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정희의 변절과 반역행위
고 박정희의 변절과 반역행위
"반인류, 반민족범죄 시효 없다"
△1937: 유엔 대구사범학교 졸업, 경북 문경초등학교 교사로 부임.
△1939: 진충보국 멸사봉공(盡忠保國 滅私奉公)이라는 혈서를 써서 만주군관학교에 보냄.
△1940: 혈서의 은전으로 만주군관학교(나이가 4∼5살 초과했음에도) 입학.
△1942: 만주군관학교 예과 졸업. 같은 해 일본 육사(57기) 3학년 편입. 당시 일본 육사 교장 나규모 쥬이치(南蕓忠一)는 "다카키(박정희) 생도는 태생은 조선일지 몰라도 천왕폐하에 바치는 충성심이라는 점에서 보통 일본인보다 훨씬 일본인다운 데가 있다"고 생도들 앞에서 훈시할 정도였음.
△1944: 4월 일본 육사 졸업, 만주지역으로 발령받아 독립군 토벌.
△1946: 일본군 중위에서 대한민국 장교가 됨.
△1948: 육군 소령 계급 당시 남로당 군사조직책임이 드러나 사형 구형을 받았으나 자신의 동료였던 남로당 조직원을 자백하고 만주군 인맥의 도움으로 살아남.
△1961: 5·16 군사쿠데타로 아시아 최초의 민주화 혁명인 4·19혁명의 싹을 자름. 쿠데타 직후 진보언론인 조용수 사장을 이적행위와 국가전복 행위를 하였다고 조작해 그해 12월 사형 집행.
△1972: 자위 유신쿠데타로 종신집권을 위한 패악을 저지름. 유신시절 수백 명의 언론인을 쫓아내는가 하면 유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았으며 수많은 사람을 체포, 고문, 의문사 하게 하고 사형을 집행함.
△1973: 최종길 서울대 교수를 간첩으로 조작하려다 고문사 시켰으며 같은 해 동경에서 김대중씨 납치함.
△1975: 인혁당을 고문으로 조작하여 8명을 대법원 판결 뒤 24시간 전에 사형시켰으며 고문 흔적을 없애기 위해 경찰이 시신을 탈취해 화장시킴. 같은 해 유신독재에 강력히 도전하던 장준하가 경기도 약사 봉에서 목 뒤쪽을 타격받아 사망.
△1976: 거금의 외화를 이후락으로 하여금 스위스은행 등에 빼돌리고 유신독재 유지를 위해 미국 정치계에 뇌물을 돌린 사실이 발각. 미국 의회 프레이저위원회의 코리아 케이트로 국제적 망신을 당함.
△1979: 10월 김영삼 야당총재를 강제 면직시킴으로써 부마사태 발생. 결국 같은 해 10월 26일 궁정동 술자리에서 동향인 김재규로부터 총을 맞고 사망.
* 박정희 집권기간 220개월(18년) 중 105개월을 계엄령, 위수령, 비상령이 발동됐으며 이 기간 동안 국가보안법, 반공법 등 정치규제법에 의해 1만406명이 검거되는 지경에 이름.
* 박정희는 음주로 흥취가 날 때면 청와대에서 만주군 복장을 하고 일본 군가를 불러댔다고 함. 그리고 당시 일본 대중문화 수입이 금지됐음에도 자신은 사무라이와 명치시대 등 영화테이프를 외교 행낭으로 수시로 들여와 감상했다고 함.
* 1968년 유엔총회는 인류에 반하는 범죄와 민족범죄에 대해 시효를 배제, 용서할 수 없는 최상 범죄임을 공인한 것. 세계는 이 때문에 지금도 민족반역자를 뒤쫓아 처벌하고 있다. 국립묘지는 그 민족의 희생과 숭앙의 성소이다.
반역이 조금도 정화되지 않고 오히려 숭상되는 우리 현실에서 국립묘지 영혼들은 부끄럼 없기를 갈망한다. 이 사회의 양심을 세우기 위해 변절과 반역, 패악, 부패의 상징인 박정희 묘를 동작 국립묘지에서 파 옮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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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26일. 오 마이 뉴스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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