고자
일평생에 원했지만 하상견지만야(何相見之晩也)런고
너를한번 맛나랴고 수륙(水陸)으로 기만리(幾萬里)를
혹은윤선(輪船) 혹은화차(火車) 천신만고(千辛萬苦) 거듭하야
노청양지(露淸兩地) 지낼때에 앙천(仰天-하늘을 우러러) 기도하길
살피소셔 살피소셔 주야소(主耶蘇-주예수)여 살피소셔
동반도(東半島)의 대제국(大帝國)을 내원(願)대로 구하소셔
오호라 간악(奸惡)한 노적(老賊)아
우리민족 이천만을 멸망(滅亡)까지 식혀노코
금수강산(錦繡江山) 삼천리를 소리없이 뺏노라고
궁흉극악(窮凶極惡) 네수단을
중 략(미상) ----
지금네명 끊어지니 너도원통(寃痛) 하리로다
갑오(甲午)독립(獨立) 씩혀노코 을사체결(乙巳締結) 한연후에
오날네가 북향할쭐 나도역시 몰낫도다
덕(德)딱그면 덕이오고 죄(罪)범하면 죄가온다
네뿐인줄 아지마라 너의동포 오천만(五千萬)을
오날부터 시작하여 하나둘식
보난대로 내손으로 죽이리라. 우덕순 열사의 노래
문 용기(1878-1919) 선생: 독립 운동가는 전북 익산사람. 군산 영명 학교 교사로 있다가 3.1 운동이 일어나자 이리(익산=옥구) 장터에서 군중을 지휘 독립선언서를 나누어준 후 태극기를 들고 시가행진을 하던 중 출동한 일본 경찰 놈이 무차별 사격을 감행하자 이를 규탄하는 연설을 하다. 일본 순사의 칼에 오른 손을 잃었다. 이에 다시 왼손에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소리높이 외쳐 왼손마저 절단 당했으나 이젠 맨몸으로 군중을 지도하다가 일본 놈 경찰의 칼에 찔려 돌라 가셨다.
장 인환(1877-1930년)의사와 전 명운(1884- ?): 두 분다 평양사람, 미국에서 노동하고 있던 중, 융희 2년(1908.3.21) 대한제국 정부의 외교고문인 미국의 스트븐스가 휴가차 귀국하여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의 한국 침략을 찬양한 사실에 격분하여 그를 죽이기로 결심하고 마침 스티븐스가 오클랜드역에 내리는 것을 이용하여 전명운은 쇠망치로 얼굴을 강타하고 격투를 벌이던 중 이때 장인환의사는 스티븐스를 권총으로 쏴 죽게 하였다. 이때 법정에 선 위 두 영웅들에게 통역을 부탁 받은 친미 사대 매국노 리승만은 기독교인은 살인자들의 통역을 하지 않는다며 도움을 거절한 사실도 있다 한다.
박 은식(1859-1926년): 황해도 황국사람. 대한매일신문 주필, 독립신문, 한국회보, 박달학원 설립, 1924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 제2대 대통령에 선임.
김 창숙(1879-1962년): 경북 성주사람. 1909년 일진회, 매국노들의 한일 합방론을 반대 성토문, 중추원, 유림사 진정서 등등을 국한문 및 영어로 번역 전 세계로 보냈다. 1946년 유도회 조직 성균관대학 설립 초대총장. 6.25 전쟁 후 이승만 하야 경고문 사건으로 투옥되기도 하였다.
나 석주(1892-1926년): 황해도 재령사람. 23때 만주로 망명. 1926년12월28일 식산 은행과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을 던지고 일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다가 마지막 1발로 자결 순국했다.
백 정기(1896-1936년): 전북 정읍사람. 3.1운동 당시 독립선언문을 고향으로 가저와 만세운동 선동. 그후 일본으로 건너가 무정부주의자연맹에 참석 후, 중국 청진에 일본 총영사와 군사령부를 습격하고 중국에 일본대사 이리요시를 암살하려다 체포 무기형 순국했다.
이 봉창(1900-1932년): 서울 사람. 일본 천황 암살 사명을 띠고 1월8일 일본 천황 히로히토가 만주국 황제 푸시와 함께 도코교외, 요요기 연병장에서 베풀어진 관 병식의 참관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목인 시쿠라디몬 밖에서 수류탄을 던졌으나 명중하지 않고 실패했으나 태극기를 꺼내들고 만세를 부르다가 체포, 사형선고를 받고 도코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33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대 침략 살인자 알렉샨더 대왕 역시 33세에 죽고,
예수 그리스도도 자기 나라를 위하다가 33세에 순국했고,
안중근 의사 33세에 순국했고. 윤봉길의사도 33세였고
허형식(1909-1942, 8월)장군도 33세 나이 전사했다.
이 허장군의 동료들은 견디다 어려웠던 많은 유격대원들이 소련으로 갔었다. 그러나 끝까지 남아 장렬히 전사했다.
홍 범도(1868-1943년): 평북 자성 사람.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전해듣고 후찬에서 의병을 이르키다. 1907년 차도선과 같이 갑산, 삼수, 북청 등지에서 친일 단체인 일진회 회원을 주살(誅殺)하고 1908,5월 차도선과 일본군 포로가 된후 500명을 데리고 귀순하라는 명령으로 일본경찰 10명 사살. 함남, 혜진등등 일본군 수비데 습격 1200명의 독립군을 이끌고 자성군 70여명 사살. 일본군 남양 수비대 및 19사단 병력으로 두만강 봉오동(鳳梧洞)전투. 그해 10월 청산리 이범석, 나중소, 박두희 김좌진장군과 같이 3300명을 북로군 제1연대장으로 참가한 장군.
김 좌진(1889-1930년)장군: 이 큰 분은 일본군을 자그만치 위 ‘홍범도’ 장군과 같이 3300여명을 사살한 청산리대첩의 명장. 개새끼 박상실에 의해 피살되었다.
향 조국진군(向 祖國進軍)
대포 소리 울려퍼져 만방에 봄이오니
푸른뫼 우리땅에도 새빛이 아름답다
달빛아래 산영(山營)에서 칼을 갈고
바람찬 철한에선 말을 먹여서
천리길에 뻗치도록 깃발을 휘날리고
하늘을 뒤흔들며 군악을 울리면서
십년을 풀섶에 누워 쓸개빨던 그담으로
원수나라 쳐부셔 비린티끌 쓸어보세. 백치 김좌진 장군의 시(詩)
청산리 싸움 때의 군가.
1. 하늘은 미워한다 배달족의
자유를 억탈하는 왜적들을
삼천리 강산에 열혈이 끓어
분연히 일어나는 우리 독립군
2. 백두의 찬 바람은 불어 거칠고
압록강 얼음 위엔 은월이 밝아
고국에서 불어오는 피비린 바람
갚고야 말 것이다 골수에 맺힌 한을
3. 하눌님 저희들 이후에도
천만대 후손의 행복을 위해
이 한 몸 깨끗이 바치겠으니
빛나는 전사를 하게 하소서.
윤 봉길(1908-1932년) 열사: 사망, 상하이 홍커우공원에서 폭탄을 던져 시로카와 대장을 죽이기 전 흔 것을 차고 계시던 김구선생님의 시계와 바꿔 찬 분, 이런 여유 있는 분.
(돌베개1.)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잔의 술을 부어놓아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양으로 성공자를 동서양 역사상 보건대
동양으로 문학가 맹가가 있고
서양으로 불란서 혁명가 나폴레온이 있고
미국에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바라건데 너희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어라.
청년 제군에게
피 끓는 청년제군들은 아는가 모르는가.
무궁화 삼천리 내 강산에
왜놈이 왜와서 왜 광분하는가.
피 끓는 청년 제군들은 모르는가.
되놈은 되와서 되가는데
왜놈은 와서 왜 아니가나.
피 끓는 청년 제군들은 잠자는가.
동천에 여명은 밝아지려 하는데
조용한 아침이나 광풍이 일어날 듯
피 끓는 청년 제군들아 준비하세.
군복 입고 총메고 칼 들면서
군악 나팔에 발맞추어 행진하세. 윤 봉 길 씀.
유 관순(1904-1920년): 큰누나, 손, 발톱을 빼가도 지지 아니하고 만세 부른 우리 큰 누님. 이 3.1일 운동에서 2만여 명의 동포가 살상 당했고 5만여 명의 동포가 체포 되여 고문당했다. 1919년 3월5일 서울학생들이 3월2일부터 시내의 전문학교, 중학교 학생들로 중심이 되어 선전 작업, 동원작업이 이뤄졌으며, 시위 당일에는 평양에서 수백 명의 학생들이 응원을 오는 등 지역간의 연계도 이루어지고 장소를 남대문으로 잡은 것은 고종의 장례식에 참관하고 지방으로 돌아가는 참배객들에게 운동을 전파하기도 했다. 이 때 시위의 지휘자들은 인력거에 올라 ‘조선독립’이라 쓴 큰 기를 휘두르며 만세를 외치는 것으로 시작 학생들은 연설과 삐라로 대중을 선동하고 광복 가를 부르며 시위했다.
단재 신 채호(1880-1936년): 선생 사망, 도둑질을 설령 한 단들 우리 민족을 위한 짓 이였다면 부끄럽지 않다고 법정에서 당당히 말씀 하셨으며 신사 참배가 싫으셔서 옷소매가 다 젖도록 고개를 숙이지 아니하고 아침 세수를 하셨으니 양쪽 팔은 그 추운 겨울에 얼마나 실으셨는지 알 수 있을 것 갔다. 또 이 분의 유언을 보자, 여순 감옥에서 내가 죽으면 시체가 왜놈들의 발끝에 채이지 않도록 화장하여 재를 바다에 뿌려 달라 하시였다.
이 신채호 선생님은 사학가, 혁명가 의열단의 조선혁명선언에서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 본 영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한 무기이다, 라고 하셨다.(단재 신채호).
특히 불교가 조선에 들어오면 조선의 불교가 되는 것이 아니고 불교의 조선이 된다고 하셨고, 유교가 조선에 들어오면 조선의 유교가 되는 것이 아니고 유교의 조선이 된다고 한탄하셨던 분이다. 또 지금까지 만약 살아 계셨다면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오면 한국의 기독교가 되는 것이 아니고 기독교의 한국이 된다고 통탄을 매일 하셨을 것이다.
물론 선생께서는 공자 놈을 시켜서 명분 설(名分說)을 지어 빈곤한 자, 천한 자를 구분하여 세력자의 명령을 잘 받아 충신, 열사의 명예를 후세에 끼쳐라 고 속이며 또 석가 놈과 예수 놈을 시켜 너희들이 남에게 고통을 받을지라도 이것을 반항 없이 따르면 죽어서 너희는 천국으로, 연꽃의 나라로 가리라 고 속이었다.
이러한 마취약들이 또 어디 있겠느냐 ? 이 천년 동안이나 크게 그 약효를 보았더니, 지금에는 그 약의 힘도 다하여 그 놈들이 점점 자각하여 반역이니 혁명이니 하고 떠드는구나 하신 대인 이였다.(신채호-안병직 편,76.12월).
한 나라 생각
나는 네 사랑
너는 내 사랑
두 사랑 사이
칼로 썩 비면
고우나 고운
핏덩어리가
줄줄 줄 흘러
나려 오리라
한나라 땅에 골고루 뿌려서
떨어지는 곳마다
꽃이 피여서 봄맞이하리. 신채호선생님의 시(詩).
백범 김구(1876-1949) 선생님의 말씀:
정확한 예언자
삼팔선 때문에 우리에게는 통일과 독립이 없고,
자주와 민주도 없다.
어찌 그뿐이랴.
대중의 기아가 있고,
가정의 이산이 있고,
동족의 상잔까지 있게 되는 것이다.”
선생이 생전에 남기신 어록은 적확한 예언자 말씀으로 당신이 운명하신 후
한 치 어긋남이 없이 그대로 오늘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황해도 해주 분, 이 때 정치 노선이 완벽히 다른 백범 김구 선생님의 말씀을 꼼꼼이 보자. 왜놈 장교를 칼로 꼽고 그 피를 빠라 먹었던 위대하고 거대하여 대담한 분 하늘이 낸 절세의 애국자 백범 선생님의 말씀을 좀 보자.
1948.3.12일- 김구, 김규식, 조소앙, 김창숙, 조완구, 홍명회, 조성환 등 애국인사 7인은 공동성명으로 남한 단독선거에 대한 반대의사 표명. 1948년2월8일- 마음속의 38선이 무너지고 땅 위의 38선도 철폐될 수 있다. 자기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하여 조국의 분열을 연장시키는 것은 전 민족을 사갱에 넣는 극악극흉의 위험한 일이다.
1948년3월12일- 우리는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가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정도냐 사도냐가 생명이라는 것을 명기하여야 하는 것이다.
1948년4월- 38선 때문에 우리에게는 통일과 독립이 없고 자주와 민주도 없다. 어찌 그뿐이랴. 대중에 기아가 있고 가정에 이산이 있고 동족의 상잔까지 있게 되는 것이다.
1948년6월7일- 통일이 없으면 독립이 있을 수 없고 독립이 없이는 우리는 살 수 없다.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려면 우리의 유일한 무기는 민족단결뿐이다.
1948년11월26일- 이 날 김구선생님의 기자회견에서 지금 우리의 삶이 일제시대만도 못하다고 (97,8,12,한겨레). 나의 소원 정치이념 - 어느 한 학설의 표준으로 하여서 국민의 사상을 속박하는 것은, 어느 한 종교를 국교로 정하여서 국민의 신앙을 강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옳지 아니한 일이다.
나의 소원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주장하되, 그것은 저 짐승들과 같이 저마다 제 배를 채우기에 쓰는 자유가 아니오, 제 가족을, 제 이웃을, 제 국민을 잘 살게 하기에 쓰이는 자유다.
백범일지 - 백범이라 함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천하다는 백정과 무식하다는 범부까지도 모두 적어도 나만한 애국심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하자는 내 원을 표하는 것이다.
나는 일찍 우리 독립정부의 문지기가 되기를 원하였거니와 그것은 우리나라가 독립국만 되면 나는 그 나라의 가장 미천한 자가 되어도 좋다는 뜻이다. 그 뿐인가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가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길 바란다고 말씀 하셨다.
또 황소 백 마리가 와서 나를 끌어 당겨도 우리 동포끼리(외세 간섭 없이) 담판하여 통일독립을 쟁취 코져 하는 나의 결심은 한치도 무너뜨릴 수는 없다고 말씀 하셨다.
1949년6.26일 안두희 의해서 암살되었다. 그후 딱 1년 후 1950년6.25일에 전쟁이 일어났다. 이 안두희는 2001년9월 초 뉴스에 의하면 미 씨아이씨 요원 이였다 했다.
집요하게 양키 첩자 안두희를 찾아, 인간 개를 찾아, 김구 선생님 살인자를 찾아
김용희, 곽태영, 권중희 의인들께서 결국 찾아
내가 널 그렇게 찾아서 심문 조사를 한다고 했다.
결국 버스 운전수 박기서 의인이 몽둥이로 때려 죽였다.
새 천년이 들어서서
항일의 대 민족시인,
윤동주(1917.12.30-1944) 이국 땅 베이징 감옥에서 옥사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두만강 - 시인 김규동
얼음이 하도 단단하여
아이들은
스케이트를 못타고
썰매를 탔다
얼음장위에 모닥불을 피워도
녹지 않는 겨울 강
밤이면 어둔 하늘에
몇 발의 총성이 울리고
강 건너 마을에서 개 짖는 소리 멀리 들려왔다.
우리 독립군은
이런 밤에
국경을 넘는다 했다
때로 가슴을 가르는
섬뜩한 파괴 음은
긴장을 못이긴 강심 갈라지는 소리
이런 밤에
나운규는 아리랑 썼고
털모자 눌러쓴 독립군은
수많은 일본군과 싸웠다.
지금 두만강엔
옛 아이들 노는 소리 남아 있을까
강 건너 개짓는 소리 남아 있을까
통일이 오면
할일도 많지만
두만강을 찾아 한번 목 놓아 울고 나서
흰머리 날리며
씽씽 썰매를 타련다.
어린 시절에 타던
신나는 썰매를 한 번 타 보련다.
* 날자는 모르지만 하도 시‘가 좋아서 썼습니다.
전태일(1948-1970):
아름다운 청년 노동가 노동운동가 정식으로 학교에 다닌 것은 2년 정도로 12세 때 서울로 올라와 날품팔이 생활을 하며 남대문 초등고등공민학교를 다녔다. 16세 때부터 평화시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미싱사, 재단사로 일하면서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고자 1969년에‘바보회‘. 1970년에 ’삼동친목회‘라는 모임을 만들고 노동청에 ’평화시장 피복제품상 종업원 근로 개선 진정서를 냈다.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고 여론화되자 노동청은 실태조사와 근로기준법 위반 업체의 고발을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다.
그래서 1970년11월13일 ‘근로기준법’ 책 화형식을 갖기로 한 날 그는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 기준법‘ 준수하라. 내 목숨을 헛되이 말라. 고 외친 뒤 온 몸에 석유를 붓고 분신자살했다. 그가 죽은 후 평화시장의 근로조건은 개선되었고 청계천피복노동조합이 결성되어 노동운동이 활기를 띠게 되었다. 현재 ’전태일 기념사업회‘ 등이 있어 매년 11월13일 그를 기리는 행사가 계속되고 있다.
조 문기(1924- ): 생존하심, 1945 부민관 폭발 사건 당사자임. 현 민족문제 연구소장 임.
이북에도 항일 투사들이 많을 것이다. 이분들의 성함을 모두 다 난 알고 싶다.
본인의 의견:
구 지 꼭 우리의 역사적인 인물의 존함 및 호를 따서 형(틀)을 만들고 싶으면
장보고(?-846) 장군은 어딜 갔고
신라시대의 무장 흥덕왕 때 당나라에 건너가 무령군 소장이 되었으나 당시 당나라 해적들이 신라 사람들은 잡아 노예로 매매하는 사실을 알고 급히 귀국하였다. 왕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고 1만여 병사를 얻어 청해의 진을 설치한 후, 청해진 대사에 임명되어 수병들을 훈련시켜서 해적을 완전소탕하고 해상권을 장악한 대단한 애국의 장군이다.
강감찬(948-1031) 장군은 어딜 갔고
고려시대의 명장으로 거란이 40만 군으로 침입하자 많은 조신들이 왕께 항복하기를 권하였으나 이 때 이 강감찬 만은 반대하여 하공진으로 하여금 적을 설득시켜 물러가게 한자다. 현종9년(1018) 다시 거란이 침입했을 때 20만8000을 이끌고 당당히 적을 무찔은 애국의 장군이다.
허균(1569-1618)선비는 어딜갔고
조선시대의 문신 선조 27년(1594) 임진왜란 때 조선의 봉건 체제의 모순을 반대했다. 한국의 최초의 소설인 홍길동전을 보면 알 수 있다. 성수복부교, 교산시화, 학산초록, 성수시화 등등 교조적인 주자학에 회의를 느끼며 반가(외세)를 든 양심이 있는 참 인간이다. 광해군 10년(1618)에는 하인준, 김개, 김우성, 반란을 계획 실패 가산을 몰수당하고 능지처참을 당했다.
의적 림꺽정, 장길산, 홍길동, 이 3 의적 중 단 한사람이라도 들어갔어야 했을 것이라고 보며 이 외도 엄청 많은 이름 없이 희생된 분들이 많은데 그 분들을 위한 칭호도 전혀 없다.
또 아리랑- 우리의 대표적인 민요. 이제 강점시 민중의 울분을 대변하는 노래. 나운규(1902-1937) 뜨거운 애국자며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영화인 한 때 홍범도 장군과 같이 독립군에 가담도 한 분이며 -
1926년-아라랑 (님 웨일즈 지음, 이 아리랑의 주인공 감산(본명은 장지락) 감독, 27년-나운규 프로덕션, 29년-벙어리 삼룡, 31년-개화당 이문, 36년-임자없는 나룻배, 36년-아리랑 제3편, 36년-마지막 작품 오몽녀, 그외 26편 원작, 감독, 주연- 풍운아, 들쥐, 흑과 백, 금붕어, 잘 있거라, 옥녀, 사랑을 찾아서, 사나이, 철인도 금강산, 칠번지소사건, 무화과, 그림자 등등이 있다.
그래서 ITF틀 24개의 역사를 모두 상속할 수 없다. 최소한 18-20개는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아니 확 빼버려야 한다고 보는 나의 견해다. 특히 동작 면에서 왜놈들의 문화 가라데 동작으로 만들었다고 보는 것은 동작이 아니 된 손이 허리에 온다는 것이고 틀(형)‘예 왼 쌍 팔목 막기에서 오른 팔목이 밖갓 팔목이고 가라데는 안 팔목이 되는 것이 차이다. 물론 두 팔목이 교차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동작에서 이치에도 맞지 아니 하고 상식에도 어울리지 않는 동작들도 있다.
태권도 신문 2001.9.3일자 2쪽에 “태권도 고대사는 가라데에서” 카나다 정순천씨 주장 중, “태권도 정체성에 대해 철(鐵)은 중국에서 나왔지만 그 철로 아폴로 만든 것은 미국이다, 중국의 철의 원류를 가지고 아폴로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는다. 가라데가 철이라면 태권도는 아폴로가 된다”는 말로 대신했다“. 이 말을 1976-1984년까지 귀가 뜨겁게 참 많이들은 이야기다.
이 말은 자기를 위안하기 위한 말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한 특허품을 특허청에 낼 때(본인이 특허권자임 Sweden Patent Nr, 511713), ’예‘를 들어 한 찻잔이 있다고 하자 그 찻잔에 한 손잡이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 찻잔에 양쪽에 손잡이를 만들어서 특허를 신청해도 그 신청된 특허품 찻잔은 허락이 아니 될 것이다. 주전자에 물 나오는 구멍이 두 개로 신청이 되어도 특허증은 나오질 아니할 것이다. 태권도에서 아래(낮은데) 막기를 가라데에서 팔목을 쭉 폈는데, ITF 태권도에서 약간 팔 꿈을 구부렸다고 특허품이고, 창시 품인가?
본인의 견해는 ITF 태권도 ‘틀‘은 창시(創始)한 것이 아니고 가라데보다 쪼끔 낫게 발전된 즉 우리 정서에 조금 어울리게 다시 말하자면 이름 및 용어를 우리말로 했다는 것이다. 그 것을 설립(設立)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조직화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틀‘을 만든 자가 자꾸만 정당화시키며 자기 자신을 요리 저리 피해가며 고민한 끝에 위안의 말을 찾아낸 것이 ’철‘과, ’아폴로‘인데 그 위선의 위안의 말에 동조하라면 난 절대로 할 수 없다.
한번쯤 솔직한 참 양심을 듣고, 보았으면 한다. ’태권도‘ 글자도 어느 누가 사전(옥편)을 뒤적거리며 찾아 낸 것인가를 알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래서 원나라에 약 120년, 중국에 약 510년, 일본에 36년, 미국에 58년째 즉 720년째 예속 생활을 하고 있는 어제까지의 사대식민사관에서 우리였다고 한다면 역사고, 철학이고, 동작들을 쪼끔씩 이름, 명칭, 용어를 복사해 바꿔 표절하였다면 정직하게 오늘은 과감(果敢)이 고쳐 나가고 당당히 바꿔 나갈 때 우리 역사에 모순을 준 이 틀에 대해서 후손들은 오늘의 지혜를 존경할 것이라고 봅니다.
“흐르는 물은 맑아지고 가는 역사는 정확해 질 것이다”. “지난 역사를 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록은 지울 수가 없는 것이고”, 불에도 타지 않는 것이며, 인간이 끝나고 나서 남는 것은 오직 남에게 준 것 뿐 일 것이다. 그러나 그 남는 것은 참 진리이다. 그리고 물은 낮은데 에 만 고이는 것! 그 물이 낮은데 고여서 철철 넘칠 때 다시 흐르는 것이다. 손바닥도 아니고 손가락으로 하늘을 고 최홍희는 가리려 했다.
1백보 천보 양보하고라도 ITF 틀에서 단재 신채호, 백범 김구 선생님 호들이 들어가지 아니한 틀은 존재가치를 의심하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고 최홍희 사상을 의심 아니 할 수가 없다. 철저한 친중, 친일, 친미 사대 주의자였는지, 기회주의자였는지 후손들은 충분히 말할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한편으로 태권도가 단추를 잘못 끼웠지만 서도 이 지구에 태권도 개척 사범님들의 영웅적인 희생정신에 의해서 보급이 되므로 정치, 경제, 외교, 체육에 많은 기여를 했다고 본다. 그래서 단점이 보이면 서슴없이 용기를 가지고 고쳐 나갈 때 오늘에 우리를 지혜 있는 자였다고 후손들은 말을 할 것으로 본다.
내 가죽 구두
(당(공)수도와 ITF와 WTF와 조국을 생각하면서)
4289년(1956년)에 짚신을 벗어 던지고 고무신을 하나 샀었지
4298년(1965년)에 새로 나온 운동화 하나 샀었지
4308년(1975년)에 튼튼한 가죽 구두 한 켤레 샀었지
동서남북에 자랑하며 아껴 신은 내 신
훨훨 날라 다니며
여기 먼 북 구까지 와서 -
10년이 지나니 물이 들어오고
20년이 지나니 모래가 들어오고
30년이 오니 큰 자갈이 들어와
9220년(2001년)09월21일, 씀.
부끄럽네
오늘이 한웅천황으로 9219년
단기로 4333년
서기로 2000년이 엄청나게 부끄럽네.
세월이 와도와도 부끄럽고
세월이 가도 가도 부끄럽네.
나이가 먹어가니 더 부끄럽네.
9219년(00년)12월29일, 씀.
오늘의 세상
위를 보나
밑을 보나
좌, 우를 보나
겉을 보나
속을 보나
복판을 보나
모두 다
부끄럼뿐이 없네 9220년(2001년)02월28일, 씀.
http://cafe.daum.net/wmhgf
www.amea.nu
끝까지 읽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WTF 품새와 ITF 틀에 대한 나의 견해.
대단히 감사합니다. 아래 글을 읽는 자들이여 -
아래 본인의 글에 얼마나 내 것과 남 것이 있는지 분별을 해보고 - 또 얼마나 중화사상을 가진 자들이 몇이나 되고 즉 친 중, 친일, 친소(러), 친미 즉 사대사상을 가진 자들이 몇이나 되는 지 구분을 해보시길 바란다.
그간 우리에게 이 외세들인 원나라, 당나라, 명나라, 청나라, 일본이라는 나라에 의해서 약4-5십 만권이라는 우리의 찬란했던 역사책들은 그 동안 불에 탔다. 이 외세들에 의해서 엄청난 분서는 깡그리 기록까지 태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과연 그 태권도 형(품새, 틀)들의 명칭들이 1만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배달민족인 삼천리금수강산을 대표로 할 수가 있는지 말이다.
그래서 사대 식민사관에 의해서 쓰여 진 아래 품새, 틀 명칭들이 얼마나 우릴 그 동안 또 앞으로 바보로 만들 것인지, 그 것에 대한 것들은 귀하들의 판단을 해 보길 빈다.
W. T. F (World TKD Federation) 품새는?
태극 품새에서 태극(太極)이라는 말은 태역(太易)-태초(太初)-태시(太始)-태소(太素)-태극(太極)이 발전해오면서 만물이 성립했다는 오운설(五運說)이라는 생선론을 중국 북송(北宋)의 사상가 주돈이(周敦頤-1017-1073)이의 역경에 의해 태극도설. 중국 남송(南宋)의 주희-주자(朱熹-朱子-1130-1200)는 기(氣)와는 다른 범주인 이(理)라고 해석 주자학(朱子學)의 태극설을 핵심으로 했다.
그래서 고려 충신들을 깡그리 때려죽인 세종대왕의 아버지 리방언(리성계 5째 아들)에 의해 이어진 상병신 리조 5백년(518년) 동안 중국에 매년 7십만 양씩과 사람까지 상납하며 교육받은 철학이다. 꽉 주려 한 마디로 ‘태극’은 중국인들의 점괘(占卦)라고 본다.
중국어를 전공한 김 경일 젊은 학자에 의해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고 책으로 써서 고함친 것과 같이 또 1세기가 훨씬 넘은 지금도 성균관(유림회-儒林會)을 비록 많은 유교 인들은 즉 모화사대 주의자들이 되지 말고 오직 학문으로만 했으면 좋겠다고 본다.
그리고 특히 이 태극 품새는 연무선 및 각 동작에서 일본의 문화 가라데(쏘도깐)와 매우 흡사하다. 즉 대한민국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것을 절대 상속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찌 본인뿐이겠는가 말이다. 이런 철학들보다, 이런 동작들보다 표절(剽竊-plagiarism-남의 시, 문장 등의 설, 또는 글귀를 가져다가 자기 것으로 발표함.)이 아닌 더 우수한 생각을 창조해야할 것이라고 늘, 항상 사색을 하며 연구하는 사람이다.
즉 동양 철학을 우리 철학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나 우리에게는 신선도 철학이 있다. 이 철학은 약 1만 년 전의 삼신사상으로 이 세상 모든 종교의 모체라고 할 수 있는 철학을 가지고 있는 위대한 배달민족이다. 불교 경전보다 약5000년이나 앞선 우리의 경전 천부경과 삼일신고가 있는 위대한 민족이다.
몽고와 중국에 약 640여년의 식민지 지배를 받을 때 또 36년 왜놈들에게 식민지로 수모를 당하며 살 때 우리의 매우 소중한 책 4-50만권을 이 못된 외세들은 깡그리 불살아(焚書)버렸다. 왜, 대한민국 역사를 열어보니 자기들의 선조였기 때문에 식민지로 지배하기가 어려우니 다 태워버리고 자기들보다 낮게 하려고 한 짓들이다.
그래서 우린 역사도 없는 즉 사대의 시조 신라 29대왕 태종 무렬왕 김춘추와 겹사돈인 화랑도 대 살인 집단의 수장인 김유신이나 이런 사대 자들 밖에 없는 것처럼 왜곡 매도 되어왔다.
그래서 우린 중국 철학인 태극(음양)철학이나 숭상하는 민족처럼 낮췄다. 그래서 오늘도 사대성이 짖은 소위 어용학자들은 우리의 참 역사를 자꾸만 왜곡시키고 있다. 고로 태극을 오랜 세월 쓰다보니 우리 것처럼 되였으나 이젠 우리 것을 찾아 쓰면 더 좋겠다고 보는 자다.
우리의 선조 환인, 환웅천황께서 창시한
우리 배달민족 삼신사상
불교, 유교, 모든 종교의 시조였던 그 삼신(三神) 철학은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우리 배달민족의 “경전”
즉 불교 경전보다 5000년이 앞선 이 엄청난 우리 역사 책
위대한 책 자랑스러워 당당한
“천부경, 참전계경, 삼일신고”는 아직까지 생생하게 씽씽하게 살아있다.
노상 대 강도 외세 원, 당, 명, 청이 약3십 만권
왜놈들이 51가지 책 종류들 약2십 만권을 깡그리 태웠어도
그 기록은 타질 아니했다.
그 기록들은 탈 수가 없었다.
이 경전을 태울 수가 없었다.
“하늘은 시작됨이 없이 시작한 하늘이라.”
“하늘 즉 우주는 시작됨이 없이 시작되고 끝남이 없이 끝나리라.“
“이 세상은 나는 것이 없음으로 돌아가는 곳이 없느니라.”
“땅은 땅이면서 하늘이고 사람이며, 사람은 사람이면서 하늘이요 땅이라는 말이다.“
“모습이 없이 볼 수 있고 함이 없으면서 모두 이루고 말 없으면서 다 행하였다.
“사람이 곧 하늘인데 어찌 사람 밖에서 신을 찾을 것인가?“
지중해 문화인 성경책(이스라엘 경전)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다.”고 하는 유치한 우주론과는 그 차원이 다른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을 큰 눈 뜨고 못 보고 못 읽었다 면
나는 내 눈깔을 확 빼버렸을 것이다.
오늘 03년12월 현재 중국은 고구려와, 발해, 고려를 즈그들 땅이라고 하고 을지문덕 장군까지 자기들 역사에 편입을 시키고 있지를 아니한가. 그러면 한국을 뺀 나머지는 모두 중국에 편승이 된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아니하면 모두 죽게 되여 있다.
I. T. F (International TKD Federation() 24개의 틀은?
1, 천지틀- 하늘과 땅 우주의 창조와 인간의 시초를 뜻한다고 되여 있고 연무선 + 자를 두 번 도는 것은 한번씩 하늘과 땅이라고 했는데 여기에 인간 생명에 대한 표현이 진지하게 없다. 즉 우리 신선도 철학의 근본인 삼신(三神-삼시랑) 하늘 신, 땅 신, 인간신을 말한다. 천지틀을 신선틀이나, 삼신틀이나 했어야 참 옳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2, 단군틀- 기원전 2333년에 이 나라 창조한 단군선조를 뜻한다고 했다. 우리 배달을 지금으로부터 9222년 전에 창조한 자는 한웅천황이시다. 9222-4336년=4996년 단군 선조 보다 4996년 전을 말 함이다. 단군틀 보다, 환웅틀이 있었어야 했다고 보는 자다. .
3, 도산틀- 안창호(1876-1938)선생 평생 독립운동을 한 분. 1913.05.13일에 센프란시스코에서 흥사단을 창설한 분, 우리 종교가 아닌 오늘에 침략 역사만 있는 지중해 문화 기독교인이었다. 이분이 많은 애국의 일을 하셨지만 이 분이 전 절세의 애국자들을 즉 항일투사들을 대표로 할 수가 없다고 보는 자다. 그러나 이분의 매우 훌륭하신 분이었다. 솔선수범하시는 분이었고, 거짓말을 매우 싫어 하시였으며 ‘너의 주위에 지도자가 없다면 너 자신이 지도자가 되라는‘ 말씀은 우릴 깨우치게 해 주셨다. 아래 이분의 시‘를 적어본다.
거 국 행 (去國行)
간다간다 나는간다 너를두고 나는간다
잠시뜻을 엇엇노라 깜을디는 이시운이
나의 등을 내미러셔 너를떠나 가게하니
이로부터 여러해를 너를보지 못할지나
그동안에 나는오직 너를위해 일할리니
간다고 슬허마라 나의사랑 한반도야
간다간다 나는간다 너를두고 나는간다
뎌시운을 대적타가 열혈들을 뿌리고셔
네품속에 누어자는 내형제를 다깨워셔
한 번기(氣)껏 해봤으면 속이시원 하겠다만
장래일을 생각하야 분을참고 떠나가니
내가가면 영갈쏘냐 나의사랑 한반도야
간다간다 나는간다 너를두고 나는간다
내가너를 작별한후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널때도 잇슬지며 서비이(西比利)와 만주뜰에
다닐때도 잇슬지라 몸은 부평(浮萍)하치
어느곳에 가잇던지 너를생각 할터이니
너도나를 생각하라 나의사랑 한반도야
간다간다 나는간다 너를두고 나는간다
즉금이별 할때에는 빈쥬먹만 들고가나
이후상봉 할 때에는 기를들고 올터이니
눈물흘닌 이이별이 깃분마지 되리로다
요풍폭우 기한이때 부디부디 잘잇거라
훗날다시 만나보자 나의사랑 한반도야 도산 안창호 시(詩)
4, 원효틀- 불교를 686년에 전수한자라고 한다. 도끼자국 사건으로 장가도 가며 유명해진 원효 대사는 설총이의 아버지로서 사대의 시조 신라의 29대 왕 태종 무열왕 김춘추와 겹사돈인 엄청난 살인자 화랑도의 수장인 김유신의 추종세력 이 엄청난 불의한 정치에 말이 전혀 없는 종교인이라 즉 특급 어용 종교인이었다라고 보는 자다.
5, 율곡틀- 이이(1536-1584) 조선의 공자라고 불리어진 모화(慕華)주의자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6, 중근틀- 안중근(1879-1910) 의사 님. 우리 외교권을 강탈한 1905년 을사조약 등. 왜놈을 대표하여 각가지 못된 짓을 하던 이등방문(1841-1909)을 저격한 분. 이등방문을 쏘고 그의 가슴에 한쪽 발을 올려놓고 대한민국 만세를 널은 중국대륙이 떠나갈 듯 여유 만만히 고함친 큰 어른 이였다. 1910년 사형장에서 마지막 말씀은 아 - 우리 민족을 살리는 영웅은 언제나 올 것인가! 라고 말씀 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왜놈 문화로 즉 동작으로 다시 예속을 시켜버렸다. 이것은 엄청난 사대 매국이며 민족적 모욕이다.
문(聞) 안중근(安重根) 보국(報國)
평안도 장사가 두눈을 부릅뜨고
양새끼 죽이듯 나라원수 죽였구나
죽기전에 들은 소식 하 좋아서
국화곁에 미친 듯이 노래하며 춤추네
해삼위 하늘가 맴돌던 독수리
할빈역 내려서자 벼락불 터졌네
육대주 호걸들이 깜짝 놀라서
가을바람 낙엽지듯 수저를 떨구네
예로부터 망하는 나라 어이 없으리
금성탕지(金城湯池-매우 튼튼하고 잘된 성지)
굳은성도 좀 도적이 헐었구나
하늘을 괴울만한 이런분이 있으니
나라는 망했어도 광채는 빛나리라.
김택영-1850-1927-이조후기 저항시인. 이것은 작자가
안중근의 의거(義擧)를 듣고 기쁨을 이기지 못해 읊은 한시(漢詩).
안중근의사의 시
거 사 가 (擧事歌)
장부가 세상에 처함이여 그뜻이 크도다
때가 영웅을 지음이여 영웅이 때를 지으리로다
천하를 응시함이여 어느날에 업을 이룰고
동풍이 점점 참이여 반드시 목적을 이룰지로다
쥐도적 쥐도적이여 어찌 목숨을 비길고
어찌 이에 이룰줄을 알았으리오
시세가 그렇게 하였구나
동포 동포여 속히 대업을 이룰지어다
만세 만세여 대한독립이로다
만세 만만세 대한 동포야 안중근의사의 시(詩)
이 이토 히로부미는 1909년 10월28일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님에 의해서 총맞아 죽은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1841-1909)는 과연 어떤 인물인가 ?
일본의 개화운동의 선각자 요시다 쇼인의 제자로서 단 22세였던 1863년에 밀항으로 영국에 건너가 개국론자가 되었고 1882년 독일에 가 독일 헌법을 공부한 자며 1885년에는 초대 국무총리를 했으며 청일전쟁을 수행했고 청국과 일본의 시모노세키 조약(고종32년-1895년4월17일)을 체결한 자며 주한 특파대사로 왔었고 1905년 을사조약(한국 외교권 강탈)을 강제로 성립하였으며 초대 한국 통감, 한.일 합방을 추진 성공한 놈이였다.
여기에서 11개조항 청.일 강화조약중 이홍장의 요구데로 첫째로 조선이 독립임을 승인했다. 그런데 약속을 어기고 반대로 을사조약을 체결한 아주 교활한 놈이다.
7, 퇴계틀- 한학의 대학자 이황(1501-1570) 모화(慕華)주의자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8, 화랑틀- 562년 혹은 576년 진흥왕 23년 37년에 가야, 백제, 고구려 등등 침략 한 역사 기록들을 보면 요즈음 말로 여당에 반대자들을 즉 민주 인사들을 토벌하는 특수부대라고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1980년 광주를 피 바다로 만들었던 공수부대 격이라고 난 말하고 싶다. 아래 유신틀과 같이 설명이 있다.
9, 충무틀- 이순신(1545-1598) 조선시대 명장이요, 1592년에 임진왜란 때 왜선 407척을 격파한 분, 군인 중에서도 참 군인. 철갑선 거북선은 오래 전에 있었음. 충실한 관리였다. 대단한 애국정신을 가진 군인이었다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왜놈 문화로 즉 동작으로 다시 예속을 시켜버렸다. 이것은 엄청난 사대 매국이며 민족적 모욕이다.
이 충무공 귀선가(龜船歌)
저승의 충무공을 모셔올수 있다면
흉중에 신묘한 지략이 있으리니
거북선을 만드신 슬기를 짜내시면
왜놈들은 살려달라 빌고
양놈들은 달아나겠지.
시인 황현(1855-1910) 전라도 광양 서석촌 태생.
10, 광계틀- 고구려 19대왕 광개토대왕을 뜻함.
이분께서 아들 연개소문이라는 아들을 두었으나 이 연개소문에 두 아들이 있었다. 남생과 남건을 말한다. 이 두 형제의 원수적 다툼이 없었다면 저 - 거대한 땅은 현재도 우리 것이었을 것이다. 이 두 형제가 남 종교로 다투다가 나라를 빼앗기고 말았다. 결국 자식문제로 저 - 널은 땅을 남에게 다주게 되였고 우리민족에 결국 큰 죄를 남기게 된 계기가 되였다.
11, 포은틀- 고려국의 충신 정몽주(1337-1392).
묻노니 이 다락을 누가 세웠던가
내 이제 다락에 올라 오래 머무노라
십년 세월 헛되이 모든 일 잊었다
옛 싸움터 바라보니 눈물이 절로 솟네.
고려 말을 상징하는 단심가(丹心歌)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그럼 위 충신이 친명파였는가, 아니었는가는 더 세월이 필요로 하는가? 친명파가 안 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 시절에 말이다. 그러나 무도에서는 공격 방어인 기술면에서와 인격문제에서 반올림이 없고 자기완성을 100%를 원하는 것이 무도다, 라고 보는 자다.
12, 계백틀- 지혜의 백제가 완전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오직 남은 백제의 영웅 계백 장군 ?-660년 백제 말엽의 장군, 화랑도 김유신과 당나라 장군 소정방이 처 들어 왔을 때 상황을 판단 자기 식구들을 모두 죽이고 전쟁터에 나가 끝까지 싸워 장렬히 인간의 의(義)의 참 역사를 군인의 역사를 애국의 역사를 만든 분.
13, 의암틀- 손병희(1861-1922) 천도교 교주, 독립 운동가이었으나 동학을 종교로 만든 사람. 말하자면 동학의 민족적 대 정신을 불구자로 만들어 버린 격이다, 라고 보는 자다.
14, 충장틀- 김덕령(1567-1596)조선시대 의병장 임진왜란 때 담양에서 의병을 일으켜 성공함. 임진왜란 때, 이 충장 못지아니한 우수한 위대 했었던 장군들 및 의병장들을 쓰라면 책이 몇 권이 나와야 할 것이다.
15, 고당틀- 조만식(1882-?) 민족운동가, 정치가. 오산학교 교장 및 기독교인. 기독교식 민족 관을 가지셨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외래 종교에 심취된 자는 절세의 애국자라고 하기에는 조금 뭐하나 우수한 애국자였고 지도자였다고 보나 민족 항일 운동가들을 대표할 수는 없다고 보는 자다.
16, 삼일틀 - 1919년3.1 운동은 대단했었다. 그런데 이 때 33인은 스스로 걸어가서 신고하여 모두 배신하고 2명만이 단단히 지조를 지켰었다 한다. 그 분들은 백용성 스님과 한용운 만해 스님뿐이다. 민족에 역적 이완용이의 집 인사동 태화관에 29명이 모여 성명서를 한용운 만해가 읽었으며 이때 천도교인들로 주축이 되었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3.1절 때 왜놈들에 의한 사망자 7천5백09명, 부상자, 1만5천9백6십1명. 그리고 왜, 여기에서 4.19혁명은 빠졌는가? 이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왜놈 문화로 즉 그 동작으로 다시 예속을 시켜버렸다. 이것은 엄청난 사대 매국이며 민족적 모욕이다, 라고 보는 자다.
3. 1
황하수(黃河水) 건너 부는 바람
피바람 한숨바람
아아 이날에 수만의 무고(無辜)
왜(倭)칼에 왜(倭)총에 맞고 죽단 말가
오오 언제나 류혈(流血)로 끝나리
언제나 끝나리
거룩한 싸움 의로운 싸움
어느덧 1년이로다
지하(地下)의 의로운 영령(英靈)
철창(鐵窓)에 자는 용사(勇士)
그러나 안심(安心)하소서
안심하소서
자유(自由)의 해빛이 정의(正義)의 기빨이
새 광채(光彩) 발(發)할 날 머지 않나니
머지 않나니
노예(奴隸)의 쓰라림
압박(壓迫) 악형(惡刑) 학대(虐待)
아아 생각만 하여도 소름이 끼친다
내 아우 채우던 모습
내 누이 끌리어 가는 모양
내 부모의 여윈 혼(魂)
아아 아직도 이 눈에 암암하다
죽어도 이 기반(羈絆-자유를 구속하는 일) 면하고 말리라
이 기반(羈絆)은 면하고 말리라
천만번(千萬番) 다시 죽어도
독립은 하고야 말지어다
왼 천하 다 막아도
독립은 하고야 말리라
3천리 피우에 뜨고
2천만 하나도 안남아도
독립은 하고야 말리라
이가슴 뛰는 피 정의(正義)의 피
이팔뚝 흐르는 피 자유의 피
이피를 뿌릴 때
영광의 무궁화(無窮花)
다시 피리라
그리운 조국강산 (祖國江山)
환희(歡喜)에 차리라
환희(歡喜)에 차리라
김 흥-1920.3.1. 독립신문(상해판)
새 빛
어두운 밤의 막(幕)이 열린다
새 빛을 띤 해가 동산에 떠오른다
아아 이날에 한족(韓族)이
열광(熱狂)의 기쁨으로 새빛을 맞는도다
3천리 산에 들에 서기(瑞氣-상서로운 기운)가 차고
3천만 살과 뼈에 선혈(鮮血)이 뛰도다
영원(永遠)히 이따에 광명(光明)을 비최일
3月1日의 새빛
자는 자(者)여 아침이 니르렀다
갇힌 자여 옥문(獄門)을 깨트려라
아아 이날의 한족이
붉은 피로서 자유를 부르짖는도다
3천리 풀과 나무 2천만 입살이
뜨거운 만세(萬歲)로 떨도다
영원히 이따에 복락(福樂)을 주고
영원히 이 자손(子孫)의 자유를 비는
3月1日 ! 만세(萬歲)
내 팔을 찍으라, 다리도 버히라
창으로 찌르라, 총으로 쏘라
아아 이날에 한족의
불같은 용기(勇氣)가 나타나도다
그 목숨이 없어지는 마지막 순간에
그는 락원(樂園)에 노래하는 자손(子孫)을 보도다
그 피줄기를 따라 내려온
이 피줄기를 따라 내려갈
무궁(無窮)히 전(傳)할 이날의 용기(勇氣)
모든 누추(陋醜-지전분하고 더럽다.)를 이날에 태우다
모든 죄악(罪惡)을 이날로 씻다
아아 이날의 한족이
피의 세례(洗禮)로 다시 살도다
다시 산 아들 딸의 어여쁜 얼굴에
지하의 조령(祖靈)들이 웃음을 띄시도다
새로운 때에 새로히 살아난
새로운 목숨으로 새로히 살아갈
한족(韓族)에 복(福)이 있으라. 류 영 1920.3.1. 독립신문 상해판.
17, 유신틀 - 김유신(595-673) 사대의 시조 태종 무열왕 김춘추(604-661) 휘하 화랑도 신라 장군, 나당을 업고 평화의 나라 무기를 녹여 쟁기와 괭이 삽을 만들어 쓰던 백제와 그 큰 땅 고구려를 망하게 하여 이 코리아를 확 쪼그라들게 한 자임. 태종 무열왕 김춘추와 화랑도 김유신 겹사돈이 삼국통일 한 것. 그러나 삼국 통일이 아니다. 아래 글을 진지하게 쓴다.
당나라 장군 소정방(592-667)의 잔꾀의 몇 수에 놀아난 것은 소위 외교에 능수 능난 했다던 사대주의자 김춘추는 결국 남에게 그 널은 땅까지 주면서 빼앗기면서 예속이 된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이 때 유명한 장군은 사대주의자 화랑도 이였던 김유신(595-673)은 김춘추(태종 무열왕=604-661)와 동서지간이다. 그 외 부하들 그 들의 명령에 의해서 무고한 생명들을 무지막지하게 살상한 자들이다.
바로 그때 그 므렵 민간 청년 단체 화랑도는 관에서 운영 총 지도자에 국선(國仙, 源花, 花主) 그 밑에 화랑이 있었다. 이 화랑이 지켜야할 도리는 유, 불, 선(儒, 佛, 仙) 3교(敎)의 정신인데. 그것은 석가의, 공자의, 노자의, 가르침이었고, 화랑의 지도와 고문을 담당한 원광법사(圓光法師)가 귀산(貴山) 추항(箒項)하여 두 화랑에게 가르친 세속오계(世俗五戒)
1, 사군이충(事君以忠), 2, 사친이효(事親以孝), 3, 교우이신(交友以信), 4, 임전무퇴(臨戰無退), 5, 살생유택(殺生有擇) 이것만 보아도 완벽히 세뇌 되여 인형이 된 것이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慈悲)였는가! 말하자면 화랑의 정신은 유가덕목(儒家德目)인 충(忠), 효(孝), 신(信), 용(勇), 인(仁)을 철저히 가르쳤지만 그것이 모순이고 위선 이였다. 그 모순은 완벽히 삼천포로 빠지는 어긋난 살인을 밥 먹듯이 했던 위선의 행각을 했었다. 즉 화랑정신은 인(仁), 도(道), 예(禮), 덕(德), 의(義)가 전혀 없었던 정치 깡패 살인 집단 이였다.
왜냐하면 ! 물론 이 때의 시절을 너무도 욕심이 많게 요구하는지는 몰라도 화랑도에서 인(仁)이란 글자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인(仁)이란? 남을 공경하기 위해 마음을 닦는 것이 인(仁)인데, 즉 사랑인데 화랑에서는 남을 위해 인(仁)을 사용한 것이 아니고 권력이 사용하기 위해서 있었던 것이다.
또 충(忠)과 효(孝)와, 신(信)과, 용(勇)만 있지 남을 공경하기 위해 나를 올바르게 하는 것인 예(禮)도 없고. 또 남을 공경하기 위해 나를 희생하는 것이 의(義)데 이 의(義)가 없다. 특히 지혜로운(智)은 공경을 통해 남을 용서하고 관용을 베푸는 자비 같은 것도 없다.
특히 남을 위해 자기를 버릴 수 있어야 하며 불의(不義)는 목숨을 걸고 거부해야 한다. 그것이 사람과 그 사회를 나라를 공경하는 도(道)인데 이것도 없고 즉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옳은 것과 그릇된 것을 확실히 구분하여 사람들을 살게 해주고 사람들의 생활 윤택과 의식수준을 높여주게 해주려고 힘쓰는 도(道)가 없다. 더더욱 생명의 근원인 덕(德)이 없는 단체가 화랑도였던 것이다.
삼국사기에는 진흥왕 37년(576)이나 그 보다 전인 진흥왕 23년 (562)에 이미 화랑은 가야 정벌에 종군하여 대야 성을 공격하여 큰공을 세웠다. 그러니까 이전부터 있었던 공동체를 후에 국가적으로 편제 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한 예로 진평왕 19년(597) 백제와 싸움에 나아가 적진 돌진 임전무퇴의 정신을 보여 준 적도 있었다. 그러니까 200여명의 훌륭한 업적, 말하자면 신라 삼국 통일에 크게 기여했다 함은 그 만큼 살인을 많이 했다는 것인데, 요즘 말로 하자면 정치 깡패 집단이었다, 즉 특수 게리라 부대였던 것이다.
화랑이 있었기 때문에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을지 모르겠지만 당 나라 소정방을 끌어 드리지 말고 고구려 장군이나 백제 장군을 끌어드려 김춘추와 김유신의 그 특유한 간교(奸巧)한 머리로 백 번 이용했다면 오늘날과 같이 우리나라 땅덩이가 작은 나라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나마도 잘려 있지만).
통일신라의 민족통일국가 수립은 우리 민족사에 엄청난 통한(痛恨)의 족 적을 남긴 치욕(恥辱)이였다. 왜냐하면 동족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당나라라는 외세를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외세를 업고 같은 민족을 멸망시켜 백제와 고구려의 유민이 조국을 등지게 하는 반민족적.
외세 의존적 통일이었고, 민족통일국가를 좁은 반도의 한 귀퉁이로 움츠러들게 하여 만주벌판에서 웅비하던 우리 민족의 위상을 위축시킨“역사 갈림길”이였다 라고 말하면서 신라에 의한 민족통일은
첫째, 당나라라는 외세를 끌어들어 동족을 멸망시킨 반민족 공동체적이고 반 자주적인 통일 이였다.
둘째, 엄밀한 의미에서 3국 통일이 아니라 백제를 신라의 지배로, 고구려를 당의 지배 아래에 놓아 민족을 분단시킨 2국통일 이였다. 일부 학계에서는 신라와 당나라 사이의 사전 합의가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역사적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이와 유사한 구도가 형성 되였고 또 이러한 결과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을 멸하는 반민족행위를 자행한 통일 이였다.
셋째, 민족구성원을 끌어안아 공동체의 일원으로 포섭하기보다는 백제와 고구려의 일부를 내부 식민지화하여 수많은 백제 유민이 신라의 노예가 되기보다는 일본으로 이주하게 한 지배 종속의 통일 이였다.
넷째, 이렇게 영토 적 통일과 민족적 반 통일성은 그후 조선 초기까지 무려 800백년 이상 민족적 질곡과 멍에를 남긴 통일 이였다. (통일시대의 북한 학-강정구, 210-211쪽=당대)
소설가(45-50여권의 책을 씀) 국문학자 정비석(1911-1991) 선생님은 아래와 같이 비통해 했다. 자고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은 만고의 진리다, 라고 하시면서 - 고구려와 백제, 신라는 같은 조상의 피를 받아 오는 동족 국가들이다. 그런데 집안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피가 다른 당나라 군사들을 불러들였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한 처사였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설사 세 나라가 통합을 못하는 한이 있어도 혈통이 다른 당나라의 도움만은 받지 않았어야 옳을 일 이였다. 신라는 이민족의 도움으로 삼국을 통일했다가,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던 것인가.
고구려는 북방에서 새로 일어난 이민족 국가들로부터 끊임없는 침략을 받아 오고 있는데다가, 남쪽에서는 동족 국가인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에 급급하여 이 민족인 당나라와 연합군을 형성하여 남과 북으로 고구려를 협공해 왔기 때문이다. 신라가 만약 이민족인 당나라와 손을 잡고, 고구려를 치지 아니하고 동족 국가인 고구려와 힘을 모아 당나라로 쳐들어 갔드라면, 오늘날 광범한 만주 전역은 우리네의 국가가 되어 버렸을 것이 아닌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진리를 신라는 그러한 진리를 모르고 이민족의 힘을 빌려 동족 국가를 멸망시켜 버렸기 때문에, 그로 인해 우리 민족은 결론적으로 약소민족의 비운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위해 이 민족인 당나라의 도움을 받아 동족 국가인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것은 신라 무열왕(김춘추)과 화랑 김유신이 있을 때의 일이었다.
일반적으로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을 김춘추와 화랑 김유신의 위대한 업적 이였다고 찬양해 오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민족사적 견지에서 볼 때, 그러한 견해는 과연 올바른 비평이었을까?
무열왕 김춘추와 화랑 김유신은 삼국 통일에만 급급한 나머지, 이민족인 당나라의 힘을 빌려 동족 국가인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켜 버림으로써 고구려가 이미 점령하고 있던 광대무변한 만주 대륙을 이민족에게 도로 빼앗겨 버리고 말았다. 그나 그뿐이랴. 우리 민족은 약소민족으로 전락됨으로써, 당나라의 뒤를 이어 일어난 원(元) 명(明) 등의 이민족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시달림을 당했던 것인가 ?
그렇게 따지고 보면, 김춘추와 김유신이 이민족의 힘을 빌려 동족 국가를 멸망시킨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한 일이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라는 이민족의 힘을 빌려 동족상잔의 불상사를 일으켰기 때문 이였다. 옛 글에서 보면 형제끼리는 비록 담 안에서는 싸울망정, 외부에서 덤벼올 때에는 모두가 힘을 모아 막아내야 한다. 신라와 고구려와 백제는 비록 싸우기는 하드라도, 형제간의 싸움에 이민족을 불러들인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었던 것이다.
국가의 흥망은 수시로 반복 되여도, 피가 같고 말이 같은 동족은 언제나 공동 운명체인 것이다. 무열 김춘추와 화랑 김유신은 그와 같은 영원한 진리를 몰랐기 때문에, 목전의 소(小)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민족적인 대의(大義)를 그르쳐 버렸던 것이다. 그로 인하여 천여 년 이상이 경과한 오늘에도 우리 겨레는 약소민족의 비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김춘추와 김유신은 영토가 귀한 줄만 알고 피가 귀한 줄은 모른 까닭에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고 큰 우(愚)를 범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하여 우리 민족에게 사대주의 사상이라는 천년화근(千年禍根)까지 심어 놓았다. 신라는 남의 힘을 빌려 삼국을 억지로 통일했기 때문에, 힘을 빌려준 나라에 대해 머리를 굽신거려야 할 것은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신라는 당나라를 종주국으로 섬겨 왔었다.
그 후에 당나라가 원나라와 청나라로 바뀌고, 신라가 고려로 변했다가 조선 왕조로 바뀐 뒤에도 그들은 우리나라를 항상 종속국 취급을 해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5백 년 동안 상납하고 살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와 같은 사대주의 사상은 우리 민족의 사기를 위촉시키는 데 커다란 작용을 해왔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한 일들을 생각하면 무열왕 김춘추와 화랑 김유신은 삼국통일의 영웅이 아니라 우리 겨레의 영원한 죄인이며 역적이다, 라고 생각한다.
18, 최영틀- 최영(1316-1388)고려시대의 명장이다. 정치적 라이벌인 최영 선배 장군은 후배 리성계(1335-1408) 하관한테 죽음을 당한 자임. 내 목에서 흰 피가 나올 것이며 내 묘지에는 영원히 풀(잔디)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한 분. 이 리성계는 우리민족을 5백 년 동안 도탄에 빠지게 한 매우 나쁜 역사를 남긴 자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최영은 지조가 강한 자지만 하관에게 죽음을 당한 조직에 군인으로서 조직 면에서 미흡했던 자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19, 연계틀- 연개소문(?-665), 642년에 구테타를 이르켜 영류왕 및 귀족 100여명을 살해하고 로보트로 보장왕을 세워 놓고 스스로 대권을 장악하였고, 신라 김춘추와 화평을 하라고 당나라의 압력을 거부하고 백제와 함께 당황성을 점령하였으나 끝내 신라와 당에 의해서 사후 자식의 부패된 정치로 인하여 저- 고구려 큰 땅을 잃게 되였다.
또 한편 ‘제주대 안창범 선생님의 말 -
(제정신을 차려야 나라가 산다.-92쪽) 종교 사상적으로 보면 연개소문의 장남 남생(男生)은 오두미교를 신앙하고 차남 남건(男建)은 불교를 믿어 형제 사이에 신앙이 다름으로서 서로 불신하고 권력투쟁 끝에 남생이 막리지의 직(職) 동생 남건에게 뺏기게 되자 적군인 당군(唐軍)에 가담하여 제 나라를 공격하였다.
그래서 나당(羅唐) 연합군은 피를 흘리지 않고 무저항 속에서 고구려를 쉽게 정복했던 것이며, 고구려는 멸망하게 되었다. 고구려가 멸망 원인은 여러 측면이 있었지만 사상측면에서 보면 외래 종교 때문 이였다 라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사대식민사관이라는 것이 부족한 지도자들만을 교육해서 부족한 민족으로 만들어 분노하지 못하게 했다. 즉 바보 민족으로 만들은 것이다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20, 을지틀- 불교인 승려 을지문덕(?-?) 고구려 영양왕 때의 명장군, 영양왕 23년(612년).
神策究天文 妙算窮地理 戰勝功旣高 知足願云止
신통한 술책으로 이 하늘을 뒤덮었고
기묘한 타산으로 이 땅을 갈라쳐 두었으니
그대 이미 드높은 전공을 이루었지 않았는가
이제 알만큼 안다면 끝내고 돌아갈 만도 할텐데 -
불교인 승려 출신 을지문덕 장군께서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보낸 시를 번안(飜案)한 것임. 살수(薩水=淸川江)에 수나라 군대 113만 3,800이 처 들어 왔을 때 수나라 군사 백만 명 이상이 을지문덕(乙支文德-?-?) 고구려 영양왕 23년(612) 때의 명장에 의해서 물고기 밥이 된 것을 수나라가 망하고 당(唐)나라가 된 뒤에 당나라 장수 축맹헌(祝猛獻)이란 자가 청천강에 와서 지난날의 치욕을 생각하고 절치부심(切齒腐心=몹시 분하여 이를 갈고 속을 썩임)하는 시(詩)를 읊었다.
수병이 다시 일어났으면 어찌 허무하게 졌을 것인가
이 나라 백성들을 모조리 마른 고기로 만들었으리라
그때에는 이, 설 같은 맹장이 한 명도 없었더란 말인가
지금은 부여까지 단숨에 밀고 내려가리라. 이런 오만불손한 시가 아직까지 내려오고 있다.
21, 문무틀- 사대의 시조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맏아들로 선 품의 딸 자의왕후 진덕여왕 4년(650)에 왕명으로 당나라에서 대부경의 벼슬 받았고 문무왕(?-681) 신라 30대왕. 아버지 김춘추는 화랑도 김유신과 당 나라와 연합하여 백제를 망하게 했고, 아버지가 사후 문무왕은 김유신과 당나라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망하게 한자임. 태권도교서-정연사-최홍희지음에는 신라 제13대왕이라고 했다. 이런 왕이 우리나라를 절대로 대표할 수가 없다고 보는 자다.
22, 서산틀- 서산대사(1520-1604) 정여립의 모반에 의해 투옥 곧 석방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왕의 특명으로 타종교인 불교인으로 국가에 공을 세운 자임. 서산대사: 임진왜란으로 나라의 운명이 위태롭게 되자, 산중에서 수도에 전념하고 있던 서산대사는 전국 사찰에서 모여 온 젊은 승려들 1천7백 명으로 승군(僧軍)을 조직하여, 승군을 몸소 거느리고 평양으로 달려가 모란봉 싸움에서 왜적들을 크게 깨쳐 부셨다.
나라가 망하면 불도(佛道)인들 어찌 유지할 수 있나 하시며 왜적들을 크게 무찔렀다는 소문이 널리 알려 퍼지자 그 승군의 수효는 5천여 명으로 불어났다고 한다. 승려의 몸으로 전쟁에 직접 가담하여 커다란 전공을 세운 것은 일찍이 불교 역사상 어느 나라에도 없었던 일이므로, 이는 불교사에 특기할 일이 아닐까 싶다. 어떤 종교도 그 나라 즉 그 백성들을 위하여 있어 존재하거늘 당연한 일이라고 본다. 오늘에 기독교, 천주교, 유교는 6.25 때 4.19, 5.16, 5.18 때 무엇을 했을까? 이때 명나라 장수‘이여송’은 ‘서산대사’에 대한 시의 칭송은
공리를 생각하지 않고
전심으로 선을 배웠네
이제 나라가 위급함을 알고
총섭이 산에서 내려오셨네.
無意圖功利 專心學道彈 令聞王事急
서산대사는 전쟁이 끝나고 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한 수는
만국의 서울은 개미집이요
천가의 호걸은 하루살이로다
달빛 밝은 창가에 허심히 누웠으니
무한한 솔바람 끊임없이 불어오네.
이 시를 역적을 도모한 시라고 했으나 선조 대왕은 궁중으로 불러 그 시를 오히려 크게 축하하며 대나무 그림에 -
잎은 붓끝에서 나왔고
뿌리도 땅에서 나온 것이 아니 요
달이 비쳐도 그림자가 없고
바람이 불어도 소리가 들리지 않은 것이오.
라고 쓰여 있는 것에 감탄 즉 죄가 없다는 시에 답을 -
소상강 대나무 한 그루
성상의 붓끝에서 생겨났습니다.
산승의 향을 태워 올리니
잎마다 가을소리를 띄워 옵니다.
특히 그러나 한편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는 왕을 호위해서 의주까지 피난을 갔을 뿐이지 직접 싸우진 않았다고 정직한 역사 기록이 있다. 물론 사명대사도 싸움을 지도하기는 했지만 직접 나서서 창칼을 들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영규대사(?-1592)는 전장에서 일본 사무라이들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했다는 기록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500명의 승병을 모아 의병장 조현과 함께 청주를 수복하였으니 곧이어 금산에 이르러 일본군과 격전하다가 700의사들과 함께 전사하였다 한다.
(민족통신 03.02.23 민족시인 진관스님 25시의 현주소라는 글에서) 그래서 서산 틀에 당연히 영규 틀이 들어가야 할 것이다. 꼭 승려 중 한분을 선택을 한다면 말이다. 여기 틀에 승려가 원효도 나왔고 을지도 나왔고, 서산도 나왔다. 불교인들과 기독교인들이 많다.
인간 고 최홍희는 모화사대사상을 가진 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공자, 맹자, 순자, 묵자를 섬긴 자다. 그래서 본인 림원섭은 1984-5년에 최홍희는 공자 목사(전도사)라는 별명을 붙어 주었었다. 어떤 말이나, 무슨 말이나 이 자는 공자는 맹자는 묵자는 순자는 어떻고 어떠했고 이 말에 의하면 어떠하다고 말을 언제나 한자다.
특히 고 최홍희는 9222년(2003년)05월19일에 도서출판 다음이라는 데서 출판한 태권도와 나라는 책 3권 452쪽에 쓰여 있기를 중국 연변 대학에서 말을 하기를 - 그리고 태권도의 정신수양은 동양철학 즉 공자, 맹자의 정신이 주축이 되어 있으므로 ITF가 번영하면 유교 사상을 전 세계에 알리게 된다고 하자 그들의 표정이 달아졌다.‘ 라고 쓰여 있다.
이렇게 정치 역사에 무식한 자가 ITF 태권도를 만들었다. 또 그러나 중국에 공자, 맹자 즉 유교 사상은 대한민국 성균관 대학이나 있지만 이미 모택동, 주은래 공산주의 혁명 시절에 완벽히 작살나 없어진 종교이고 이미 진즉에 중국인민들의 머리에서 잊혀지고 떠 난지 오래전의 시시한 퇴보적인 종교를 말을 하고 다니니 그 중국인들이 그 자를 어떻게 보았겠는가 말이다. 어쩌면 정신이 헷가닥 간자라고 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정치 역사를 모르는 사람이다.
또 공자, 맹자가 동이족(東夷族)인지도 모르고 또 리조 5백 년 동안에 이 유교는 무엇을 했는지도 모르고 있는 고 최홍희 장군이라는 자의 무식한 역사의식이 참으로 딱하다 못해 가엾고 애처롭다. 그래서 본인은 고 최홍희가 식민사관으로 만든 태권도가 얼마나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있는 것이 참으로 불쌍하다는 말을 아낄 필요가 없다고 당당히 말을 하고 싶다.
그래서 외국어로 번역하여 이 세상에 다 깔고 싶어도 행동을 못하는 용기에 통곡을 스스로 한다. 그러나 분명히 이런 옳고 그른 자료는 어디에선가 꼭 나오리라. 믿는다.
‘태권도와 나’라는 영문으로 번역된 책을 정독한 ITF 4단 Henry Martinez는 이 책은 매우 잘못된 책이라고 서슴없이 나를 찾아와 말을 했다. 이유를 물은 즉 자기 자랑만 있고 남들을 매우 나쁘게 썼기 때문에 소개할 책이 못된다고 했다.
23, 세종틀- 세종대왕(1397-1450)은 자기 고려국의 충신들과 동포를 엄청나게 살상한 리성계와 고려 충신인 정몽주와 많은 의인들을 때려죽인 그 5째 아들 리방언이의 3째 아들이다. 집현전 조직에 결재만 한 자이다. 우리 한글은 고조선의 나라를 세운 바로 뒤 단군왕검에 의한 "신지글자 72자의 창안이 있었다. 그 뒤 150여 년 뒤 고조선 3세 기륵환극 때 발표한 "가림토글자(38자-훈민정음 28자)가 있었다 한다. 이런 것이 모화사대주의자들에 의해서 변하였다고 한다. (신교문신문 266호 4쪽 2001년). 세종틀이 아니고 한글틀 이였어야 했을 것이다.
24, 통일틀- 통일은 어느 누구나 원할 것이다. 이 세대의 외세로 인하여 솔직히 통일은 멀다. 그 외세는 미 천민자본주의다.
그러나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왜놈 문화로 즉 동작으로 다시 예속을 시켜버렸다. 이것은 엄청난 사대 매국이며 민족적 모욕이다.
이 미국을 고 최홍희는 미국의 장단점에 대해서 공공연하게 말 한마디 아니 하였고 글을 낸 적도 없다. 즉 민족통일에 대해서 말은 많이 하고 있는데 주 핵은 피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ITF 태권도라는 글자로 당당하지 못하고 권력과 금력에 철저히 기회주의자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고로 민족 통일이라는 단어를 쓸 자격이 없는 자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자기 자서전에 자기에게 많은 개척사범들은 먹여 살리며 엄청난 도움을 주었건만 배신을 하고 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을 거짓과 사기로 매도 왜곡한 자다. 스스로 배신자였으면서도 남 보고 배신 자라했다. 자기는 장군 출신이요. 대사출신이요. 태권도 창시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직한 역사의 기록들은 불에도 타지를 아니 할 것이다.
태권도와 나라는 고 최홍희 회고록 책 3권 371쪽에는 대한민국 창군(군대 창설)에 참여 했다고 했지만 창설은 미군정(미국 군인이 한국에 침략으로 와서 정치를 할 때다.) 시절이므로 미군들이 한 것이고 고 최홍희 소위는 미 양키들의 하수인 즉 심부름꾼에 불과 했을 것이다. 기가 찰 노릇이다. 또 6.25 전쟁 때에는 일선에서 사단을 지휘 했다고 말을 거침없이 했다. 이 것은 작전 지휘권(통수권이 지금도 미군이 쥐고 있다.)이 미군에게 있으므로 미 양키의 용병으로서 자기 인민들을 죽이는데 미 양키들을 대신해서 자기 동족을 죽이는데 앞장섰던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것은 대단한 큰 병이다. 이렇게 고 최홍희는 자기 민족의 생명 앞에 부끄러움을 모르는 철면피하다 못해 매우 무식한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자다. 미국이 고 최홍희에게는 대 은인 일 것이다. 보급 장교, 정보장교, 사단장, 사령관, 참모장, 훈련소장 등등 두루두루 별 2개 소장까지 올라갔으니 말이다.
1945년09월08일 날 미 양키들은 침략으로 한국에 들어와서 엄청나게 양민들 약3-3백5십만을 살상, 학살하고 사과 한마디가 아직까지 없고 나라까지 두 개로 자른 미군정을 즉 미국(군)을 동경하고 있는 격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제에도 어제에도 오늘까지도 즉 58년째 미국이 군대(통수권)와 금융을 꽉 쥐고 식민지로 통치하고 있는 한국에서 미군들은 매일 5건의 범죄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 도둑, 폭행, 강도, 강간, 자연파괴, 살인 등등.
고 윤금이를 무참하게 국부에 맥주병을 박고 우산대를 박아 죽인 미 양키 야만인들 또 14살짜리 효순이 미선을 장갑차로 깔아뭉개 살인하고 남 땅에서 남 백성을 죽여 놓고 무죄로 양키 지들 끼리끼리 재판을 한 놈들을 동경하는 것이나 무엇이 다르며 -
만주에서 항일 투사들을 토벌하던 민족에 대 역적인 고 박정희가 술에 취하면 청와대에서 왜놈 군복을 입고 왜놈 군가를 목이 터져라 불었다는 것이나 무엇이 얼마나 그리 차이가 있을 것인가 말이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그러나 고 최홍희는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5.16 주체 세력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닌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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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견해:
* 위에서 간단히 설명을 한바와 같이 약 1400-737년의 예속 식민사관의 역사의식으로 ITF의 형(틀)을 만들 때 어찌하여 위에 많은 모화(慕華)사대주의자 및 불교인, 기독교인, 친미, 관료, 군인 등등들이 있으면서 아래에 쓰여 있는 정말로 깨끗한 청결한 충신과 절세의 애국자들은 어찌 빠졌냐 다.
몽고에 약120년 중국에 약5백년, 왜놈들한테 우리 민족이 36년 식민지 시절 소중한 가족들은 모두 흩어지고 온 몸과 맘을 받쳤던 청결한 분들을 골라 아래에 소개한다.
ITF 틀에서 참 애국심이 있어 정치, 역사의식이 진지하게 있었다면 이름 없이 희생된 분들을 위한 한 제목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없다. 인간 윤리 도덕의 의식문제다. 정치, 역사의식 문제다. 철학과 상식문제였다고 볼 수도 있다.
성 삼문(1418-1456=38세): 사육신에 한사람. 신념에 살아온 학자 최후의 시(詩)다. 최후의 순간에도 비겁한 태도를 추호도 보이지 아니했다. 그 시절의 고문을 인두로 지졌다는데, 그때 인두가 살에 다 아 식으니 애들아, 이놈들아 - 인두 식었다. 불 달아오너라 하며 큰소리로 고함을 쳤다 는 큰 분.
북소리 둥둥 인명을 재촉하는데
돌아보니 해는 저물어가는구나
황천에는 객주 집이 없을 것이니
오늘밤은 뉘 집에서 자야하는고
이때 세조가 추방한 단종을 영월까지 이송한
왕방연’이 눈물지으며 읊은 시조.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은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아이다
저 물도 내 맘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리씨 조선을 창립한 리성계 왕 정권은 왕씨 성씨를 가진 사람들을 깡그리 처단을 했다. 여기에서 리성계의 5째 아들 리방언이는 엄청난 살상을 서습 없이 했었다. 그리고 명나라에 완벽히 예속을 시켜 버렸다.
부패와 외세를 철저히 반대한 분들. 역적 리씨 조선 5백년 시대만 343번의 의로운 민란이 삼천리금수강산 곳곳에서 일어났었다. 이것에 대한 표현도 없다.
전봉준(1854-1895)장군: 전북 정읍 고부 분으로 부하의 배신과 지방민 한신현의 밀고로 체포되어 이듬해 처형되었다. 당시 많이 불렸던 노래 파랑새- 팔왕새(八王새)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사 울고 간다.
갑오농민전쟁을 주관하며 평등사상(전주화약)을 부르짖은 분.
그 해 1895년5월11일 사형을 당하던 날 전봉준 장군의 시:
때를 만나니 하늘과 땅이 힘을 모아주고
운이 다하니 영웅도 할 바가 없구나.
백성을 사랑하고 정의를 따랏난이
내 부끄러울 것이 없는데
나라 사랑하는 마음 그 누가 알아주랴
이준(1859-1907) 열사를: 기억 아니 할 수가 없다.
1907년 네달란드 헤이그에서 만국평화 회의에 고종의 밀명을 받고 4월22일 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상설을 만나고 싼트 피에텔 부르크에서 프랑스 말에 유창한 이위종과 합류 6월5일 날 의장을 방문 친서와 신임장을 전 했으나 일본의 방해로 참석에 자격 상실하여 울분에 활 복 자살로 순국했다.
석주 이상룡(1858-1932.5.12) 선생님은 어딜 갔나
이미 내 논밭과 집 빼앗아 가고
다시 내 아내와 자식 해치려 하네
이 머리는 차라리 자를 수 있지만
무릎 꿇어 종이 되게 할 수 없도다,
중국에서 철저히 싸우시며 이 시 한 수를 남기고 가셨다.
최익현(1833-1906) 문신. 학자. 의병장: 경기도 포천분, 1875년 대일 통산을 반대 귀양. 1894년 단발령 반대. 투옥. 1905년 을사조약 후, 1906년12월30일 항일의병장으로 전북 태인. 순창에서 활동하다 일제에 체포되어 쓰시마섬(대마도)에 유배 중에 단식 “ 내 늙은 몸으로 어이 원수의 밥을 더 먹고살겠느냐. 너희나 살아 돌아가 나라를 구하라 라고 말하고 왜놈들이 주는 물 한 방울도 마시지 아니하고 굶어 돌라가셨다.
백발을 휘날리며 밭이랑서 뛰어남은
초야의 충성심을 바치려함이로다
왜적을 치는 것은 사람마다 해야할 일
고금이 다를쏘냐 물어 무엇하리오. 최 익 현
림병찬(1851-1916-의병장): 전북 옥구 사람. 스승 최익현과 1905년6월 전북 태인에서 80여명의 의병과 순창에서 400명 의병을 이끌고 관군. 일군과 싸우다 체포. 거문도에서 단식 굶어 돌라가셨다.
이강년(1858-1908)의병장: 경북 문경 분 유인석, 민긍호 같이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낙향하여 1894년 동학혁명 때 문경의 동학군을 지휘하여 일본군과 탐관오리를 무찔렀다. 또 단양에서 다시 봉기하여 제천 전투에서 500여명 왜적섬멸, 1907년7월 청풍 황강 전투에서 왜적 600여명을 사살 인제. 안동 등지를 중심으로 큰 승리 그후 금수산 전투에서 부상 체포되어 사형 당했다.
우 덕순(1876-?) 열사: 이분은 조도선과 함께 콴청쯔역에서 대기(잡혀 3년을 살다 다시 탈출). 만약 안중근 의사가 대기 중인 역전이 아니고 이역 전에 히로부미(이등박문)가 왔다면 우덕순에 의해서 죽었을 것이다. 이렇게 한 순간에 의해서 역사는 바뀌나 보다. 그러니까 두 의인이 두 역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 우덕순 동지는 경흥 회령일대에서 일본군과 교전 때 체포되어 7년형을 받은 후 탈출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안중근 의사를 면회 만나서 안중근 동지의 시를 들고 나온 거인이다.
보난(는)대로 죽이리라.
만낫도다 만낫도다 너를 한번 맛나고자
일평생에 원했지만 하상견지만야(何相見之晩也)런고
너를한번 맛나랴고 수륙(水陸)으로 기만리(幾萬里)를
혹은윤선(輪船) 혹은화차(火車) 천신만고(千辛萬苦) 거듭하야
노청양지(露淸兩地) 지낼때에 앙천(仰天-하늘을 우러러) 기도하길
살피소셔 살피소셔 주야소(主耶蘇-주예수)여 살피소셔
동반도(東半島)의 대제국(大帝國)을 내원(願)대로 구하소셔
오호라 간악(奸惡)한 노적(老賊)아
우리민족 이천만을 멸망(滅亡)까지 식혀노코
금수강산(錦繡江山) 삼천리를 소리없이 뺏노라고
궁흉극악(窮凶極惡) 네수단을
중 략(미상) ----
지금네명 끊어지니 너도원통(寃痛) 하리로다
갑오(甲午)독립(獨立) 씩혀노코 을사체결(乙巳締結) 한연후에
오날네가 북향할쭐 나도역시 몰낫도다
덕(德)딱그면 덕이오고 죄(罪)범하면 죄가온다
네뿐인줄 아지마라 너의동포 오천만(五千萬)을
오날부터 시작하여 하나둘식
보난대로 내손으로 죽이리라. 우덕순 열사의 노래
문 용기(1878-1919) 선생: 독립 운동가는 전북 익산사람. 군산 영명 학교 교사로 있다가 3.1 운동이 일어나자 이리(익산=옥구) 장터에서 군중을 지휘 독립선언서를 나누어준 후 태극기를 들고 시가행진을 하던 중 출동한 일본 경찰 놈이 무차별 사격을 감행하자 이를 규탄하는 연설을 하다. 일본 순사의 칼에 오른 손을 잃었다. 이에 다시 왼손에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소리높이 외쳐 왼손마저 절단 당했으나 이젠 맨몸으로 군중을 지도하다가 일본 놈 경찰의 칼에 찔려 돌라 가셨다.
장 인환(1877-1930년)의사와 전 명운(1884- ?): 두 분다 평양사람, 미국에서 노동하고 있던 중, 융희 2년(1908.3.21) 대한제국 정부의 외교고문인 미국의 스트븐스가 휴가차 귀국하여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의 한국 침략을 찬양한 사실에 격분하여 그를 죽이기로 결심하고 마침 스티븐스가 오클랜드역에 내리는 것을 이용하여 전명운은 쇠망치로 얼굴을 강타하고 격투를 벌이던 중 이때 장인환의사는 스티븐스를 권총으로 쏴 죽게 하였다. 이때 법정에 선 위 두 영웅들에게 통역을 부탁 받은 친미 사대 매국노 리승만은 기독교인은 살인자들의 통역을 하지 않는다며 도움을 거절한 사실도 있다 한다.
박 은식(1859-1926년): 황해도 황국사람. 대한매일신문 주필, 독립신문, 한국회보, 박달학원 설립, 1924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 제2대 대통령에 선임.
김 창숙(1879-1962년): 경북 성주사람. 1909년 일진회, 매국노들의 한일 합방론을 반대 성토문, 중추원, 유림사 진정서 등등을 국한문 및 영어로 번역 전 세계로 보냈다. 1946년 유도회 조직 성균관대학 설립 초대총장. 6.25 전쟁 후 이승만 하야 경고문 사건으로 투옥되기도 하였다.
나 석주(1892-1926년): 황해도 재령사람. 23때 만주로 망명. 1926년12월28일 식산 은행과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을 던지고 일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다가 마지막 1발로 자결 순국했다.
백 정기(1896-1936년): 전북 정읍사람. 3.1운동 당시 독립선언문을 고향으로 가저와 만세운동 선동. 그후 일본으로 건너가 무정부주의자연맹에 참석 후, 중국 청진에 일본 총영사와 군사령부를 습격하고 중국에 일본대사 이리요시를 암살하려다 체포 무기형 순국했다.
이 봉창(1900-1932년): 서울 사람. 일본 천황 암살 사명을 띠고 1월8일 일본 천황 히로히토가 만주국 황제 푸시와 함께 도코교외, 요요기 연병장에서 베풀어진 관 병식의 참관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목인 시쿠라디몬 밖에서 수류탄을 던졌으나 명중하지 않고 실패했으나 태극기를 꺼내들고 만세를 부르다가 체포, 사형선고를 받고 도코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33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대 침략 살인자 알렉샨더 대왕 역시 33세에 죽고,
예수 그리스도도 자기 나라를 위하다가 33세에 순국했고,
안중근 의사 33세에 순국했고. 윤봉길의사도 33세였고
허형식(1909-1942, 8월)장군도 33세 나이 전사했다.
이 허장군의 동료들은 견디다 어려웠던 많은 유격대원들이 소련으로 갔었다. 그러나 끝까지 남아 장렬히 전사했다.
홍 범도(1868-1943년): 평북 자성 사람.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전해듣고 후찬에서 의병을 이르키다. 1907년 차도선과 같이 갑산, 삼수, 북청 등지에서 친일 단체인 일진회 회원을 주살(誅殺)하고 1908,5월 차도선과 일본군 포로가 된후 500명을 데리고 귀순하라는 명령으로 일본경찰 10명 사살. 함남, 혜진등등 일본군 수비데 습격 1200명의 독립군을 이끌고 자성군 70여명 사살. 일본군 남양 수비대 및 19사단 병력으로 두만강 봉오동(鳳梧洞)전투. 그해 10월 청산리 이범석, 나중소, 박두희 김좌진장군과 같이 3300명을 북로군 제1연대장으로 참가한 장군.
김 좌진(1889-1930년)장군: 이 큰 분은 일본군을 자그만치 위 ‘홍범도’ 장군과 같이 3300여명을 사살한 청산리대첩의 명장. 개새끼 박상실에 의해 피살되었다.
향 조국진군(向 祖國進軍)
대포 소리 울려퍼져 만방에 봄이오니
푸른뫼 우리땅에도 새빛이 아름답다
달빛아래 산영(山營)에서 칼을 갈고
바람찬 철한에선 말을 먹여서
천리길에 뻗치도록 깃발을 휘날리고
하늘을 뒤흔들며 군악을 울리면서
십년을 풀섶에 누워 쓸개빨던 그담으로
원수나라 쳐부셔 비린티끌 쓸어보세. 백치 김좌진 장군의 시(詩)
청산리 싸움 때의 군가.
1. 하늘은 미워한다 배달족의
자유를 억탈하는 왜적들을
삼천리 강산에 열혈이 끓어
분연히 일어나는 우리 독립군
2. 백두의 찬 바람은 불어 거칠고
압록강 얼음 위엔 은월이 밝아
고국에서 불어오는 피비린 바람
갚고야 말 것이다 골수에 맺힌 한을
3. 하눌님 저희들 이후에도
천만대 후손의 행복을 위해
이 한 몸 깨끗이 바치겠으니
빛나는 전사를 하게 하소서.
윤 봉길(1908-1932년) 열사: 사망, 상하이 홍커우공원에서 폭탄을 던져 시로카와 대장을 죽이기 전 흔 것을 차고 계시던 김구선생님의 시계와 바꿔 찬 분, 이런 여유 있는 분.
(돌베개1.)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잔의 술을 부어놓아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양으로 성공자를 동서양 역사상 보건대
동양으로 문학가 맹가가 있고
서양으로 불란서 혁명가 나폴레온이 있고
미국에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바라건데 너희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어라.
청년 제군에게
피 끓는 청년제군들은 아는가 모르는가.
무궁화 삼천리 내 강산에
왜놈이 왜와서 왜 광분하는가.
피 끓는 청년 제군들은 모르는가.
되놈은 되와서 되가는데
왜놈은 와서 왜 아니가나.
피 끓는 청년 제군들은 잠자는가.
동천에 여명은 밝아지려 하는데
조용한 아침이나 광풍이 일어날 듯
피 끓는 청년 제군들아 준비하세.
군복 입고 총메고 칼 들면서
군악 나팔에 발맞추어 행진하세. 윤 봉 길 씀.
유 관순(1904-1920년): 큰누나, 손, 발톱을 빼가도 지지 아니하고 만세 부른 우리 큰 누님. 이 3.1일 운동에서 2만여 명의 동포가 살상 당했고 5만여 명의 동포가 체포 되여 고문당했다. 1919년 3월5일 서울학생들이 3월2일부터 시내의 전문학교, 중학교 학생들로 중심이 되어 선전 작업, 동원작업이 이뤄졌으며, 시위 당일에는 평양에서 수백 명의 학생들이 응원을 오는 등 지역간의 연계도 이루어지고 장소를 남대문으로 잡은 것은 고종의 장례식에 참관하고 지방으로 돌아가는 참배객들에게 운동을 전파하기도 했다. 이 때 시위의 지휘자들은 인력거에 올라 ‘조선독립’이라 쓴 큰 기를 휘두르며 만세를 외치는 것으로 시작 학생들은 연설과 삐라로 대중을 선동하고 광복 가를 부르며 시위했다.
단재 신 채호(1880-1936년): 선생 사망, 도둑질을 설령 한 단들 우리 민족을 위한 짓 이였다면 부끄럽지 않다고 법정에서 당당히 말씀 하셨으며 신사 참배가 싫으셔서 옷소매가 다 젖도록 고개를 숙이지 아니하고 아침 세수를 하셨으니 양쪽 팔은 그 추운 겨울에 얼마나 실으셨는지 알 수 있을 것 갔다. 또 이 분의 유언을 보자, 여순 감옥에서 내가 죽으면 시체가 왜놈들의 발끝에 채이지 않도록 화장하여 재를 바다에 뿌려 달라 하시였다.
이 신채호 선생님은 사학가, 혁명가 의열단의 조선혁명선언에서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 본 영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한 무기이다, 라고 하셨다.(단재 신채호).
특히 불교가 조선에 들어오면 조선의 불교가 되는 것이 아니고 불교의 조선이 된다고 하셨고, 유교가 조선에 들어오면 조선의 유교가 되는 것이 아니고 유교의 조선이 된다고 한탄하셨던 분이다. 또 지금까지 만약 살아 계셨다면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오면 한국의 기독교가 되는 것이 아니고 기독교의 한국이 된다고 통탄을 매일 하셨을 것이다.
물론 선생께서는 공자 놈을 시켜서 명분 설(名分說)을 지어 빈곤한 자, 천한 자를 구분하여 세력자의 명령을 잘 받아 충신, 열사의 명예를 후세에 끼쳐라 고 속이며 또 석가 놈과 예수 놈을 시켜 너희들이 남에게 고통을 받을지라도 이것을 반항 없이 따르면 죽어서 너희는 천국으로, 연꽃의 나라로 가리라 고 속이었다.
이러한 마취약들이 또 어디 있겠느냐 ? 이 천년 동안이나 크게 그 약효를 보았더니, 지금에는 그 약의 힘도 다하여 그 놈들이 점점 자각하여 반역이니 혁명이니 하고 떠드는구나 하신 대인 이였다.(신채호-안병직 편,76.12월).
한 나라 생각
나는 네 사랑
너는 내 사랑
두 사랑 사이
칼로 썩 비면
고우나 고운
핏덩어리가
줄줄 줄 흘러
나려 오리라
한나라 땅에 골고루 뿌려서
떨어지는 곳마다
꽃이 피여서 봄맞이하리. 신채호선생님의 시(詩).
백범 김구(1876-1949) 선생님의 말씀:
정확한 예언자
삼팔선 때문에 우리에게는 통일과 독립이 없고,
자주와 민주도 없다.
어찌 그뿐이랴.
대중의 기아가 있고,
가정의 이산이 있고,
동족의 상잔까지 있게 되는 것이다.”
선생이 생전에 남기신 어록은 적확한 예언자 말씀으로 당신이 운명하신 후
한 치 어긋남이 없이 그대로 오늘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황해도 해주 분, 이 때 정치 노선이 완벽히 다른 백범 김구 선생님의 말씀을 꼼꼼이 보자. 왜놈 장교를 칼로 꼽고 그 피를 빠라 먹었던 위대하고 거대하여 대담한 분 하늘이 낸 절세의 애국자 백범 선생님의 말씀을 좀 보자.
1948.3.12일- 김구, 김규식, 조소앙, 김창숙, 조완구, 홍명회, 조성환 등 애국인사 7인은 공동성명으로 남한 단독선거에 대한 반대의사 표명. 1948년2월8일- 마음속의 38선이 무너지고 땅 위의 38선도 철폐될 수 있다. 자기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하여 조국의 분열을 연장시키는 것은 전 민족을 사갱에 넣는 극악극흉의 위험한 일이다.
1948년3월12일- 우리는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가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정도냐 사도냐가 생명이라는 것을 명기하여야 하는 것이다.
1948년4월- 38선 때문에 우리에게는 통일과 독립이 없고 자주와 민주도 없다. 어찌 그뿐이랴. 대중에 기아가 있고 가정에 이산이 있고 동족의 상잔까지 있게 되는 것이다.
1948년6월7일- 통일이 없으면 독립이 있을 수 없고 독립이 없이는 우리는 살 수 없다.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려면 우리의 유일한 무기는 민족단결뿐이다.
1948년11월26일- 이 날 김구선생님의 기자회견에서 지금 우리의 삶이 일제시대만도 못하다고 (97,8,12,한겨레). 나의 소원 정치이념 - 어느 한 학설의 표준으로 하여서 국민의 사상을 속박하는 것은, 어느 한 종교를 국교로 정하여서 국민의 신앙을 강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옳지 아니한 일이다.
나의 소원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주장하되, 그것은 저 짐승들과 같이 저마다 제 배를 채우기에 쓰는 자유가 아니오, 제 가족을, 제 이웃을, 제 국민을 잘 살게 하기에 쓰이는 자유다.
백범일지 - 백범이라 함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천하다는 백정과 무식하다는 범부까지도 모두 적어도 나만한 애국심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하자는 내 원을 표하는 것이다.
나는 일찍 우리 독립정부의 문지기가 되기를 원하였거니와 그것은 우리나라가 독립국만 되면 나는 그 나라의 가장 미천한 자가 되어도 좋다는 뜻이다. 그 뿐인가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가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길 바란다고 말씀 하셨다.
또 황소 백 마리가 와서 나를 끌어 당겨도 우리 동포끼리(외세 간섭 없이) 담판하여 통일독립을 쟁취 코져 하는 나의 결심은 한치도 무너뜨릴 수는 없다고 말씀 하셨다.
1949년6.26일 안두희 의해서 암살되었다. 그후 딱 1년 후 1950년6.25일에 전쟁이 일어났다. 이 안두희는 2001년9월 초 뉴스에 의하면 미 씨아이씨 요원 이였다 했다.
집요하게 양키 첩자 안두희를 찾아, 인간 개를 찾아, 김구 선생님 살인자를 찾아
김용희, 곽태영, 권중희 의인들께서 결국 찾아
내가 널 그렇게 찾아서 심문 조사를 한다고 했다.
결국 버스 운전수 박기서 의인이 몽둥이로 때려 죽였다.
새 천년이 들어서서
항일의 대 민족시인,
윤동주(1917.12.30-1944) 이국 땅 베이징 감옥에서 옥사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두만강 - 시인 김규동
얼음이 하도 단단하여
아이들은
스케이트를 못타고
썰매를 탔다
얼음장위에 모닥불을 피워도
녹지 않는 겨울 강
밤이면 어둔 하늘에
몇 발의 총성이 울리고
강 건너 마을에서 개 짖는 소리 멀리 들려왔다.
우리 독립군은
이런 밤에
국경을 넘는다 했다
때로 가슴을 가르는
섬뜩한 파괴 음은
긴장을 못이긴 강심 갈라지는 소리
이런 밤에
나운규는 아리랑 썼고
털모자 눌러쓴 독립군은
수많은 일본군과 싸웠다.
지금 두만강엔
옛 아이들 노는 소리 남아 있을까
강 건너 개짓는 소리 남아 있을까
통일이 오면
할일도 많지만
두만강을 찾아 한번 목 놓아 울고 나서
흰머리 날리며
씽씽 썰매를 타련다.
어린 시절에 타던
신나는 썰매를 한 번 타 보련다.
* 날자는 모르지만 하도 시‘가 좋아서 썼습니다.
전태일(1948-1970):
아름다운 청년 노동가 노동운동가 정식으로 학교에 다닌 것은 2년 정도로 12세 때 서울로 올라와 날품팔이 생활을 하며 남대문 초등고등공민학교를 다녔다. 16세 때부터 평화시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미싱사, 재단사로 일하면서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고자 1969년에‘바보회‘. 1970년에 ’삼동친목회‘라는 모임을 만들고 노동청에 ’평화시장 피복제품상 종업원 근로 개선 진정서를 냈다.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고 여론화되자 노동청은 실태조사와 근로기준법 위반 업체의 고발을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다.
그래서 1970년11월13일 ‘근로기준법’ 책 화형식을 갖기로 한 날 그는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 기준법‘ 준수하라. 내 목숨을 헛되이 말라. 고 외친 뒤 온 몸에 석유를 붓고 분신자살했다. 그가 죽은 후 평화시장의 근로조건은 개선되었고 청계천피복노동조합이 결성되어 노동운동이 활기를 띠게 되었다. 현재 ’전태일 기념사업회‘ 등이 있어 매년 11월13일 그를 기리는 행사가 계속되고 있다.
조 문기(1924- ): 생존하심, 1945 부민관 폭발 사건 당사자임. 현 민족문제 연구소장 임.
이북에도 항일 투사들이 많을 것이다. 이분들의 성함을 모두 다 난 알고 싶다.
본인의 의견:
구 지 꼭 우리의 역사적인 인물의 존함 및 호를 따서 형(틀)을 만들고 싶으면
장보고(?-846) 장군은 어딜 갔고
신라시대의 무장 흥덕왕 때 당나라에 건너가 무령군 소장이 되었으나 당시 당나라 해적들이 신라 사람들은 잡아 노예로 매매하는 사실을 알고 급히 귀국하였다. 왕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고 1만여 병사를 얻어 청해의 진을 설치한 후, 청해진 대사에 임명되어 수병들을 훈련시켜서 해적을 완전소탕하고 해상권을 장악한 대단한 애국의 장군이다.
강감찬(948-1031) 장군은 어딜 갔고
고려시대의 명장으로 거란이 40만 군으로 침입하자 많은 조신들이 왕께 항복하기를 권하였으나 이 때 이 강감찬 만은 반대하여 하공진으로 하여금 적을 설득시켜 물러가게 한자다. 현종9년(1018) 다시 거란이 침입했을 때 20만8000을 이끌고 당당히 적을 무찔은 애국의 장군이다.
허균(1569-1618)선비는 어딜갔고
조선시대의 문신 선조 27년(1594) 임진왜란 때 조선의 봉건 체제의 모순을 반대했다. 한국의 최초의 소설인 홍길동전을 보면 알 수 있다. 성수복부교, 교산시화, 학산초록, 성수시화 등등 교조적인 주자학에 회의를 느끼며 반가(외세)를 든 양심이 있는 참 인간이다. 광해군 10년(1618)에는 하인준, 김개, 김우성, 반란을 계획 실패 가산을 몰수당하고 능지처참을 당했다.
의적 림꺽정, 장길산, 홍길동, 이 3 의적 중 단 한사람이라도 들어갔어야 했을 것이라고 보며 이 외도 엄청 많은 이름 없이 희생된 분들이 많은데 그 분들을 위한 칭호도 전혀 없다.
또 아리랑- 우리의 대표적인 민요. 이제 강점시 민중의 울분을 대변하는 노래. 나운규(1902-1937) 뜨거운 애국자며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영화인 한 때 홍범도 장군과 같이 독립군에 가담도 한 분이며 -
1926년-아라랑 (님 웨일즈 지음, 이 아리랑의 주인공 감산(본명은 장지락) 감독, 27년-나운규 프로덕션, 29년-벙어리 삼룡, 31년-개화당 이문, 36년-임자없는 나룻배, 36년-아리랑 제3편, 36년-마지막 작품 오몽녀, 그외 26편 원작, 감독, 주연- 풍운아, 들쥐, 흑과 백, 금붕어, 잘 있거라, 옥녀, 사랑을 찾아서, 사나이, 철인도 금강산, 칠번지소사건, 무화과, 그림자 등등이 있다.
그래서 ITF틀 24개의 역사를 모두 상속할 수 없다. 최소한 18-20개는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아니 확 빼버려야 한다고 보는 나의 견해다. 특히 동작 면에서 왜놈들의 문화 가라데 동작으로 만들었다고 보는 것은 동작이 아니 된 손이 허리에 온다는 것이고 틀(형)‘예 왼 쌍 팔목 막기에서 오른 팔목이 밖갓 팔목이고 가라데는 안 팔목이 되는 것이 차이다. 물론 두 팔목이 교차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동작에서 이치에도 맞지 아니 하고 상식에도 어울리지 않는 동작들도 있다.
태권도 신문 2001.9.3일자 2쪽에 “태권도 고대사는 가라데에서” 카나다 정순천씨 주장 중, “태권도 정체성에 대해 철(鐵)은 중국에서 나왔지만 그 철로 아폴로 만든 것은 미국이다, 중국의 철의 원류를 가지고 아폴로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는다. 가라데가 철이라면 태권도는 아폴로가 된다”는 말로 대신했다“. 이 말을 1976-1984년까지 귀가 뜨겁게 참 많이들은 이야기다.
이 말은 자기를 위안하기 위한 말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한 특허품을 특허청에 낼 때(본인이 특허권자임 Sweden Patent Nr, 511713), ’예‘를 들어 한 찻잔이 있다고 하자 그 찻잔에 한 손잡이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 찻잔에 양쪽에 손잡이를 만들어서 특허를 신청해도 그 신청된 특허품 찻잔은 허락이 아니 될 것이다. 주전자에 물 나오는 구멍이 두 개로 신청이 되어도 특허증은 나오질 아니할 것이다. 태권도에서 아래(낮은데) 막기를 가라데에서 팔목을 쭉 폈는데, ITF 태권도에서 약간 팔 꿈을 구부렸다고 특허품이고, 창시 품인가?
본인의 견해는 ITF 태권도 ‘틀‘은 창시(創始)한 것이 아니고 가라데보다 쪼끔 낫게 발전된 즉 우리 정서에 조금 어울리게 다시 말하자면 이름 및 용어를 우리말로 했다는 것이다. 그 것을 설립(設立)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조직화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틀‘을 만든 자가 자꾸만 정당화시키며 자기 자신을 요리 저리 피해가며 고민한 끝에 위안의 말을 찾아낸 것이 ’철‘과, ’아폴로‘인데 그 위선의 위안의 말에 동조하라면 난 절대로 할 수 없다.
한번쯤 솔직한 참 양심을 듣고, 보았으면 한다. ’태권도‘ 글자도 어느 누가 사전(옥편)을 뒤적거리며 찾아 낸 것인가를 알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래서 원나라에 약 120년, 중국에 약 510년, 일본에 36년, 미국에 58년째 즉 720년째 예속 생활을 하고 있는 어제까지의 사대식민사관에서 우리였다고 한다면 역사고, 철학이고, 동작들을 쪼끔씩 이름, 명칭, 용어를 복사해 바꿔 표절하였다면 정직하게 오늘은 과감(果敢)이 고쳐 나가고 당당히 바꿔 나갈 때 우리 역사에 모순을 준 이 틀에 대해서 후손들은 오늘의 지혜를 존경할 것이라고 봅니다.
“흐르는 물은 맑아지고 가는 역사는 정확해 질 것이다”. “지난 역사를 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록은 지울 수가 없는 것이고”, 불에도 타지 않는 것이며, 인간이 끝나고 나서 남는 것은 오직 남에게 준 것 뿐 일 것이다. 그러나 그 남는 것은 참 진리이다. 그리고 물은 낮은데 에 만 고이는 것! 그 물이 낮은데 고여서 철철 넘칠 때 다시 흐르는 것이다. 손바닥도 아니고 손가락으로 하늘을 고 최홍희는 가리려 했다.
1백보 천보 양보하고라도 ITF 틀에서 단재 신채호, 백범 김구 선생님 호들이 들어가지 아니한 틀은 존재가치를 의심하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고 최홍희 사상을 의심 아니 할 수가 없다. 철저한 친중, 친일, 친미 사대 주의자였는지, 기회주의자였는지 후손들은 충분히 말할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한편으로 태권도가 단추를 잘못 끼웠지만 서도 이 지구에 태권도 개척 사범님들의 영웅적인 희생정신에 의해서 보급이 되므로 정치, 경제, 외교, 체육에 많은 기여를 했다고 본다. 그래서 단점이 보이면 서슴없이 용기를 가지고 고쳐 나갈 때 오늘에 우리를 지혜 있는 자였다고 후손들은 말을 할 것으로 본다.
내 가죽 구두
(당(공)수도와 ITF와 WTF와 조국을 생각하면서)
4289년(1956년)에 짚신을 벗어 던지고 고무신을 하나 샀었지
4298년(1965년)에 새로 나온 운동화 하나 샀었지
4308년(1975년)에 튼튼한 가죽 구두 한 켤레 샀었지
동서남북에 자랑하며 아껴 신은 내 신
훨훨 날라 다니며
여기 먼 북 구까지 와서 -
10년이 지나니 물이 들어오고
20년이 지나니 모래가 들어오고
30년이 오니 큰 자갈이 들어와
9220년(2001년)09월21일, 씀.
부끄럽네
오늘이 한웅천황으로 9219년
단기로 4333년
서기로 2000년이 엄청나게 부끄럽네.
세월이 와도와도 부끄럽고
세월이 가도 가도 부끄럽네.
나이가 먹어가니 더 부끄럽네.
9219년(00년)12월29일, 씀.
오늘의 세상
위를 보나
밑을 보나
좌, 우를 보나
겉을 보나
속을 보나
복판을 보나
모두 다
부끄럼뿐이 없네 9220년(2001년)02월28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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