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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독일선수권이 남긴 절망감

독일 남부의 작은 휴양도시 가미쉬-파텐키르헨에서 개최된 제16회 세계선수권대회는 그야말로 충격과 절망감을 안겨준 최악의 대회였다.

항공 교통 숙박 등 개최지 편의시설 미비, 총회장에서의 준비부족과 무질서, 의전상의 불협화음, 취재진들에 대한 편의제공 부재, 수준이하의 심판진 구성에 따른 잦은 판정시비로 대회진행에 차질을 빚는 등 무엇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먼저 세계연맹이 대회개최지 선정시 사전답사를 제대로 하고 결정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독일의 좋은 환경과 시설을 갖춘 유수 도시들을 제쳐두고 왜 하필 가미쉬-파텐키르헨으로 개최장소를 정했는가. 두 번을 갈아타야 하는 항공노선과 육로로 두시간을 더 가야 하는 곳에 선정함으로써 각 참가국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했고, 짐들이 제대로 도착하지 않아 곱절로 고생을 시키지 않나. 그나마 숙박시설이 미흡해 뿔뿔이 흩어져 민박을 할 수밖에 없고, 딱히 이동수단이 여의찮아 매번 비싼 택시비를 지불해야 했다.

16차 WTF총회장은 어떠했는가. 차기 선수권대회 개최지 선정 투표를 앞두고 출입 통제가 안되고 장내무질서로 인해 투표가 지연되자 총재가 연맹사무국 임직원들에게 호통을 치고, 투표용지가 모자라 즉석 수작업을 하는 수선을 떠는가 하면, 한글 및 스페인어 통역을 제대로 못해 말귀를 못 알아들은 각국 대표단이 정확한 통역을 요구하는 등 총회장 안팎이 혼란스러웠다.

이 뿐인가. 경기장에서는 세계연맹 임직원들이 독일조직위 측과 유기적이고 일사불란한 협력체계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프레스룸이 제 때 제공되지 않고 출입증 발급에 차질을 빚는가 하면, 독일협회장은 내년 세계주니어대회 유치를 위해 달려온 한국 유치도시 시장을 제치고 자신의 자녀를 귀빈석에 앉히려 볼썽사나운 꼴을 연출하는 등 잦은 불협화음으로 빈축을 샀다.

대회 이틀 뒤인 26일에서야 제공된 프레스룸은 경기장을 바라볼 수 없는 뒤쪽 선수훈련장 쪽에 설치됐고, 그나마 온라인 송신이 되지 않아 기사를 타전하지 못한 취재진은 도시 전역을 뒤지는 해프닝을 벌였다. 조직위는 한술 더 떠 기자에게 선수대기실과 본부석 출입까지 통제하고 식사도 제공되지 않게 배정하는 등 최악의 취재환경을 만들었다.

그러나 정작 문제의 심각성은 경기내용에 있었다. 이번 선수권에 경험없는 초보심판을 70% 이상 배정하는 등 함량미달의 국제심판진을 구성함으로써 이긴 경기를 지고 진 선수가 이긴 선수로 둔갑하는 등 다수 경기가 편파적인 판정 속에 선수와 관중의 지탄을 자초했다.

특히 매 경기마다 한국 선수들과 상대하는 다른 나라 선수들은 부정득점을 얻어도 박수를 받는 대신 우리 선수들은 정상적인 기량으로 득점을 땄는데도 모든 관중들이 야유를 보내는 반한(反韓) 감정에서 오늘날 종주국의 위상이 얼마나 추락하고 있는 지를 실감케 했다.

저들이 필시 한국 지도자들로부터 태권도를 배웠을진대 어째서 저 지경일까. 예시예종의 道는 가르치지 않고 오직 시합에 이기는 것만 가르치다 보니 경기장에서 페어플레이 정신을 망각하고 난동을 부리도록 방치했고, 오죽 편파판정으로 피해를 봤으면 저렇듯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스승과 스승의 나라에 대한 경외감이 실종된 채, 만 국가의 공적이 되어버렸을까.

세계연맹이 창설된 이래 지금껏 수많은 국제대회에서 한번도 판정시비가 없었던 경기가 없는 것은 단언컨대, 30년 동안 제대로 심판자질을 향상시키거나 올바르게 제도를 개선시키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까닭이요, 임직원들이 제 할 일을 제쳐놓고 엉뚱한 욕심을 내다가 잘못되면 책임을 전가할 궁리만 하며 부화뇌동(附和雷同)에 시위소찬(尸位素餐)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기술위원회가 설치돼 있는데도 일부 연맹 사무차장들의 이기적 편향적인 헤게모니 논리에 따라 졸속으로 검증안된 경기규칙을 자주 바꿔, 예의 화려한 공격기술은 종적을 감추고 단순한 기술에만 의존케 함으로써 가뜩이나 재미없는 태권도경기를 더욱 맥빠지게 한 것도 세계연맹 집행부의 명백한 직권남용이요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이번 독일선수권대회는 한마디로 177개나 되는 회원국가를 둔 거대 조직임에도 이들 국가에 대한 기본적인 데이터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관리통제 불능의 껍데기뿐인 세계연맹 기구를 새삼 확인시키는 허탈한 광경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 모든 절망감은 비단 세계연맹의 책임만이 아닌 종주국 모든 지도자들의 책임일진대 누구하나 제도개혁과 인사쇄신의 물꼬를 틀 사람이 없는 태권도계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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