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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들의 자질 문제가 아닐까요?

스포츠가 지니는 긍정적인 사회적 기능은 경기를 통한 사회적 룰의 학습에 있습니다. 규칙을 준수하고 정해진
룰에 의해 최선을 다해 경기를 치르고 결과에 대하여 깨끗한 승복을 하는 폐어플레이 정신과 스포츠맨 쉽은
현재의 경기 태권도가 지향해야 할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사회도 사회의 구조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법령이 존재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법령과 질서만 존중해도
이사회는 훨씬 안정적이 되고 범죄도 없어지겠지요. 하지만 인간이 어디 그렇습니까? 범죄도 저지르고 다소 무질서 하기도 하고...
스포츠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요? 스포츠 자체는 순수한 경기입니다. 다만 이 스포츠의 실행자인 인간의 맘이
중요한 것이지요. 결과에 치중하고 승부에 집착하는 인간의 마음이 문제이지 스포츠의 경기방식이나 룰에는
오히려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따라서 경기전문지도자들과 그 선수들에게 진정 결과와 승부보다 중요한 경기의 즐거움 그리고 폐어플레이를 통한 진정한 승부의 추구 그리고 결과에 승복하고 승자를 축하하며 패자를 격려하는 스포츠맨 쉽의 체계적인 교육과 실행이 관건이 되지 않을까요?

무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무예 그 자체는 살인의 기예에 지나지 않습니다. 태권도 검도 유도 합기도 모두 최단시간에 사람의 목숨을 끊거나 상해하는 내용으로 구성된 살인기예지요. 살인기예를 배우면서 수련이라고 부르던 수양이라고 부르던 모순아닌가요? 제 개인적인 사견이지만 활인검이라는 말이 말 그자체로는 가장 모순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물론 활인검의 정신세계와 경지를 폄하하거나 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단어자체의 의미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상하게 하는 도구인 칼로 활인의 경지에 이르려면 도대체 얼마만큼의 수양을 쌓아야 하고 기술은 어느정도가 되어야 할까요?
물론 일차적으로 정의의 검, 대의의 검을 활인검으로 볼 수 있겠고, 정신의 수양을 통해 싸움의 지경에 이르지 않고 상대를 포기시키는 덕과 포용력의 발현이 활인검이라면, 차라리 절간에 들어가 수양을 하던지, 신의 가르침을 통해 종교적 대오각성을 이루는 편이 빠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태권도를 어느정도 수련하면 특히 품새가 일정수준에 이르러 길이 보이고 손발의 효용성과 중심이동의 원리,
호흡이 몸에 익는 경지가 되어 공방의 원리를 터득하게 되면 기술을 써먹고 싶어 몸이 안달나게 됩니다. 몸에 힘이 넘치고 모든 동작이 품새의 동작처럼 보이며 당구에 재미들리면 천장에 당구대가 나타나는 듯한 현상이 보이지요.
검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느정도 검이 몸에 익어 소위 칼에 미치는 단계가 되면 이상하게 무언가를 베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이 단계를 제어하는 것이 바로 수양이 아닐까요? 그래서 훌륭한 스승님들은 각자 단전호흡이나 묵상 혹은 명상을 통해 살심을 제어하고 그야말로 활인의 도를 추구하도록 여러 방법을 제시해 주십니다. 그래서 무예 수련에 훌륭한 스승의 지도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요.

글이 길어졌지만, 스포츠나 무예나 그 자체는 수련의 목적이 뚜렷합니다. 하나는 승부 하나는 생사의 가름이지요. 하지만 그 둘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올바른 방법이 많이 있는 이상 님과 같은 훌륭한 선배님들께서 이제
현상을 논하고 이론을 위한 이론을 후학들에게 알려주시기 보다는 올바른 목적을 세우고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는 체계적인 이론과 실기를 보여주심이 어떨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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