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메이커 기사] 막싸움에선 당할자가 없다!!!
뉴스메이커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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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싸움에선 당할자가 없다!!!
팔순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 “퍽,퍽” 쓰러뜨려...
2009년 09월 04일 (금) 13:11:18 김용준 전문기자 yjkim@newsmaker.or.kr
기자는 고구려벽화에 그려진 맨손무예의 계승자를 만나기 위해 멀리 경남 김해를 찾았다. 민간전승 되어 온 기예들이 의레히 그러하듯 手搏의 경우도 계보와 관련한 문헌적인 기록은현존하지 않으며 조선 고종이후의 실제 행위자로서 그 실체를 알 수 있는것이다.
수박이란 拍手(박수, 손뼉 또는 손뼉치기)를 일컫는 것으로서 지금의 압록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고구려와 발해 그리고 후에 그 유민들이 전승 향유해 내려오는 기나긴 역사성과 전통성, 학술성, 향토적인 특색을 인정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순수한 전통기예이자 몸짓문화이다. 또한 그 본 모습을 잃지 않고 이 시대에 전해진 소중한 표현양식으로서 다분히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원시성에 기반한 무형의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수박에는 무예적인 것 외에도 무용으로서의 수박춤과 유희적인 수박치기가 존재하는데 검술이 검무가 되고 나무로 칼을 만들어 유희적으로 하듯 수박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전승된 것. 무예로서의 수박동작들을 기본으로 하여 여러 무용적인 표현과 장단에 어우러지게끔 한 것이 수박춤이라고 한다면 항간의 수박치기는 어른들의 그것을 아이들이 흉내 냈거나 교육적 목적으로 가르치지 않았나 보는 것이 일반적인 학계의 시각이다.
근대 문헌에는 수박이 예전의 칼 쓰는 기술에서 온 것이라고도 하고 중국 명나라때 유명한 장수가 군사들에게 가르쳤다고도 하니 그것에 숨어 있는 내력이 심상찮다.
뿌리깊은 송도수박, 스승은 일제시대 유명한 주먹꾼!
국내에서 유일한 수박계승자인 (사)대한수박협회(고문 송창렬 www.soobak.or.kr)은 1932년 함경남도에서 태어나 일본 오사카, 경기도 개성 등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당시 스승은 개성에서 유명한 주먹으로 통했다고 하는데 송창렬옹의 집은 그곳에서 금속제조 공장을 했기 때문에 부유했으며 일제 탄압시기에 가난해서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다른 조선 아이들과 달리 일본인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매일 조센징이라고 왕따를 당하거나 몰매를 맞기도 하여 이 때문에 수박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한다. 단재 신채호선생께선 송도(고려수도 개경)의 手拍이 지나(중국)에 들어가서 권법(拳法)이 되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유도(柔道)가 되었다고 하신바도 있다. “당시 개성은 일본이 장악한 시절이었어요. 게다가 전쟁이다 뭐다 해서 세상이 어수선 했고, 또, 일본이 한국문화 말살정책을 펴던 때라서 우리 것을 드러 내 놓고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아 나를 가르친 천일룡과 개성에 있는 여우골에 가서 몰래 배웠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후 1942년부터 1950년까지 개성에서 천서방(본명 천일룡)에게서 배운 수박기(手搏技)를 수년간 기억을 더듬어가며 계승,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수박은 조선시대에 왕을 호위하는 갑사를 뽑는 시험과목으로 채택되는 등 전성기를 구가했으나 지금은 겨우 송창렬옹의 아들인 송준호 씨가 전수를 받아 그 맥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송창렬옹은 지난 2001년 국립극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전통무예제”에서 수박을 지도했고 2004년에는 전통무예대회에서 故 송덕기(택견 계승자)옹이 1회 수상자로 선정 된 이래 20여년 만에 제2회 무도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문화관광위 공로표창, KBS와 MBC 그리고 아리랑TV에 출연해 수박시연을 하였고 올해에는 해럴드경제 선정 전통무예진흥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는 수박 외에도 민간에서 전래되어 오던 구한말 당시 함경도 근방의 검무를 재현할 수 있는 민속적으로 귀한 인물이기도 하다. 한편 수박은 국가지정 무형문화재(무예부문)로 심의 중에 있다.
송옹의 技藝(기예)를 전승하는 (사)대한수박협회는 한국 고유의 무예문화인 수박의 발굴, 보존, 연구 등을 통한 전통문화 창달에 뜻을 두고 수박보존회와 그 전수관을 모태로 하여 지난 2001년 8월 18일 서울시 체육청소년과로부터 설립허가를 득한 뒤 지금에 이르고 있다. 2001년 10월 국립극장 대극장에서의 시연 외 매년 10월경 서울시 생활체육협의회 지원으로 2008년까지 발기일로부터 총 7회째 24반무예, 선관무 등과 함께 ‘전통무예대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학술적으로도 국립문화재연구소의 현장실태조사등 관계기관으로부터의 지대한 관심과 함께 공인을 받고 있으며 곧, 전통무예진흥법 지정종목으로 선정 될 수박은 송창렬옹을 중심으로 국내,외 보급까지 힘 쓰고 있는것이다. “고려때 기록을 보면 맨손으로 돌을 깨기도 하고 호랑이를 때려 잡기도 했다 합니다” 현대의 스포츠화 된 무술이 아닌 거친시대, 거친사람들이 하던것이 수박이었다고 강변하는 송창렬옹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등 격동의 시절을 거치면서 잊혀진 무예로 남게 된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전통무예 분야에서 수박의 비중이 높아지고 남북교류도 추진되는 상황이어서 수박의 미래는 차츰 밝아질 전망이다.
직접 시연을 접하고 武(무예)와 舞(무용)가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평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수에 대한 고수의 생각은 어떠할까. “고수요? 내가 무슨 고숩니까. 할 일 없이 노는 사람인데...” 재차 이어지는 질문에 문득 하늘을 보며 중얼거린다. “바람따라 구름따라 그렇게... 욕심도 없이...” 이름 없이 떠돌다 사라졌을 수 많은 藝(예)와 藝人(예인)을 그리워하며 기자는 발길을 돌렸다.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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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싸움에선 당할자가 없다!!!
팔순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 “퍽,퍽” 쓰러뜨려...
2009년 09월 04일 (금) 13:11:18 김용준 전문기자 yjkim@newsmaker.or.kr
기자는 고구려벽화에 그려진 맨손무예의 계승자를 만나기 위해 멀리 경남 김해를 찾았다. 민간전승 되어 온 기예들이 의레히 그러하듯 手搏의 경우도 계보와 관련한 문헌적인 기록은현존하지 않으며 조선 고종이후의 실제 행위자로서 그 실체를 알 수 있는것이다.
수박이란 拍手(박수, 손뼉 또는 손뼉치기)를 일컫는 것으로서 지금의 압록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고구려와 발해 그리고 후에 그 유민들이 전승 향유해 내려오는 기나긴 역사성과 전통성, 학술성, 향토적인 특색을 인정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순수한 전통기예이자 몸짓문화이다. 또한 그 본 모습을 잃지 않고 이 시대에 전해진 소중한 표현양식으로서 다분히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원시성에 기반한 무형의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수박에는 무예적인 것 외에도 무용으로서의 수박춤과 유희적인 수박치기가 존재하는데 검술이 검무가 되고 나무로 칼을 만들어 유희적으로 하듯 수박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전승된 것. 무예로서의 수박동작들을 기본으로 하여 여러 무용적인 표현과 장단에 어우러지게끔 한 것이 수박춤이라고 한다면 항간의 수박치기는 어른들의 그것을 아이들이 흉내 냈거나 교육적 목적으로 가르치지 않았나 보는 것이 일반적인 학계의 시각이다.
근대 문헌에는 수박이 예전의 칼 쓰는 기술에서 온 것이라고도 하고 중국 명나라때 유명한 장수가 군사들에게 가르쳤다고도 하니 그것에 숨어 있는 내력이 심상찮다.
뿌리깊은 송도수박, 스승은 일제시대 유명한 주먹꾼!
국내에서 유일한 수박계승자인 (사)대한수박협회(고문 송창렬 www.soobak.or.kr)은 1932년 함경남도에서 태어나 일본 오사카, 경기도 개성 등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당시 스승은 개성에서 유명한 주먹으로 통했다고 하는데 송창렬옹의 집은 그곳에서 금속제조 공장을 했기 때문에 부유했으며 일제 탄압시기에 가난해서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다른 조선 아이들과 달리 일본인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매일 조센징이라고 왕따를 당하거나 몰매를 맞기도 하여 이 때문에 수박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한다. 단재 신채호선생께선 송도(고려수도 개경)의 手拍이 지나(중국)에 들어가서 권법(拳法)이 되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유도(柔道)가 되었다고 하신바도 있다. “당시 개성은 일본이 장악한 시절이었어요. 게다가 전쟁이다 뭐다 해서 세상이 어수선 했고, 또, 일본이 한국문화 말살정책을 펴던 때라서 우리 것을 드러 내 놓고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아 나를 가르친 천일룡과 개성에 있는 여우골에 가서 몰래 배웠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후 1942년부터 1950년까지 개성에서 천서방(본명 천일룡)에게서 배운 수박기(手搏技)를 수년간 기억을 더듬어가며 계승,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수박은 조선시대에 왕을 호위하는 갑사를 뽑는 시험과목으로 채택되는 등 전성기를 구가했으나 지금은 겨우 송창렬옹의 아들인 송준호 씨가 전수를 받아 그 맥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송창렬옹은 지난 2001년 국립극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전통무예제”에서 수박을 지도했고 2004년에는 전통무예대회에서 故 송덕기(택견 계승자)옹이 1회 수상자로 선정 된 이래 20여년 만에 제2회 무도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문화관광위 공로표창, KBS와 MBC 그리고 아리랑TV에 출연해 수박시연을 하였고 올해에는 해럴드경제 선정 전통무예진흥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는 수박 외에도 민간에서 전래되어 오던 구한말 당시 함경도 근방의 검무를 재현할 수 있는 민속적으로 귀한 인물이기도 하다. 한편 수박은 국가지정 무형문화재(무예부문)로 심의 중에 있다.
송옹의 技藝(기예)를 전승하는 (사)대한수박협회는 한국 고유의 무예문화인 수박의 발굴, 보존, 연구 등을 통한 전통문화 창달에 뜻을 두고 수박보존회와 그 전수관을 모태로 하여 지난 2001년 8월 18일 서울시 체육청소년과로부터 설립허가를 득한 뒤 지금에 이르고 있다. 2001년 10월 국립극장 대극장에서의 시연 외 매년 10월경 서울시 생활체육협의회 지원으로 2008년까지 발기일로부터 총 7회째 24반무예, 선관무 등과 함께 ‘전통무예대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학술적으로도 국립문화재연구소의 현장실태조사등 관계기관으로부터의 지대한 관심과 함께 공인을 받고 있으며 곧, 전통무예진흥법 지정종목으로 선정 될 수박은 송창렬옹을 중심으로 국내,외 보급까지 힘 쓰고 있는것이다. “고려때 기록을 보면 맨손으로 돌을 깨기도 하고 호랑이를 때려 잡기도 했다 합니다” 현대의 스포츠화 된 무술이 아닌 거친시대, 거친사람들이 하던것이 수박이었다고 강변하는 송창렬옹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등 격동의 시절을 거치면서 잊혀진 무예로 남게 된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전통무예 분야에서 수박의 비중이 높아지고 남북교류도 추진되는 상황이어서 수박의 미래는 차츰 밝아질 전망이다.
직접 시연을 접하고 武(무예)와 舞(무용)가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평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수에 대한 고수의 생각은 어떠할까. “고수요? 내가 무슨 고숩니까. 할 일 없이 노는 사람인데...” 재차 이어지는 질문에 문득 하늘을 보며 중얼거린다. “바람따라 구름따라 그렇게... 욕심도 없이...” 이름 없이 떠돌다 사라졌을 수 많은 藝(예)와 藝人(예인)을 그리워하며 기자는 발길을 돌렸다.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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