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중요한 자료 정독을 빕니다.
조금 길지만 끝까지 읽어주시길 빕니다.
아래 글은 대한민국 정치 역사 자료이기 때문에 꼭 아셔야 할 자료라고 봅니다.
미 정부, 친미 언론인 조직적 양성
[심층분석] KBS , 미 공보처 보고서 통해 확인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신미희(sinmihee) 기자
미국유학파를 배제하고서야 나라가 제대로 선다(수정) 조회수:629 , 추천:24, 반대:2
장백산인(f5189g), 2003/12/11 오후 7:32:13,
저번 이 게시판에 올린 미국유학파를 배제하고서야 나라가 제대로 선다는 글을 조금 수정하여 재차 올립니다. 이 글을 읽은 네티즌에게는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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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이 나라가 자주독립국의 위상을 찾기 위해 미국 유학파는 정리할 때가 되었다. 리영희교수는 외교 심리적 언어학에서 우리가 어려운 영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미국을 숭배하는 감정이 뼈속깊이 싹트게 된다고 한다.
자신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이 잠재의식에 쌓이는 숭미사대주의적 근성은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다가온다고 한다. 옛날 우리 선조가 한자문화를 가지면서 중국의 한족국가에 모화사대를 바치지 않으면 안되었던 악순환의 재판이다.
이들 미국식 경영학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전략전술을 전공한 자들은 뻑하면 미국을 기준으로 내세우게 마련이고 미국식은 절대선이 된다. 송영선이라는 국방부 여직원이 최근 이라크파병문제로 방송에 등장하여 시청자들에게 엄청난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는데 이 여자가 미국인인지 한국인이지를 헷갈리게 만들고 나아가 국민들에게 이 나라가 도대체 미국의 외따로 떨어진 52번째 주정부인지를 헷갈리게 만든 것이다.
이들 미국유학파들이 국가의 중심부에 존재하는 한 이 나라의 자주독립은 백년하청이다.
요즈음 파병을 주장하는 것들 중에 미국에서 공부하지 않는 인간이 어디 있으며 그들은 어쩌면 자기신념에 차서 미국에 봉사하자고 외쳐대는지도 모른다.
그저 일신상의 출세를 위해 간교한 주둥이질로 국민을 속이고 파병하자는 바람잡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그 자체에 대한 숭미사대주의가 잠재의식으로 잠겨있음이 짐작되기도 한다. 더구나 최근 벌어지고 있는 미군기지 한남이남으로의 이전에 결사반대하고 용산기지에 특급호텔을 지어서라도 몇 명 남지 않았으나 지엄하고도 높고 높으신 미군님들이 편안히 거하시도록 하자는 국회의원 무려 백삼십명의 주장 앞에 본 도사는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도다! 우째 세상에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결국 이 나라 기득권층이 서울에 쌓은 그들의 권세와 부를 지키기 위해 결국 기댈 곳은 미군이더란 말인가?
미국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다고? 그렇다면 미국이 도움을 준 우리가 누구인가?
우리 민족 전체를 말함이 아니다. 우리 민족의 반쪽인 북한에는 총포를 쏘아대고 전쟁이라는 명분을 통해 무려 백만을 학살하였다. 고분고분한 반쪽에게 원조를 주고 돼지키우듯 키워서 이제 통실통실 살이 쪘으니 잡아먹으려 하는 것이다. 우리는 원조를 받은 것이 아니라 사육된 것이다.
제국은 제국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에 진주하였을 뿐이다. 우리 민족의 감정 따위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한국을 일본의 식민지로 대했을 뿐 해방된 민족으로 결코 대우해 주지 않았고 그들은 일본을 대신해 자신들의 식민지를 경영하고자 했을 따름이다. 네티즌 여러분, 이 상황은 반세기가 넘게 지난 지금 과연 해소되었는가? 이 나라의 지배계층을 형성하는 지식인들이 모두 미국 유학파가 장악하고 있을진데 군대인들 오죽 하겠는가? 특히 군대는 미국에 철두철미하게 종속된 하부구조로 편성되어 있다.
명분에서조차도 그렇다. 이 나라 전시작전권은 미국이 쥐고 있다.
전시 작전권 평시 작전권으로 나누는 게 이상하지만 하여튼 군대란 평상시에는 그 막강한 힘에 비해 별 쓸모가 없는 존재이다. 지진이나 태풍과 같은 천재지변의 구조 정도에 큰 힘을 발휘하지만 말이다. 군대는 오직 전쟁에서 자신의 존재를 말한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전쟁시에 필요한 한국군의 지휘를 한국의 대통령이 행사할 수 없다. 미군 8군사령관이자 한미연합사 사령관이 쥐고 있는 것이다. 이게 어디 자주독립국이냐?
지금 지구상에 자기 나라 국군의 전시작전권을 남의 나라에 이양한 국가가 어디 있는가?
이게 한미동맹의 실체이냐? 듣기 좋으라고 말은 동맹이고 노예의 신세이지 않는가?
그리고 우리 나라가 자주국방을 위해서 미국의 무기를 사 준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미국의 전략적 목표에 봉사해 주기 위해 우리 국민의 혈세로 무기의 소유권을 한국으로 이전하는 것 뿐이다. 군병을 십년 살찌움은 전쟁의 단 한순간에 써먹기 위해서가 아니던가! 그런데 결정적 순간에 우리 국민이 피땀 흘려 벌어서 사둔 무기와 키워둔 군대가 바로 한국 주둔 미군사령관의 예하에 배속되어 제국의 이익을 위해 결국 봉사한다고 생각하면?.......
이 비자주성의 극치인 한국군의 역사도 그렇다.
해방이후 미군정하에서 국방경비대로 출발한다.
이 국방경비대의 장교에 이상하게도 항일독립군들은 전혀 가담하지 않았다. 왜, 미국이 말 잘 듣는 숭미노예가 필요했지 이런 억센 사람들은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방공간이 되자 만주에서 활동한 항일독립군들은 대개가 북한에서 성립된 인민군에 가담해 버렸다.
미국은 군사영어반을 만들어 일제 군대나 경찰에 복무한 젊은이들을 장교로 키워 이 국방경비대를 운영했다. 이 군사영어반이 바로 한국군의 간성인 오늘날 육사의 전신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이 나라 국군의 역사이다.
이 군사영어반에 정일권 장도영 이한림 박정희 김재규 김창룡 등 모두 일제의 군대나 경찰이 키웠던 개들인데 이들이 다시 한국군의 중추가 된 것이다.미군에 의해 설립된 군사영어반은 6개월 단위로 1기수를 배출했다. 4년제 정식육사는 625전쟁 와중에 만들어진다.
군사영어반 11기이자 정식 육사 1기가 바로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김복동 손영길 등이다.
박정희는 정식 육사 1기를 무척 총애하여 자기를 따르는 친위장교들로 만들었고 이들에게 박정희 다음 세대의 군의 중심으로 키운 셈이다. 국군의 장교 중에서 하늘의 별따기만큼 힘들다는 장성으로 진급하려면 필히 거쳐야 하는 코스가 있다.
미육균보병학교이다. 이 유학코스를 거쳐야만 장군으로 진급되며 이 육군보병학교에 입교하는 젊은 장교들을 미국은 충실한 개로 키우기 위해 온갖 교육프로그램을 다 짤 것이다. 20세기 후반기의 지구촌은 이 미보병학교를 거쳐나간 각국의 장교들이 일으킨 쿠데타의 시대였다.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지의 여러 국가에서 민중이 투표로 선출한 민간정부를 뒤엎고 친미쿠데타를 감행한 인간말종들의 산출지가 바로 미보병학교라 보면 된다.
대표적인 쿠데타가 1973년에 아옌데 정부를 무너뜨린 칠레의 친미군부쿠데타였으며 1980년 한국의 신군부에 의한 친미쿠데타이다.
브라질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에콰도르 파나마 볼리비아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등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참담한 역사는 새삼 거론하지 않겠다.
미국이 자유민주주의국가라는 말도 거짓이다.
그들은 세계각국의 자율적인 정부를 무너뜨리고 미국의 이익에 복무하는 군부쿠데타를 배후에서 수없이 조종하여 소기의 목적을 이루었다.
이 군부쿠데타정권이 어떠한 반민주주의적 인권탄압 학살을 자행해도 눈감아주고 미국의 이익에는 반할 수 밖에 없는 국민에 의한 민간정부가 어렵게 들어서면 도리어 이를 전복시키기 위해 온갖 정치공작을 자행한다.
소위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이 왜 이렇게 군부쿠데타를 선호했는가?
타국의 민주주의 실현에는 주댕이질만 할 뿐 전혀 관심이 없는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실현해주는 정부를 창출하기 위해 가장 손쉬운 게 군부쿠데타였기 때문이다. 그 나라 국민들을 설득하려면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겠는가?
하지만 미보병학교에서 인맥을 쌓고 그 인간들의 됨됨이를 파악하고 있는 각국의 군장교들을 추동하여 정부를 전복하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고 더구나 정통성이 없는 이 정권들을 조종하여 미국의 이익을 최대한 실현시킬 수 있었으므로 금상첨화였다.
전 세계의 정치적 불행은 바로 이 미국보병학교에서 시작된다.
지금도 장성진급을 노리는 한국군의 많은 장교들이 영관급일 때 이 미국보병학교에 유학하게 된다.
이 것도 모두 국민의 혈세로 이루어진다. 국민의 혈세로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장교들이 국민들에 총칼을 들이대는 쿠데타를 일으킨 20세기역사는 아직도 일부 국가에서 지속되고 있다. 한국은 한국민의 민주주의 의식이 고양되어 이 저주스런 악순환의 고리에서 완전하게 빠져 나왔는가?
이 시점에서 우리 국민정서는 확실히 민족자주로 돌아섰다.
우선 한국이 제대로 된 국가로 서려면 기득권세력이 어떤 지랄옆차기를 하든 미국에서 공부한 유학파들을 정부권력의 핵심에서 몰아내지 않고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유럽에서 공부한 자들을 관료로 채워나가고 이제는 국군의 장교도 프랑스 러시아 중국 이태리 등지로 공부시키고 폭넓은 사고와 인맥을 구축하게 하여 세계적인 눈을 가진 군대로 키우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제국의 간섭과 협박공갈이 여러 가지 형태로 이 나라를 휘둘러칠 것이다.
그러자면 이 간섭을 견디어낼 수 있는 자주적인 의식의 대통령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하겠지! 어제 중국은 2조의 예산을 들여 고구려사를 중국의 변방사로 만들려는 작업을 시작하였다는 놀라운 보도를 하였다.
우리 민족의 영광인 고구려를 한반도에서 분리해버림으로써 동북아 최대의 강성대국으로 커나갈 우리 민족을 견제하려는 분명한 의도이다. 한국사에서 고구려사를 빼버리면 남는 것은 조상의 고토인 대륙을 잃어버리고 한반도에서 외세에 사대하며 살아간 부끄러운 천년 역사 밖에 남지 않는다.
하여튼 한반도를 둘러싼 외세는 간접적이로되 미국은 우리에게 직접적인 외세이다.
제국은 반세기전 이 땅을 일제대신 점령하며 우리들의 원조자로 둔갑하고 해방자의 가면을 썼으며 우리들의 안방까지 들어와 우리들 어머니와 누이들의 정조를 점령하고 마침내 아비의 영혼마저 점령했다.
그리고 우리는 제국에 의해 사육되고 길들여졌다.
후일 우리들의 입맛과 생활방식과 사고구조마저 미제가 아니면 안되도록 사육된 것이다. 요즈음은 이 것이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이데올로기화되었다. 정글의 법칙을 관철하는 미국식 자유경쟁체제만이 인간문명의 가장 효율적인 체제인양 선전되었다.
자연의 파괴와 인류의 슬기로운 지혜인 공동체적 정신을 파괴하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폐해는 전 세계적으로 확인되고 WTO체제에 대한 저항이나 멕시코의 사바티스타운동과 같이 제3세계권에서 세계화에 반대하는 거대한 조류를 발생시키고 있다. 우리 민족은 아무 생각없이 미국의 등에 안주하며 이 시대의 한복판으로 떠내려온 셈이다.
신동엽 시인이 한라에서 백두까지 껍데기는 가라고 외쳤듯 반미자주화는 우리 마음속 껍데기를 버리는 데서부터 전방위에서 치루어지는 허물벗기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반미가 누구를 거부함으로써 우리가 가진 것을 잃게 되는 마이너스게임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반미는 잘못된 경향성을 배제하고 그로써 얻게 되는 많은 가치를 획득하자는 플러스게임이다.
이 땅의 반미자주화는 한반도에서 인구에서나 경제력에서나 통일의 주도자로 나선 남한이 철저한 항미를 통해 민족주체를 담보해온 북한에 부끄럽지 않는 나라로 거듭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제국의 변방에 종속되어 중심부로 끊임없이 빨려 들어가는 국부의 유출구조에 저항하고 우리 민족 민중의 노동가치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우선적으로 이 땅의 평화는 반미자주화이다.
소나무(j6218k) [2003-12-11 19:58]
강추! 강추! 또 강추입니다. 장백선인님이시여.......
이준수(ljsk1512) [2003-12-11 20:08]
내 어지간해서는 욕 안하는데 이 장백선인이 라는 종자 혹시 도포입고 짚신 신고 민족주의자 행세하는 꼴 떠는 사람은 아닌지 가끔 티브이에 데모할때 꼭 끼는 일 안하고 특정한 직업없이 선동으로만 먹고 사는 드런놈은 아닌지 주제넘는 나라 걱정하지말고 국민은 더더욱 걱정말고 당신 직업이나 잘 구해서 민페 끼치지 말기를
장백도사님(통일소망) [2003-12-11 20:32]
도사님의 글을 배울때면 고개가 절로 숙여 집니다.
으이그(태청산아) [2003-12-11 20:33]
이준수 이 돼지식기 여그서 뭔 지랄떠냐
장백산인(f5189g) [2003-12-11 20:54]
이준수라! 그 초성 중성 종성 한글이름 값으로 보아 아주 잘 지었구만! 그래 본 도사가 짚신은 안신네만 도포를 즐겨입는데 왠 남의 복장문제로 민족주의자를 욕보이시는가? 그리고 본 도사는 군중을 싫어하야 데모에는 잘 안가지만 갔다하면 유리창정도는 깨거나 피바람불러버려! 본 도사가 남의 관상봐주다 보니 나라걱정까지 하네 됐네 미안하네 이사람아 봐주시게나
천병철(cbc111) [2003-12-11 23:24]
산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입니다,다만 한가지 동북아 강성대국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바는 아니라고 봅니다. 주변 4강의 틈바구니에서 현실적인 어려움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도 우리는 국제적인 상생의 길을 도모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김구선생의 "백범일지" 내용으로 대신하고자하며 내용이 길기에 50번 글에 올림니다
철철넘치는(bergotte) [2003-12-11 23:25]
민족애를 주체하지 못하는 당신. 만약 당신 스스로 남한테 월급을 의존하지 않기위해, 기업을 세워 운영해본 다음에 이런 류의 글을 읽으면 스스로 얼굴이 뜨거울 것입니다. 자주는 스스로 자원이 많은 나라나 외칠 수 있는 구호입니다. 철을 사와서 철강을 팔아 먹고 사는 나라에게는 사치스런 구호입니다.
장백산인(f5189g) [2003-12-11 23:44]
도대체 뭔 말인지 민족애하고 기업경영하고의 상관관계를 함부로 이야기하는 당신! 자원이 없는 나라는 자주하지도 못한다는 해괴한 논리의 당신! 소위 국제간의 자유교역과 민족자주화와 왜 상치되는지를 설명하지 못하는 당신! 부탁하건데 의견란에 주장을 좀 피력해 주시오! 고견을 경청하겠소이다!
자유교역과(bergotte) [2003-12-12 00:35]
민족자주화는 상치되지 않습니다. 짧은글에 제의도는 반미자주화는 자주가 아니라 고립입니다. 굳이 용어를 만들자면 관계자주화이겠죠. 한국은 자원이 충부한 말레이지아처럼 자주할수는 없고, 싱가폴처럼 국제화속에서 자신의 입지를 찾아야 한다는 뜻에서 한말입니다.
장백산인(f5189g) [2003-12-12 01:02]
지금 한국이 너무나 국제화되어 있어서 문제요! 소위 세계화의 문제점 말이지! 세계화를 적극 저항하는 사바티스타운동의 이념을 한번 알아 보소! 경제의 90%가 교역을 하여 먹고사는 이 나라는 이미 국제화되지 않으면 그 즉시 죽는 운명이여! 본 도사의 글이 이 기본조건을 부정하는 말은 아니지! 미안하지만 그렇게 독해력이 없는 거요? 답답할 뿐이오!
가슴아파(eriberi) [2003-12-12 08:44]
아! 슬프다 문제는 이준수 철철넘치는 이런자들이 도처에널려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헛소리하는 현실이 가슴아프다
시리우스(zzuzzuvax) [2003-12-12 19:39]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님 글을 보니 알지도 못하는 넘이 어줍잖은 생각으로 오마이에 글올린 제가 부끄럽군요.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건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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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청산 특별법, 물건너 가나
[현장-법사위] 법안심사 소위로 넘겨 재논의키로 결정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이성규(dangun76) 기자, 2003-12-28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조회수:108 , 추천:4, 반대:0
.(nunugu1), 2003/12/27 오전 11:49:57
★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박정희) 친일 행적 열 가지 ★
① 일제에 대한 충성심이 태동-혈서(최우수 제국군인)
② 몸과 마음을 철저하게 개조 - JS표 일본인 준비
③완전한 일본인 - JS표 일본인
④ 항일세력의(독립군) 토벌 - 110여회 참가
⑤ 일본군의 특수부대(철석부대) 활약 - 간도특설대
⑥ 변신의 달인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⑦ 박정희의 창씨개명 - 조선인 흔적 지우기
⑧ 일본군인 생활에 대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향수
⑨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으로써의 친일
⑩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으로써의 친일 2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친일파들 중에서 가장 성공한 친일분자는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이다. 친일부역의 정도에 따라서 A급, B급, C급 등으로 나눈다면 박정희에게는 A급으로는 부족하여 특급 친일파(A+)로 분류가 되어야 할 것이다.
가장 저질적인 친일파가 우리의 대통령으로써 18년간이나 철저한 인권유린에 바탕을 둔 군사파쇼로 통치를 했는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를 휼륭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겨울공화국 같은 독재와 반민주, 반인권의 죄상을 묻지 않아도 친일행적 하나만으로도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용서받을 수 없는 역적 죄인이다.
만주군관학교 2기생으로 자원입학(1940년 4월 4일).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졸업식 날 다음과 같은 선서를 힘차게 낭독했다.
"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聖戰)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휼륭하게 죽겠습니다."
"盡忠報國 滅私奉公(진충보국 멸사봉공)"
이 글귀가 바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손가락을 잘라서 쓴 충성혈서이다
만주군관학교를 투철한 친일정신과 열성적 훈련으로 수석 졸업의 영광을 차지한다. 수석졸업의 영광으로 금시계를 선물로 받고 졸업생 대표로 천황찬양으로 가득한 답사를 읽었다. 당시 일본육군사관학교 교장 나구모 쥬이치(南雲忠一)의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자.
『....다카키 생도는 태생은 조선일지 몰라도 천황페하에 바치는 충성심이라는 점에서 그는 보통의 일본인보다 훨씬 일본인다운 데가 있다...』라고 평가하였다. 또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10.26으로 김재규 총에 맞아 죽었을 때 주한 일본대사관에서 한 일본 외교관은 이러한 말을 했다.
"대일본제국 최후의 군인이 죽었다." 라고 하였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와 함께 지냈던 어떤 만주군 장교 출신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하루 종일 같이 있어도 말 한마디 없는 음침한 성격이었다. 그런데 "내일 조센징 토벌 나간다."하는 명령만 떨어지면 그렇게 말이 없던 자가 갑자기 "요오시(좋다)! 토벌이다."하고 벽력 같이 고함을 치곤 했다. 그래서 우리 일본생도들은 "저거 좀 돈 놈이 아닌가."하고 쑥덕거렸던 기억이 난다....]
또한 이후에 다시 우익장교가 된다. 그리고 다시 반공주의자로 변신하여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다 보여준다. 어쩌면 한반도 남쪽을 반공으로 도배하는 길만이 자기의 과거를(황군/좌익 등) 은폐하고 숨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기회주의 속성을 가지고 태어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기회주의란 무엇인가를 완벽하게 보여 준 전형적인 인물이다.
[중앙일보. 1991. 12. 14]
[ ..... 계엄선포 한 달 전쯤인가(1971. 10. 17 계엄이 선포되었다)
박대통령이 나를 불러요.(여기서 나는 강창성 전보안사령관) 집무실에 들어갔더니 박대통령은 일본군 장교 복장을 하고 있더라고요. 가죽장화에 점퍼차림인데 말채찍을 들고 있었어요. 박대통령은 가끔 이런 복장을 즐기곤 했지요. 만주군 장교시절이 생각났던 모양입니다.
다카키 마사오 중위로 정일권 대위 등과 함께 일본군으로서 말달리던 시절로 돌아가는 거죠. 박대통령이 이런 모습을 할 때면 그분은 항상 기분이 좋은 것 같았어요....] 박정희는 이때 일본으로부터 식민지 지배 보상 명목으로(한일경제협력을 위한 지원금) 3억달러 정도를 받는 것으로 끝낸다.
장면 시절의 8억달러나 이승만 때의 80억 달러의 주장에 비하면 너무나 헐값이었다. 일본은 이때 받았던 3억달러로 식민지 지배에 대한 피해 보상은 모두 끝났다고 말한다. 생존한 위안부 할머니들이 몇 백일을 시위해도 일본은 10원 한푼 내놓지 않을 것이다. 모두 친일파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작품이다.
또한 1973년 서울 지하철 차량부정도입 사건을 저지른다. 일본에서 지하철차량 186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하였는데 일본에서 3,204만엔하는 가격을 6,350만엔이란 두 배 정도나 비싼 가격으로 계약하였다. 이것은 만주군 출신 선배들의 로비와 정치자금의 리베이트가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박정희)의 친일행각
★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박정희) 친일 행적 열 가지 ★
[글 내용 순서]
들어가는 말
① 일제에 대한 충성심이 태동-혈서(최우수 제국군인)
② 몸과 마음을 철저하게 개조 - JS표 일본인 준비
③완전한 일본인 - JS표 일본인
④ 항일세력의(독립군) 토벌 - 110여회 참가
⑤ 일본군의 특수부대(철석부대) 활약 - 간도특설대
⑥ 변신의 달인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⑦ 박정희의 창씨개명 - 조선인 흔적 지우기
⑧ 일본군인 생활에 대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향수
⑨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으로써의 친일
⑩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으로써의 친일 2
맺는 말
★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박정희) 구체적 친일 행적 열 가지 ★
[ 들어가는 말 ]
얼마전 3,1절 83돌을 맞이하여 광복회와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에서 709명의 친일파 명단을 발표하였다. 당시 전략적 차원으로 명단에서 제외되었던 박정희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한다.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친일파들 중에서 가장 성공한 친일분자는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이다. 친일부역의 정도에 따라서 A급, B급, C급 등으로 나눈다면 박정희에게는 A급으로는 부족하여 특급 친일파(A+)로 분류가 되어야 할 것이다.
가장 저질적인 친일파가 우리의 대통령으로써 18년간이나 철저한 인권유린에 바탕을 둔 군사파쇼로 통치를 했는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를 휼륭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역사학자나 경제전문가들에게서 긍적적인 평가의 대상조차 되기 힘든 박정희가 대중들에게 휼륭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는 분위기에 문제점이 있다고 보며 그 문제점과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역류시키고자 글을 올린다.
그 동안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에 대한 글을 몇 편 올렸지만("너(박정희)의 가면을 벗겨주마 1∼8편" 등) 구체적 친일행적에 대한 글은 올리지 않았었다. 왜냐하면 그러한 친일분자가 우리의 대통령으로써 18년간이나 통치하였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겨울공화국 같은 독재와 반민주, 반인권의 죄상을 묻지 않아도 친일행적 하나만으로도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용서받을 수 없는 역적 죄인이다.
변신의 황제였던 그는 결국 한반도 남쪽에 일본도 흉내만 내다만 천황주의를 완성하였다. 즉, 다카키 천국을 건설하였던 것이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반전술, 변장술, 위장술, 둔갑술 등을 이용하여 천황주의를 완성하고 진짜천황이 되었는데 그 과정은 역겨운 구토물 속에서 이루어졌다.
보라!
교사에서 군인으로--- 조선청년에서 일본군 장교로--- 박정희에서 다카키 마사오로--- 다카키 마사오에서 오카모토 미노루로--- 오카모토 미누루에서 다시 박정희로--- 일본군 장교에서 대한민국 장교로--- 빨갱이 무기수에서 반공의 기수로--- 충성스런 장성에서 군사반란 두목으로--- 육군 대장에서 대통령으로---
박정희는 극과 극을 자유자재로 넘나들었으며-- 그에게는 조국과 민족도, 적과 동지도, 양심과 이념도 단지 권력의 디딤돌이었을 뿐이다.
-. 민족과 반민족, 정의와 불의 따위 구분은 깡그리 무시하였던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 아무리 반민족이고 불의라도 권력으로 통하는 길만 보이면 돌진했던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 기회주의는 그의 처세술이고 천황주의는 그의 사상이었던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이제 그의 망령에서 벗어나야 한다.
[ 내용 ]
① 일제에 대한 충성심이 태동 - 혈서(최우수 제국군인)
문경보통학교 교사로 있던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자진해서 만주군관학교 생도생으로 스스로 들어갔다.
만주군관학교 2기생으로 자원입학(1940년 4월 4일).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나이 23세. 입교 동기생으로 240중 조선인 12명. 15등으로 입학하였다. 하지만 2기 졸업식에서는 240명중 당당히 1등으로 졸업하였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그 덕에 영광의 얼굴로 [만주일보]에 실린다. 뿐만 아니라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졸업식 날 다음과 같은 선서를 힘차게 낭독했다. "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聖戰)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휼륭하게 죽겠습니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에 자원해서 들어가는 상황을 좀더 살펴보자.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나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기에는 나이가 많았다. 즉, 나이 때문에 자격 미달이었는데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호적을 고쳐서 나이를 낮췄다고 한다.
또한 나이를 낮췄다고 멀쩡한 조선인이 군관학교/사관학교에 입학하기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신원검증과 사상검증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어떻게 하면 신원검증과 사상검증에서 인정을 받고 만주군관학교에 입학 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이에 동료교사 유증선이 아이디어를 내주었는데 "박선생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쓰면 어떨까?"라고 하며 제안했다고 한다. 이에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그 자리에서 찬동했다. 나이도, 신원검증도, 사상검증의 장애물을 한번에 날려 버릴 수 있는 충성혈서는 만주군관학교 사람들을 감동 시켰다. 아니 일제를 감동 시켜 당시의 언론에(만주일보) 대서 특필 되었다.
"盡忠報國 滅私奉公(진충보국 멸사봉공)"
이 글귀가 바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손가락을 잘라서 쓴 충성혈서이다
이 글귀를 풀이하자면 충성을 다하여 나라에(일본) 보답하고, 나를(私) 죽여서 국가를(公) 받들겠습니다." 라는 가미가제식 자폭성 혈서를 쓴 것이다. 이 충성혈서는 한 가지 기록을 갖게 된다.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혈서로 일본천황에 충성을 맹세한 조선사람은 단 한명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뿐이었다. 스스로 자진해서건 강제로건 혈서로 일제에 충성을 맹세한 사람은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교사의 신분으로 있던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에 자원 입대하는 것은 천하제일의 기회주의자로 출발하는 신호탄이었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온갖 방법을 다 써가며 자기를 지우려했던 어머니와의 출생전쟁에서 승리하여 죽음의 집 같았던 어머니의 자궁으로부터 탈출하였고 다시 가난한 집과 고향으로부터 탈출하여 황국신민교육의 첨병 대구사범학교로 탈출하고...
다시 사무라이정신으로 무장한 일본군장교 양성기관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군사관학교로 탈출하여 신민지 조선을 탈출하게 된다. 그리고 천황주의자의 신봉자가 되어 조센징 토벌에 몸과 마음을 바쳐 젊음을 불태우게 된다.
② 몸과 마음을 철저하게 개조 - JS표 일본인 준비
만주군관학교를 투철한 친일정신과 열성적 훈련으로 수석 졸업의 영광을 차지한다. 수석졸업의 영광으로 금시계를 선물로 받고 졸업생 대표로 천황찬양으로 가득한 답사를 읽었다.
당시 친일신문〈만주일보 1942. 3. 24〉기사 일부를 인용하면... [… 빛나는 우등생 오카이(日系), 고야마(日系), 다카키(鮮系-박정희) 등 5명에게 각각 은사상증의 전달이 잇고 폐식 하였다....]
만주군관학교 출신의 조선인은 대략 제1기∼제7기까지 50여명 정도인데...
이 만주군 출신들은 훗날 대통령, 국회의장, 국무총리, 국방장관, 군참모 총장, 해병대사령관, 군사령관, 군단장, 연대장, 고급 참모등 정부와 군의 요직에서 나라를 이끌어 가는 중요 인물이 된다. 한 마디로 황군들이 나라 조지고 민족정기 좀 먹는 세력이 된 것이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를 지도했던 한 일본인 장교의 말을 들어보면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어느 정도 몸과 마음을 철투철미 하게 일본 제국주의에 충성하고자 하였나를 알 수 있다.
[매년 가을이 되면 군관학교에는 생도 전원이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행군연습을 실시했다. 박정희는 그때 내가 맡은 소대의 제1분대장이었는데, 다른 분대장과는 달리 기합이 들어 있었고, 의욕도 대단했다. 진지공격 연습 같은 때 대단히 어려운 임무가 부여되더라도 박정희는 그 임무를 달성하려는 의욕으로 꽉 차있었다. 박정희는 말수가 적고 속에 투지를 감춘 사나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라고 진술하고 있다.
③ 완전한 일본인 - JS표 일본인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관례대로 우등생에게 주어지는 일본육사 특전의 혜택을 누리게 된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일본 육사를 입학하려고 군관학교 시절 남들보다 철저한 황군정신으로 몸과 마음을 닦고 열심히 공부한 것이다. 일본 육사에서도 진지한 학습태도로 모범생이란 평을 받고 3등이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한다.
조선인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일본 육군 대신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이로써 박정희는 완전한 일본인(다카키 마사오)이 되었다. 아니 대일본제국의 군인이 되었다. 당시 일본육군사관학교 교장 나구모 쥬이치(南雲忠一)의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자.
『....다카키 생도는 태생은 조선일지 몰라도 천황페하에 바치는 충성심이라는 점에서 그는 보통의 일본인보다 훨씬 일본인다운 데가 있다...』라고 평가하였다. 또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10.26으로 김재규 총에 맞아 죽었을 때 주한 일본대사관에서 한 일본 외교관은 이러한 말을 했다.
"대일본제국 최후의 군인이 죽었다." 라고 하였다.
한마디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JS(Japanese Standard)표 [일제인]이라는 말인 것이다.
④ 항일세력의(독립군) 토벌 - 110여회 참가
소위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일본 본토의 마쓰야마 제 14연대에 처음 배속을 받았으나 진정한 일본군인을 참작하여 만주 제8연대의 소대장으로 임명되어 모란강 부근의 영안으로 전출되었다가 화북지방의 열하 보병 제8군단에 배속된다.
영안지방 →간도에서 활약한 한인 독립군부대가 북만주로 이동할 때와 노령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이 서쪽으로 진출할 때에 주둔하던 요충지였다. 열하지구 ⇒ 일본군에 대한 항일 투쟁이 끊이지 않았던 지역이다.
항일세력은 팔로군, 군부군, 광복군, 조선의용군, 소규모의 게릴라 (유격대) 등이었다.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이곳에 임관한지 1년만에 중위로 진급한다. 군의 편제상 소대장은 최전선에 배치된다. 여기에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열성적으로 항일부대를 토벌했던 공로로 승진이 빨랐던 것이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소속되어 있었던 부대는 독립군 토벌에 110여회를 출정하게 되는데 과연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양심의 가책이나 동포를 죽이는 행동 때문에 방아쇠를 당기는 행위에 고민을 하였을까? 미안하지만 어림없는 소리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조센징 토벌이라면 환장을 한 놈이었다.
"조센징 토벌이다. 요오시(좋다)"를 연발하며 출정을 즐긴 놈이다.
이 상황을 좀더 자세히 보자
문명자씨의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워싱텅에서 벌어진 일들』에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만주군 시절 이야기가 나온다. 1972년 문명자 기자가 어렵게 찾아가서 듣고 기록한 생생한 증언이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와 함께 지냈던 어떤 만주군 장교 출신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하루 종일 같이 있어도 말 한마디 없는 음침한 성격이었다. 그런데 "내일 조센징 토벌 나간다."하는 명령만 떨어지면 그렇게 말이 없던 자가 갑자기 "요오시(좋다)! 토벌이다."하고 벽력 같이 고함을 치곤 했다.
그래서 우리 일본생도들은 "저거 좀 돈 놈이 아닌가."하고 쑥덕거렸던 기억이 난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본질을 알 수 있는 증언이다. 말없는 사나이가 갑자기 고함을 질러대는 것은 발작일까? 기적일까? 어느 쪽이든 조센징 토벌이란 명령을 받으면 자기도 가눌 수 없는 흥분 상태에 빠진 것만은 분명하다.
요오시란 말은 우리말 좋다와는 어감이 다르다고 한다.
요오시는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요오시(좋다)! 토벌이다."라고 고함을 지러대는 행동에는 "조센징을 반드시 내 손으로 때려잡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만방에 선포하는 행위인 것이다.
이것은 강렬한 의지와 충성심에 불타는 "조센징(독립군) 토벌"에 대한 결연한 의지와 신념을 보여주는 행동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⑤ 일본군의 특수부대(철석부대) 활약 - 간도특설대
일본은 만주 서남부와 중국북부에 투입할 용맹한 부대를 선발하여 특수부대(철석부대)를 만든다. 여기에 조선인 부대인 [간도특설대]도 선발되는 영광(?)을 얻는데 그 속에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이주일 등이 소속되어 있었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중국북지(열하성 만리장성 남방 평곡-북경 동북방)로 투입되어 항일 세력과 치열한 격전을 벌였다. 여기서 혁혁한 공을 세운다. 소수민족들의 특수부대는 많았다. 조선인의 간도특설대, 러시아인의 찬야부대, 몽고인의 기야부대, 회교인의 회교부대, 오르치온족의 공작대 등이 있었는데....
간도특설대가 가장 강력했다고 한다. 한가지 예를 들면 「일본군, 만주군이 못해내는 작전을 간도특설대가 가서는 거뜬히 해치우곤 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조선인 공적평가에 인색한 일본인들도 간도특설대에 대해서는 "상승의 조선인부대" 라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소속한 특수부대(간도특설대) 요원들이 얼마만큼 항일군의 토벌에 커다란 공을 세웠는지를 대변해주는 이야기이다.
⑥ 변신의 달인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보통학교 교사에서 만주군 지원 입대... 만주군관학교의 수석졸업과 금시계의 영광... 3등으로 졸업한 일본육사 생활도... 만주에서 관동군으로 복무하며 항일세력을 토벌하던 생활도.... 일본의 무조건 항복에 날아가 버린다.
친일파 아니 일본인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1945년 8월 15일 이후에는 어떤 행동을 하였을까? 일본의 지배는 영원 할 것이라고 생각한 박정희에게는 일본의 항복은 대단한 쇼크였을 것이다. 패잔병의 낭패감과 극한의 절망에 빠졌으리라.
하지만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누구인가 변신의 천재가 아닌가? 절망도 잠시였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곧바로 변신을 시도한다.
그토록 노력하고 공들여 입은 황군의 군복을 벗어 던지고 민간복으로 같아 입고 만주군의 부대를 탈영하여 피난민으로 가장하고 피난민 대열에 끼어 들어 북경으로 들어가 광복군에 합류한다.
우리는 여기서 유리한 상황에만 빌붙는 기생충 같은 기회주의자의 전형을 볼 수 있다. 이것뿐만 아니다. 후일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좌익계열의 장교가 되지만 여순 사건으로 불리해지자 천명이 넘는 동료들을 밀고하여 죽음으로 몰아 넣고 자기만 살아 남는다.
박정희가 좌파가 되는 행동에 대하여 조갑제 등은 형(박상희)의 죽음과 연관 시킨다. 그 충격으로 좌파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근거도 없고 설득력도 없는 주장이다. 박정희는 다만 유리한 상황에 편승한것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당시 한반도 상황은 미국 정보의 데이터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한반도는 온통 붉은색(좌파)으로 뒤덮고 있었다. 박정희는 그러한 권력의 흐름이 어디에 있는지 간파하고 그것에 편승했을 뿐이다. 하여간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자기 혼자 살아 남자고 천명이 넘는 동지들을 저승길로 보내고 살아 남았다.
또한 이후에 다시 우익장교가 된다. 그리고 다시 반공주의자로 변신하여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다 보여준다. 어쩌면 한반도 남쪽을 반공으로 도배하는 길만이 자기의 과거를(황군/좌익 등) 은폐하고 숨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기회주의 속성을 가지고 태어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기회주의란 무엇인가를 완벽하게 보여 준 전형적인 인물이다.
속성이 이런데 일본 패망 후 곧 바로 광복군으로 위장하여 합류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독립운동가들을 적극적으로 토벌하던 일본의 진짜군인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쥐x끼 마냥 살아 남으려고 광복군 흉내를 낸 것이다.
정말 구토가 나는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행동이다.
⑦ 박정희의 창씨개명 - 조선인 흔적 지우기
일제강점기 시대에 조선인들은 강제로 창씨개명 되었다. 박정희도 예외가 아니어서 창씨개명을 하였는데 그 이름은 모두가 알다시피 『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 』이다.
하지만 창씨 개명한 조선인들의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창씨개명에는 조선인의 뿌리가 남아있다. 박정희의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란 이름도 마찬가지이다.
다카키 마사오란 이름은 박정희란 조선이름을 응용한 것이다. 다카키(高木)란 성은 고령 박씨에서 따온 것이다. 또한 마사오(正雄)란 이름은 정희(正熙)를 변용 한 것이다. 그래서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란 호칭에는 약간이나마 조선민족의 뿌리가 남아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박정희의 창씨 개명은 여기에서 끝나는게 아니다.
박정희는 일본정신으로 머리 채우고 일본군복을 입고 일본사람보다 일본어를 더 잘해도 핏줄 만은 바꿀 수 없었다. 그는 누가 뭐래도 조선인의 핏줄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러나 박정희는 조선민족이라는 핏줄 끊기를 강행한다.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란 이름에서는 조선인의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여 다시 작명을 한다. 일본군에 자원입대 했던 것처럼 스스로 작명 실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 사용한다.
그 이름은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이다.
참으로 경악할 박정희의 행동이다.
자작 이름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는 조선인의 흔적을 지우고자 하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조선인이라는 흔적을 철저하고... 말끔하게... 깨끗히 지우고 완전한 일본인으로 태어 나고자 했던 것이다.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는 진짜 일본이름이다. 이 이름 어디에서도 조선사람의 뿌리를 찾을 수 없다.
⑧ 일본군인 생활에 대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향수
만주군관학교⇒일본육사⇒관동군으로 이어진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복무기간은 5년 정도이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나이 23세에서 28세까지의 기간이다.
하지만 이 기간동안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몸과 마음을 환골 탈퇴하여 일본인 일본군인이 되어 정서체계와 사고방식 등 모두 일본놈 그 자체였다. 그 증거는 대통령이 되어서도 나타난다. 5.16 쿠데타로 집권한 뒤에도 틈만 나면 주일 대사관을 통하여 입수한 일본 사무라이 영화를 관람하고 일본 검도를 즐기는 것이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취미 생활이었다.
또한 당시 [조선일보] 주필 선우휘씨 등과 청와대에서 술을 마시며 일본천황의 교육칙어를 번갈아 외우는 내기나 시합을 하곤 했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지독한 향수를 엿 볼 수 있다. 그래도 이런 것은 얌전한 행위에 속했다.
다음 글을 읽어보자 압권이다.
[중앙일보. 1991. 12. 14]
[ ..... 계엄선포 한 달 전쯤인가(1971. 10. 17 계엄이 선포되었다)
박대통령이 나를 불러요.(여기서 나는 강창성 전보안사령관) 집무실에 들어갔더니 박대통령은 일본군 장교 복장을 하고 있더라고요. 가죽장화에 점퍼차림인데 말채찍을 들고 있었어요. 박대통령은 가끔 이런 복장을 즐기곤 했지요. 만주군 장교시절이 생각났던 모양입니다.
다카키 마사오 중위로 정일권 대위 등과 함께 일본군으로서 말달리던 시절로 돌아가는 거죠. 박대통령이 이런 모습을 할 때면 그분은 항상 기분이 좋은 것 같았어요....]
이런 미친 인간이 18년간 우리의 대통령이었다.
그는 통치 기간 만주군관학교 출신들을 인재로 등용하여 나라를 좀먹고 민족정기를 회복할 수 없도록 망쳐 놓았다.
⑨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으로써의 친일
-. 5.16후 우방 각국에 친선사절을 보냈는데 제일 먼저 보낸 곳은?
답 : 일본
-.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이 가장 먼저 방문한 나라는?
답 : 일본
-. 최초로 대외정책을 밝힌 기자회견의 주제는?
답 : 한·일 교섭의 재개.
-.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의 망언
일본 방문중 동경의 한 요정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여 동석했던 일본인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 나는 정치도, 경제도, 모르는 군인이지만 명치유신 당시 일본의 근대화에 앞장섰던 지사들의, 나라를 위한 정열만큼은 잘 알고 있다. 그들 지사와 같은 기분으로 해볼 생각이다.....] 라고 말하였다. 그것도 유창한 일본어로 말이다.
1963년 12월 17일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일본의 자민당
부총재 오노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은 걸작의 말을 한다.
[....박정희 대통령과는 부자 사이 같은 관계로서 아들의 경축일을 보러 가는 것은 무엇보다도 즐겁다..」라고 하였다. 사실 자민당의 보수 세력은 박정희와 군대생활을 같이 했던 일본제국의 동료 및 상관들이었다.
⑩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으로써의 친일 2
일본군국주의 세력의 정신적 유대는 대일 굴욕회담을 (한일협정) 성사시킨다.
여기서 식민지 지배 피해에 대한 거의 모든 권리와 주장을 포기한다.
박정희는 이때 일본으로부터 식민지 지배 보상 명목으로(한일경제협력을 위한 지원금) 3억달러 정도를 받는 것으로 끝낸다.
장면 시절의 8억달러나 이승만 때의 80억 달러의 주장에 비하면 너무나 헐값이었다. 일본은 이때 받았던 3억달러로 식민지 지배에 대한 피해 보상은 모두 끝났다고 말한다. 생존한 위안부 할머니들이 몇 백일을 시위해도 일본은 10원 한푼 내놓지 않을 것이다. 모두 친일파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작품이다.
또한 1973년 서울 지하철 차량부정도입 사건을 저지른다. 일본에서 지하철차량 186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하였는데 일본에서 3,204만엔하는 가격을 6,350만엔이란 두 배 정도나 비싼 가격으로 계약하였다. 이것은 만주군 출신 선배들의 로비와 정치자금의 리베이트가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 맺는 말 ]
일제강점기 시절의 조선 청년에겐 4가지의 길이 있었다. 물론 더욱 세분하여 분류 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최상천씨가 제시한 4가지의 길을 소개한다.
첫째 : 일제의 침략과 지배에 투쟁하는 대의(大義)의 길을 가는 것.
둘째 : 개인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죽은 듯이 살아가는 침묵의 길을 가는 것.
셋째 : 조선총독부의 들러리가 되어서 개인과 가족의 부귀영화를 추구하는
소아(小我)의 길을 가는 것.
넷째 : 일본군국주의를 숭배하고 그 전위대가 되는 사냥개의 길을 가는 것.
식민지 청년이었던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위에서 살펴 본 봐와 같이
네 번째 사냥개의 길를 선택했다.
그것도 무서운 집념과 실천력을 가지고 철저하게 일본의 사냥개 노릇을 하였다. 참고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형 박상희는 첫 번째의 길을 선택하고 일본에 맞서다가 감옥을 수 차례 드나들었다.
어떤가? 이러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신궁을(기념관) 지어줄 것인가?
집권시절 독재와 반민주, 반인권 등의 죄악을 묻지 않아도.... 친일 행위 하나만으로 기념관은 불가하다. 일본은 패망했지만 친일파는 망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죽었지만 아직 죽지 않았다.
민족은 일제에서 해방되었지만 민족의 정기는 바로 서지 못했다. 모두 친일 세력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친일파가 대통령을 하고.... 국무총리를 하고.... 각 부서의 장관을 하고.... 국회의원이 되고.... 대자본가가 되고... 역사에서 친일파는 승리자라는 공식을 우리는 언제까지 만들어 주며 보아줄 것인가? 자신들의 죄과를 역사와 민족 앞에 사죄하지 않고 죽어가며 이제 그들의 죄상까지 죽어가고(묻히고)있다.
조국과 민족을 배반한 친일 행위는 반드시 그에 응당하는 대가를 받아야 한다.
친일파로써 가장 성공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죽어서까지 영화를 누리고 있다.
근대화의 아버지.... 경제성장.... 운운하며 일본군인의 기념관을 자랑스럽게... 서울 한복판에.... 현직의 대통령과.... 정부가 주도하여.... 기념관을 지으려고 한다. 역대 대통령 기념관도 아닌 다카키 신궁을 짓는 것이다.
이것은 정신나간 일이며 미친 짓이다. 다카키 신궁이 완공되는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일본이 신사참배를 하며 천황을 기리듯이 다카키 신궁에 머리를 조아리며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과 정부에게 요구한다.
[ 살인마 전두환/노태우의 기념관도 지어달라. 이들의 기념관을 짓지 못하겠다면 현재 도둑 건설 중인 다카키 신궁(박정희 기념관)을 폭파시켜라! ]
출처-▶ 메·타·모·포·시·스 ◀
하나님(niabido) [2003-12-27 11:54]
박정희 개 아주악질친일파네 요새 개 딸이 또설치던데
티코(tico) [2003-12-27 11:56]
"그래도 박정희는 먹고살게해줬다. 민주투사라는 사람들은 뭐냐 지들 배때지 채우기 바쁘지 쯧쯧 가난이 해결되어야 민주주의도 의미있지 쯧쯧"(갱상도 촌부)
티코(tico) [2003-12-27 11:58]
"박정희가 경제성장 안했으모 이만큼 나라 발전할 수 있었는줄 아나"(갱상도서 지식인 행세하는넘)
티코(tico) [2003-12-27 12:00]
"조선놈들은 확 틀어쥐고 통치해야해. 당체 말을 들어야지 말이지."(갱상도서 노가다 하는 노동자가 담배 문채 모닥불서 몸 녹이며)
티코(tico) [2003-12-27 12:01]
"(박정희 비판하는 사람보며)쯧쯧 언제 철들래!!"(갱상도 사람 합동)
....(nunugu1) [2003-12-27 12:06]
티코라는 얘는 지역 얘기를 자꾸하네.
티코(tico) [2003-12-27 13:55]
nunugu1 주변 이야기한거뿐인데 뭘? 사실을 사실이라고 말 못해? 웃기는넘일세. 주관 배제하고 객관적인 사실중계(?)한거뿐ㅋㅋ
이인성(ywkshin) [2003-12-27 19:07]
그런데 문제는. 박정희의 과거행적을 아는 이가 드물다는 것이다. 아니면 알고도 영웅시 하는 또라이거나. 하기사 누굴 탓하겠는가. 왜놈 앞잡이 신문을 판매부수 1위로 만들어 주는 국민이고 똥개에게도 몰표를 던지는 국민인데. 아니, 특정 정당 간판이면 똥개보다 더 못한 인간 쓰레기들을 국회의원으로 배출시키는 국민인데. 한심하다.
주니아빠(e2000ing) [2003-12-28 03:27]
티코는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고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장백산인(f5189g) [2003-12-28 08:25]
이글 쓴 사람에게 묻소! 좀 더 조사하시도록 만주군관학교 입학- 일본육사졸업-관동군장교의 기간 합쳐 1940년-1945년이라 했는데 어느해 졸업하고 어느해 임관 했으며 1945년 815해방시 계급은? 글 내용이 좀 과장된 것 같은 느낌이 있소! 과장할 필요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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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대한민국 정치 역사 자료이기 때문에 꼭 아셔야 할 자료라고 봅니다.
미 정부, 친미 언론인 조직적 양성
[심층분석] KBS , 미 공보처 보고서 통해 확인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신미희(sinmihee) 기자
미국유학파를 배제하고서야 나라가 제대로 선다(수정) 조회수:629 , 추천:24, 반대:2
장백산인(f5189g), 2003/12/11 오후 7:32:13,
저번 이 게시판에 올린 미국유학파를 배제하고서야 나라가 제대로 선다는 글을 조금 수정하여 재차 올립니다. 이 글을 읽은 네티즌에게는 양해를 구합니다
--------------------------------------------------------
이젠 이 나라가 자주독립국의 위상을 찾기 위해 미국 유학파는 정리할 때가 되었다. 리영희교수는 외교 심리적 언어학에서 우리가 어려운 영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미국을 숭배하는 감정이 뼈속깊이 싹트게 된다고 한다.
자신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이 잠재의식에 쌓이는 숭미사대주의적 근성은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다가온다고 한다. 옛날 우리 선조가 한자문화를 가지면서 중국의 한족국가에 모화사대를 바치지 않으면 안되었던 악순환의 재판이다.
이들 미국식 경영학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전략전술을 전공한 자들은 뻑하면 미국을 기준으로 내세우게 마련이고 미국식은 절대선이 된다. 송영선이라는 국방부 여직원이 최근 이라크파병문제로 방송에 등장하여 시청자들에게 엄청난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는데 이 여자가 미국인인지 한국인이지를 헷갈리게 만들고 나아가 국민들에게 이 나라가 도대체 미국의 외따로 떨어진 52번째 주정부인지를 헷갈리게 만든 것이다.
이들 미국유학파들이 국가의 중심부에 존재하는 한 이 나라의 자주독립은 백년하청이다.
요즈음 파병을 주장하는 것들 중에 미국에서 공부하지 않는 인간이 어디 있으며 그들은 어쩌면 자기신념에 차서 미국에 봉사하자고 외쳐대는지도 모른다.
그저 일신상의 출세를 위해 간교한 주둥이질로 국민을 속이고 파병하자는 바람잡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그 자체에 대한 숭미사대주의가 잠재의식으로 잠겨있음이 짐작되기도 한다. 더구나 최근 벌어지고 있는 미군기지 한남이남으로의 이전에 결사반대하고 용산기지에 특급호텔을 지어서라도 몇 명 남지 않았으나 지엄하고도 높고 높으신 미군님들이 편안히 거하시도록 하자는 국회의원 무려 백삼십명의 주장 앞에 본 도사는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도다! 우째 세상에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결국 이 나라 기득권층이 서울에 쌓은 그들의 권세와 부를 지키기 위해 결국 기댈 곳은 미군이더란 말인가?
미국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다고? 그렇다면 미국이 도움을 준 우리가 누구인가?
우리 민족 전체를 말함이 아니다. 우리 민족의 반쪽인 북한에는 총포를 쏘아대고 전쟁이라는 명분을 통해 무려 백만을 학살하였다. 고분고분한 반쪽에게 원조를 주고 돼지키우듯 키워서 이제 통실통실 살이 쪘으니 잡아먹으려 하는 것이다. 우리는 원조를 받은 것이 아니라 사육된 것이다.
제국은 제국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에 진주하였을 뿐이다. 우리 민족의 감정 따위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한국을 일본의 식민지로 대했을 뿐 해방된 민족으로 결코 대우해 주지 않았고 그들은 일본을 대신해 자신들의 식민지를 경영하고자 했을 따름이다. 네티즌 여러분, 이 상황은 반세기가 넘게 지난 지금 과연 해소되었는가? 이 나라의 지배계층을 형성하는 지식인들이 모두 미국 유학파가 장악하고 있을진데 군대인들 오죽 하겠는가? 특히 군대는 미국에 철두철미하게 종속된 하부구조로 편성되어 있다.
명분에서조차도 그렇다. 이 나라 전시작전권은 미국이 쥐고 있다.
전시 작전권 평시 작전권으로 나누는 게 이상하지만 하여튼 군대란 평상시에는 그 막강한 힘에 비해 별 쓸모가 없는 존재이다. 지진이나 태풍과 같은 천재지변의 구조 정도에 큰 힘을 발휘하지만 말이다. 군대는 오직 전쟁에서 자신의 존재를 말한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전쟁시에 필요한 한국군의 지휘를 한국의 대통령이 행사할 수 없다. 미군 8군사령관이자 한미연합사 사령관이 쥐고 있는 것이다. 이게 어디 자주독립국이냐?
지금 지구상에 자기 나라 국군의 전시작전권을 남의 나라에 이양한 국가가 어디 있는가?
이게 한미동맹의 실체이냐? 듣기 좋으라고 말은 동맹이고 노예의 신세이지 않는가?
그리고 우리 나라가 자주국방을 위해서 미국의 무기를 사 준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미국의 전략적 목표에 봉사해 주기 위해 우리 국민의 혈세로 무기의 소유권을 한국으로 이전하는 것 뿐이다. 군병을 십년 살찌움은 전쟁의 단 한순간에 써먹기 위해서가 아니던가! 그런데 결정적 순간에 우리 국민이 피땀 흘려 벌어서 사둔 무기와 키워둔 군대가 바로 한국 주둔 미군사령관의 예하에 배속되어 제국의 이익을 위해 결국 봉사한다고 생각하면?.......
이 비자주성의 극치인 한국군의 역사도 그렇다.
해방이후 미군정하에서 국방경비대로 출발한다.
이 국방경비대의 장교에 이상하게도 항일독립군들은 전혀 가담하지 않았다. 왜, 미국이 말 잘 듣는 숭미노예가 필요했지 이런 억센 사람들은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방공간이 되자 만주에서 활동한 항일독립군들은 대개가 북한에서 성립된 인민군에 가담해 버렸다.
미국은 군사영어반을 만들어 일제 군대나 경찰에 복무한 젊은이들을 장교로 키워 이 국방경비대를 운영했다. 이 군사영어반이 바로 한국군의 간성인 오늘날 육사의 전신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이 나라 국군의 역사이다.
이 군사영어반에 정일권 장도영 이한림 박정희 김재규 김창룡 등 모두 일제의 군대나 경찰이 키웠던 개들인데 이들이 다시 한국군의 중추가 된 것이다.미군에 의해 설립된 군사영어반은 6개월 단위로 1기수를 배출했다. 4년제 정식육사는 625전쟁 와중에 만들어진다.
군사영어반 11기이자 정식 육사 1기가 바로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김복동 손영길 등이다.
박정희는 정식 육사 1기를 무척 총애하여 자기를 따르는 친위장교들로 만들었고 이들에게 박정희 다음 세대의 군의 중심으로 키운 셈이다. 국군의 장교 중에서 하늘의 별따기만큼 힘들다는 장성으로 진급하려면 필히 거쳐야 하는 코스가 있다.
미육균보병학교이다. 이 유학코스를 거쳐야만 장군으로 진급되며 이 육군보병학교에 입교하는 젊은 장교들을 미국은 충실한 개로 키우기 위해 온갖 교육프로그램을 다 짤 것이다. 20세기 후반기의 지구촌은 이 미보병학교를 거쳐나간 각국의 장교들이 일으킨 쿠데타의 시대였다.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지의 여러 국가에서 민중이 투표로 선출한 민간정부를 뒤엎고 친미쿠데타를 감행한 인간말종들의 산출지가 바로 미보병학교라 보면 된다.
대표적인 쿠데타가 1973년에 아옌데 정부를 무너뜨린 칠레의 친미군부쿠데타였으며 1980년 한국의 신군부에 의한 친미쿠데타이다.
브라질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에콰도르 파나마 볼리비아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등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참담한 역사는 새삼 거론하지 않겠다.
미국이 자유민주주의국가라는 말도 거짓이다.
그들은 세계각국의 자율적인 정부를 무너뜨리고 미국의 이익에 복무하는 군부쿠데타를 배후에서 수없이 조종하여 소기의 목적을 이루었다.
이 군부쿠데타정권이 어떠한 반민주주의적 인권탄압 학살을 자행해도 눈감아주고 미국의 이익에는 반할 수 밖에 없는 국민에 의한 민간정부가 어렵게 들어서면 도리어 이를 전복시키기 위해 온갖 정치공작을 자행한다.
소위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이 왜 이렇게 군부쿠데타를 선호했는가?
타국의 민주주의 실현에는 주댕이질만 할 뿐 전혀 관심이 없는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실현해주는 정부를 창출하기 위해 가장 손쉬운 게 군부쿠데타였기 때문이다. 그 나라 국민들을 설득하려면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겠는가?
하지만 미보병학교에서 인맥을 쌓고 그 인간들의 됨됨이를 파악하고 있는 각국의 군장교들을 추동하여 정부를 전복하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고 더구나 정통성이 없는 이 정권들을 조종하여 미국의 이익을 최대한 실현시킬 수 있었으므로 금상첨화였다.
전 세계의 정치적 불행은 바로 이 미국보병학교에서 시작된다.
지금도 장성진급을 노리는 한국군의 많은 장교들이 영관급일 때 이 미국보병학교에 유학하게 된다.
이 것도 모두 국민의 혈세로 이루어진다. 국민의 혈세로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장교들이 국민들에 총칼을 들이대는 쿠데타를 일으킨 20세기역사는 아직도 일부 국가에서 지속되고 있다. 한국은 한국민의 민주주의 의식이 고양되어 이 저주스런 악순환의 고리에서 완전하게 빠져 나왔는가?
이 시점에서 우리 국민정서는 확실히 민족자주로 돌아섰다.
우선 한국이 제대로 된 국가로 서려면 기득권세력이 어떤 지랄옆차기를 하든 미국에서 공부한 유학파들을 정부권력의 핵심에서 몰아내지 않고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유럽에서 공부한 자들을 관료로 채워나가고 이제는 국군의 장교도 프랑스 러시아 중국 이태리 등지로 공부시키고 폭넓은 사고와 인맥을 구축하게 하여 세계적인 눈을 가진 군대로 키우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제국의 간섭과 협박공갈이 여러 가지 형태로 이 나라를 휘둘러칠 것이다.
그러자면 이 간섭을 견디어낼 수 있는 자주적인 의식의 대통령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하겠지! 어제 중국은 2조의 예산을 들여 고구려사를 중국의 변방사로 만들려는 작업을 시작하였다는 놀라운 보도를 하였다.
우리 민족의 영광인 고구려를 한반도에서 분리해버림으로써 동북아 최대의 강성대국으로 커나갈 우리 민족을 견제하려는 분명한 의도이다. 한국사에서 고구려사를 빼버리면 남는 것은 조상의 고토인 대륙을 잃어버리고 한반도에서 외세에 사대하며 살아간 부끄러운 천년 역사 밖에 남지 않는다.
하여튼 한반도를 둘러싼 외세는 간접적이로되 미국은 우리에게 직접적인 외세이다.
제국은 반세기전 이 땅을 일제대신 점령하며 우리들의 원조자로 둔갑하고 해방자의 가면을 썼으며 우리들의 안방까지 들어와 우리들 어머니와 누이들의 정조를 점령하고 마침내 아비의 영혼마저 점령했다.
그리고 우리는 제국에 의해 사육되고 길들여졌다.
후일 우리들의 입맛과 생활방식과 사고구조마저 미제가 아니면 안되도록 사육된 것이다. 요즈음은 이 것이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이데올로기화되었다. 정글의 법칙을 관철하는 미국식 자유경쟁체제만이 인간문명의 가장 효율적인 체제인양 선전되었다.
자연의 파괴와 인류의 슬기로운 지혜인 공동체적 정신을 파괴하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폐해는 전 세계적으로 확인되고 WTO체제에 대한 저항이나 멕시코의 사바티스타운동과 같이 제3세계권에서 세계화에 반대하는 거대한 조류를 발생시키고 있다. 우리 민족은 아무 생각없이 미국의 등에 안주하며 이 시대의 한복판으로 떠내려온 셈이다.
신동엽 시인이 한라에서 백두까지 껍데기는 가라고 외쳤듯 반미자주화는 우리 마음속 껍데기를 버리는 데서부터 전방위에서 치루어지는 허물벗기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반미가 누구를 거부함으로써 우리가 가진 것을 잃게 되는 마이너스게임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반미는 잘못된 경향성을 배제하고 그로써 얻게 되는 많은 가치를 획득하자는 플러스게임이다.
이 땅의 반미자주화는 한반도에서 인구에서나 경제력에서나 통일의 주도자로 나선 남한이 철저한 항미를 통해 민족주체를 담보해온 북한에 부끄럽지 않는 나라로 거듭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제국의 변방에 종속되어 중심부로 끊임없이 빨려 들어가는 국부의 유출구조에 저항하고 우리 민족 민중의 노동가치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우선적으로 이 땅의 평화는 반미자주화이다.
소나무(j6218k) [2003-12-11 19:58]
강추! 강추! 또 강추입니다. 장백선인님이시여.......
이준수(ljsk1512) [2003-12-11 20:08]
내 어지간해서는 욕 안하는데 이 장백선인이 라는 종자 혹시 도포입고 짚신 신고 민족주의자 행세하는 꼴 떠는 사람은 아닌지 가끔 티브이에 데모할때 꼭 끼는 일 안하고 특정한 직업없이 선동으로만 먹고 사는 드런놈은 아닌지 주제넘는 나라 걱정하지말고 국민은 더더욱 걱정말고 당신 직업이나 잘 구해서 민페 끼치지 말기를
장백도사님(통일소망) [2003-12-11 20:32]
도사님의 글을 배울때면 고개가 절로 숙여 집니다.
으이그(태청산아) [2003-12-11 20:33]
이준수 이 돼지식기 여그서 뭔 지랄떠냐
장백산인(f5189g) [2003-12-11 20:54]
이준수라! 그 초성 중성 종성 한글이름 값으로 보아 아주 잘 지었구만! 그래 본 도사가 짚신은 안신네만 도포를 즐겨입는데 왠 남의 복장문제로 민족주의자를 욕보이시는가? 그리고 본 도사는 군중을 싫어하야 데모에는 잘 안가지만 갔다하면 유리창정도는 깨거나 피바람불러버려! 본 도사가 남의 관상봐주다 보니 나라걱정까지 하네 됐네 미안하네 이사람아 봐주시게나
천병철(cbc111) [2003-12-11 23:24]
산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입니다,다만 한가지 동북아 강성대국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바는 아니라고 봅니다. 주변 4강의 틈바구니에서 현실적인 어려움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도 우리는 국제적인 상생의 길을 도모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김구선생의 "백범일지" 내용으로 대신하고자하며 내용이 길기에 50번 글에 올림니다
철철넘치는(bergotte) [2003-12-11 23:25]
민족애를 주체하지 못하는 당신. 만약 당신 스스로 남한테 월급을 의존하지 않기위해, 기업을 세워 운영해본 다음에 이런 류의 글을 읽으면 스스로 얼굴이 뜨거울 것입니다. 자주는 스스로 자원이 많은 나라나 외칠 수 있는 구호입니다. 철을 사와서 철강을 팔아 먹고 사는 나라에게는 사치스런 구호입니다.
장백산인(f5189g) [2003-12-11 23:44]
도대체 뭔 말인지 민족애하고 기업경영하고의 상관관계를 함부로 이야기하는 당신! 자원이 없는 나라는 자주하지도 못한다는 해괴한 논리의 당신! 소위 국제간의 자유교역과 민족자주화와 왜 상치되는지를 설명하지 못하는 당신! 부탁하건데 의견란에 주장을 좀 피력해 주시오! 고견을 경청하겠소이다!
자유교역과(bergotte) [2003-12-12 00:35]
민족자주화는 상치되지 않습니다. 짧은글에 제의도는 반미자주화는 자주가 아니라 고립입니다. 굳이 용어를 만들자면 관계자주화이겠죠. 한국은 자원이 충부한 말레이지아처럼 자주할수는 없고, 싱가폴처럼 국제화속에서 자신의 입지를 찾아야 한다는 뜻에서 한말입니다.
장백산인(f5189g) [2003-12-12 01:02]
지금 한국이 너무나 국제화되어 있어서 문제요! 소위 세계화의 문제점 말이지! 세계화를 적극 저항하는 사바티스타운동의 이념을 한번 알아 보소! 경제의 90%가 교역을 하여 먹고사는 이 나라는 이미 국제화되지 않으면 그 즉시 죽는 운명이여! 본 도사의 글이 이 기본조건을 부정하는 말은 아니지! 미안하지만 그렇게 독해력이 없는 거요? 답답할 뿐이오!
가슴아파(eriberi) [2003-12-12 08:44]
아! 슬프다 문제는 이준수 철철넘치는 이런자들이 도처에널려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헛소리하는 현실이 가슴아프다
시리우스(zzuzzuvax) [2003-12-12 19:39]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님 글을 보니 알지도 못하는 넘이 어줍잖은 생각으로 오마이에 글올린 제가 부끄럽군요.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건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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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청산 특별법, 물건너 가나
[현장-법사위] 법안심사 소위로 넘겨 재논의키로 결정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이성규(dangun76) 기자, 2003-12-28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조회수:108 , 추천:4, 반대:0
.(nunugu1), 2003/12/27 오전 11:49:57
★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박정희) 친일 행적 열 가지 ★
① 일제에 대한 충성심이 태동-혈서(최우수 제국군인)
② 몸과 마음을 철저하게 개조 - JS표 일본인 준비
③완전한 일본인 - JS표 일본인
④ 항일세력의(독립군) 토벌 - 110여회 참가
⑤ 일본군의 특수부대(철석부대) 활약 - 간도특설대
⑥ 변신의 달인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⑦ 박정희의 창씨개명 - 조선인 흔적 지우기
⑧ 일본군인 생활에 대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향수
⑨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으로써의 친일
⑩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으로써의 친일 2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친일파들 중에서 가장 성공한 친일분자는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이다. 친일부역의 정도에 따라서 A급, B급, C급 등으로 나눈다면 박정희에게는 A급으로는 부족하여 특급 친일파(A+)로 분류가 되어야 할 것이다.
가장 저질적인 친일파가 우리의 대통령으로써 18년간이나 철저한 인권유린에 바탕을 둔 군사파쇼로 통치를 했는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를 휼륭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겨울공화국 같은 독재와 반민주, 반인권의 죄상을 묻지 않아도 친일행적 하나만으로도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용서받을 수 없는 역적 죄인이다.
만주군관학교 2기생으로 자원입학(1940년 4월 4일).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졸업식 날 다음과 같은 선서를 힘차게 낭독했다.
"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聖戰)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휼륭하게 죽겠습니다."
"盡忠報國 滅私奉公(진충보국 멸사봉공)"
이 글귀가 바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손가락을 잘라서 쓴 충성혈서이다
만주군관학교를 투철한 친일정신과 열성적 훈련으로 수석 졸업의 영광을 차지한다. 수석졸업의 영광으로 금시계를 선물로 받고 졸업생 대표로 천황찬양으로 가득한 답사를 읽었다. 당시 일본육군사관학교 교장 나구모 쥬이치(南雲忠一)의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자.
『....다카키 생도는 태생은 조선일지 몰라도 천황페하에 바치는 충성심이라는 점에서 그는 보통의 일본인보다 훨씬 일본인다운 데가 있다...』라고 평가하였다. 또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10.26으로 김재규 총에 맞아 죽었을 때 주한 일본대사관에서 한 일본 외교관은 이러한 말을 했다.
"대일본제국 최후의 군인이 죽었다." 라고 하였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와 함께 지냈던 어떤 만주군 장교 출신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하루 종일 같이 있어도 말 한마디 없는 음침한 성격이었다. 그런데 "내일 조센징 토벌 나간다."하는 명령만 떨어지면 그렇게 말이 없던 자가 갑자기 "요오시(좋다)! 토벌이다."하고 벽력 같이 고함을 치곤 했다. 그래서 우리 일본생도들은 "저거 좀 돈 놈이 아닌가."하고 쑥덕거렸던 기억이 난다....]
또한 이후에 다시 우익장교가 된다. 그리고 다시 반공주의자로 변신하여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다 보여준다. 어쩌면 한반도 남쪽을 반공으로 도배하는 길만이 자기의 과거를(황군/좌익 등) 은폐하고 숨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기회주의 속성을 가지고 태어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기회주의란 무엇인가를 완벽하게 보여 준 전형적인 인물이다.
[중앙일보. 1991. 12. 14]
[ ..... 계엄선포 한 달 전쯤인가(1971. 10. 17 계엄이 선포되었다)
박대통령이 나를 불러요.(여기서 나는 강창성 전보안사령관) 집무실에 들어갔더니 박대통령은 일본군 장교 복장을 하고 있더라고요. 가죽장화에 점퍼차림인데 말채찍을 들고 있었어요. 박대통령은 가끔 이런 복장을 즐기곤 했지요. 만주군 장교시절이 생각났던 모양입니다.
다카키 마사오 중위로 정일권 대위 등과 함께 일본군으로서 말달리던 시절로 돌아가는 거죠. 박대통령이 이런 모습을 할 때면 그분은 항상 기분이 좋은 것 같았어요....] 박정희는 이때 일본으로부터 식민지 지배 보상 명목으로(한일경제협력을 위한 지원금) 3억달러 정도를 받는 것으로 끝낸다.
장면 시절의 8억달러나 이승만 때의 80억 달러의 주장에 비하면 너무나 헐값이었다. 일본은 이때 받았던 3억달러로 식민지 지배에 대한 피해 보상은 모두 끝났다고 말한다. 생존한 위안부 할머니들이 몇 백일을 시위해도 일본은 10원 한푼 내놓지 않을 것이다. 모두 친일파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작품이다.
또한 1973년 서울 지하철 차량부정도입 사건을 저지른다. 일본에서 지하철차량 186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하였는데 일본에서 3,204만엔하는 가격을 6,350만엔이란 두 배 정도나 비싼 가격으로 계약하였다. 이것은 만주군 출신 선배들의 로비와 정치자금의 리베이트가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박정희)의 친일행각
★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박정희) 친일 행적 열 가지 ★
[글 내용 순서]
들어가는 말
① 일제에 대한 충성심이 태동-혈서(최우수 제국군인)
② 몸과 마음을 철저하게 개조 - JS표 일본인 준비
③완전한 일본인 - JS표 일본인
④ 항일세력의(독립군) 토벌 - 110여회 참가
⑤ 일본군의 특수부대(철석부대) 활약 - 간도특설대
⑥ 변신의 달인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⑦ 박정희의 창씨개명 - 조선인 흔적 지우기
⑧ 일본군인 생활에 대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향수
⑨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으로써의 친일
⑩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으로써의 친일 2
맺는 말
★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박정희) 구체적 친일 행적 열 가지 ★
[ 들어가는 말 ]
얼마전 3,1절 83돌을 맞이하여 광복회와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에서 709명의 친일파 명단을 발표하였다. 당시 전략적 차원으로 명단에서 제외되었던 박정희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한다.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친일파들 중에서 가장 성공한 친일분자는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이다. 친일부역의 정도에 따라서 A급, B급, C급 등으로 나눈다면 박정희에게는 A급으로는 부족하여 특급 친일파(A+)로 분류가 되어야 할 것이다.
가장 저질적인 친일파가 우리의 대통령으로써 18년간이나 철저한 인권유린에 바탕을 둔 군사파쇼로 통치를 했는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를 휼륭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역사학자나 경제전문가들에게서 긍적적인 평가의 대상조차 되기 힘든 박정희가 대중들에게 휼륭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는 분위기에 문제점이 있다고 보며 그 문제점과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역류시키고자 글을 올린다.
그 동안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에 대한 글을 몇 편 올렸지만("너(박정희)의 가면을 벗겨주마 1∼8편" 등) 구체적 친일행적에 대한 글은 올리지 않았었다. 왜냐하면 그러한 친일분자가 우리의 대통령으로써 18년간이나 통치하였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겨울공화국 같은 독재와 반민주, 반인권의 죄상을 묻지 않아도 친일행적 하나만으로도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용서받을 수 없는 역적 죄인이다.
변신의 황제였던 그는 결국 한반도 남쪽에 일본도 흉내만 내다만 천황주의를 완성하였다. 즉, 다카키 천국을 건설하였던 것이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반전술, 변장술, 위장술, 둔갑술 등을 이용하여 천황주의를 완성하고 진짜천황이 되었는데 그 과정은 역겨운 구토물 속에서 이루어졌다.
보라!
교사에서 군인으로--- 조선청년에서 일본군 장교로--- 박정희에서 다카키 마사오로--- 다카키 마사오에서 오카모토 미노루로--- 오카모토 미누루에서 다시 박정희로--- 일본군 장교에서 대한민국 장교로--- 빨갱이 무기수에서 반공의 기수로--- 충성스런 장성에서 군사반란 두목으로--- 육군 대장에서 대통령으로---
박정희는 극과 극을 자유자재로 넘나들었으며-- 그에게는 조국과 민족도, 적과 동지도, 양심과 이념도 단지 권력의 디딤돌이었을 뿐이다.
-. 민족과 반민족, 정의와 불의 따위 구분은 깡그리 무시하였던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 아무리 반민족이고 불의라도 권력으로 통하는 길만 보이면 돌진했던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 기회주의는 그의 처세술이고 천황주의는 그의 사상이었던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이제 그의 망령에서 벗어나야 한다.
[ 내용 ]
① 일제에 대한 충성심이 태동 - 혈서(최우수 제국군인)
문경보통학교 교사로 있던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자진해서 만주군관학교 생도생으로 스스로 들어갔다.
만주군관학교 2기생으로 자원입학(1940년 4월 4일).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나이 23세. 입교 동기생으로 240중 조선인 12명. 15등으로 입학하였다. 하지만 2기 졸업식에서는 240명중 당당히 1등으로 졸업하였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그 덕에 영광의 얼굴로 [만주일보]에 실린다. 뿐만 아니라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졸업식 날 다음과 같은 선서를 힘차게 낭독했다. "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聖戰)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휼륭하게 죽겠습니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에 자원해서 들어가는 상황을 좀더 살펴보자.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나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기에는 나이가 많았다. 즉, 나이 때문에 자격 미달이었는데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호적을 고쳐서 나이를 낮췄다고 한다.
또한 나이를 낮췄다고 멀쩡한 조선인이 군관학교/사관학교에 입학하기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신원검증과 사상검증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어떻게 하면 신원검증과 사상검증에서 인정을 받고 만주군관학교에 입학 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이에 동료교사 유증선이 아이디어를 내주었는데 "박선생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쓰면 어떨까?"라고 하며 제안했다고 한다. 이에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그 자리에서 찬동했다. 나이도, 신원검증도, 사상검증의 장애물을 한번에 날려 버릴 수 있는 충성혈서는 만주군관학교 사람들을 감동 시켰다. 아니 일제를 감동 시켜 당시의 언론에(만주일보) 대서 특필 되었다.
"盡忠報國 滅私奉公(진충보국 멸사봉공)"
이 글귀가 바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손가락을 잘라서 쓴 충성혈서이다
이 글귀를 풀이하자면 충성을 다하여 나라에(일본) 보답하고, 나를(私) 죽여서 국가를(公) 받들겠습니다." 라는 가미가제식 자폭성 혈서를 쓴 것이다. 이 충성혈서는 한 가지 기록을 갖게 된다.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혈서로 일본천황에 충성을 맹세한 조선사람은 단 한명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뿐이었다. 스스로 자진해서건 강제로건 혈서로 일제에 충성을 맹세한 사람은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교사의 신분으로 있던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에 자원 입대하는 것은 천하제일의 기회주의자로 출발하는 신호탄이었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온갖 방법을 다 써가며 자기를 지우려했던 어머니와의 출생전쟁에서 승리하여 죽음의 집 같았던 어머니의 자궁으로부터 탈출하였고 다시 가난한 집과 고향으로부터 탈출하여 황국신민교육의 첨병 대구사범학교로 탈출하고...
다시 사무라이정신으로 무장한 일본군장교 양성기관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군사관학교로 탈출하여 신민지 조선을 탈출하게 된다. 그리고 천황주의자의 신봉자가 되어 조센징 토벌에 몸과 마음을 바쳐 젊음을 불태우게 된다.
② 몸과 마음을 철저하게 개조 - JS표 일본인 준비
만주군관학교를 투철한 친일정신과 열성적 훈련으로 수석 졸업의 영광을 차지한다. 수석졸업의 영광으로 금시계를 선물로 받고 졸업생 대표로 천황찬양으로 가득한 답사를 읽었다.
당시 친일신문〈만주일보 1942. 3. 24〉기사 일부를 인용하면... [… 빛나는 우등생 오카이(日系), 고야마(日系), 다카키(鮮系-박정희) 등 5명에게 각각 은사상증의 전달이 잇고 폐식 하였다....]
만주군관학교 출신의 조선인은 대략 제1기∼제7기까지 50여명 정도인데...
이 만주군 출신들은 훗날 대통령, 국회의장, 국무총리, 국방장관, 군참모 총장, 해병대사령관, 군사령관, 군단장, 연대장, 고급 참모등 정부와 군의 요직에서 나라를 이끌어 가는 중요 인물이 된다. 한 마디로 황군들이 나라 조지고 민족정기 좀 먹는 세력이 된 것이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를 지도했던 한 일본인 장교의 말을 들어보면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어느 정도 몸과 마음을 철투철미 하게 일본 제국주의에 충성하고자 하였나를 알 수 있다.
[매년 가을이 되면 군관학교에는 생도 전원이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행군연습을 실시했다. 박정희는 그때 내가 맡은 소대의 제1분대장이었는데, 다른 분대장과는 달리 기합이 들어 있었고, 의욕도 대단했다. 진지공격 연습 같은 때 대단히 어려운 임무가 부여되더라도 박정희는 그 임무를 달성하려는 의욕으로 꽉 차있었다. 박정희는 말수가 적고 속에 투지를 감춘 사나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라고 진술하고 있다.
③ 완전한 일본인 - JS표 일본인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관례대로 우등생에게 주어지는 일본육사 특전의 혜택을 누리게 된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일본 육사를 입학하려고 군관학교 시절 남들보다 철저한 황군정신으로 몸과 마음을 닦고 열심히 공부한 것이다. 일본 육사에서도 진지한 학습태도로 모범생이란 평을 받고 3등이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한다.
조선인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일본 육군 대신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이로써 박정희는 완전한 일본인(다카키 마사오)이 되었다. 아니 대일본제국의 군인이 되었다. 당시 일본육군사관학교 교장 나구모 쥬이치(南雲忠一)의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자.
『....다카키 생도는 태생은 조선일지 몰라도 천황페하에 바치는 충성심이라는 점에서 그는 보통의 일본인보다 훨씬 일본인다운 데가 있다...』라고 평가하였다. 또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10.26으로 김재규 총에 맞아 죽었을 때 주한 일본대사관에서 한 일본 외교관은 이러한 말을 했다.
"대일본제국 최후의 군인이 죽었다." 라고 하였다.
한마디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JS(Japanese Standard)표 [일제인]이라는 말인 것이다.
④ 항일세력의(독립군) 토벌 - 110여회 참가
소위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일본 본토의 마쓰야마 제 14연대에 처음 배속을 받았으나 진정한 일본군인을 참작하여 만주 제8연대의 소대장으로 임명되어 모란강 부근의 영안으로 전출되었다가 화북지방의 열하 보병 제8군단에 배속된다.
영안지방 →간도에서 활약한 한인 독립군부대가 북만주로 이동할 때와 노령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이 서쪽으로 진출할 때에 주둔하던 요충지였다. 열하지구 ⇒ 일본군에 대한 항일 투쟁이 끊이지 않았던 지역이다.
항일세력은 팔로군, 군부군, 광복군, 조선의용군, 소규모의 게릴라 (유격대) 등이었다.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이곳에 임관한지 1년만에 중위로 진급한다. 군의 편제상 소대장은 최전선에 배치된다. 여기에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열성적으로 항일부대를 토벌했던 공로로 승진이 빨랐던 것이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소속되어 있었던 부대는 독립군 토벌에 110여회를 출정하게 되는데 과연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양심의 가책이나 동포를 죽이는 행동 때문에 방아쇠를 당기는 행위에 고민을 하였을까? 미안하지만 어림없는 소리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조센징 토벌이라면 환장을 한 놈이었다.
"조센징 토벌이다. 요오시(좋다)"를 연발하며 출정을 즐긴 놈이다.
이 상황을 좀더 자세히 보자
문명자씨의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워싱텅에서 벌어진 일들』에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만주군 시절 이야기가 나온다. 1972년 문명자 기자가 어렵게 찾아가서 듣고 기록한 생생한 증언이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와 함께 지냈던 어떤 만주군 장교 출신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하루 종일 같이 있어도 말 한마디 없는 음침한 성격이었다. 그런데 "내일 조센징 토벌 나간다."하는 명령만 떨어지면 그렇게 말이 없던 자가 갑자기 "요오시(좋다)! 토벌이다."하고 벽력 같이 고함을 치곤 했다.
그래서 우리 일본생도들은 "저거 좀 돈 놈이 아닌가."하고 쑥덕거렸던 기억이 난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본질을 알 수 있는 증언이다. 말없는 사나이가 갑자기 고함을 질러대는 것은 발작일까? 기적일까? 어느 쪽이든 조센징 토벌이란 명령을 받으면 자기도 가눌 수 없는 흥분 상태에 빠진 것만은 분명하다.
요오시란 말은 우리말 좋다와는 어감이 다르다고 한다.
요오시는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요오시(좋다)! 토벌이다."라고 고함을 지러대는 행동에는 "조센징을 반드시 내 손으로 때려잡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만방에 선포하는 행위인 것이다.
이것은 강렬한 의지와 충성심에 불타는 "조센징(독립군) 토벌"에 대한 결연한 의지와 신념을 보여주는 행동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⑤ 일본군의 특수부대(철석부대) 활약 - 간도특설대
일본은 만주 서남부와 중국북부에 투입할 용맹한 부대를 선발하여 특수부대(철석부대)를 만든다. 여기에 조선인 부대인 [간도특설대]도 선발되는 영광(?)을 얻는데 그 속에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이주일 등이 소속되어 있었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중국북지(열하성 만리장성 남방 평곡-북경 동북방)로 투입되어 항일 세력과 치열한 격전을 벌였다. 여기서 혁혁한 공을 세운다. 소수민족들의 특수부대는 많았다. 조선인의 간도특설대, 러시아인의 찬야부대, 몽고인의 기야부대, 회교인의 회교부대, 오르치온족의 공작대 등이 있었는데....
간도특설대가 가장 강력했다고 한다. 한가지 예를 들면 「일본군, 만주군이 못해내는 작전을 간도특설대가 가서는 거뜬히 해치우곤 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조선인 공적평가에 인색한 일본인들도 간도특설대에 대해서는 "상승의 조선인부대" 라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소속한 특수부대(간도특설대) 요원들이 얼마만큼 항일군의 토벌에 커다란 공을 세웠는지를 대변해주는 이야기이다.
⑥ 변신의 달인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보통학교 교사에서 만주군 지원 입대... 만주군관학교의 수석졸업과 금시계의 영광... 3등으로 졸업한 일본육사 생활도... 만주에서 관동군으로 복무하며 항일세력을 토벌하던 생활도.... 일본의 무조건 항복에 날아가 버린다.
친일파 아니 일본인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1945년 8월 15일 이후에는 어떤 행동을 하였을까? 일본의 지배는 영원 할 것이라고 생각한 박정희에게는 일본의 항복은 대단한 쇼크였을 것이다. 패잔병의 낭패감과 극한의 절망에 빠졌으리라.
하지만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누구인가 변신의 천재가 아닌가? 절망도 잠시였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곧바로 변신을 시도한다.
그토록 노력하고 공들여 입은 황군의 군복을 벗어 던지고 민간복으로 같아 입고 만주군의 부대를 탈영하여 피난민으로 가장하고 피난민 대열에 끼어 들어 북경으로 들어가 광복군에 합류한다.
우리는 여기서 유리한 상황에만 빌붙는 기생충 같은 기회주의자의 전형을 볼 수 있다. 이것뿐만 아니다. 후일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좌익계열의 장교가 되지만 여순 사건으로 불리해지자 천명이 넘는 동료들을 밀고하여 죽음으로 몰아 넣고 자기만 살아 남는다.
박정희가 좌파가 되는 행동에 대하여 조갑제 등은 형(박상희)의 죽음과 연관 시킨다. 그 충격으로 좌파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근거도 없고 설득력도 없는 주장이다. 박정희는 다만 유리한 상황에 편승한것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당시 한반도 상황은 미국 정보의 데이터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한반도는 온통 붉은색(좌파)으로 뒤덮고 있었다. 박정희는 그러한 권력의 흐름이 어디에 있는지 간파하고 그것에 편승했을 뿐이다. 하여간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자기 혼자 살아 남자고 천명이 넘는 동지들을 저승길로 보내고 살아 남았다.
또한 이후에 다시 우익장교가 된다. 그리고 다시 반공주의자로 변신하여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다 보여준다. 어쩌면 한반도 남쪽을 반공으로 도배하는 길만이 자기의 과거를(황군/좌익 등) 은폐하고 숨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기회주의 속성을 가지고 태어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기회주의란 무엇인가를 완벽하게 보여 준 전형적인 인물이다.
속성이 이런데 일본 패망 후 곧 바로 광복군으로 위장하여 합류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독립운동가들을 적극적으로 토벌하던 일본의 진짜군인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쥐x끼 마냥 살아 남으려고 광복군 흉내를 낸 것이다.
정말 구토가 나는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행동이다.
⑦ 박정희의 창씨개명 - 조선인 흔적 지우기
일제강점기 시대에 조선인들은 강제로 창씨개명 되었다. 박정희도 예외가 아니어서 창씨개명을 하였는데 그 이름은 모두가 알다시피 『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 』이다.
하지만 창씨 개명한 조선인들의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창씨개명에는 조선인의 뿌리가 남아있다. 박정희의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란 이름도 마찬가지이다.
다카키 마사오란 이름은 박정희란 조선이름을 응용한 것이다. 다카키(高木)란 성은 고령 박씨에서 따온 것이다. 또한 마사오(正雄)란 이름은 정희(正熙)를 변용 한 것이다. 그래서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란 호칭에는 약간이나마 조선민족의 뿌리가 남아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박정희의 창씨 개명은 여기에서 끝나는게 아니다.
박정희는 일본정신으로 머리 채우고 일본군복을 입고 일본사람보다 일본어를 더 잘해도 핏줄 만은 바꿀 수 없었다. 그는 누가 뭐래도 조선인의 핏줄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러나 박정희는 조선민족이라는 핏줄 끊기를 강행한다.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란 이름에서는 조선인의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여 다시 작명을 한다. 일본군에 자원입대 했던 것처럼 스스로 작명 실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 사용한다.
그 이름은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이다.
참으로 경악할 박정희의 행동이다.
자작 이름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는 조선인의 흔적을 지우고자 하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조선인이라는 흔적을 철저하고... 말끔하게... 깨끗히 지우고 완전한 일본인으로 태어 나고자 했던 것이다.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는 진짜 일본이름이다. 이 이름 어디에서도 조선사람의 뿌리를 찾을 수 없다.
⑧ 일본군인 생활에 대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향수
만주군관학교⇒일본육사⇒관동군으로 이어진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복무기간은 5년 정도이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나이 23세에서 28세까지의 기간이다.
하지만 이 기간동안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몸과 마음을 환골 탈퇴하여 일본인 일본군인이 되어 정서체계와 사고방식 등 모두 일본놈 그 자체였다. 그 증거는 대통령이 되어서도 나타난다. 5.16 쿠데타로 집권한 뒤에도 틈만 나면 주일 대사관을 통하여 입수한 일본 사무라이 영화를 관람하고 일본 검도를 즐기는 것이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취미 생활이었다.
또한 당시 [조선일보] 주필 선우휘씨 등과 청와대에서 술을 마시며 일본천황의 교육칙어를 번갈아 외우는 내기나 시합을 하곤 했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지독한 향수를 엿 볼 수 있다. 그래도 이런 것은 얌전한 행위에 속했다.
다음 글을 읽어보자 압권이다.
[중앙일보. 1991. 12. 14]
[ ..... 계엄선포 한 달 전쯤인가(1971. 10. 17 계엄이 선포되었다)
박대통령이 나를 불러요.(여기서 나는 강창성 전보안사령관) 집무실에 들어갔더니 박대통령은 일본군 장교 복장을 하고 있더라고요. 가죽장화에 점퍼차림인데 말채찍을 들고 있었어요. 박대통령은 가끔 이런 복장을 즐기곤 했지요. 만주군 장교시절이 생각났던 모양입니다.
다카키 마사오 중위로 정일권 대위 등과 함께 일본군으로서 말달리던 시절로 돌아가는 거죠. 박대통령이 이런 모습을 할 때면 그분은 항상 기분이 좋은 것 같았어요....]
이런 미친 인간이 18년간 우리의 대통령이었다.
그는 통치 기간 만주군관학교 출신들을 인재로 등용하여 나라를 좀먹고 민족정기를 회복할 수 없도록 망쳐 놓았다.
⑨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으로써의 친일
-. 5.16후 우방 각국에 친선사절을 보냈는데 제일 먼저 보낸 곳은?
답 : 일본
-.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이 가장 먼저 방문한 나라는?
답 : 일본
-. 최초로 대외정책을 밝힌 기자회견의 주제는?
답 : 한·일 교섭의 재개.
-.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의 망언
일본 방문중 동경의 한 요정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여 동석했던 일본인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 나는 정치도, 경제도, 모르는 군인이지만 명치유신 당시 일본의 근대화에 앞장섰던 지사들의, 나라를 위한 정열만큼은 잘 알고 있다. 그들 지사와 같은 기분으로 해볼 생각이다.....] 라고 말하였다. 그것도 유창한 일본어로 말이다.
1963년 12월 17일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일본의 자민당
부총재 오노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은 걸작의 말을 한다.
[....박정희 대통령과는 부자 사이 같은 관계로서 아들의 경축일을 보러 가는 것은 무엇보다도 즐겁다..」라고 하였다. 사실 자민당의 보수 세력은 박정희와 군대생활을 같이 했던 일본제국의 동료 및 상관들이었다.
⑩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으로써의 친일 2
일본군국주의 세력의 정신적 유대는 대일 굴욕회담을 (한일협정) 성사시킨다.
여기서 식민지 지배 피해에 대한 거의 모든 권리와 주장을 포기한다.
박정희는 이때 일본으로부터 식민지 지배 보상 명목으로(한일경제협력을 위한 지원금) 3억달러 정도를 받는 것으로 끝낸다.
장면 시절의 8억달러나 이승만 때의 80억 달러의 주장에 비하면 너무나 헐값이었다. 일본은 이때 받았던 3억달러로 식민지 지배에 대한 피해 보상은 모두 끝났다고 말한다. 생존한 위안부 할머니들이 몇 백일을 시위해도 일본은 10원 한푼 내놓지 않을 것이다. 모두 친일파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작품이다.
또한 1973년 서울 지하철 차량부정도입 사건을 저지른다. 일본에서 지하철차량 186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하였는데 일본에서 3,204만엔하는 가격을 6,350만엔이란 두 배 정도나 비싼 가격으로 계약하였다. 이것은 만주군 출신 선배들의 로비와 정치자금의 리베이트가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 맺는 말 ]
일제강점기 시절의 조선 청년에겐 4가지의 길이 있었다. 물론 더욱 세분하여 분류 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최상천씨가 제시한 4가지의 길을 소개한다.
첫째 : 일제의 침략과 지배에 투쟁하는 대의(大義)의 길을 가는 것.
둘째 : 개인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죽은 듯이 살아가는 침묵의 길을 가는 것.
셋째 : 조선총독부의 들러리가 되어서 개인과 가족의 부귀영화를 추구하는
소아(小我)의 길을 가는 것.
넷째 : 일본군국주의를 숭배하고 그 전위대가 되는 사냥개의 길을 가는 것.
식민지 청년이었던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위에서 살펴 본 봐와 같이
네 번째 사냥개의 길를 선택했다.
그것도 무서운 집념과 실천력을 가지고 철저하게 일본의 사냥개 노릇을 하였다. 참고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형 박상희는 첫 번째의 길을 선택하고 일본에 맞서다가 감옥을 수 차례 드나들었다.
어떤가? 이러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신궁을(기념관) 지어줄 것인가?
집권시절 독재와 반민주, 반인권 등의 죄악을 묻지 않아도.... 친일 행위 하나만으로 기념관은 불가하다. 일본은 패망했지만 친일파는 망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죽었지만 아직 죽지 않았다.
민족은 일제에서 해방되었지만 민족의 정기는 바로 서지 못했다. 모두 친일 세력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친일파가 대통령을 하고.... 국무총리를 하고.... 각 부서의 장관을 하고.... 국회의원이 되고.... 대자본가가 되고... 역사에서 친일파는 승리자라는 공식을 우리는 언제까지 만들어 주며 보아줄 것인가? 자신들의 죄과를 역사와 민족 앞에 사죄하지 않고 죽어가며 이제 그들의 죄상까지 죽어가고(묻히고)있다.
조국과 민족을 배반한 친일 행위는 반드시 그에 응당하는 대가를 받아야 한다.
친일파로써 가장 성공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죽어서까지 영화를 누리고 있다.
근대화의 아버지.... 경제성장.... 운운하며 일본군인의 기념관을 자랑스럽게... 서울 한복판에.... 현직의 대통령과.... 정부가 주도하여.... 기념관을 지으려고 한다. 역대 대통령 기념관도 아닌 다카키 신궁을 짓는 것이다.
이것은 정신나간 일이며 미친 짓이다. 다카키 신궁이 완공되는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일본이 신사참배를 하며 천황을 기리듯이 다카키 신궁에 머리를 조아리며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과 정부에게 요구한다.
[ 살인마 전두환/노태우의 기념관도 지어달라. 이들의 기념관을 짓지 못하겠다면 현재 도둑 건설 중인 다카키 신궁(박정희 기념관)을 폭파시켜라! ]
출처-▶ 메·타·모·포·시·스 ◀
하나님(niabido) [2003-12-27 11:54]
박정희 개 아주악질친일파네 요새 개 딸이 또설치던데
티코(tico) [2003-12-27 11:56]
"그래도 박정희는 먹고살게해줬다. 민주투사라는 사람들은 뭐냐 지들 배때지 채우기 바쁘지 쯧쯧 가난이 해결되어야 민주주의도 의미있지 쯧쯧"(갱상도 촌부)
티코(tico) [2003-12-27 11:58]
"박정희가 경제성장 안했으모 이만큼 나라 발전할 수 있었는줄 아나"(갱상도서 지식인 행세하는넘)
티코(tico) [2003-12-27 12:00]
"조선놈들은 확 틀어쥐고 통치해야해. 당체 말을 들어야지 말이지."(갱상도서 노가다 하는 노동자가 담배 문채 모닥불서 몸 녹이며)
티코(tico) [2003-12-27 12:01]
"(박정희 비판하는 사람보며)쯧쯧 언제 철들래!!"(갱상도 사람 합동)
....(nunugu1) [2003-12-27 12:06]
티코라는 얘는 지역 얘기를 자꾸하네.
티코(tico) [2003-12-27 13:55]
nunugu1 주변 이야기한거뿐인데 뭘? 사실을 사실이라고 말 못해? 웃기는넘일세. 주관 배제하고 객관적인 사실중계(?)한거뿐ㅋㅋ
이인성(ywkshin) [2003-12-27 19:07]
그런데 문제는. 박정희의 과거행적을 아는 이가 드물다는 것이다. 아니면 알고도 영웅시 하는 또라이거나. 하기사 누굴 탓하겠는가. 왜놈 앞잡이 신문을 판매부수 1위로 만들어 주는 국민이고 똥개에게도 몰표를 던지는 국민인데. 아니, 특정 정당 간판이면 똥개보다 더 못한 인간 쓰레기들을 국회의원으로 배출시키는 국민인데. 한심하다.
주니아빠(e2000ing) [2003-12-28 03:27]
티코는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고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장백산인(f5189g) [2003-12-28 08:25]
이글 쓴 사람에게 묻소! 좀 더 조사하시도록 만주군관학교 입학- 일본육사졸업-관동군장교의 기간 합쳐 1940년-1945년이라 했는데 어느해 졸업하고 어느해 임관 했으며 1945년 815해방시 계급은? 글 내용이 좀 과장된 것 같은 느낌이 있소! 과장할 필요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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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놈현 열우당총재 뒤통수 치지마라...(2) 티코 , 2003-12-27 11:54 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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