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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마당

김용옥 비판(3) 중국이 가라데의 기원이라는 저자에 대한 공개 질의서

다음은 가라데가 중국에서 기원한다는 주장을 펼친 김용옥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하는 공개 질의서이다. 간략하게 열가지 질의만 추렸다.

이 제안은 태권도의 역사를 정립시키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인 만큼 적극적인 협조를 기대한다. 그가 이 토론마당에 직접 나올 형편이 안될 경우 태권도 단체에서 공개 세미나를 개최하면 필자는 적극적으로 토론에 나설 용의가 있음을 밝힌다.


1. 당수(唐手)-가라데를 만든 오키나와 왕국은 역사를 통틀어 당(唐)나라와 전혀 교류를 한 적이 전혀 없다. 당(618-907)나라는 물론이고, 이후의 송(960-1279)나라, 원(1271-1368)나라와도 교류가 없었다. 당수가 당나라나 중국을 거쳐 오키나와로 왔다면 754년 동안 사람의 왕래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이를 어떻게 설명할까?

2. 오키나와가 중국과 최초로 교류를 하기 시작한 것은 명나라가 성립한 후인 1372년의 일이다. 만약에 명대(1368–1644)나 청대1644–1912)의 무예가 오키나와에 들어왔다면 그 명칭은 당수(唐手)가 아니라 명수(明手)나 청수(靑手)라고 불러야 하지 않겠나? 중국 역사를 통틀어 오키나와와 가장 사이가 좋았던 나라는 명나라였고, 중국 무술이 발호하기 시작한 시대도 명나라였는데, 가라데의 표기는 어찌하여 명수(明手)가 아닐까?

3. 중국의 역사와 무예사를 다 뒤져도 당수(唐手)라는 무술은 없다. 명수(明手)나 청수(靑手)는 필자가 예를 들기 위해 만든 말이므로 물론 없다. 오키나와 무인들이 중국의 것을 받아들였다면 당수라는 무예가 중국 역사를 통틀어 한번이라도 나와야 할 것 아닌가?

4. 가라데를 소림사 권법과 관련지어 설명하려는 시도는 모두 억측이라는 김용옥의 탁월한 견해를 인정한다. 1908년 10월 오키나와의 권성(拳聖)으로 불리는 이토스 야스쯔네(絲洲安恒)는 “가라데는 불교나 유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못박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용옥은 무술의 사상적 배경을 노자와 주희로 잡고, 길게 설명하고 있다. 이는 무술 전반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인가, 중국무술에 국한 되는 것인가, 아니면 가라데도 이런 사상을 바탕으로 성립되었다는 뜻인가? 가라데가 유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데, 그 괴리는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가라데의 사상적 바탕이 따로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김용옥의 기철학인가?

5. 중국무술은 고대로부터 종교나 양생법과 관련이 되어 있음에 반하여, 훨씬 후대인 가라데의 기원은 병장기 사용은 물론이고 조르기, 메치기, 누르기, 찌르기 등을 포함한 실전적인 종합무술이었다. 중국무술은 명나라 대에 이미 실전성을 상실하고, 투로와 표연 중심으로 흘렀다. 과연 중국무술이 오키나와에서 와서 전혀 다르게 실전적으로 변한 것인가?

6. 명나라와 교역이 활발해지자 오키나와는 명에 뱃사람들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고, 1392년 중국 남방의 복건 사람들(삼십육성)이 이주하여 살면서 양국의 조공에 종사했다. 이들이 무술을 전파했으리라는 가설이 있으나, 필자의 의견으로는 무사집단과는 무관하다. 삼십육성 수입설에 대하여 공감하는 김용옥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식의 다른 사람들이 제기하는 설 말고 정확한 근거를 한번이라도 본 적이 있거나 책을 쓴지 20년이 지난 지금이라도 근거를 댈 수 있는가?

7. 김용옥은 저서에서 당수(唐手)와 공수(空手)의 일본어 발음인 가라데에 대하여 매우 잘 설명하고 있지만 당(唐)-가라를 중국에만 연결시키려 하다보니, 공(空)-가라로 바뀐 것을 일종의 말장난(pun)으로 취급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사전만 찾아봐도 당(唐)-가라는 옛 한국을 이르는 말임을 알 수 있는데, 그는 일부러인지 질 몰라서인지 한, 삼한, 한국과 관련된 풀이를 외면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8. 일본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수(隋) 다음의 중국 왕조가 뭐냐고 물어 보면 훈독인 가라(から)가 아니라 운독인 도오(とう)라고 답한다. 일본 사람들이 당(唐)을 가라(から)라고 훈독할 경우에는 중국의 옛 왕조가 아니라 옛 한국이라는 뜻이며, 이외에는 막연한 외국, 막연한 선진국, 막연한 중국으로 쓰이기도 했다. 김용옥은 확실한 한국이 아니라 막연한 중국을 채택한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9. 당수(唐手)-가라데라는 이름이 오키나와에 등장한 것은 1908년인데, 일본의 군국주의와 제국주의가 극한으로 팽창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일본은 1895년 중국(청)과 전쟁을 벌여 이겼으며, 중일간의 극한대립은 노골화 되었다. 이런 싯점에 이름에서 중국냄새가 나고 그 기원도 중국에서 왔다는 무술이 공개마당에 나온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당수(唐手)라는 이름이 등장함과 동시에 오키나와의 학교에서 정식 과목으로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또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것도 일본 본토가 아니라 일본의 피식민지를 거쳐 마침내 병합되고만 나라인 오키나와에서 공식적으로 일본의 인가를 받을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인가? 일본 경찰이라면 왜 하필 당(唐)이냐고 이런 이름을 만든 후나코시 키친을 당장 잡아 가둬야 하지 않았겠나?

10. 중국과 일본의 역사를 다 뒤져도 가라라고 불리는 나라는 없었고, 가라는 오직 옛 한국에만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고대한국 가라의 후예들이 일본과 오키나와 열도로 떠밀려 망명한 사실에 대해 알고 있는가? 단순한 표착이나 망명이 아니라 집단적인 이주를 통하여 정권을 창출한 것은 물론 선진문명을 전파한 주역이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오키나와의 무예가 가라데라고 불리게 된 배경이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성립되었다는 필자의 견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상입니다.

댓글 102

익명 2010.09.17
민수님 이 메일 부탁드립니다. hero999usa@yahoo.co.kr
익명 2010.09.17
공부않하고 선수시절 경력만으로 교수하시는 분들 많이 있죠~~~ㅎㅎㅎ 그 다음은 생략~~~~ㅋㅋㅋ
익명 2010.09.17
홍익인간의 정신~~~~~~~~~~~~
익명 2010.09.17
필자의 이메일을 요청하신 hero99usa 님,께, dannybboy@hanmail.net 입니다. 님의 댓글과 관련하여 감히 한말씀 올리자면 공부않고 선수시절 경력만으로 교수하시는 분들 많다고 하셨는데, 어쩐지 비난하는 투로 들립니다. 여기서 공부란 책을 말씀하시나요, 몸을 말씀하시나요? 태권도는 시작도 끝도 몸 공부이며, 행위이자 실천입니다. 저같은 인문학도나 책 공부한답시고 골방에서 거창한 이론이나 만들어 내는 겁니다. 선수시절 남들보다 좋은 경력을 쌓은 분을 교수님으로 모셔야지 누구를 교수로 모셔야 한답니까? 태권도가 이런 분들 덕에 세계에서 인정받은 것 아닐까요? 사범님이나 관장님을 존중하신다면 교수님도 존중해 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익명 2010.09.17
지금 귀하께서 말씀하시는 학술은 추상적 추론에 해당하며 님께서 역사론을 부정하신다면 저도 님의 추론을 이해할수가 없습니다. 아울러 현제 님께서 주장하시는 태권도학의 개념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애국정신에 해당하여 이점은 존경스럽고 이론적 해설도 설득력은 부족하나 논리는 님께서도 역사적 자료의 고증이 없으므로 이를 증명할 방법도 없고 오직 님의 추론 아닌지요? ---1
익명 2010.09.17
제가 이전에도 말씀드렸듯이 귀하는 학자로서 여러 자료를 기초로 추론한 해설에 해당할뿐이며 역사적으로 그 시대를 경험한 분들의 재현없 이는 감히 누구도 어불성설할 명분이 못된다고 생각됩니다. 솔직히 귀하의 논리역을 부정하는 것이아니라 학자라면 이정도 표현과 설득력은 합당하지만 실전에 경험이 전무한 학술적 표현으로 실전과 이론의 비유는 너무 차이가 큽니다. ---2
익명 2010.09.17
비록 필자가 가방끈의 한계로 표현에 한계가있으나 님께서도 너무 추상적 이론만 강조하시기 보다 실전에 경험자인 분들의 이해를 감미하셔야만 했습니다. 참고로 여기에서 감히 비유할 사실은 필자의 친척 형님이 전 경찰대학 교수(박사)로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셨는데 그분의 연설을 듯자하면 감히 타 후보와 비교가 되지않을 정도로 훌륭한 연설과 문장력을 자랑하셨는데 실전 선거에서는 참패를 당했습니다. 그때 필자가 드린 말씀중 형님 배우시고 추구하시는 정치학은 이론적으로는 상대자가 없었지만 형님의 현실정치 서민이 사는 현재를 넘 간과하고 방관하여 서민의 심리를 잃지 못했기에 이렇게 된것이라고 말씀드렸고 필자가 사는 지역이 아주 시골인데 지역 현안인 개발과 시장 하나를 짓더라도 공무원이나 윗 분들은 자기들의 추상적 가치관으로 모양은 멋진데 서민들이 원하는 건물을 무시하고 자기들의 잣대로 시장과 건물을 짓다보니 현행 장사와는 무관하여 게속 실패를 자초하는 광경을 많이 목격했고 현재 정부의 실질적 추진 사업들도 과거나 현재나 모두 자기 방향에서만 실행하고 남은 무시하다보니 잘못된 연출이 재발되는 것입니다. ---3
익명 2010.09.17
훌륭한 사람은 남에 말을 귀담아 잃을줄 알고 그것을 배양하여 더불어 연구 노력해야만 훌륭하고 덕있는 학자가되는것이며 오직 나에 생각만을 고집하면 자기의 생각이 틀인 상황도 많이 겪게될것입니다. 귀 선생께서 태권도를 자꾸 역사를 왜곡하시는데 그것은 백두산이 우리꺼라고 소리치는것과 다를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백두산의 절반 이상은 중국에 있는것이 현실이지 과거 우리땅였다고 우긴들 중국이 돌려줍니까? 그렇다면 고구려 시대 중국 영토와 러시아 영토도 일부 우리꺼라고 우기면 우리꺼라고 인정하고 돌려줍니까? 저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왜 애국 충정심이 없겠습니까? --4
익명 2010.09.17
아니 누구보다 일본을 미워합니다 만 분명한것은 1960년 이전에 잠시 태수도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지어주신 이름이 국기 태권도 임을 왜곡하실껀가요? 그러면 그 이전에 태ㅔ권도라는 글자나온 책이나 자료 있으면 증명해 보시지요? 태권도의 처음 보급자는 누가 뭐라해도 북한으로 월북한 육군중장 최홍희 장군였고 그분이 이승만 대통령 앞에서 시범보이자 대통령은 그것이 우리 고유무술 택견 아니냐고 물은 일화가있으며 추후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태권도 로 명기되어 최초 창설자는 반체제 사상가로 북으로 도망가서 현재는 고인이 되셨음을 왜 부인 하시려하나이까? ---5
익명 2010.09.17
당시 최홍희 장군이 하신 시범도 사실 당수도 (가라데도)였으며 70년대 이전까지 태권도 배운분들 대부분 가라데 형을 배우신것 계속 부정하실껀가요? 필자도 69년 태권도 입문하여 그때에도 지금의 공수도 형을 기워서 배웠고 늦게 공수도를 배워보니 그때 배운 동작들이 공수도에서 하던 바로 그 동작들였습니다. 아니 발차기도 같습니다. 지금의 태권도 발차기는 경기화 시킨것일뿐 당시에는 공수도와 너무 닮았었고 원로분들 양심있으신 분들도 모두 그렇게 인정하시며 다만 그분들이 컴퓨터를 하지못해 게제하시지 못할뿐입니다. 아무리 이론을 거론한들 현실은 그런것이면 정히 궁금하시면 태권도의 품새와 공수도의 형을 동 영상으로 보시면 왜 이렇게 변해졌는지 금새 아실텐데 자꾸 이론만 말씀하셔 학문으로는 제가 대안이 없으나 백문이 불여일견 이라듯이 님이 태권도를 연구하신다면 직접 배우시어 연구함이 마땅하고 계속 자료만 언급함은 잘못된것입니다. 전에도 다른분이 거론 하셨느데 모든 기본의 동작은 형에서 나오지만 형은 자세와 힘을 바탕으로 기초에 해당하여 형만으로는 절대로 실전을 이기지 못하지요, 실전은 계속된 강화 훈련과 스피드 연습으로 자기를 만들어 강해지는 것일뿐 형 만으로는 시범에 불과하여 멋지게는 보이지만 상대가 안되지요. 너무 길게 쓰다보니 문법 맞춤법이 많이 틀려지네요--6
익명 2010.09.18
반대입니다.
익명 2010.09.18
ㅎㅎㅎ~~~ 필자님이 그런 느낌을 받았다면 먼저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 메일 주소 감사합니다. 조만간 연락을 드리도록하겠습니다. 필자님께서 물으시니 저도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 여기서 공부란 책을 말씀하시나요, 몸을 말씀하시나요? <---- 몸으로 체득하신 것을 가지고 교수하고 계시는 것 아닌지요? 그리고 공부란 물론 책도 포함되고 그 분들의 화려한 선수 경력에 비해서 연구업적들이 너무 미미한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한국에 태권도 대학이 설립된지가 30년 정도가 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태권도의 역사 하나를 바로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서 농담 반 진담반으로 드린 말씀입니다. 오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무릇 학문을 가르치는 상아탑에서 태권도를 하나의 학문으로 받아들였다면, 개인의 업적이 공익을 위한 올바른 학문으로서의 자리를 잡기위해서는 실기와 이론뿐 만 아니라 그 정체성의 명확함까지 함께 병행되어야 전통을 세우고 계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 지요?
익명 2010.09.18
ㅎㅎㅎ~~~ 어느새 무한님께서 많은 글을 올리셨군요~~~ 잘 읽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필자님의 의견에 대하여 저의 짧은 소견을 계속해서 하나 더 올리고자 합니다. ~~~ 태권도는 시작도 끝도 몸 공부이며, 행위이자 실천입니다. <----- 저는 필자님이 어떤 의미로 이렇게 말씀 하시는 지 대충 짐작은 가지만 정확히 알 수 없어 제 의견을 올립니다. 태권도와 스포츠의 차이 점을 들라면 저는 주저없이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차이라고 애기하고 싶습니다. 태권도는 형이상학의 정신을 형이하학의 행동실천 학문으로 표현하는 하나의 문화요 학문이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이것이 태권도가 학문으로서 일상생활에 어떤 유익함의 영향을 주느냐 아니면 단순한 오락적 놀이문화로 전략하느냐 가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태권도는 형이상학적 수련없이 기술적 부분에만 치중하여 수련을 한다면 상당히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 선인들은 무도의 비인부전의 불문율을 고수 하셨던 것이 아닐까 사료됩니다. 그리고 여기에 글을 올리시는 분들을 보면 대화의 장이 아니라 무슨 전투장을 연상케하는 느낌이 들어요. 저만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아니었다면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익명 2010.09.18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 같아 다시 한번 글을 올립니다. 여기에 글을 올리신 무한님을 애기하는 것이 아니고 무토의 토론방 전체에 대하여 느끼는 제 의견임을 밝히는 바입니다. 오해의 소지가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익명 2010.09.18
필자님. 자신을 인문학도라 밝히셨는 데, 태권도인들 보다 더한 열정과 연구에 많은 경의를 표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시간을 내어 좋은 자료를 댓가 없이 올리는 것이 쉽지 않았을 터인 데 용기를 내어 올려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많은 후학들의 공부에 도움이 되리라고 봅니다. 그리고 무한님 역시 많은 현장경험의 좋은 자료들을 이렇게 올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또한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시고 태권도에 대한의 열정으로 넘치고 있음을 볼 때 태권도인의 한 사람으로 부끄러움을 금치 못합니다. 두 분의 좋은 자료를 토대로 더욱 열심히 노력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을 더 올리 자면, 제의견은 이렇습니다. 필자님의 연구 는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비록 인문학도라고 자신을 겸손하게 소개 하셨지 만 태권도 수련과 열정이 없이 단순히 이런 글을 올렸다고 보기는 힘들 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또한 무한님의 자료 역시 훌륭하지 만 잘못 알고 계신 부분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검증이 한 번 쯤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두 분 모두의 열정과 노력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두 분의 조화가 이루 진 다면 더 좋은 결실이 나오지 않을 까 조심스럽게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익명 2010.09.18
필자님께 질문을 드립니다. 도올선생의 태권도철학은 출판된 지가 20년 가까이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오래되어 정확한 연도가 기억이 않나고 자료들을 모두 잃어 버려 잘모르겠습니다. 아마 젊은 분들은 이 책에 대하여 잘모르시는 분들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는 데, 어찌하여 이 책을 이제와서야 거론을 하셨는 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이 책은 도올 선생 혼자서 쓰신 것이 아니라 다른 분들도 포함이 되어 있 던 걸로 기억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이 책은 문제의 소지가 있는 부분이 다소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답변하여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이 책이 아직도 서점에 시판이 되고 있나요?
익명 2010.09.18
긴 댓글을 올려주신 무한 남께, 역시 오래 수련하신 분이라 현대 태권도의 역사에 대해 소상히 알고 계시군요. 우선 태권도 명칭의 유래를 비롯하여 70년대 이전까지 대부분 가라데 형을 배운 것도, 그 후 발차기를 중심으로 경기화 시킨 것이라는 지적도 맞습니다. 다만 품새와 겨루기 중에 어느 것을 우위의 개념에 둘 것인가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합니다. 지적하신 대로 품새 수련만으로는 절대로 실전에서 이기지 못하지요. 저는 품새와 겨루기가 따로 놀아서는 안 된다는 원론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역사는 백두산이 언제 어떻게 우리 땅이었다가 중국 땅으로도 편입되었는지 그 사실에 대해서만 밝히는 학문입니다. 그걸 내놓으라고 요구하거나 다시는 이런 일이 있으면 안되겠다고 반성하는 것은 역사를 읽는 사람들의 몫입니다. 저는 무슨 애국심의 발로로 역사를 오도하려는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제 의견이 추상적이라고 느껴지시더라도 끝까지 이 토론을 지켜 봐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익명 2010.09.18
hero999usa 님께 긴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지적하신 대로 대학에서 태권도 연구가 모자란 것은 지나친 경기화가 한 요인이 될 것입니다. 태권도가 무예(무도)냐 스포츠냐의 경계에서 스포츠로 치닫고 있다 보니 이를 우려하는 분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또, 태권도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 여러 학문과의 통섭이 아니라 원로 사범들로부터 들은 단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재구성하다보니 해방 후의 역사만이 전부인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1990년 도올 김용옥 선생은 ‘태권도철학의 구성원리’(통나무 간)라는 책을 통해 흔치 않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는데, 이것이 소위 ‘가라데유입론’입니다. 무한 님께서 오랜 수련으로 잘 알고 계신 것처럼 현대 태권도가 가라데의 영향을 매우 많이 받은 것이 사실이고, 김용옥 선생은 이 사실을 연구서로 터트린 것입니다. 그 후 설득력이 모자라긴 했지만 가라데유입론에 반론을 제기한 책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이런 연구와 토론이 이어졌으면 합니다. 참, 김용옥 선생의 책은 제가 오래 전에 서점에서 구입했는데,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네요. 인터넷 검색 가능하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익명 2010.09.18
1.조금 오류가 있으신것 같은데요 수리성이나 나하에 당나라 건축양식이 상당히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오키나와는 당나라와 지리적으로 가깝고 물론 조공까지 했던 나라였습니다 우리나라 에도 마찬가지였구요 그렇다고 우리나라와 중국의 속국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가라데의 카타에는 공상군 과 관공이 있는데 이 형의 전수자들 모두가 중국인이기 때문에 형의 이름을 딴것입니다.
익명 2010.09.18
2.번의 경우에도 큰 오류가 있습니다 당나라때 만들어진 무술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오키나와테의 기록에 남아있습니다 그렇다면 님의 말씀데로 라면 중국은 명나라이전에 무술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 되겠죠? 당나라때 만들어진 무술들이 이어진것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오키나와테 에 어떤 종류들이 있는지는 아시는지요?
익명 2010.09.18
3번의 경우에도 중국무술은 종류가 많기에 자국을 통칭하는 이름으로 당수라고 누가 쓸까요?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무술이름은 한수가 되어야 합니까? 태권도 합기도 국술들이 일본에 보급되었다면 그 무술들 자체는 모두 한국무술 한수? 라고 할수도 있겠죠? 참고로 오키나와테의 4종류중 하나인 슈리테는 중국인(청나라 사신)공상군을 기원하고 있습니다..그래서 공상군이 있는것이죠.
익명 2010.09.18
4번 당연히 어떻게 무술들이 종교나 사상에 의해 만들어졌을까요?? 반문하고 싶기도 합니다!! 적어도 중국무술은 그렇다 치더라도 아무리 오키나와 테가 중국무술이 들어갔어도 자국화를 시키는데 자신들의 사상이 들어가는것이지 중국의 사상이 어떻게 들어가겠습니까?
익명 2010.09.18
5번 중국무술이 당시에 실전능력이 없었는지 있었는지를 과연 님이 정확히 알수있을까요? 청일전쟁때 일본이 패한요인이 너무도 넓은 중국땅 때문에 점을 찍는듯한 일시적인 승리였듯 많은 문파의 무술이 존재하는데 님께서 단순히 그랬다 더라 로....중국무술이 실전능력이 없었다라고 단정지으시는지 무술수련 하시는 분은 맞으실런지요? 그렇다면 태권도가 초창기 가라데의 영향을 상당히 받았는데 가라데에 없는 연속발차기는 왜? 발전했습니까? 그것은 한국인과 일본인의 차이이며 중국무술과 오키나와 테의 근소한 차이(어떤 형은 똑같습니다 태조권 과 식학권 백학권의 순서만 바뀐겨우도 있습니다)가 있지만...그것은 오키나와 사람과 중국사람의 차이로 달라지는겁니다.
익명 2010.09.18
6번. 님 역시도 가설이 아닌가요? 님 역시도 전배들이 남긴 책에 의존한것이 역력한데 어떤 사람 의 주관적인 생각들이 담긴 책을 선택했느냐? 의 차이일것 같습니다 명확한 근거도 없는데 그중에 무술할줄 아는 사람이 있어서 흘러갔을 가능성도 있는겁니다! 님께서도 명확한 근거 가 없는이상!
익명 2010.09.18
7번. 자아!! 한번 님의 큰 오류를 지적해볼까요??? 앞서 당수 라는 무술의 기록이 중국에 왜? 없 느냐? 당수에 관한 기록이 중국에도 있어야 가라데의 기원이 중국아닌가? 라고 하셨는데 한번봅시다!!! 우리나라의 기록에 어디에 우리나라가 唐을 뜻하는 기록이 있습니까? 우리나 라 국호가? 당나라 였을때가 언제 있습니까?
익명 2010.09.18
8번.도오(とう)라고 답한다 일본어는 아십니까? 이게 어떻게 도오 입니까? 도우 아닌가요? 여기서 부터 오류를 이미 시작한게 아닐까요? 앞선 게시물에도 다른이름으로 도우 를 도오 로 발음한 글을 봤는데 같은 분 이신것 같군요. 그리고 오키나와 테 슈리테 나하테 박테 도마 리테 라고 불리울 당시의 오키나와 에서는 도우테 라며 음독으로 불리웠을 당시입니다! 물론 훈독으로도 불리웠지만 오키나와 슈리 사람이었던 후나코시에 의해 일본 본토에 보급 되면서 음독 보다는 훈독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그러니..당연 음독으론 본토 보급에 어려우 니 키친으로썬 당을 뜻하는 가라도 데고 공을 뜻하는 가라도 데는 훈독인 가라를 택할수 있 는게 자신으로써도 감옥에 안잡혀갈수 있는 방법이겠죠 ^^
익명 2010.09.18
9번. 오류에 큰 오류를 더하시는것 같습니다 당수라는 이름으로 당연히 오키나와에 는 존재를 하게 됩니다!! 최영의씨의 증언으로도 당수 즉 가라데는 당시의 일본(오키나와 지역을 제외 하고)사람들에게 핍박을 받는 무술이었다고 합니다 기친에 의해 본토에 보급될 1920년대 이 후 라는 점을 들면 아무리 오키나와가 일본의 땅이 된 지금이지만 당시에 자신들의 선조가 일본에 의해 망했을때가 백년이 안되는 세월이었는데 일본군인을 제외한 오키나와 사람들 이 감정이 없었을까요? 일본 본토땅엔 1920년 지나서 당수도가 보급이 되는겁니다! 곧 이후 공수로 되는것이구요.
익명 2010.09.18
10. 중국과 일본의 역사를 다 뒤져도 가라라고 불리는 나라는 없었고, 가라는 오직 옛 한국에만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뼈 아픔이 사무쳐 밀려옵니다 ^^ 그렇다면 한국에 가라(唐)을 뜻하는 국호를 사용했을때는 언제입니까? 그렇다면 공상군과 관공은 우리나라 사람입니까? 백학권이나 식학권에 있는 삼전이 우리나라 택견입니까? 태조권에 있는 권법의 투로들이 우리나라 택견에 있는겁니까?
익명 2010.09.18
우리 태권도의 원로들이 님의 표현데로 라면 아주 무식한 사람처럼 비줘집니다! 하지만 님께서 보기에는 무식할런지는 몰라도 이미 원로들은 한국의 전통무예를 익혔던 분들이 아니라 일본에 있는 당시의 공수도를 익힌 사람들입니다! 적어도 오키나와 당수가 아닌 본토식 공수도를 익힌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익명 2010.09.18
슈리테에서 시작하여 송도관으로 이어지는 공수도가 일본에서 꽃필시기는 2차대전 이후부터 입니다!! 이미 그때 부터 오키나와 테 와 송도관 공수도는 또 다른것이 되었습니다!!! 왜 냐구요?? 분명히 자신도 슈리테에서 기원한 당수를 배웠을 일본 본토 사람인 나카야마 마사도시에 의해서입니다!! 그분은 오키나와 테 와 일본에서 성장한 공수도는 다른것이라 여기며 살아온 사람입니다!! 본인의 뿌리를 일본인의 자존심이 용납을 못한것 같은데
익명 2010.09.18
그러한 나카야마 마사도시의 주장과 님의 주장은 상당히 닮아 있습니다!!! 같은 한국인으로써의 자존심 이라면 그것에는 저도 연민을 느낍니다만!!! 태권도의 뿌리가 이미 공수도 인데 그것을 부정하려 든다면 당수와 공수도가 다른것이라는 뜻과도 같은 주장인셈이죠...그 주장속엔 자신 개인의 자존심? 고집? 이란게 담겨있으니 말이죠....!! 연민을 상당히 느낍니다 님의 글에는 다만 그런 연민을 떠나서 무도 라는 실체적인 몸짖학문에는 근접하지 못한것이 참 연민 중의 연민입니다!
익명 2010.09.18
필자입니다. 열 가지 질의에 대하여 구체적인 반론을 제기해 주신 ... 님께(1) 정말 감사합니다. 님과 같은 분을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저는 님께서 주신 의견에 대하여 일일이 답변하기 보다는, 이런 논의의 키워드는 교류의 시작이 언제인가 밝히는 일에 있다고 보고, 그 연원을 중심으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스스로 명나라 이전에는 오키나와와 왕래를 한 적이 없다고 썼습니다. 그것도 일반인의 여행기나 잡기가 아니라 정사에 나옵니다. ‘명사(明史)’ 권72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오키나와는 동남대해 중에 있는데, 옛날부터 중국과는 왕래하지 않았다. 원나라 세조가 사신을 파견하고 불러 타이르려 하였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명나라 홍무 초에 이 나라에는 세 명의 왕이 있었다. 즉, 중산왕, 남산왕, 북산왕으로 성은 모두 상씨였다. 이중 중산왕이 가장 강했다. 1372년 명나라를 세운 사실을 알리자 중산왕의 동생이 입조하여 공물을 바치면서 관계를 맺게 된다.” 따라서 중국-오키나와의 관계는 1372년 이후부터 살펴도 된다는 사실입니다. 당, 송, 원은 명나라 이전의 왕조니까 당연히 교류가 없었겠죠.
익명 2010.09.18
필자입니다. 열 가지 질의에 대하여 구체적인 반론을 제기해 주신 ... 님께(2) 1799년 오키나와 왕이 죽자 청나라에서는 조문단을 파견합니다. 이 때 동행한 심복이란 사람이 ‘부생육기’라는 기록을 남겼는데, 그는 오키나와 당국이 기록해 놓은 그 동안의 대중국 사절의 명단을 보고 명나라 때 15회 27명, 청나라에 들어 4회 8명이었다고 그 이름을 일일이 받아 적고 있습니다. 그는 이 나라 사람들은 중국을 당산(唐山)이라 쓰고 모로코시라고 발음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가라가 아니라 모로코시라는 발음입니다. 당(唐)이라는 글자가 나오니까 당수(唐手)는 중국의 영향으로 지어진 이름이 아니냐고 속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어나 오키나와어에서 한자표기는 그 뜻에 관계없이 단지 발음기호에 불과할 때가 많습니다. 같은 글자라도 모로코시라고 발음하면 옛 중국, 가라라고 발음하면 옛 한국에 가까운 것입니다. 님께서 “그렇다면 한수(韓手)?”라고 의문을 제기하셨을 때 저는 무릎을 탁 쳤습니다. 한수라는 무예 명칭은 없었지만 그 뜻에서 가장 다가간 표현인 것입니다. 한(韓)을 그들은 가라라고 읽습니다.
익명 2010.09.18
필자입니다. 열 가지 질의에 대하여 구체적인 반론을 제기해 주신 ... 님께(3) 오키나와는 원나라는 물론 고려와도 교류가 없었습니다. 당시 유라시아를 휩쓸었던 원(몽골)의 쿠빌라이(원 세조)가 조공관계를 맺자고 제안했을 때 이를 거부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이 조그만 섬나라밖에 없었습니다. 과연 무슨 배짱이었을까요? ‘원사’나 ‘고려사’를 통틀어 오키나와를 침공한 사실도 없고, 교류한 사실도 없습니다. ‘원사’에 유구를 두 번 침공했다고 나오긴 하지만 오키나와가 아니라 대만이라는 게 학계의 정설입니다. 오키나와는 왜 원과 고려가 각기 망할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새 왕조로 태어난 명과 조선과는 활발한 교류를 전개했을까요? 그것도 먼저 나서서 조공국이 되길 원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는데, 그들은 원과 고려 문물에 대해서는 하찮게 보았던 것일까요? 그렇다면 이 세력은 과연 누구인가라는 의문에서 제 연구는 시작되었습니다. 몽골과 고려에 짓밟힌 세력이 오키나와로 망명하여 숨죽이고 내실을 다지며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면 성립될 수 없는 일이었다는 가설을 세운 다음,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익명 2010.09.18
필자입니다. 열 가지 질의에 대하여 구체적인 반론을 제기해 주신 ... 님께(4) 오키나와는 신석기 시대에서 중세로 돌변한 특이한 문명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문명의 대변혁이 불과 몇 년 동안에 일어난 것입니다. 오키나와의 학자들은 이 시기를 구스쿠 시대라고 합니다. 구스쿠는 백제나 고려 스타일의 석성을 말합니다. 수많은 곳에 엄청난 규모의 석성이 축조되었는데, 대규모의 침략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석성들은 지금도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이 되었고,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관광자원이기도 합니다. 10년 전에 어느 석성을 발굴하는데 고려기와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중에 ‘계유년 고려와장조(高麗瓦壯造)’라고 새겨진 기와가 나온 겁니다. 계유년에 고려의 기와 장인이 만들었다고 쓴 이 기와는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계유년은 1273년이고 삼별초가 몽골과 고려에 맞서 싸우다가 어디론가 사라진 마지막 해입니다. 오니카와 왕조는 이 무렵부터 제대로 성립됩니다. 그 전은 신석기 시대였습니다. 문자로 역사책을 왜곡할 수는 있겠만 이와 같은 고고학적 유물은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익명 2010.09.18
필자입니다. 열 가지 질의에 대하여 구체적인 반론을 제기해 주신 ... 님께(5) 오키나와의 문명과 역사는 신석기 시대는 물론이고 중세 전반을 통틀어 중국이나 일본에 의해 주도된 적이 없습니다. 1273-1872년 까지 영조왕조와 상씨왕조는 모두 고려 출신과 그 후예들에 의하여 주도되었다는 것이 제 연구 결과입니다. 다만 이들이 고려출신이긴 했지만 고려왕조를 인정하지 않았고, 고대 한국, 즉 삼한(가라)을 조국으로 삼았습니다. 16세기초 대항해시대를 연 포르투갈 사람들은 오키나와 사람을 고려인이라고 썼습니다. 물론 근대에 와서 일본에 복속되었고, 메이지유신 무렵에 완전히 병합되었습니다. ‘중산세보’를 비롯한 오키나와의 정사 3권은 일본에 의해 복속된 후 친일파 학자에 의해 쓰여진 것이어서 왜곡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합니다. 당(唐)이라는 글자에 대해서도 생김새나 옥편에 나온 뜻으로만 보면 안되고 일본과 오키나와 특유의 독법(讀法)을 살펴야 합니다. 김용옥 선생도 저서에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당수의 당이 무엇인지 정체를 밝히려면 과연 그것이 지리적인 중국을 뜻하는가, 그 밖의 나라인가, 아니면 추상적인 최상이나 선진을 뜻하는가와 같이 여러 각도로 살펴야 합니다. 아 참, 저는 가라테나 후나코시로 써왔고, 토우나 도우가 아니라 도오를 택했는데 순전히 제 개인 취향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제 뜻과 달리 태권도 원로들을 비하하는 것 처럼 들렸다면 사과드립니다. 또, 저는 태권도에 대한 가라데의 영향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당수와 공수가 다른 것으로 보지도 않고요. 감사합니다.
익명 2010.09.18
필자입니다. 열 가지 질의에 대하여 구체적인 반론을 제기해 주신 ... 님께(6) 가라데의 조상들은 모두 어려서부터 슈리성 앞에 달린 종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슈리성에 가면 지금도 ‘만국진량(万國津梁)의 종’이 달려 있습니다. 오키나와 왕국의 7대왕 상태구는 세계로 뻗어가는 오키나와를 기원하며 이 종을 만들었는데, 남양무역의 중계지로서 번영하고 있던 당시의 오키나와가 세계를 잇는 다리가 되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국가중요문화재로 지정된 이 종의 명문에는 삼한, 즉 가라를 본받으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오키나와(琉球國)는 남해의 승지(勝地)에 위치하고 있다. 오키나와는 삼한(三韓)의 빼어난 것을 본받는다. 오키나와는 대명(大明), 일역(日域)과 불가분의 관계로 상호 의존하고 있다.” 여기서 삼한을 그들은 가라라고 읽었으며, 그 뜻은 고대한국입니다. 삼한-가라는 중국이나 일본과 아무 관계가 없으며 표기를 당이라고 바꾸더라도 가라라고 읽는 한 고대한국을 뜻하는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익명 2010.09.19
가라데측에서는 역사를 우리나라로 보지않고 당나라 소림사의 달마대사로 보고 있다. 달마선사가 인도에서 중국의 여행에 산적이나 들짐승의 위협에서 호신술 배운것을 가라데 시초로 보고 있다. 당수도는 말풀이하자면 중국 당나라 권법이란 말인데 소림사권법을 칭한다고 보여진다. 그들의 주장이라면. 하지만 지금의 가라데와 현 소림사권법은 확연히 차이가 많다. 그런데 문제 제기는 과거 역사가 어떻든 간에 현재의 태권도 품새 기술과정이 바로 가라데와 너무나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익명 2010.09.19
ITF로 가면 그 기술적으로 더 확연하게 알 수가 있다. 심지어는 초기 창헌류 과정에서 쇼도칸 가라데 유단자 형인 철기(태기)나 박성대 (밧사이대)? 있었다는 것. 지금은 아니지만. 가라데의 소림사 기원을 어떻게 설명할것인지. 그리고 명확한 사실은 지금 현 태권도 기술체계는 가라데와 많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에 훌륭한 고대전통무술이 있었겠지만(수박) 현 태권도를 여기에 적용시키기엔......
익명 2010.09.19
필자입니다. 좋은 의견 올려주신 당수 님께, 무술계에서는 기원을 밝히기 애매할 경우 달마대사에서 시작되어 전수되었다고 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아무래도 달마에 기대버리면 안전하고, 딴지를 거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생각해서였다고 봅니다. 그러나 후나코시 키친의 스승인 이토스 야스츠네(絲州安恒)는 이런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가라데는 불교나 유교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못박았습니다. 김용옥 선생도 저서에서 가라데의 기원은 소림사와 상관이 없다고 썼습니다. 제가 이 토론마당에 이미 올린 “중국무술의 환상”이라는 글을 참조해 주십시오. 우선 기원을 밝힌 다음에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 살피는 게 순서입니다. 무술은 아무리 그것이 비전이라고 하더라도 문화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더 나은 것이 있다면 그 영향을 받게 마련입니다. 가라데에 공상군이 있다는 사실 한가지로 가라데의 기원을 중국이나 달마 등으로 단정하는 것은 곤란하고, 청나라와의 교류과정에서 중국무술가로부터 일부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태권도에 대한 가라데의 영향은 잘 아시는대로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부끄러운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감사합니다.
익명 2010.09.19
필자입니다. 좋은 의견 올려주신 당수 님께, 질문 가운데, 공산군을 가라데 유래에 연결시키는 것을 대도필기설이라고 합니다. 1762년 오키나와 배가 일본의 어느 섬에 표착했는데, 타고 있던 오키나와 무인이 거기 머무는 동안 자기 나라 문물에 대한 이야기를 현지인에게 해주었고, 그 결과 ‘대도필기’라는 책이 나오게 됩니다. 내용 중에 6년 전(1756년) 오키나와에 청나라 무관 공상군이 와서 조합술이라는 주먹 기술을 보여주고 사람들에게 가르쳤다고 합니다. 이 기록이 오키나와의 무술에서 가장 오래된 기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공직에 있는 청나라 무인이 다른 나라에 가서 선진무술을 전수하고 다녀도 괜찮았을까요? 그리고 이 때는 오키나와가 일본에게 무력으로 복속되어 있는 상태였는데, 피지배국의 무인이 침략국인 일본 사람에게 이런 사실을 자랑하고도 모자라 책으로 펴내게 해도 무사했을까요? 상식적으로 청나라, 일본, 오키나와 세 나라 지배자라면 두루 용납할 수 없는 일이 버젓이 기록될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요? 감사합니다.
익명 2010.09.19
여러분들의 좋은 의견에 태권도인의 한 사람으로 정말 흐뭇합니다. 그리고 당수님의 의견에 공감을 하면서 짧은 제 소견을 하나 올립니다. ~~~ 그런데 문제 제기는 과거 역사가 어떻든 간에 현재의 태권도 품새 기술과정이 바로 가라데와 너무나 비슷하다 (중략) ~~~ 이 부분은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동양 3국이 같은 문화권에 있었기 때문에 그 학문의 차이가 대동소이 하다는 것입니다. 다만 자국화 하는 과정에서 다소 시간의 차이일 뿐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일본 가라데의 연무형을 분석해보면 다양한 종류의 기법과 연무선을 가지고 있는 데, 이것은 많은 종류의 무술이 하나로 합하여 만들어 진 것이 가라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무예도보통지와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저는 봅니다. 또한 가라데에서 한 개의 연무형은 한 개의 무술유파에서 나왔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익명 2010.09.19
제 리서치 과정에서 발견한 것 중에 태권도의 품새를 만드신 분 중에 몇분을 만나 확인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은 어느한 분이 품새를 만든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모여서 만들었다는 것과. 품새를 만들었던 분들이 한국 전통무도에 관한 자료와 지식이 많은 부분 부족하여 자기들의 경험 안에서 만들어 지게 된 이유가 가라데의 형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이유인 것 같습니다. 특히 가라데의 연무형에서 우리의 전통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연무형을 찾으라면 저는 망설이지 않고 평안형(일본말 헤이안)을 꼽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평안형은 다른 연무형들에 비해 독특한 연무선의 체계와 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연무형은 十(열십)자나 一(한 일)자를 택하고 있는 데 평안형은 工(장인공)자를 택하고 있음에 유의해 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 장인공자는 다름 아닌 천지인의 홍익인간 사상을 표현하는 그래프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이 평안형은 원래 원형이 3개 였으나 이도스란 분에 의해 5개의 형으로 변형되는 과정에서 원래명칭이 제남 또는 짱난에서 헤이안으로 바뀌었다는 점 또한 유의해야 합니다. 왜 인지는 먼저번에 말씀 드리바 있습니다.
익명 2010.09.19
한 가지 더 올리 도록하겠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가라데나 태권도에서 첫 번째로 하는 동작인 준비자세에 관한 애기입니다. 왜다른 무술에는 없는 이 준비자세가 가라데의 평안형에는 있을 까요? 가라데의 연무형에는 대부분 두 번의 준비자세를 취 하는 데 하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하는 준비자세와 가라데의 연무형에 따른 각각의 다른 준비자세가 있습니다. 이것은 가라데에 다른 무술이 유입데는 과정에서 평안형의 준비자세가 다른 어떤 형보다도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애기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준비자세가 정확히 한국의 전통사상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형이 만들어진 위치도 표시가 되어 있는 점이죠.
익명 2010.09.19
준비자세는 형이상학의 철학적인 부분과 형이하학의 원방각 이론이 동작부분과 정확히 일치를 하고 있는 동작입니다. 또한 평안형의 연무선과도 일치를 하며 연무형의 갯수와도 일치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연의 일치일까요? 그리고 제 개인의 수련경험을 토대로 한다면 지금까지 봐온 호흡법 중에서 가장 간단 명료하며 그 수련효과 면에서도 아주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렸던 무형의 유산이란 것은 아무리 동작적으로 변형이 되어도 그 문화의 정신 만큼은 변형하기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입니다. 가라데가 일본의 전통인 것을 부정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가라데에 남아 있는 이런 부분의 우리의 전통문화를 찾아 우리 선조들의 훌륭했던 문화들을 회복하여 그 유익함을 일상생활에서 공유 하자는 것이 저의 작은 뜻이었던 것입니다. 가라데에 남아 있는 한국의 전통을 통하여 태권도의 새로운 역사가 정립이 된다고 해서 가라데가 그, 뿌리라고는 애기 할 수 없는 것 아니겠는 지요.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
익명 2010.09.19
차제에 처절한 논쟁과 역사속 진실이 밝혀지고 정리되어 미흡한 대한무예의 전통과 본질에 대한 개념이 확고해지는 계기가 되길 학수고대합니다.시간나는 대로 자주들러서 이 논의의 장을 지켜보겠습니다.
익명 2010.09.19
필자님께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제 기억이 정확한 지는 잘모르겠으나 1980년 12월호 블랙밸트 매가진으로 기억을 합니다. 거기서 두 가지의 자료를 본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하나는 무덕관에 관련된 자료와 다른 하나는 공수도와 가라데의 명칭에 관련된 자료였는 데, 일본 무도협회의 공식 입장 표명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거기에는 공수의 명칭과 가라데는 같은 무술이다와 공수의 어원 이후가라데라고 불리워졌다는 내용으로 본인은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어떻게 생각을 하시는 지요? 물론 필자님의 글을 읽어 지금까지의 내용은 잘 알고 있고 필자님의 의견에도 역사적인 다른 각도에서 많은 부분 공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짧은 정보에 좀 혼란 스러움이 생겨서 질문을 드리는 바입니다. 필자님의 고견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익명 2010.09.19
감히 토론에 대상이 되지도 못하면서 또 다른 글로 표명합니다. 제가 수련한 태권도 접목시기의 형은 팔괘형 평안형 공상궁, 철기형 이런 형을 배웠고 현재 공수도 의 준비세 와 당시 태권도의 준비세가 처음에는 비슷했는데 추후 태권도의 준비세가 주춤세로 바뀌며 공수도는 쌍권을 쥐고 아래에서 옆으로 짜는 준비세를 취하고 태권도의 주춤세는 쌍권을 가슴위에서 아래로 내려짜는 자세로 변형되었죠. 현재 태권도의 품세 중 평안형을 4단에서 비슷하게 할것인데 공수도의 초기입문은 기초 1~형. 평안 1~5단 을 배운후 유단자형 약 15개를 배우게되는데 공수도에는 현재 약 100개의 형이 존재하는데 실전에서는 약 20개 미만의 형을 사용하고있는 반면 태권도는 태극 1~8장. 고려 금강 품세등 유단자가 되면 일년에 한개정도 형을 배우는 한계가 단점인것 같고 너무 무술의 극치를 벗어나 대련 발차기 시범 경기위주로 변천하는것이 아쉽다고 생각하여 참지못하고 글을 또 &#50043;습니다. 졸필 게제함을 양지바랍니다.
익명 2010.09.19
필자입니다. 연무선과 관련하여 hero999usa 님께 질문 드립니다. 연무선의 형태를 논할 때, 우선 추상성을 완전히 배제시키고 원래 구체적인 목적이 무엇이었나를 살펴보면 어떨까요? 무예는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수련되었습니다. 외부의 적은 동서남북의 어느 방위에서든 들어 올 수 있었기 때문에, 오방에서 가운데야말로 무인들이 수호해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제 사견으로는 모든 연무선을 다 합쳐도 田자를 넘어서지 않는다고 봅니다. 이 안에 왕이 있고, 산과 땅이 다 들어 있습니다. 무인의 책임은 이 것들을 가운데 두고 사방에 서서 밖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연무선이 가운데를 통과한다고 하여도 그것마저도 가운데를 지키기 위함이고, 단지 다른 방위로 건너가는 다리로 이해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여기서 가운데 방위가 곧 하늘=왕=백성이라고 봅니다만… 좋은 의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익명 2010.09.20
필자입니다. 블랙벨트 매거진에 대해 질문 주신 hero999usa 님께, 이 잡지는 제가 구독한 적이 없어서 아는 바 거의 없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일본무도협회에서 공수의 어원 이후 가라데라고 불렀다면, 연도를 찾아봐야겠지만 1902년경을 염두에 둔 것 같습니다. 오키나와에서 공수를 먼저, 당수를 나중에 가라데의 표기로 사용했거나 이 둘을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같이 사용했을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 다만 가라데의 표기를 공수로 통일한 것은 1936년의 일입니다. 저도 궁금한데, 혹시 그 기사를 찾아봐 주실 수는 있으신지요? 감사합니다.
익명 2010.09.20
필자입니다. <<무한 님께 >> 오늘도 무한한 열정을 느끼게 해주신 무한 님께 감사드리며, 감히 질문을 올리고자 합니다. 저는 태권도는 물론 어떤 무술도 수련한 적이 없어서 무한 님의 높은 경지를 느낄 수 없음이 안타깝고, 그런 만큼 존경스럽습니다. 제 진정을 아무런 선입견 없이 받아 주십시오. 제 질문은 두 가지입니다. 님께서 수련해오신 여러 품새를 바탕으로 스스로 판단하실 때, (1) 현재의 가라데나 태권도 겨루기에는 없는 찌르기, 조르기, 메치기, 박치기, 팔꿈치나 무릎으로 가격하기와 같은 기술들이 품새의 원형에 남아 있습니까? (2) 님께서 수련해오신 품새에다 창이나 검이 손에 쥐어 진다면 병장기 무술로 전투의 현장에서 곧바로 쓰일 수 있었거나, 지금도 쓰일 수 있다고 보십니까? 쇼토칸, 창헌류를 포함한 모든 품새를 바탕으로 간단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시간이 없으시면 그냥 예스, 노라고만 해주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익명 2010.09.20
필자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신석기 시대라 함은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사냥과 채집에 의존하였으며, 날씨가 따뜻한 오키나와 같은 곳은 늘 열리는 열매를 따거나 물고기를 잡고 살던 시대를 말합니다. 무기라고 해야 돌도끼, 돌칼, 돌화살이 전부였던 시절입니다. 그런데 오키나와는 서기 1270년 무렵만 해도 신석기 시대였습니다. 문명의 발전이 아주 늦은 경우입니다. 당나라는 1270년을 기준으로 650년 전인 서기 618년에 성립되었고, 이미 동양 최고의 문명국가였습니다. 오키나와는 신석기 시대에 문명국 당나라의 무술을 전수받았다가 후대에 전한 것일까요? 당나라는 물론이고 송나라도 이미 끝나고 원나라가 시작될 무렵이었지만 오키나와는 신석기 시대였습니다.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익명 2010.09.20
품새를 안다고 하면 적어도 20년 이상의 수련이 필요로 하죠. 밭전자 이외도 물 수자로 움직이는 품새도 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무술에 대해서 논하려면 어느 정도의 상식은 있어야 하지 않을 까요? 어떻게 태권도 태자도 모르는 분이 태권도 전반에 걸친과정 이야기 까지 논 할 수있다는 건지 의아 하군요. 애시당초 태권도는 몸을 단련시켜 무기 처럼 사용하는거고 무릎까기 잡아치기 찌르기 품새에 다 있습니다. 조르기나 메치기는 유술이고요.
익명 2010.09.20
필자님의 연무선에 관한 질문에 대한 저의 짧은 소견을 올립니다. ~~~연무선의 형태를 논할 때, 우선 추상성을 완전히 배제시키고 원래 구체적인 목적이 무엇이었나를 살펴보면 어떨까요? (중략) <--- 이 부분에 대하여 지금까지 저의 공부를 토대로 말씀드린다면 품새와 겨루기는 각각의 역활이 따로 있다는 것이 저의 결론입니다. 제가 필자님의 질문의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지 잘 모르겠지 만 그 내용이 무도기술의 운용법 즉 호신술이나 겨루기에 관련된 질문으로 이해가 됩니다. 그렇다고 가정을 하고 저의 &#51685;은 소견을 올립니다. 품새수련을 통해서 우리가 배우고자하는 것은 운용법 보다는 신체적으로는 기술의 숙련도를 높이고, 정신적으로는 품새가 가지고 있는 학문적 정신적 사상을 신체수련을 통한여 체득하는 데 그 수련의 의미가 강하다고 봅니다.
익명 2010.09.20
왜냐하면 1. 품새에는 많은 호신술이나 겨루기의 기술이 없다. 2. 같은 동작이 좌우로 구성되어 신체의 밸랜스를 염두에 두고 전후좌우 방향전환과 함께 지속적으로 수련된다. 3, 연무선이 자연철학의 공식을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 4. 품새 수련은 반드시 호흡법과 함께 수련된다. 5. 무도수련의 전체적인 부분을 포괄하고 있어 수련의 편리함을 가지고 있다. 6. 지속적으로 수련할 경우 체력적 향상과 기법(수 - 각각의 세의 조합을 말 함)의 향상을 가져 올 수 있다 . 7. 그 품새가 가지는 학문적 사상이나 철학을 품새수련을 통해 혼자서 지속적으로 반복하여 공부할 수 있다. 8. 품새의 숙련도에 따라 미(美), 선(線), 율(律)의 예술적 표현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9. 품새수련의 많은 부분이 일상생활에 직 간접적으로 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등등의 이유로 이 부분은 수련자의 건강과 학문적 공부를 위한 수행의 수단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는 것이 짧은 저의 소견입니 다. 감사합니다.
익명 2010.09.20
제 사견으로는 모든 연무선을 다 합쳐도 田자를 넘어서지 않는다고 봅니다. 이 안에 왕이 있고, 산과 땅이 다 들어 있습니다. (중략)<---- 이부분은 필자님이 말씀하신 운용법과 관련이 되어 있는 부분인 데, 제 짧은 기억으로는 바둑이나 장기에서 많이 인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품새에서는 글자나 그래프가 모두 자연철학의 공식을 따라 구성되어 있고, 그 것이 건강학적으로 연결이 되어있다고 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참고로 어떤 분들은 품새를 필자님 처럼 유형의 운용법으로 보시는 분들도 가끔있습니다. 이것은 여러가지의 목적이나 상황에 따라 달리 해석이 가능할 수 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통적인 견해는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바와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익명 2010.09.20
필자님께서 부탁하신 자료는 제가 찾는 데로 필자님의 이메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필자님의 열정에 감사드립니다.
익명 2010.09.20
우선 필자께서는 태권도이든 무엇이든 간에 한국무를 수행하시는 분이 아니신데도..이처럼 한국무술에 대한 초특급의 관심과 역사적 학습과 연구를 하시며 많은 무인이라고 하시는 분들께 자극과 통찰을 하게끔 해주시는데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미력하나마 필자님의 노고에 성의를 표하고자 저도 제방식의 태권도이해와 실행방식을 몇자 적어올리겠습니다.1, 지금 태권도에서 품새라고 하는 것은 중국무술에서 칭하는 투로,일본무술에서 칭하는 가다, 또 다른 표현으로 형, 본,틀...등 어떤 명칭으로 불지워지던지 간에....본질은 무술의 본질인 상박(겨루기)을 함축적으로 담아 수련할수 있도록 정리된 동작들의 연결된 것이라고 봅니다.
익명 2010.09.20
2,그러나 연무동작들은 제한된 범위와 방법...이는 제한된 시간내에 일정수준으로 수행자의 무행능력을 배양하기위한 목적 등...내에 갇히게 되는 한계가 아닌가 여겨집니다.물론 무술마다 각자의 특징을 최대한 수행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할지라도 여전히 일정수의 제한된 동작과 방법만이 품새에는 등장할 수 밖에 없다고 보여집니다.중국우슈의 투로와 가라데의 형,현대태권도의 품새,기타 다른 무술들이 보여주는 형들의 동작구성요소들과 연무선은 무술본연의 상박을 가장크게 중심에 두고 가능한한 복합적으로 구성하려고 한 고민은 보여지나 앞서 말씀드린 한계때문에 모든 동작을 다 포함하지는 못한 듯 합니다.
익명 2010.09.20
3,결국 품새의 구조 즉 구성요소는 어떤 무술의 전체가 아니라 일부만 표현하고 담고 있을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따라서 품새 역시 어떤무술이 궁구하는 상박의 수행을 위한 일부기술 기법만을 보여준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달리 말씀드리면 품새를 통해 어떤 무술의 본질을 논하기에는 뭔가 불완전하며 부적당하다는 것이 저의 소견입니다. 4, 품새는 상박의 본질에 접근하기위해 정리한 연무동작들이지만,이를 연마 수련하는 과정에서 일정부문 신체적 변화(발달,강화,변질..등)를 기할 수 있으며, 이는 오늘날 중국무술들에서 깊이 주창되는 양생법,한국무들이 내새우는 건강무술(체육)의 利가 일정부분 인정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익명 2010.09.20
4,태권도의 품새에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후천적이고 부대적인 요소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품새동작의 유형에서 형이상학적 요소를 얻거나 학습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수련이나 수행을 하는 과정속에서 형이상학적 의미를 부여하여 수련하거나 수행하는 것이라고 봅니다.연무선이나 동작에 태극이니 뭐니 하는 형이상학적 요소들의 의미를 삽입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외부적으로 자의적으로 부여하는 수행자의 의지이지 품새의 구성요소나 연무선이 그 의미를 담고있지는 않지 않는냐 하는 것입니다.
익명 2010.09.20
5,품새의 의의, 수련은....추상적(형이상학적) 비추상적(실제적) 의미를 모두 포함하여 수련하고 수행할 수 있다고 봅니다.상박이라는 본질적으로만 국한하고 보면 지금의 태권도품새는 무용론으로 귀착된다고 봅니다.왜냐하면 실전적 실제적 문제로 접근해보면 상당히 부족하고 일편적이기 때문입니다.그러나 건강한 육신-건강한 정신-건강한 생활-생활철학의 습득-득도의 연결적 고리를 정리하고 수련에 임한다면 나름대로의 가치를 부분부분 찾아낼 수 있다고 봅니다.제 개인적 이견으로는 지금 현대태권도의 품새는 그 구성요소나 연무방식에서 초기가라데의 학습이 많이 작용한 것으로, 한국형무술의 현대태권도가 지향하는 방향에서는 많이 차이가 있으며 효용도가 많이 떨어지는 것으로 까지 생각합니다.한국적 태권도품새가 완전히 새로이 구성되거나, 기존의 품새구성요소라 하더라도 연무 수행시 태권도의 본질과 원리에 맞는 수련과 수행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익명 2010.09.20
제가 감히 공개되는 넷상에 이런 말씀을 올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한국무술의 본질에 접근하기위해서는 반드시 이러한 논란은 한번은 치열하게 이루어져야한다고 생각되어 몇마디 더 적겠습니다.6,품새는 명칭이나 구성요소 즉 동작도 중요하겠지요.된장국을 끊일려면 된장국에 맞는 재료가 준비되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태권도품새의 구성요소 또한 그렇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지금의 태권도품새동작에 대한 깊은 연구와 성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그러나 비록 재료가 된장국에 알맞은 재료가 아니라 비슷한 재료라 할지라도 된장국의 레시피에 맞게 요리하자는 것입니다.이 또한 오늘날 태권도품새의 수행법이 많이 고쳐졌다지만 아직도 태권도답지않은 과거학습(?)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어 유감이라는 것이 제 개인적 생각입니다.지금의 품새에서라도 수행방식과 연무가 태권도의 틀로 완전히 정립되길 바라는 것입니다.이는 韓武의 틀에서 아주 쪼그러들어버린 태권도라는 명명의 한계까지도 저의 유감에 포함되는 것일 겁니다.
익명 2010.09.20
요기 글을 쓰는 목적이 먼가요? 조기 아래 님이 글올린거에 제가 댓글을 달았더만 글 내용을 바꿨던데 혹시 여기서 글에 논리와 오류를 수정해서 논문쓰시는건가여??? 머 어쨌던 글 내용에 지식들과 논리들은 상당히 설득력을 가지고 있네요 일반인들 보면 다 어~ 그럴 수도 있구나 할 정도로요 ㅋㅋㅋ
익명 2010.09.20
형과 품세의 비유 우선 그동안 미약한 필자 무인의 글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드리며 필자가 드리는 말씀은 오직 배운 외공 기술 형과 품세를 어떻게 응용하는지에 대해서만 말씀드리며 학술적 표현은 필력이 부족하여 적절히 표현하지 못함을 이해바라며 글을 기록합니다. 우선 형과 품세를 설명하려면 기초 운동의 기틀이 없거나 대체적으로 많은 무술을 오래 수련하지 못하면 표현과 이해력이 떨어짐으로 이해를 강구하려면 실기와 이론을 연구해야 가능합니다. 기초 실기론: 외공이라 말하며 즉 움직이는 실기의 형태 수련을 외공이라 하여 이런 수련은 오랫동안 많이 연습한 사람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며 운동 능력이 떨어지는 나이가되어도 움직이는 상대의 발걸음과 눈빛으로 원만한 상대는 발을 사용하지 않고 양손으로 대적할 수 있었다. 내공: 외공의 한계 수련의 깊이를 초과한 사람만이 할 수 있고 느끼므로 보이지 않는 우주에 힘과 원리를 응용하여 감춰진 비기를 발휘하는데 그 신비에 힘은 이상한 힘을 발휘하기도하고 상대방을 눈빛으로 제압하기도하며 병든 자를 치유하기도하였다. 물론 여기까지 경험하기위해서는 우연히 접한 기공 수련의 역할이 너무 큰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1)
익명 2010.09.20
그럼으로 요즘 선수 지도자들이 수련한 한계는 대부분 외공 수련 동작 형이나 경기체육이라고 필자는 말할 수 있는데 필자가 이러한 말을 할수있는것도 누가 뭐라 하던 솔직히 너무 많은 운동을 무지하게 배운 경험으로 말씀드릴 뿐이므로 경험하지 못한 분들은 이해하기가 힘들 것이다. 지금부터 필자가 거론한 무술은 오직 자랑이 아니라 상기 무술의 분석과 답변을 위해 말하는 것이니 오해가 없기를 바라며......... 태권도, 합기도 검도, 공수도(가라데), 화랑도. 한무도. 유술, 씨름, 보디빌딩, 기공, 스포츠맛사지 등 대략 이정도 운동들을 즐겨하였고 모두 나름대로 상당한 중복된 수련의 시간이 일치하여 가능했었고 이정도를 해야만 조금의 깨우침도 얻고 상대방 무술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상기 무술들을 제법 오랫동안 수련하여 자도자격을 필했기에 사이비는 아닐 것이며, 이해 못할 보디빌딩의 경우도 15세에 바벨을 잡아 체전까지 입상한 경력이 있고 약 5년전 만 49세까지 선수생활을 해왔고 공수도 역시 2008년 까지 선수로 활동하며 2009년 전국체전 선수참가까지 한바있으며 씨름도 무명에 지역 체육대회까지 참가하며 얻은 경험을 피력한 것이니 믿지 못할 수도있겠지만 문의하신 형과 품세를 설명하자면 걸어온 환경과 기초를 말씀드려야 연구하시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거론하는 것입니다. (2)
익명 2010.09.20
아울러 필자가 검도에 대한 본회 교재와 경기 룰을 여러 번 만들다보니 실기에 이치를 많이 깨달은 것 같고 여러 무술을 수련한 보법과 자세를 응용하니 오히려 오래배운 선수들을 금세 추월했고 경기에서 이기는 현상까지 나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과거에 배운 태권도와 합기도 공수도의 발차기 형들은 너무 유사하여 오히려 여러 종목을 수련하는데 어려움이 적었으며 근대 태권도의 현란한 발차기의 경기력을 필자가 모두 발휘하기는 부족하나 응용하는 기술은 분명히 있습니다. 태권도의 품세와 가라데의 품세를 비유하셨는데 분명한 것은 , 가라데 와 합기도의 형속 엔 모든 기초 자세가 있으며 형을 풀이 응용하면 발차기 잡기 권법 유술 잡고 넘기기 검술 같은 술기까지 응용할 수 있는 동작들이 삽입되어있으며 실전 경기에서도 형에 원리를 풀어 발휘하는 기술이 경기 화 되었는데 머리로 받는다든가 하는 동작들은 실전 가라데 에서는 가능하나 아마추어 경기단체에서는 하지 않으며 합기도 경기에서도 비슷한 경기운영을 하고 있고 실제 발차기가 가라데 와 너무 흡사한 것을 배운 분만이 금새 느낍니다. (3)
익명 2010.09.20
특히 가라데의 잡아 넘기고 정권지르기 3점 기술은 합기도의 족방술에 해당하는 기술이라서 가라데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생각하며 형의 이해를 살펴봐도 동작의 자세가 바뀌었지만 많이 유사함을 느낄 수 있는데 합기도의 비기중 병기술 을 배우면 18반에 나오는 검술.단검술.단봉술. 부채술.지팡이술.포박술.유술,봉술.창술.호신술(수백가지임) 낙법.체조. 응급처치술 등 많은 병기술을 배울 수 있어 태권도의 단촐한 기술에 비해 너무 방대함을 알수있지요. 반대로 태권도의 품새를 그려보면 연무선의 진로는 天 王 으로 거의 흡사하며 동작도 아직 많이 닮은 것을 알 수 있는데 주로 끊고 막는 수비위주의 동작으로 가라 데나 합기도와는 많이 수비 방어를 하는 동작으로 단조로움이 있는데 필자가 어릴 적 배운 태권도 형과 현대 태권도의 기술 차이는 많이 틀려졌고 변형되어 지금은 발차기 경기위주에 있다 보니 기술이 폐쇄되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정권지르기 기마자세 막고 차기 등 형은 보여주기 위한 시범 기술에 비유된다고 필자는 말할 수 있습니다 (4)
익명 2010.09.20
또한 요즘 태권도 시범 단들이 보여주는 묘기위주의 낙법 호신술 발차기 등은 주로 대학 체육과에서 합기도 등 타 무술의 방법을 인용한 시범 동작이 분명하여 나이 먹은 원만한 지도자들은 하기도 힘들 것입니다. 아울러 종목이 무엇이든 자기가 배운 무술을 근거로 기타 응용되는 응급처치론. 호신술. 낙법 등은 배워두면 모두 자기의 삶에 도움이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필히 기공을 배우고 합기도의 술기를 응용해야만 살기위한 직업의 현장에서 기술이 부족하다는 말을 면할 수가 있는데 근대 태권도의 기술은 국기라는 말에 어울리지 않게도 차포를 떼었는지 보여줄 것이 별로 없는 경기 외공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졸필 읽어주셔 감사하며 제 말이 모두 맞는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끝 ,무한
익명 2010.09.20
필자입니다. <<말장난>>님께, 여기에 제가 글을 쓰는 목적은 (1) 가라데의 기원은 인도-중국-오키나와가 아니라 고려-오키나와임을 밝히고 (2) 태권도는 수박을 전통으로 하여 가라데 뿐만 아니라 십팔기와 택견의 영향을 두루 받아 현대무예로 다시 태어났음을 밝힘으로써 (3) 태권도의 역사를 정립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기본적인 연구는 이미 마쳤고, 석사나 박사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공개 마당에 풀어 놓고 제 논리의 오류를 수정하기 위한 것은 맞습니다. 이미 많은 도움을 받고 있음에 깊은 감사드립니다.
익명 2010.09.20
<<무한>>님께(1) 역시 외공 내공을 두루 겸비하신 진정한 무인이셨군요. 그 동안 알아보지 못하고 결례가 있었다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신에 대해 밝히시기가 쉽지 않으셨을 텐데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큰 결심을 해 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간단한 답변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님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토록 자세하게 알려 주심으로써 무예를 하는 많은 분들께도 큰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마침 <당수>님, 님, <박종한>님께서도 그 동안 수련해온 품새를 바탕으로 좋은 의견 올려 주셨습니다. 이분들께도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깊은 감사 드립니다. 마침 <당수>님, 님, <박종한>님께서도 그 동안 수련해온 품새를 바탕으로 좋은 의견 올려 주셨습니다. 이분들께도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깊은 감사 드립니다.
익명 2010.09.20
필자입니다. <<무한>>님께(2) 저는 문외한이라 합기도의 기술이 가라데와 그렇게 닮은 데가 많은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님께서는 가라데와 합기도의 형 속에 공통으로 발차기는 물론이고, 잡기, 권법, 유술, 잡고 넘기기, 검술 같은 술기까지 응용할 수 있는 동작들이 삽입되어 있다고 하셨고, 머리박치기도 실전 가라데에서는 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가라데의 잡아 넘기고 정권지르기 3점 기술은 합기도의 족방술에 영향을 주었다고 보셨습니다. 결국 태권도가 가라데의 영향을 받았으므로 초기 태권도 사범들께서는 이 모든 것을 두루 배우고 숙지하고 있었다고 이해해도 되겠군요?
익명 2010.09.20
필자입니다. <<무한>>님께(3) 다음으로, 합기도의 병기술을 배우면 18반에 나오는 검술, 창술, 봉술, 포박술 등 수많은 기술을 배울 수 있다고 하셨는데, 가라데나 초기 태권도에도 이런 원형이 남아 있었나요? 제가 자꾸 이런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일본인들이 임진왜란 때 조선의 유술을 가져다 일본화시켰다는 사학자 신채호 선생의 주장 때문인데, 그는 수박이 곧 유술이라고 칭했습니다. 또, 잘 아시겠지만 ‘무예도보통지’ 24반 직전에 사도세자가 만든 것이 창술, 검술, 봉술과 권법 18가지로 구성된 십팔기인데, 일본 유술이 합기도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온 것은 가라데보다 늦은 1940년대이며, 조선 십팔기는 이보다 2백년도 더 전에 나온 종합 병기술이거든요? 결국 제 의문은 조선 십팔기의 원형이 가라데나 합기도에 남아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조선 십팔기는 조선군이 해체되던 1917년까지만 해도 군대에서 수련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님께서 수련하신 경험을 바탕으로 간단한 답변 부탁드립니다. 자꾸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익명 2010.09.20
hero999uas 님 보십시오. 님께서 주신 힌트를 보고 일본어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니 이런 내용이 있군요. 明治38年(1905年)、沖&#32260;&#30476;立第一中&#23398;校(現&#12539;首里高等&#23398;校)で唐手の指導を行う。また、この年の8月、「空手組手」という組手&#30740;究に&#38306;する文章を記し、「空手」の文字をはじめて使用した。これは、船越義珍が唐手を空手に改名するよりも、30年ほど前のことである。 “1905년 오키나와현립 제일중학교에 당수를 지도하던 하나시로 초모는(花城長茂, 1869-1945)는 그 해 8월 “공수조수(空手組手)”라는 책을 쓰면서 공수(空手)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후나코시 키친이 당수를 공수로 개명하기 30년 전의 일이다.” 결국, 가라데의 권성인 이토스 야스츠네 선생에게서 배운 수제자 두 분께서 같은 시기에 당수(唐手)와 공수(空手)를 번갈아 사용하다가 결국 1935년에 공수로 통일했으며, 이로써 이 분들은 당나라라고 하는 중국왕조를 염두에 두고 가라데라는 이름을 지은 게 아니였다는 게 분명해진 것 같습니다. 공부가 깊으신 님 덕으로 중요한 사실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익명 2010.09.20
답변입니다= 합기도의 검술은 정검형 과 역검형 단검형 쌍검형 등 을 시연하지요. 물론 저도 그런 술기들의 보급 과정은 모르며 그런 검술들이 실전 진검술 을 수련한 후 실전 응용을 해보았는데 합기도의 검술은 시각적인 시범으로는 훨씬 멋있지만 실전에서 일본 도법 기술과 같은 동작으로 베기 실습을 하면 합기도 검술로는 목표물을 벨수가 없었지요, 현재 우리나라에 수십 개 문파의 검도협회가 있고 모두 우리고유의 검도단체라고 대변하지만 실전에서 사용하는 검도 진검 도법 술기동작이 일본 사무라이식 베기 동작임을 알 수 있고 그렇게 보급되며 계승되었으며 맨 처음 검도협회라는 대한검도회 역시 죽도술기 외에는 진검 보급이 안됐었고 90년 후반부터 대한검도회 에서도 진검을 보급하였는데 그런 술기를 보급한 사람이 이영식 정찬주씨 이런 분들이 진검 도법을 보급하여 여러 문파에 전해지며 실전 진 검술이 정착했는데 정작 진검의 모양새는 일본 사무라이 검 제작 방법을 면할 수 없겠지요, 한국에 전통 복장을 입고 일본형식을 칼을 차고 일본술기를 시연하면 우리것이 될까요? 제가 묻지 않는 검도의 이론을 게제 함은 필자가 1996년부터 검도 대회, 합기도 무술대회. 공수도 대회를 직접 개최한 장본인으로 보고 느낀 경험이라 이런 말을 하게 되며 참고로 무술대회엔 (태권도 합기도. 검도. 특공무술. 격투기. 공수도. 24반 무예)등 우리나라 체육관 보급 기술을 연합으로 실전 시범으로 불 수 있고 86년부터 제자들을 데리고 여기 저기 실전을 보고 배웠기에 참고로 쓰게 되었고,--------(1)
익명 2010.09.20
특히 24반 무예를 책을 보고 풀었다는 임동규 옹의 여러 동작들도 제자 분들과 교류하며 익히 보고 배웠는데 다는 협회와 동작이 많이 틀려 솔직히 어느 분 동작이 맞다고 말할수 가없어 아쉽게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무예도보통지를 비유하여 짚고 넘어갈 사항은 통지안의 비기들이 각각 나뉘어져 오늘에 각 계판 무술로 변한 변천사를 느낄 수 있지요. 또한 흐르는 문화에 전승은 시대에 맞게 각각 다른 변형 동작으로 바뀌었을 것입니다. 한예로 통지에 검술은 ; 검도 검법협회로, 족술 권술은 택견 수박 태권 이런 종목으로 변형한것 같고, 죽장창 창술은 봉술협회 등으로...하지만 통지 속에 옷과 보법 동작 중 현존 무술에 근접한 것은 택견 뿐이죠. 원래 가장 한국적인 술기 형은 (유.원.화) 부드럽게 원형으로 하려하고 화기애애하게 라고 배웠는데 이런 술기는 합기도가 유일하고 기타 공수도나 태권도 등은 모두 일본의 직선 동작 빠르고 세게 민첩하게 시연하는 경기 동작으로 변형되었고 발차기도 택견 과 같은 발차기를 태권도나 합기도에서는 볼 수 없고 오직 빠르고 정확하기 이기위한 경기 체육이 되버린 것이죠. 태권도의 형을 아무리 살펴봐도 직각 동작일뿐 원형동작이 없는 것도 경기화 때문일 것입니다. 헌데 일본의 영향을 받은 합기도는 반대로 발차기 권술은 공수도와 닮았으나 형과 병기술 동작들은 오히려 유.원.화 원형방식으로 무예도보통지를 많이 닮았는데 이유는 제가 말 할수가 없네요.---------(2)
익명 2010.09.20
ㅉㅉㅉㅉㅉㅉㅉㅉㅉ ~~~ 정말 아름다운 모습들 입니다. 이 토론방에는 뭔가 태권도인의 향기가 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필자님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덕분에 혼미하던 정신에서 깨어 나는 듯 합니다. 모든분들의 열정에 감사드립니다. 그리하여 저의 짧은 소견을 하나 더 올려 볼까합니다.
익명 2010.09.20
그리고 태권도에 가라데 형식의 초기 술기가 남았냐고 물으셨는데 태권도에는 누구도 형 품새만 배우고 시연할 뿐 형 품새의 이치를 풀려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가라데 공수도는 아시안게임 전국체전 등 경기에서 대련과 형 부문으로 이원화 하여 경기를 하게 되는데 형을 하고 형 풀이를 실전으로 해야 하는 단체전이 있는데 그 단체전 형 풀이는 방금 시연한 동작을 실전 기술로 변화무쌍하게 풀어 상대를 제압하고 공격하는데 여기에는 검이나 무기를 이용하는 동작을 하거나 막을 수 있는 응용력은 본인이 실전으로 응용하면 가능합니다. 참고로 필자가 제자들과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 참가하여 각 나라의 형을 목격했는데 공수 도에서는 형의 비중과 중요성을 너무 크게 느낄 수가 있었고 현재에도 태권도 유단자들이 공수 도를 배워 공수도 선수로 참가하고 있고 2002년 아시안게임에는 아랍 공주가 선수로 출전하기도 했었는데 이 아랍 공주는 북경 올림픽에는 태권도 선수로 참가했는데 우리나라 선수에게 패했지요.---------(3)
익명 2010.09.20
너무 본질을 벗어난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현대 태권도에서는 가라데 형을 묘사한 흔적만 있을 뿐 그 형을 하고 동작을 푸는데 인색하여 저도 잘 모르겠으며 태권도가 경기화가 되면서 본질을 벗어나 지금은 빈 쭉정이만 남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어지 유단자가 된후 1년 동안 형 한개만 배우며 각 승단 과정 기간 동안 형 하나 배운 후 배운 동작 반복하는데 기술로 변하는 건 발차기와 대련뿐이겠지요. 귀하께서는 현재 태권도 한마당만 보시고 태권도를 이해하면 오해입니다, 현 태권도 한마당이나 시범 동작들은 대부분 초창기 합기도인 들이 시합 때 하던 동작들인데 학생들이 대학에서 동아리나 학과에서 교류하며 함께 연습하다보니 합기도 학생들도 태권도 발차기로 태권도 학생들은 합기도 시법 호신술을 서로 배워 응용하고 있는 과정입니다. 더불어 초창기 태권도 보급 과정에는 호신술 같은 동작들이 있었다는데 경기 태권도로 변천하며 이런 동작을 하지 않는 것으로 어른들께 들었습니다. 참고로 합기도 종목 1단 과정에 기술 180개를 배웠었지만 태권도는 너무 기술이 부족하며 가라데 역시 기술이 엄청 많습니다 만 형은 공수도 를 당할 수 없고 술기는 합기도 가 제일 많이 하고 있고 남아있습니다. 끝으로 합기도에는 유술 기술. 검술 많은 병기술을 가르치고 저도 많이 배웠지요. 참고로 이건 저에 느낌과 경험일 뿐 제 말이 다 맞지는 않을 것입니다.---(4)
익명 2010.09.21
먼저 박종환님 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많은 부분을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님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부분은 한국의 전통무도는 소승적 개념의 성격이 아니라 대승적 개념의 무도였다는 사실입니다. 대승적 개념이란 많은 사람들이 그 것을 공유하는 것이 지요. 이 것이 우리민족이 나라를 지켜왔던 그 원동력이 아니엇을 까 본인은 조심스레 짐작을 합니다. 박종환님의 의견에 공감을 하는 부분은 중국의 무술이나 가라데에는 소승적 개념의 부분이 많은 것에 공감을 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중국은 넓은 지역으로 인하여 관청의 힘이 미치지 않아 자기방어를 위한 수단으로써 무예수련을 많이 하였 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의 가라데 역시 오키나와가 일본 본토에 점령을 당하고 모든 무기를 몰수 당하자 대항의 수단으로 많은 무술을 유입했고 수련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지금의 가라데가 되었다고 본인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요지는 대승적 차원의 무술과 소승적차원의 무술에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상기하고자 글을 올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익명 2010.09.21
무한님께 제의 짧은 소견을 올립니다. 가라데에 있는 한 개의 연무형은 한 개의 무술을 뜻합니다. 중국의 경우를 보면 한 개의 연무형을 가지고 평생을 수련하지요. 많은 연무형을 수련하여 많은 기술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 만 하나의 연무형을 깊이 있게 오랜시간 수련하는 것이 더 많은 유익함이 있다고 본인은 생각합니다. 지금 현재의 태권도가 가라테의 모습에서 벗어 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을 받고 있는 이유 중에 하나도 태권도의 형이 체계적이지 못하고 가라테 처럼 품새가 너무 많다는 사실입니다. 이 부분에 무한님과 다른 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익명 2010.09.21
<<고칩니다>> 아래로 아홉번째 <필자>가 올린 글에서 "한가지 확실한 것은 조선 십팔기는 조선군이 해체되던 1917년까지만 해도 군대에서 수련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에서 1917년이 아니라 1907년입니다. 일본에 의해 강압적으로 군대해산을 당한 해로 사실상의 한일합방이었죠. 감사합니다.
익명 2010.09.21
합기도의 검술은 정검형 과 역검형 단검형 쌍검형 등 ~~~일본 도법 기술과 같은 동작으로 베기 실습을 하면 합기도 검술로는 목표물을 벨수가 없었지요, (중략)<---- 무한님 검과 도의 기법차이를 혹시 오해하고 계시는 것이 아닌지요? 무한님의 오랜수련의 경험은 잘 알겠으나 제 짧은 지식으로 이해가 잘되지 않는 군요. 무한님이 알고 계시는 기법의 차이를 좀 설명해 주실 수 있는 지요? 감사합니다.
익명 2010.09.21
합기도의 정검형+역검형 등은 오직 형의 실체를 나타내는 검술일뿐 그 검술에 의한 동작으로는 목표를 베는 도법은 불가합니다. 도법 베기 동작은 별도의 수련을 해야지 합기도에서 하는 검술로 실전 자르기를 한다고 말할수 없고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 동작은 아름답지만 그냥 연무 시연이라고 평가합니다. 우리나 무인들이 검을 사용한지는 꽤 오래되지만 실전 도법 베기 수련이 대중적으로 보급된 연혁은 94~5년이 중흥기였고 그때부터 도법 1기생들이 출현 한것을 부인할수없으며 필자의 시골 대나무 밭에 서울 도심의 검객들이 진검을 사가지고 실전 연습을 한다며 많히 내려왔지만 칼 날만 빠지고 휘어지며 실전 베기 응용이 되지않아 많은 고충을 격은 후 조금씩 터득해 같는데 모두 일본식 도법으로 실천한것이 95년 부터 였지요 , 아니 저에 윗 어른들도 합기도 검술을 훨씬 이전부터 수련했지만 검술과 도법에 차이는 분명히 있었으며 당시나 현재나 검이란 무의 극치로서 태권도 나 합기도 유단자 지도자들이 모 검도협회 지도자 교육을 별도로 받으며 검의 이치를 깨우침을 부인할수 없습니다. 다만 일본식의 모순을 탈피하여 검을 빼는 동작이나 넣는 동작을 조금씩 변형한것은 사실이지요, --1
익명 2010.09.21
그외에 24반 무예를 하신분들도 실전 베기에서는 경험외에는 한계의 극치를 벋어날수없었고 시연하는 그 검의 모양도 모두 일본 사무라이식 검들뿐이었고 저도 그것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 선조들이 지녔다는 검도 수집하여 보관중이나 그런 노후한 검으로 실전 사용이 어려워 보관만 할뿐 사용에 횟수는 없어 평가할수없습니다. 육상이건 마라톤이건 어떠한 운동들도 기초를 가지고 반복 수련없이는 실천이나 기량을 늘린 방법이 없어 연습밖에 없으며 이론을 실천과 응용해야 해답이 나오므로 학설은 이론일뿐 입니다. 책만읽고 의술을 터득해 사람을 고칠수없지요. 의학을 전공한 의사들도 많은 임상 실험을 경험한자가 사람을 잘 고치겠죠. , 참고로 요즘 말하는 대체의학을 비유하면 옛날 침뜸을 개발한 학자가 허준 선생였는데 그 허준 선생이 대학을 나온것도 아니지만 자신만에 노력으로 한계를 경험하여 동의보감을 만들었는데 근대 학자들은 대학을 나오지않은 허준선생의 학술을 인용하는데 요즘 대체의학의 대가 95세 드신 신의손 김남수 어른을 왜 사이비로 인정하는지 그 이유도 말해주실수 있나요? -2
익명 2010.09.21
정부는 이렇게 정했습니다. 눈으로 보지 못하는 맹인들은 침술을 할수있지만 눈을 뜬 사람이라도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에게는 침술을 불허한다. 허지만 맹인들은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안마나 침술을 할수있는데 아무리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고 눈뜬 대학 학위 무 소지자에게는 자격을 부여치 않는데 , 눈으로 볼수없는 사람이 눈뜬 사람보다 낳다는 이유인가요? 왜 여기에서 이런 말이 나오냐면 내공의 한계를 경험하면 사람을 치유하는 기에 능력을 소지하는데 분명히 병원에서 고치지 못하는 사람을 우리가 고칠수있는데 법의 굴레는 이를 허용치않아 볍원의 무지로 환자가 죽었을때 그 책임은 누가질까요, 네~ 분명히 신기하게도 고칠수있기도한데 그말은 화가나도 더 말할수없네요, 마음을 비운자만이 얻는 심오한 체험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모두 운동만 오래하면 이런 영험을 얻는것도 아닙니다. 신기하게 기에 힘은 병든 뿌리를 뽑기도 하건만 현대 의학은 인정을 하지&#50527;는데 그 실권자가 정치의 힘에 논리라고 생각합니다. 필자의 글이 사실을 왜곡한다 하겠지만 분명한것은 저에게 그런 내공이있고 그 실천을 경험한 사례가있어 적어봅니다. 운동으로 지도자가 되려면 형과 대력 발차기만 잘하는 외공도 ㅈ중요하나 분명한건 보이지않는 내공을 익혀야하는데 현대 체육은 그런것 까지는 없겠지요. 넘 아는체해서 죄송하고요 필자는 잘나지도 못해 아주 시골에서 무명에 지도자로 봉사역할을 하는 55살의 사범였습니다.
익명 2010.09.21
<<무한>>님께(1) 필자입니다. 혹시 지도관 출신으로 1966년부터 외국에서 활동하는 김복만 사범에 대해 아시는 지요? 이분이 1979년 홍콩에서 영어로 발간한 태권도 교본(Practical Taekwondo)을 오늘 입수했는데, 지금 태권도와는 많이 다른 것 같아서 질문 드립니다. 제가 무술용어를 잘 몰라서 여기 등장하는 기술을 대충 번역하면, 우선은 단검, 단봉, 장봉, 검, 총검, 권총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기술에 책의 3분의 1정도를 할애하고 있고, 다음으로 겨루기에서는 잡혔을 때 푸는 법, 던지기 및 낙법 기술, 방어 기술, 자유 겨루기에서 공격하는 방법 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익명 2010.09.21
<<무한>>님께(2) 이어, ‘신라’라는 이름의 형(품새)도 아주 독특한데요, 지금의 품새와 비슷한 맨손 표연 2 종류에다, 단검을 쥐고 하는 것 1 종류, 곤봉을 쥐고 하는 것 1 종류 하여 모두 네 종류가 있습니다. 연무선은 모두 十자입니다. 다음으로 훈련 방법에는 준비운동, 체조, 태권도 동작의 기본 원리, 손 기술, 손발 기술, 발 기술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끝으로 샌드백을 이용한 7가지 차기 기술에 대해서도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양장본에 판형도 크고, 사진과 그림 2천여 점을 게재한 점만 보아도 당시로서는 대단히 공을 들인 작품으로 보입니다. 이 모든 게 초기 태권도 맞습니까? 이런 품새에 대해 들어보신 적은요? 감사합니다. 해피 추석! ^^
익명 2010.09.22
죄송하게도 김복만 함자 되시는 분은 잘 모르겠구요, 태권도의 원리를 하나로 보시는 안되거든요, 현재 일반인들은 태권도하면 하나. 합기도 하면 하나. 검도 하면 하라ㄷ로 생각들 하시는데 정말 계파가 엄청 많아 잘 비유하셔야합니다. 한가지 비유를 드리자면 태권도가 오림픽 종목으로 부상한것은 대단한데 올림픽 종목의 태권도는 대한체육회(국기원) 심사를 받은 지도자 선수에 한정하는데 여기에 북한 선수나 유명한 미국에 게신 이준구 (79세) 영화출연자 이런 분들은 안나오지요, 그분들은 이름은 태권도지만 경기 태권도를 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특히 경기자세에서 정권을 칠때 경기단체는 허리에서 나가며 그분들은 가슴에서 나갈 정도로 동작이 틀려 이점을 잘 분석하셔야합니다. 특히 경기 태권도에는 단순한 형과 대련 발차기 기본동작이 존재하는데 무술 태권도는 원래 변하기전 태권도를 고집하여 경기단체에 오지않고 이름은 태권도지만 형부터 동작이 대부분 틀린데 정말 중요한것은 이분들의 동작이 아직까지도 가라데의 현 기본동작 자세를 별로 변화시키지않고 하시는것같고 북한 태권도는 거의 가라데와 기본자세부터 형원리까지 호흡법까지 너무 닮았는데 &#47750;년전 친선 교류차원에 한국에와서 보여준 북한 태권도를 중계로 보았는데 이건 이름만 태권도지 가라데라해도 할말이 없더군요, 그래서 한국에 처음 태권도를 보급한 최홍희 씨가 월북 보급하여 보급했으니 가라데 영향을 부인할수없지요
익명 2010.09.22
한가지 더 알려드릴 사항은 우리나라 태권도 사밤들이 외국에 진출할때 태권도 기술의 한계를 느낀 분 일부가 합기도장에서 합기도 기술을 상당히 많이 배워가시는데 혹시 외국에 계시다가 오신 태권도 사람분들 계시면 여쭤보세요, 외국이라는 나라에서 현 태권도의 기술은 너무 짧고아 그 기술만으로는 지도의 한계때문에 단순함을 채우기위해 다른 무술 기술을 별도로 배워 진출한다고 하는데 제가 생각해도 귀하게서 말씀하신 형 하나를 평생 한다면 금새 실증을 느껴 체육관 문 닫아야합니다. 그래서 화려한 호신술 병기술을 배워갈것인데 만약 필자가 미국에 진출하여 태권도 간판을 걸었다면 이름은 태권도지만 기술은 합기도 기술부터 가라데 기술 ,검도기술 , 유술 ,기공, 봉술. 낙법, 체조, 권총탈취법, 포박술, 부채술, 다양한 검술, 등 ,호신술만도 &#47750; 백개는 가르칠수 있으니 기술로는 위기를 당하지 않을것이고 이것이 태권도 라면 그들은 그렇게 믿을것이며 대련은 태권도 스타일로 지도하면 어쩌면 모두 속아 태권도가 이렇게 다양한 기술이 있을것이라고 믿을것입니다. 그래서 현대 태권도의 허와 실이 많이 내포되어 경기태권도의 잘못된 허구성을 지적하는것입니다. 올림픽에서 보여주는 것이 대련분인데 대련만 연습하고 심사보려면 품세 &#47750;개 연습하는데 이것이 태권도라면 황당한것 아닌지요? 참고로 K1 종합격투기에 한국의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 박용수 선수가 있었는데 올림픽 헤비급 금메달 리스트 선수에게 져서 대표가 못됐지만 2인자인 그가 K1에서 보여준 참혹한 현실만 보세요, 자기보다 &#47750;십킬로 미만 조그만 태국선수에게 KO로 졌잖아요,
익명 2010.09.22
심지어 투포환 선수출신 에게도 격투기에서 졌는데 태권도 위상이 뭐가됩니까, 그런데 세미슐츠등 무사시 그런 선수들이 가라데 출신인데 그런 선수들은 격투기에서 세계최강자로 군림하는데 태권도의 모순이 있는것 아닌지요? 미국에만도 여러 개파의 태권도가 존재하니 좀더 알아보셔야하고 한국 태권도의 변화가 중요합니다, 태권도인 모두가 올림픽만 나가려고 배우는것도 아닌데 품세&#47750;개 발차기 대련 기본기뿐이라면 그건 껍데게에 불과하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하며 말씀하신 무국의 태권도 교본 저자 분도 어쩌면 합기도를 배우셔 함께 응용했을것입니다. 즉 특공무술 창시자 장수옥 님도 합기도 하시어 특공무술로 거듭 나듯이 말입니다. 현재 국무도 역시 합기도의 분신이고 경무도 또한 경찰무술을 응용한것 같고 용무도는 용인대학 출신들이 용무도라고 만들걸로 압니다, 한국무술 참 문제가 많지요? 더 깊이 들어가면 화가날수도있어요, 스련은 오랜 경험으로 오는것이고 순간적인 시각적 태권도는 모두 외공술로 저는 비유합니다. 추석이라 사울에서 방금 돌아와 피곤하지만 이글을 쓰네요
익명 2010.09.23
모두 들 추석은 잘 보내고계신지요~~~ㅎㅎㅎ 결례을 무릎쓰고 무한님께 한 말씀 올립니다. 무한님 저는 개인적으로 무한님의 무도에 대한 열정과 실천적 정신에 감동을 느낍니다. 또한 예전에 무한님이 올리셨던 글에도 저의 감동을 작은 표현으로 올린 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질문을 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무한님이 몸으로 지금까지의 이론을 체득하시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셨는 지요? 아마 적지 않은 시간으로 사료됩니다. 그러나 만약 무한님이 무도공부를 하시기 전에 그 이론에 관한 자료를 가지고 공부를 하셨다면 저의 짧은 소견으로는 아마 지금까지 체득하신것 보다 더 많은 큰 공부를 하실 수 있지 않았을 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여기서 논하고자 하는 것은 늦었지 만 지금이라도 그 전통을 바로 세우고 이론을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무한님이 답답해 하시고 화가 나시는 부분은 충분히 공감을 합니다. 그러나 본인의 생각을 글로 표현 하실 때 감정를 조금 자제하시고 올리시면 좀 더 무한님의 무력이 더욱 빛날 것 같습니다. 감히 이런 말씀을 드려 죄송합니다. 좋은 추석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익명 2010.09.23
외국에 진출할때 태권도 기술의 한계를 느낀 분 일부가 ~~~ 외국이라는 나라에서 현 태권도의 기술은 너무 짧고~~~귀하게서 말씀하신 형 하나를 평생 한다면 금새 실증을 느껴 체육관 문 닫아야합니다. (중략)<--- 무한님 감히 또 한 말씀 올립니다. 무한님의 말씀에 50%만 공감을 합니다. 한 예를 들면 태극권은 하나의 형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굉장히 많은 인기를 오랜시간 얻고 있습니다. 왜 일까요?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공부의 깊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 지요. 공부의 깊이가 있기에 하나의 연무형만으로도 100년을 넘게 지도하고 있지요. 무한님의 말씀에 50%을 공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깊이가 없다보니 가지 수라도 많아야 겠지요~~~ㅎㅎㅎ 많은 분들이 가라데 운운하시는 데 미국의 가라데 도장을 가보면 매우 엄격하고 수련은 동작은 태권도 보다 더 단순한 데도 학생들은 많지요~~~제 짧은 소견으로는 외국에 오시는 사범님들의 자질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요즘의 젊은 사범님들을 보면 무슨 곡예단이 온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ㅎㅎㅎ ~~~ 저도 중년의 한 사범으로서 젊은 후학들에게 죄송한 마음과 책임을 통감하는 부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익명 2010.09.23
무한님께 올린 필자님의 글을 읽고~~~~~ 최홍희씨가 발간한 태권도 전서에도 필자님이 궁금해 하시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참고 하세요~~~~ 그리고 제 짧은 소견으로는 지금 현재 태권도협회에는 품새를 만들 줄 아시는 분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는. 아니면 산 속에 숨어 계실 수도 있구요~~~ㅎㅎㅎ 그 이유는 얼마전 만든 새로운 경기용 품새 두개를 보고 느낀 제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차라리 미국의 익스트림 품새가 훨 보기 좋았습니다. 이것 역시도 말도 않되는 품새지 만 그래도 눈으로 보는 재미라도 있었습니다.
익명 2010.09.23
많지는 않지 만 황기씨의 수박도 대감에도 약간 실려 있군요~~~ 참고하세요 감사합니다.
익명 2010.09.23
필자입니다. 이 토론마당을 지켜봐 주신 무카스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이 곳을 뜨겁게 달구어 주신 <...>님, <무한>님, hero999usa 님, <박종한>님께 특별한 감사를 올립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제안은 토론 마당을 잠시 다른 곳으로 옮겨보면 어떨까 하는 것입니다. 이 곳에서 저는 가라데의 기원이 중국이냐 아니냐라는 발제를 하였는데 토론이 너무 뜨겁다 보니 지켜보시는 분들이 그 열기에 데일 것 같습니다. ^^ 그래서 좀 가벼운 글을 따로 올려 봤습니다. 경희대 이야기인데, 제가 그 학교의 위상을 높히자고 쓴 글은 아니고, 다만 역사에서 너무 먼 이야기 말고 아주 가까운 이야기를 좀 나누면 어떨까 해서입니다. 감사합니다.
익명 2010.09.28
찬성입니다.
익명 2010.09.28
대단히 논리적인 사실을 근거로 반박을 하고 있어서, 저도 상당히 놀랐네요? 좀 더 연구를 하여, 체계화 시켰으면 합니다.
익명 2010.09.30
공감 주신 <찬성>님, <태줄맨>님 감사드립니다. 제 글이 논리적이라니 저도 놀랍습니다. 저는 그저 제 선생님이 시키시는대로 받아 적었을 뿐입니다. 역시 존경하는 선생님... 감사합니다.
익명 2010.10.10
찬성입니다.
익명 2010.10.20
공개질의 10항에 대한 추리, 가야(가락국)등의 표현도 가라와 관계가 있다고 보는데, 님들의 의견은 어떠신지?
ㅋㅋㅋ 2023.01.28
13년 전 글과 댓글이지만 진짜 애국과 국뽕 역사왜곡을 분간 못하는 상병신새끼들 천지네 ㅋㅋㅋ\nX세대 새끼들 꼬라지 보면 진짜 환멸감 든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