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가 다른 무술보다 약해요?
우선 약간의 말장난으로 시작합니다.
-무예와 무도와 무술의 차이.
말그대로 무예는 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몸짓이요,
무도란 일본무술이 근대화를 겪으며 도장이란 틀에 맞추게 된 형태요,
무술이란 형식없이 싸우는 기술을 말하지요.
허나 근래에 모든 체계나 울타리들이 미디어나 사업성에 의해 뒤바뀌고 뒤틀어지게 되지요.
그렇지만 무예나 무도가 무술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부정할수없읍니다.
태극권이나 기타 우슈같은 무예가 지금 그 실전을 잃고 단지 건강보조역활이나 미디어의 눈요기쯤으로만 되어버린 사실을 창시자가 안다면 어떨까요?
오랜수련을 통해 어느경지를 꿈꾸는 무도인들에게 규칙과 서열이 없어서는 안되겠죠.
허나 결국 그 허울에 묶여 초심을 잊은채 방대해진 조직에서의 권력이나 서열로 자신을 위로하려는 사람들을 우린 쉽게 볼수있읍니다.
무술인은 단지 승리란 목적으로 수련하게되므로 자칫 연이은 승리나 쓰라린 패배앞에선 나약하고 삐뚤어져 나가버리죠. 흔히 승리만을 강조하는 스포츠에서 자주있는 일입니다.
태권도를 비롯한 대부분의 한국무술은 일본에 모태를 둔 무도입니다. 무도에선 흔히 실전성을 강조하죠.
실전성이 무너지면 무도의 근간이 무너지게 되기때문에 너도나도 다 실전 우월성을 내세웁니다. 태권도가 올림픽스포츠화 되가며 많은 변화를 맞이합니다. 발놀림을 주무기화 시키며 손 기술을 강조한 가라데와 다른길을 걷게되죠. 아시는분은 아시겠지만 60년도 이전에 수련인들은 손기술을 주무기로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허나 70년대 이후 분들은 발기술위주로 수련하셨죠. 발기술의 실전성은 원거리에서 길고 중량있는 다리를 쓴다는 잇점이 있읍니다. 특히 발놀림을 이용한 거리조정술은 타무술이 따라잡을수 없을 정도로 발전되어 왔읍니다. 다만 손기술이 쇠퇴하는 약점을 낳았지요. 허나 태권도가 손과 발 두마리의 토끼를 쫓았다면 현 발기술의 성취는 없었을것입니다. 요즘 손기술을 겨루기에 적용시키려 안달하고 있지만 이는 발기술의 퇴행을 의미합니다. 마치 단과 전공과 복수전공의 차라 이해하시면 됩니다. 복수전공이 화려하고 많은걸 아는것 같지만 단과전공보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할뿐만아니라 하나에 쏟는 정성과 나눠진 집중력은 결과를 달리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무도중에서도 합기도류의 무술은 너무 방대한 기술을 수련해야하기에 보기엔 화려하나 정작 실전성은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시범용으로 적합하죠. 실전적인 수련이란 단지 승리만을 위한 기술과 땀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무도나 무술엔 없죠. 복싱이나 무에타이 혹은 레슬링같은 스포츠가 오히려 실전성이 많죠. 옛 극진회의 최배달선생처럼 실전을 목적으로 격과 틀에 묶이지 않고 수련하는 사람들은 간간히 이곳저곳에 있읍니다. 허나 이들도 수련레벨을 높이기위해 역시 기술을 펼칠 장이 필요합니다. 현재 이런 대련의 장이 실전적이지 못합니다. 실전은 체력적인 기술보다는 정신적인 강인함이 더 요구되는 곳입니다. 수련장에서는 최고의 기량이 그곳을 벗어난곳에서는 최저가 될수있읍니다. 이는 우리 인간은 정신적인 동물이며 신체적인 강인함이 아닌 정신적인 강인함으로 이곳에 와있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해줍니다. 많은 스포츠과학에서도 이미 강한 정신력이 승리를 보장한다는 사례와 이에 따른 mental training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읍니다.
결국 강인한 정신력과 실전적인 기술을 완벽히 수련할수 있는 곳은 없읍니다. 단지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우리의 판단입니다. 실전의 90%가 땅에 넘어진다는 수치를 믿고 그렇다면 쥬짓주를 수련하고, 빠른 발놀림과 민첩성을 이용하려면 태권도를, 몸집과 맷집이 되고 붙어 싸우길 원하면 유도나 레슬링을, 보다 힘있는 펀치와 킥을 원하면 무에타이를 하고 따로 실전 경험을 쌓는것이 중요하다.
또하나 언급하고 싶은것은 국기원과 모태권도협회의 무지한 관리로 태권도가 실전에 무효용이란 말을 듣는것이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태권도 유단자가 되기위해 투자하는 시간(3년-8년)과 땀이 우리 한국인에겐 동네 도장에서 게임하며 품세만 하며 1년만 넘기면 당연히 받게되있다는 아니면 군대나 가서 품세만 외우면 유단자가 되는 협회정책과 관행에 있다. 건강체육인지 어린이놀이터인지 불분명한 정체로 너도나도 다 유단자이면서 실질적으로 기술은 커녕 그이름조차 모르는 이들이 태반이다. 왜 이렇게 무분별한 정책이 아직도 이행되는지 모르겠다. 한국무술원로들을 보면 이거 몇단 저거 몇단 합이 몇십단. 우습다.
난 이렇게 본다. 무도를 그만 둔 유단자들은 더이상 유단자가 아니다. 왕년에 이래저래 한 과거가 아닌 지금 당신은 수련을 어떻게하는가에 촛점이 맞춰줘야한다. 무릇 무도란 평생을 쏟아 갈고 닦는것인데 더이상 수련하지않는자가 어찌 감히 무도를 안다하는가. 그러니까 영국유학시절 파란띠까지 하고 수십년간 총재를 한 김운용이나 일본유학시절 가라데 검은띠를 주장해 태권도4단을 수여받고 캐나다에서 국제태권도 세계중흥을 꿰한 최홍희같은 이들이 있는것이다.
-무예와 무도와 무술의 차이.
말그대로 무예는 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몸짓이요,
무도란 일본무술이 근대화를 겪으며 도장이란 틀에 맞추게 된 형태요,
무술이란 형식없이 싸우는 기술을 말하지요.
허나 근래에 모든 체계나 울타리들이 미디어나 사업성에 의해 뒤바뀌고 뒤틀어지게 되지요.
그렇지만 무예나 무도가 무술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부정할수없읍니다.
태극권이나 기타 우슈같은 무예가 지금 그 실전을 잃고 단지 건강보조역활이나 미디어의 눈요기쯤으로만 되어버린 사실을 창시자가 안다면 어떨까요?
오랜수련을 통해 어느경지를 꿈꾸는 무도인들에게 규칙과 서열이 없어서는 안되겠죠.
허나 결국 그 허울에 묶여 초심을 잊은채 방대해진 조직에서의 권력이나 서열로 자신을 위로하려는 사람들을 우린 쉽게 볼수있읍니다.
무술인은 단지 승리란 목적으로 수련하게되므로 자칫 연이은 승리나 쓰라린 패배앞에선 나약하고 삐뚤어져 나가버리죠. 흔히 승리만을 강조하는 스포츠에서 자주있는 일입니다.
태권도를 비롯한 대부분의 한국무술은 일본에 모태를 둔 무도입니다. 무도에선 흔히 실전성을 강조하죠.
실전성이 무너지면 무도의 근간이 무너지게 되기때문에 너도나도 다 실전 우월성을 내세웁니다. 태권도가 올림픽스포츠화 되가며 많은 변화를 맞이합니다. 발놀림을 주무기화 시키며 손 기술을 강조한 가라데와 다른길을 걷게되죠. 아시는분은 아시겠지만 60년도 이전에 수련인들은 손기술을 주무기로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허나 70년대 이후 분들은 발기술위주로 수련하셨죠. 발기술의 실전성은 원거리에서 길고 중량있는 다리를 쓴다는 잇점이 있읍니다. 특히 발놀림을 이용한 거리조정술은 타무술이 따라잡을수 없을 정도로 발전되어 왔읍니다. 다만 손기술이 쇠퇴하는 약점을 낳았지요. 허나 태권도가 손과 발 두마리의 토끼를 쫓았다면 현 발기술의 성취는 없었을것입니다. 요즘 손기술을 겨루기에 적용시키려 안달하고 있지만 이는 발기술의 퇴행을 의미합니다. 마치 단과 전공과 복수전공의 차라 이해하시면 됩니다. 복수전공이 화려하고 많은걸 아는것 같지만 단과전공보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할뿐만아니라 하나에 쏟는 정성과 나눠진 집중력은 결과를 달리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무도중에서도 합기도류의 무술은 너무 방대한 기술을 수련해야하기에 보기엔 화려하나 정작 실전성은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시범용으로 적합하죠. 실전적인 수련이란 단지 승리만을 위한 기술과 땀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무도나 무술엔 없죠. 복싱이나 무에타이 혹은 레슬링같은 스포츠가 오히려 실전성이 많죠. 옛 극진회의 최배달선생처럼 실전을 목적으로 격과 틀에 묶이지 않고 수련하는 사람들은 간간히 이곳저곳에 있읍니다. 허나 이들도 수련레벨을 높이기위해 역시 기술을 펼칠 장이 필요합니다. 현재 이런 대련의 장이 실전적이지 못합니다. 실전은 체력적인 기술보다는 정신적인 강인함이 더 요구되는 곳입니다. 수련장에서는 최고의 기량이 그곳을 벗어난곳에서는 최저가 될수있읍니다. 이는 우리 인간은 정신적인 동물이며 신체적인 강인함이 아닌 정신적인 강인함으로 이곳에 와있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해줍니다. 많은 스포츠과학에서도 이미 강한 정신력이 승리를 보장한다는 사례와 이에 따른 mental training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읍니다.
결국 강인한 정신력과 실전적인 기술을 완벽히 수련할수 있는 곳은 없읍니다. 단지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우리의 판단입니다. 실전의 90%가 땅에 넘어진다는 수치를 믿고 그렇다면 쥬짓주를 수련하고, 빠른 발놀림과 민첩성을 이용하려면 태권도를, 몸집과 맷집이 되고 붙어 싸우길 원하면 유도나 레슬링을, 보다 힘있는 펀치와 킥을 원하면 무에타이를 하고 따로 실전 경험을 쌓는것이 중요하다.
또하나 언급하고 싶은것은 국기원과 모태권도협회의 무지한 관리로 태권도가 실전에 무효용이란 말을 듣는것이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태권도 유단자가 되기위해 투자하는 시간(3년-8년)과 땀이 우리 한국인에겐 동네 도장에서 게임하며 품세만 하며 1년만 넘기면 당연히 받게되있다는 아니면 군대나 가서 품세만 외우면 유단자가 되는 협회정책과 관행에 있다. 건강체육인지 어린이놀이터인지 불분명한 정체로 너도나도 다 유단자이면서 실질적으로 기술은 커녕 그이름조차 모르는 이들이 태반이다. 왜 이렇게 무분별한 정책이 아직도 이행되는지 모르겠다. 한국무술원로들을 보면 이거 몇단 저거 몇단 합이 몇십단. 우습다.
난 이렇게 본다. 무도를 그만 둔 유단자들은 더이상 유단자가 아니다. 왕년에 이래저래 한 과거가 아닌 지금 당신은 수련을 어떻게하는가에 촛점이 맞춰줘야한다. 무릇 무도란 평생을 쏟아 갈고 닦는것인데 더이상 수련하지않는자가 어찌 감히 무도를 안다하는가. 그러니까 영국유학시절 파란띠까지 하고 수십년간 총재를 한 김운용이나 일본유학시절 가라데 검은띠를 주장해 태권도4단을 수여받고 캐나다에서 국제태권도 세계중흥을 꿰한 최홍희같은 이들이 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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