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옥 비판(6) 일부러 ‘무예도보통지’를 깎아 내렸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무예는 활이 주종목이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계기로 창술, 검술, 권법 등의 단병(短兵)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매우 오랜 세월 동안 보완을 거듭해 마침내 ‘무예도보통지’가 완성되었다. 이 책은 장졸(將卒)들이 손쉽게 기예를 익혀서 국방에 만전을 기하려는 의도하에 편찬된 것이다. 병법(兵法)이나 진법(陣法)이 아니라 개개인의 무술 기량을 키우기 위한 책이다. 창술, 도검술, 봉법, 곤봉술, 권법, 기술(騎術) 등 24 종목으로 된 매우 구체적인 무술이다.
그런데 김용옥은 ‘무예도보통지’를 어디까지나 병술의 책이지 무술의 책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의 책을 읽어보지 않은 독자라면 병술이나 무술이나 무슨 차이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는 ‘무예도보통지’를 무술의 영역에서 아예 제외시킴으로써 상대적으로 일본 무술의 우월성을 부각시킨 오류를 저질렀다. 마치 조선에는 숭문주의(崇文主義)로 인해 무술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는 인식을 주려 한 것이다. 특히 그는 무술에 대해 논하면서 삼국이나 고려무사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하지도 않는데, 이는 의도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김용옥은 조선에는 타율무장집단인 군인, 일본에는 자율뮤장집단인 무사라는 이분법을 사용하여 무술이 일본에서 개화할 수 있었다는 근거로 주장했다. 무술은 무사에게서 나오지 군인에게서는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무예도보통지’가 무술에 속하지 않는다는 근거로 ‘무예도보통지’ 권법보 앞머리에 나오는 말을 인용한다. “권법이란 실제로 큰 싸움을 하는 기예로서는 그리 유용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손과 발을 놀리고 몸통과 사지를 훈련시키는 것은 초학자들이 입예하는 기초가 된다.” 조선 권법이 ‘그리 유용한 것이 아니’라는 대목을 인용함으로써 조선 무술을 격하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이지 않는가?
그의 구분처럼 조선 군인을 타율무장집단이라고 치자. 이들은 조선말에 몇 번에 걸쳐 축소되다가 결국 해체되었는데, 대부분 자발적으로 의병이 되어 일본과 싸웠다. 이들 의병은 ‘무예도보통지’ 24종목을 두루 익힌 왕년의 군인으로써 ‘자율’무장집단이 되었다. 그렇다면 조선 군인은 병술을 하였고, 의병은 무술을 한 것인가? 전쟁의 원리만 있고, 평화의 원리가 없었으므로 그냥 병술인가?
그는 병술과 무술에 대하여 확연한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병술이란 인간집단과 집단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싸움의 기술이며 그것은 주로 요새말로 전쟁(war)이라는 집단 싸움의 전략전술에 관한 것이며, 개인의 몸의 능력을 제일의 원리로 삼는 것이 아니다. 병술의 제1원리는 사회적 원리며, 병을 운용하는 때와 방법의 사회적 요인을 그 술의 근간으로 하고 있다. 손자병법은 무술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병법이요 병술이다…… 무술은 병술과 독립적인 전통을 지니는 것으로 거기에는 전쟁 이외에 건강, 취미, 인격, 몸의 아름다움 추구 등 평화적인 원리가 게재되어 있다.”
그러면서 그는 이순신은 병술을 펼친 군인이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무술을 펼친 무사라고 구분을 지었다.
김용옥에게 묻겠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쟁 이외에 건강, 취미, 인격, 몸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평화적인 원리를 위하여 무술을 한 것인가? ‘무예도보통지’는 장기를 두는 것 같이 장군이 병졸을 전선에 배치하여 부리기 위한 병술이나 병법인가? 조선 군인들이 창술, 검술을 하면 병술이고, 일본 군인들이 창술, 검술을 하면 무술인가? 조선 군인들은 일본을 이기기 위해 일부러 왜검을 의무적으로 배웠는데, 조선인의 왜검은 병술이고 일본인의 왜검은 무술인가?
그런데 김용옥은 ‘무예도보통지’를 어디까지나 병술의 책이지 무술의 책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의 책을 읽어보지 않은 독자라면 병술이나 무술이나 무슨 차이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는 ‘무예도보통지’를 무술의 영역에서 아예 제외시킴으로써 상대적으로 일본 무술의 우월성을 부각시킨 오류를 저질렀다. 마치 조선에는 숭문주의(崇文主義)로 인해 무술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는 인식을 주려 한 것이다. 특히 그는 무술에 대해 논하면서 삼국이나 고려무사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하지도 않는데, 이는 의도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김용옥은 조선에는 타율무장집단인 군인, 일본에는 자율뮤장집단인 무사라는 이분법을 사용하여 무술이 일본에서 개화할 수 있었다는 근거로 주장했다. 무술은 무사에게서 나오지 군인에게서는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무예도보통지’가 무술에 속하지 않는다는 근거로 ‘무예도보통지’ 권법보 앞머리에 나오는 말을 인용한다. “권법이란 실제로 큰 싸움을 하는 기예로서는 그리 유용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손과 발을 놀리고 몸통과 사지를 훈련시키는 것은 초학자들이 입예하는 기초가 된다.” 조선 권법이 ‘그리 유용한 것이 아니’라는 대목을 인용함으로써 조선 무술을 격하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이지 않는가?
그의 구분처럼 조선 군인을 타율무장집단이라고 치자. 이들은 조선말에 몇 번에 걸쳐 축소되다가 결국 해체되었는데, 대부분 자발적으로 의병이 되어 일본과 싸웠다. 이들 의병은 ‘무예도보통지’ 24종목을 두루 익힌 왕년의 군인으로써 ‘자율’무장집단이 되었다. 그렇다면 조선 군인은 병술을 하였고, 의병은 무술을 한 것인가? 전쟁의 원리만 있고, 평화의 원리가 없었으므로 그냥 병술인가?
그는 병술과 무술에 대하여 확연한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병술이란 인간집단과 집단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싸움의 기술이며 그것은 주로 요새말로 전쟁(war)이라는 집단 싸움의 전략전술에 관한 것이며, 개인의 몸의 능력을 제일의 원리로 삼는 것이 아니다. 병술의 제1원리는 사회적 원리며, 병을 운용하는 때와 방법의 사회적 요인을 그 술의 근간으로 하고 있다. 손자병법은 무술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병법이요 병술이다…… 무술은 병술과 독립적인 전통을 지니는 것으로 거기에는 전쟁 이외에 건강, 취미, 인격, 몸의 아름다움 추구 등 평화적인 원리가 게재되어 있다.”
그러면서 그는 이순신은 병술을 펼친 군인이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무술을 펼친 무사라고 구분을 지었다.
김용옥에게 묻겠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쟁 이외에 건강, 취미, 인격, 몸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평화적인 원리를 위하여 무술을 한 것인가? ‘무예도보통지’는 장기를 두는 것 같이 장군이 병졸을 전선에 배치하여 부리기 위한 병술이나 병법인가? 조선 군인들이 창술, 검술을 하면 병술이고, 일본 군인들이 창술, 검술을 하면 무술인가? 조선 군인들은 일본을 이기기 위해 일부러 왜검을 의무적으로 배웠는데, 조선인의 왜검은 병술이고 일본인의 왜검은 무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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