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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룡 이야기(2) - 그의 무술 이야기


.. 지난번 글에서 이소룡의 영화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 그의 무술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배우로서 보다는 무술가 이소룡에 더 관심이 많고 때로 그의 무력(武力)을 터무니없이 과장하고 심지어 신격화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그의 무술실력은 어땠을까요?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는 대단히 실력있는 무술가라는 것입니다.

아쉽게도 그의 무술의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자료는 많지 않습니다. 이는 그가 이름이 있는 공식 시합에 선수로 참가한 일이 없고 그가 싸웠던 사례는 도장끼리의 싸움(=도조 야부리)이나 시범경기 혹은 연습경기가 전부이기 때문이지요. 이소룡이 무술가로 활동하던 시기에 이런 시합 자체가 없었으니 그의 잘못은 아닙니다.

영화속의 그의 모습을 보고 그의 무술실력을 평가하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무술에 대해 조금이라도 식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게 왜 말이 안되는지 금방 아실 겁니다. 혼자서 형(型)을 연무하는 것, 혹은 시범을 보이는 것과 자신에게 적의(敵意)를 보이는 상대와 마주 서서 근육과 뼈가 부딪치는 싸움을 한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얘기라는 것은 누구나 첫 대련 때 깨닫게 되죠. 아이구... 이게 아니군... 아픈 정강이를 붙잡고 누구나 한번 쯤 했을 말이죠.

다만 이소룡의 무술실력은 그의 동료,지인이나 그와 겨뤄 본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어느정도 추정할 수 있습니다. 가령 64년 전 미국대회 그랜드 챔피언이었던 처크 노리스는 평소 스파링 때 그를 당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또는 무에타이 챔피언이었던 플래트 고몬은 그와 겨뤄서 다운을 당했다고도 합니다. 처크 노리스,플래트 고몬은 그와 비슷한 체격입니다.

이때 평가의 잣대가 되는 처크노리스나 플래트 고몬의 실력이 문제가 되죠. 전 미국대회가 1회 대회인 관계로 기본이 안되는 선수도 있었고 노리스의 실력도 평가하기가 좀 그렇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챔피언과 겨룰 정도의 실력은 그것만 해도 대단한 것입니다.

플래트 고몬이 무에타이 챔프였다는데 이느 무대의 챔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태국엔 3만에 달하는 낙무아이가 있고 매일밤 무에타이 시합이 없는 날이 없으며 이름없는 지방무대의 수많은 챔피언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직업 낙무아이라면 설령 룸피니나 라차담넨 챔피언이 아니더라도 대단히 강합니다. 그런 사람과 몇 라운드의 시합을 치루고 다운까지 시켰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이소룡의 무력(武歷)은 어릴 때 부친으로 부터 타이취췐(太極拳)을 배웠고 13세 때부터 엽문으로부터 윙춘췐(永春拳)을 배웠습니다. 영춘권은 대표적인 남파 외가권으로 그가 영화에서 보여준 빠른 펀치가 특징입니다. 그외 주가권, 공력권을 배웁니다. 그는 스승들로부터 배운 것은 그가 미국으로 건너가는 19세 이전의 일이고 이후 그는 홀로 독련하게 됩니다.

그가 스승을 떠나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 간 사실이 역설적으로 그가 무술가로서 성공하는데 한 단초를 제공합니다. 그는 유파와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수련할 수 있었던 겁니다. 미국사회 특유의 합리주의와 자유분방함은 그가 보고 들은 수많은 타류무술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고 이를 거리낌없이 받아 들이는 것을 가능케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그로하여금 자기가 배운 중국권법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하게 합니다.

이소룡이 홍콩의 사부 밑에서 수련을 계속했더라면 여전히 전통에 함몰되고 투로에 질식되고 패턴에 굳어진 중국무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을 겁니다. 그는 중국무술의 바탕위에 그만의 독특한 기술체계, 트레이닝 방법론과 싸움의 요령을 더해 새로운 스타일을 창안합니다. 절권도라는 것이죠.

이소룡은 배우로서의 커리어보다 무술가로서의 자신의 명성에 더 애착이 있었나 봅니다. 그의 묘비명에는 절권도의 창시자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BRUCE LEE (李小龍), 1940-1973 , FOUNDER OF JEETKUNE DO.

비록 이 묘비명이 그의 유언에 의해 쓰여진 것이 아니라고 해도 평소 그가 보여준 무술에 대한 열정을 알고 있는 유족과 지인들의 의견을 모아 쓰여진 것이니 마찬가지죠.

많은 사람들이 이소룡을 현대의 직업격투가와 비교하는 것을 자주 봅니다. 도올 김용옥은 태권도 철학의 구성원리라는 책에서 그를 최영의와 거의 동렬에 놓고 평가하더군요. 하지만 도올이 평가한 것은 무술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과 철학과 그가 무술계 전반에 미친 영향을 말한 것이지 격투가로서 그의 실력을 평가한 것은 아닙니다.

이소룡은 워싱턴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였고 중국의 고전에 해박했으며 서가에 수천권의 무술관련 서적을 두고 공부했을 정도로 이론가였습니다. 특히 도가사상의 무위(無爲)이론은 그의 형체 없는 절권도에 영감을 주었을 겁니다. 도올이 그의 저서를 보고 공감한 것은 당연하지요. 최영의는 그의 저서에서 사람들이 이소룡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에 대하여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이더군요.

이론가로서의 이소룡은 실제로 그가 무에타이를 입식격투기 경기의 이상적인 형태로 보았고 향후 킥 복싱과 유사한 형태의 경기가 큰 인기를 끌 것이라고 예언한데서도 나타납니다. 현재 K-1의 인기를 보면 그의 예언이 맞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러니칼하게도 요즘 중국무술의 팬들이 그를 과대 평가하고 신격화 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그 자신이 중국무술의 신비주의와 전통주의에 대한 가장 심한 비판자였는데도 말이죠. 때문에 그가 홍콩의 노사들에게 심한 욕을 먹은 것도 잘 알려진 얘기입니다.

이소룡은 중국무술에 새로운 지평을 연 사람입니다. 그리고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그것을 전 세계에 전파하였고 서양에 무술 붐을 일으킨 장본인입니다. 아마 전세계의 무술인들은 알든 모르든 그에게 신세를 진 셈입니다.이것으로 이소룡은 충분히 위대하며 그가 현대의 직업 격투사를 굳이 이겨야 할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그를 직업 격투사나 최영의와 비교하는 것은 그래야 할 이유도 없고 고인에 대한 예의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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