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견에 대한 최홍희,황기,박철희 증언

택견은 무예인가?- 근대 이후 지금까지 이해관계를 떠나 무예라고 한 사람은 단 한명도 존재치 않는다.
무예니 민족자를 앞에 붙이고 고구려, 신라화랑을 들며 장사속으로 그러는 부류외는,,,
아주 드물게, 무예라는 개인적 기술이 있긴하나 그에 대해서도 작자가 본인 입장을 유보하고 있는데
이런경우는 무예를 업으로 삼은 이로써 최소한의 양심은 있다 할 수 있겠으나
그냥, 막연히 이해관계로 외곡한것을 사실인양 주장하고 날조하는 외에 부화뇌동하여 배껴 쓰는 일말의 학자적 양심마저 저버린 이들이 의외로 적지가 않다.
전통문화를 지켜 가는 이는 지킴이라는 말을 쓸 정도로 그 기질적 성향이 일반과 같지가 않다.
자다가도 전통! 자 들어가는 말 만 들어도 눈을 번쩍 뜨는게 이쪽 판인데,,,
쉽게 재단을 하려 드는것은 지양되어야 한다.
그 형태적 특성은 어떤것일까?,,-발로 찬다.
이게 다다.
이 물음에 지금은 고인이 되신 태권도계의 원로들의 증언을 올린다.
태권도라는 이름을 명명한 최홍희 외 당수도무덕관 황기 및 택견 기능자였던 송덕기에게 직접 배우기도 한 강덕원 창설자 박철희사범들은
최홍희- 오도관 관장, 그의 저서인 "태권도 교서"를 보면 서문에
"발만 쓰던 택견과 주로 손의 기술에만 의존하던 가라데를 종합연구하여 오늘과 같이 체중에 구애됨이 없이 남녀노소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현대적인 과학적인 무도로 발전시킨 다음, 이 무도의 성격에 알 맞고 역사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이름을 짓고자 고심하다가,,,
최홍희는 택견이 발 기술 위주의 것임을 밝히고 있다.
택견을 무도나 무예로 인식하기보다 단순한 술법, 기술로 보고 있다.
그리고 본인이 택견과 가라데등을 접목하여 현대적인 무도로 발전시켰다고 했다.
>흔히 택견의 정립을 충주 거주 신한승이라는 사람이 했다고 하나 필자는 여기에 대해서도 반박코자 한다.
충주에서 서울에 있던 송덕기라는 이를 찾아 택견을 배우고 문화재지정을 받은 신한승 이전에 이미 태권도계의 최홍희 외 황기관장이 택견을 익히고 그 기술을 정리한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목명을 택견이라 하지 않고 태권도니 화수도-당수도-수박도라 해서 그렇지 이들 두 사람이 택견이라 명칭을 명 했다면 지금도 최홍희의 태권도는 택견이고 황기의 당수도 또한 택견이지 않겠는가?
기술이 다르다고???,,,
흔히 알려져 있는 택견이란것의 품밟기는 태권도 기타 타 무도,예들의 자세 바꾸는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이유를 뭐라 하던지,,,
운동원리상의 차이점은 행위의 목적이 다를때 그것도 달라지기 마련이라,,,
일괄적으로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고 얘기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닌게다.
무릎을 굽혔다 펴는것이나 배를 들이밀던 빼던,,, 하등의 직접적 연관이 없다.
태권도의 자세, 한쪽다리를 앞으로 내고,, 왼 서기, 오른 서기나 택견의 좌품이니 우품이니 같다는 말이다.
그런 지엽적인 모습보다 그것을 통한 목적이 무엇이냐가 걸음걸이, 보법으로 나타나게 마련인데
택견이나 태권도나 같다.
외 그럴까?
궁금하지 않은가???,,,
태권도가 택견이기 때문이다.
한때 모택견단체에서 태권도를 일본 가라데 짝퉁이라고 선전을 했는데, 단체적 이해로 그런것에 불과한것은 알만한 이들은 다 안다.
그 뒤, 같은 단체, 장이,, 태권도가 이제는 택견이라고 한입으로 두말을 하기도 했다.
태권도에서 택견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지도자교육을 운운하기도 하고,,,
>첫째 주장-태권도는 택견과 다른것이다????????????????????????????????????????????????????????????????????????
이 얘기가 외 나왔겠는가?
태권도가 택견이면 지금의 각희(택견)이 제데로 서지를 못 한다.
태권도가 택견인데 누가 택견을 배우려 하겠는가,, 그냥 태권도 하면 되지
그래서 두가지가 다르다고 목이 메이도록 떠 들고 다니지 않았는가?
이걸 알면서 전혀 관계없는 수박을 끌어 들여 역사성을 높이고 가치를 인정받으려는 택견계 일부인사,어용학자들이 있으니 문제라는거다.
가짜가 진짜 노릇을 자처하고 있으니,,,
이름이 다르고 동작이 다르고 목적이 다른 종목의 역사와 명칭을 무단으로 훔쳐서 가치 있는 타 무예의 전승을 해치는것은 앞으로 용납되지 않는다.
택견은 태권도다.
태권도는 택견이다.
그러나
그 역사가 136년에 지나지 않음을 필자도 어찌 해 줄수가 없다.
명백한 사실이므로,,,
더구나 발차기 위주인 택견(각희, 축희, 척각법,,)이 어찌 손질 위주인 수박이 될 수 있겠는가?,,,
지금 택견에 수박의 손기술로 뵈는 것이 있다고 한다.
,,,
한심한 얘기이다.
단손질은 일종목의 정체를 가름하는 같다 다르다의 기준이 될수가 없다.
그 체가 어떠한지 무엇을 목적적으로 하는지에 따라 달라지기에 그렇다.
보법이란것으로 체의 구별이 가능해 진다.
역으로 말이다.
필자는 자세, 걸음거리가 같으면 같은 부류로 본다.
상기 두가지가 상이한것은 죽었다 깨어나도 같아지지 않는다.
현재 전승되는 수박은 일본의 스모, 몽골의 버흐 를 상당히 닮아 있다.
혹자는 뒤에서 이런 고자질도 하고 다닌다 한다.
수박이 우리것이 아니라고????????????????????
무식한것도 정도 나름인데,,,
수박과 시박은 동류의 것으로 그 세와 방향성이 동일하다.
아무리 우겨도 필자는 수십년에 걸친 조사,연구로 그에 대한 근거를 확보해 두고 있다.
지금도 전해진다.
고로의 노인들이 십여년전까지 재현을 하기도 했던
경북 군위군의 박시는 조선 정조때의 기록인 재물보와 그 확대편찬 된 광재물보의 시박이라는게다.
잡학사전을 쓰는 글쟁이(비하의 의도는 없다. 이해의 편의상이니 양해를 바란다) 조차
구별짓는것을
눈 가리고 아웅해서 되겟는가?
어째서 재물보에 시박을 졸교지류라 하고 다시 그 이후 광재물보에서 시박,수박을 같이 수벽이라 해야한다 정정을 해 놨을까,,,
목적성이 같은 것이기에 그렇다.
따라서 형태가 같게 나오며, 다소 다르게 보일지라도 한 배에서 나온 자식들이란 얘기이다.
재물보나 광재물보에는 탁견=武(무), 전체적인 입식격투기라는 의미임, 이것은 역시, 또한 탁견이라는 문구로 확연히 알 수가 있다.
택견에 게걸음이 있니???
서 있는 상대를 어깨로 받고 미는게 아니라 서로 같이 힘으로 부딛쳐 밀어내기가 있냔 말이다.
택견은 주지하다시피
마주한 상대와 발로 차서 넘어뜨리는것이라
재물보에서 얘기한 시박,수박=수벽이 아니라는 거다.
"1955년에는 대전에다 제3군관구를 창설하여 군대와 일반에게 태권도 붐을 이루었다-최홍희
그 해 4월 11일 사계의 조예 있는 인사와 사학가 그리고 저명인사들로 구성 된 명칭제정위원회에서 제의 된 여러가지 명칭 중 저자가 제안한 태권 두자가 만장일치로 채택되어 이때부터 당수,공수,권법,
택껸 구구각각으로 불리워 오던 명칭을 태권도라는 이름으로 통일시킨 해로 저자의 일생을 통해 가장 뜻 깊은 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최홍희가 택견을 실제 알고 있었을까?
그의 태권도 교서를 보자
최홍희가 태권도 교서에 수록한 발차기 중 비틀어 차기(사진)은 문화재로 지정 된 택견쪽에서 택견의 특이한 발질이라고 주장하는 째차기와 동일하다.
=황기는 이것을 빗차기라고 했다.
기술,동작은 최홍희, 황기,택견에서 하는것이 동일하다.
"비틀어 차기- (트위스팅 킥), 공격부위가 목표에 향하여 외곡선을 그리며 차는 것을 말함인데 주로 앞꿈치 또는 발등 그러나 무(無)사용 됨이며 또한, 신발을 신었을때는 발끝도 사용한다.
안으로 차가-택견에서 딴죽과 발등걸이,오금밟기라는것과 같다(상대의 하체를 밀거나 차서 넘어 뜨리는것)
이것말고도 허다하다.
태권도 걸어차기=택견의 낚시걸이, 덧걸이,딴죽과 같다.
황기는 1949년 5월 발행한 "화수도 교본"에서 제8장 기초법 중 28족기에서 족기기타법에도 이외 허다하나 초보자로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으므로 고만둔다라고 하며
실기를 들고 있는데
택견 모인사는 여기에 수록 된 모든 발차기는 택견(각희)의 발차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발로 표현할 수 있는게 한정되어 있으므로 택견이라 단정지을수는 없으나 몇가지로 황기가 택견의 기술을 접목했다는것은 확실히 알 수 있다며
그 예로 황기가 든 발차기에서
옆차기,두발차기(두발쌍당), 무릎치기,뛰어차기,발로 막기와 발로밀기는 택견 그대로이다.
또한 황기는 그 설명을 자신이 하는게 아니고 타인의 기술을 분석, 설명하듯하고 있는데 이건 무슨 뜻일까?
이에 대해서도 택견인사는 택견 기술을 차용하는데 있어 화수도(황기가 당수-수박도로 명칭을 바꾸기전)에 필요한것만을 발췌해서
1958년의 당수도교본에는
황기가 택견에 대해 이리 얘기하고 있다.
인사말에서 저자는 해방전부터 우리나라 독특한 무술인 택견법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모든것이 여의치 못하여 은은자중하여 오던바 하나님과 선렬들의 적덕으로 행운의 해방을 맞이하자 한없이 크고 먼 희망을 품고 이 당수도 발전에 투신하였던 것입니다.
모든점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투신한 이유는
첫째로 우리나라의 택견법과
중국의 십팔기 (국술) 오끼나와의 가라데 등에 다소나마 지식과 기술법을 알고 있었다는 점.,,,
이로써 황기가 해방전에 택견에 대해 알고 있었으며 그 기술들을 자신의 화수도, 당수도에 접목하였고
제2편 당수도의 기초지식편에서
우리나라의 독특한 택견법에다 중국의 국술법과 충승(오끼나와의 당수법) 기타 체육 발달법을 신중히 연구,,,
황기는 택견을 신중히 연구,섭위하였고 택견 기술을 차용했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 용어에 있어서 변화를 볼 수 있는데
화수도교본에서 앞차기를 당수도 교본에서는 앞차기라 하지 않고
굳이 거기다 법法자를 붙이고 있는 부분이다.
(1921년 택견을 다리를 드는 법=척각법이라 한 예가 있다. 석전, 편쌈 기사인데 택견을 /편쌈-방망이를 들고 하는 일종의 무예연습 처럼 무예로 이해하고 있다.
택견은 무예인가? 에 대해 동시대의 전문가들은 하나 같이 아니다하는데
신문에 단편적으로 기자가 쓴것을 더 신뢰할 순 없다고 본다.
당수도 교본에서는 화수도 교본의 앞차기를 발 앞으로 올리기 법이라고 했다.
옆차기=발 옆으로 올리기 법
돌려차기(두발쌍당)=돌려차기 법
쌍발차기=무릎치기법
찟밟기=빗차기법
뛰여차기=뒤차기법
거퍼차기=발로 안에서 막기법
앞으로 발 들기=발로 밖에서 막기법
>이것이 당시 서울지역에 잔존하던 택견(각희)의 기술이라는것은
황기가 같은 기술에 대해 화수도-당수도로 책을 저술하며 명칭을 작의적으로 바꾸고 있는것으로 명확 해 진다.
즉, 황기가 이 기술들을 순수하게 본인이 창작을 했던지 그렇지 않으면 이름 없는 기술, 단지 동작만을 배우고 자신이 명칭을 동작에 맞게 고쳐 쓰고 있다는 의미이다.
후자로 봄이 황기의 증언에 비추어 맞다.
황기는 택견=각희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신중하게 연구했다고도 말하고 있다.
>택견의 정립자는 신한승 이전에 최홍희, 황기라는 두 사람이 더 있는게다.
해방 직후 1945년 황기의 무덕관에 입문한 김인석은 "당시 관장이었던 황기는 족기를 많이 가르쳤다(강기석 2001, 태권도 반세기 인물과 역사)
무덕관의 기술들은 택견기술 이었고
황기의 당수도는 택견이었던 것이다.
황기가 두발쌍당이라 한 것은 택견에서 두발낭상, 두발당상이라 하고
1970년 수박도대감에서 황기는 이조말엽에 순족기만으로 되어 있는 태껸이라는것이 실존하여 현재 생존한 고령자중에는 실제로 습득한 사람도 있고 실기를 본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 태껸은 그 당시 의의 있는 도나 무예로 취급받은 일도 없고 또 받을 수도 없는 것이다.
이유로는 이 술법이 실존하였다는것은 엄연한 사실로 현재 증명할 수 있는 문제이고 가까운 과거에 있었던 술법이지만, 현재 이렇다할 문헌이나 체계나 이러한 목표가 없다.
당시 하나의 공방법에 불과한 수련으로서 한간에 유행되어 이 술법을 정신면에 치중하지 않고 술법만 배워 가지고 남용 행패만 부려 난세를 미끼로 악이용한 사실이 고령자 또는 구전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문헌상으로 하등의 기록이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어서 황기는
///이 술법도 고대로부터 내려 오는 수박기의 일종파임이 틀림없는 것이고 현재 우리들이 사도의 기술면에 있어서 특히, 족기에 있어서 다대한 교훈을 받았고 또 공로의 모체가 된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라고 하나
당시 택견이라는 술법이
문헌상으로 하등의 기록이 없다!!!!!
가까운 시기에 존재 했으나 하나의 공방법에 불과한 수련으로서,,,
도나 무예로 취급받은 일도 없고 또 받을 수도 없는 것이다.
>라고 하지 않았는가?,,,
황기가
이 술법도 고대로부터 내려 오는 수박기의 일종파임이 틀림없는 것이고 >>>란 말은
수박을 일반명사-격투기를 지칭, 로 보고 거기에 포함이 된다고 한것에 불과한거다.
이걸 가지고 안자산의 조선무사영웅전에 나오듯, 택견이 수박이니 유술의 일종이니 이래선 참으로 곤란하다 하겠다.
필자는 무릇 객관적으로 보자는게다.
택견이 뭔지, 수박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그 계보는?,,,
문화재로 지정 된 택견계보의 90프로는 객관성이 결여 된것으로 필자가 문화재청에 얘기한것처럼 날조 된 것이다.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그 증거를 대면 된다.
송덕기 외,,, 아무도 없다.
문화재로 지정된 택견의 기술체계가 문화재보호법에서 요구하듯, 원형의 것인지 개인적인 창작이 어느정도 가미 된것인지,,,
여기에 따라 문화재로써의 가치가 있다 없다가 결정된다.
창작한것은 원형이 아닌 새로이 시행 된 무형유산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에서 개념 짓듯, 전형이란게고 그 이전 문화재보호법상 지정 된 택견은 당시 지정되어선 안될것이 지정 된 거라는 말이다.
잘못 지정되어 30년 넘게 국고를 지원받고 국민혈세를 가져다 쓰는걸 당연하게 생각한것이 이러한 이해가 결여 된 비 무예전문가들로 얼렁뚱땅 문화재 지정을 받았다는 얘기인게다.
필자가 얼렁뚱땅이라 하니 기분 나쁘게 생각할 이가 있겠으나 사실이 얼러뚱땅 지정된걸 어쩌겠는가?
택견이 지정될 때 최초의 조사자가 택견은 문화재로 지정가치가 없다고 했으나 그 뒤 초대택견보유자 신한승의 친구인 오장환이라는 모대학교수가 조사에 참여하고 지정이 되었다.
친구가 조사, 연구자로 문화재위원 이었다는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게다.
필자는 택견의 문화재 가치에 대한 재조사를 요구하고 있고 검증이 필요하다는 공론화를 진행 중이다.
상기와 같은 이유로 지정 된 택견은 과연 문화재로 가치가 있는가?
타종목의 역사를 외곡해서 배껴 쓰는것으로 인정받은 유네스코 대표목록이 진정성이 있는것인가 하는 얘기이다.
황기는 1927년 한국 고유무술 수박기에 입문이라고 그의 수박도대감에 약력으로 올려 두고 있는데
수박기라는 사료는 문헌에 나오지 않는다.
이 얘기를 신뢰하기 위해선 황기가 수박기를 배웠다고 하는것에 대한 증명을 해야하는데
아직까지는 그런것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황기의 화수도-당수도-수박도도 택견과 같은 부류의 것임은 그 운동원리와 세부적인 내용으로 확실히 알수가 있다.
황기의 당수도도 지금의 각희/택견과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일반명사가 아닌 고유명사로써, 최홍희의 태권도는 택견이고 황기의 수박도도 지금의 택견과 같다.
중앙기독교청년회(YMCA) 권법부 출신으로써 강덕원 창설자인 박철희도 그의 파사권법에서 아래와 같이 밝히고 있다.
일제 36년간에는 다만 택견이라는 이름으로 국내 수개처에서만 수련하다 해외로 유학했던 청년들이 귀국함에 따라 일본의 공수권법과 중국의 국술권법을 도입하여
택견과 아울러,, 오늘에 이르른것이다.
>태권도는 택견이다.
역사는 136년에 지나지 않는다.
문헌에는 발로 차서 상대를 넘어뜨리는것, 각희,축희 라고 했다.
태권도, 수박도(화수도,당수도)의 무예성은 가라데, 중국권법에서 온것이고 택견의 기술과 바탕이 차용 된 것이다.
일본 가라데와 움직임이 다른게 그 증거이고
이종우 국기원부원장이 증언 한것처럼 태권도 대회를 가라데와 다르게 하려다보니
손이 아닌 발로 차서 하는 것으로 경기룰을 정했었다.
>이미 태권도에 택견의 바탕과 기술이 접해져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라 본다.
추측이 아닌 최홍희, 황기가 증언을 한거다.
태권도(수박도,화수도)에 택견을 접목 했노라고,,,
박철희사범 증언
태권도에는 우리나라의 전통적 발차기가 포함되어 있다. -택견은 예나 지금이나 발차기로 한다.
태권도에 영향을 준 발을 사용하는 -필자가 위에서 말했듯 택견은 발을 사용하는 체기임을 박철희사범도 인정하고 있다.
우리 전통무예엔 대개 택견이라고 할 수 있으나 -택견이 전통무예라는것은 막연한 주장에 불과하다.
택견이 전통무예라 하기 위해선 그리고 그것을 우리가 인정할 수 있기 위해선 택견의 발생목적이 무예에 있어야 한다.
민속놀이, 경기,풍속이 발생목적이었다면 결코 지금의 택견은 무예가 될 수 없다.
젓가락으로 사람 눈을 찌를수도 있지만 젓가락을 무기라고 할 순 없지 않겠는가?
실제 그것이 택견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박철희 사범이 태권도에 영향을 준 발차기가 택견에서 왔다고 한 부분에 대한 것이다-박철희 이전 최홍희, 황기의 교본을 박철희사범이 모를리 없었을 것이고 그 기술들은 나중에 박철희가 송덕기에게 택견=각희를 직접 배우고 알게된다.
그런데
실제 그것이 택견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박철희는 송덕기의 기술을 배운 이이나 그 이전 택견에 대한 근거자료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보니
일방적 주장-송덕기, 최홍희, 황기의 것을 유보하고 있는게다.
택견 너는 뭐니?
136년 역사로 고려무인을 들기도 하고 고구려벽화를 들먹이고 신라화랑들이 했다하고
문제에 대해 적시하지 않는것은 타인의 학자적 양심을 들기 전, 무예인으로써 또, 연구자로써 할 일이 아니다.
필자는 언론인이기도 하다.
거짓은 거짓임을 얘기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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