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옥 비판(14) 가라데 겨루기의 유래
태권도와 가라데는 처음부터 입식 타격이 아니었다. 이 두 무술은 상대에게 태클을 걸어 바닥에 쓰러뜨리고, 메치거나 던지고 누르는 무예로 출발하였다. 택견, 씨름, 수벽치기에 이 모든 요소가 들어 있다.
맨손으로 하는 무예를 크게 타격기와 근접기로 나눌 때, 타격기인 태권도와 가라데는 근접기에서 출발하였다. 이 둘에게 공통의 조상이 있다면 그것은 씨름이었다.
가라데의 본 고장인 오키나와에서는 가라데의 조상을 테구미(手組)라고 부른다. 엉켜 붙어 싸우는 오키나와 무술의 한 형태이다.
쇼신 나가미네(長嶺将真)는 ‘위대한 오키나와 사범 이야기(Tales of Okinawa’s Great Masters)’에서 테구미의 기원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다른 근접기와 마찬가지로 고대의 호신술에서 비롯되어 지속적으로 발전했을 것이라고 썼다. 여기다 손을 쓰는 기술인 데(手)가 가미되었고, 이것이 훗날 가라데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근접기와 타격기가 동시에 이루어진 테구미는 1925년까지만 해도 성행하였다. 오키나와의 무인들은 이 테구미의 근원을 과거의 씨름에서 찾고 있다. 오키나와 씨름은 일본 본토의 스모와는 완전히 다르고 한국 씨름과 똑같다고 보면 된다.
가라데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후나코시 기친(船越義珍)의 직계 제자였던 시게루 에가미(江上 茂, 1912-1981)는 자신의 저서 ‘가라데의 본질(The Heart of Karate-do)’에서 “가라데에는 던지기 기술들도 있다. 나의 시절에는 던지기를 수련했으니 재고해주시기를 바란다.”고 썼다.
그의 스승 후나코시 역시 ‘공수도교범(空手道教範.,1935)’에서 “가라데에는 때리기, 찌르기, 차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던지기와 관절 누르기가 포함된다.”라고 말했다.
사실 이런 근접기는 품새(카타)에 녹아 있다. 가라데 품새의 80%는 던지기와 조르기의 원형이라고 말하는 사범도 있다.
1900년 이전에는 가라데 사범들이 테구미를 강조하였다. 상대방의 목을 조르기도 하고 던지기도하는 실전적인 종합무술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1905년경 가라데가 일선 학교에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위험한 요소들은 다 삭제되고, 테구미는 버려진다. 가라데에 도(道)라는 옷이 입혀지면서 실전성은 상실된다.
그 후로 가라데를 하는 사람들도 품새와 겨루기의 거리감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다. 가라데가 경기화될수록 품새에 녹아있는 실적적인 요소들이 무엇 때문에 수련되어야 하는지 설명해주는 사범도 없었고, 그것을 실전에 응용하는 사범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테구미(手組)는 쿠미테(組手)라고도 불렸다. 글자의 순서만 바뀌었으니 사실은 그게 그거다. 가라데의 양대 요소를 겨루기와 품새라고 한다면 겨루기가 바로 쿠미테(組手)인 것이다. 쿠미테에 있어서 실전성을 상실하게 한 개념은 슨도메라는 것이었다. 일본 검도에서 차용한 이 개념은 손이 칼이므로 상대방의 목을 치기 바로 직전에 손을 갖다 대면 상대방이 항복한 것이라는 개념이었다. 이 개념이 박살난 것은 한국인 최영의(배달)에 의해서였다. 최영의 덕에 가라데의 실전성은 되살아났고, 그로 인해 가라데는 세계화되었다. 그가 테구미의 본질을 되살려낸 것이다.
태권도는 가라데에서 이러저러한 형식적인 요소를 많이 배운 것이 사실이다. 특히 품새에 있어서 그러하다. 그러나 현재 경기화된 태권도의 품새에서 태권도적인 요소는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이라도 씨름, 택견, 수벽치기, 십팔기(무예도보통지의 권법 등)에 나타난 타격기와 근접기의 실전적인 요소들을 품새에 반영해야 한다. 태권도의 경기화 덕분에 겨루기는 세계회되었지만, 품새는 그 근거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라데와 태권도의 공통 과제인 만큼 상호 협력하면 더 큰 결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김용옥은 “태권도철학의 구성원리”에서 품새를 겨루기의 하위개념으로 보았다. 더 나아가 그는 자신이 직접 만들어 수련함으로써 건강을 회복했다는 무슨 개인적인 체조 같은 것을 품새라고 명명하면서, “품새의 출발이 모두 나의 ‘천지기술’ 같은 우발적인 계기에서 출발한 것일 뿐이라는 무술사의 보편원리의 사실을 지적한다”고 주장하였다. 품새가 먼저냐 겨루기가 먼저냐의 문제는 닭과 계란의 문제와 같으므로 여기서 논의를 접더라도, 품새를 우발적이고 개인적인 무슨 체조쯤으로 취급하는 그의 견해에 대해서 동의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고 본다.
어쨌든 이 글의 포인트는 태권도가 한국 씨름을 조상으로 모셔야 한다는 데 있다. 오키나와 씨름이 한국에서 전래되었고, 이 씨름을 근거로 가라데를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가라데는 확실한 한국식 씨름에 애매한 중국식 권법을 가미하여 만들어졌지만, 태권도는 확실한 한국 씨름, 한국 택견, 한국 수벽치기에 확실한 한국 권법이 가미되어 만들어진 무예다. 태권도의 현대화 과정에서 가라데의 영향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맨손으로 하는 무예를 크게 타격기와 근접기로 나눌 때, 타격기인 태권도와 가라데는 근접기에서 출발하였다. 이 둘에게 공통의 조상이 있다면 그것은 씨름이었다.
가라데의 본 고장인 오키나와에서는 가라데의 조상을 테구미(手組)라고 부른다. 엉켜 붙어 싸우는 오키나와 무술의 한 형태이다.
쇼신 나가미네(長嶺将真)는 ‘위대한 오키나와 사범 이야기(Tales of Okinawa’s Great Masters)’에서 테구미의 기원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다른 근접기와 마찬가지로 고대의 호신술에서 비롯되어 지속적으로 발전했을 것이라고 썼다. 여기다 손을 쓰는 기술인 데(手)가 가미되었고, 이것이 훗날 가라데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근접기와 타격기가 동시에 이루어진 테구미는 1925년까지만 해도 성행하였다. 오키나와의 무인들은 이 테구미의 근원을 과거의 씨름에서 찾고 있다. 오키나와 씨름은 일본 본토의 스모와는 완전히 다르고 한국 씨름과 똑같다고 보면 된다.
가라데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후나코시 기친(船越義珍)의 직계 제자였던 시게루 에가미(江上 茂, 1912-1981)는 자신의 저서 ‘가라데의 본질(The Heart of Karate-do)’에서 “가라데에는 던지기 기술들도 있다. 나의 시절에는 던지기를 수련했으니 재고해주시기를 바란다.”고 썼다.
그의 스승 후나코시 역시 ‘공수도교범(空手道教範.,1935)’에서 “가라데에는 때리기, 찌르기, 차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던지기와 관절 누르기가 포함된다.”라고 말했다.
사실 이런 근접기는 품새(카타)에 녹아 있다. 가라데 품새의 80%는 던지기와 조르기의 원형이라고 말하는 사범도 있다.
1900년 이전에는 가라데 사범들이 테구미를 강조하였다. 상대방의 목을 조르기도 하고 던지기도하는 실전적인 종합무술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1905년경 가라데가 일선 학교에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위험한 요소들은 다 삭제되고, 테구미는 버려진다. 가라데에 도(道)라는 옷이 입혀지면서 실전성은 상실된다.
그 후로 가라데를 하는 사람들도 품새와 겨루기의 거리감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다. 가라데가 경기화될수록 품새에 녹아있는 실적적인 요소들이 무엇 때문에 수련되어야 하는지 설명해주는 사범도 없었고, 그것을 실전에 응용하는 사범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테구미(手組)는 쿠미테(組手)라고도 불렸다. 글자의 순서만 바뀌었으니 사실은 그게 그거다. 가라데의 양대 요소를 겨루기와 품새라고 한다면 겨루기가 바로 쿠미테(組手)인 것이다. 쿠미테에 있어서 실전성을 상실하게 한 개념은 슨도메라는 것이었다. 일본 검도에서 차용한 이 개념은 손이 칼이므로 상대방의 목을 치기 바로 직전에 손을 갖다 대면 상대방이 항복한 것이라는 개념이었다. 이 개념이 박살난 것은 한국인 최영의(배달)에 의해서였다. 최영의 덕에 가라데의 실전성은 되살아났고, 그로 인해 가라데는 세계화되었다. 그가 테구미의 본질을 되살려낸 것이다.
태권도는 가라데에서 이러저러한 형식적인 요소를 많이 배운 것이 사실이다. 특히 품새에 있어서 그러하다. 그러나 현재 경기화된 태권도의 품새에서 태권도적인 요소는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이라도 씨름, 택견, 수벽치기, 십팔기(무예도보통지의 권법 등)에 나타난 타격기와 근접기의 실전적인 요소들을 품새에 반영해야 한다. 태권도의 경기화 덕분에 겨루기는 세계회되었지만, 품새는 그 근거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라데와 태권도의 공통 과제인 만큼 상호 협력하면 더 큰 결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김용옥은 “태권도철학의 구성원리”에서 품새를 겨루기의 하위개념으로 보았다. 더 나아가 그는 자신이 직접 만들어 수련함으로써 건강을 회복했다는 무슨 개인적인 체조 같은 것을 품새라고 명명하면서, “품새의 출발이 모두 나의 ‘천지기술’ 같은 우발적인 계기에서 출발한 것일 뿐이라는 무술사의 보편원리의 사실을 지적한다”고 주장하였다. 품새가 먼저냐 겨루기가 먼저냐의 문제는 닭과 계란의 문제와 같으므로 여기서 논의를 접더라도, 품새를 우발적이고 개인적인 무슨 체조쯤으로 취급하는 그의 견해에 대해서 동의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고 본다.
어쨌든 이 글의 포인트는 태권도가 한국 씨름을 조상으로 모셔야 한다는 데 있다. 오키나와 씨름이 한국에서 전래되었고, 이 씨름을 근거로 가라데를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가라데는 확실한 한국식 씨름에 애매한 중국식 권법을 가미하여 만들어졌지만, 태권도는 확실한 한국 씨름, 한국 택견, 한국 수벽치기에 확실한 한국 권법이 가미되어 만들어진 무예다. 태권도의 현대화 과정에서 가라데의 영향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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