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룡...안티절권도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필명을 보고 처음 상당히 거부감을 느꼈지만 님 말씀이 옳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소룡의 전투방식은 안티절권도님 말마따나 40년전의 그것입니다. 아마 지금 그것을 그대로 도입한다면 현재 진화를 거듭한 무에타이나 실전태권도(입식타격경기방식을 도입한 부류) 또는 극진에도 훨씬 못미치리라는 생각입니다. 이소룡의 저작을 읽었지만 여러가지 자세그림과 기술에 대해 상대적으로 많은 분량을 들여 설명하고있지만 정수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정수는 그의 깨어있는 생각 사고의 유연성 즉 그의 철학이 아닐까 합니다.
일종의 딴지걸기에 해당하겠지만, 40년전의 이소룡의 전투방식에 대해 비판할것은 많다고 봅니다.(악의적인 결코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그래플링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었다는 분명한 사실일것 같습니다.특히 그런 와중에서 그가 놓쳤던 점이 유도의 우수성이었던것 같습니다. 이소룡 저작 전반을 둘러보면 유도에 대해 혹독한 평이 많습니다. 메치기와 같은것은 분명 멋있게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단순히 상대의 정강이를 가격하는 것으로 간단히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 이런식의 발언이 그것입니다. 아마도 이는 경기유도에 대한 절권도의 상성관계에 의한 편견이 아닐까 합니다. 절권도의 정강이 차기 -일종의 중족차기의 변형으로 육박하는 상대의 다리관절을 공격하는 기술로 영화에 많이 나오기도 합니다- 가 입식 그래플링에 강한탓에 그런 오류를 범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요컨데 현대 무술의 개념에서 이소룡의 기술은 이미 낡은것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도올 김용옥(많이들 아실겁니다...EBS에서 나와 인기몰이 했던 도가철학자)의 논문 태권도의 철학적 구성원리에 보면 도올은 이소룡을 현대 무술이 나은 양대 현자로 평가합니다.(다른 한명은 현대유도의 창시자 가노 지고로 교수) 도올의 평가는 적절한것 같습니다. 구태함과 정체에 빠져있는 고전무도계를 깨우치고 무도를 위한 현대철학을 정립한 그의 업적은 충분히 칭송받을만한 것임이 사실입니다.
절권도라는 것은 어쩌면 한종류의 무술로 치부해버리기에 또 가두기에 너무 높은 개념 이었던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의 철학은 현재의 타유파의 무술에게조차도 가르침을 줄만큼 탁월하고 작금의 구태의연함을 보이는 무술들에게 훌륭한 교훈으로서 아직도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절권도를 부정하는것이 바로 절권도라는 그의 철학은 아마도 헤겔의 변증법(영화 드래곤에서도 보면 그의 논문제목이 잠깐 나오는데 제목이 헤겔 변증법 비판 이었습니다)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참고로 그는 워싱턴대학-미국의 명문입니다...수도 DC가 아니라 워싱턴 주에 있는- 철학과 출신입니다.) 어찌보면 끊임없는 자기부정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찾는다는 불교철학에 그 본을 두고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습니다.여전히 그의 철학은 구태의연한 자신을 버리지 못하고(작금의 무도계 고위층들의 비리) 현실에 안주하는(편파판정과 그에 얼룩진 파벌싸움) 최근의 무도계에 아직도 살아있는 교훈으로서 존재하지 않나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림원섭님의 유유상종론에는 동의하기 힘들것 같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단순히 주변환경에 종속되는 그런존재에 불과했다면 지금껏 살아남기조차 힘들지 않았을까 합니다. 인간은 스스로 판단하고 환경에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영향받는 것보다도 더 많이 자신의 길을 개척해가는 그리고 개척해야만 하는 의무를 가진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무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존의 기술과 가르침도 중요하지만 끊임없는 검증과 대결 그리고 남의것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힘 없는 학습을 통해 -이소룡의 말마따나- 끊임없이 자신을 부정해가며 발전할때 그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다고 봅니다. 깡패 무뢰한 중에서도 성자가 나올 수 있고 고고한 학자들 사이에서도 깡패 무뢰한 더한 사이비가 나올 수 있습니다. 무도는 단순히 땀한방울 나지 않는 고고함속에서보다 끊임없이 땀흘리는 노력과 피튀기는 싸움터의 교훈속에서 그 진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혁을 거부하는 고고한 태권도 고위관료들의 교묘하고 아름다운 말장난보다도, 뜬금없는 전통과 민족에 억매여 구태를 보이는 무도의 모습에서보다도 투지로 링위를 붉게 타오르다 못해 하얀 불꽃으로 살라버린 이은수 이면주 선수의 경기에서 무도의 정수가 있지 않을까요? 이소룡의 철학이 현재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아닌가 합니다.
이소룡의 전투방식은 안티절권도님 말마따나 40년전의 그것입니다. 아마 지금 그것을 그대로 도입한다면 현재 진화를 거듭한 무에타이나 실전태권도(입식타격경기방식을 도입한 부류) 또는 극진에도 훨씬 못미치리라는 생각입니다. 이소룡의 저작을 읽었지만 여러가지 자세그림과 기술에 대해 상대적으로 많은 분량을 들여 설명하고있지만 정수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정수는 그의 깨어있는 생각 사고의 유연성 즉 그의 철학이 아닐까 합니다.
일종의 딴지걸기에 해당하겠지만, 40년전의 이소룡의 전투방식에 대해 비판할것은 많다고 봅니다.(악의적인 결코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그래플링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었다는 분명한 사실일것 같습니다.특히 그런 와중에서 그가 놓쳤던 점이 유도의 우수성이었던것 같습니다. 이소룡 저작 전반을 둘러보면 유도에 대해 혹독한 평이 많습니다. 메치기와 같은것은 분명 멋있게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단순히 상대의 정강이를 가격하는 것으로 간단히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 이런식의 발언이 그것입니다. 아마도 이는 경기유도에 대한 절권도의 상성관계에 의한 편견이 아닐까 합니다. 절권도의 정강이 차기 -일종의 중족차기의 변형으로 육박하는 상대의 다리관절을 공격하는 기술로 영화에 많이 나오기도 합니다- 가 입식 그래플링에 강한탓에 그런 오류를 범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요컨데 현대 무술의 개념에서 이소룡의 기술은 이미 낡은것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도올 김용옥(많이들 아실겁니다...EBS에서 나와 인기몰이 했던 도가철학자)의 논문 태권도의 철학적 구성원리에 보면 도올은 이소룡을 현대 무술이 나은 양대 현자로 평가합니다.(다른 한명은 현대유도의 창시자 가노 지고로 교수) 도올의 평가는 적절한것 같습니다. 구태함과 정체에 빠져있는 고전무도계를 깨우치고 무도를 위한 현대철학을 정립한 그의 업적은 충분히 칭송받을만한 것임이 사실입니다.
절권도라는 것은 어쩌면 한종류의 무술로 치부해버리기에 또 가두기에 너무 높은 개념 이었던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의 철학은 현재의 타유파의 무술에게조차도 가르침을 줄만큼 탁월하고 작금의 구태의연함을 보이는 무술들에게 훌륭한 교훈으로서 아직도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절권도를 부정하는것이 바로 절권도라는 그의 철학은 아마도 헤겔의 변증법(영화 드래곤에서도 보면 그의 논문제목이 잠깐 나오는데 제목이 헤겔 변증법 비판 이었습니다)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참고로 그는 워싱턴대학-미국의 명문입니다...수도 DC가 아니라 워싱턴 주에 있는- 철학과 출신입니다.) 어찌보면 끊임없는 자기부정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찾는다는 불교철학에 그 본을 두고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습니다.여전히 그의 철학은 구태의연한 자신을 버리지 못하고(작금의 무도계 고위층들의 비리) 현실에 안주하는(편파판정과 그에 얼룩진 파벌싸움) 최근의 무도계에 아직도 살아있는 교훈으로서 존재하지 않나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림원섭님의 유유상종론에는 동의하기 힘들것 같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단순히 주변환경에 종속되는 그런존재에 불과했다면 지금껏 살아남기조차 힘들지 않았을까 합니다. 인간은 스스로 판단하고 환경에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영향받는 것보다도 더 많이 자신의 길을 개척해가는 그리고 개척해야만 하는 의무를 가진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무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존의 기술과 가르침도 중요하지만 끊임없는 검증과 대결 그리고 남의것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힘 없는 학습을 통해 -이소룡의 말마따나- 끊임없이 자신을 부정해가며 발전할때 그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다고 봅니다. 깡패 무뢰한 중에서도 성자가 나올 수 있고 고고한 학자들 사이에서도 깡패 무뢰한 더한 사이비가 나올 수 있습니다. 무도는 단순히 땀한방울 나지 않는 고고함속에서보다 끊임없이 땀흘리는 노력과 피튀기는 싸움터의 교훈속에서 그 진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혁을 거부하는 고고한 태권도 고위관료들의 교묘하고 아름다운 말장난보다도, 뜬금없는 전통과 민족에 억매여 구태를 보이는 무도의 모습에서보다도 투지로 링위를 붉게 타오르다 못해 하얀 불꽃으로 살라버린 이은수 이면주 선수의 경기에서 무도의 정수가 있지 않을까요? 이소룡의 철학이 현재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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