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 중국무술
신문검색하다 오늘날짜 인천 (기호일보) 지방지에 실린 한국의 중국무술 전래에 대한 기고문이 있어 올려봅니다
http://www.kiho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7325
내용이 좋은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경제자유구역(IFEZ)으로 지정된 인천. 오는 8월 7일부터 세계도시축전이 열리는 인천은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와 최고가 많다. 한국 최초의 서구식 공원을 비롯해 인공백사장을 갖춘 해수욕장, 최초 우편업무, 최초 교회, 최초 이민, 최초 등대 등 인천이 자랑하는 ‘최초의 기록’들이 즐비한 것이다.
이외에도 철도, 전화, 세관, 기상관측, 동전 찍은 일 등 근대문화의 도입지가 인천이며, 농업국가에서 근대자본주의로 전화되는 시범지역으로 언제나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풍부한 화제거리가 흘러 넘친다.
이 가운데 자장면은 1905년 세계 최초로 중구 북성동 소재 중국요리식당 공화춘에서 만들어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먹을거리로 자리 잡은 음식이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인천시 중구는 차이나타운 일대에서 자장면 축제를 열고 있기도 하다.
특히, 지난 2005년 자장면 탄생 100주년을 전후해 TV와 뉴스, 인터넷에서는 인천의 최초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러나 이 와중에서도 한국 쿵푸의 최초 발원지가 인천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60~70년대 대한민국은 무술의 전성기였고, 여기에 기여한 쿵푸 때문이었지는 우리나라는 중국, 일본과 더불어 무술의 3대 종주국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에 퍼진 18기(技), 쿵푸, 국술, 우슈 등으로 불리어지는 중국무술이 인천 화교를 통해 들어왔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담론화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우리 스스로 가지고 있는 장점을 들이켜보는 여유가 부족했던 것 같다.
중국무술이 한국에 전래된 것은 역사적으로 오래됐지만 근거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근거를 따져보면 첫째 1898년 무술가 집단인 의화단(義和團)의 북청사변(北淸事變)으로 산동성 일대가 전란에 휘말리자 이 일대 중국인들이 피난차 가까운 한국로 대거 건너 온 것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주로 인천을 자신들의 집결지로 삼았기 때문에 인천은 부지불식간에 화교들의 근거지가 됐으며 서울과 함께 화교들의 양대 세력권이 됐다. 자료에 따르면 인천은 그 이전부터 화교정착지로 명성을 날렸다. 1884년 35척의 청조 선박이 인천과 마포항 등을 왕래했는데 당시 운반한 화물만 무려 1만3천t에 달했다니 화교의 근거지로 충분했을 것이다. 인천항으로 들어오는 엄청난 화물을 전국 각지로 이동시키려면 그만한 세력이 형성돼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침략자 일본의 이간책이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 만보산 사건으로 중국인 박해사건이 일어나고, 이것을 계기로 화교 수가 많았던 인천이 화교의 거점으로 부상했다고 하겠다. 당시 공관과 중화회관 등을 중심으로 한국인들과 접촉하는 횟수가 날로 많아졌고 그만큼 화교와 한국인들간의 충돌은 많아졌다.
인천의 청국 집단 거류지는 문을 닫고 스스로 방어(자위대 결성)에 임했으며, 이때를 전후해 고생신(高生信), 추길원(秋吉元), 여품삼, 두학제(杜學悌), 필서익(畢庶益), 노수전(盧水田), 임풍장(林品璋), 강경방(姜庚芳) 등 중국에서 건너온 무술가들에 의해 중국무술이 인천을 중심으로 한국에 뿌리를 내렸다. 중국과 대만에서 저명한 무술가로 이름을 날렸던 사국정(沙國政), 위소당(衛笑堂)이 인천에 잠시 체류한 시절도 바로 이때였다.
그 중에서 팔괘장의 노수전, 장권·소림권·태극권의 필서익, 당랑권의 강경방과 임품장 같은 분들은 6·25전쟁이 발발하기 이전인 1950년대 인천자유공원에 모여 운동을 즐겨 했다는 이야기가 화교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엊그제 일처럼 얘기거리로 등장한다.
한국 쿵후의 시작점이 인천차이나타운임을 단박에 입증하는 사례라 하겠다. 아쉬운 것은 이 같은 사실을 지역문화축제의 소재로 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항 이후 100여 년 동안 변화를 거듭한 오늘날의 인천, 그리고 그 변화를 만들어 온 사람들이 다시 한 번 그 옛날의 화제를 뒤돌아본다면 인천은 최초·최고가 많은 개항도시에 머물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전통과 현대, 미래가 공존하는 한국 최고의 도시가 돼 세계로 미래로 뻗어나가는 세계일류명품도시로 자리매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http://www.kiho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7325
내용이 좋은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경제자유구역(IFEZ)으로 지정된 인천. 오는 8월 7일부터 세계도시축전이 열리는 인천은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와 최고가 많다. 한국 최초의 서구식 공원을 비롯해 인공백사장을 갖춘 해수욕장, 최초 우편업무, 최초 교회, 최초 이민, 최초 등대 등 인천이 자랑하는 ‘최초의 기록’들이 즐비한 것이다.
이외에도 철도, 전화, 세관, 기상관측, 동전 찍은 일 등 근대문화의 도입지가 인천이며, 농업국가에서 근대자본주의로 전화되는 시범지역으로 언제나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풍부한 화제거리가 흘러 넘친다.
이 가운데 자장면은 1905년 세계 최초로 중구 북성동 소재 중국요리식당 공화춘에서 만들어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먹을거리로 자리 잡은 음식이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인천시 중구는 차이나타운 일대에서 자장면 축제를 열고 있기도 하다.
특히, 지난 2005년 자장면 탄생 100주년을 전후해 TV와 뉴스, 인터넷에서는 인천의 최초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러나 이 와중에서도 한국 쿵푸의 최초 발원지가 인천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60~70년대 대한민국은 무술의 전성기였고, 여기에 기여한 쿵푸 때문이었지는 우리나라는 중국, 일본과 더불어 무술의 3대 종주국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에 퍼진 18기(技), 쿵푸, 국술, 우슈 등으로 불리어지는 중국무술이 인천 화교를 통해 들어왔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담론화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우리 스스로 가지고 있는 장점을 들이켜보는 여유가 부족했던 것 같다.
중국무술이 한국에 전래된 것은 역사적으로 오래됐지만 근거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근거를 따져보면 첫째 1898년 무술가 집단인 의화단(義和團)의 북청사변(北淸事變)으로 산동성 일대가 전란에 휘말리자 이 일대 중국인들이 피난차 가까운 한국로 대거 건너 온 것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주로 인천을 자신들의 집결지로 삼았기 때문에 인천은 부지불식간에 화교들의 근거지가 됐으며 서울과 함께 화교들의 양대 세력권이 됐다. 자료에 따르면 인천은 그 이전부터 화교정착지로 명성을 날렸다. 1884년 35척의 청조 선박이 인천과 마포항 등을 왕래했는데 당시 운반한 화물만 무려 1만3천t에 달했다니 화교의 근거지로 충분했을 것이다. 인천항으로 들어오는 엄청난 화물을 전국 각지로 이동시키려면 그만한 세력이 형성돼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침략자 일본의 이간책이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 만보산 사건으로 중국인 박해사건이 일어나고, 이것을 계기로 화교 수가 많았던 인천이 화교의 거점으로 부상했다고 하겠다. 당시 공관과 중화회관 등을 중심으로 한국인들과 접촉하는 횟수가 날로 많아졌고 그만큼 화교와 한국인들간의 충돌은 많아졌다.
인천의 청국 집단 거류지는 문을 닫고 스스로 방어(자위대 결성)에 임했으며, 이때를 전후해 고생신(高生信), 추길원(秋吉元), 여품삼, 두학제(杜學悌), 필서익(畢庶益), 노수전(盧水田), 임풍장(林品璋), 강경방(姜庚芳) 등 중국에서 건너온 무술가들에 의해 중국무술이 인천을 중심으로 한국에 뿌리를 내렸다. 중국과 대만에서 저명한 무술가로 이름을 날렸던 사국정(沙國政), 위소당(衛笑堂)이 인천에 잠시 체류한 시절도 바로 이때였다.
그 중에서 팔괘장의 노수전, 장권·소림권·태극권의 필서익, 당랑권의 강경방과 임품장 같은 분들은 6·25전쟁이 발발하기 이전인 1950년대 인천자유공원에 모여 운동을 즐겨 했다는 이야기가 화교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엊그제 일처럼 얘기거리로 등장한다.
한국 쿵후의 시작점이 인천차이나타운임을 단박에 입증하는 사례라 하겠다. 아쉬운 것은 이 같은 사실을 지역문화축제의 소재로 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항 이후 100여 년 동안 변화를 거듭한 오늘날의 인천, 그리고 그 변화를 만들어 온 사람들이 다시 한 번 그 옛날의 화제를 뒤돌아본다면 인천은 최초·최고가 많은 개항도시에 머물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전통과 현대, 미래가 공존하는 한국 최고의 도시가 돼 세계로 미래로 뻗어나가는 세계일류명품도시로 자리매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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