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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F 고 최홍희 총재 유언록 최초공개? 뒷북도 엄청난 뒷북이군요

태권라인에서는 이 유언장을 지난 2002년 8월에 공개한 걸로 알고 있는 데, 뒷북치기는
그것도 이미지까지... 쯧쯧쯧쯧. 최초라는 것도 웃기네요. 못 믿어우시면 직접 태권라인사이트에 가보세요. 정보하고는 그래서 태권도 전문왭진축에나 끼겠어요.
반성하세요. 무토. 최초라는 말을 빼던가...


태권라인 기사

제목 : 2002년 6월 11일 최홍희의 마지막 대화

채수용 기자(2002/08/29)

태권도는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나를 따르는 사람이 참 많아 행복한 사람이야.
그리고 나는 내 생애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모두 다 한것 같아서 너무나 기쁘네.

운좋게 자네들이 와 있었군....
장웅(북한 IOC 위원)씨도 와 계시는가?

이기하도 와 있어서 참 좋군. 내 아들, 딸들이 자네들을 잘 따라서 좋았었는데....

당신들은 장웅씨가 ITF 상위레벨에서 제일 키가 크다는 걸 알거야.
만약 내가 그 사람처럼 키가 컸더라면 적이 더 적었을 텐데....
내가 몸집이 작아서 아마 적도 많았을 거야.
이렇게 여러사람들이 곁에 없었더라면, 나는 그렇게 오랜시간을 그들에 대항하지 못했을 거야.
하지만 정의가 내편에 있는 동안 난 결코 쇠퇴하지 않을거야.

난 항상 차기총재에 대해 걱정하고 있어. 하지만 난 장웅씨가 있어 안심할 수 있네.

황광성은 대변인으로, 또 통합위원회 의장으로서 자네의 역할을 매우 크고 중요하네. 난 태권도가 하나가 되길 절실히 원하네. 자네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주게.

박종수는 1967년에 캐나다로 이민왔었지.
유럽에서 태권도를 가르치기 전에....
1972년 난 박종수가 살고 있는 캐나다로 왔지.
그 당시 태권도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거든. 그래서 난 내 관에 태권도라는 글자를 새겨넣겨주길 갈망한다고 말하곤 했었지.
그래도 지금은 태권도가 많이 발전했지.

난 탐메칼론을 좋아하지.
난 그가 나보다 먼저 죽을 까 염려했었지. 그가 먼저 죽는다면 난 그의 가족들을 어떻게 도울까 생각했었어.
그는 ITF에 너무 많은 기여를 했었어.
난 그에겐 비밀이 없지.

난 자네들이 해놓은 것들에 매우 감사하네.
난 자네들을 매우 아끼네.

렁와이멩씨는 정말 사리분별력이 뛰어난 사람이지.
그 또한 태권도 교육에 많은 공헌을 했지.
나는 그의 그의 자본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거지. 난 그 사람이 오래동안 창헌기부회 주주명부에 있어주길 바랬지.

황진은 전진식의 방식을 잘 유지해 왔었지.
그래서 난 자문위원으로 그를 지목했었지.

자문위원을 9명으로 늘려야해. 내가 정재훈을 지명할테니....

잘들어봐. 태권도는 북한이 꼭 필요해. 이 사실을 알아야해.
ITF는 국제적인 기관이야, 이데올로기에 연연해서는 안돼.
흑인 장관들이 있어 흑인들이 미국을 인정하고 있는건가?
그런 사고는 버려야해.
태권도는 분명 한국이 중심이야.

최중화는 공항에서 내게 거짓을 고했어. 난 또 한번 속았지. ( 최중화 사현은 태권도의 기술적인 발전과 더불어 비즈니스적인 면을 강조하는 등의 사안으로 최홍희 전총재와 이견충돌이 많았었음)
자네들은 내가 중화를 용서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야해.
난 아버지로선 그를 용서하지만, 태권도인으로선 그를 용서할 수가 없다는 것이네.
중화는 전세계 태권도인들에게 사과하기 전엔 용서될 수 없을 거야.
내가 살아있는 동안, 자네들은 가능한 빨리 이 메세지를 전해야해.

태권도는 영원히 존재하는 거야.

- 이는 그가 운명하기 전인 2002년 6월 11일 평양의 병원에서 16시 30분부터 17시 10분까지 그가 한 말을 영어로 표기한 것을 다시 한국말로 번역한 것이므로 번역단계에서 약간의 오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번역/편집 : 태권라인 채수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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