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화,이용복씨에 고함

현 택견보유자 정경화씨 그리고 대한택견 이용복씨에 고함.
무도인으로 한판 붙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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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상대에 결정권을 드림.
장소/ 공개 된 곳, 경사가 지거나 편평하거나 문제삼지 않음.
룰/ 맨손무예를 하는 이로써 도구(흉기 등) 지참하지 않고
공정하게 몸으로 승부해서 한편이 투쟁의 의지가 꺽일때 까지
상기 승부의 결과로
필자는 사단법인 대한수박협회의 법인설립을 취소 시킬것이며
정경화씨의 경우 문화재보유자 자리를 내어 놓으시기 바람.
이용복시는 대한택견 관련 그 어떤 영향력도 행사하지 않아야 하며
단증 발급권등 현실적 이익을 타인에게 넘기고 무도계 은퇴를 해야 함.
필자도 물론, 수박관련 후학 지도와 최근, 중국지부에 들어 간 금전손해를 보고 연길사무실까지 간판을 내릴것임.
모든것을 일체 작파,,,
승부란 공정해야 할게다.
필자 나이가 40대 후반이라 상기 두분의 경우 60이라 안다.
필자가 다리를 쓰지 않겠다.
아는이는 알겠지만 필자도 80년 후반 부산에서 태권도 최연소 4단 승단을 한 이로써
사회에 나와 처음 돈을 벌어 본게 태권도 사범으로서이다.
당시 18만원 받고 했었다.
태권도로는 73인지? 74학번인지 헷갈린다.
무력은 기간으로 40년이 넘었고 실제 수련은 20여년 된다.
단체장이고 사회적인 인지도도 적지 않다.
전통무예를 한다고 전 재산을 가져다 바쳤고 남은것은 삭월세 방 하나다.
무예계에 헌신한 바가 없지 않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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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면 상대로써 가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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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태릉선수촌에서 선수들 트레이너를 할 때 을지병원에 입원 해 계시던 고 박치기왕 김일 선생의 책을 쓰려 찾아 뵌 일이 있다.
두번째 방문 때 였던것 같다. 대뜸 하시는 말씀이
"송선생과 관계를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였는지 좋겠습니까?)인지 불확실함.
김일선생께서는 30대의 필자에게 존대를 하셨고, 정중히 그리고 한치의 틀어짐도 없이 꼿꼿한 자세로 그리 물으셨다.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라고 했었다.
그러나
필자가 프로레슬링을 한 이가 아니기에 외문으로 받아주십시요라고 부탁을 드렸고
잠시 뒤 승락을 하셨다.
필자는 수박관련 기능자분들께 사사받은 외 김일선생님의 제자이기도 하다.
장훈인가? 왕정치인가,,, 예를 들며 다리를 들었다 놓으며 머리로 받는, 박치기를 신이 나서 가르쳐 주시던 모습이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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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선생께서 고 최영의 선생 일화를 들려 주시기도 했다.
작고한 역도산관련,,,
일본 모 언론에 최영의(존칭생략)가 역도산(존칭생략)과의 비화라며
어느 나이트클럽에서 최영의를 본 역도산이 노래하던 마이크 대를 잡고 칠듯이? 했고
거기에 실망한 최영의가 대결을 접었다는
(이 예로 기억이 된다. 아닌가?,,,
지금 생각 해 보니 무슨 전갈인가? 하는 예명으로 프로레슬링을 하던 이인데 역도산이 졌고 그걸 최영의가 이겼다,,, 이렇게 비교를 해서 언론에 알렸고 거기에 격분한 김일선생께서 붙자고 하셨던것 같다.
미국에서 프로레슬링 챔피언에 오른 김일(존칭생략)이 일본에 돌아 와 그 얘기를 듣고 분에 못 이겨
일본신문인 마이니치에 최영의에게 대결장을 냈던게다.
김일선생 말씀으로는 들리는 바로 최영의가
"김일군이 외 그러지? 라고 했다하며
오야마(김일선생께선 최영의를 이리 불렀다) 제자들이 자기를 죽인다고 전화를 하고 협박을 일 삼았다고 한다.
가라데는 사범들이 직업으로 먹고 사는것이라 프로레슬링과 다르다는 예를 들기도 했었다.
(최영의관련 들은 얘기를 옮긴 것으로 혹여, 고인의 명예를 회손해서는 아니되겠다.
그래도 오야마나 긴따로나 리키도잔이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우리 모두의 우상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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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선생께서 필자를 제자로 받아주신게 지금도 감격스럽다.
동경하던 분의 제자라니,,,
십여년전에 중국 압록강변을 끼고 북한을 바라보며 가슴이 마냥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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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도 없이
필자는 그냥 이런 이일 뿐이다.
명분은 이러하다.
정경화씨는(선생등 존칭생략함) 필자가 2007년 문화재청에 문화유산 현황조사시 추천서를 쓰 주신 분이다.
그 이후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했으며 썩어 빠진 곳과 비교하건대 이런 분도 있구나 감동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참 지나
충주 택견전수관을 들를 일이 있었는데
그 때 사무실로 들어 가 앉아 있는 정경화씨에게 필자가 큰절을 하여 보답을 했었다.
필자가 절을 하려하자 정경화씨가 일어나며 만류를 했으나 필자가 손으로 그냥 앉아 계시라 한 뒤 큰 절을 바닥에 엎드려 한게다.
정경화씨는 당시 소파에서 허리를 숙여 필자에게 반절로 화답을 했다.
이게 무예를 하는 맛이고 긍지 아니련가?,,,
뒤에서 타 종목을 비방하고 문화재청과 통한다는 이유로 수박의 지정 자체를 그리고 가치절하를, 어른을 모욕하고 명예를 회손한다면 어찌 후학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자격이 될손가.
정경화씨가 그리 했다는 확증은 없다.
그러나
충주무술박물관에 필자의 부친 사진을 걸어 놓고 수박을 "현대에 복원한?",,, 것이라고 어린 학생들이 드나드는 곳에까지 그런 몹쓸 짓을 한 바가 있고
조선일보에서 수박 특집기사를 실으려 기획을 하다 무산된 적이 있는데
필자가 이유를 물으니
선임기자가 충주쪽 문화재보유자측에 수박에 대한 의견을 물었고
후배기자가 필자에게 한다는 얘기가
"택견에서 알면 난리가 나요??? 그러는게 아닌가.
대체 뭔 얘기를 하고 기자를 겁박을 했기에 다 되어 있던 기획기사가 무산이 되었을까 싶다.
문화재 택견과 친분이 있는 일부가 연구위원으로 참여하여 전통무예진흥법관련 문체부 조사발표에 수박을 전승이 아닌 복원이라고 일방적으로 가치절하하여 그 이후 수박의 대 국가적, 대 국민적 인지를 그릇되게 하여 민족무예 수박의, 전통문화의 일부를 심각하게 회손 시킨게다.
더 예를 들 수 있으나 개인적인 감정으로 가기에 자제를 한다.
(모 검도회 회장께서 수박 논문을 쓰려고 할 때 정경화씨가 직접 논문을 쓰지 마라고 수차 친분을 내 세워 얘기 한 적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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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혼동하지 않을까?
저런 분도 있구나하고,,, 추천서를 쓰 주신 외 논문을 쓰지 마라고도 하고???,,
확인이 필요하다.
이용복씨의 경우 말할 필요도 없다.
미루나무라는 아디는 대한택견사무국 아디임은 아는 사람들이 다 아는거다.
필자의 부친을 사기꾼이라고 공공연하게 모욕과 명예를 심각하게 회손 한 일이 있으며
수박이라 쓰지 못 하게 하겠다고?,,,
고소를 하겠다.
준비가 다 되 있다.
총사님과 얘기가 됬다???,,,
겁박과 공갈을 치기도 한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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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확인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택견의 문화재 지정은 당연한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그 역사와 계보, 기술적 전승이 충족되었던가?
그 때문에 문화재로 지정이 되었는가?,,,
다른 정치적인 이유 때문인가,,,
문화재청이나 생체, 대한체육회에서 지원하는 금전은 국민 혈세다. 혈세,,,
필자가 노동을 해서 번 돈이기도 하다는게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혈세를 받아 성장을 하는 입장에 타종목과 기능자를 매도하고 그렇게까지 몹쓸짓을 해야 겠는가 말이다.
택견 내부에서도 현재 지정되어 있는 문화재 택견의 경우 원형과의 괴리가 너무 심하다하여 재 검증, 재 지정을 요구하고 있는게다.
유네스코에는 택견이 수박이라하여 고려시대까지 역사를 소급 시키고 있으며 군사무술이라고 한다?
택견이 군사무술이라?,,,
개인적인 의견이야 무슨 얘길 못 할까만은 국가기관인 문화재청이 앞장 서 역사외곡을 자행한 것으로 일본의 역사외곡을 대 놓고 얘기할 수나 있겠는가?,,,
국내, 자국민과 자국의 문화에 대해서도 외곡을 해 대는데,,,
(필자는 무예인이자 정부 등록 된 신문사의 대표로써 언론인이기도 하다.
앞으로 부당한 힘으로 필자 두팔을 붙들순 있겠으나 필자 입을 막을 수단은 존재치 않을게다)
우문이긴하나 필자가 주먹 쓰는 무인이고 또 이곳이 그런 이들이 찾는(곡해는 사양한다) 곳이니 한마디 덧 붙이겠다.
주먹 안 쓰 본 이가 어디에 있나?,,,
필자도 고등학교떄 문제아 아닌 문제아로 자퇴를 한 일이 있고 다시 복학하여 2년 정도 더 다녔다(그 때 부모 소원이 고등학교 졸업이었었다)
필자가 다닌 학교는 부산에 있는 해양고등학교라는 곳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으나 80년대까지만 해도 해양고등학교 하면 부산에서 알아주던 곳이다.
배를 타는 학교니,,,
3학년 되기전 반수는 원양어선을 타고 나간다.
갈데 없는 넘들이 기어 들어 오는,,,
나이도 천차만별이고,,, 필자보다 5,6섯살 많은 이도 한 학급에 있었다.
필자가 입학하던 날이다. 전교생이 모인 교장도, 선생들도,,,
필자가 누구를 주먹으로 쳤고 돌을 들기에 필자도 같이 들었었다.
몇몇이 팔을 잡아 뜯어 말렸고
피를 흘리는 상대와 샤워실에 가서 또 한판 뜬게다.
필자가 부산 해양고등학교 32기 통이다.
통이란 지금 언어로 일진이라는거다.
게다가 필자는 야간을 다녔다.
폼으로 가방 들고 학교가서 건들데다가 돌아 올 때쯤이면 해가 저물어 저녁이 된다.
길에서 담배 꼬나 물고 소주병 벽에다 쳐 가며 그리 퇴근을 2년 반동안 했다.
송도 상업고등학교도 짠한곳이다.
한 날은 부산 자갈치께에서 두 학교 2백여명이 단체로 패싸움을 했고
거기에 필자도 주동자 였다.
이건 당시 티비에 뉴스로 나오기도 한 사회문제였고,,,
학교 다닐때는 전국체전 나가는 레슬링 선수하던 이를 불러다 애들 둘러싸게 하고 중간에 꿇린 뒤에 각목으로 두들겨 패기도 했고
선생 없을 때는 교실에서 대병 깨기도 예사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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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문제로 병이 들어 십여년 힘들게 살다가 그나마 필자가 해 봄직한 것을 하건만
누가 댁들한테 뭘 달라고 한 일이 있는가?
젊은 날을 바쳐 전통문화의 일부인 수박을 정립하는게 간단한게 아니다.
그거
알 정도는 되지 않는가?
뒤에서, 대 놓고 사기꾼이니 고소를 하니 얘기가 다 되 있다느니,,,
그게 무도인의 자세는 아니라 본다.
너무 비교가 되지 않는가? 김일선생과,,,
적어도 한 단체의 수장이라면 그리해서는 아니될 일 인게다.
뒤에서 폭행을 사주한건 누구지?,,,
한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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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이 길었다.
상기 두분은 필자의 대결요구에 응하시기 요청한다.
필자는 나이 50줄에 가지고 있는건 수박 정립이라는 자긍심 하나 밖에 없다.
다 내어 놓으니,,,
두분도 동등하게 자리에 연연치 말고 문화재 보유자, 대한택견 관련 영향력을 내어 놓고
한판 붙읍시다.
사단법인 대한수박협회, 수박보존회장
송 준 호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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