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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분석(2))1920년대 수박,김원보 선생,영상 캡쳐 설명

김원보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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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보 선생)조선 최초 수박 영상(1920년대),독립운동가 추정,기록유산,논문 등재,교보문고 출판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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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aMWMfkh939M?si=tBQ4Pn3LEWNnnt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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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1920년대 수박! 영상,독립운동가 김원보 선생 추정, 조선총독부 지원 국책 교육영화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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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ookas.com/discussion?postId=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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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수정, 보충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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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수박 영상이 일제강점기 이규설 감독의 현존 조선 최초 무성영화에서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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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이 영화를 볼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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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목이 근로의 끝에는 가난이 없다,로써 당시 일제가 조선인들을 계몽하고자 제작했다는 한국영상자료원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김원보 선생(1897년 출생, 독립운동가 추정)의 격투모습을 본것은 무엇에 끌리듯이 영상을 클릭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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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언은 차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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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보 선생의 동작, 기술 및 몸 움직임 등은 필자가 해당 영상을 수차 반복해서 보고 영상을 캡쳐해가면서도 1920년대에 이렇게나 숙련 된 분이 계셨구나 하는 감탄을 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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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의견에 동조해주십사 하는것이 아니므로 각자 생각하되 영상을 대충 보고 무슨 막싸움이니? 개싸움이니? 하는것은 참으로 어렵게 이 싯점 우리들에게 발견 된 일제강점기 조선 전래 수박, 태권도의 원류로써 기예능적, 학술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그리고 그 기능자로 확인되는 김원보 선생에 대한 모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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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태권도 사범 출신이기도 하며 일제강점기 쇼토칸 영향을 받은 태권도가 역사 관련 고구려 운운 하는 작금에 우리 전통 수박과 중국 남부 복건성의 권법이 유사한 부분이 적지 않다는 것을 추가해서 일러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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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설 감독은 총 18분 영화에서 1분이나 격투에 분량을 할애했다.

즉, 비중 있는 장면이라는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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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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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확인 할 수 있지만 김원보 선생이 박순봉(이분은 1970년대까지도 활발한 영화계 참여를 하셨다.

동작은 시키는데로 하는것이라 숙련도는 볼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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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떼밀기를 해서 넘어졌다가 완력으로 밀면서 일어나고 그 다음 동작으로 상대방이 손으로 치려고 할때 그냥, 자신의 우측방향으로 멱살께를 잡아채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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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뒷걸음 치면서 거리를 확보하는데 이때, 영화 앵글(필자가 영화 언어에 문외한이므로 이해를 구함)에서 벗어난다.

박순봉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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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설 감독이 일제 국책 사업의 일환인 계몽(교육)영화에서 이렇게 서툴게?

연출을 할 분이 아니라는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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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설 감독은 민족영화라 일컫는 아리랑을 감독한 춘사 나운규와 조선 최초 설립된 영화사인 부산키네마주식회사에서부터 같이 동거동락을 했던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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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이규설 감독이 농중조를 감독 했고 같은 해 나운규가 또 아리랑을 감독했었다.

아리랑에는 이규설이 주인공의 아버지역으로도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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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이규설의 한국 영화 초기 위치를 보건데 영상에서 김원보와 박순봉 두사람이 영화 앵글을 벗어난것을 인지 하지 못했으리라 볼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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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중후반에도 조선에 서양식 활극영화나 사무라이 영화 등이 보급됐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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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가라테도가 조선에 들어 오기 전이나 서양식 복싱 또한 모르지 않았을 이규설 감독이 그와는 전혀 같지 않은 격투모습을 1분이나 되는 짧지않은 시간동안 김원보의 움직임을 따라가면서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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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 이어서 김원보 선생 동작 분석 설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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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 박순봉 우측: 김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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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 오른손을 들어 내려친다.

김이 걸음걸이로 거리조절하면서 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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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 헛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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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에서 김의 자세 그중에서 손의 위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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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팔굽을 굽혀 자기 몸쪽으로 들고 있는데 오른손은 그렇지가 않다.

즉, 뒷손은 안면과 명치 등을 보호하기 위해서 복싱의 가드처럼 해 두고 앞손으로 대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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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 앞손과 뒷손을 구분해서 쓰는것은 영상에서 여럿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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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 헛치고도 재차 왼팔을 들어 치려고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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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 자신의 좌측으로 왼발을 내디디며 무릎을 굽히고 상체를 옆으로 기울여 회피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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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보 선생이 상대를 끝까지 보고 있다는것(상대 움직임 주시)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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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 박순봉의 타격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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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피하는것 뿐 아니라 그의 우측 어깨가 회피하는 순간 가드격으로 상대방 쪽을 향한체 들리고 오른 팔굽을 굽혀서 팔로 거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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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사, 서양식 복싱을 보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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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 삼대천재로 일컫던 최남선은 <조선상식풍속>에서 전통 수박= 작금의 복싱에 가깝다! 라고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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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봉은 전문 배우다.

시키는데로 동작을 하는 것이기에 형태적인것만 보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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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김원보의 경우 상당한 숙련도가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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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보는 (존칭 생략) 이 영화 이후 행적이 묘연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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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분 희극에 같은 이름이 한번 나타나긴 하지만 동일 인물 여부는 알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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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설 감독이 김원보를 격투장면 촬영을 위해서 전문 배우가 아닌 이를 섭외 했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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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보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었을까? 하는 궁금함이 생기는데 김원보 선생은 1919년 만세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황해도 출신 김원보와 나이대가 딱 들어 맞는 분으로 전문배우가 아닌 이로써 격투장면이 아닌 영상중 몇몇 곳에서도 얼핏 보여지는것은 1920년대 구한말, 힘 깨나 썼던 장사로도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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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조선의 군대를 해산 시킨것이 1907년이다. 김원보 선생 나이를 1897년으로 볼때 그의 나이 10세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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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군대에서 무관들, 민간의 개성상인패, 황해도, 평안도 등 보부상, 주먹패들이 했었던 전통 수박을 직접 배우는것이 시기적, 지역적으로도 어렵지 않았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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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캡쳐가 안됐는데 김원보가 박의 왼손을 자신의 오른손으로 쳐내고 이어서 타격을 하기 위해 드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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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손으로 연이어서 막기에 이어서 공격 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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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 박의 뒤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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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 목뒷편에는 급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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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골 바로 아래는 아문혈이라고 하는 혈이 있는데 쎄게치면 벙어리가 된다는 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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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뒷목부위를 강하게 얻어 맞게되면 눈 앞이 노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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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오래전에 경험한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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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보 선생이 상당한 숙련자로 여겨지는 이유는 적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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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 한가지를 얘기하자면 김이 상대방 공격을 회피, 막거나 피한다음 되받아칠때 상대방의 측면에서 또는 뒤편에 위치한체로 한다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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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한번 더 확인을 해 보자!




김이 박을 가격한 다음, 양팔을 아래로 내려서 뒷걸음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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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가 서로 정반대가 되고 있는데 이런 장면이 여러번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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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작고하신 어른들께 우리 전통 수박을 배우고 자료를 수십년간 채집하고 학술연구물과 단행본, 미국 아마존에서 영문판으로도 출판한 것이 적지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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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보의 동작과 움직임을 통해서 그동안 놎치고 있었던것을 짚게 되는 계기가 되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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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수박에서 특이한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게걸음을 하는 연유다.




김이 뒷걸음 치고 있다.




한걸음 더 뒷걸음 쳐서 거리를 벌리고 있다.




박이 쫏아 가면서 오른팔을 들어 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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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 자세를 고쳐 잡으며 좌측으로 무게중심을 이동해서 거리조절 하는 모습이다.




박이 또 헛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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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보가 타격 거리내에서 상대 공격을 피하고




오른 손으로 또 상대방 뒷목, 등부위를 가격하고 있다.


필자가 영상을 느리게(슬로우) 재생하면서까지 김원보의 오른팔이 완전히 들린 상태를 캡쳐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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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이 순간적이라 캡쳐가 안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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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익어 있지않은 경우 이렇게 하지를 못한다.




이번에도 박이 등을 김원보에게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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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 시선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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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봉의 뒤를 주시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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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구식군대에서 병장기, 검이나 창 같은것을 들고 이 격투를 했다면 박은 김에게 여러번 죽을 운명인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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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김원보가 보여주는 움직임 중에 상대방 측면이나 뒷편으로 회피, 가격 가격후 위치하는것은 특이한 것으로 일반적인게 아니다.




다시 반대 위치에서 서로 마주하고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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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 자세를 낮추고 김도 무릎을 굽혀서 응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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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 왼손과 오른손을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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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은 복싱 가드식으로 안면과 명치께를 보호하면서 오른 손으로 대처한다(오른손이 앞손이다)




김이 무릎을 다소 펴면서 몸을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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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격 거리 안이지만 여유를 보이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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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동작을 보자!




박이 왼팔을 들려고 할때 김이 응하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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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쪽으로 가깝게 접근하고 있다.




김의 오른 다리가 박쪽으로 더 깊게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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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당연히 김의 몸통과 팔도 함께 박에게 근접해진다.




박이 김을 치려고 왼손을 앞으로 내밀며 오른팔을 들려할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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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 근접해서 자신의 뒷손인 왼손으로 박의 왼팔을 붙잡아 당기는거다.




김이 박의 앞에 나와 있는 왼팔을 잡았다.




김이 박의 팔(손목부위)을 잡아서 사진상으로 볼때 김의 좌측으로 또 상방향으로 쳐드는것이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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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사진에서 이유를 알수가 있다.




김이 박을 잡아끌어 (들었다가 내리며) 들때 박이 오른손 타격을 못하게 한 다음 이어지는 동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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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 잡은 팔을 위에서 아랫방향으로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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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 왼팔이 잡힌체 김의 좌측으로 끌어져 등을 보이고 대응을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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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 왼팔을 내리고 오른팔은 드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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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 오른 손으로 박의 뒷통수(뒷목) 부위를 가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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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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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으로는 타격 내지 밀치는것으로도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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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상은 이규설 감독이 촬영한 1920년대 것으로 일제가 지원을 해서 제작 되었던 교육영화, 조선인들을 계몽할 목적(일본 입장에서)의 현존 조선 최초 무성영화에 포함되어 있는것으로 실제 치고 받는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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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격 기타 완화해서 하고 있다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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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주: 무성영화도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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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이 당연히 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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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연출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격투 요소, 태권도면 태권도, 합기도면 합기도 동작과 숙련된 인물이 그 역을 맡아해야 한다는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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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설 감독이 이러한 이유로 김원보 선생을 섭외했을 것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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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김원보 선생은 박순봉과 달리 전문 배우가 아니란것이 이 이후 영화계에서 행적이 묘연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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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정때 이규설 감독은 민족영화로 일컬어지는 아리랑을 감독했던 춘사 나운규 감독과 함께 조선 최초 영화사인 부산 소재 키네마주식회사에서부터 같이 동거동락을 하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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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같은 회사에서 이규설은 농중조, 나운규는 아리랑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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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보 선생이 전문 배우 였다면 아니, 배우로써 직업을 유지하려고 했다면 이규설이나 나운규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는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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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회가 당시까지만 해도 유교적 분위기하에 영화배우를 딴따라라고도 하는 얘기들을 했지만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것 역시 사실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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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보는 이규설 감독의 현존 조선 최초 무성영화 한편에 그의 이름과 1920년대의 전통 수박을 생생하게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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