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당당하게 맞서길 바람
우리 사단법인 국제경호무술연맹은 아래와 같이 경호무술연무시범대회를 통하여 경호무술 수련하고 알리고 보급하고 있습니다

사회단체신고증은 타이프 서식만 있는것이 아니라 발행공무원에 따라 타이프만 아니라 자필로도 발행함.
사회단체신고증은 원본 복사본이 맞음
사회단체 신고증으로 인하여 경호무술창시자가 이재영총재님이라는것을 더이상 반박할 여지가 없으니 이제는 말도 안돼는 주장만 함
사회단체 한국경호무술협회(서울시 787호)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경호무술창시자 이재영총재님 집필하신 "보디가드의 세계" 일부 내용을 올림니다. 이재영총재님이 집필하신 책에도 사회단체 신고에 대한 글이 있음으로 이견이있다면 허왕된 주장만 하지말고 항상 말로만 떠들어대는 법적대응을 하기바람
사람은 두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그 첫째가 자신의 장점을 살려 실력과 노력으로 승부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사람과 항상 다른 사람을 시기하고 비방하면서 자기가 최고인양 거짓주장을 하는 사람. 지금까지 경호무술에 대한 올린 글을 전부 읽어보신다면 글 올린 사람이 어디에 해당되는지 알게 될것입니다.
전국에 경호무술인 여러분 자신이 경호무술에대한 독점적인 권리와 지위를 가진것처럼 혹세무민하면서 다른 모든 경호무술관련 단체를 욕하면서 경호무술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자가 있습니다. 우리 사단법인 국제경호무술연맹과 경호무술창시자 이재영총재님께서는 그런 혹세무민하는 자를 모든 수단과 법적인 가능한 조치를 취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자유롭게 경호무술을 수련하고 지도할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것입니다.
혹세무민하는 자에게 통보함 거짓된 주장만 하지말고 법적인 문제를 야기하고 싶다면 하길바람 당당하게 맞서고 응징할 준비가 되어있음. 물론 항상 거짓만 주장하여서 맞설 능력이나 자격도 안돼겠지만
사회단체 한국경호무술협회에 대한 이해를 돕기위하여 경호무술창시자 이재영총재님이 집필하신 "보디가드의 세계(신아출판사 2004년초판)"일부 내용을 발취하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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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무술원과 한국경호무술협회를 설립하면서
경호업의 발전과 함께 "경호무술"또한 성공리에 보급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태권도장의 낮 시간을 빌려 경호원들에게 경호무술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경호무술만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경호무술 전문 도장을 오픈 하게 되었다. 이 "경호무술원"이 바로 국내최초의 경호무술 도장이었다. 항상 남의 체육관을 빌려, 경호무술을 수련하고 보급하던 나로서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이때부터 생각한 것이 "삼국시대부터 왕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비밀리에 전수되고 수련하던 무술이다"라는 거짓된 역사주장이 아니라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경호무술의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때부터 경호무술창시자라는 직함을 쓰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까지는 다른 무술을 수용하면서 변화 발전하는 단계였지만 경호무술을 내 평생 연구하고 발전시켜 창안해 나가면 되었다. 어디에나 시작은 있는 법이니까. 이러한 자신감이 가능했던 이유는 내가 만든 경호무술을 전문적으로 보급할 수 있는 경호무술원을 오픈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경호무술창시자라는 직함을 쓸 때부터 내가 곳 경호무술의 역사고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수련하고 공부했으며 정말 경호무술에 미친 사람처럼 무술에 미처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생각이지만 어느 한 분야의 창시자가 된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이목은 달랐다. 20대의 나이에 내가 경호무술창시자라고 하자 모두 비웃었으며 나를 사기꾼 취급했다.
국내의 어느 분야나 그렇지만 특히 한국무술계는 나이의 벽이 너무 컸다. 그도 그럴 것이 내 나이정도에 도장관장을 하여도 욕먹을 짓인데 거기에 한술 떠서 경호무술창시자라고 하니 미친놈 취급을 하였다. 50, 60대 관장들이 나를 공개적으로 욕하기 시작했다. "이제 새파랗게 어린놈이, 자신들 무술경력의 반도 안 되는 놈이 무슨 창시자냐"는 거였다. 여러 사람이 한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무술계에 사이비로 소문이 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까지만 해도 왜만한 무술협회의 협회장은 거의 50대 이상이었다.
이때부터 나는 외로운 투쟁을 계속하여 가야만 했다. 주위사람들이 무술인중 연륜과 인덕이 많은 사람을 창시자로 추대하자는 조언을 하기도 했다. 나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얘기했다.
"내가만들었고 내가 창시해 가는 경호무술을 왜 다른 사람의 연륜과 인덕을 빌려 보급합니까? 내가 만들었으며 나의 노력과 실력으로 인정받겠습니다. 나는 역사 속에 숨어서 거짓된 역사조작도 안 할 것이며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 경호무술을 보급하지도 않을 겁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창시자의 자세입니다." 그러면서 시간이 흐르고 내가 경호무술을 더 멋지고 실전적인 기술로 만들어간다면 그들도 인정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경호무술"관련 협회를 설립하여 경호무술을 좀더 체계적으로 보급하는 거였다. 현재는 무술관련 사회단체에 관한 법제도가 많이 완화되어 누구나 쉽게 무술관련 협회를 설립하지만 그 당시만 하여도 협회설립은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었으며 어떻게 설립하는지도 모르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경호무술 단증을 발행하고 체계적인 보급을 위해서는 협회를 꼭 설립해야만 했다.
여기저기 관공서를 다니면서 협회등록에 대하여 문의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관공서의 벽은 높기만 했다. 협회등록을 포기할 까도 했지만 어짜피 경호무술을 보급하기 위해서는 나중에라도 꼭 등록을 해야했기 때문에 계속하여 밀어 붙였다. 그렇게 노력하기를 몇 개월 드디어 모든 서류를 준비하여 서울특별시에 사회단체 등록을 신청했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7일만에 서울특별시에서 답변서가 왔다. 나는 너무나 기뻐 봉투를 뜯어 봤지만 봉투 안에는 사회단체등록증이 아닌 등록신청이 반려됐다는 반려 통보 서였다.
반려통보 내용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경호무술이 아직 사회단체로 등록하기에는 비 활성화가 되었고 생소하다는 것이었다. 정말 이만 저만 실망이 아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관공서를 여기저기 쫏아 다니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이런 실망감이 들 줄이야 나는 이때 무술계의 큰 벽을 실감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경호무술이 하나의 무술로서 단증을 발행하고 인정받기 위 하여는 꼭 사회단체 등록을 해야했다.
나는 2∼3일정도 경호무술에 대한 자료를 더 준비하여 서울특별시청의 담당자를 찾아 나섰다. 자리에 없다고 하면 다음날에 찾아갔고 지방에 출장을 갔다고 하면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어김없이 찾아갔다. 그리고 매일같이 전화하여 반려가 된 정확한 이유를 따졌다. 지금생각해도 정말 그 담당 공무원을 너무 귀찮게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이 그 당시 사회단체 등록에 관한 법률은 민법 제37조에 관련된 것이 라는 것이었고 법률 책을 공부해가며 서류를 더 준비하고 보강하여 다시 서울특별시에 사회단체신청서를 제출하였다.
그렇게 초조하게 몇 일이 흐른 후 서울특별시 담당공무원으로부터 시청에 들어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나는 시청으로 향하면서 이번에도 반려를 한다면 앞으로 1년이든 10년이든 등록 될 때까지 신청을 할거라는 얘기를 할거라고 다짐하면서 들어갔다. 그러자 그 시청공무원이 첫마디가 자기가 지금까지 사회단체 등록 신청을 받으면서 대표자가 이렇게 나이 어린 사람을 처음이라는 것이었다. 특히 무술관련 사회단체는 더 그렇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참 대단하다고 하였다. 어린 사람이 이런 단체를 설립할 생각을 어떻게 했냐고 앞으로 경호무술이 얼마나 발전할지 지켜본다면서 사회단체 등록이 수리되어 사무실로 사회단체등록증을 발송했다는 거였다.
이렇게 해서 설립된 것이 경호무술관련 최초의 국가공인 단체인 인 "한국경호무술협회"(서울특별시 사회단체 제787호)였으며 나는 20대의 어린 나이에 초대회장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겠지만 이때의 나에게는 내 세상에서 가장 큰 감동과 성취감을 맛보았다. 그것은 이렇게 하나 하나 성취하고 발전해 나가는 과정이 바로 경호무술의 역사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렇게 하나 하나 경호무술을 발전시켜 나갈 때마다 다음과 같은 글을 생각했다.
"길이 있어 내가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감으로서 길이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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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단체신고증은 타이프 서식만 있는것이 아니라 발행공무원에 따라 타이프만 아니라 자필로도 발행함.
사회단체신고증은 원본 복사본이 맞음
사회단체 신고증으로 인하여 경호무술창시자가 이재영총재님이라는것을 더이상 반박할 여지가 없으니 이제는 말도 안돼는 주장만 함
사회단체 한국경호무술협회(서울시 787호)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경호무술창시자 이재영총재님 집필하신 "보디가드의 세계" 일부 내용을 올림니다. 이재영총재님이 집필하신 책에도 사회단체 신고에 대한 글이 있음으로 이견이있다면 허왕된 주장만 하지말고 항상 말로만 떠들어대는 법적대응을 하기바람
사람은 두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그 첫째가 자신의 장점을 살려 실력과 노력으로 승부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사람과 항상 다른 사람을 시기하고 비방하면서 자기가 최고인양 거짓주장을 하는 사람. 지금까지 경호무술에 대한 올린 글을 전부 읽어보신다면 글 올린 사람이 어디에 해당되는지 알게 될것입니다.
전국에 경호무술인 여러분 자신이 경호무술에대한 독점적인 권리와 지위를 가진것처럼 혹세무민하면서 다른 모든 경호무술관련 단체를 욕하면서 경호무술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자가 있습니다. 우리 사단법인 국제경호무술연맹과 경호무술창시자 이재영총재님께서는 그런 혹세무민하는 자를 모든 수단과 법적인 가능한 조치를 취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자유롭게 경호무술을 수련하고 지도할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것입니다.
혹세무민하는 자에게 통보함 거짓된 주장만 하지말고 법적인 문제를 야기하고 싶다면 하길바람 당당하게 맞서고 응징할 준비가 되어있음. 물론 항상 거짓만 주장하여서 맞설 능력이나 자격도 안돼겠지만
사회단체 한국경호무술협회에 대한 이해를 돕기위하여 경호무술창시자 이재영총재님이 집필하신 "보디가드의 세계(신아출판사 2004년초판)"일부 내용을 발취하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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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무술원과 한국경호무술협회를 설립하면서
경호업의 발전과 함께 "경호무술"또한 성공리에 보급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태권도장의 낮 시간을 빌려 경호원들에게 경호무술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경호무술만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경호무술 전문 도장을 오픈 하게 되었다. 이 "경호무술원"이 바로 국내최초의 경호무술 도장이었다. 항상 남의 체육관을 빌려, 경호무술을 수련하고 보급하던 나로서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이때부터 생각한 것이 "삼국시대부터 왕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비밀리에 전수되고 수련하던 무술이다"라는 거짓된 역사주장이 아니라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경호무술의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때부터 경호무술창시자라는 직함을 쓰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까지는 다른 무술을 수용하면서 변화 발전하는 단계였지만 경호무술을 내 평생 연구하고 발전시켜 창안해 나가면 되었다. 어디에나 시작은 있는 법이니까. 이러한 자신감이 가능했던 이유는 내가 만든 경호무술을 전문적으로 보급할 수 있는 경호무술원을 오픈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경호무술창시자라는 직함을 쓸 때부터 내가 곳 경호무술의 역사고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수련하고 공부했으며 정말 경호무술에 미친 사람처럼 무술에 미처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생각이지만 어느 한 분야의 창시자가 된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이목은 달랐다. 20대의 나이에 내가 경호무술창시자라고 하자 모두 비웃었으며 나를 사기꾼 취급했다.
국내의 어느 분야나 그렇지만 특히 한국무술계는 나이의 벽이 너무 컸다. 그도 그럴 것이 내 나이정도에 도장관장을 하여도 욕먹을 짓인데 거기에 한술 떠서 경호무술창시자라고 하니 미친놈 취급을 하였다. 50, 60대 관장들이 나를 공개적으로 욕하기 시작했다. "이제 새파랗게 어린놈이, 자신들 무술경력의 반도 안 되는 놈이 무슨 창시자냐"는 거였다. 여러 사람이 한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무술계에 사이비로 소문이 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까지만 해도 왜만한 무술협회의 협회장은 거의 50대 이상이었다.
이때부터 나는 외로운 투쟁을 계속하여 가야만 했다. 주위사람들이 무술인중 연륜과 인덕이 많은 사람을 창시자로 추대하자는 조언을 하기도 했다. 나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얘기했다.
"내가만들었고 내가 창시해 가는 경호무술을 왜 다른 사람의 연륜과 인덕을 빌려 보급합니까? 내가 만들었으며 나의 노력과 실력으로 인정받겠습니다. 나는 역사 속에 숨어서 거짓된 역사조작도 안 할 것이며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 경호무술을 보급하지도 않을 겁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창시자의 자세입니다." 그러면서 시간이 흐르고 내가 경호무술을 더 멋지고 실전적인 기술로 만들어간다면 그들도 인정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경호무술"관련 협회를 설립하여 경호무술을 좀더 체계적으로 보급하는 거였다. 현재는 무술관련 사회단체에 관한 법제도가 많이 완화되어 누구나 쉽게 무술관련 협회를 설립하지만 그 당시만 하여도 협회설립은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었으며 어떻게 설립하는지도 모르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경호무술 단증을 발행하고 체계적인 보급을 위해서는 협회를 꼭 설립해야만 했다.
여기저기 관공서를 다니면서 협회등록에 대하여 문의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관공서의 벽은 높기만 했다. 협회등록을 포기할 까도 했지만 어짜피 경호무술을 보급하기 위해서는 나중에라도 꼭 등록을 해야했기 때문에 계속하여 밀어 붙였다. 그렇게 노력하기를 몇 개월 드디어 모든 서류를 준비하여 서울특별시에 사회단체 등록을 신청했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7일만에 서울특별시에서 답변서가 왔다. 나는 너무나 기뻐 봉투를 뜯어 봤지만 봉투 안에는 사회단체등록증이 아닌 등록신청이 반려됐다는 반려 통보 서였다.
반려통보 내용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경호무술이 아직 사회단체로 등록하기에는 비 활성화가 되었고 생소하다는 것이었다. 정말 이만 저만 실망이 아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관공서를 여기저기 쫏아 다니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이런 실망감이 들 줄이야 나는 이때 무술계의 큰 벽을 실감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경호무술이 하나의 무술로서 단증을 발행하고 인정받기 위 하여는 꼭 사회단체 등록을 해야했다.
나는 2∼3일정도 경호무술에 대한 자료를 더 준비하여 서울특별시청의 담당자를 찾아 나섰다. 자리에 없다고 하면 다음날에 찾아갔고 지방에 출장을 갔다고 하면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어김없이 찾아갔다. 그리고 매일같이 전화하여 반려가 된 정확한 이유를 따졌다. 지금생각해도 정말 그 담당 공무원을 너무 귀찮게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이 그 당시 사회단체 등록에 관한 법률은 민법 제37조에 관련된 것이 라는 것이었고 법률 책을 공부해가며 서류를 더 준비하고 보강하여 다시 서울특별시에 사회단체신청서를 제출하였다.
그렇게 초조하게 몇 일이 흐른 후 서울특별시 담당공무원으로부터 시청에 들어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나는 시청으로 향하면서 이번에도 반려를 한다면 앞으로 1년이든 10년이든 등록 될 때까지 신청을 할거라는 얘기를 할거라고 다짐하면서 들어갔다. 그러자 그 시청공무원이 첫마디가 자기가 지금까지 사회단체 등록 신청을 받으면서 대표자가 이렇게 나이 어린 사람을 처음이라는 것이었다. 특히 무술관련 사회단체는 더 그렇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참 대단하다고 하였다. 어린 사람이 이런 단체를 설립할 생각을 어떻게 했냐고 앞으로 경호무술이 얼마나 발전할지 지켜본다면서 사회단체 등록이 수리되어 사무실로 사회단체등록증을 발송했다는 거였다.
이렇게 해서 설립된 것이 경호무술관련 최초의 국가공인 단체인 인 "한국경호무술협회"(서울특별시 사회단체 제787호)였으며 나는 20대의 어린 나이에 초대회장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겠지만 이때의 나에게는 내 세상에서 가장 큰 감동과 성취감을 맛보았다. 그것은 이렇게 하나 하나 성취하고 발전해 나가는 과정이 바로 경호무술의 역사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렇게 하나 하나 경호무술을 발전시켜 나갈 때마다 다음과 같은 글을 생각했다.
"길이 있어 내가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감으로서 길이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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