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연재

[강준 칼럼] 스승과 제자(1부)


어린시절 처음 왕십리에 있는 팔광류 유술도장에 입문할 때 형이 입었던 누렇게 변색된 낡은 유도복을 입고 수련을 시작했다. 도복이 너무 커서 상의는 무릎까지 내려왔고 바지를 신발처럼 신고 다녔지만 나에게 그 낡은 유도복은 마치 잠자리의 잠옷같이 편안했다. 수련이 끝난 후 땀으로 절은 도복의 냄새는 묘하게도 잘 삶아놓은 고구마냄새처럼 구수하기까지 했다.

일 년이 지나자 낡은 도복은 해어져 새로운 도복이 필요했다. 기우고 기운 도복은 잡기만 해도 뜯어졌다. 도복이 없으면 무술을 수련하지 못 한다. 그러나 가정형편상 도복비를 마련할 길이 없었다. 궁리한 끝에 신문배달을 시작했다. 그때 나의 나이는 12살이었다. 눈이 내리는 엄동설한에 97부의 석간신문을 옆구리에 끼고 산동네를 오르락 내리락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땅거미가 지고 굴뚝에서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조만간 새 도복을 입고 수련한다고 생각하니 힘들어도 힘든 줄을 몰랐다. 그렇게 번 돈 삼천 원을 도장의 조교에게 도복을 맞추어 달라고 부탁하며 건넸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이 지나도 도복은 지급되지 않았다. 조교는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내일, 모래 차일피일 미루기만 할뿐이었다. 그날 함께 있었던 다른 조교들에게 도복이 왜? 안 오냐고 물었더니, 기가 막히게도, 돈을 건네 준 날 같이 있던 친구들과 곱창에다 소주를 사먹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그를 만나면 그 돈이 어떻게 해서 생긴 돈인지 말해주고 싶었다. 다시 신문배달을 해서 한 달을 기다려야 할 판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며칠 후 나의 스승인 관장님의 귀에 까지 들어갔다. 수련 중 갑자기 들이 닥친 관장님, 군대 군대 기워진 도복사이로 속살이 훤히 보이는 나의 모습을 보곤 얼굴색이 검붉게 변했지만 이내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불호령이 떨어졌다. 도복 값으로 소주를 사먹었던 조교를 불러들이고 친구들도 함께 기합을 받았다. 죽도로 사정없이 몽둥이로 내리쳤다. 몇 명은 쓰러졌고 다시 엎드려뻗쳐를 시켰다. 난생처음 무서운 얼굴을 한 관장님을 처음 보았다.

다음날 도장에 들어갔을 때, 도복을 걸어놓는 나의 자리엔 낡은 도복대신 새로운 도복이 걸려있었다. 띠에 단단히 묶여진 도복을 풀어 도장의 바닥에 펼쳐보았다. 눈부시게 새하얀 도복이었다. 너무나 멋진 도복이었는데도 눈물이 쏟아졌다. 이상하게도 자꾸 눈물이 흘렀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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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ㅋㅋㅋ 2010.02.22
강관장님 재미있고 멋진 사범입니다. 사진찍을때 쓸데없이 팔짱끼고 눈 치켜뜨지 마셈. 그렇게 않해도 넘넘 멋진니까요. 이제 천명을 알 나이로 치달려가는데 온화한 모습을 보여도 절대강자로 보입니다.
이박사 2010.02.22
가끔 공권유술 홈페이지에서 동영상을 보고 있는데요, 요즘 강준선생님 머리가 많이 빠지셧던데, 몇년전과 비교해서 팍삭 늙어버렷다는 느낌이,,, 흑채를 한번 써보심이 어떨실지! :)
관장에게 일러바쳤 2010.02.24
군요. 조교한테 나중에 안찍혔나요? 미운털 단단히 박혔을 건데....
소설 2010.02.24
멋진 소설 잘 읽었습니다. 12살때 나이....97부의 석간신문...ㅋㅋㅋ
밑에 소설아 2010.02.24
12살에 97부 석간신문돌렸다는것이 그렇게 웃끼냐? 어따대고 쳐 웃냐? 어른말씀하시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