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의 역사<아래, 김용옥 비판 (14)글에 대한 참고자료>

아래, 김용옥 비판 글에 대한 참고자료로 씨름의 역사를 간단히 정리한 내용입니다.
씨름과 태권도와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하여 아래 참고자료를 근거로한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우리 민족의 조상은 기원전 3000년~2000년 무렵 신석기 시대로부터 시작되는데 기원전 2333년 단군조선부터 삼국시대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부족국가 시대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씨름에 대한 자취는 “치우희” 라는 씨름의 명칭이다.
중국의 “25史”와 우리나라 “한단고기”중 “삼성기”상ㆍ하 편에 보면 치우천왕에 관한 내용이 있는데 전설적인 군신이며 무신인 그의 이름을 딴 것으로 여겨진다.
이후, 중국의 “후한서”와 우리나라의 “조선상고사”에 씨름에 관한 명칭 “각저희”와 “씰흠”을 사용하며 씨름에 관한 일화를 기록하고 있다.
고구려는 삼국시대 중 유일하게 벽화에서 씨름의 발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고구려의 옛 도읍지인 만주 통화성에 있는 각저총의 벽화와, 장천 1호 분의 벽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발견된 이 두 벽화만을 볼 때도 고구려인들의 생활에서 씨름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를 알 수 있다.
신라는 “삼국사기”열전 중 김유신의 대목에 유신과 춘추공이 씨름을 하다가 옷고름이 떨어졌다는 기록이 발견된 정도이고, 백제는 백제의 씨름 방식이 일본으로 전파 되었다는 것이 일본과 양국의 일반적인 학설이다.
삼국시대는 앞으로 더욱 많은 역사적인 자료를 찾아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다.
고려시대의 씨름은 15세기 조선 세종 때 편찬된 “고려사”에 그 기록이 남아있다. 특히 충숙왕(1330년)과 충혜왕(1343년)시대에는 상ㆍ하의 예가 없을 정도로 왕을 위시한 신하 등 용사가 씨름을 즐겼는데 이때는 원나라의 지배아래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었으므로 씨름을 통하여 민족 자주성 회복의 염원을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 초.중기의 씨름에 관한 문헌상의 자료로는 “조선왕조실록”에서 다소 찾아 볼 수 있고,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도 군사들로 하여금 씨름을 겨루게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조선 후기에는 “송경지”, “중국세시기”, “경도잡지”, “해동죽지”등의 문헌 중에 씨름에 관하여 많이 서술되고 있다. 또한 그림으로도 몇 점 남아 있는데 단원의 풍속도, 기산의 풍속화, 유숙의 대쾌도, 등은 귀중한 사료이다. 그 외 구한말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대구 동화사 영산전에 그려진 벽화가 발견되었다.
소규모의 지역적인 지방 씨름이 성행되다가 1912년 10월 유각권 구락부의 주관으로 서울 단성사 극장에서 대회다운 면모를 갖춘 씨름대회가 개최되는 것을 비롯하여 1914년 1월 광무대 극장 주최로 그 극장에서 4주일 동안 씨름대회가 열리었다.
그 후 씨름에 대한 점점 높아지는 열기와 관심은 1927년 조선 씨름 협회가 창단되면서 1927년 ‘제1회 전조선 씨름대회’ 를 휘문 고등학교에서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1934년 제 6회 대회가 최종대회가 되어 버렸고, 2년 후인 1936년 다시 ‘제1회 전조선 씨름선수권 대회’를 조선일보사 강당에서 개최하였다.
이 대회는 1941년 제6회 대회를 마친 후 중단되었다가 1946년 대한 씨름 협회로 명칭을 바꾸며 다시 재건을 보게 되어 1947년 ‘전국 씨름선수권 대회’로 명칭이 바꾸어 7회부터 계속되기 시작하였다.
이 대회는 2009년 현재 제63회가 개최 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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