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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올림픽에서 빠지고 가라데 들어가나?

태권도 올림픽에서 빠지나 [조인스]


전자호구·공정한 판정 등 제도 개선 제자리 걸음
2009년 IOC 총회 투표에서 도마에 오를 듯 “싱가포르 총회 투표에서 태권도는 겨우 2표 차로 살아남았다.” 국제태권도연맹(ITF·International Taekwondo Federation) 소속 한국태권도협회의 유완영 회장이 지난 4월 방한한 장웅 북한 IOC위원에게 들은 이야기다. 태권도가 가까스로 2012년 런던 하계올림픽 ‘참가종목’(Olympic Program)이 됐다는 말이다.

국제올림픽조직위원회(IOC)는 태권도를 포함한 28개 하계올림픽 ‘정규종목’(Olympic sports) 모두를 상대로 2005년 7월 8일 싱가포르 총회에서 비밀투표를 실시했다. 투표에 참가한 IOC 위원의 과반수 찬성표를 얻지 못하는 종목은 2012년 런던 하계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하게 된다. 그 결과 과반수 득표에 실패한 야구와 소프트볼이 첫 번째 희생자가 됐다.

당시 태권도도 런던 올림픽에 가지 못할까봐 한국 관계자들은 긴장했다. 개표 결과 과반수 득표는 넘겨 2012년 런던 올림픽에 참가하게 됐지만 뒷맛이 개운치는 않았다. 개표 후 태권도가 턱걸이로 잔류했다는 말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물론 IOC는 위화감을 우려해 개별 종목의 득표수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따라서 그동안엔 추측만 무성했을 뿐 태권도가 얼마를 득표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IOC 헌장은 ‘올림픽 정규종목’(Olympic Sports)과 ‘올림픽 참가종목’(Olympic Program)을 구분해 사용한다. ‘올림픽 정규종목’은 올림픽 헌장에 명시된 종목이고, ‘올림픽 참가종목’은 이 중 특정 올림픽 대회의 참가가 허용된 종목이다. IOC 헌장 46조는 하계 28개, 동계 7개 ‘올림픽 정규종목’을 명시했다. 2008년 베이징 대회까지는 정규종목과 참가종목이 일치한다. 올림픽 정규종목은 자동적으로 특정 올림픽 대회에 참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2년 런던 대회부터는 방식이 달라진다. IOC 헌장에 규정된 정규종목이라 할지라도 IOC 총회에서 IOC 위원(정원 115명)의 반수 이상이 무기명 비밀투표에 참석하고 그중 과반수의 찬성표를 얻어야 대회 참여가 가능해졌다. 한마디로 모든 정규종목이 매번 신임투표를 거쳐야 참가종목이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야구와 소프트볼은 올림픽 정규종목이지만 과반수 득표에 실패했기에 2012년 런던 대회에는 참가하지 못한다.

이 같은 새 제도는 IOC가 올림픽 정규종목 간 경쟁 촉진과 저변을 확대한다는 취지로 도입했다. 모든 올림픽이 열리기 7년 전 IOC 총회에서 투표를 통해 참가종목을 가린다. 2005년 싱가포르 총회가 첫 투표였다. 28개 하계 올림픽 정규종목 모두를 IOC 총회 비밀투표에 부치며, 4년마다 같은 식의 ‘솎아내기’가 계속된다. 이론적으로는 28개 하계 정규종목 모두 참가종목이 못되면 하계 올림픽 자체가 못 열릴 가능성도 있다.

야구와 소프트볼이 2012년 런던 대회에 초대받지 못했다 해서 올림픽 게임에서 영구 추방되진 않는다. 여전히 올림픽 헌장에 명시된 정규종목이기 때문이다. 올림픽 헌장에서까지 몰아내려면 IOC 총회에서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2005년 싱가포르 총회 투표는 올림픽 헌장을 개정하는 투표가 아니라, 단지 2012년 런던 올림픽 참가 여부를 가렸을 뿐이다. 다시 말하면 야구와 소프트볼은 ‘영구 퇴출’이 아닌 ‘일시 퇴출’이다. 올림픽 헌장에 정규종목으로 남아 있는 한 2009년 IOC 총회에서 과반수 찬성만 얻으면 2016년 올림픽 대회(장소 미정)에는 다시 참여한다.

태권도의 미래는 어떨까? 2009년 IOC 총회 투표 결과를 자신 있게 낙관하는 태권도계 인사는 그리 많지 않았다. 전형상 용인대 교수는 “태권도인들은 항상 (올림픽 종목 탈락 가능성을) 열어둔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대한체육회도 “실제 태권도가 심판 판정이 모호하거나 경기가 재미없다는 지적이 많았다”고 했다.

나아가 이러한 문제점들을 조기에 해결하지 못하면 계속 퇴출 가능성이 지적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대한체육회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려면 태권도계가 모두 나서 특단의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하계올림픽 28개 정규종목 중 태권도는 가장 늦게 합류한 막내둥이다. 태권도는 1994년 IOC 파리총회에서 철인3종경기와 함께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정규종목으로 채택됐다. 그 후 새로 추가된 하계올림픽 종목은 없다. 역사가 일천하다 보니 관중 동원이나 인지도 면에서 밀린다. 그래서 IOC 총회 투표에서도 퇴출 후보로 거론된다.

경기가 박진감 넘치고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다면 퇴출 걱정은 필요 없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태권도인들은 태권도 경기 운영과 규칙, 대외적 인지도 면에서 많은 개선과 보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2005년 7월의 싱가포르 IOC총회는 태권도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하는 중요한 근거를 제공했다.

이 회의에 앞서 IOC 산하 ‘올림픽 프로그램 위원회’(The Olympic Programme Commission)는 태권도를 포함한 28개 종목별 평가보고서를 발표했다. 싱가포르 총회에 참석한 IOC 위원들이 퇴출종목을 골라내는 투표에 참고하라고 엮은 자료집이다.

IOC ‘올림픽 프로그램 위원회’ 평가보고서는 미디어 노출 빈도, 경기 자체의 박진감, 심판 판정의 공정성 등 크게 세가지로 태권도의 문제점을 짚었다. 우선 2001년, 2003년 세계태권도연맹(WTF·World Taekwondo Federation) 세계선수권대회 TV 방영권을 구입한 국가는 단 한 곳도 없었다. IOC가 태권도의 대표성을 인정하는 WTF에서 방영권 수입을 한푼도 못 올렸다는 말이다.

보고서 조사에 따르면 세계선수권대회를 TV로 방영한 국가도 2005년 4곳, 2003년 1곳에 불과했다. 올해 5월 현재 WTF 가맹국이 184개국인데도 말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태권도 경기가 열리는 날 황금시간대 평균 시청자 수는 998만 명으로 전체 38개 종목(올림픽 정규종목은 28개지만 IOC는 수영, 육상, 체조, 사이클 종목은 세부종목을 더 나누어 총 38개 종목에 걸쳐 통계를 산출했다) 중 22위에 그쳤다. 물론 WTF 측은 지난달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각국의 언론이 전에 없던 관심을 보였다지만 이는 베이징 올림픽을 앞둔 중국 측의 ‘분위기 띄우기’에 힘입은 바 크다.

미디어 노출빈도가 떨어지는 이유는 결국 경기가 재미없기 때문이다. “일단 점수를 앞서가는 선수는 방어 위주로 단조롭게 경기를 운영하기 때문에 박진감이 떨어진다”고 오노균 충청대 교수(스포츠외교과)는 말했다. 태권도는 공격하는 사람이 역습을 당해 점수를 잃기 쉬운 종목이다.

그래서 앞서가는 사람이 제자리에서 폴짝 폴짝 뛰면서 시간을 끌면 그만이다. ‘올림픽 프로그램 위원회’ 평가보고서도 “WTF가 태권도 경기를 보다 재미있고, TV 친화적으로 이끌려고 경기 규칙을 많이 개정하기로 했다”고 밝히면서 우회적인 압력을 넣기도 했다.

심판의 선발과 공정성도 심판대에 올랐다. 평가보고서는 태권도 승부에서 심판 판정이 중대한 영향을 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보고서는 “WTF는 일반인이 점수 제도를 쉽게 이해하고, 심판 선발과 편파판정에 어떤 의문도 갖지 않도록 확신을 줘야 한다”고 권고했다. 나아가 WTF가 자체 개혁방안을 통해 심판 판정의 공정성 확보 등 세부적인 개혁 실천 방안을 만들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여기서 말하는 WTF 자체 개혁방안은 2005년 IOC 총회를 몇 달 앞두고 발표됐다. 경기 방식에서부터 심판 선발 절차, 홍보, 마케팅 등 16개 항목에 걸친 태권도 개혁방안이다. 이 개선안은 IOC 총회 퇴출 표결이라는 급한 불을 끄려고 급조됐다는 인상을 준다.

IOC 산하 ‘올림픽 프로그램 위원회’가 종목별 평가보고서를 만들고자 올림픽 정규 종목을 관장하는 28개 국제경기연맹에 33개 항목의 질의서를 보낸 때가 2004년 8월이다. 그런데 WTF가 연맹 산하에 개혁위원회를 만든 시점은 공교롭게도 2004년 10월 말이다. 또 WTF 개혁위원회가 총회에서 개혁방안을 통과시킨 시점도 2005년 4월로, IOC가 종목별 평가보고서를 발표하기 두 달 전이었다.

결국 경기 자체의 박진감 확보와 판정의 공정성 제고는 태권도의 미래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WTF는 개혁방안을 이행한다는 의미에서 2005년 4월 스페인 마드리드 총회에서 일부 규칙을 바꿨다. 경기장 크기를 가로·세로 12m에서 10m로, 남자선수의 경기시간을 3분 3회전에서 2분 3회전으로 줄였다.

보다 압축된 시간과 좁은 공간에서 박진감 넘치는 대결을 유도하겠다는 취지였다. 경기가 무승부로 끝날 경우 심판의 우세판정으로 승자를 결정하던 방식을 연장전 서든데스(sudden death)제로 바꿔 긴장감을 더하고 편파 판정의 여지를 없앴다고 WTF는 강조한다.

하지만 아직도 충분치 않다. 손에 땀을 쥐게 하면서 경기 결과를 예측불허로 몰고 가자면 단번에 판세를 뒤집어 버리는 경기규칙이 더 많아야 한다. 그래서 WTF는 경기규칙을 추가로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예컨대 뛰어차기나 이단돌려차기(뒤후리기) 등 고난도 기술에는 추가점수를 줘서 총 3점을 준다는 말이다. 만약 상대선수가 다운될 경우 1점이 추가돼 한꺼번에 4점까지 얻게 된다. 나아가 얼굴 득점을 2점에서 3점으로 상향 조정키로 했다. 10초 이상 공격하지 않는 행위를 금지행위로 못박아 경고를 주기로 했다.

또 현행 경기규칙은 서든데스제를 도입했다지만 1회의 연장전(2분)에서도 선취득점자가 없어 승부가 나지 않으면 결국 심판이 우세를 판정토록 돼 있다. 그러나 이를 뜯어고쳐 득점이 날 때까지 2분간 연장전을 무제한 실시하도록 했다. 심판이 아닌 선수가 승부를 결정짓도록 해 자의적인 판단이 개입할 여지를 배제하려는 조치다. 태권도 승부가 점수가 아닌 심판 판정으로 결정되지 않아야 한다는 국제 스포츠계의 요청이 강하게 반영된 결과다.

WTF 개혁평가위원회 위원장인 낫 인드라파나 IOC 위원은 지난해 도입된 서든데스제를 제도적으로 보완해 심판이 행사해온 승부 결정권을 선수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의 강력한 주문이기도 하다. 로게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스위스 로잔의 IOC본부에서 낫 인드라파나 IOC 위원과 면담했다. 로게 위원장은 “선수들에게 득이 되는 방향으로 개혁작업이 완전하게 실행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했다고 인드라파나 위원은 밝혔다.

하지만 이런 개선조치들은 2년째 말만 요란할 뿐 거의 실행되지 않았다. 2006년 11월 태국 총회와 지난달 베이징에서 열린 2007년 총회에서 2년 연거푸 경기규칙 개정안에 제동이 걸렸다. 규칙개정 심판 교육이 미진하고 외국 선수들에게 아직 생소하다는 이유에서다. 박진감을 높이려는 무제한적 승부와 고난도 기술 구사가 선수의 안전을 해칠지 모른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2005년 마드리드 총회 이후 경기규칙이 거의 바뀌지 않았다”고 한국체대 정국현 교수(태권도학과)는 말했다.

특히 전자호구제를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도입하겠다던 약속이 물거품이 된 점은 매우 뼈아픈 대목이다. 전자호구란 몸에 전자센서 시스템을 장착해 일정한 파워로 정확히 가격했을 때만 점수가 올라가도록 하는 장비다.

고의와 과실에 따른 오심을 막아 심판 판정시비를 잠재울 획기적인 대안이라고 환영을 받았었다. 2005년 7월 싱가포르 IOC총회에서 태권도 잔류가 확정된 직후 조정원 WTF 총재는 상징적인 개혁 조치로 “전자호구를 도입해 판정시비를 많이 해소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그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정식 채택할 방침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3월 4일 춘천 호반체육관에서 열린 전자호구 시험용 국제태권도대회는 정확하지 않은 가격에도 점수가 인정되는 등 많은 결함을 드러냈다. 결국 기술적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 WTF는 전자호구 도입을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로 미뤘다.

IOC 올림픽 프로그램 위원회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끝나는 대로 분석작업에 들어가 2009년 코펜하겐 IOC 총회에서 또다시 28개 종목의 평가보고서를 제출하게 된다. 즉 2009년 표결은 내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태권도 인기와 흥행성적에 크게 좌우된다.

이미지 개선용 결정적 수단으로 준비해온 전자호구 도입이 무산된 만큼 이를 대체할 강력한 개혁 조치들이 더 많이 요구되는 처지다. 전형상 용인대 교수(태권도학과)는 “베이징 올림픽 전자호구 도입이 무산된 만큼 원형 경기장 도입 등 박진감을 더해 줄 규칙 개정에 더욱 힘써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달 베이징 총회에서 경기규칙 개정이 끝내 무산됨으로써 2008년 베이징에서 보다 박진감 넘치는 태권도 경기를 보려던 애호가들의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경기규칙에 따라 태권도 경기가 열리기 때문이다. “베이징 올림픽을 대비해 경기규칙을 바꿀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양진방 대한태권도협회 기획이사는 아쉬워했다.

지난 4월 방한한 북한의 장웅 IOC 위원은 “올림픽에서 태권도 퇴출 문제(올림픽 헌장에서의 퇴출이 아닌, 2016년 올림픽 프로그램 참가 여부를 의미)가 제기됐는데 그게 바로 내일모레로 닥쳤다”고 말했다.

장 위원은 “태권도 문턱에 가라테가 와 있으며,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계기로 심판문제와 흥미부진 등 심각성이 드러났다. 보다 재미있게 만드는 개선은 가능하지만, 퇴출 문제는 우리 마음대로 못한다”고 경고했다. 그러니 남북한이 힘을 합해 태권도를 올림픽 참가종목으로 남겨야 한다는 주문이다.

세계 태권도계는 남한이 주도하는 WTF와 북한이 주도하는 ITF로 나뉘어 있다. 장웅 IOC 위원은 ITF 총재이기도 하다. WTF는 경희대 총장을 지낸 조정원 총재가 이끈다. IOC는 1980년 모스크바 총회에서 WTF를 전 세계 태권도를 관장하는 유일한 국제경기연맹으로 승인했다. 또 태권도가 2000년 시드니 올림픽부터 정규종목에 포함되면서 WTF 소속 태권도 선수들만 올림픽에 참여했다.

결국 ITF 소속 태권도 선수들은 올림픽에 참여하지 못했다. 양쪽의 경기규칙과 방식도 달라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도 ITF는 참가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ITF 수장인 장웅 IOC 위원이 태권도가 올림픽 무대에서 사라질지 모른다며 WTF와 협력하겠다고 나섰다. 어려움에 처한 WTF의 처지를 활용해 ITF의 입지를 확대하겠다는 노림이다. 더구나 WTF는 요즘 단증 발급 독점과 비리로 대륙별 태권도협회의 눈총을 사왔다.

사실 올림픽 종목으로서 태권도의 지위가 흔들리면서 남북한 양쪽은 물론 IOC 내부에서도 조직 통합 문제가 제기됐다. 2005년, 2006년 2회에 걸쳐 조정원 WTF 총재, 장웅 ITF 총재,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이 한데 모여 통합 방안을 논의했다. 그 결과 WTF와 ITF 양측은 지난 3월 말 중국 베이징에서 태권도통합조정위원회를 정식 구성하고 1차 본회담을 개최했다. 그 같은 분위기를 반영해 국내에도 ITF 소속 한국태권도협회가 생겨났다.

뉴스위크 한국판은 태권도에 관한 IOC 내부의 평판을 듣고자 올림픽 프로그램 위원회 소속 IOC 위원 5명에게 e-메일을 보내 4명으로부터 답변을 받았다. 그러나 IOC 위원 4인 모두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필립 월터 콜레스(Phillip Walter COLES) 위원은 “올림픽 프로그램 위원회 회원으로서 개별 경기 종목을 언급할 수 없게 돼 있다”고 말했다. 구닐라 린드버그(Gunilla Lindberg) 위원도 2008년도 베이징 올림픽이 끝나봐야 올림픽 참가종목을 재검토하게 되므로 그때까지는 답변을 주지 못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IOC 지도부는 태권도 개혁문제를 지속적으로 주시해 왔다는 인상을 준다. 지난달 17일 베이징에서 열린 WTF 총회에 제출된 WTF 개혁평가위원회 보고서에는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의 발언이 여기저기 등장한다. WTF 개혁평가위원회 보고서는 낫 인드라파나 IOC 위원이 작성했다.

자크 로게 위원장은 인드라파나 IOC 위원에게 거듭 태권도의 개혁문제를 언급했다. 로게 위원장은 WTF 개혁의 경과를 알고 싶어 했으며, WTF와 태권도를 지속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또 태권도 개혁방안도 조언했다고 나온다. 나아가 WTF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전자호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판정시비를 더 부추길 가능성을 우려하기도 했다.

사실 올림픽 참가종목에서 한 번 퇴출되면 입지 만회가 극히 어려워진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 초대받지 못한 야구와 소프트볼이 처한 현실은 비정한 스포츠 세계의 생리를 잘 보여준다. 2005년 싱가포르 IOC 총회 투표에서 소프트볼은 찬성 52표, 반대 52표로 과반수에 1표 모자랐고, 야구는 찬성 50표, 반대 54표로 3표가 부족했다. 국제야구연맹을 비롯한 관련 경기 단체들이 재투표를 강력하게 요구하자 IOC는 회생 기회를 줬다.

그러나 재도전 결과 더 높아진 진입장벽만 확인했을 뿐이다. IOC는 지난해 2월 이탈리아 토리노 총회에서 야구와 소프트볼의 2012년 런던 올림픽 프로그램 복귀 여부를 총회 정식 의제로 다뤄야 하느냐는 문제를 표결에 부쳤다. 결론은 모두 부결. 야구는 42(찬성) 대 46(반대), 소프트볼은 42 대 47로 고배를 또 마셨다.

런던 올림픽 프로그램 진입을 위한 찬반 투표는커녕 정식의제로도 다뤄지지 못한 셈이다. 2005년 싱가포르 총회에서 1표 차이로 아깝게 탈락한 소프트볼은 프로그램 재진입이 유력시됐으나 정작 표차는 더 벌어졌다.

게다가 “올림픽 프로그램이 줄어들수록 남은 종목들에 돌아가는 올림픽 수익금 배당금이 커진다. 런던 올림픽은 베이징 올림픽보다 2개 줄어든 26개 종목이 수익금을 나눠갖는다. 이런 마당에 신규 종목 진입을 누가 달가워하겠는가”라고 WTF 관계자는 말한다.

하계올림픽국제경기연맹연합(ASOIF)은 28개 하계올림픽 경기종목을 A~E까지 5개 등급으로 나눠 수익금을 차등 배분한다. 철인3종경기와 함께 최하위인 E그룹에 속해 있던 태권도는 지난 4월 ASOIF 총회에서 D등급으로 한 단계 격상됐다.

2004년 시드니 올림픽 때는 E등급이던 태권도는 약 600만 달러의 배당금을 받았다. 내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등급 격상으로 수익금 배당액이 늘게 된다. WTF는 “향후 올림픽 종목으로서 태권도의 입지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리라 기대한다”고 반겼다.

하지만 바로 이점이 부메랑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태권도가 다른 종목을 제치고 등급이 올라간 게 아니라 나이 먹듯 그냥 때가 돼서 승급됐기 때문이다. ASOIF의 부연설명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ASOIF는 태권도와 철인3종경기의 격상으로 공백으로 남은 E등급을 2016년 올림픽 신규 진입 종목을 위해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알다시피 IOC는 하계올림픽 참가종목 상한선을 28개로 못박았다. ASOIF 말대로 신규 종목이 추가된다면 기존 종목 중 누군가는 빠져줘야 한다. 그게 태권도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유사종목인 가라테의 더욱 왕성한 스포츠 외교가 범상치 않다.


가라테의 무서운 추격

유명 스포츠 사이트 광고 공세 등 이미지 홍보에 총력

국내 태권도인들은 같은 격투기 종목인 가라테가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무섭게 부상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러다가 올림픽 무대에서 가라테가 태권도를 대신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IOC 헌장에는 같은 격투기라 해서 동시에 ‘올림픽 참가종목(Olympic Program)’이 안 된다는 규정은 없다.

형식적으로는 태권도와 가라테가 나란히 올림픽에 참가한다 해도 문제될 게 없다. 다만 가라테가 ‘올림픽 정규종목(olympic Sports)’이 되면 격투기로서 태권도의 희소성은 떨어지고 관중의 관심도 분산되는 등 불리한 점이 많다. 또 미국이나 유럽 일부에서는 태권도와 가라테를 같은 경기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고 태권도인들은 말한다. 그만큼 정체성에 혼선을 빚을 여지가 크다.

태권도와 가라테의 격돌은 어쩌면 시간문제일지도 모른다. IOC는 2002년 총회에서 올림픽 참가종목 수를 28개로 묶어버렸다. 따라서 가라테는 기존 종목이 많이 탈락해야 진입 가능성이 높아진다. 같은 격투기이자 28개 올림픽 정규종목에 가장 늦게 합류한 태권도를 표적으로 삼음 직하다.

전형상 용인대 교수는 “가라테가 특정 지위를 차지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고 말한다. 김운용 전 WTF 총재도 “1994년 IOC 파리 총회에서 태권도를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정규종목으로 채택할 때도 가라테와 같은 유사 종목의 방해가 많았다”고 회상했다.

이미 가라테는 2005년 싱가포르 IOC 총회에서 일시 퇴출된 야구와 소프트볼의 빈자리 진입을 시도했다. 수순은 이렇다. 먼저 올림픽 헌장에 규정된 올림픽 정규종목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 IOC 대부분의 의제는 IOC 위원 과반수가 참여한 총회에서 다수결로 가결된다(올림픽 헌장 규정을 바꾸려면 총회에 참석한 IOC 위원 3븐의 2 이상이 동의해야 가능하다).

올림픽 정규종목은 헌장 규정사항이므로 3분의 2 이상의 찬성표를 획득해야 한다. 하지만 가라테는 38(찬성) 대 63(반대)이라는 큰 표차로 탈락했다. 가라테 조직 역시 유럽과 일본으로 양분돼 힘을 한곳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요즘 들어 가라테는 홍보활동에 더욱 열을 올린다. 지난 3월 대만에서 열린 가라테 아시아선수권대회를 참관하고 돌아온 오노균 충청대 교수(스포츠외교과)는 “각국 가라테 회장단의 올림픽 정규종목 진입 의지가 대단했다”고 전했다. IOC와 올림픽 종목 뉴스에 정통한 전문 사이트 ‘어라운드 더 링스(ATR·www.aroundtherings.com)’는 IOC 위원을 비롯한 유력 스포츠인들이 자주 찾는다.

이 사이트 초기화면은 2014년 동계올림픽 공식 후보도시로 선정된 평창, 잘츠부르크(오스트리아), 소치(러시아)의 홍보 각축장이다. 각 후보 도시들은 막대한 광고비를 지불하며 배너 광고를 내보낸다. 그 틈새로 세계가라테연맹(WKF) 광고가 뜬다. 이 광고를 클릭하면 바로 WKF 홈페이지로 연결된다.

장웅 IOC 위원은 지난 4월 방한 당시 “가라테는 나한테도 로비하고 편지를 보낸다”고 경각심을 보였다. 문화관광부도 “가라테는 향후 올림픽 종목 진입을 위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리라 예상된다”고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서 밝혔다. 강석재 WTF 홍보부장은 “일본 기업이 뒤에 버티는 가라테는 홍보활동에 엄청난 재원을 쏟아 붓는다”고 말했다.

뉴스위크 한국판은 WKF 측에 태권도와 가라테의 경합에 관한 의견을 물었다. 필러 헤레라 WKF 총재 비서는 뉴스위크 한국판에 보내온 e-메일에서 “WKF는 가라테가 아닌 다른 스포츠 종목에 대해 어떤 견해도 밝힌 적이 없다”면서도 “가라테를 포함해 모든 스포츠 종목이 올림픽 참가종목이 될 수 있다”고 의욕을 내비쳤다.


박성현 뉴스위크 한국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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