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 칼럼] 나는 왜? 강해지지 않는가?(1부)
후덥지근한 날씨가 아침부터 계속되더니 어느새 한 두 방울씩 떨어지던 빗방울이 마치 양동이로 물을 퍼 붙는 것처럼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우산을 쓴 채로 4층에 위치한 도장의 입구 계단에서 남학생 한명이 서있었다. 아직도 우산에서는 빗물이 ‘뚝뚝’떨어졌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그는 이내금 나를 알아보고는 웃는 얼굴로 반갑게 인사를 했다. 빗물이 바지에 튈까봐 마치 모내기를 하러 가는 사람처럼 밑단을 무릎 위까지 걷어 올렸고 물방울이 맺힌 검은색 뿔테안경은 아슬아슬하게 코에 걸쳐있었다. 스포츠머리에 앳되어 보이는 인상으로, 고등학교 2~3학년정도는 됨직해 보였다. 실내에서는 비를 맞지 않으니까 우산을 접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하고는 그를 사무실로 안내했다.“강해지고 싶어서 왔습니다!” 그는 탁자위에 놓인 화장지 한 장을 뽑아 물뭍은 안경을 닦으면서 숨도 쉬지 않고 말을 꺼냈다. 필자가 공권유술 도장에서 제자들을 지도하면서 느끼는 점은 대부분의 수련생들이 한결 같이 강해지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특히, 중, 고등학생이상의 남자학생들에게서 더욱 두드러진 현상이다. 나는 이것을 잘 알았기에 그의 말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공권유술을 하기위해서 저번 주부터 헬스크럽에 다닙니다. 웨이트트레이닝으로 체력을 다지면 더욱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의 두 눈은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켠 것처럼 빛이 났으며 두 주먹은 투지에 불타오르듯 불끈 쥐었다. 하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이친구가 얼마못가서 수련을 그만 두겠구나 짐작을 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헬스크럽에서 체력을 기르면서 무술수련을 한다면 좀 더 강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처음의 의지와는 달리 대부분 얼마못가서 포기하고 무술수련을 그만두고 만다.
태릉선수촌에서 훈련하는 국가대표선수들이나 전문 프로격투선수가 아니라면 초보자가 웨이트트레이닝과 격투기를 함께 훈련하는 것은 사실상 무리이다 왜냐하면 우선 시간적으로 쫓기게 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고 체력적으로 몸이 피곤하여 정신적으로 나약해지기 때문이다. 정신력이 약해지면 게을러지고, 게을러지면 원래의 취지에서 벗어나서 웨이트 트레이닝도 그만두고 공권유술도 그만두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충고해주고 처음부터 서두르지 말 것을 조언해주고 싶었으나 워낙 의욕이 높았기 때문에 그에게서 사기를 꺽을 만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다음날부터 훈련을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입관원서에 싸인을 하고 콧노래를 부르며 계단을 내려갔다. 빗줄기가 가늘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제법 창문을 두드렸다. 4층의 창문너머로 신호등을 건너는 그 친구의 모습이 금방 눈에 들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우산들 속에서 그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우산인줄 알았던 빨간색 꽃무늬 양산을 좌우로 ‘빙빙’돌려 지나다니는 행인들에게 물이 튀기게 하며 걷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수련시간 2시간 전부터 체육관에 오더니 도복을 갈아입고 몸을 푼다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가끔 샌드백도 한번 차보고, 벽에 걸린 사진들도 구경하다가 싫증나면 도장바닥에 대자로 뻗어서 뒹굴다가 거울을 보면서 웃통을 벗고 이소룡 흉내를 내기도 했다. 옆에서 그것을 보고 있던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사무실로 들어와서는 어떤 형이 지랄을 하고 있다고 고자질을 한다. 사실 이런 놈일수록 정작 자신의 수련시간에는 강의를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얼른 집에 갈 생각에 수련이 제대로 되질 않게 된다.
하지만 수련시간에 훈련하는 그의 운동신경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평생 처음해보는 발차기와 낙법이었지만 한 번의 설명으로 그대로 따라했었고 한 가지를 알려주면 그야말로 10가지를 터득하는 운동신경이 매우 좋은 학생이었다.
처음엔 몰랐지만 도복으로 가리워진 그의 신체는 공권유술이 아니더라도 무술을 하기에 매우 적합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약간은 호리호리한 몸이었지만 군살하나 없는 근육에 빠른 몸놀림을 보였던 것이다. 첫날 수련이 끝난 후 나는 그에게 좋은 운동신경과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열심히 하라는 말도 잊지 않고 전해주었다. 그는 진심으로 기뻐했고 노력하는 공권인이 되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 후로 일주일쯤 흘렸을까? 수련을 마치고 물을 한모금 마시려는데 그 친구가 앞을 가로막고 질문을 해왔다. “관장님 최대한 빠르게 강해지는 법을 알려주세요” 비장하기까지한 목소리였다. “어떤 목표가 있는 것은 좋은 것이야 열심히 수련하면 좋은 결과가 있어.” “그렇게 추상적인 것 말고 전, 확실한 것 을 원합니다. 훈련방법이나 기술! 식이요법이나 관장님만이 알고 있는 비기 같은 것, 뭐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네는 아직 초보니까 기본기를 열심히 수련하시게나, 나를 믿고 열심히 수련하면 분명 자네가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을 걸세.” 그날은 그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질문은 계속되었고 집요했다. 나와 마주칠 때 마다 강해지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떼를 썼고 훈련할 때마다 입버릇처럼 자신은 강해질 것이라고 자신의 훈련파트너에게 떠들고 다녔다.
모두들 그와 파트너가 되어 훈련하길 부담스러워 했다 왜냐하면 스파링을 할 때 강도를 조절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인정사정없이 상대를 몰아붙였고 상대에 대한 배려나 예의를 찾아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술도장이란, 매너를 배우는 곳이며 매너를 지키는 곳이다. 여러 사람이 함께 수련함으로 상대방을 존중하고 아껴주어야 한다.
파트너로 인하여 나의 실력이 업그레이드 되는 것이다. 내가 상대에게 함부로 대한다면 상대는 나와 파트너가 되기를 꺼려하며 언제나 부상의 위험에 노출되어있게 된다. 매너를 지키지 않으면 무술을 수련하는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더욱이 그의 실력은 오히려 줄었고 도장에 빠지는 일이 잦아졌다. 4개월 후에는 일주일 훈련에 한 번정도 나오는 상황에 까지 이르렀다. 결국 그는 훌륭한 운동신경과 감각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비슷한 시기에 입문한 동기들이나 후배들에게도 기술이 뒤쳐지게 되었고, 실력적으로도 뒤처지게 되었다. 더욱이 대련을 하면 몇 달 전만해도 상대가 되지 않던 동료들에게 오히려 패배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이젠 그의 사기는 바닥까지 내려갔다.
“관장님 공권유술을 그만두겠습니다.” 그의 손에는 잘 개어진 도복이 들려있었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놈이 찾아와서는 인사대신 불쑥한다는 한다는 말이 고작 그만두겠다는 말이냐? 도장에 입문하는 것도 너의 마음이고 그만두는 것도 너의 마음이다 무엇을 하던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그의 등을 두 번 정도 두드려주고 수련관으로 들어가려니까 그는 급하게 말을 이었다. “왜? 강해지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는 겁니까?” 그의 목소리는 원망스러움과 불만이 가득했다. 그의 질문에 나는 그가 왜? 공권유술을 그만두려고 하는지 알게 되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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