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역사왜곡과 중국동북아공정 그리고 우린?
그대의 독설을 듣고나니 괜한 글을 올렸다는 후회감이 듭니다.
그동안 그대의 글을 읽다보니 정의감과 해박함 그리고 올바른 지도자로 희생적인 마음을 가진사람으로 생각해 왔으나 이번에는 조금 묘한 기분이 듭니다.
우리가 중국과 일본에게 침략을 당했고 굴욕적인 역사를 갖고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입니다.
태권도의 역사를 보는 관점이
일본무술의 아류로 치부한채 일체를 인정하지않는 역사와
거창한 우리 역사의 흐름속에 전통무술로 포장된 역사와
어쩔수없는 역사의 흐름속에 일본과 중국의 영향을 받았지만 자체적인 몸짓이 녹아들어 우리의 것으로 재창조된 역사의 틀중에 나는 세번째에 표를 던집니다.
지난번 글에도 말했지만 기술적인 부분의 연구와 보충은 필요하다 생각합니다만.
어차피 중국과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는 모든것을 주고받았던 사이이기에
그것을 굳이 창피하다 생각치 않습니다.
물론 굴욕적인 역사를 맞이할수 밖에 없었던 과정과 우리민족이 갖고있는 어쩔수없음에 대해 안타깝고 부끄러워지는 마음은 있습니다.
그러나 상기 띠에 관한 글에 대해 너무나 비약적인 논리로 독설을 내뿜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무도의 길을 걸으며 최영의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은 한없이 큽니다.
학창시절 영화를 통한 이소룡의 카리스마를 너무나 사랑합니다.
그러나 "무덤덤 하지만 깊이가 느껴지는 송덕기옹"
그대는 송덕기 할아버님을 뵌적이 있는지요?
좀더 강해지고 싶고 알고싶은 욕구가 강했던 20대 후반의 나이에
인왕산자락의 사직공원 황학정 궁터에서 외출하신 할아버지를 기다리며
태권도지를 제작하려고 찾아오신 한규인 큰사범님과 반나절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당시 한규인 사범님에 대해서는 잘몰랐지만 나중에 비무장지대안에서 어려운 아이들을 무상으로 지도하시는 기사를 보았고,
그분의 여제자가 장애우들에게 태권도를 지도하며 무료봉사를 한다는 기사를 접하며 마음속으로 크게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외출하고 돌아오신 할아버지의 셔츠 뒷부분이 밖으로 나와있는데도 스스로는 집어넣지 못하시는 연로하심과 수제자라고 하는 자의 툭튀어나온 아랫배를 보면서..
인간문화재,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분이 자신의 도장도 없이
드나들수도 없이 철조망이 쳐진 틈사이로 오르내리며 인왕산자락에서 10여명의 청년들을 모아놓고 지도하는 모습은 우리의 것을 이토록 하찮게 여기는 우리 모두에게 분노를 느끼지 않을수 없었으며,
할아버지의 기술중 반도 전수받지 못했다는 수제자의 말에 답답함을 금할길 없었습니다.
요즘에는 돈이 되니까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됩니다만...
그리고 몇해후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말로만 떠들어왔습니다.
행동으로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정의 로운 일에 힘을 실어주지 못했습니다.
돈되는 일이라면 어제의 동지와도 등을 돌리며 무수한 단체들이 탄생되었다가 사라지곤 합니다.
물론 대가리가 터져라 지저분한 싸움도 마다않지요.
가라데의 아류라고 수많은 독설을 내뿜으면서도 진정 가라데를 연구하고 차이점을 찾아내고
좀더 나은점을 모색하는 움직임은 보지못했습니다.
다시 돌아갑니다.
모든일에는 순서가 있다 생각합니다.
태권도는 행동철학이라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사범님들의 어깨너머로 흉내를 내왔고 정확한 원리도 모른채 지도해왔습니다.
껍데기의 형태는 있으나 알맹이가 너무나 빈약합니다.
철학적인 부분도 그렇고 동작적인 부분도 상당부분 빈약합니다.
논리를 바탕으로 정립하지 못햇기에 저마다 다른 동작들을 주장하며 다른 목소리를 냅니다.
띠에 관한 문제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분을 잘모릅니다만.. 이경명사범님과 같은 분들의 연구와 출간등에 박수를 보냅니다.
음양오행과 주역등에 문외한이지만 그런분들의 연구결과를 보며 다시한번 우리를 되돌아 볼수 있었으며
그를 토대로 한걸음 더 나아갈수 있었다 생각합니다.
우리의 존재의무 역시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ITF, 수박도, 합기도 등 오픈도복을 착용하는 단체는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모두가 일본의 영향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옛신라 화랑들이 입던 복식문화를 참고해서 소매와 옷끝단에 색을 넣는다든지
인간은 결코 완성될수 없다며 사범들이 검은띠를 매지않고 감청색의 띠를 맨다든지 하는일들은
장려해야할 일들이며 우리는 보다더 의미를 부여해 우리것을 완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한가지 부분에 얽매여 모든것을 부정한다는것은 옳지않다고 생각합니다.
한참 호기심과 욕구가 강할 때 단학의 권태훈 할아버지를 찾아 뵙고 상당 기간동안 그분의 집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다른건 몰라도 우리의 잊혀져있던 역사를 배우며 가슴속에 뭔가 꿈틀하는 희열과 가능성을 느껴봤습니다.
그대의 글을 보면서 다방면으로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만...
우리가 아직 모르는 정말 자랑스럽고 힘찬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 공부해야 합니다.
무슨 연유인지 모르나 그대역시 이역만리 타국에서 살아가고 있고 나역시 그러합니다.
떠나올때는 조국에 대한 분노도 많았고 현재도 답답한 심정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입니다.
그동안 그대의 글을 읽다보니 정의감과 해박함 그리고 올바른 지도자로 희생적인 마음을 가진사람으로 생각해 왔으나 이번에는 조금 묘한 기분이 듭니다.
우리가 중국과 일본에게 침략을 당했고 굴욕적인 역사를 갖고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입니다.
태권도의 역사를 보는 관점이
일본무술의 아류로 치부한채 일체를 인정하지않는 역사와
거창한 우리 역사의 흐름속에 전통무술로 포장된 역사와
어쩔수없는 역사의 흐름속에 일본과 중국의 영향을 받았지만 자체적인 몸짓이 녹아들어 우리의 것으로 재창조된 역사의 틀중에 나는 세번째에 표를 던집니다.
지난번 글에도 말했지만 기술적인 부분의 연구와 보충은 필요하다 생각합니다만.
어차피 중국과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는 모든것을 주고받았던 사이이기에
그것을 굳이 창피하다 생각치 않습니다.
물론 굴욕적인 역사를 맞이할수 밖에 없었던 과정과 우리민족이 갖고있는 어쩔수없음에 대해 안타깝고 부끄러워지는 마음은 있습니다.
그러나 상기 띠에 관한 글에 대해 너무나 비약적인 논리로 독설을 내뿜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무도의 길을 걸으며 최영의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은 한없이 큽니다.
학창시절 영화를 통한 이소룡의 카리스마를 너무나 사랑합니다.
그러나 "무덤덤 하지만 깊이가 느껴지는 송덕기옹"
그대는 송덕기 할아버님을 뵌적이 있는지요?
좀더 강해지고 싶고 알고싶은 욕구가 강했던 20대 후반의 나이에
인왕산자락의 사직공원 황학정 궁터에서 외출하신 할아버지를 기다리며
태권도지를 제작하려고 찾아오신 한규인 큰사범님과 반나절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당시 한규인 사범님에 대해서는 잘몰랐지만 나중에 비무장지대안에서 어려운 아이들을 무상으로 지도하시는 기사를 보았고,
그분의 여제자가 장애우들에게 태권도를 지도하며 무료봉사를 한다는 기사를 접하며 마음속으로 크게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외출하고 돌아오신 할아버지의 셔츠 뒷부분이 밖으로 나와있는데도 스스로는 집어넣지 못하시는 연로하심과 수제자라고 하는 자의 툭튀어나온 아랫배를 보면서..
인간문화재,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분이 자신의 도장도 없이
드나들수도 없이 철조망이 쳐진 틈사이로 오르내리며 인왕산자락에서 10여명의 청년들을 모아놓고 지도하는 모습은 우리의 것을 이토록 하찮게 여기는 우리 모두에게 분노를 느끼지 않을수 없었으며,
할아버지의 기술중 반도 전수받지 못했다는 수제자의 말에 답답함을 금할길 없었습니다.
요즘에는 돈이 되니까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됩니다만...
그리고 몇해후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말로만 떠들어왔습니다.
행동으로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정의 로운 일에 힘을 실어주지 못했습니다.
돈되는 일이라면 어제의 동지와도 등을 돌리며 무수한 단체들이 탄생되었다가 사라지곤 합니다.
물론 대가리가 터져라 지저분한 싸움도 마다않지요.
가라데의 아류라고 수많은 독설을 내뿜으면서도 진정 가라데를 연구하고 차이점을 찾아내고
좀더 나은점을 모색하는 움직임은 보지못했습니다.
다시 돌아갑니다.
모든일에는 순서가 있다 생각합니다.
태권도는 행동철학이라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사범님들의 어깨너머로 흉내를 내왔고 정확한 원리도 모른채 지도해왔습니다.
껍데기의 형태는 있으나 알맹이가 너무나 빈약합니다.
철학적인 부분도 그렇고 동작적인 부분도 상당부분 빈약합니다.
논리를 바탕으로 정립하지 못햇기에 저마다 다른 동작들을 주장하며 다른 목소리를 냅니다.
띠에 관한 문제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분을 잘모릅니다만.. 이경명사범님과 같은 분들의 연구와 출간등에 박수를 보냅니다.
음양오행과 주역등에 문외한이지만 그런분들의 연구결과를 보며 다시한번 우리를 되돌아 볼수 있었으며
그를 토대로 한걸음 더 나아갈수 있었다 생각합니다.
우리의 존재의무 역시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ITF, 수박도, 합기도 등 오픈도복을 착용하는 단체는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모두가 일본의 영향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옛신라 화랑들이 입던 복식문화를 참고해서 소매와 옷끝단에 색을 넣는다든지
인간은 결코 완성될수 없다며 사범들이 검은띠를 매지않고 감청색의 띠를 맨다든지 하는일들은
장려해야할 일들이며 우리는 보다더 의미를 부여해 우리것을 완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한가지 부분에 얽매여 모든것을 부정한다는것은 옳지않다고 생각합니다.
한참 호기심과 욕구가 강할 때 단학의 권태훈 할아버지를 찾아 뵙고 상당 기간동안 그분의 집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다른건 몰라도 우리의 잊혀져있던 역사를 배우며 가슴속에 뭔가 꿈틀하는 희열과 가능성을 느껴봤습니다.
그대의 글을 보면서 다방면으로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만...
우리가 아직 모르는 정말 자랑스럽고 힘찬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 공부해야 합니다.
무슨 연유인지 모르나 그대역시 이역만리 타국에서 살아가고 있고 나역시 그러합니다.
떠나올때는 조국에 대한 분노도 많았고 현재도 답답한 심정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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