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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國伎) 제정의 비밀(2)

한국의 국기(國伎)와 관련하여 큰 의미가 있는 장소 중에 장충단이 있다. 조선의 국기가 수련되던 곳이었을 뿐만 아니라, 일제의 스모는 이 곳에 국기관(國伎館)을, 한국의 태권도는 이 곳에 국기원(國技院)을 설립하려 했었기 때문이다.

원래 장충단 부지는 매우 광활하였다. 지금의 장충단공원만 생각하면 안 된다. 신라호텔, 국립극장, 자유센터, 서울타워호텔 터를 아우르는 큰 규모였다. 이 일대는 조선의 군사훈련이 늘 이루어지던 훈련도감의 영역이자 서울의 남부를 방위하던 남소영(南小營)이 있던 곳이다. 1970년 남산1호터널이 뚫리면서 이 일대를 가로질러 대로가 생겼다.

지금의 동국대학교 근처에는 훈련도감의 군사들이 십팔기(十八技)와 궁술을 연마하던 비파정(琵琶亭)이 있었다. 임금을 호위하는 무예별감(武藝別監)도 이 곳에서 훈련을 받아 선발되었다. 국립극장 뒤에는 석호정(石虎亭)이라는 유서깊은 활 터가 있다. 이 곳의 유래를 알려 주는 석호정중수기가 1956년에 만들어졌는데, "장충단 뒷편 산기슭에 십팔기 옛터(十八技舊址)가 있어서 1897년 7월에 뜻있는 사람들이 협력하여 이 석호정을 창건했다"는 내용이 있다.

조선왕조실록 고종 37년 1900년 10월 27일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전 남소영(南小營)의 유지(遺址)에 장충단(奬忠壇)을 세웠다. 원수부(元帥府)에서 조칙(詔勅)을 받들어 나랏일을 위해 죽은 사람들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였다."

장려할 장, 충성 충. 장충단(奬忠壇)이라는 이름은 고종이 직접 지었다. 우선 1895년 을미사변 당시 명성황후가 일본인에 의하여 시해 당할 때 일본인 침입자에 맞서다 순국한 궁내부대신 이경직 등 9인이 배향되었다. 장충단은 일제의 침략에 저항하는 조선의 무혼(武魂)을 상징하는 성지(聖地)로, 오늘날로 말하면 국립현충원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사명대사를 비롯하여 이준, 이한응, 유관순의 동상도 세워져 있다.

일제에 의하여 대한제국의 군대가 강압적으로 해산된 다음 해인 1908년 이 제사는 중단되었다. 대신, 1909년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에게 살해되었을 때 일본은 장충단에 이토 히로부미의 사당을 짓고 추모제를 지냈다. 일제는 훈련원을 운동장으로, 장충단을 공원으로 다시 조성했다. 1932년 이토 히로부미를 위한 절인 박문사가 신라호텔 자리에 세워졌다.

1925년 11월 15일자 동아일보에 의하면 일본은 이곳에 국기관(國伎館)을 지으려 하였다. ‘일본 씨름하는 집 국기관 설립’이란 제하의 기사에서 이 신문은 일본인 두 명이 국기관 설립 장소로 훈련원 자리를 물색하였으나 여의치 않아 장충단 공원 국유지 866평을 건축지로 정하고 총독부에 대부원을 제출하였는데, 조만간 허가가 나올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이 국기관은 어쩐 일인지 이 곳에 설립되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로부터 45년 후인 1971년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국기 태권도’라는 친필휘호를 받아낸 김운용은 태권도의 전당으로 바로 이 곳 장충단을 염두에 두었다. 그는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태권도의 구심점이 될 곳이 필요했다. 그것이 ‘국기원’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태권도 전당의 이름을 ‘국기관’이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일본이 스모의 전당을 이미 국기관으로 부르고 있었다. 그래서 명칭을 국기원이라고 정했다.”

그는 국기원 부지를 고르기 위해 서울의 국유지를 다 찾아 다녔다고 한다. 장충단에 부지를 얻고 싶었는데 이미 장충단 땅은 아무 것도 지을 수 없다는 발표가 나는 바람에 포기했다는 것이다. 그는 허허벌판이던 역삼동에 사유지 2천평을 찾아냈다.

결국 조선의 무혼이 서린 장충단에는 일본의 국기관도, 한국의 국기원도 들어서지 못했다.

십팔기 옛터, 활터, 무제(武祭) 터에 일제는 국기관을 만들려 했고, 한국은 국기원을 만들려 했다. 국기관이 무산된 것은 다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으나, 국기원이 이 곳에서 부지를 구할 수 없었던 것은 아쉽다고 아니 할 수 없다.

지금도 매년 10월 8일이면 장충단공원에서는 장충단제가 열린다. 태권도인들이 장충단제에 참가하여 그 숭고한 넋을 기렸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역삼동과 장충동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일까? 아직도 장충단 공원에 안개가 자욱하여 찾아가기 힘들어서일까?

댓글 1

익명 2010.10.29
이렇게 파고들다보면 진실이 하나, 둘 밝혀지면서 무성한 숲을 이루고 있는 태권도라는 거목의 뿌리를 찾아가게 될것이라고 확신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