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 칼럼] 나는 왜, 강하지지 않는가?(2부)
대부분의 무술도장에서는 처음 입문하게 되면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도장을 떠나는 경우가 절반정도이다. 그중에는 일주일 안에 그만두는 사람이 제일 많으며 3일안에 그만두는 사람은 수두룩하다. 왜? 처음처럼 불타오르는 투지와는 달리 모두들 3개월도못 버티고 수련을 중도에 그만두는 것일까? 여러 가지의 요인이 있겠지만, 오로지 강해지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도장에 들어선 자들의 당연한 결과다. 그것은 처음의 생각과는 달리 강해질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는 가장 첫 번째 이유는 조급함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한국인 특유의 성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처음 입관을 하고 도장에 들어서면 자신과 비슷한 또래나 비슷한 신체조건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사람의 레벨을 확인하게 된다.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허리에 묶여진 띠를 보는 것이다. 색깔이 있는 띠는 그 사람의 무력의 정도를 나타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검은 띠 선배들의 무술에 대한 전반적인 실력, 그러니까 ‘붕붕’ 날아다니는 월장낙법이나 화려한 발차기, 멋진 그래플링 실력이나 연무 등을 보면서 매우 황홀해한다. 하지만 그들이 5년 또는 7년 이상 수련한 사실을 알게 되면 나 또한 그 정도의 세월이 흘러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마는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그들은 5년이나 7년은 매우 길게만 느껴지게 된다. 먼 나라 이야기처럼 수련이 힘들게 느껴지게 된다. ‘나 또한 그만큼의 피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구나’ 란ㄴ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술을 그만두는 가장 큰 요인이 된다.
너무나 강해지고 싶다는 의욕이 넘치다 못해 조급해져있었고 최근에는 상대도 되지 않던 동료들에게도 실력의 차이가 벌어지는 등 자기 자신이 죽도록 싫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아래는 한 수련생과의 대화이다.
“너는 왜? 강해지려고 하는 것이냐?”
“네?”
나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그는 당황해 하는 듯 했지만 이내 말문을 열었다.
“저는 맨손으로 황소를 때려잡는 최영의 선생님이나 이소룡 같이 강해지고 싶습니다!”
“맨손으로 황소를 때려잡아서 뭐 할 건데?”
“저는 저의 자신을 증명해보이고 싶고 정말로 강해지고 싶습니다”
“그래서?”
“네?”
나는 단호한 어조로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나갔다.
“니가 강해졌다고 치자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
눈을 마주보며 이야기 하던 그는 이내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는 한참 후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강해지고 싶은데요”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사실, 강해진다는 것은 매우 추상적이야. 또한 객관적이지 못하고 주관적인 것이 사실이야. 예를 들면, 몸이 약한 사람이 강해지고 싶다는 생각으로 무술을 수련했고 얼마 후 자신과 비슷한 사람의 레벨에게 승리했을 때 이것으로 강해졌는가? 아닌가? 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가? 열심히 훈련하여 한 단계 실력이 업그레이드 됐고 자신 스스로도 예전보다 확실히 강해졌다고 느껴지지만 자신보다 높은 레벨의 고수에게는 분명 약한 존재가 되는 것은 기정사실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강해졌다, 아니다는 본인의 만족도에 달려있는 것일세, 또한 계속해서 강함만을 추구하는 것도 한여름의 소낙비가 지나간 후에 무지개를 쫒는 허상일수도 있어. 현재는 강함을 증명할 수 있지만 자신보다 더 강한 고수가 나타나면 언제든지 그 사람보다 약한 존재가 되는 것이고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세월이 지나고 나이를 먹게 되면 약한 사람이 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야. 결국 강함이란 자신의 만족도에 의하여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그는 나의 대답에 수긍을 하는 듯했으나 실망한 듯한 모습으로 다시 물었다. “그럼 강함을 추구하는 것이 허상이라는 말인가요? 그렇다면 뭐 하러 무술을 수련합니까? 그럼 관장님도 강함을 추구하지 않으셨단 말씀입니까?”
나는 즉흥적인 대답대신 그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자네 집에 자동차 있는가?”
“네? 아버지가 차로 출퇴근을 하십니다만”
“자네 처음 자동차를 사면 차 시트나 먼지털이개 그리고 핸들커버같은 것들을 보너스로 주는 것을 알고 있는가?”
“네”
“그것을 받으면 매우 기분이 좋겠지?..”
“그렇겠죠”
“하지만 이것을 받기 위하여 자동차의 본질인 성능이나 기타 여러 가지 안전성을 무시한다거나 드라이브를 하는 즐거움을 잊어버린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는가?”
나는 수련장의 문을 열며 말을 이어나갔다. “도장에서 수련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게.... 얼마나 즐겁게 수련을 하고 있는가? 행복해 보이지 않는가? 땀을 흘리면서도 너무도 재미있어 하고 있지 않는가? 강함이란 무술을 수련함에 있어서 얻어지는 작은 보너스와도 같은 것이야! 즐겁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말에 동감을 표시한다는 뜻이었다.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는 학생들을 보게나 얼마나 즐겁게 게임을 즐기는가? 재미있게 농구를 즐기다 보면 건강이라는 보너스를 얻게 되고 멋진 몸매 또한 옵션으로 따라붙게 되는 걸세. 그러나 오직 다이어트와 멋진 몸매를 만들기 위해서 농구를 한다면 즐겁지도 행복하지도 않게 되는 것이지.”
그는 벗어놓은 신발을 조용히 신발장에 넣고는 도장의 구석에 있는 탈의실로 향했다. 그리곤 가지고 있던 도복을 탈의실의 옷걸이 걸어놓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강해졌으면 좋겠는데” 며칠 후부터 그는 열심히 도장에 나왔다. 수련시간 내내 그는 연신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마에 맺힌 ‘송글송글’한 땀을 소매로 훔칠 때에도 행복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필자의 10대를 돌이켜 보면 정말 강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무술을 하는 존재가 오직 강해지려고 하는 것 인줄 착각을 한 시기가 있었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무술을 실전에서 사용하기 위하여 좋던 싫던 많은 싸움을 하게 되었다. 나의 눈 두덩이는 언제나 퍼렇게 멍이 들어있었고 일주일에 서너 번은 코피를 흘려야만 했다.
그리곤 20대를 맞이했을 때는 최고의 무술전성기를 맞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강함에 집착하는 시기가 되었던 것 같다. 강해지기 위해 여러 무술을 섭렵하고자 했으며 무술훈련으로 20대의 모든 청춘을 보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나의 20대는 무술을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만약 행복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무술을 미친 듯이 수련할 수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이다.
30대 초반에는 제자들에게 나와 같은 길을 가도록 무언의 압력과 강요가 있었다. 그때는 실력을 중요시 여겼으며 강하지 않으면 무술을 하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여 언제나 실전대련을 제자들과 함께 했다. 그것은 제자들이 나를 무서워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조금이라도 수련을 게을리하거나 실전대련의 기술이 모자란다면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서 사범이나 조교급의 제자들도 서슴없이 빳따를 쳤다.
나는 30대 후반에 들어서서야 겨우 무술을 수련함에 있어서의 충만함과 행복감을 즐겼다. 목소리가 부드러워지고 표정이 순해졌다. 무술을 수련한다는 자체가 나에게 즐거움이었고 나의 직업이 무술인이라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필자의 40대, 제자들을 가르치는 보람을 느끼며 산다. 제자의 실력이 나보다 나아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머금어진다. 제자가 초보자면 초보자대로 귀엽다. 제자가 오랜 시간동안 수련한 사범이라면 그것대로 대견스럽다. 모두가 사랑스럽다. 또한 공권유술을 제자들에게 지도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행복하다.
아직 필자가 50대를 경험하지 못하였으므로 어떤 생각을 갖게 될지는 모르지만 무술을 하면서 '무술도 나이를 먹는구나' 라는 생각을 종종하게 된다. 10대에서는 오로지 10대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20대에는 20대의 주관으로만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오로지 그것이 진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30대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천재 무술가 이소룡도, 60이 넘도록 무술을 했다면 지금의 절권도를 더욱 철학적인 무술로 무르익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젊은 시절“이 지상에 있어 자기보다 강한 인간이 존재하는 것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는다”라는 어록을 남긴, 고 최배달 선생이 만약 지금도 살아계신다면 한번쯤 물어보고 싶다. 젊은 시절 선생님께서 하신말씀이 아직까지도 유효한지를.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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