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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 보게나 - 아브라함 링컨은 정말 노예해방 자인가?

아브라함 링컨은 정말 노예해방 자인가?

매우 가난하여
검정 숯으로 땅에 혹은 흔 삽에다 글씨 쓰고
훤한 밝은 달밤에 땅에 글씨 쓰며 성경책(유대민족의 경전)으로 공부했다는
아브라함 링컨 전 대통령 이렇게 위대한 자라고
난 초, 중, 고등학교 때 배운 사람이다.

미국인들은 모두가 그렇게 위대할 것이라고 배운 것이다
기독교도 미국인들이 보급을 해주었고
대 살인자 맥아더가 우리나라를 살려주고 등등...

외세 대리전쟁
미 천민자본주의와 망해버린 공산주의와의 전쟁 때
상병신 전쟁 6.25 때
미국나라가 주는 날자 지난 밀가루 몇 포대 어 더 먹었다

대신 대한민국 쌀 1945년10월부터 20-40%가
강제로 공출 해가 오키나와 미군들 먹여 살리고
우린 굶어 죽어야 했다.
즉 우린 쌀을 주고 날자 지난 밀가루 어 더 먹었다.

잘 오순도순 잘 살고 있는 인디언 땅에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식민지 길을 턴 후
1607년 제임스타운 식민지 건설 영국령 식민지로 된 후
미국은 1776년07월04일 독립국이 된 후
1781년03월 USA로 발효가 된 후

1801년부터 미국은 오늘까지
212년 동안 230회가 넘게 남 나라 침략의 대 살인 강도 역사

미국의 인디언 본토인들 7천만 대 학살의 기록을 보면서
1620년 영국 청교도가 미국으로 건너 간 후
1640년 매사추세츠만 식민지 찬송가집도 만들고
추수감사절도 만들고

이 인류하고 바꿀 수없는 귀중한 생명들을 보면

1945년09월08일부터 효선이 미선이 살상, 무죄 판결까지를 보면
오늘까지 58년째 미 식민지 대한민국 역사를 보면
1950년 전후, 무기를 들 수 없는 양민 대학살 약350만 기록을 보면
어떤 이는 4백만이라고 하는 자들도 있다.

한미 행정협정(SOFA)과 우리의 생명인 국군 통수권이 없는
우리 조국의 현실을 보면
미 양키들의 양심의 신앙까지를 본다면

매우 어지러 현기증이 나 구토증이 나고
매우 분노케 하며 오장육부를 확 뒤집는다.
피가 반대로 막 돌게 한다.

아브람 링컨(Abraham Lincoln-1809-1865) 시절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이 때 링컨은 1864년에 대통령으로 재선되기도 했다.

서양의 노예에서 단 미국만 해도 서기 1620년에
아프리카 흑인들을 노예로 부리기 시작한 후
1863년까지 243년 동안에 약 1천400만 명이 추산되는 흑인들
노예의 태반이 미국으로 끌려가 혹사당했다고 한다.

1861-65년 미 남북 전쟁 때
특히 백인들은 그 노예들이 군대에 가길 원했다.
그런데 이 흑인 노예들은 군대에 가기 싫어했다.
왜! 군대에 가면 총 맞아 죽의니까 말이다.
죽기를 원하는 자가 이 세상에 어느 누가 있으랴

그런데 자유보다
해방보다
노예를 더 원한다고 엄청나게 매도를 당했다.
그렇게 억울하게 업신여김을 당했다.

오늘에 대한민국 수구 보수 세력들이 자기들의 기득권을 위해서
친 원, 친당, 친명, 친 청에 뿌리를 깊게 둔
친일에 뿌리를 깊게 둔
오늘에 친미 사대 매국노들이
자자손손 엄청난 진 죄 뿌리를 숨기기 위해

남북 민족 통일을 진심으로 청결한 양심으로 원하는 의인들에게
더럽게 추잡하게 그리고 치사하게 또 매우 비열하고 무식하게 철면피하게
빨갱이 좌익이라고 매도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 시절 강제로 끌려와 억지로 사는
그 흑인 노예들은
꿈에도 그리운 고향이 가고 싶어 했을 것이고
주야로 향수병에 걸렸을 것이고
어떻게든 살아서

꿈에도 그리운 고향에 가고 싶어 했었을 것이고
보고 싶은 부모형제를 만나길 간절히, 간절히
또 간절히 피 눈물을 흘리며 원했을 것이다.

남 땅에서 죽길 원하지 아니했을 것이다.
끌려온 땅에서 죽길 바라는 자는 단 한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미국 남북 전쟁 때 7만5000명 이상의 지원병을 모집
남북이 서로 군대가 엄청나게 필요할 때다.
비공식은 어쩜 더 많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것에 수장이 아브라함 링컨이었다.

이 링컨은 1865년4월14일에 용기 있는
J. W. 부스에 의해서 저격당해 56세의 나이로 사망을 했다.

1863년11월 케티즈버그 연설에서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치라고 한 자인데
말이다.
어떤 인민을 말하는가 말이다.
이 말이 얼마나 위선이었을까?

군대에 갈수 있는 자야만이 노예에서 해방할 수 있었다고
죽어서 해방이 되면 무엇 하랴
그렇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말이다.

죄 꼬리만한 자유가 있었던 그 흑인 노예들에게
그 자유마저 잔인하게 뺐었던 대 살인자 아브라함 링컨

이 진리의 말은 138년 째 줄기차게 내려온 말
영원히 이 지구가 존재 할 때 까지
철저히 각인(刻印) 될 흑인들의 한(恨)
불에도 타지 않을 기록
불에도 탈 수없는 기록

9222년(2003년)01월29일. 림원섭 씀.

리영희 교수의 말씀:
그런 집단이 아니에요. 북한에 대해서 전쟁을 해야 할 텐데, 딴소리하면 제 아무리 굽 신 거려도 소용없고. 그 양반(노무현)이 미국 가서 갑자기 링컨 존경하게 되었다 고도 했는데, 또 그게 무슨 소리야? (웃음) 인류사에 존경할 만한 인간이 얼마나 많은데. 링컨의 이미지는 미국 애들이 조작한 거라고.

그 유명한 게티스버그 스피치에서 ‘포 더 피플, 오브 더 피플, 바이 더 피플’이라는 말을 했는데, 그 뒤에 보면 인종차별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습니까. 인종차별을 얼마나 했는데….

리영희, 박노자 교수 만남에서 고경태 기자가 정리 03.10.05 민족통신 20112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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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에 진영 단감... 발언은 립서비스였나,
(특별기획), 농수산물 수입개방, 11가지의 오해와 진실‘이란 글에서 (글 박형숙(xzone)기자. 오 마이뉴스 2003/12/09, 오전10.06

영국 식민지 벗어나 자립경제 위해 가장 먼저 보호무역 시도한 나라는 미국

대안연대회의 소속의 정승일 박사(재벌 및 기술경제)는 대통령의 농업 관을 두고 "가장 먼저 보호무역을 시도한 나라가 미국"이라며 링컨의 노예해방 전쟁으로 알려진 남북전쟁을 예로 들었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남북전쟁은 노예해방을 위한 전쟁이 아니다. 노예들을 거느리고 면화를 생산한 남부의 농장주들과 북부의 제조업 자본가 사이에서, 당시 영국의 공산품을 수입하고 면화를 수출하면서 비교우위 교역을 하고 있던 미국이 자국의 제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보호무역을 단행한 결과였다.

북부를 대변한 링컨은 국내의 공산품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남북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당시 남부의 노예주들은 자유무역을 주장하고 있었다."

9222년(2003년)12월09일, 03.00시 오 마이뉴스 보고 펌.
림원섭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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